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가미 진

망령의 훈장

*유가미의 말버릇은 일판을 따라갑니다.

*역5 강스포

 

시끄러운 사내였다.

죽이고 묻어둔 나의 감정이 짜증을 느낄 만큼 귀찮고, 피곤했고, 요란했던, 것. 목의 경동맥을 끊은 덕에 훼손되지 않은 얼굴의 표본을 떴다. 초점을 잃은 채 확장되어있는 홍채는 갈색빛을 띠고 있었다. 온전한 나로서 시체를 바라볼 때면 항상 찾고 있는 색이 있다. 그림자 밑에서 보아도 분명한 고동색의 빛에 죽일 때까지 자각하지 못한 아쉬움이 뒤늦게 밀려온다.

내가 죽인 것은 검은색이었어야 했다고.

 

*

 

기억하는 감정과 몇 가지 수식어 내에서 유가미 진을 정의하자면, 그는 웃긴 사람이다. 반 고조가 아니라 나 자신으로서 생각해도 그는 웃긴 구석이 많았다. 제게 남은 단어 중에 ‘기쁨’은 도형의 조합에 가깝게 기억되고 있던 개념이었으나, 그게 아니면 다르게 설명할 말이 없었다. 본인이 집어넣은 죄수들과 편을 먹고 시시덕 하는 꼴은 순수하게 시각적으로 우스웠는데, 진정 실소를 짓게 만드는 건 갱생 따위의 말을 늘어놓는 형사에게 독한 소리 못하는 그의 태도였다.

조금만 심기에 거슬려도 제멋대로 굴고, 귀찮다 싶으면 아예 상대도 하지 않으며 철저하게 본인의 길을 가는 유가미는 네 안에 있을 정의를 믿는다는 형사의 말만큼은 그대로 두었다. 그건 능구렁이 같은 화술이 통하지 않는 물고기를 흘려보내는 것과는 달랐다. 그는 같잖은 사형수 취급을 일체의 수치스러움도 없이 진심으로 삼켰다. 그것이 유가미 진의 진실이어야 했기 때문에. 그러니 웃기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유가미 진이 범인이 아니라는 건 누구보다도 내가 제일 잘 알고 있는데 말이다.

“…아저씨, 이 옷은 이제 안 입겠다고 말했을 텐데.”

다른 죄수들과 똑같은 죄수복을 입고 있는 유가미가 말했다. 그의 앞에 놓인 옷은 남자가 아직 검사였던 시절에 줄곧 입었던 양복이었다. 깨끗하게 다려진 와이셔츠와 그 위에 올려진 검은 타이를 내려다보던 유가미가 이내 고개를 돌렸다. 불쾌함을 넘어 형용할 수 없는 거부감까지 느껴지는 태도에 환히 웃어야 할 얼굴에 자연스럽게 미소가 피었다.

“음! 그렇다고 해서 검사석에 그런 몰골로 올라갈 순 없는 노릇 아닌가!”

“헷, 오히려 피고인에게 보여줄 수 있어서 좋을 것 같은데? 네 녀석이 앞으로 입게 될 옷이라고 말이야.”

유가미가 입은 죄수복은 얼룩말 같은 흑백 무늬가 가로로 길게 있었다. 감옥에서 더 불어난 것 같은 그의 체격은 그런 죄수복도 제법 괜찮아 보일 만큼 훌륭한 옷걸이였지만, 그랬기에 더더욱 옷을 갖춰 입을 필요가 있었다. 햇빛과 멀어지고 남은 색이라고는 흑백밖에 남지 않은 남자에게 얼룩말 죄수복은 역시 기품이 떨어졌다. 물론 그의 말마따나 야만적인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이는 게 법정에서는 더 도움 될 수도 있다. 예로부터 공포는 또 하나의 통치 수단이지 않았던가. 결과는 언제나 좋지 못했지만, 법의 공정함이 효력을 잃은 지금, 그들에게 남은 형벌의 공포라도 써먹는 게 나을지도 몰랐다. 힘을 주고 뜬 눈이 가늘어지지 않도록 조심하며 그를 훑어보았다. 반 고조가 어느 때든 선글라스를 끼고 다니는 남자라서 얼마나 다행이었는지.

“자자! 더 늦으면 곤란하니 이제 의자에 앉게, 유가미!”

