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10월 8일 ??시 ??분

7년 넘게 고생할 유가미에게


*유가미의 말버릇은 일판을 따라갑니다.

 

“으흠……. 더 이상 심리는 필요 없을 것 같군요.”

겨우 마지막이다.

이 순간만 지나면.

“충격적이지만 유가미 검사의 키즈키 마리 살해 혐의에 대한 판결을 내리도록 하겠습니다.”

스승이 지키고자 하는 것을 지킬 수가 있다. 경쾌할 정도로 맑은 나무망치의 소리가 울린다. 웅성거리던 방청객들이 눈치껏 입을 다물고, 엄숙한 적막이 찾아온다. 유가미는 얼굴 밖으로 티가 나지 않도록 이를 악물었다. 비록 제게 있어 가장 소중한 것은 지키지 못했으나 스승의 희망을 지켰다. 오늘, 이 시간에, 이곳에 서 있는 이유는 그거면 충분했다. 증언대 밑으로 주먹 쥐고 있는 손바닥에서 땀이 배어 나온다. 한순간 놓아버리듯 풀린 긴장을 다시 다잡았다. 마지막까지 표정에 빈틈이 없어야 했다. 안도하는 것을 들켜서는 안 됐다.

오오가와라 관리소장을 비롯한 연구센터의 옷을 입은 사람들의 시선이 박힌다. 카구야는 이미 오래전에 퇴정 처분을 받았다. 담당 변호사에게는 아쉬워하는 기색조차 없다. 증거는 명확했고, 피고인은 경찰에게 체포된 순간부터 본인의 모든 죄를 인정하고 있었으니 신문도 의미가 없었다. 자백과 증거가 준비되면 동기의 공백쯤이야 사소했다. 당연한 승리를 받아낼 검사 측은 벌써 떠날 채비를 하고 있었다.

어떤 형이 내려질지는 뻔했다. 국제 스파이로부터 테러가 예고된 날에 벌어진 살인 사건이었다. 피고인이 다른 검사였다면 여태까지 법조계에 종사한 공로를 내세워서 감형을 바랄 수도 있었을 것이다. 피고인이 평범한 살인자였다면 자백을 근거로 형량 협상을 시도했을 수도 있었다. 아주 만약에, 피고인이 스파이였다면 정보 제공 및 국가 기관 협력을 빌미로 최악만은 비껴가려 했을 것이다. 극형이라는 게 그렇다. 입에 쉽게 담지만, 막상 발밑까지 다가오는 것만큼은 필사적으로 피하려 했다. 그러나 피고인 유가미는 자신에게 사형 선고로부터 도망칠 자격은 없다고 생각했다. 스승의 시신을 훼손시킬 때는 오히려 저에게 극형이 내려지기를 빌었다. 키즈키 마리를 죽인 살인범에게 사형은 응당한 형벌이다.

목숨을 쉽게 내던지려는 것은 아니었다. 형벌을 순순히 받아들인다고 속죄가 가능할 거란 형편 좋은 착각에 빠진 것도 아니다. 단지 남기는 게 스승의 마지막 희망이라면 제 목숨 따위는 어찌 되든 상관없을 뿐이었다. 검과 마음을 가르쳐준 스승에게 마지막으로 배운 것은 미련을 정리하는 방법이었다. 마찬가지로 판결을 기다리다 보면 이 모든 순간이 마치 오래전부터 고대하던 해방감으로 착각될 정도였다. 유치장에서 밤을 지새운 탓에 피곤한 눈가를 빼면 정말로 모든 게 다 괜찮았다. 판사의 나무망치가 올라간다.

“아니야!! 이 판결은 틀렸어요!!”

판결을 막은 건 어린아이의 목소리였다.

“즈, 증인?”

예전부터 아이들에게 유난히 약했던 판사가 동그랗게 눈을 떴다. 증언대에 나온 건 이미 검사 측에 의해 이미 한 번 반려됐던 증인이었다.

“부탁이에요! 제 말을 들어주세요! 이 사람은 범인이 아니에요! 이 사람의 마음이 외치고 있어!!"

“그렇게 말해도 저에게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습니다만…….”

