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마살/오수이한] 운명의 실

[오수이한] 운명의 실 - 이별

한낱 인간은 아트로포스의 가위를 거스를 수 없으니.

MOOOONG by 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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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포스타입 동일 업데이트 (https://posty.pe/s5dc17b)

* 오수이한의 날조와 적폐 설정 주의

* 앞으로 진행되는 내용 도중 원작 스포가 있을 수 있으므로 스포가 있을 시 상단에 기재해두겠습니다.

* 전형적인 회귀물 설정으로 둘의 피폐, 진지, 애정 가득한 로맨스를 보고 싶어 씁니다...

* 이한의 여러 회차들이 등장하고, 원작 내용도 간간히 주제로 나옵니다.

* maybe... 장편

* 아무튼 글쓴이의 취향을 가득 담아서 쓸 거라... 어둡고 감정적인 묘사가 많은 진행이 맞지 않다면 뒤로가기 부탁드립니다..


🎵 https://youtu.be/fw_hoSH60gk?si=ECw7u3JmkPW0jPTj



-!!

찢어지는 단발마의 비명이 삿된 것으로 가득찬 오염된 대지를 가르며 터져나온다. 고통에 가득찬 비명소리는 시선이 닿는 모든 곳에서 찬송가처럼 흘러나오고 있었다. 맑은 하늘은 물감에 젖은 종이를 반으로 접은 것처럼 불쾌한 붉은 대기로 물들어 있었다. 단언컨대 죽음을 신으로 모시는 세계가 있다면 이렇게 생겼으리라.

작금의 상황은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상황이다. 어느 것을 바쳐도 이 재앙은 예지마법으로 읽어낼 수 없었다. 이유는 단순하고도 명확했다. 한 세계의 죽음을 그 세계 속에서 살아가는 이들에게 알려줄 수는 없는 일이다. 이 세계에 살아가는 뛰어난 대마법사도, 심지어는 신에 가까운 황제 마저도 말이다. 악하디 악한 존재들만이 봉인된 모든 차원이 동시에 연결되어 중첩되리라는 것을, 그리고 그 악한 차원의 연결점이 제국의 가장 고귀하고 강인한 에인로가드가 될 것이란 것은 어느 누구도 예지할 수 없었다. 그 말은 즉슨 이 재앙을 어떤 누구도 대비하지 못했다는 말이다.

마치 정해진 미래인 것처럼, 어떤 존재도 그 미래를 바꿀 수 없으리라 규정지은 것처럼 풍요롭고 다채롭던 이 세계를 멸할 거대한 재앙은 평온한 나날 중 갑자기 나타나 세계를 무너뜨리기 시작했다. 크기를 가늠할 수도 없는 재앙이었고, 그러한 초월적인 재앙의 시작이었기에 처음부터 이 재앙은 한 도시를 단 몇 초 만에 궤멸시키며 발생하였다. 그 광경은 다른 도시에서도 보일 만큼 위압적인 광경이었다. 살아남은 생존자는 없었기에 제국의 조사관은 죽은 이의 기억을 헤집는 마법을 통하여 본 재앙의 과정을 아래와 같이 규정하였다.

1. 샛파란 하늘 위로 검은 그림자가 해일처럼 겹쳐진다.

2. 거대한 그림자로부터 수많은 실들이 뻗어나와 도시를 살핀다. 마치 무언가를 찾는 것처럼.

3. 원하는 목적을 이루지 못하면 그 그림자의 거대한 아가리가 벌어지면서, 아래로 고대보다 이전의 사악한 존재들이 도시에서 흐르던 모든 마력을 증발시킨다. 추측컨대 마력을 흡수하는 행위의 일종으로 사료된다.

4. 강탈된 마력들은 그 과정 이후, 한 점으로 모여 거대한 폭발을 일으킨다.

5. 마력의 폭발은 가히 재앙적인 수준으로, 거대한 대도시는 그 폭발에 휩쓸려 먼지 하나 남기지 않고 사라져 버린다.

고대에 봉인되었던 타차원의 악한 소환수들은 필멸자들의 생을 농락하고 희롱하며 목숨을 앗아가는 존재들이었다. 10년하고도 조금 더 옛날, 한 소년에 의해 토벌된 '구울의 왕' 역시 그러한 존재 중 하나였다.  다만, 약 사흘 전부터 시작된 이 재앙에서 쏟아져 나오는 소환수들은 구울의 왕 같은 소환수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의 강대한 존재들이었다. 소환수들 중 드물지 않게 대정령의 힘과 대척되는 것들이 나타나며, 뛰어난 대마법사들의 힘을 가진 존재들도 한 둘이 아니었다. 드래곤에 필적하는 마력양을 가진 소환수들 역시 드문드문 찾아낼 수 있었다.

