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법학교 마법사로 살아가는 법

격멸 당해주세요, 교장선생님!

아, 정말 교장 격멸자가 아니라니까요!

보존도서관 by 자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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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진짜로 제가 교장 선생님을 쓰러트린 건 아니라니까요? 지금 제가 여기 온 건…….”

“저, 저는 에인로가드의 전 교장이신 고나달테스 님만큼의 성취감은 없으실 겁니다!”

“……이보십시오, 교장 선생님…….”

“히이이익! 살려주십시오! 투서, 폐하께 투서 보낼 겁니다!”

“하…….”

 

이한 워다나즈는 정말 어이가 없었다. 아니, 팔자에도 없는 교장직을 맡아서 서러운 판국에 공적인 문제로 방문했더니 문을 걸어 잠그고 도망치는 게 말이나 되나? 도망치길래 잡았더니 가죽을 벗겨 거꾸로 매달지는 말아 달라고 애원하는 것을 보며 이한은 간만에 자신의 명성에 대한 회의를 느꼈다.

 

“무슨 일이야?”

“헉, 워다나즈님이잖아!”

“교장 격멸자?”

“그 교장 격멸자가 왜 우리 학교에……? 교장 선생님이 뭐 잘못하셨나?”

“…….”

 

아니야! 수군거림까지 듣고 있으니 정말이지 기가 막혀서 머리가 아픈 것 같았다. 그놈의 교장 격멸자! 아무리 그래도 마법사들이 그런 소문 따위에 휘둘려서 본질을 보지 못하다니? 이게 전부 다 간단한 행정 처리조차 제대로 하지 못한 무능한 관료들 때문이었다!

 

 

**

 

 

자, 사건의 발단으로 돌아가보자. 이한 워다나즈는 본래 에인로가드의 신입생이었다.

 

“가주님이 분명 에인로가드에 가라고 하셨는데, 여기는 발드로가드 아닌가……?”

 

……정정한다. 정확히는 에인로가드의 신입생이어야 했다. 처리 과정에서 오류가 생겨 발드로가드로 가기 전까지는 말이다. 뭐, 마법 학교인 것은 똑같으니 가주님이 알아서 처리하신 거겠지. 그냥 마법이나 배우자.

보통이라면 갑자기 가기로 한 학교가 바뀐 상황에 대해 이상함을 느끼고 질문을 한 번이라도 해봤겠지만, 이한은 자신에게 벌어진 일에 대해 의문은 가져도 입 밖으로 내지 않고 성실하게 처리하는 제자 특화형 인재였기에 자신의 거처가 갑자기 에인로가드가 아닌 발드로가드가 된 것에 대해서도 딱히 어떤 말을 꺼내지 않았다. 뒤처지지 않게 공부부터 하는 게 중요했으니까!

 

“……교수님? 교수님!”

“워다나즈 가문의 이한이 교수님을 쓰러트렸어……!”

“과연 워다나즈!”

“이 머저리들아! 지금 그럴 때가 아니잖아!”

“헉, 워다나즈! 빨리 저 불을 꺼야 하지 않을까……?”

“제어가 안 되니까 일단 피하라고!”

 

그리고 이한 워다나즈의 재능은 실로 무시무시했다. 마법을 배운 지 일주일 만에 교수 하나가 이한 워다나즈의 마법을 이기지 못하고 쓰러졌다. 사인은……아니, 사유는 이한의 화염 마법을 진화하려다가 마력 고갈.

퍼지는 불 속에서 상황을 파악하지 못한 채 우왕좌왕하는 학생들, 화염 마법을 제어하지 못해서 난감하지만 책임소재를 피할 궁리를 하며 상황 파악 못하는 귀족 놈들의 엉덩이를 걷어차고 대피를 진두지휘하던 이한. 그 화려한 개판 속에서 번쩍거리던 발드로가드 건물 하나가 태초의 모습으로 돌아갔고, 뒤늦게 상황을 파악한 교수와 상급생 여럿이 달라붙어 간신히 불을 끄고 건물을 복구한 이후 이한은 눈물을 머금으며 교수도 버티지 못하는 자신의 화염 마법을 봉인하고 물 원소 마법을 익히기로 했다.

 

“교수 격멸자…….”

“건물을 방화하는…….”

“……닥쳐라, 다들.”

