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스터디용

[오수이한] 말을 할 때는 상대방의 기분을 고려하자.

그러게 누가 말 안 하고 자리를 비우래….

글 스터디 이번 주 주제 : "물싸대기"

2차 BL 연성으로 참여

마법학교 마법사로 살아가는 법 최신화 스포 多

오수X이한 사귀는 중 아님, 적폐캐붕날조 多

목표 글자 : 6000자 / 전체 글자 : 9800자

이한 워다나즈는 오수 고나달테스에게 불만이 있었다. 없을 수가 없었다. 세상에 어느 교장이 학교를 이렇게나 비워놓는단 말인가? 적어도 중간고사가 시작할 즈음에는 돌아올 줄 알았는데. 이번에는 2학년 때와는 다를 거라고 예상했는데! 2학년 때도, 오수가 이렇게 자리를 비웠을 때 이한은 온갖 개고생이란 개고생을 다 겪었다. 학교에서 발생한 사고들을 이한이 발을 뛰어 해결했었다. 햄스터의 탈출 계획이라던지, 반신 제압이라던지. 그리고 현재. 이한이 4학년인 지금 오수는 또 길고 긴 출장을 나갔다. 또 황궁에, 또 황제 폐하에게 무언가 허가를 맡겠다는 명목으로! 이제 학교에는 미친 분신이라는 신경을 써야 하는 요소는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리고 이한은 오수가 자리를 비운 동안, 데스나이트들과 일부 교수들과 같이 후배와 동기들이 저지른 사고를 수습하고 다녀야 했다. 에인로가드 본관 중 안 터지는 곳이 없었다. 불에 타고 물이 쏟아지고, 하늘에서는 난데없이 날벼락이 치고. 몇몇 후배들은 촉수다발이 된 몸체를 이끌고 이한에게 기어왔다. 텔레파시로 질질 울면서 이거 어떻게 안 되냐고 이한에게 울면서 빌었다. 어떻게든 해달라고. 간혹 텔레파시를 하지 못하는 후배들은 알아들을 수 없는 괴수의 언어로 울부짖었다. 결국 이한은 하나하나 마력을 밀어넣거나 저주를 파훼하며 후배들을 원래대로 돌려주었다.

마법 사고 뒤처리만 어연 한 달하고 반. 「교장 선생님은 언제 오십니까?」, 「스승님은 언제 오십니까?」를 주위에 묻고 다녀도 답이 없었다. 데스나이트들에게 물어도 오수가 왜 수도로 떠났는지 모르는 기사들만 수두룩했다. 교수들은 그저 좀 오래 비울 거라는 말만 들었다고 했다. 에인로가드는 수도에서 아주 멀리 떨어진 곳이라 무언가 연락도 할 수 없었다. 연락이 가능했으면 벌써 쪼아댔을 거였다. 왜이리 안 오냐고. 지금 자신을 교장 후계로 뒀다고 해서 이렇게 방치하는 거냐고.

“오기만 해 봐….”

이한이 지팡이를 콱 쥐며 이를 으득 갈았다. 마력이 무한에 가까워도, 실력이 이제 교수와 엇비슷해도, 알고 있는 마법 종류 또한 2학년 때와는 다르게 풍부해졌어도. 정신적인 피로와 육체적인 피로가 어디 가진 않았다. 가뜩이나마 4학년 시험은 유독 어려워서 시간을 따로 할애해야 하는데! 졸업에 실패한 4학년들이 종종 나올 만큼 에인로가드는 학생들을 쉽게 졸업시켜주지 않았다. 에인로가드가 졸업하기만 해도 최소한의 명예를 보장해주는만큼, 오수는 학생들이 순순히 졸업하게 두지 않았다. 에인로가드 출신 마법범죄자라도 나오는 순간 오수는 황제에게 불려가니까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그리고 몇몇 교수들은 굳이굳이 이한의 능력에 맞추어 시험을 출제했다. 그 말은 즉슨, 이한은 다른 학생들보다 더 어려운 시험을 봐야 했다는 소리였다. 이 악습은 1학년 때부터 이어지더니 기어코 끊기질 않았다. 오수가 돌아올 때만을 기다리는 이한의 눈밑은 까무잡잡했다. 짙은 다크서클이 자리잡아 보는 이로 하여금 이한에게 안쓰러움을 느끼게 만들었다. 푸른 용의 탑 친구들이 마법 사고 뒷수습에 자발적으로 나설 정도였다.

