A.
유료

키르민 쿠의 감정인지

키르민 쿠 종족 날조

주절주절 by Ζ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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後, 볼라디 배그렉의 등시판명


“쿠.”

“오, 볼라디! 눈치가 정말 없구나. 어떻게 찾았어?”

“마법은 몰래 흡연하라고 있는 것이 아니다.”

“넌 너무 딱딱해.”

“다른 방식으로 스트레스를 푸는 게 어떤가.”

“정말이지, 뭐가 문제인지도 모르고.”

화려한 차림의 환상마법사는 질린다는 표정을 지으며 아직 삼키지 않은 연기를 내뱉었다. 볼라디 배그렉의 얼굴 위로 메케한 연기가 훅 끼쳐왔지만, 그는 연기와 폭약에 익숙한 전투마법사였으므로 다행히 기침은 하지 않았다. 친구의 짜증에 의문이 든 볼라디는 몇 가지 상황을 가정하고 따져보았으나 짐작 가는 것이 없어 얼굴을 살짝 찡그렸다.

“혹시 내가 잘못한 게 있나?”

“아니.”

답지 않게 짧게 답한 키르민은 투덜거리며 볼라디가 망쳐놓은 결계를 재건했다. 원인을 모르는 볼라디에겐 더 이상 할 수 있는 말이 없었으므로 키르민의 옆을 가만히 지키고 있을 뿐이다.


키르민 쿠가 흡연하는 것을 들킨 그날부터 볼라디 배그렉은 제법 성가시게 굴었다. 담배를 피우기 위해 자리를 비우려 하면 기척도 없이 따라붙는 것이다. 그렇게 기껏 따라와 하는 일이란 말 없이 곁을 지키는 것이 전부이니 키르민에겐 여간 신경 쓰이는 것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런 날이 반복되었고, 오늘도 똑같은 습관이 이어지고 있었다. 흡연을 마친 키르민이 환상을 해지하려는 순간, 볼라디가 그의 친구를 불렀다. 그 고지식한 뱀파이어의 손에는 사탕 한 통이 들려있었다.

“쿠. 담배 말고 사탕을 먹어보는 건 어떤가. 금연에 좋다더군.”

“이 사탕은 어디서 구했어?”

“외출했다.”

“어떻게?”

“? 걸어서.”

“아니, 너 외출권이 있었어?”

“없었지.”

“해골 교장에게 잡히면 징벌방 가잖아!”

“탈출했다. 먹어봐라, 쿠.”

“아니, 아니……. 그렇게 가볍게 말할, 아. 그래.”

“어떤가?”

“맛있네. 고마워, 볼라디.”

그다음부터 일어난 일은 예지 마법 없이도 쉽게 예상할 수 있을 것이다.

볼라디는 주기적으로 외출하여 키르민에게 사탕을 가져다주었고, 그것이 효과가 있긴 했는지 키르민의 흡연 빈도는 점차 줄어들었다. 흡연 횟수가 줄어들자, 키르민과 볼라디가 단둘이 지낼 시간도 자연스럽게 사라져갔다.

볼라디는 그의 친구가 금연에 성공해 가는 듯해 다행이라고 생각했지만, 어딘가 아쉬워졌다.

감각에 둔한 그로서는 그 느낌의 원인을 알 수 없었고, 이해하지 못한다는 불쾌한 감정 때문에 볼라디는 자주 인상을 쓰고 다녔다. 안 그래도 차가운 인상이 더욱 험악해진 것은 덤이다.

키르민은 한층 험악해진 친구의 얼굴을 보며 남몰래 웃었다.

볼라디는 친구가 없는 데다 감정을 얼굴에 드러내는 편이 아니다. 그런 볼라디의 얼굴에서 감정을 읽어낼 수 있는 사람은 키르민 자신뿐일 것이므로, 그는 조금 뒤틀린 우월감에 심취해 있었다. 저 사교성 없는 뱀파이어 마법사의 유일한 친구이자 그의 표정을 읽어낼 수 있는 유일한 사람!