 

발드로가드 교수들은 워다나즈의 전무후무한 재능을 머리를 모아 수군댔다. 왜 저런 재능으로 에인로가드가 아니라 발드로가드를……? 아니, 이게 아니고! 발드로가드의 교수들은 저 재능을 감당을 못하니까, 일단 교장 선생님이 맡아서 가르치시면 어떻게든 되지……않을까? 워다나즈는 대마법사의 자질이 있었고, 발드로가드의 교장은 대마법사의 스승이라는 타이틀이 탐나 교수들의 제안을 냉큼 수락했다. 막말로 발드로가드에서 지금 아니면 언제 대마법사를 배출해 보겠어…….

 

에인로가드 신입생들의 분노 섞인 비명과 고통을 신나게 즐기고 있던 해골 교장이 이상을 느낀 것은 이한이 교수 격멸자 호칭을 얻은 이후로부터 대략 이주가 더 지난 시점이었다. 사실 대마법사이자 흑마법의 종사, 고대 마법과 용의 마법의 진전을 이은 유일무이한 존재로서 그의 직감은 일찌감치 이상을 느끼고 있었지만……. 그 막연한 예감을 구체화해서 ‘행정 문제로 에인로가드 학생이 그만 발드로가드에 입학해버렸다’는 결론을 도출하기엔 그는 미치긴 했지만 나름대로는 상식인이었던 것이다. 방금 전까지는 말이다.

 

-그런데 말이지……. 저번부터 느끼는 거지만, 사람 하나가 없는 것 같지 않나?

-예? 아직 탈출에 성공한 신입생들은 없습니다만?

-아니, 아니야. 분명히 뭔가 사람 하나를 빼먹은 것 같단……?

 

……맞다, 워다나즈! 워다나즈에서 막내아들을 에인로가드로 보낸다고 했던 것 같은데?! 그 싸가지 없는 어린 놈이 분명 연락을 보냈던 것 같다. 워다나즈에서도 에인로가드에 신입생을 보내겠다고! 이상을 눈치채자마자 오수 고나달테스의 뇌는 빠르게 상황을 눈치챘다. 한 명이……정말로……없다!

 

-잠깐, 워다나즈 어디 갔나?!

-예? 워다나즈요? 그 마법 명가 말입니까?

 

망했다! 그 싸가지 없는 어린놈의 아들을 굴릴 기회를 한 달이나 놓치다니! 아니, 에인로가드가 멀면 얼마나 멀고, 신입생이 위험하면 얼마나 위험하다고 입학식 전부터 실종된단 말인가? 이 실종 사태가 알려지면 그는 황제에게도 쪼이고, 워다나즈 가주에게도 오만 욕을 처먹을 것이 분명했다! 오수는 혹시라도 워다나즈 가문의 막내아들이 사고에 휘말린 것일까 봐 기겁하며 데스 나이트들을 들들 볶았다.

 

그리고 분노에 찬 고대의 리치 하나가 발드로가드에 쳐들어간 것은 바로 다음 날의 일이었다. 감히 발드로가드 따위가 에인로가드의 신입생을 채가다니?!

 

 

**

 

 

교수 격멸자에 이어서 한 달만에 교장 격멸자인가……. 아니, 스승 격멸자일지도 모르겠네. 옆에 다른 사람들이 없어서 다행이군. 이한은 씁쓸한 얼굴로 내려다 보았다. 쓰러진 발드로가드의 교장을 보고 있으니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이렇게 거쳐 가는 스승들을 전부 쓰러트리느니, 차라리 워다나즈 가문에서 배우는 게 낫지 않았을까……?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데 갑자기 엄청난 마력 파동이 학교 전체를 뒤엎는게 느껴졌다. 누가 이런 마법을?! 이한이 기겁하는 사이 와장창! 창문 깨지는 소리와 함께 머릿속으로 때려 박는 듯한 목소리가 우렁우렁 퍼졌다.

 

-감히 너희가 에인로가드의 학생을 빼돌려? 교장은 당장 나와서 워다나즈가 어디 있는지, 왜 빼돌렸는지 나와 긴밀한 이야기를 나눠야 할 거다!

“……?”