―그, 워다나즈 학생.

“예.”

데스나이트 중 한 명이 이한에게 조심스레 다가갔다. 2학년 초와 4학년 초의 차이는, 이한이 자신이 오수의 유일한 수제자임을 공공연하게 인정하고 공표했다는 점이었는데…. 지금 오수에게 악감정을 한가득 품고 있는 이한에게 후계자 님, 하고 불렀다가는 날카로운 시선을 받아내야 할 거였다. 데스나이트는 까탈스러운 성격의 주인 밑에서 오랫동안 굴러온 경험을 발휘해 이한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고도 이한을 불렀다. 실제로 입에 익은 대로 후계자 님이라 불렀다가 애꿎은 원망어린 시선을 받은 데스나이트가 있었다.

이한을 부른 데스나이트는 조심스럽게 이한을 살폈다. 지금 이걸 알리면 에인로가드 본관이 터질까? 2학년 때, 이미 학교의 복도를 터뜨린 전적이 있던 이한이었다. 4학년이 된 지금 작은 마법으로도 학교 복도가 난장판이 되리라. 데스나이트가 자신을 부르고도 한참을 머뭇거리자 이한이 의아하게 바라봤다.

“제 도움이 필요한 일이 생겼습니까? 3학년들이 소환 마법에 실수했습니까? 아니면 4학년들 중 변환 마법을 실패해서….”

―워다나즈 학생의 도움이 필요할 정도의 사고가 있는 건 아니고….

“그럼?”

이한의 기분을 살피던 데스나이트가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아, 자신은 왜 제비뽑기에서 그 제비를 뽑아가지고. 데스나이트가 자신의 운에 한탄을 한 후에 입을 열었다.

―주인님이 돌아오셨습니다. 워다나즈 학생에게 할 말이 있으니 불러오라셔서.

“…그렇군요. 감사합니다. 지금 위에 계십니까?”

―아. 예, 위에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이한이 꾸벅 허리를 숙이고 빠르게 몸을 돌렸다. 이한이 잡고 있는 지팡이에서 옅은 마력의 흔들림이 느껴졌으나, 데스나이트는 모른 척하기로 했다. 이건 전부 주인님의 업보다. 데스나이트가 한 달 반이라는 기간동안 이한이 처리한 사고들을 헤아렸다. 몇 번을 생각해도 이건 주인님의 업보였다. 아무것도 몰랐을 2학년 때와는 달리 이번에는 경우가 달랐다. 데스나이트는 후계자 님이라면 본관을 반절쯤 터트려도 합법이라고, 충분히 그럴 만하다며 혼자 납득했다.

이한이 빠른 걸음으로 본관 위로 올라갔다. 다른 학생들은 어지간해서는 모르고, 교수들은 알아도 가지 않는 곳. 오수의 교장실이자 집무실. 아마 몇 년동안 교장실에 가장 많이 간 사람은 이한일 거였다. 학생들은 해골 교장의 ㅎ만 들어도 경기를 일으키고, 교수들은 굳이 직장 상사가 일하는 공간에 자처해서 들어갈 이유가 없었다. 후계자이자 유일한 수제자인 이한만 스스로 찾아가거나 하지. 커다란 고풍스러운 디자인의 문 앞에 도착한 이한이 짧게 심호흡을 했다. 치솟는 분노가 안에서 느껴졌으나, 오수가 어떻게 말을 하냐에 따라 가라앉든 말든 할 테니 불만을 쏟아내는 건 아직 일렀다.

