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urnabout for KOTY

유가미츠

*유가미 말버릇은 일판을 따라갑니다.

*역5 이후 시점

남자의 방문을 알리는 건 도시에서 들릴 리 없는 매의 울음소리다.

해안가 절벽 대신 법정의 저울에 둥지를 튼 매는 울어야 할 때와 아닐 때를 정확하게 구분했고, 그것은 자신의 사소한 행동 하나하나가 위협적인 법정 전술의 시작이 된다는 걸 아는 주인과 똑같았다. 이제는 그 주인만큼이나 매의 기분을 구분할 줄 알게 된 미츠루기는 기쁨이 가득한 울음소리에 남몰래 미소 짓다가, 뒤이어 들어오는 남자의 표정에 결국 소리 내 웃었다.

반려조 긴과 거의 모든 컨디션을 공유하는 유가미는 신이 나서 우는 긴과 달리 여전히 불퉁한 채였다. 앞머리에 가려져 보이지 않는 미간을 얼마나 좁히고 있는 건지 눈매는 평소보다 매서웠고, 굳게 다문 입에는 평소 같은 깃털도 꽂혀 있지 않았다. 심기를 거스르는 사람이 있다면 당장 지옥으로 보낼 것 같은 얼굴이었다. 무표정일 때도 딱히 선과 정의와는 가깝지 않은 인상으로 아예 대놓고 기분 나쁘다는 기색 풀풀 풍기는 그가 검찰청장의 개인 집무실까지 오는데 신고당하거나 쫓겨나지 않은 건 그가 한 손에 들고 있는 초록색 괴물체 덕분이리라. 모순적이게도 유가미가 저런 얼굴을 하는 이유 역시 그 물건 때문이라는 점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어디를 어떻게 뜯어봐도 검사의 것이 아니던 눈매는 집무실에 구비 되어 있는 접대용 테이블에 앉아, 여기까지 들고 온 괴물체를 내려놓은 다음에야 느슨해진다.

“내가 이런 말을 남에게 하게 될 줄은 몰랐지만, 표정 좀 풀게. 그래도 엄연히 상을 받은 일인데.”

“헷……. 이런 웃긴 풍습이 생긴 줄 알았으면 감옥에서 그대로 썩었을 겁니다.”

“누군가는 받고 싶어도 못 받는 뜻깊은 상… 푸흡, 흠, 크흠.”

“…….”

올해의 검사, 검사(Kenji)오브더이어. 일 년 동안 가장 뛰어난 활약을 보인 검사에게 주어지는 트로피. 깨진 방패 모양에 대문짝만하게 알파벳 K가 박힌 초록색 트로피는 매우 뜻깊은 의미의 훈장이었지만, 그 외관은 조금도 권위가 있다고 할 수 없었다.

검찰 개혁으로 상당히 많은 검사들이 문책당한 이 시점에서 유가미의 수상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는 죄수 시절부터 높은 검거율을 보였던 검사 중 한 명이었다. 석방된 뒤로 직접 수사에 참여하게 되고 선 법정의 승소율은 말하기 입 아픈 정도다. 죄수들과 함께 감옥 밑바닥을 구른 검사라는 특이한 이력은 그의 독보적인 장점이 되어 검사로서의 손끝을 더욱 예리하게 해주었다. 비록 누명이라 할지언정 그가 불러일으킨 어둠을 아는 이들 중 몇몇은 유가미의 수상을 탐탁지 않게 여기기도 했으나, 7년의 감옥 생활에도 바래지 않은 유능함 앞에서는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미츠루기로서는 상당히 흐뭇한 일이었다. 한때 죄수 검사라는 오명을 안고 있던 그에게 수여되는 올해의 검사상은 외적으로도 많은 의미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여러모로 뜻깊은 명예롭기 그지없는 상이었으나 문제는 상을 받는 당사자가 업적이나 공로에 조금의 관심도 없는 사람이라는 것이었다. 보통 그 나이대의 혈기는 감옥 밑바닥에서 다 태워버린 그에게 욕심과 야망이 거리가 멀다는 건 알고 있었으나, 이번에는 결이 달랐다. 문자 그대로 관심이 없었다. 단지 사람 성향일 뿐인 게 무슨 문제냐 할 수 있겠지만, 그건 정말로 큰 문제였다. 명예의 가치를 제외한 초록색 트로피는 흉물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기에. 검찰청장인 미츠루기마저도 남몰래 인정하는 사실이었다.

바로 오늘 있었던 시상식에서 사내의 모습을 떠올리던 미츠루기는 가까스로 진정된 웃음을 또 한 번 터트릴 수밖에 없었다. 이름이 호명되고 단상 위에 올라설 때까지 유가미는 자신이 처한 상황을 조금도 이해하지 못한 얼굴이었다. 검사보다도 사형수에 어울리는 형상으로 말없이 트로피를 노려보던 그 모습이란. 물론 미츠루기는 그런 유가미의 모습이 처음 보는 것을 눈앞에 두고 고개를 갸웃거리며 영문을 몰라하는 긴과 똑같다고 생각했다. 그 누구도 공감하지 못할 이야기였다.