 

에인로가드의 학생? 빼돌려? 워다나즈? ……나인가? 이한은 교장을 정신 차리게 하려다 말고 입을 벌렸다. 커다란 해골이 둥둥 떠서 발드로가드 건물에 대고 온갖 마법을 펼치고 있었고, 기겁한 해골들이 이리저리, 해, 골들……. 기억과는 전혀 다른 발드로가드의 풍경은 마치 지옥도 안에 있는 것 같았다. 저번에 자신이 태웠다가 복구한 건물이 다시 와르르 무너지는 것을 보며 이한은 다급하게 널브러져 있는 교장―교장도 해골로 변해 있었다!―을 마구 흔들었다.

 

“교, 교장 선생님? 일어나 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교장 선생님?”

 

젠장. 저주 마법 한 번 맞고 쓰러질 거면 왜 쓰라고 한 거야! 이한은 속으로 생각했다. 다양한 마법들을 통해 적성을 찾아봐야 한다며 저주 마법을 써보라고 하더니, 쓰러져서 일어나지도 못하는 게 말이나…….

 

-찾았다, 이놈! ……응? 워다나즈 아니냐? 제 아비와 아주 똑같이 생겼군! 그런데 네가 왜, 교장실……에…….

“…….”

-…….

“안 죽였습니다.”

-나도 눈이 있으니 안다, 이 청동 대가리야. 그런데 너는 왜 인간 모습이냐?

 

눈을 부릅뜬 채로 쓰러져 있는 발드로가드의 교장을 요리조리 살펴본 오수가 흠, 하고 콧소리를 냈다. 이건 기초적인 마비 마법이군. 그리고 분명 옆에 있는 저 새끼 워다나즈 놈의 마력이렸다. 그런데 저놈, 마력량이 뭐 저리 많지? 그래, 고유세계 마법이 통하지 않은 이유가 그 탓이겠군. 그렇다면…….

 

-으하하하하하하하하하! 요 멍청한 놈! 감당도 못 할 녀석을 훔쳤다가 혼쭐이 났구나!

 

상황을 파악하자마자 세상이 떠나가라 웃는 날아다니는 해골을 보며 워다나즈의 얼굴이 뻣뻣하게 굳었다. 아니, 그런데 다짜고짜 쳐들어와서 건물을 무너트리는 저 미친놈은 뭐지……? 주변이 이런 것도 전부 저 리치 때문인가? 쓰러진 교장 옆에서 고소하다는 듯이 웃는 해골. 갈 곳을 잃고 흔들리는 이한의 시선……. 한참 웃던 오수가 이윽고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너! 이 교장 격멸자 놈아! 에인로가드에 오기로 했으면 여기가 발드로가드라는 걸 알고 이상함 정도는 느껴야 하는 것 아니냐?

“아니, 교장 격멸자라뇨……그리고 중간에 가주님이 마음을 바꿔서 저를 여기로 보냈을 수도 있는 것 아닙니까…….”

-하! 워다나즈에 망조가 들지 않는 이상 그럴 리가 없지! 지금도 봐라! 마법 배운 지 겨우 한 달 된 청동 대가리가 마법 하나 썼다고 감당을 못해서 이 사달을 내?

“…….”

 

말이 너무 심하시군! 이한은 속으로 생각했지만 입을 다물었다. 생각해 보면 좀 맞는 말 같았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나는 1학년인데……. 그 표정을 읽어낸 해골은 데굴데굴 구르면서 다시 웃었다. 이건 남한테 말해줘도 안 믿을 이야기군! 하긴, 발드로가드가 많이 한심한 곳이지!

 

“고나달테스님! 이게 무슨 일입니까!”

-흠?

“아무리 폐하의 마령관이시라지만 이렇게 다짜고짜 오셔서 건물을 무너트리고 교장 선생님을 공격하시다뇨! 황제 폐하께 투서 보내겠습니다!”

-뭐라?

 

세상이 떠나가라 웃고 있던 해골이 정색했다. 투서라고? 에인로가드의 학생을 제 놈들이 채간 주제에 감히?! 저 무능한 것들이 조르르 황제에게 찾아가서 이르면, 황제는 또 전후 사정도 모르고 자신만 불러다가 추궁할 것이 분명했다. 분노한 그는 이한을 삿대질하며 소리쳤다.