압도적인 무력의 차이는 어린 학생부터 나이 든 교수, 작은 꽃부터 정령이 깃든 거대한 나무까지 평등하게 죽음으로 향하도록 만들어 냈다. 그 거대한 멸망의 흐름에서 어떤 존재도 벗어나지 못했다.

에인로가드에서 시작된 차원의 폭발은 순식간에 주변에 있던 거대한 대도시부터 해일에 도시가 잠기듯 소멸을 선사했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멸망의 시작이었던 에인로가드는 황제가 머무는 제국의 수도처럼 재앙을 견뎌내는 강대한 장소 중 하나였다. 그럴 수 있던 유일한 이유는 고귀한 고대의 대마법사가 그 영지를 가꾸었기 때문이었다.

다만, 불행하게도 현재 영지의 유일한 주인인 완벽에 가까운 대마법사는 에인로가드를 지키지 못하고 황제의 명을 받아 다중차원의 가장 중심지에서 제국의 수도를 수호하고 있었다. 그곳이 뚫리면 이 세계는 어떠한 희망도 없이 다른 차원에 먹혀 원형까지 잃고 말테니.

결국 현재 이 에인로가드는 그 대마법사의 후계자라 불린 젊은 마법사이자 교수의 주도로 겨우 버티고 있었다.


 아, 벌써 몇이 죽었더라. 몇이 죽고 또 몇이 영혼을 놔달라며, 고나달테스의 허락을 기다리게 될까.

 소환수의 손짓 한 번에 목숨을 잃은 한 화염 마법사는 그 생각을 하며 숨결을 더 이어가지 못하고 칠공에 피를 토하며 쓰러진다. 

 다른 차원에 봉인되어 있던 소환수들의 대부분은 지적 생명체로 규정된 평범한 필멸자의 가장 근본적인 부분을 갉아먹는 악질적인 존재들 뿐이었다. 고작 3일. 단 3일 만에 풍요하고 아름다우며 거대했던 에인로가드는 지옥도로 변하고야 말았다. 이곳에선 대피할 곳도 마땅치 않았다. 이미 눈에 닿고 발걸음을 내딛는 모든 도시와 마을은 소멸하였기에. 반대로 에인로가드 바깥에서 재앙을 피해 에인로가드로 도망치듯 들어와도 만날 수 있는 건 그저 조금 늦어진 멸망 뿐이었다. 

"릴리!"

 또다시 후방 쪽에서 학생 하나가 검은 잿빛 가루로 변해 소멸한다. 어린 학생의 이름을 외치는 처절한 목소리가 울음소리에 섞이며 죽음의 향기를 이끌어온다. 어느 누구도 감히 생을 바랄 수 없는 상황이었다.

제국을 수호하던 마법사 중 하나인 르블랑은 명을 받고 에인로가드에 지원을 나온 전투 마법사 중 하나였다. 맑은 공기 하나도 남기지 않고 잡아 먹을 것처럼 기어 올라오는 저 '검은 그림자'를 보며 수십 년 간 전투 마법사로서 활약해온 그마저 싸울 의지를 잃어버리고야 말았다. 아주 미약한 주저함. 그 짧디 짧은 간극은 이 전쟁터에서 목숨을 잃어도 이상하지 않은 일이었다.

검은 그림자 위로는 가시덩쿨 같아 보이기도, 혹은 운명의 실처럼 보이기도 하는 것들이 꽃처럼 피어올라 생의 의지를 잃은 르블랑의 목을 순식간에 감싸오른다. 올가미처럼 목을 조여오는 것은 기괴하게도 차갑지 않고 다정함을 가진 존재처럼 느껴졌다. 기이한 느낌이었다. 제 목숨을 앗아가는 이에게서 '다정'이 느껴지는 것은 괴이했다. 공포감과 생을 바라는 욕망으로 자연스럽게 흐르는 눈물은 검은 그림자가 그대로 흡수하였고, 동시에 죽음 앞에 요동치는 마력은 검은 그림자에게 꿀렁이며 삼켜진다. 르블랑의 숨이 서서히 사그라든다.