똑똑.

“계십니까?”

―들어오거라.

짜증나도록 태연한 목소리에 이한의 손에 힘이 절로 들어갔다. 꽉 쥔 주먹을 의식해서 풀어낸 이한이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집무를 위한 책상이 아니라 소파에 인간형으로 앉아 있는 오수가 이한을 향해 손짓했다. 이리 와서 앉으라는 제스처에 이한이 오수가 있는 쪽으로 향했다. 소파와 소파 사이에 있는 테이블 위에는 향긋한 홍차가 들어 있는 찻잔이 두 개 놓여져 있었다. 이한이 오수의 반대편에 앉아 오수를 바라보았다. 어디, 학교를 내버려두고 한 달이 넘는 기간동안 자리를 부재한 이유에 대해 들을 시간이었다.

아무리 의연하게 감정을 감추고 있어도 넘치는 불만까지는 숨기지 못한 건지, 오수가 이한의 눈에서 보이는 못마땅함을 읽고선 피식 웃었다. 오수가 자신의 눈앞에 놓인 찻잔을 들고 일부러 시간을 끌었다. 한 달이나 넘게 걸릴 줄은 몰랐지만…. 음, 지금보니 좀 많이 피곤해 보이는 것 같기도 하고. 눈밑이 좀 많이 어두워진 것 같기도 하고….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차원과 차원 간의 시간 흐름은 제각각이라, 자신은 정말 빨리 다녀오고자 했지만 운이 안 따라준 것을 자신이 어떻게 하겠는가? 그래도 오랜만에 보는 얼굴이니 불만스러운 표정도 마냥 귀엽게만 보였다.

이한은 오수가 먼저 입을 안 열 것 같자 먼저 입을 열어 대화의 시작을 끊기로 했다.

“황궁에 가셨다고 들었습니다.”

“그랬지.”

“딱히 이번에는 대마법에 대한 승인을 받기 위해 가신 건 아닌 것 같은데요.”

“그것도 맞구나. 마법에 대한 승인은 맞긴 했지만, 대마법은 아니었지.”

“…….”

이한이 자신의 눈앞에 있는 찻잔을 들고 단번에 들이켰다. 혀가 간신히 데이지 않을 정도로만 식혀진 온도라 식도가 홧홧하게 달아올랐다. 내가 이번에 처리한 뒷수습이 뭐가 있었더라? 4층 반파 뒷수습, 11층 붕괴로 인해 그 아랫층인 10층에서 진행 중인 마법 연구가 실패해서 소환된 괴수들 처리, 마법진 파훼, 저주 해주, 학생들의 겉모습을 한 스무 번은 넘게 돌려준 것 같았고…. 하필이면 올해따라 고학년들이 시도하는 마법의 수준이 높아져서, 사고도 잇따라 일어났다. 어지간해서는 학생들이 알아서 수습하라는 것이 에인로가드 교수와 교장의 입장이라곤 해도…. 올해에는 또 반 마법주의자들의 습격이 있을 뻔했고, 용병이나 모험가들이 침입할 뻔했고…….

“그럼 왜 늦으셨습니까?”

이한은 자신의 목소리에 조금의 서러움이 담겨 있다는 걸 인정해야 했다. 자신이 오수가 오길 기다린 건 그 모든 뒷수습을 자신에게 맡기고 간 것에 대한 불만 때문이 아니었다. 후계자라면서, 유일한 수제자라면서 자신에게조차 아무런 말도 없이 부재한 것에 대한 서운함 때문이었다는 걸 이한은 오수를 마주하고서야 알아차렸다. 그리고, 그리고…. 믿고 싶진 않지만. 이것마저 인정하고 싶진 않지만, 이한은 저 얄미운 표정이나마…….