 

-제 놈이 학생 하나 감당 못 해서 쓰러진 걸 가지고 나를 모함해? 네놈들이 훔쳐 간 이 교장 격멸자 워다나즈 놈이 범인이다! 이 무능한 놈들 같으니!

“아니, 진짜 교장 격멸자가 아니라니…….”

-흠, 그래. 워다나즈야. 그래서 네가 안 쓰러트렸니?

“제가 쓰러트린 것은 맞지만 교장 격멸자는…….”

-봤냐?

 

경악에 찬 시선들을 받으며 이한은 생각했다. 망할 해골 같으니. 시작부터 눈앞에 있는 이 리치에 대한 믿음이 바스라졌다. 그는 첫 만남부터 에인로가드 학생들이 가져야 할 훌륭한 마음가짐을 가지게 된 것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콧방귀를 뀌며 항의한 교수를 ‘사람 보는 눈을 기르라’며 머리부터 땅 밑에 거꾸로 파묻어 버린 오수가 고개를 돌렸다.

 

-가자, 교장 격멸자야!

“예? 어디로요?”

-어디긴 어디냐, 에인로가드지! 너 데리러 오는 게 아니면 내가 왜 이런 곳엘 오겠느냐!

“아니…….”

 

이한은 항의하고 싶었다. 하지만 항의했다는 이유로 교수를 방금 땅에 파묻어 버린 미친 리치가 바로 그의 눈앞에 있었으므로 고이 입을 다물기로 했다. 본래 법은 멀고 폭력은 가까운 곳에 있었으며, 물리적인 힘과 권력이 같이 있는 작자만큼 무서운 것도 드물었다. 저 눈 좀 보라지. 녹색 눈이 광기로 아주 형형했다. 저건 대학원생 때 독보적으로 미친 교수들에게서나 간혹 보던 눈이었다…….

 

……그렇지만 저런 작자가 에인로가드에 있다면 그곳, 괜찮을까? 원래도 에인로가드의 소문이 제법 흉흉했지만, 어쩐지 에인로가드의 본질을 들여다본 기분이…….

 

 

**

 

 

-알겠느냐, 요 새끼 워다나즈 놈아. 외출은 금지! 옷이 부족하다면 알아서 찾아 입어라! 당연히 음식도 마찬가지다! 뭐? 어떻게 알아서 찾느냐고? 당연히 마법을 배워서지!

“아니…….”

 

이곳이 아귀 지옥인 것인가 아니면 발드로가드가 마법 학교가 아닌 마법 놀이터였던 것인가. 이한은 에인로가드에 온 첫날, 굶주리다 못해 죽어가는 학생들을 배경으로 들려오는 소리에 가장 먼저 그렇게 생각했다. 에인로가드의 영주이자 교장인 오수 고나달테스. 마법의 성취를 위해 육체를 버렸다더니 정말 인간이 아니었다. 양심이란 것도 육체와 같이 버린 것이 분명했다. 논문 주제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양심은 사실 몸에 붙어있는 것이다…….

 

‘자꾸 헛소리를 하게 되는군. 현실 도피인가?’

-자, 이것으로 안내는 끝! 알아서 살아남아라!

‘학생들 모아놓고 개소리를…….’

“혹시 네가 이번에 혼선 때문에 중간에 들어오게 됐다던 신입생이야? 워다나즈 가문의? 반가워. 난 요네르 메이킨이야.”

“……그래. 그나저나 학생들은 원래 이것뿐인가?”

“배가 고파서 못 일어나고 있어…….”

“…….”

 

이한은 쓰러져서 골골거리면서 자신을 지옥 길에 제 발로 걸어들어온 어린양 보듯 하는 학생들을 내려다보았다. 아, 정말 미친 곳이군. 교수들은 관상이 다 똑같은가? 똑같은 눈빛을 지니고 있으면 결국은 똑같이 미친 교수였던 것이다…….

 

“이, 이게 뭐야 워다나즈……?”

“먹을 거다. 먹어라.”

 

일단 애들부터 좀 먹여야 할 것 같았다. 시체 치우기 전에……. 그리고 탑이 여러 개라고 들었으니 옆 탑에도 좀 나눠주고……. 마침 이한은 오자마자 교수들에게 뭔가를 잔뜩 받았더랬다. 이런, 이런 환경이라서 준거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지만…….