어찌하여, 이 세계에 이런 멸망이 찾아온 것일까. 이대로 모든 것이 끝나는 것인가.

제국을 위해 한 몸을 바쳐 일한 유능한 마법사로서 애정하던 세계에 대한 안타까움을 죽기 직전까지 생각하던 그의 눈꺼풀은 결국 느릿하게 닫히기 시작한다. 죽음을 받아들인 르블랑은 자신의 삶을 함께 해주었던 스스로의 영혼이 바스라지기를 기다린다.

마지막 한 숨이 멈춘 그 순간, 쾅-! 하는 굉음과 동시에 거대한 마력폭발이 일어난다. 두려운 소환수들이 만들어낸 복잡한 마법들보다, 그들이 불러온 엄청난 마력들의 충격음보다도 몇 십 배는 커다란 충격파가 온 세계를 울린다. 마치, 신이 소리를 지르면 이러한 울림을 주지 않을까 싶을 정도의 커다랗고 비현실적인 소리였다.

그 순간 르블랑은 자신의 영혼을 부수려고 들던 삿된 실들이 툭, 하고 끊기며 사라짐을 느낀다. 죽음의 문턱까지 밟았던 그는 고장난 인형처럼 툭 쓰러진다. 그러나 르블랑은 마치 무엇인가에 홀린 것처럼 잘 움직이지도 않는 눈을 어떻게든 굴려 엄청난 마력이 뭉쳐진 한 장소를 응시한다. 그리고 그는 한 광경에 전율할 수 밖에 없었다.

온갖 차원에서 쏟아져 나오던 강대한 소환수들과 보는 것만으로도 생기를 빼앗기는 깊은 음의 마력. 죽음보다도 끔찍한 고대의 저주들과 지독한 피비린내. 그 모든 악한 것이 순식간에 한 인영의 안으로 흡수되고 있었다. 마치 태풍의 눈이 사람으로 태어난다면 저 자처럼 탄생하는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압도적인 형상이었다.

한낱 인간의 몸으로 저 모든 것을 끌어당기고 있으면서도 비틀거림 하나 없었다. 보는 것만으로도 이성을 놓칠 것 같은 수 많은 차원의 눈들을 그 인영은 고고하게 응시하고 있었다. 그리고 곧 온 대지가 울리는 듯한 진동음이 주변을 덮어 씌운다. 고작해야 '필멸자'인 다른 이들은 그 진동음에 의하여 숨 쉬는 것도 잊은 채 그대로 자리에 주저 앉는다. 초월적인 힘에 이성은 멀어지고 그저 관측만이 가능한 상태. 지팡이가 떨어지는 소리, 검과 도가 땅에 부딪히는 소리, 누군가의 눈물이 멈추는 소리. 그리고 이내 이상하리만치 사방이 고요해진다.

맑은 하늘, 어느 순간부터 다시 들리는 새의 노래, 나뭇잎이 바람을 타고 연주를 하며, 먼 곳에 들리는 강이 흐르는 소리까지. 모든 이들은 갑작스러운 평화로움에 어떤 소리도 내지 못하고 멍하니 주변을 바라볼 뿐이었다. 그 기묘한 상황이 끊긴 것은 아주 작은 연약하고 이질적인 소리 하나 때문이었다.

툭-

무척 가벼운 것이 무너져 내리는 소리. 땅에 무엇인가 떨어져 부딪히는 소리. 아주 작디 작은 소리임에도 불구하고 모든 이들은 소리가 난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모두의 시선이 한 곳으로 모이고, 모든 시선은 세계를 구한 중심지에 쓰러져 있는 자를 발견한다. 그 자를 바라보다가 곧 서로의 시선이 다시 엉키는 순간, 곧 누군가의 처절한 울음소리가 흘러나온다.

"⋯이한!!!"

 그들은 단 한 사람의 이름을 부르며 안타까울 정도로 서럽게 소리쳤다. 친구처럼 보이기도, 스승처럼 보이기도, 제자처럼 보이기도 하는 이들이 단 한 존재만을 애타게 울부짖었다. 그들은 에인로가드가 낯선 사람들에게도 익숙한 사람들이었다. 이 상황에서도 많은 이들을 이끌고 강대한 소환수를 해치우던 이들이었다. 사흘 동안 많은 이들의 생을 구해낸 이들.