“재판장님! 증인은 충격에서 깨어나고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그 여파로 모친 다음으로 가장 친하게 지냈던 피고인의 행동을 부정하고 있을 뿐입니다.”

검사가 곧바로 이의를 제기했다.

“으흠… 정말 안타까운 이야기군요.”

“제발, 왜 아무도 듣지 못하는 거야…. 저 사람은 계속 울고 있는데…….”

그 순간이었다. 둔탁한 무언가가 테이블에 부딪히는 소리가 아이의 말을 끊었다. 거친 타격음은 방금 책상을 내려친 남자의 손보다도 가만히 있다가 맞은 테이블이 걱정될 정도였다. 스승을 죽인 흉악한 살인범의 갑작스러운 행동에, 아이가 한 증언으로 혼란했던 법정이 순식간에 조용해진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온통 검게 물든 남자가 보이는 분노에는 그런 힘이 있었다. 재판장이 다시 한번 눈을 동그랗게 뜨고, 방청객과 변호사는 물론 담당 검사까지 긴장하기 시작한다.

명백한 범인 취급을 알아챈 유가미는 더 이상 아이가 잔인하고 추악한 감정들을 듣지 않기를 바랐다. 스승은 항상 아이의 능력에 죄책감을 가졌다. 인공지능 로봇에게 감정을 가르친 전대미문의 천재는 딸아이를 또래들처럼 평범하게 낳아주지 못한 자신을 자책했다. 그만큼 타인의 감정에 지나치게 예민한 아이에게 사람으로 가득 차서 살인이니, 유죄니 떠드는 이 공간은 분명 지옥이리라.

전부 각오가 부족한 탓이었다. 모든 것을 안고 가겠다 다짐했다면 누구도 눈치채지 못하게 해야 했다. 더더욱이 코코네에게만큼은. 그 아이에게는 이해나 동정 따위가 아니라 분노를 받아야 했다. 이미 수십 번도 넘게 짓씹은 입 안쪽을 깨물었다. 오래전에 헐었던 여린 피부는 간단한 자극에도 금방 피를 쏟았다. 쓰라린 통증과 비릿한 철의 향이 정신을 깨웠다.

“유가미 검사…?”

“시끄러워서 못 들어주겠군. 판결을 내릴 때가 아니었나?”

“어쩐지 말투가 조금 달라진 것 같군요. 뭐랄까, 마치 깡패 같은…….”

“어차피 법정은 증거가 전부겠지. 충격에 어리광 피울 뿐인 애송이 말은 들을 가치도 없어.”

“음, 증거품이 없는 발언은 증언이 되지 못한다. 그것은 법정의 절대적인 이치입니다. 그러나 피고인인 당신이 말하는 것은 조금 의외입니다만….”

“…….”

“그, 그럼! 다시 제대로 판결을 내리겠습니다.”

들리면 안 되는 것을 듣는 귀를 가지고 보이는 것을 보이는 대로 믿기 힘들겠지만, 그렇게라도 살아야 한다. 살다 보면 반드시 좋은 날이 있을 테니. 학교도 다니고, 더 많은 친구도 사귀고, 어머니를 죽인 원수도 마음껏 원망하면서. 그렇게 본인의 삶을 살아가기를. 차마 하지 못할 말을 삼키고 눈을 감았다. 스승의 명예를 깎아내리고 모욕한 죄는 모두 저승에서 받을 것이다. 법정에 카구야가 없어서 정말 다행이었다.

코코네는 살아야 했다.

나무망치가 마침내 청아하게 울린다.

 

 

유 죄

 

 

천천히 눈을 뜬 유가미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정신 사납기 짝이 없는 장식을 지나, 마침내 허공에 뜬 스파게티 포크를 본 뒤에야 자신이 감옥이 아닌 어리바리 사무소의 소파에 있음을 알았다. 끔찍한 위화감에 손을 내려다봐도 그곳에 무거운 사슬 같은 건 없다. 숨을 들이쉬면 아직까지도 달게만 느껴지는 공기가 폐부로 들이찼다. 습관적으로 눈 밑을 만졌으나 다행히 흘러내리는 것도 없다. 자유의 몸이 되어도 이미 메마른 것은 더 이상 나오지 않는 듯했다. 키이잇! 익숙한 울음소리가 반쯤 잠들어있는 정신을 마저 깨웠다. 어깨에 앉아 자신의 낌새를 살피는 긴의 턱을 매만졌다. 아무래도 걱정시킨 것 같았다. 그러나 잠이 깨면 깨는 대로 어지러워지는 머리에, 얼마 못 가 손을 옮겨 자신의 눈가를 짚었다. 이곳을 방문한 목적은 금방 떠올랐다.