볼라디는 자각하지 못했지만, 그가 자신을 좋아한다는 것을 짐작하는 일은 키르민에겐 쉬운 것이었으니까. 그러므로 저 전투밖에 모르는 흡혈귀가 그의 유일한 친구를 좋아한다는 것을 아는 사람도 오로지 키르민 혼자뿐이다.

인큐버스 마법사는 턱을 괴고 생각했다.

‘볼라디는 가끔 짜증 나게 굴 때가 있어도 귀여운 녀석인걸. 순진한 모습을 보면 괜히 괴롭히고 싶어지기도 하고 말이야.’

그러고는 벌떡 일어났다. 역시 괘씸해. 날 좋아하는 주제에 눈치가 그렇게나 없다니. 괜히 심술이 돋은 키르민은 볼라디를 조금 놀려주고 싶었다.


“쿠.”

“아, 볼라디. 무슨 일이야? 나 선약이 있어서 금방 가 봐야 하는데, 빨리 말해줄래?”

“……. 아무것도 아니다.”

“쿠?”

“볼라디! 오늘은 저녁 같이 먹자. 잠시만 기다려 봐….”

“그러지. 기다리겠다.”

“앗, 이런. 어쩌지? 과제가 엉망이 됐네. 미안해.”

“괜찮다. 내가 도와줄 건 없나?”

“응. 나 혼자 할 수 있어.”

“알겠다. …….”

“볼라디!”

“쿠.”

“내일은 같이 공부할까? 마침 일정이 비네.”

“물론이다. 내일 저녁에 만나지. 지금은…….”

“그래. 그럼 내일 보자, 볼라디!”

“응. 내일 보지.”


거절할 때마다 눈에 띄게-물론 키르민의 입장에서만- 시무룩해지는 볼라디를 보고 있자니 귀여워 미칠 지경이다. 이제 그만……, 아니지, 조금만 더 놀려주다 그만둘까. 볼라디의 시무룩한 모습은 어디 가서 보기 힘드니까. 키르민은 즐거운 마음으로 공부할 책을 들고 휴게실로 내려갔다.

“…….”

“…….”

“쿠.”

“왜?”

“잠시 휴식하지 않겠나?”

“공부하기로 했잖아, 볼라디.”

“그랬지. ……. 미안하군.”

둘의 공부 스타일에는 꽤나 차이가 있었다.

볼라디는 질문도 휴식도 없이 책만 들여다보며 공부하는 편이었고, 키르민은 이것저것 물어보며 의견을 나누고 적절히 휴식하며 공부하는 편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뭔가 다르다. 볼라디의 미간에 얇은 주름이 파였다. 뭐가 문제지? 쿠와 대화를 나누고 싶지만, 요즘의 쿠는 너무 바빠 대화를 나눌 시간조차 없으니.

결국 볼라디는 공부에 제대로 집중할 수 없었다.

어김없이 홀로 방에 돌아온 볼라디는 다시 고민했다. 하나뿐인 친구를 잃을 수는 없으니 원인을 찾아 해결해야 하는데, 원인을 찾을 방법조차 생각이 안 난다. 게다가 쿠는 친구가 많아서 자신이 없어도 괜찮을 것이다. 그러니 다시 말하면 좀 더 절박한 것은 자신이 되는 것인데, 해결 방법이 전혀 떠오르지 않는다니. 이건 어린 뱀파이어에겐 쉽지 않은 문제다. 볼라디의 어깨가 축 처졌다.

그 무렵 키르민은 양심의 가책을 느끼는 중이었다. 같이 다닐 친구가 자기밖에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이렇게 오래 방치하다니. 안 그래도 복도에서 홀로 다니는 볼라디를 만날 때면 뭔가 따돌림당하고 있는 것 같아 미안하단 말이지. 하지만 볼라디가 어린만큼 키르민도 어렸다. 이 어린 인큐버스는 항상 인기가 많았고, 쏟아지는 호감을 제법 당연하게 여길 수 있었다.

‘날 좋아하는 애들이 얼마나 많은데. 그런 주제에 매달리지도 않고 이렇게 굴다니. 볼라디가 나빴어.’

죄책감이 든 키르민은 가책을 지우기 위해 뻔뻔하게 합리화를 마쳤다.