두 손가락을 이마에 갖다 댄 뒤에 환히 웃었다. 반 고조에게는 웬만한 설득도, 협박도 통하지 않는다는 걸 아는 유가미가 작게 혀를 차고 준비된 의자에 앉았다. 겉만 봐서는 전기 고문을 위해 존재하는 것 같은 투박한 나무 의자였다. 죄수 검사가 오전에 있는 법정에 참석하기 위해서는 빛도 제대로 들어오지 않는 새벽녘부터 준비가 필요했다. 옷에 손을 집어넣기 위해 수갑을 풀어도 혼자서 자유로워서는 안 되었기 때문이다. 그의 환복을 대신하는 반 고조의 왼쪽 건홀더에는 안전장치가 해제된 총이 있었다. 살인범으로서 죽어야 했던 유가미가 도망칠 일은 없었으나 다른 이들이 그 사실을 알 리 없다. 수갑을 풀기 위해 가까이 다가가, 반 고조와 약속된 만큼 눈썹을 들어 올렸다.

“이런, 또 수염이 자랐군!”

“…이 정도는,”

“이래서야 피고인에게 되려 놀림 받을지도 모르겠어. 하하! 하지만 걱정하지 말게! 이럴 줄 알고 밖에 있는 경관들에게 준비해놓으라고 말했으니까!”

일방적으로 말을 끊고 의견을 전했다. 반 고조의 막무가내식 태도 뒤에는 ‘유가미를 제대로 검사로서 호송하라’는 높으신 분의 명령이 버티고 있다는 걸 모르는 사람은 없다. 선글라스 너머에 있는 사람을 죽일 듯이 노려보는 눈빛에 또 한 번 입가가 꿈틀거렸다.

“하하하! 그들도 기뻐하며 준비했으니 부담 갖지 않아도 된다네! 크윽, 자네의 갱생을 위해 이렇게 많은 사람의 저스티스가 함께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눈물이…!!”

콧대를 짚고 손수건을 흔들면 밖에서 눈치 보고 있던 경관들이 물이 담긴 대야와 면도 도구를 내려놓고는 쏜살같이 도망쳤다. 수갑조차 벗지 못하고 의자에 앉아있는 유가미의 손이 말려들어 간다. 마치 휠체어를 끌듯 그가 앉은 의자 등받이를 끌어 준비된 작은 거울 앞으로 데려갔다. 끼긱, 끼기긱, 나무 바닥에 무거운 것이 끌리는 소리가 소름 끼치도록 맑다. 그의 체중을 억지로 끌고 가는 건 결코 쉽지 않은 일이었지만, 그렇게 마침내 유가미를 거울에 담으면 반 고조가 나에게 주는 선물이 완성되는 것이다.

이유도, 목적도 없이 구불구불 길어져서는 엉망으로 뻗친 머리. 그 음영 속에서 퀭하게 가라앉은 눈. 그 밑에 잔뜩 배어있는 피로감과 우울함. 버석하게 갈라져서는 굳게 다물린 입술. 턱 근처에 근육이 움틀 거리지만 위협이라고 하기엔 연약하고. 그래도 아직 단단한 몸을 보호하며, 그의 위치를 말해주고 있는 옷은 해지고 뜯어지며 때 탄 죄수복이다. 한때 국제 수사관들과 함께 일선에 나서며 스파이를 쫓던 유능한 검사는 사라지고 남은 건 망령을 쫓다가 미쳐버린 남자뿐이다. 그리고 유가미는 거울이 비추는 피폐하고 추레한 남자로부터 눈을 피하거나 고개를 돌리지 않는다. 이제는 기쁨을 억눌러야만 일을 할 수 있는 지경이었다.

미리 준비된 거품을 그의 턱 주변에 바르고 준비된 면도칼을 갖다 댔다. 날카로운 날붙이가 아슬하게 피부를 긁고 지나가는 조용하고, 또 조용한 순간에 고양이 목에 매달린 방울 소리가 들려온다. 유가미의 손목에 채워져 있는 사슬이었다. 손의 떨림을 감추지 못하고 자기들끼리 잘게 부딪히는 것이다. 거품을 살짝 덜어내면 아래로 말려들어 간 그의 아랫입술이 보였다. 일부러 면도를 핑계로 그의 턱을 억세게 움켜쥐었다. 입 안을 씹고 있는 게 느껴지는 양 볼을 꾹 누르면 그는 모든 떨림을 삼키고 순순히 손의 방향대로 고개를 돌렸다. 사실은, 유가미가 전기 고문을 받는 것보다도 이 순간을 싫어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이를 악물어서라도 지금을 버티는 남자를 보고 있노라면 반 고조에게 직접 물어보고 싶었다. 너는 이럴 때도 손을 멈추지 않는 사람이라는 건 알지만, 정말로 이 순간의 유가미에게 입을 맞추지 않고 넘어갈 수 있느냐고. 하기야, 유가미에게 충동을 느낄 자격이 있는 사람은 나였다. 남자의 떨림을 보고도 이게 옳은 정의인지 따위나 고민할 형사 따위가 아니라.