수상을 진행하던 사회자 같이, 미츠루기를 제외하고 그 자리에 있던 관계자 모두가 긴장하던 때에, 유가미는 묵묵하게 상을 받아 들고 고개를 숙였다. 상을 건네는 미츠루기는 예상외로 순순히 상을 받는 그의 태도에 아닌 척해도 시상식 내에 많은 이들이 놀라는 것을 느꼈다. 하기야 초대장을 보내기 전부터 대부분은 유가미가 참석도 하지 않을 거라 여겼다. 초대장을 받은 유가미는 역시 그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봉투도 뜯지 않은 초대장을 긴에게 장난감으로 준 뒤 산책이나 다녀왔더란다. 그래서 더더욱 얌전히 상을 받는 유가미의 모습이 흐뭇했을지도 몰랐다. 검찰청장이라는 지위로 명령을, 연인이라는 관계로 부탁하지 않았더라면 그는 절대로 오지 않았을 거라서.

“……내가 이딴 상을 받은 게 그렇게도 좋은가 봅니다.”

“솔직히 자네와 그 트로피가 함께 있는 건 보기 즐겁군.”

웃음이 잦아들면 불퉁한 목소리가 들렸다. 어느새 팔짱을 끼고 소파에 몸을 묻은 채 이쪽을 보고 있는 유가미와 시선이 마주쳤다. 그는 아직도 자신이 저런 흉물을 받았다는 사실을 믿을 수 없는 것 같았다.

“당신이 주는 게 아니라면 받지 않았을 텐데.”

“가장 유능한 검사에게 주는 상을, 검찰청장이 아니면 누가 준다는 거지?”

“…….”

차츰 풀려가던 유가미의 얼굴이 굳었다. 주는 이가 미츠루기가 아닌 다른 사람이었다면 성격상 당장 상대방의 입을 다물게 만들고 산책이나 나갔을지도 모른다. 아니, 분명 뒤엎고 나갔을 거다. 상대가 장관이든 총리든 신경 쓰지 않고 제 갈 길 가는 유가미에게 중요한 건 언제나 직급이 아닌 사람 그 자체였다. 유가미는 태연하게 조서를 읽고 있는 검찰청장님을 노려보았다. 미츠루기는 이미 말하고자 하는 바를 눈치챈 사람의 얼굴을 하고서 태연히 서류를 읽고 있었다. 당신이라서 받았다는 말은 그가 검찰청장이어서가 아니라, 미츠루기 레이지여서라는 걸 알아들어 놓고서도 모르는 척하는 것이다.

다른 말을 얹는 대신에 휘파람을 짧게 끊었다. 값비싼 목제 가구에 마음껏 기스를 내던 긴이 곧바로 날개를 펼치고 미츠루기의 손안에 들린 서류를 가로챘다. 하늘은커녕 법정과 비교해봐도 좁은 방에서 꽤나 자유롭게 날아다니던 매는 곧 날개를 접고 주인의 어깨에 올라앉았다. 언제봐도 영특한 새였다. 미츠루기는 바로 눈앞에서 벌어진 하극상에 매의 이름을 불러야 할지, 주인의 이름을 불러야 할지 짧은 고민에 빠졌다. 손을 뻗어 익숙하게 부리의 턱을 쓰다듬는 식으로 기특한 파트너를 칭찬한 유가미가 입꼬리를 끌어당겼다. 이 방으로 들어와서 처음으로 보인 웃음이었다.

“이게 무슨 짓인가.”

긴이 아닌 유가미를 지적하기로 선택한 미츠루기가 물었다. 그는 대답 대신 책상 위에 올려진 자신의 트로피를 챙겨 들었다. 보이는 크기만큼 무게가 제법 나가는 그것을 한 손으로 집어 드나 싶더니, 아예 몸을 일으켜 미츠루기가 일하는 테이블 뒤편 진열대로 향했다. 그곳에는 이미 똑같이 생긴 올해의 검사상 트로피가 있었다. 미츠루기가 아직 검사일 적에 받은 상이었다.

“이걸 여기서 처음 봤을 때만 해도 내가 받을 거라 생각 못 해서.”

유가미가 그 옆에 자신의 트로피를 내려놓으며 말했다.

“그래서 거기에 두겠다는 건가. 다른 사람이 보면 어쩌려고.”

“유능한 청장 나리께서 이깟 트로피 한두 개 더 놓는다고 해서 의심할 멍청이는 없겠지.”

미츠루기가 손에 힘을 주었다.

“…확실히 3년 연속 수상한 이력은 있지만.”

“헷. 그럼 문제 없는 거 아닌가.”

“자네의 상이 아닌가.”

“당신이 없었다면 받지 못할 상이었으니까.”