“적어도 이렇게 늦으실 거라면 늦는다고 연락해주셨으면 좋았을 텐데요. 2학년 때처럼 황제 폐하를 설득하느라 늦은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저 얄미운 표정과 짜증날 정도로 듣기 좋은 미성의 목소리가 듣고 싶었음을 부정할 수 없었다.

“난 빠르게 오고 싶었다만 운이 안 따라준 것을 어떡하겠느냐?”

“지금 본의 아니게 늦었다고 넘기시려고요?”

“하지만 그게 사실이니 내가 더 할 말은 없구나.”

그래서 뭐 하느라 늦었는데. 그건 안 알려줄 건가? 이한이 단번에 들이켜 텅 빈 찻잔의 손잡이를 만지작거렸다. 이제 ‘물이여!’와 같은 마법 시전을 위한 주문이 없어도 1서클 마법 같은 건 시전할 수 있었다. 비어있던 찻잔에 차가운 물방울이 하나씩 생겨 맺히기 시작하더니, 이내 금방이라도 넘칠 정도로 가득 차올랐다. 이한이 갖고 있는 마력이 이한의 의지를 따라준 덕이었다. 오수에게 수옥탄을 날려봐야 가벼운 손짓 한 번에 파훼될 것이 뻔했으니, 이렇게 따로 물을 받아두는 게 나았다. 이한은 저 조각상 같은 얼굴에 차가운 물세례를 끼얹어야 속이 풀릴 것 같았다.

오수가 이한 주위에 작게 변화하는 마력의 흐름을 눈치챘다. 꾹 다문 입술, 자신의 답이 불만스럽지만 캐묻지 않으려는 듯 테이블로 옮긴 시선. 그리고 찻잔에 가득 차오른…물? 속이 갑갑해서 물이라도 마시려는 건지. 차라리 불만이라도 쏟아낸다면 기껍게 받아줄 생각이었다만, 이한은 그럴 생각이 없는 것 같았다. 물론 이건 오수의 생각이었다. 이한은 오수에게 물싸대기를 날리기 전에 마지막으로 물었다. 조금 가라앉은 목소리였다.

“더 하실 말은 없으십니까?”

“흠…….”

오수가 잠시 고민했다. 그러다 입을 천천히 벌려 나긋하게 말했다.

“내가 뭐라고 말해주길 바라느냐?”

오수의 입장에서는 저 뚱하게 토라진 제자의 기분을 풀어주기 위한 문장을 구사한 것뿐이었으나, 그것이 오히려 역효과를 불러왔다.

뭐…. 뭐? 이한의 입이 살짝 벌어졌다. 마치 바라는 대로 말해줄 테니 기분 풀라는 듯이, 이한 자신의 기분이 상했든 자신이 서러움과 서운함을 느꼈든, 그건 본인에게 별일 아니라는 듯이…. ……이런 말을 들을 줄 알았다면 차라리 오지 말 걸 그랬다. 이한이 당혹과 황당함으로 인해 벌려진 입술을 꽉 앙다물었다. 찻잔을 잡은 손에 힘이 저절로 들어갔는지 물이 출렁이며 이한의 손등을 적셨다. 한 달을 넘는 시간동안 제대로 쉬지 못해 쌓인 육체적 피로와, 지금 오수의 말을 듣고 갑자기 훅 올라온 스트레스에 이한은 자신의 충동을 따라 움직이기로 결정했다.

촤악!

뚝, 뚝….

흰 머리카락과 매끄러운 얼굴을 따라 물이 흘렀다. 오수는 설마 이한이 자신에게 찻잔에 채운 물을 뿌릴 거라고 생각도 못했기 때문에, 그리고 이한이라면 무슨 짓을 해도 받아주겠다는 생각에 그대로 물세례를 맞았다. 예상하지 못한 일에 오수가 살짝 눈을 크게 떠 이한을 바라보았다. 이한의 눈동자에는 이제 선명하게 서러움이 담겨 있었다. 불만도, 분노도, 짜증도 없었다. 그냥 그 감정 하나만 읽을 수 있었다. 내가 말을 잘못했나? 방향성이 틀리더라도 이한이 바랄 만한 말을 해줬어야 했던가?

