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iro - 계절범죄 가사 분석

찾아오는 바람과 떠나가는 바람

계절범죄 분석

; 찾아오는 바람과 떠나가는 바람


더워지는 바람에
눈을 스쳐 뜨던
밤처럼 옅어지는
그날의 작은 기억이


잊혀져 매일 눈을 뜰 때면
흐려져 오늘도 눈을 감으면
또 사라져버릴 듯한 어제를 그려가

더워진다는 것은 상대적이다. 추웠던 날에서 따듯했던 날들로. 혹은 따듯했던 날들에서 더워지는 날들로. 날숨에 더 이상 김이 서리지 않고, 두툼하게 입지 않아도 되는 따듯한 날들은 어찌보면 축복이다. 그렇지만 들숨에 아지랑이가 섞이고, 옷들은 더위와 부대끼며 살갖을 덥히지 않게끔 얇아지는 날들은 그보다 축복이라고 할 수 있을까. 계절 범죄의 시간은 이 사이에서 자전한다.

게슴츠레하게 뜨는 눈처럼, 바람에 눈을 스쳐 뜨던 밤, 그런 밤처럼 옅어지는 기억이라는 전개는 아련하면서도 희미한 이미지를 상기시킨다 . 그런 날의 작은 기억은 어찌보면 사소하다면 사소하고, 소중하다면 소중할 기억이다. 가사의 중심에는 이 양가적인 사소함이 있다.

이 사소한 기억은 매일 눈을 뜨는 아침이면 잊혀지고, 눈을 감는 밤이되면 흐려진다. 그렇게 더껭이처럼 쌓여가는 어제가 되는 사소한 기억들을 우리는 추억이라고 명명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 추억은 나에게있어 어떤 의미를 갖는 걸까.



떨어지는 그림자 사이에
맴도는 향기가 조용히 너를 불어와
선명했던 날들도 어느새 다 지워버린 채
차갑게 잊혀져만 가

‘떨어지는 그림자 사이에 맴도는 향기’가 ‘조용히 너를 불어’ 오게 한다는 것은 어찌보면 꽃눈 사이에 선 우리에 대한 묘사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림자가 함의하는 의미들은 상기해본다면 여러가지 의미로도 해석이 가능하다. 그림자가 언제나 ‘나’를 뒤 따라오는 무언가라고 한다면 그 것은 추억에 대한 상징으로도 볼 수 있을 것이다. 즉 추억이 내포하는 향기에 나는 과거의 너를 현재에 소환한다는 의미로도 볼 수 있다. 그러나 선명했던 날들은 이미 아침과 밤, 매일에 걸쳐서 잊혀지고 흐려진 채다. 그렇게 기억의 한꺼풀만 남은 채로 시간은 흐르게 된다.


흐렸던 날들만 바람에 날아가거라
베어 물은 듯 추억만 고이 남은 채
지샌 하늘 위 피어진 구름처럼 사라지는
마음은 후회도 잊어버린 채
내 생에 피어라 가장 아픈 겨울아
지난날처럼 길고 멀었던 그리운 계절을 불러

화자는 바람을 소망하여 흐렸던 날들을 날려 보낸다 - 혹은 흐린 기억이 선명해지기를 소망한다. 그러나 기억은 이미 한 귀퉁이가 베어물린 듯, 흐려지고 잊혀져서 차갑게 남은 기억은 곧 추억이 되고 추억만 고이 남았다. 이 지점에서 시간에 따라 만변하는 구름을 화자는 지샌 하늘 위 피어진 구름처럼 사라진다고 묘사한다. 제 자리에 있지 못하고 끝없이 흘러가는 구름같은 기억은 겉껍질만 남았을 뿐 이내 화자한테서는 차갑게만 남겨진 채다.

그렇게 남겨진 기억을 갖고 맞이하는 겨울은 내 생에 핀 가장 아픈 날들이다. 기억하고 싶지만 기억의 대상은 이미 흐려지고 잊혀졌으니. 그렇기에 내가 계절을 부르는 것은 길고 먼 일일 수 밖에 없다.