아무렇지 않게 나온 과거의 이야기에 미츠루기는 헛숨을 들이켰다. 유가미는 이따끔씩 저녁 메뉴를 고르듯이 가벼운 어조로 죄수였던 시절을 툭툭 내뱉고는 했다. 유가미가 그럴 때마다 미츠루기는 그가 사형예정일 너머 어딘가에 있는 사람 같다고 생각했다. 사형 선고로부터 석방된 지 벌써 1년이 지났음에도 말이다. 죄수였던 그의 과거는 법정에서 피고인과 증인(때로는 재판장까지)을 떨게 만드는 위협적인 칼날이었지만, 이렇게 한 번씩 연인인 제 앞에 놓일 때면 어떠한 독기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저 위로조차 쉽지 않은 과거의 조각으로 남아있을 뿐. 그러나 자신에게만 허락된 그의 일부를 마저 헤아리기도 전에 빼앗겼던 서류가 눈앞으로 들이밀어진다.

“달래줄 생각이라면 저녁 식사로 받고 싶은데.”

고개를 올리며 자연스럽게 시선이 마주친다. 여전히 웃고 있는 그의 모습에 미츠루기가 살짝 미간을 좁혔다.

“유가미.”

“아직 축하도 받지 못해서 말입니다.”

할 일(서류 배달하기)을 빼앗긴 긴이 고개를 기웃거리며 서류와 미츠루기를 번갈아 보았다. 신호를 기다리는 듯싶었다. 그러나 유가미는 긴에게 마저 서류를 그의 책상으로 가져다 놓기를 부탁하는 대신에 끈기 있게 상대가 받아 들기를 기다렸다.

“…처음부터 그게 목적이었나.”

서류를 받아 들면 유가미는 책상에 떨어진 긴의 깃털을 주워 입에 물었다. 사형수였던 과거의 흔적은 순식간에 사라지고, 그곳에 남는 건 복수를 끝낸 상쾌한 얼굴이었다. 눈길을 돌려 시계를 확인했다. 검사 시상식이 끝난 뒤로 이제 막 한 시간 정도가 지나 있었다. 흩어져있던 퍼즐이 맞춰진다. 시상식의 뒤풀이는 나루호도 만능 사무소에서 예정되어 있었다. 미누키의 성공적인 마술쇼 개최를 함께 축하하기 위함이었다. 코코네를 포함하여 다른 변호사가 모이는 그곳에서 편히 즐기라는 배려로 빠져준 것부터가 마음에 들지 않았던 모양이다.

“헷, 법정을 떠난 지 오래됐다더니 감이 너무 무뎌진 거 아닙니까?”

“그렇게 말해도 검찰청장이 법정에 서는 일은 두 번 다시 없을 거다, 유가미.”

단호하게 대답한 미츠루기는 웃음으로 대답을 대신한 뒤, 제자리로 돌아가려는 그의 손목을 붙잡았다.

“그러니 다음 해에도 저것을 받는 건 네가 될 수 있게 열과 성을 다하도록.”

이제 다시 웃음을 되찾은 건 미츠루기의 쪽이었다. 슬픔이 녹아있는 과거가 목적을 위해 사용한 수단이었을 뿐이라고 해도 그의 뜻대로 순순히 넘어가줄 생각은 없었다. 꼬인 성격만큼 애정의 표현 방식도 배려도 서툰 남자였다. 쓸데없이 자리를 차지하는 크기의 트로피를 같이 두면서도 그 옆에 둔 토노사맨 피규어를 건들지 않은 섬세함처럼 말이다. 연애에 능숙하지 못한 건 피차일반이었다. 사랑한다는 한마디가 어려워서 백 마디를 돌려 말하는 게 저라는 사람이었으나, 그 곁에 자연스럽게 자리 잡고 앉아서는 백 번 돌리다 못해 꺾고 꺾어서 마음을 표현하는 사람보다야 솔직한 편이었다.

“저녁은 이 서류의 결재까지 끝낸 다음에 하도록 하지.”

“애 취급하기는…….”

혀를 차고 고개를 돌려도 미츠루기는 응하지 않았다. 한번 말한 것을 물릴 생각은 없다는 뜻이었다. 유가미는 거기에 회유책을 건네거나 협박으로 두드리는 대신에 마찬가지로 입을 닫았다. 극복할 수 없는 나이 차이는 발버둥 쳐도 이길 수 없다. 8년 전 첫사랑이 남긴 교훈은 그랬다. 소파로 돌아가는 것을 관두고 뒤에 있는 진열장에 걸터앉았다. 서류 한 장의 결재가 그리 오래 걸리지는 않을 것이다. 팔짱을 끼고 있으면 그가 붙잡았던 손목이 간지러웠다. 절대 잊지 못할 것 같았던 수갑의 무게가 아득하게만 느껴진다.

어느새 깃 정리를 끝낸 긴은 조용하게 울었다. 잠에 들기 직전, 편안함에 젖은 나른함과 비슷한 울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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