이한이 찻잔을 소리나게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더이상 대화하지 않겠다는 무언의 의사 표현이었다. 이한이 등을 돌려 완전히 자리에서 벗어나기 전에, 오수가 일어나 이한의 팔을 잡았다.

“잠깐, 이한!”

“이제 하실 말이 없던 것 아니었습니까? 더 하실 말이 남아 있기라도 하시나요.”

더 할 말이 없어 그런 말을 한 거 아니었나? 이한이 오수를 노려보았다. 그간 열심히 뒷수습을 한 행동들과 오수가 돌아오길 바란 자신의 감정, 생각 같은 게 한낱으로 치부되는 것 같았다. 그건 몹시 불쾌해서 제대로 된 대화를 할 수 없을 것만 같았다. 어차피 급하면 알아서 자신에게 찾아오겠지. 그때쯤이면 감정적인 것들을 가라앉히고 이성적인 대화를 나눌 수 있을 거였다. 이한은 잡힌 팔을 빼내려 이리저리 비틀고 팔에 힘을 주었으나 오수가 풀어줄 리가 없었다.

오수가 다른 손으로 축축하게 젖은 머리카락들을 뒤로 쓸어 넘겨 정리했다. 그래도 얼굴을 마주보는데 흐트러진 꼴로 대화할 수는 없지 않은가. 아까까진 여유로웠던 표정이 묘하게 달라져 있었다. 재빠르게 이한의 낯빛을 살피는 눈빛에는 다급함이 담겨 있었다.

“네가 오해를…, 아니. 내가 오해의 여지가 있도록 말했구나.”

오수가 입을 열어 현 상황을 수습하려다 더 망칠 뻔한 상황을 간신히 막았다. 여기서 ‘네가 오해를 한 모양인데’라고 말했다간 난 네가 생각하는 의미로 말한 게 아닌데, 네가 멋대로 오해해서 기분이 상한 게 아니냐는 의미가 될 수 있었다. 물론 오수는 아직 이한이 어디서 그렇게 감정이 상했는지에 대해서는 알지 못했다. 그래도 지금까지 살아온 지혜와 세월이 있지. 여기서 더 말실수를 하는 건 막을 수 있었다. 그리고 이한의 “더 하실 말은 없으십니까?”가 일종의 최후통첩이었다는 걸 못 알아챌 오수가 아니었다.

“내가 그렇게 말한 이유는….”

그냥 정말로, 네 기분이 풀어지길 바라서 그런 거였는데. 사실 오수는 고백할 때 쓰고자 했던 반지의 재료를 좋은 것으로 맞추고 싶어서 다른 차원까지 직접 다녀온 거였다. 제국에서, 이 대륙에서 아무리 희귀하고 좋다고 해도 누군가가 노력하거나 운이 좋으면 얻을 수 있는 그런 게 아니라. 정말 이 차원에서 하나밖에 없는 걸 주고 싶어서. 황제에게 허락을 구했다는 것도 잠시 외차원에 다녀오고자 하는데 얼마나 시간이 걸릴지 몰라서 혹시 몰라 허가를 맡으러 간 거였다. 그 사이에 마도방벽에 이상이 생기면 안 되었으니까. 자신의 부재가 변수가 되어 제국에 악영향을 미치면 안 되었으니 일단 말은 해둬야 했다.

‘…자네들 언제 그런 사이가 되었나? 드래곤은 어이가 없군. 워다나즈의 의사는 고려한 게 맞나? 오수, 네가 밀어붙이는 건 아니겠지?’