그런 강인하고 용감한 이들이 그 참혹한 중앙에서 엎드려 한 인영에게 손도 못대고 오열하고 있었다. 어느 누구도 그들에게 감히 다가서지 못했다. 타인의 처절한 감정의 분출은 보는 이들의 감정 마저도 망가뜨리기 마련이다.

처절한 울음소리가 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맑은 하늘이 검게 물들기 시작한다. 검은 구름이 회오리치듯 온 하늘을 휘몰아치고, 에인로가드가 익숙한 이들 중 몇몇은 그 구름을 보자마자 안심을 한 건지, 긴장의 끈이 풀린 듯 실신하고야 만다. 교장 선생님!, 하고 외치며 엉망으로 울며 흐느끼는 이들도 존재했다.

 그 부름에 답을 하듯이 검은 구름 아래로 커다란 번개와도 같은 형상이 몰아치다가, 그 사이로 청록빛의 형형한 눈빛의 하얀 인영이 나타난다. 그 존재 역시 방금까지 고된 전투에 서있던 건지 평소보다도 거친 행색을 하고 있었다.  영지의 주인은 어둡게 가라앉은 눈으로 참혹하다는 말이 부족할 만큼 원형을 잃은 에인로가드를 훑어본다. 그리고 곧 순식간에 그의 손이 들리고 거대한 마력이 그의 의지에 따라 움직인다. 무너진 건물들이 제 자리로 돌아가고, 뒤섞인 핏자국들은 원형으로 되돌아가 각 주인의 몸으로 흡수된다. 건물마다 새겨진 복잡한 마법들이 복구되고 그를 따르는 수많은 언데드 소환수들이 이곳에 있는 아군을 보호하듯 선다. 모든 부서지고 아파하는 것들이 손짓 하나로 복구되기 시작한다. 그리고 이곳에서 죽어간 영혼들이 죽은 이들의 가슴 위로 피어오른다. 거세게 휘몰아치던 구름이 동시에 정지하자마자 영혼들이 다시 본래 있을 곳으로 돌아가기 시작한다. 죽음이 곧장 생으로 변화하였다. 죽음의 대지에서 활기를 머금은 생으로 다시 피어오르는 광경은 아름답다는 말로도 부족했다.

그러나 고나달테스는 가볍게 혀를 차고는 어떠한 말도 하지 않고 중앙으로 걸어 들어간다. 무엇인가를 찾는 것처럼 마력을 움직여 주변을 살핀다. 움직이던 발걸음은 젊은 한 인영을 두고 엉망으로 우는 비극의 소리가 가득한 곳에 다다르자 멈춘다. 제가 찾는 이의 옆에 있는 이는 알카시스, 치유 학파의 교수였다. 고나달테스는 이미 살릴 수 없는 제자이자 동료 교수였던 이의 손을 붙잡고 마법을 읊던 알카시스 교수를 짧게 응시하다 금방 그를 부른다. 그러자 곧 알카시스는 비틀대며 옆으로 자리를 옮기고, 오수는 그 안에서 여전히 살아나지 않는 유일한 인영을 받아든다.

 검붉은 피에 젖어있다는 것을 제외하면 마치 평온한 잠을 자는 것처럼 보이는 이의 그의 손으로 뺨을 감싸자마자 이 존재가 감당해야 했을 모든 것들이 자신이 겪은 기억처럼 읽혀진다. 스스로의 몸을 매개체로 하여 온 차원을 봉인한 과정을 단 하나도 빠짐없이 인지한 그는 그럼에도 무덤덤한 목소리로 말을 내뱉는다.

- 이한, 나는 네 죽음을 허락치 않았다.

일어나야지. 그 말과 동시에 금방이라도 사라질 것 같은 여린 영혼이 등불처럼 죽은 이의 심장 켠에 떠오른다. 오수는 그 영혼을 붙잡기 위해 곧바로 마법을 시전한다. 그 순간, 공간이 찢겨지는 소리와 함께 마법이 강제로 중지된다. 위대한 대마법사는 본능적으로 죽은 이한의 몸과 영혼을 보호하듯 품으로 더 감싸 안는다. 그런 오수의 앞에 정확한 형태가 불명확한 검은 그림자가 커다랗게 떠오른다.

[아쉽지만 이 아이는 안 된단다, 안타깝고도 애처로운 리치야.]