 

‘네가 그 교장 격멸자……. 자. 너무 잘했다. 이거 받아 가라.’

‘발드로새……아니, 발드로가드의 교장을 물리쳤다면서? 아직 신입생인데 장하다. 자, 이거 가져.’

‘아무리 생각해도 발드로가드의 교장선생님을 쓰러트린 게 신의 한 수였군. ……교장 격멸자 같은 이상한 호칭이 생긴 게 문제지만, 뭐. 다들 좋게 봐주시는 것 같으니 괜찮나.’

“……그리고 다른 탑 학생들도 불러와.”

“왜, 왜?! 그냥 우리끼리만 먹어도…….”

“다시 뺏기고 싶나?”

“아니…….”

 

이한은 그날, 같은 학년의 신입생들을 모조리 정복했다. 한 달 동안 굶주릴 대로 굶주린 그들에게 이한은 밥을 줄 능력이 있었기 때문에…….

 

 

**

 

 

한 학년이 지났다. 별일은 없었고, 해골 교장이 숨 쉬듯 ‘교장 격멸자’ 이한 워다나즈라는 도시 괴담에 대해 떠들고 다니는 바람에 디레트 선배에게 오해당하거나, 통신 아티팩트 너머의 상대에게 ‘교장 격멸자인 이한 워다나즈라는 학생에 대해서 알고 있나?’ 라는 질문을 듣거나, 교수들에게 교장 격멸자라면 이 정도쯤은 하겠지, 따위의 시선을 받으며 볼 모 교수에게 생명의 위협을 받고, 해골 교장의 암묵적인 직전 제자가 된 것 정도……. 이한은 속으로 생각하며 모여있는 클럽의 선배들을 바라보았다.

 

“그래, 그래서 여기에 그 ‘교장 격멸자’가 있나?”

 

선배의 말에 이한은 당황했다. 여기서도 그따위 단어가?

그러나 고학년들의 질문에는 이유가 있었다. 오수가 그날 이후, 이한 워다나즈의 ‘교장 격멸 업적’을 고학년들에게 떠들고 다니며 채찍으로 활용했기 때문이었다. 실험에 실패했을 때 ‘흠, 마법을 갓 배운 신입생도 발드로가드 교장을 물리쳤는데 3학년이나 되어서 이런 간단한 실험 하나도 성공을 못하다니? 부끄러운 줄을 알아라!’ 라거나, 시험에서 낙제를 하니 ‘저기의 누구는 1학년 때 벌써 교장 격멸자라는 호칭을 달았는데 고작 이런 시험에서 낙제를 해? 징벌방이다!’ 라거나, ‘아무리 교장 격멸자라는 호칭을 달았어도 1학년인데, 걔가 너희보다 더 마법을 잘 쓰겠다, 이 마법 앵무새들아!’ 등등등……. 이야기를 듣자면 무슨 전설에서나 나올 법한 대마법사의 어린 시절 같은데, 아무리 생각해도 실존하는 인물이긴 한지 궁금했던 것이다. 교장 선생님이 만든 키메라인 줄 알았는데…….

 

곧장 시선이 이한에게로 쏠렸다. 어쨌거나 오수 고나달테스가 다른 학년들에게 ‘이한 워다나즈는 신입생인데도 벌써 발드로가드의 교장을 쓰러트렸는데 너희는 뭐 하는 거냐!’ 라고 쪼아 대는 짓을 당하지는 않았지만, 해골 교장이 이한에게 교장 격멸자라고 부르는 일을 가장 많이 목격한 것은 같은 학년이었으므로. 그리고 시선이 한 명에게 쏠리는 것을 본 선배들이 각자 머리를 맞대고 수군거렸다.

 

“정말 있군!”

“교장 선생님이 만들어 낸 가상의 존재가 아니었단 말이야?”

‘대체 뭐 얼마나 떠들고 다녔던 거지?’

 

이한은 간만에 해골 교장에 대한 살의가 끓어오르는 것을 느꼈다. 그의 잘못도 아니고 행정 절차 문제로 발드로가드에 들어갔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이런 고난을 겪어야 한다니? 이젠 학교 바깥에서도 안에서도 모두 이한 워다나즈의 교장 격멸 업적에 대해 알고 있었다! 이한이 주먹을 꽉 쥐는 것을 보며 주변에 있던 학생들이 슬금슬금 물러났다. 아무리 발드로가드라지만 교장도 쓰러트렸는데, 우리 따위는…….