‘저를 어떻게 보고 계시길래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여하튼, 생각해둔 차원과 물질이 있으니 오래 안 걸릴 겁니다.’

‘그래. 들어보니 오래 걸릴 이유가 없는 용건이니…. 마음대로 하게나. 나중에 워다나즈 가문의 가주가 황궁에 오게 하지만 말게.’

그리고 나와보니 한 달하고도 반이 넘어가고 있었더랜다. 오수는 고작 1~2주일을 거기서 보낸 것 같은데 제국의 시간이 이렇게나 지났다는 것에 놀랐다. 차원과 차원 간의 시간의 흐름이 다를 수 있어도 이렇게 다를 수가 있나. 그냥 오수의 운이 나빴다고밖엔 할 수 없었다. 그래, 나한텐 길어봐야 2주의 시간이었지만 이한에겐 두 달이었을 거고…. 아. 오수가 말을 잇다가 불현듯 알아챘다. 하려던 말들을 전부 목 안으로 쑤셔 넣었다. 혹시.

“…혹시 보고 싶었느냐?”

“…….”

이한이 입을 다물어 침묵했다. 팔을 빼내려 움직였던 움직임도 뚝 멈췄다. 오수가 손을 놓아주어도 이한은 어디 가지 않은 채 그 자리에 우뚝 서 있었다. 방금 전까지 이한의 속에서 가득 차올랐던 감정이 신기하리만치 잠잠해졌다. 하…. 한참을 가만히 입만 다물고 있던 이한이 한숨을 쉬었다. 내가 어린애도 아니고, 고작 스승과 사제 관계일 뿐인데. 두 달이 조금 되지 않는 기간동안 보지 못해 보고 싶었다고 답하는 것도 이상했다. 조금 전에 오수에게 화풀이를 하듯 찻잔 물을 뿌린 것도, 왜 그 말에 그렇게 서러움을 느꼈는지도 전부 이상하게만 다가왔다. 한 번 감정이 범람하니 지금은 왜 그렇게 행동했는지 스스로 이해를 못할 정도로 감정이 가라앉았다.

그렇지만 거짓말을 해가며 자신이 느껴온 것들을 부정할 정도로 이한이 자신에게 각박하진 않았다.

“…예.”

“늦어서 미안하구나.”

널 속상하게 만들 의도는 없었어. 정말로. 오수가 나지막하게 말했다. 인간형일 때의 대부분을 뚱한 표정을 짓거나, 후원자 앞에서 가식적인 미소를 띄우거나, 이한이 얄밉게 느껴질 정도로 웃는 때가 대부분이어서 그런지 오수가 진지한 표정으로 말하자 그게 전부 사실인 것만 같았다. 개소리를 지껄여도 믿게 만드는 얼굴이 저기 또 있었다. 이한이 작게 또 한숨을 쉬고는 지팡이를 흔들었다. 작게 흔들자 오수의 얼굴과 젖은 옷, 머리카락 같은 것에 스며든 물기가 적절하게 증발했다.

“…그래서 왜 늦으셨는데요. 아까부터 묻고 있지 않습니까.”

“다른 차원에 다녀왔었지. 고작해야 일주일 조금 넘게 있었던 것 같은데 말이다, 돌아오니 벌써 한 달이 훌쩍 넘었지 뭐더냐.”

“다른 차원…말입니까?”

“그래, 다른 차원.”

별로 안 걸릴 것 같아서 말을 안 하고 간 거였는데. 이럴 줄 알았으면 말이라도 하고 갈 걸 그랬구나. 조곤조곤 말해오는 말에서는 거짓을 느낄 수 없었다. 너도 알고 있다시피 차원과 차원의 시간의 흐름이라는 게, 차원 사이의 거리가 멀수록 제멋대로이지 않더냐. 이한은 오수가 말하는 것들을 조용히 듣기만 했다. 목소리를 들으면 들을 수록 기분이 나아지는 자신의 이상 현상이 참 마음에 안 들었다. 그러나 이한이 그렇게 느끼는 건 느끼는 거고, 기분이 나아지는 건 나아지는 거라. 이한은 다시 자신이 소파에 앉도록 이끄는 오수의 손길에 따랐다.