고귀하고 위압적이기도 하며, 도저히 범인의 목소리로는 들리지 않는 음성이 오수의 머릿속에 곧바로 전달된다. 온갖 차원을 알고 있는 오수조차 처음 보는 존재. 마치 차원 너머에서 그림자를 통해 오수를 바라보는 '무언가'가 마치 기쁘게 웃는 것처럼 잘게 형태가 떨린다.

 [찾았어. 응, 찾았다. 다시 돌려 보내야지. 이곳은 이 아이가 있을 곳이 아니야. 다음 번에는 완전히. 다음에는 이 아이에게 최■■을⋯]

오수의 귓가로 저 그림자가 속삭이는 소리가 두서없이 빠르게 흘러들어온다. 평범한 필멸자였다면 듣는 것만으로도 생기가 다 빠져나갔을 지독히도 악한 기운이 음성에서 느껴졌다. 가장 뛰어난 대마법사인 고나달테스의 행동을 제한할 만큼 강대한 적. 오수가 어떤 말도, 마법도 시전하지 못하게 초월적인 힘이 그를 짓누른다.

그런 오수를 비웃듯 일렁이던 그림자는 이젠 시간이 다 되었다는 듯이 오수로부터 죽은 이한의 몸을 빼낸다. 오수는 강대한 적이 눈 앞에서 농락을 하듯 구는 것에 단순히 분노하기보다 자신을 짓누르는 이 저주와 비슷한 형태의 초월적인 힘에서 벗어나고자 빠르게 그 힘을 분해해 나가고 있었다. 다만, 그러면서도 그 그림자를 응시하는 눈빛만은 지옥의 염화와도 다를 바 없었다. 그런 오수의 모습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즐겁다는 듯이 오로라처럼 흔들리던 그림자는 곧 죽은 이한의 뺨을 쓰다듬듯 부드럽게 스쳐지나간다. 그러자 이한의 왼쪽 약지 손가락에 끼워진 초록과 노란 빛이 섞인 반지에 금이 가기 시작한다.

그 순간, 그림자의 위로 검고 차가운 기운을 담은 검은 구름들이 천공에서 아래로 쏟아져 내리며 순식간에 태풍처럼 그림자를 감싼다.

고나달테스의 고압적인 음성이 대지를 울린다.

- 그 녀석은 내 것이다. 감히 어딜 도망가느냐. 멍청한 그림자 놈아. 내가 신을 죽이지 못하리라 확신했나?

오수가 초월적인 존재의 힘을 기어코 풀어 자신의 고대 마법을 시전한 그 순간, 여리디 여린 영혼이 그 그림자에게 구속된 것처럼 묶인다. 위대한 리치의 고대마법이 그림자에게 닿자마자 그림자는 영혼을 품에 안는 듯이 제 그림자로 덮기 시작한다. 자신이 망가지는 건 신경도 쓰지 않은 것처럼 보였다. 마치 이한의 영혼을 가져가는 것이 저 너머의 초월자에게 있어 유일한 목적인 것마냥. 그림자가 오수의 마법으로 인해 입자 단위로 분해되며 소멸하는 와중에도 이한의 영혼만은 그림자의 날카로운 가시들이 구속하듯 꿰뚫어 끼우며 놓치지 않았다. 여린 영혼 역시 지금이 마지막으로 발버둥 칠 수 있는 기회라 생각한 것인지, 발악을 하듯 등불처럼 흔들린다.

그림자는 급속도로 제 형태가 소멸하자 도망치듯이 급히 차원문을 열어 버린다. 가히 순식간의 속도로 차원이 열렸다. 열리자마자 오수가 고대마법을 시전하여 차원 너머로 마법을 시전하여 불어넣었으나, 그림자는 아주 작은 형태만 남은 채로 이한을 데리고 다급하게 그 너머로 넘어가고야 만다. 제 반려인 이한을 잃을 수 없었기에 오수가 그 차원 너머로 쫓아 들어가려는 직전, 허락된 건 이한 그 아이 하나 뿐이라고 명하는 것처럼 오수에게 무차별적인 공격이 쏟아지고 차원 너머 하늘 위에 죽은 이한의 영혼을 받아가는 거대한 무언가가 오수의 눈에 들어온다. 그 순간, 그것이 손짓을 하자 차원이 빠르게 닫혀간다. 여리고 작은 불빛처럼 떠있던 영혼은 그 존재에게 잡혀 차원 너머로 사라진다. 그 순간 모든 이들을 짓누르던 압력이 사라진다.