 

“이한 워다나즈! 너는 우리 클럽의 가입이 확정이다! 들어온 것을 환영한다! ”

“……예?”

“네가 있다면 우리는 그 사악한 교장……흠, 클럽의 명예를 드높일 수 있겠지!”

“그게 무슨 헛소리냐! 왜 그 후배님이 너희 클럽이야! 순서 안 지켜?”

“당장 지팡이 들어!”

“하하하! 약한 놈들은 꺼져!”

 

마법을 배운 지 한 달만에 발드로가드의 교장을 쓰러트렸는데, 그렇다면 지금은 무리더라도 졸업! 졸업할 때쯤이면 해골 교장도 가능하지 않을까? 그렇다면 그 명예를……. 그런 동상동몽의 생각 속에서 마법 난투극이 벌어졌다. 온갖 마법이 날아다니고, 선배들이 바닥을 구르고, 실내 내부가 부서지고……. “야! 당장 포기 안 해?” “죽어! 죽여!” 체면 따위 버리고 아우성을 치는 선배들과, 멍하니 그 장면을 바라보는 2학년들. 난감하게 보던 페르세가 자신의 클럽에 가입한 것을 축하한다는 인사를 건네며 2학년 학생들을 전부 돌려보냈다. 이한은 개판이 된 상황 속에서 웃으며 생각했다. 이 빌어먹을 에인로가드 같으니라고.

……그 빌어먹을 놈의 교장 격멸자라는 호칭!

 

 

**

 

 

“교장 선생님! 이제 이딴 일은 그만 시키십시오! 다른 학년 애들한테 저를 교장 격멸자라고 소개하는 일도 관두시란 말입니다!”

-요즘 들어 포기한 것 같더니 왜 갑자기 찾아와서 시위냐?

 

4학년이 되었다. 이한은 자신이 5학년이 완벽히 확정이라는 사실을 믿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그게 진실인걸……. 제 코가 석 자가 되었으니 이미 4년 동안 지겹게 들은 교장 격멸자라는 호칭은 그러려니 하고 넘기게 될……줄 알았던 어느 날이었다.

 

“대체 왜 도망가신 겁니까?”

“죄, 죄송합니다, 그게…….”

“아니, 저는 일개 학생이라니까요…….”

“미, 미안하네!”

 

오수가 시킨 심부름을 하러 칼라로가드에 간 이한은 아주 황당한 상황을 마주했다. 칼라로가드의 교장이 만나주지를 않은 것이다. 교수 인편으로 주고 가면 되네. 여기까지는 괜찮았다. 그 말을 전해 들은 이한도 가볍게 생각했다. 주고 가면 되는군. 그리고 교수에게 해골 교장이 전해준 물품을 전해주는데, 그의 기민한 마력 감지 능력으로 어떤 마법이 걸려든 것이다. 제법 괜찮은 수준의 도주 마법이…….

 

“침입자가 들어온 것 같습니다!”

“예? 칼라로가드에 침입자가요??”

“예! 그래서 잡아왔습니다!”

“나, 나일세…….”

“……교장 선생님?”

 

이한은 단숨에 마법을 파훼시키고 공간마법으로 그 침입자를 이동시켰으며, 그다음에는 뼈 구속구를 불러와 제압하고 멱살을 잡았다. 그러고서는 들은 것이다. 사실 이 사람이 칼라로가드의 교장이라고…….

 

“예? 아, 아니 그런 분이 왜 도망을 가십니까? 왜 저한테 잡히시고요?”

“…….”

 

칼라로가드의 교장은 자신에게 뜨뜻미지근한 시선이 쏟아지자 입을 벙긋거렸다. 4학년 짜리에게 볼품없이 잡히긴 했지만 그도 할 말이 있었다. 그 마령관의 후계자이자 교장 격멸자가 저런 멀쩡한―생각해보니 이 거리에서 자신의 마법을 파훼시키고 멱살을 잡고 끌고오긴 했지만!― 인간일 것이라고 생각을 했겠는가?

