再會

다시 함께—.



—부유한다.

방향성 없이, 목적지 없이 그저 떠돈다. 어디에도 존재하지만 동시에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았다. 제가 느낀 죽음이란 그러했다. 연옥에는 죽어가는 백화白化만이 만연하다.

그저 당신을 보고 싶었다.

당신을 보지 못하고 당신을 생각하다 나는 죽었다.

***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라지만….

그럼에도 침전한 추억 속에서 영원하길 바랐다. 지어낸 환상 속 살아 숨 쉬길 바랐다. 그 누군가와 계속 *함께*하고 싶었다. 불행한 내 생을 근거로 당신의 존재를 증명하고 싶었다. 자신을 버리고 귀신貴紳을 위하는 생이란 그러했다. —그러니 그들을 A라 칭하지 마! 분명한 이름자 가지고 있으매 불러 마땅하잖아. 기억해야지, 그 이름들을 언제까지고.

다만 판도라의 상자를 떠올린다. 그것을 열었을 때 온갖 나쁜 것들이 빠져나왔댔다. 희망은 왜 그곳에 있었나. 희망은 왜 나쁜 것을 모아두는 그 상자 안에 있었나. 너는 시체로도 돌아오지 않을 이를 기다릴 만큼 미련하지 않다 했지. 그래, 다행이다. 희망은 해롭다. 그것은 미래니까. 잡을 수 없으니. 욕심을 만든다. 나는 당신이라는 희망 없는 세상에서 살고 싶지 않았다. 죽음은 당신 없는 세상이니 난 살아있는 시체와도 같았다. 다만 속죄, 복수, 후회, 미련 따위의 것들이 나를 옭아맨다. 아직 죽을 수 없었다. 그럼에도 나만이 남은 이곳에서, 당신 없는 여기에서 숨 쉴 수가 없어서. 그렇게 희망을 지어낸다. 신을 창조한다. 언제나 당신의 곁에 함께한다. 당신에게 숨을 불어넣고 목숨줄을 건넨다.

단 한 명의 불행을 위해 창조된 신은 초라하다.

모두가 떠나가도 당신만은 그렇게 내 곁을 지키리라 생각했다. 그래, 언제까지고 주위를 맴돌 작은 새처럼.

그런데 당신, 지금 어디에 있어. 내가 본 마지막 세상은 당신이어야 했어.

죽어가는 순간 진실을 깨닫는다. 창조주는 창조물을 잃는다. 하나 뿐인 신도는 제 신이자 주主를 잃는다.

여지껏 제 손에 쥐여진 적 없는 목숨줄은 또 다른 신에게 향한다. 어린 양은 늑대 소굴에서 깨어나는 목양견을 비웃는다. 여지껏 광견병 걸린 양이라 믿었건만 제정신 아닌 것은 저도 마찬가지였나보지. 미친 늑대는 개의 목을 문다. 개는 꼬리를 말아넣는다. 양은 그 모습을 지켜본다. 백신 따위 효력을 다 한 지 오래다. 그러니 이제는 돌아갈까, 그 분의 품으로….

***

—깜빡, 익숙한 시야.

길게 이어진 흉터를 따라 남은 눈물자국. 막혔던 숨을 들이마신다. 우리의 곁에서 공기를 자처한 신을 들이킨다. 독이 있음을 알 수 없을지어도 방독면 따위는 사치였다. 억지로 이어붙여진 목숨 천천히 질식해간다. 그 분이 내린 구원이다. 너희가 바라 마지 않았던….

초신성이 폭발한 자리에는 중성자별이 남았다. 나는 죽어 다시금 태어났으니 너는 나를 별이라 부를 텐가. 다만 그 시체 하늘에 박히지 않고 긴 호선을 그리며 땅으로 떨어진다. 하늘에서 그저 아름답게 빛나기만 하면 좋았을 것을, 저를 끌어당기던 모항성 잃은 채 궤도를 이탈한다.

나는 그렇게 희망 없는 세상에 놓인다. 죽음보다 더한 형벌에 처해진다. 생이 아닌 영원한 죽음을 이어간다.

나는 살아 무얼 하고 싶었나. 옛 정을 운운하며 너희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는 말 무책임하지. 하지만 그 죄악의 근원이 되는 것 사람이아니었으니, 나는 그저 계몽하고 싶었다. 내가 걸었던 길 되짚으며 후회하지 않길 바랐다. 이단이 되어, 신의 사자가 되어, 진실을 향한 선지자가 되어,

활개치는 기사가 되어!

다만 세르반테스, 이제는 망상을 끝내고 현실로 돌아올 시간이야. 꿈에서 깨어날 때야.

스쳐가는 연옥 속에서 당신은,

불타 사라진 나의 신은.

내게 그리 말했다.

이제 더는 악몽 속에서도 함께할 수 없었다.

***

—백월白月의 기사에 인도되어 다시 눈 뜬 세상에, 괴물과 거인 따위는 존재치 않는다. 그저 우리를 감싸는 거대한 풍차 뿐이다. 언제까지고 견고해야 할 낙원이다. 무너지지 않을 지옥이다. 모진 풍랑에 꺾이지 않고 부드러이 돌아가는 날개 부족함 없이 우리를 포용할 테다. 언제까지고, 언제까지고….

다만 길을 잃을 뿐이다. 천천히 가라앉을 뿐이다. 저를 데려간 白月과 함께. 허우적거림 하나 없이.

영원히 죽어가겠다.

***

얕은 숨 나지막히 내뱉는다.
전해지지 않을 말이 허공을 맴돈다.

“ …여보, 어디에 있어?”

둘시네아. 나의 신, 나의 사랑.
내게 불행만을 안겨주는….

.

.

.

나는 이제 누구에게 속죄해야해?

*모티브 구절 다수 차용. 글이 정리되지 않아 난잡합니다. 스루 및 반응 편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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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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