봄바람이 스치듯 떠난 밤
내 안의 계절을 다 팔아 버린 밤
마음에는 어떤 소리가 들려? 아아

깊어지는 실루엣 사이로
눈 부신 바람이 또다시 너를 불어와
선명했던 날들도 이제는 다 잊어버린 채
조용히 흩어져만 가

봄바람이 스치듯 떠난 밤, 그리고 내 안의 계절을 다 팔아 버린 밤은 상호간 걸쳐서 의미를 이야기한다. 계절을 다 팔아버렸기 때문에 봄바람이 스치듯 떠난 것일 수도 있고, 봄바람이 스치듯 떠났기에 그 상실감으로 계절을 다 팔아버렸을 수도 있을 것이다. 이 상실감 속에서 나는 반추하며 마음에는 어떤 소리가 들리는 지 신음한다. 여기에 앞선 양가적인 사소함을 떠올려보자. 소중하면서도, 또는 사소함. 계절의 망막에 맺혔던 그런 모든 추억들은 이내, 계절을 팔 때 함께 팔렸을 것이다. 이내 텅 비어버린 마음의 자리만 남기에, 그 것은 일종의 후회다.

시간은 흘러 바람은 다시금 돌아온 것일까. 눈을 부시게 하여 똑바로 볼 수 없게끔 만드는 바람은 기억을 시추하듯 너를 상기하게 만든다. 그러나 선명했던 날들은 이미 잊어버린 지 오래다. 너의 실루엣은 너가 되지 못한 채 조용하게 흩어져만 간다. 추억은 그렇게 흩어진다.

여기서 바람에 대한 표현들을 정리해보자.

「더워지는 바람에 눈을 스쳐 뜨던 밤」

「맴도는 향기가 조용히 너를 불어와 」

「흐렸던 날들만 바람에 날아가거라」

「봄바람이 스치듯 떠난 밤 」

여기서 다뤄지는 바람의 테마는 두가지다. 나에게 찾아온 바람과 나에게서 떠나는 바람. 나에게 찾아온 바람은 추억을 상기시키며 ‘너’를 생각하게끔 한다. 그리고 내가 소망하는, 나에게서 떠날 바람에게 나는 흐렸던 날들을 가지고 떠나가라고 한다. 언듯 보기엔, 선명한 추억들을 남기고자 하는 소망처럼 보이기도 하는 이 문장은, 주인공에게 남은 추억의 테마를 생각해보자면 기억을 갖고 떠나라고 하는 소리 없는 비명에 가까워 보이기도 한다.


괴로운 날들만 바람에 날아가거라
베어 물은 듯 추억만 고이 남은 채
지샌 새벽 끝 옅어진 달빛처럼 흐려지는
기억은 슬픔도 잊어버린 채
내 생에 지어라 가장 짙은 여름아
지난날처럼 길고 멀었던 그리운 계절을 불러

그렇게 어떤 감정조차 남기지 말라는 듯, 괴로운 날들만 바람에 날아가기를 바라는 소망은 고이 남은 추억이 새벽 끝 달빛처럼 흐려질 것을 예감하며 감정을 감각화한다. 그렇게 기억은 슬픔‘도’ 잊어버린 채다. 흐려진 기억은 멂만 느껴지며 기쁨이 남아있을리 없으니 후회도 슬픔도 잊은 채라면 어떤 감정을 명명할 수 있을까.

이 감정을 지새우는 시간은 가장 ‘짙은 여름’이다. 숨이 막힐정도로 더우며, 또는 내리는 비에 사위가 하얗게 변하도록 백색소음으로 가득찬 여름은 어떤 면에선 활기를 띄고, 어떤 면에서는 우울을 띈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은 여름이다. 그리움과 비슷하다고도 할 수 있다. 행복했던 기억에 대한 아련함과 돌아갈 수 없음에 대한 후회. 혹은 희미해져 더는 기억나지 않는 무언가에 대한 형태없는 그리움과, 그로 말미암은 슬픔. 추억에 대한 감정을 그렇게 분해하고 박제한다 한들, 딱 나뉘어지는 일이 아니다. 그렇게 괴로운 날들만 바람에 날아가버린 후의 추억은, 더이상 추억이 아니다. 때문에 괴로운 날들만 바람에 날아가길 바라는 소망은 일종의 결과론이다.

