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에 관하여 짧은 대화.
- 대담자: 오수 고나달테스, 볼라디 배그렉.
자네는 삶이 지루할 때 없나?
“항상 같습니다.”
항상 지루하단 뜻이군?
“무료하다고 하겠습니다.”
지루한 거나 무료한 거나 거기서 거기지. 나야 스스로 버렸다지만 자넨 종족 특성이니 더 고역이겠어.
“그렇게 생각해 본 적은 없습니다.”
학생 때나 지금이나 한결같군.
“…….”
현재를 직시하는 건 좋은 습관이지만, 배그렉 교수. 가끔은 과거와 미래도 생각해야 하네.
“알고 있습니다.”
너무 누르고 있지 말고.
“예.”
친구도 좀 더 만들게.
“교장 선생님도 없지 않습니까?”
…….
“?”
왜 그런 곳을 찌르고 그러나?
“그리고 저는 쿠 교수랑 친합니다.”
쿠 교수는 수명은 길어도 불멸자가 아니잖나.
“압니다.”
아는 사람이 그래?
“?”
됐소. 자네한테 말한 내가 잘못이지. 지금은 그렇다 쳐도 쿠 교수가 떠나면 흡혈은 어떻게 하려고.
“교장 선생님에게 도움을 받을 생각이었습니다만.”
거 참, 황당하군.
“안 도와주실 생각이었습니까?”
그건 아니다, 이 녀석아. 할 수 있겠냐?
“해 봐야 알겠습니다.”
“그럼 해 봐라. 방어도 풀었다.”
“…….”
“흡혈귀에게 물려보긴 처음이군. 피는 좀 있나? 있긴 있겠지만.”
“…….”
“표정이 왜 그러냐?”
“수면에 문제가 있습니까?”
“흡혈로 별걸 다 아는구나. 리치에게 수면 문제를 물어보는 건 그다지 좋은 질문이 아니다.”
“식사에도 문제가 있고, 고민이 깊으신 것 같습니다.”
“너 앞으로 흡혈하지 마라.”
“?”
“네가 환상 마법이 쓸모없다 여기는 이유를 좀 알겠군. 불편하진 않나?”
“별생각 없습니다.”
“설마 쿠 교수한테도 그런 건 아니겠지?”
“그랬습니다.”
“뭐라고 안 했냐?”
“웃었습니다.”
“그놈도 난 놈이다. 너는 전투 외에 흥미 있는 건 여전히 없고?”
“……, 차?”
“그거라도 흥미 붙였다니 다행이구나. 근데 좀 과하게 마시는 거 아니냐.”
“교장 선생님 피가 생각보다도 맛없습니다.”
“야, 아니…….”
“입가심으로.”
“확인시켜 줄 필요까진 없었다. 그럼 내 피를 대용으로 삼겠다는 계획은?”
“참을 만……합니다.”
“좀 어이없구나. 그래서 어떤 피가 맛있는 거냐.”
“건강한 피.”
“그러니까 수면이랑 식사에 문제없고, 고민도 없는 자의 피가 맛있다는 거지?”
“그리고 언데드 피는 원래 맛없습니다.”
“이미 죽어서 그런가. 그럼 네 피도 맛없다고 느끼냐? 가끔 전투할 때 피 내서 먹더니.”
“역겹습니다.”
“인공 혈액을 먹어라.”
“시간이 없습니다.”
됐다. 질문을 하지 말았어야 했는데. 그래, 아무튼. 자네가 나보다 불멸에 익숙해 보여. 좋은 일은 아니야. 알고 있나?
“?”
감정적으로 거세되어 있다는 거니까. 자네는 선천적으로 감정을 잘 느끼지 못하는 것 같아서 말일세. 뱀파이어의 종족 특성이라지만 그중에서도 유별나.
“교장 선생님도 오욕칠정을 버리지 않으셨습니까?”
그랬지. 하지만 난 감정을 ‘알’고 있네, 배그렉 교수. 아예 모르는 것과는 다르지 않나.
“저도 알고 있는 감정들은 있습니다.”
쿠 교수가 알려준 거? 그리고 자네가 느껴본 감정은 별로 없잖나.
“…….”
나에 비하면 한참 어리지만 자네도 긴 시간을 살았잖나. 그럼에도 알고 있는 감정이 그것밖에 되지 않는다는 건 문제가 있소. 전투할 땐 좋은 특성이네만, 개인적으로 볼 땐 문제가 되는 일일세. 자넨 소모품이 아니니까.
“완전한 불사는 아니지만, 반불사의 몸이니 전장에선 도구로 쓰는 것이 승리에 더 도움이 되지 않습니까.”
그게 문제란 말이오. 제발 위험한 일에 몸 좀 그만 던지게. 워다나즈에게는 무모하다고 충고하면서 대체 본인에겐 왜 그런단 말인가?
“합리적 판단하에 한 행동입니다. 사망 확률이 낮고 경험 많은 전투 마법사가 선두에 서는 건 당연한 행동 아닙니까?”
자네도 내 제자니까 그렇지! 걱정하는 거잖나!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에인로가드에선 교장 선생님의 허락 없이 죽지 않으니 문제없잖습니까. 그리고 저는 외부에서도 심장만 방어하면 불사나 다름없습니다.”
뱀파이어의 약점이 심장이라는 게 비밀도 아니고, 다들 아는 상식 아닌가. 삶이 무료하니 자극을 준답시고 그러는 건 아니잖나.
“방어가 뚫릴 정도로 허술하지는 않습니다. 교장 선생님은 에인로가드를 지켜야 하니 외부 임무에는 제가 나서는 게 맞습니다.”
누가 그걸 몰라서 그러나? 나도 알고 있네!
“화나셨습니까?”
안 났소.
“알겠습니다.”
죽고 싶어서 위험에 뛰어드는 건 아니란 소리군.
“예.”
그럼 됐소.
“예.”
차나 마저 마시고 가시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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