나는 유가미에 대한 모든 것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처음부터 알고 싶어서 알았던 건 아니지만, 한 번 알고자 하면 유가미만큼 웃긴 것도 없어서 자꾸 파고들었다.

우리가 다시 재회한 날을 기억한다. 우주가 아니면 나의 흔적 같은 건 존재하지 않는다고 믿으며 7년을 보내던 어느 날, 어두운 밑바닥에서 소문이 들려왔다. 망령의 흔적이 아직 이 땅 위에도 존재한다고. 거기서 기억에 묻었던 유가미를 다시 파낸 건 허상을 좇으며 미쳐버렸다던 소문 속 남자가 시간이 지날수록 끈질기게 망령을 추적하는 검사로 변하면서부터였다. 이미 지나간 흔적만 쫓는 뜨내기인 줄 알았더니 집요하기가 점찍은 망자를 끌고 가는 차사보다 더했다. 덩달아 7년 전으로 되돌아가야만 하는 상황은 생각만큼 짜증나진 않았다. 남은 증거를 처리하는 일은 너무나 당연했던 데다가, 쫓고 쫓기는 게 역전된 관계에서 나를 기다리는 검사가 다른 누구도 아닌 유가미여서.

7년 만에 다시 만난 그는 자신의 꼴이 어떻게 보이는지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성인 남성의 평균 신장을 가뿐히 넘긴 시선 차이에서 오는 압박감과 8년에 가까운 감옥 생활에 물들여진 눈이 노려보았을 때 드는 공포심. 유가미는 자신이 변호사석을 등지고 서는 것만으로도 법정에 참여한 모두가 긴장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교도소라는 제한된 공간에서 형사들이 모아온 증거와 증언만으로도 항상 유죄판결을 받아내는 유능함은 겸손하고 확실한 객관화에서부터 온다. 유가미의 심리 조작이 유효한 이유는 상대방의 성향을 빠르게 파악하는 영민함과 원하는 것을 선심 쓰듯 주는 화법도 있었지만, 무엇보다도 그런 말을 하는 자신이 어떻게 보이는지를 잘 아는 게 컸다. 사람이 가장 빠르고 쉽게 망가진다는 감옥 안에서 시들어가면서도 그러한 자신까지 하나의 무기로 만든 것이다. 말라비틀어져도 결코 무뎌지지 않는 것이 그야말로 검과 같은 사내다. 사람이라는 원석이 온갖 경험으로 깎아지는 보석이라고 한다면 유가미는 깨진 채로 무뎌지는 광물 그 자체였다. 그런데도 바래지지 않는.

관찰하는 게 질리지 않는 사람의 특징은 본질이 바뀌지 않는다는 것이다.

수염을 정리한 뒤에는 눈가를 뒤덮은 앞머리를 잘라냈다. 그래봤자 아슬하게 눈가가 보이는 수준으로 험악한 분위기를 풍기는 데 여전히 공헌하고 있었지만, 아까보다는 훨씬 멀끔한 인상이었다. 일부러 보란 듯이 그의 얼굴을 거울에 가까이 대었다. 자, 어떤가, 유가미? 깔끔하게 되었지? 해맑게 물으면 마지못해 눈을 뜬 유가미가 거울 속 자신을 흘겨보았다. 간단한 정리가 끝났을 뿐인데도 창백한 피부 위로 어리기만 했던 검사의 얼굴이 떠오른다. 앞으로 몇 년을 감옥에 더 처박아놔야 그 과거가 완전히 사라질까 궁금한 한편으로는 희미하게 남은 7년 전이 미친 듯이 반갑고 애틋하다.

“…쓸데없이 신나서는. 빨리 끝내기나 해라.”

“음, 그러도록 하지!”