이한 워다나즈는 그렇게 우리의 곁을 떠났다.


운명의 실


 ⋯⋯다나즈.

 제자야

 이한.

- 이한!

 헉-, 하고 놀란 숨을 내뱉고, 굳게 닫혔던 눈꺼풀이 올라간다. 조각처럼 깊고 고운 눈이 떠진다. 세로로 쭉 찢어진 동공과 금빛처럼 샛노란 금안. 환한 빛이 어둠에 익숙해진 눈을 강렬히 괴롭힌다. 시야가 빛에 적응하기도 전에, 예민한 감각은 소리를 듣는 것만으로도 저를 깨운이가 저의 다정한 둘째 형, 아르실이란 것을 알아챘다.

어라, 그런데 분명, 방금 나는 영혼 상태로 그 ■■■■에게⋯⋯ 

무엇인가 생각하려던 이성이 삐- 하는 이명과 함께 노이즈가 낀 것처럼 보이지 않았다. 이상하게 참혹한 감정이 느껴졌다. 무엇인가 소중한 것을 놓치고 있는 것만 같았다. 자신보다 귀하고, 모든 어여쁜 것을 모아 건네주고 싶던 무언가를 말이다. 그 불편하고 기이한 마음도 잠시, 금세 이한은 제 시야에 감각을 집중한다.

그러자 돌연 흐릿한 눈 앞을 인지한다. 시야가 이상하리만치 희뿌연 색으로 뒤틀리고 있었다. 분명 눈시울이 뜨겁지는 않았는데... 지금 내가 있는 곳은 꿈인가, 아니면 현실이 맞나. 지금이 몇 번 째였지. 샛노란 동공이 미묘하게 떨린다. 자아가 제대로 인지되지 않았다.

방금 그 생각은 내가 한 것이 맞나? 무어가 몇 번째라는 것이지?

아, 그렇지. 나는 방금⋯⋯ 죽었던가?

지금숨 을쉬  고 있 던가? 

공간과 자신, 시간, 자아, 기억. 모든 것이 붕 떠서 구름처럼 떠다니는 것만 같았다. 노이즈 낀 기억에 집중하면 집중할 수록 온몸에 핏기가 가시고 숨이 가빠왔다. 제 모든 것이 더러운 진창 아래에서 구르고 굴러 엉망으로 고장난 것만 같았다. 

그런 동생이 걱정된 건지, 아르실은 과호흡이 온 것처럼 구는 이한의 풀린 동공을 가까이서 응시한다. 식은땀에 젖은 이한의 앞머리를 조심스레 넘겨주며 곧장 동생의 머리를 조심스레 끌어 안는다. 그리고 곧장 숲의 정령의 힘을 빌려 이한에게 맑은 기운과 따스한 생명의 마력을 불어 넣는다

- 이한. 못 된 악몽을 꾼 것 같구나. 형이 여기 있단다.

"⋯⋯저는."

- 제대로 형을 보렴.

 다정한 음성에 이한은 제 안을 들여다 보다가 순간 제 앞을 바라본다. 흐릿했던 시야가 선명해지기 시작한다. 까맣게 점멸하다가 밝아지기를 몇 차례 반복하던 시야는 이한이 인식하지 못한 사이에 어느샌가 익숙한 인영을 담고 있었다. ⋯⋯형님?

- 내일이 에인로가드에 입학하는 날인데, 이리 악몽을 꾸어서 무척 걱정이 되는구나. 정말 괜찮은 게 맞니?

"어, 그 괜찮습⋯⋯."

'이한, 정말 괜찮은 게 맞느냐. 무얼 그렇게 두려워 하는 거지. 네 반려에게 감춘 게 있는 것 같은데.'

 이한은 아르실의 질문에 애틋한 누군가의 목소리가 겹쳐진다. 일순간, 갑작스레 자신이 의도하지 않았음에도 수많은 기억이 쏟아져서 들어오기 시작한다. 갑작스럽게 머릿속을 강타하는 수많은 정보로 세상이 천천히 회전하듯 울렁거린다. 균형을 못 잡을 것만 같아 이한은 자연스럽게 침대 헤드에 몸을 기대고 눈꺼풀을 내린다. 입으로는 당연히 저는 괜찮습니다만, 내일을 위해 다시 자야겠습니다. 라는 말을 내뱉으며 형에게 나가달란 말을 돌려서 내뱉는다.