보름달이 찼다 기울고, 다시 차오를 때까지 볼라디는 키르민과 만날 수 없었다. 다급해진 볼라디는 결국 키르민 쿠의 방 앞에서 무작정 기다리기로 결정했다.

밤이 되어서야 돌아온 키르민은 방 앞에 서 있는 볼라디를 보고 당황했으나 놀라지 않은 척 담담히 말을 걸었다.

“오랜만이네, 볼라디.”

“오랜만이다, 쿠.”

“무슨 일이야?”

“네가 날 피하는 것 같아서 물어보러 왔다. 왜 피했지?”

“볼라디, 오해했구나. 피한 적 없어.”

“그런가.”

“그래. 그럼 난 피곤해서 이만.”

방 안으로 들어가려는 키르민의 손목을 볼라디가 다급하게 잡아챘다. 그의 표정에는 초조함과 불안함이 섞여 있었다.

“보고 싶었다, 쿠.”

“…….”

“대화하고 싶었는데 기회가 없더군. 초대해 주겠나?”

“잠깐만이야.”

“짧게 말해보지.”

키르민을 따라 들어온 볼라디가 문 근처에서 우물거렸다. 아, 평소에 볼 수 없는 저 표정이란! 키르민이 외투를 벗고 침대에 앉아 옆자리를 두드렸다. 볼라디가 그제야 키르민의 곁에 앉았다.

망설이던 볼라디는 품에서 유리병 하나를 꺼냈는데, 그것은 볼라디가 늘 가져오던 사탕이었다.

“주려고 했는데 담배는 이미 끊은 모양이지.”

“덕분에. 하지만 잘 받을게. 고마워, 볼라디. 할 말은 그게 끝이야?”

“아니, 아니다. …….”

“그럼?”

“너와 만나지 않은 시간 동안 고민을 했어. 나로서는 이게 어떤 감정인지 알 수 없더군. 너는 이런 것을 잘 아는 편이니 물어보고 싶었다, 대답해 줄 수 있겠나?”

“내가 할 수 있는 대답이라면.”

“그래, 쿠. 너는 내 친구다. 그렇지?”

“그럼, 볼라디.”

“내 생각도 거기에서 출발했으니 큰 문제는 없겠군. 나는 내가 가지고 있는 감정이 친구 사이에서 흔한 감정일 거라고 판단했다. 나는 너 이외에는 친구가 없지만, 너는 친구가 많으니까 알고 있겠지…. 원래 친구란 것은 오랫동안 보지 않으면 조급해지나?”

일반적인 친구 관계라면 못 봤다고 조급해지진 않지, 볼라디! 키르민은 살짝 미소를 지었다. 이 눈치 없는 뱀파이어가 드디어 마음을 자각하기 시작했구나. 기뻐서 환호성이라도 지르고 싶은 심정이었지만 키르민 쿠는 뛰어난 환상마법사라면 으레 그러는 것처럼 포커페이스를 유지하고 아무렇지 않은 척 대답했다.

“글쎄, 그건 얼마나 친한 친구인지에 따라 다르지. 네가 나를 생각보다 많이 가깝게 여기는 모양이야. 정말 기쁜걸?”

“그런가. 대답해 주어 고맙군. 그리고 하나 더. 너도 알다시피 나는 전투 마법에 뜻을 두고 있다. 그래서 나는 타인이 내 곁에 머무르는 것을 반기지 않아. 그런데 네 곁에는 함께 있고 싶군. 너라면 내 고유의 공간을 내줄 수 있을 것 같아. 아, 그리고 다른 머저리들이 네 곁에 있는 것을 보면 부끄럽지만 조금 짜증이 치밀기도 한다. 왜 그런지 모르겠어. 너는 알겠나?”

“그래, 잘 알겠어, 볼라디.”

“정말인가?”

“그럼.”

키르민 쿠는 웃으며 볼라디의 멱살을 잡고 자신에게 끌어당겼다.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 채 눈만 깜빡이는 이 뱀파이어를 보자니 참을 수 없이 귀엽다는 충동이 들어 푸핫 웃음이 터져 나왔다.

키르민 쿠가 볼라디 배그렉에게 가볍게 입을 맞췄다.

“그건 바로 네가 날 좋아한다는 뜻이야, 볼라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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