 

마법 학교의 쌍두마차라는 이야기를 꺼냈다는 이유로 사람을 무덤 밑에 파묻어 버리고 저주까지 거는 성격 나쁜 대마법사의 후계자이니 당연히 보통 성격이 아닐 것이고, 심지어는 마법을 배운 지 한 달 만에 발드로가드의 교장을 격멸해 버린 천재 중의 천재가 찾아온다고 하니 헉, 혹시 나도……? 라는 생각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던 것이다. 그 교장 격멸자가 찾아온다고 하니 정말 자신이 저주 하나 맞고 세상을 하직하는 줄 알았단 말이다! 물론 자신이 발드로가드 따위의 교장보다는 마법 실력이 더 뛰어나긴 하지만, 한달 만에 실력 있는 마법사를 쓰러트렸던 천재가 이제 4학년이라는데, 자신 정도는 어쩌면…….

 

“…….”

 

이한은 말문이 막혔다. 예전 인타렌달스가 변명했을 때도 납득할 수 밖에 없었지만, 해골 교장의 후계자라고 하면 조금 더 삼두육비의 괴물이 상상이 가기는……. 거기까지 생각한 이한이 문득 웅성거리는 주변을 자각하고는 두리번거렸다. 자신을 보며 수군대는 학생과 교수들, 그리고 자신의 손에 멱살이 잡혀 있는 칼라로가드의……교장…….

 

“교수 격멸자…….”

“소문의, 그…….”

“……워다나즈…….”

“잠깐, 잠깐!! 이거 오해입니다!!!!!”

 

이한은 멱살을 잡힌 채로 대롱대롱 매달려 있던 칼라로가드의 교장을 공손히 내려놓고 다급히 해명하기 시작했다.

……물론 그 해명을 믿어주는 이는 아무도 없었지만…….

 

“……그런 일이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제발 다른 학교로 가라는 심부름 저 좀 그만 시키십시오.”

-하하하하하하하!

 

이한의 토로를 들은 오수는 크게 웃었다. 얼마나 소리가 큰지 에인로가드가 우렁우렁 울릴 지경이었다. 그렇게 오수는 세상이 멸망하기 직전까지…….

 

“대체 언제까지 웃으실 겁니까?! 이제 어쩌실 거냐고요!”

-하하하하하하하하! 네 놈은 학교별로 교장 격멸 업적을 수집할 거냐?

“닥……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교장 선생님 때문에 이게 뭡니까!”

-뭘 어째. 이렇게 된 김에 그냥 학교 별로 수집하면 되지. 그것도 다 명성이다.

 

악명도 명성이기야 하겠지! 이한은 제 일 아니라고 신명나게 다시 웃어젖히는 해골 교장을 보며 주먹을 꽉 쥐었다. 아, 정말로 에인로가드의 교장을 격멸해서 별명 값을 하고 싶어졌다…….

두고 보자, 언젠가는 꼭…….

 

 

**

 

 

“…….”

‘그때 생각을 잘못했군. 이름 값을 한다고 생각하는 게 아니라 그 별명을 지울 생각부터 했어야 했는데.’

 

설마 알았겠는가? 자신이 일정 수준이 되자마자 해골 교장이 제자야, 이제 네가 에인로가드의 교장이다! 축하한다, 에인로가드의 교장까지 격멸한 것을! 하면서 냉큼 교장 자리를 맡기고 제 마법 연구를 하러 사라질 줄은……. ……그런데 이건 자신이 격멸 당한 게 아닌가? 왜 자신이 에인로가드의 교장까지 격멸해버린 진정한 교장 격멸자라는 소문이 퍼졌지?

 

결국 이한 워다나즈는 마법을 배운 지 10년 만에 선배와 후배들의 모든 염원을 이뤄주게 되었다…….

 

“……교장 선생님.”

“예, 예! 워다나즈님!”

“얌전히 도장 찍으십시오. 정말 격멸해 버리기 전에. 그리고 황제 폐하 귀에 들어가면 각오하는 게 좋을 겁니다.”

“네! 알겠습니다!”

-……저, 주인님?

“예?”

-아, 아닙니다…….

 

결국 협박을 통해 필요한 서류를 받아내는 장면을 보며 데스나이트들은 생각했다. 글쎄, 항상 전 주인님에 대해 불평불만을 토로 하시지만 그 호칭에 이한의 탓이 아예 없다고는 할 수 없을 것 같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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