거울 너머에 있는 그의 눈과 마주치면 환하게 웃었다. 마저 옷을 갈아입히기 위해 수갑을 풀면 그때부터 유가미는 완전히 전원이 꺼진 것처럼 굴었다. 허리에 손을 대고 윗옷을 벗겨도 가만히 고개를 떨궜고, 허리에 손을 대서 하의를 벗겨도 발목에 걸리게 두었다. 죽을 날을 받아놓고도 망령을 잡으려 하는 열혈적인 검사의 체념이었다. 저항이 무의미한 것을 알고, 모든 수치스러움을 얌전히 받아들이는 패배자의 태도. 평범하게 살았더라면 절대 몰랐을 굴욕감. 그러나 검과 같은 본질이 바뀌지 않기에 감옥이 가르친 초연함 또한 유가미가 되어 있는 것이다. 믿을 수 있겠는가? 망령이어야지만 알 수 있는 유가미 진이 있다는 것이. 그가 잃어버린 삶은 곧 내가 존재한다는 증명이다.

곱게 다려진 하얀 와이셔츠를 입히고 검은 타이를 목 끝까지 죄였다. 7년 전과 똑같이 와이셔츠의 목깃을 접어도 유가미는 가만히 받아들인다. 그 위에 양복 재킷과 남자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진바오리 형태의 겉옷을 입혔다. 비슷한 동작으로 하의를 입히고, 그가 신고 다녔다던 부츠를 신겼다. 흐트러지지 않도록 양복의 버튼까지 전부 끼운 뒤에는 깔끔하게 정리한 옷소매 깃이 구겨지든 말든 상관 않고 수갑을 채웠다. 사정을 모르는 이들에게는 높으신 분들의 고상한 고집으로 귀찮은 일을 떠맡은 형사처럼 보일 것이다. 진짜 반 고조 또한 가슴 깊은 곳에선 거부감을 느꼈을지도 몰랐으나, 내게는 잃고 싶지 않은 유흥거리였다. 내 손으로 유가미를 되찾는 일은.

“필요한 게 검사가 아니라 7년 전 애송이었나 보지.”

마지막으로 뻗친 머리를 정리하기 위해 그의 뒤에 서면 유가미가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자연스레 그의 머리에 갖다 댔던 손을 멈추고 거울 속 유가미를 본인보다도 더 집요하게 뜯어봤다. 거창한 수술을 한 것도 아닌데 미쳐버린 남자는 검사가 되어 있다. 그러나 7년 전, 나를 몰아붙였던 그때와는 다르다. 이제 거울 속에 있는 건 아무리 똑같이 입히고 정돈시켜도 그때로는 절대 돌아갈 수 없는 남자다.

“단정한 품행 또한 저스티스다! 유가미 군이 모르진 않겠지.”

“헷, 이건 과거에 집착하는 꼴이잖아.”

“하하핫! 그러지 말고, 갱생의 첫걸음이라고 생각하는 거다, 유가미!! 음, 자네가 사회로 복귀할 때는 분명 이런 모습이겠지! 그런 김에 이 머리도 자르면 시원할 거라고 생각한다만.”

“아저씨, 포기해라. 그때로 돌아갈 일은 없어.”

낮고 위협적인 대답이었다. 체념을 배우고, 수치를 삼키고, 굴욕을 넘겨도 제 안에 세운 신념과 긍지는 꺾지 않는 검의 정신이다. 하하! 자네라면 그렇게 말할 것 같았네! 호탕하게 웃은 다음에는 교도소 비누로 인해 뻣뻣해진 머리에 손을 넣고, 한곳에 모아서 묶었다. 내내 머리카락에 가려졌던 깨끗한 뒷목이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낸다. 아무렴. 돌아갈 수는 없다. 돌아가서는 안 된다. 그 시절 너는 나의 것이다.

 

*

 

만약 반 고조가 유가미의 담당이 되지 않았더라면 그는 오늘도 정의를 위해 이곳저곳 뛰어다녔으리라. 유가미가 나의 추적을 일찍 포기했다면 둘은 합이 좋은 콤비가 되었을지도 모르고. 아니, 분명 좋은 콤비가 되었을 것이다. 유가미는 사람을 입맛대로 주무르는 일에 능하면서도 페이스에 휘말리지 않는 사람에게는 물렀다. 이른바 특별 취급이었다. 그를 맡는 형사가 반 고조가 아닌 다른 사람이었다면 분명 우쭐해했을 일이었다. 거친 사람이 건네는 호의는 대개 볼품없지만, 나에게만은 우호적으로 굴었다는 그 사실 하나가 지나칠 만큼 기특하고 귀하게 느껴지는 법이다. 그렇게 유가미가 제 편을 들어준다는 착각에 으스대다가 추락한 증인들을 떠올리면 그래서 반 고조였나 싶기도 했다.