 난, 이미 입학을. 수많은 친구들과, 어, 기습이⋯. 분명.

기억이 꼬리의 꼬리를 물고 이어지다가 곧 한 존재의 형상이 떠오른다. 검푸른 비단, 우아한 동작. 품위 높은 분위기, 조각처럼 아름다운 형상, 하얀 머리칼에 청록빛의 눈.

아, 내가 결국 또 그를 두고 홀로 돌아왔구나.

수천 번의 죽음에 추가된 또 한 번의 죽음. 그 수많은 삶 중 가장 참혹하고 끔찍한 결말. 어떤 예측도 통하지 않던 상황. 그리고 제가 사랑해 마지 않는 주인이자, 스승이자, 연인이고 반려인 그 이까지. 수천 번의 삶 속 기억을 한 번에 다시 떠올린 이한은 그대로 다시 정신을 잃고 암흑 속으로 빠져들어간다. 현실에서 기억 속으로 인지는 그대로 뒤집힌다. 꿈결과도 같은 기억 속에서는 자신을 품에 안고 제가 잠에 드는 것을 끝까지 지켜보는 애정하는 이의 모습이 보였다. 이어진 장면에서는 마법을 제게 알려주고는 만족스러울 때마다 눈부시게 아름다운 웃음을 짓으며 저를 내려다본다. 몸을 맞대며 사랑을 속삭이기도, 가끔은 싸우기도. 어쩔 때는 영원을 약속하며 아름다운 곳으로 여행을 가기도. 그러다 만난 위기를 헤쳐나가기도 하는 기억 속은 그래, 즐거웠다. 이한은 그것이 다시는 되찾을 수 없는 옛 기억임을 알면서도 외면하지 못했다.

그러다 곧 이한의 내면에서 굉음이 일어난다, 곧 기억은 정반대로 뒤집힌다. 오수가 죽는 수많은 삶과 자신이 죽은 모든 삶. 주변인들의 모든 죽음. 이한은 되돌릴 수 없는 삶들의 불행 이야기를 계속해서 빠짐없이 보았다. 수많은 지옥도 속을 직접 들어가 영원히 헤매는 것만 같은 기분.

나는 어째서 계속 죽음이 이어지는 것인가. 잠든 이한의 눈가로는 감정이 뭉쳐 투명하게 흘러내린다. 이번 생에서는 무엇인가 다를 수가 있을 지. 이한은 확신할 수 없었다. 그러나 언제나 그러하였듯이 이한은 모든 생의 유일한 제 반려를 향해 또 나아갈 것이었다.

그건⋯, 이미 인간의 삶을 철저히 벗어난 이한이 인간으로서 남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 스스로 여기기 때문이다.

썩은 동아줄이라도 살기 위해 붙잡는 인간의 본능처럼. 간절하고 절박한 심정. 이한은 또다시 같은 이를 사랑하러 걸어간다. 평온하게 끝난 적이 거의 없는 제 삶 속에서 불완전한 감정을 품게 해주는 유일한 불멸자를 향하여.



'이한. 이번 생 역시 죽음으로 끝난다면 다시 되돌아가 마주한 내게 똑같이 이 불완전한 사랑을 일깨울 것이냐?'

'무슨 그런 실없는 질문을 하십니까, 오수. 제가 몇 번이나 알려드리지 않았습니까. 얼른 이 아티팩트나 봐주십쇼. 청동 대가리가 만든 것치고 멀쩡하지 않습니까?'

'그래, 정확히 널 제자로 들인 이후, 327번 내게 말해왔다. 나를 몇 천 번이고 반복해서 사랑해왔다고. 그리고 이 아티팩트는 엉망진창에서 2% 나은 정도다. 비블레에게 보여주지 그러냐?'

'예, 지금도 같은 답 밖에 못 해드립니다. 그리고 비블레 교수님은 청동 대가리 작품은 봐주지도 않을 겁니다. 어떻게 그런 조언을 하십니까.'

'에이, 매번 명확하게 말하지 않는군. 아무튼 이번 생에서는 죽지 않으면 되겠지. 안 그러나?'

'예, 맞습니다.'

'그래, 그럼 됐지. 그보다 일 좀 그만 하거라. 반려가 옆에서 이리 붙어있는데 가만히만 있는 너도 징그럽구나. 내일 함께 나가기로 한 것 잊었느냐?'

'그렇지만-.'

'변명은 됐고. 이리 오거라, 이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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