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방울 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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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갈게. 기다리지 마. 짧은 메시지를 노려보던 A가 메신저 앱을 종료했다. 늘 그렇듯 A의 소꿉친구는 혼자 행동하는 쪽을 좋아했다. 그렇다고 정말 혼자 돌아가기는 적적하단 말이지. 고민하던 걸음은 다시 학교 안으로 향했다. 아직 정규 수업이 끝나기에는 이른 시간. 복도는 간간이 들리는 판서 소리를 제외하면 조용했다.
A가 걸음을 멈춘 곳은 익숙한 교실 앞이었다. 천천히 내부를 훑던 시선이 이내 동그란 머리에 도착했다. 뒷문에서 그리 멀지 않은 위치였다. 바라보는 시선을 아는지 모르는지, B는 칠판의 판서를 필기하는 데 여념이 없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A가 입꼬리를 올려 미소 지었다. 다음 주에 있을 타 학교와의 연습 경기만 아니었다면 그 역시 함께했을 풍경이었다. 정작 그 보충 연습은 갑작스러운 체육관 보강 공사 때문에 없던 일이 되었지만.
결국 네코마타 감독의 묵인하에 일일 귀가부 행세를 하게 된 배구부원들은 이른 귀가를 기뻐하며 곧장 귀로에 올랐다. 어느샌가 시야 밖으로 사라진 C만 아니었다면 A도 그 사이에 끼어 있었을 터였다. 결과만 보면 나쁜 일은 아닐지도. 맞은편 창가에 느슨히 기댄 A가 중얼거렸다. B랑 같은 시간에 귀가할 수 있는 것도 흔하지 않은 일이니까. 그 말에 뒤따르듯 수업 종료를 알리는 종소리가 흘러나왔다. 방금까지만 해도 적막을 유지하고 있던 복도가 삽시간에 방과 후의 소란함으로 가득히 채워졌다. 오늘 주번 누구야? 난 아닌데? 아, 망했다... 노트 필기 보여줄 사람? 쉴 새 없이 지나가는 대화 사이로 익숙한 이름이 끼어들었다.
B, 오늘 방과후에 시간 괜찮아? 응용을 좀 도와줄 수 있을까 해서.
누가 듣기에도 명백한 호감을 품은 남학생의 목소리에 A의 손이 흠칫 떨렸다. 그러고 보니 딱히 약속을 잡은 것도 아니었지. 뒤늦은 깨달음과 함께 미약한 불쾌함이 밀려들었다. 어린애도 아니고, 친구를 독점하려는 건 웃기네... 웃음기 하나 없는 중얼거림이 이어졌다. 괜히 교실 밖에 있다가 애매한 타이밍에 마주치는 것도 못 할 짓이다. 그렇게 판단한 A가 걸음을 떼려던 순간이었다.
미안해. 선약이 있어서.
그러면 어쩔 수 없지. 다음에라도 부탁할게.
알겠어. 다음에 봐! 그 말과 함께 교실 뒷문이 열리고 B가 상반신을 내밀었다. 처음부터 그 자리에 있는 것을 알았다는 듯 망설임 없는 움직임이었다.
잠깐이면 되니까 조금만 더 기다려줘, A!
어, 나?
A의 당황을 아랑곳하지 않고 가방에 교재와 필기구를 쓸어 담은 B가 곧장 교실 밖으로 튀어나왔다.
한참 기다렸지?
알고 있었어?
A는 키가 크니까. 교실 창문으로 실루엣이 보였거든... 자신감 어린 말투로 이야기하던 B가 서서히 말꼬리를 흐렸다. 혹시 나를 기다린 게 아니라면 어쩔 수 없지만. 뒤늦은 부끄러움으로 물든 얼굴이 발갰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A가 다른 방향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피부 아래로 뜨끈한 열기가 느껴졌다. 진심은 아니지? 정말로? 몇번이고 자문자답을 거듭해도 돌아오는 답은 같았다.
A는 B를 친구 이상으로 보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A는 이 익숙하면서도 낯선 감정을 마주했을 때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 분명하게 알고 있었다.
...돌아가는 길에 디저트 카페라도 갈래?
좋아!
말간 물방울 같은 애정이 바닥에 떨어져 조각나지 않도록, 기한 없는 랠리를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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