모든 선택 기준이 정의와 법에 있는 형사의 사회성으로는 유가미와 가까워져도 벽이 존재했다. 아무리 갱생의 여지가 있고 자신과 친하다고 해도 사형수가 처형당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더 나아가서 유가미의 사형은 당연하다에 가까운 사고방식은 다른 의미로 감정이 결여된 인격 장애처럼 느껴지고는 했다. 조금 포장해서 말해주자면, 사람의 심리를 능수능란하게 다루는 유가미에게 쓸데없는 동정심을 느끼고 휘말려서 사고 치지 않기 위해 선별된 인물다웠다. 감옥까지 와서도 이런 종류의 사람들이 주변을 채우는 남자의 운명에 대해서는 말할 것도 없었다. 어디서 혈기만 가득 찬 핏덩어리가 제 뒤를 쫓나 했더니, 그는 태생적으로 망가진 것과 어울려 살아야 했던 것이다.

검사와 형사. 형사와 사형수. 사형수와 망령. 그리고 다시 망령과 망령을 쫓던 검사.

이따금씩 마음을 듣는다던 소녀가 그 틈새에 귀 기울이는 기색이 느껴졌지만 크게 신경 쓰이진 않았다. 유가미는 입을 다물었고, 그가 목소리를 낸다면 그 대상은 반 고조였기 때문이다. 어떤 언질도 없는 휘파람에 기르는 매보다도 먼저 지문 인식표를 가져다주는 등, 완전히 그의 전서구처럼 구는 나날들이 싫지 않은 것도 같은 맥락이었다. 멍청하게 웃으면서 복도를 걷다보면 그 죄수 검사에게 완전히 조련당했다는 말들이 따라붙었지만, 진상을 아는 내 입장에서 상대를 길들인 게 누구냐 물으면 당연히 내 쪽이었다.

원하는 기록이 부족할 때면 누구도 아닌 나를 부르기까지 걸린 시간이 3주는 넘었던가. 스케쥴의 문제로 어쩔 수 없이 다른 형사들이 유가미를 찾아가면 열에 아홉은 겁에 질린 소리를 내며 뛰쳐나왔다. 남은 하나는 아예 들어가지도 못한 겁쟁이였다. 기어코 관할서의 모든 형사들이 면회하기를 꺼리게 만든 남자는 어두운 독방에서 내가 찾아오기만을 기다리는 것이다. 그런 시간을 차츰 쌓아가다 보면 서류를 두고 함께 산책하러 나가는 일 또한 자연스러웠다. 대부분은 법정에 서지 않겠다는 증인을 직접 데리고 오거나, 서류로 봐도 이해되지 않는 현장을 형사 참석 하에 보기 위해서였지만서도, 말도 못 하는 새를 날려 보내고 옆자리를 차지하기에는 적당한 시간이었다. 또 다른 사람들은 그런 유가미와 어깨를 마주하고 서서 죄수를 통제하는 일은 반 고조라서 가능한 일이라고 떠들어 댔지만, 내가 보기에 빛도 들어오지 않는 독방에 가만히 있는 그를 보러 가는 건, 나라서 가능한 일이었다.

정체를 들키는 것만큼 두려운 일이 없는데, 유가미에 대해 생각하면 온몸이 오싹했다. 흔적을 빼앗는 가장 쉬운 방법은 살인이었으나 검사 신분으로 7년 동안 감옥에서 살아남은 남자는 최후의 수단으로 살인을 선택하는 스파이가 상대하기에는 지나치게 까다로운 상대가 되어 있었다. 그러나 7년 전 망령의 그림자를 아직도 쫓고 있다는 말을, 그를 담당하는 형사로서 들을 때면 섣불리 움직이지 못하는 답답한 시간들도 의미가 있었다. 유가미가 선사하는 전율은 당장 저격당할지도 모른다는 극도의 공포심과는 결이 달랐다. 자신을 위해 필사적으로 힘쓰고 있다고 생각한 사람이, 사실은 자신의 스승을 죽인 진범이라는 걸 알게 될 때, 그는 어떤 표정을 할까. 무슨 마음을 느끼고, 내게 어떤 말을 내뱉을까. 개인에게 초점을 맞춘 적은 한 번도 없었음에도 그를 보고 있으면 신념을 꺾기 위해 저지르는 살인이 무엇인지 이해될 것도 같다.