“이번 주말에 일정 있느냐?”

“…주말, 이요?”

“그래.”

“…없습니다.”

“그러면 잠깐 어디 가지 않겠느냐. 뭐 시키려는 것도 아니고, 마법을 알려주려는 것도 아니니 편하게 몸만 오면 돼.”

이한이 자신의 옆에 앉은 오수를 한 번 힐끗 보았다. 또 뭘 하시려는 건가 싶은 의심부터 들었지만 거절하고 싶은 생각은 들지 않았다. 뭐 심부름을 시키려는 것도 아니고, 추가 강의 같은 것도 아니라면야. 그냥 다녀오기만 하는 거라면, 뭐…. 이한이 고개를 끄덕였다. 교수들은 몇 주 전부터 자신에게 심부름이나 자잘한 부탁을 해오지 않았고, 친구들이나 후배들, 선배들은 오히려 도와줄 거 뭐 없냐고 물어왔었다. 덕분에 주말에는 그나마 쉴 시간이 있었다. 그마저도 복습이나 마법 연구에 쏟고 있었지만…. 하루정도 공부를 안 한다고 곧바로 성적에 영향이 생길 정도로 불성실하게 살아오진 않았기에, 이한이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한이 거절할 것을 예상해 두고 있었던 오수가 웃었다.

“그래, 그러면 토요일에 내가 데리러 가마.”

“하셔야 하는 일은 없으십니까?”

“너와 있을 시간을 못 낼 정도는 아니라서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누가 걱정했다고….”

이한이 어이없다는 듯 말했다. 그 말에는 아주 옅게 웃음기가 묻어 있었다. 헛웃음에 가까웠지만 그래도 그게 어딘가. 이한을 살피던 오수가 그렇게 생각했다. 이제 소소하게 대화를 나눠도 될 것 같았다. 오수가 손짓하자 테이블 위에 놓여진 찻잔과 찻주전자가 저절로 움직였다. 찻주전자 안의 식은 찻물은 다시 뎁혀져 적절한 온도가 되었고, 찻잔 안에는 그런 홍차가 과하지 않을 정도로만 채워졌다.

그동안 무슨 일은 없었고? 말도 마세요. 왜 안 오시나 원망이 들 정도로 많았습니다. 검은 거북이 탑과 불사조의 탑 3학년들이 유독 난리여서…. 아, 그놈들. 알고 계셨습니까? 알다마다. 할 거면 주의하라고 잔소리를 해댔던 걸로 기억하는데. 기어코 실패했더냐? …가장 크게 사고를 벌였던 걸로 기억합니다. 죄다 육체가 괴수나 악마의 것처럼 변해서는…, 하나하나 원래대로 돌리는 게 골치 아팠습니다. 그럼 조만간 찾아가 징벌방에라도 보내야겠구나. 정신 좀 차리고 조언 좀 들어먹으라고.

오수와 이한의 대화는 점차 길어졌다. 이한에게 오수가 왔음을 알려준 데스나이트의 생각과는 달리 이한으로 인해 에인로가드 본관이 터질 일은 생기지 않았다. 이한이나 오수나, 혹은 뒷수습에 필요한 인력으로 딸려올 데스나이트들에게나 좋은 일이었다.


오수 : oO(주말에 고백해야겠군….)

원래 몸이 힘들고 정신적으로 지치면 마음에 여유가 생길 수가 없죠.

이번 주 주제 물싸대기를 제가 냈는데 막상 제대로 소화하지 못한 상황이 발생…. 그래도 주제가 웃겼죠? 그럼 됐습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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