이 지점에서 계절을 팔아치운 행위로 거슬러 올라가보자. 온전한 기억을 팔아치워 남은 것은 아련함이고, 그 아련함으로 말미암아 화자는 더이상 괴로움을 느끼고 싶지 않아한다. 그렇게 남겨진 것들 중 슬픔과 우울, 괴로움만을 도려낸 무언가를 갖고 싶다고 하지만, 그 것마저 잃어버린다면 추억은 잔해조차 없을 터다.

그렇게 ‘지난날’처럼 ‘길고 멀었’던 ‘그리운’ 여름 아래 괴로운 날들을 머금은 화자는 그 팔아치운 대가를 받아들이고자 한다. 그리운 계절을 부르므로써.


하얗고 하얗던 내 계절아
끝이 없고 그치지 않는 비에도 밝아오니까
그 시간이 두려워도 난 괜찮아
잿빛 사이 푸른 이 비가
선명하게 모든 계절을
다시 찾아갈 테니

하얀색의 계절은 일종의 순수했던 자신의 과거다. 그리고 비어있음을 의미하기도 한다. 모든 것이 잿빛으로 뒤덮인 무서운 시간 속에서 ‘두려워도 괜찮다’는 것은 그 시간을 받아들이고 회복하고자 하는 노력이다. 선명해지는 것은 비로 인하여 씻겨내려가는 정화의 과정이기도 하지만, 폭풍같은 시간을 견뎌내는 일이기도 하다. 푸른 비가 선명하게 계절을 찾아가게 되는 일은 그 일환이다.


흐렸던 날들만 바람에 날아가거라
베어 물은 듯 추억만 고이 남은 채
푸른 바람과 스쳐간 계절마저 잊어가는
시간은 어제도 잊어버린 채


내게만 맑아라 슬피 우는 사랑아
지난날처럼 길고 멀었던
그리운 계절 아래로


피어가 꽃잎과 푸른 하늘이
베어 물은 듯 후회만 남아버린 채
기쁜 마음도 슬픔도 이젠 되돌릴 수 없는
날들로 저 멀리 사라져만 가


내 생에 피었던 아름다운 하루가
지난밤처럼 길고 어둡던
그리운 계절을 불러

그리하여 흐릿해진 날들도 날아가고, 선명치 않은 추억만 고이 남는다고 하더라도 모든 것은 잊기 마련이다. 그렇게 계절도 시간도 바람도 모두 잊어버리기 마련이다. 바람이 푸른 비로 하여금 색채를 되찾는다고 하더라도 그 것은 변치않을 진리임이 분명하다. 화자는 잊기 위하여 명명될 추억의 이름을 마지막에 이르러 호명한다. 내게만 맑았기에 슬피 우는 사랑이라고.

그 추억 안에 핀 그리움은 봄내음을 가득히 품은 꽃잎과 겨울의 푸른 하늘을, 기쁜 마음도 슬픔도 담고 있다. 그리고 되돌릴 수 없는 날들로 저 멀리 사라져만 간다. 그 시절은 내생에 피었던 가장 아름다운 하루였으리라. 마치 빛이 있으면 어둠이 있듯, 그리고 그 어둠마저 사랑해야하듯, 지난 밤처럼 길고 어둡던 그리운 계절을 부른다. 그 계절은 아마 어제의 짙은 여름 속 폭우와 닮아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푸른 비로 계절에게 닿았듯, 아침이, 그리고 비 갠 날이 돌아옴을 화자는 안다.

그렇게 그리운 계절을 부른다고 해도 더는 괴롭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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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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