유가미, 너의 믿음은 스파이로서 얻을 수 있는 최고의 훈장이다.

정체가 알려지는 것은 언제나 두렵다. 언제 다른 조직, 혹은 국가에게 의뢰받은 청부업자들이 찾아올지 모른다. 특히 일본은 유능한 킬러가 많은 국가였다. 그런데도, 내가 진짜 반 고조가 아니라는 사실만큼은 그에게 알리고 싶었다. 1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너를 죄수에서 검사로 되돌리고, 통제하고, 지지했던 게 나라는 걸 알았으면 한다. 사형수로서 죄수 번호표를 빨갛게 물들이고, 남은 시간을 전부 망령을 쫓는 일에 쏟아부었으면서, 바로 코앞에 두고도 몰랐던 멍청함을 깨닫는 그 순간에, 너의 앞에 서 있고 싶다.

살고자 한다면 묻어야 하는 음습함인데도.

“…할 말이 더 남았나?”

수사 보고가 적힌 서류를 들고 있는 유가미가 물었다. 그가 검사로서 법정에 서는 많은 날 중에 일상이 되어버린 어느 평범한 하루였다. 허리에 양 주먹을 올린 채, 힘껏 입을 벌렸다.

“하하하! 이상으로 이번 수사 보고의 전달을 완료했군! 모르거나 궁금한 게 있다면 언제든지 부담 갖지 말고 나에게 물어보도록!”

“빼먹은 게 있다면 부르지.”

“오오! 정의가 필요한 순간이라면 언제든지 외치는 것이다!! 유가미라면 구호는 이미 알고 있겠지?”

“……헷, 아저씨의 실수를 지적하는 일인데도? 월급을 감봉당하거나 시말서를 작성하게 될 텐데.”

“정의를 위해서라면 그 무엇도 두렵지 않다! 이것이 바로─ 저스티스! 알겠나, 유가미? 자네의 갱생 역시 정의를 위한다는 마음가짐으로…… 으갹!”

“말이 너무 많아.”

양 날개를 펼치면 성인 남성의 팔뚝 정도는 간단히 덮어버릴 매가 발톱으로 얼굴을 긁어오기 시작한다. 매의 발톱은 천 정도는 가뿐하게 찢어발길 정도로 날카로웠으나 실제로 피부를(정확히는 마스크의 가죽을)긁거나 하는 일은 없었다. 총명한 매는 빠르게 주인의 속을 알아챘다. 거짓을 증언하는 증인, 혹은 날조된 증거품을 내미는 변호인들이 피를 보든 말든 신경 쓰지 않는 맹금류마저 호의를 보이는 지금, 바로 이 순간 얼굴을 덮고 있는 가죽을 뜯어버리고 싶다.

누군가 내가 진범이라고 고발한다고 해도 유가미는 결코 믿지 못할 게 뻔했다. 그가 나에게 보이는 호의와 믿음은 보이지 않았기에 노골적이었다. 그러니 남자는 사형 집행실로 끌려갈 때까지 반 고조가 누구인지 모를 것이다. 끝까지 반을 믿고 누님을 신경 써달라는 말이나 전하겠지. 때문에 나는 그의 곁에서 정체가 드러날 증거를 찾기 위해 전전긍긍하면서도, 당장 모든 것을 폭로하고픈 충동을 참아내야만 했다.

빨리 네가 죽었으면 한다.

너의 믿음을 배신하고 싶어서 무엇이든지 해버리기 전에.

 

 

 

 

 

유, 유가미?!

아저씨, 얌전히 카운슬링이나 받으라고. 망령이라 의심받고 난 후부터 헛소리만 지껄이고 있잖아. 잠입수사관이라느니 인질이라느니 얼빠진 소리나 떠들고. ……정신이 나가지 않았나 싶은데?

나, 나, 나를 믿는 게 아니었나?!

하하!! 이놈은 정말 걸작이군!

…이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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