정도를 모르는 카구야의 법정에서 증인을 서기 위해 면담차 들린 사무소였다. 그러나 그들 나름대로 바빴는지 아무도 없는 사무소에서 혼자 기다리는 시간이 길어졌다. 그러다 코코네에게 변호를 맡기겠다던 의뢰인을 적당히 상담해서 돌려보내기도 하고, 또 기약 없이 기다리다가…… 잠든 모양이었다. 구조를 이해할 수 없는 마술 도구들이 인테리어를 대신하는가 하면 사방이 서류 쪼가리로 엉망이 된 방은 생긴 것마냥 이해할 수 없는 편안함이 곳곳에 배어있었다. 흔히 말하는 사람 냄새가 났다. 사회에 나온 지 이제 막 2주가 지난 자신에게는 나지 않는 향이다.

“이제 다 울었어요?”

다시 눈을 감기 직전, 갑작스럽게 들리는 목소리에 유가미가 번쩍 고개를 들었다. 사무실 안쪽에는 눈 아플 정도로 샛노란 코코네가 있었다. 제게 들키지 않게끔 안으로 피해 있는 것 같았다. 순간 유가미는 칠 년 전 자신의 법정에서 울리던 처절한 목소리를 떠올린다. 꿈으로서 흩어져야 할 무의식이 형체를 갖고 손목을 옥죄여 온다.

“……헷, 모르는 것 같아서 알려주지. 사람이 눈을 감고 가만히 있으면 그건 우는 게 아니라 잠든 거라고 하는 거다.”

“일어나자마자 눈 비볐잖아요!!”

“그건 피곤함이라고 하지. 츠키 선생, 법정이 아니라 감정에 대해서 처음부터 배워야 하는 거 아닌가?”

뭐라구요?! 얄미운 소리를 하는데 눈 하나 깜짝 안 하는 남자의 표정에 코코네가 발끈했다. 한두 마디를 할 뿐인데 이의를 제기할 곳이 다섯 개가 넘는 화법도 재능이라면 재능이다. 미국에서 어떤 공부를 어떻게 했는지, 따위를 떠들며 실컷 목청을 높이던 코코네는 뒤늦게 자신이 유가미의 심리전에 휘말렸음을 깨달았다. 딱히 어떤 행동이나 발언을 유도하지는 않았지만, 그는 아주 자연스럽게 대화 주제의 노선을 틀었던 것이다.

법정에서의 경험을 생각해봤을 때, 유가미가 회피한 것을 더 캐묻고 파고든다면 사무실의 책상이 박살 날지도 모른다. 아니면 그의 발도술로 앞머리가 베이거나, 긴에게 쪼일 수도 있었다. 때로는 흘러가게만 두어야 하는 것이 있다. 그건 법정의 경험이 없어도 혼자 배운 사실이었다. 그러나 코코네는 유가미만큼은 흘러가게 두고 싶지 않았다. 그는 그렇게 사형수 독방까지 멋대로 흘러간 사람이었기에.

“엄청 슬프게 울었으면서….”

“어이.”

“걱정 정도는 해도 괜찮잖아요!”

처음으로 유가미의 슬픔을 읽은 건 칠 년 전 법정이었다. 당시에는 충격적인 소식의 반복이었다. 엄마가 죽었다. 사고도 무엇도 아닌 살인. 심지어 용의자가 엄마의 제자였던 유가미라고. 그 사람이 그럴 리가 없다고 생각하면 아니나 다를까 그는 울고 있었다. 법정에는 여태껏 본 적 없는 부정적인 감정들이 이리저리 뒤섞이고 있었다. 유가미에게 분노하는 사람, 두려움을 느끼는 사람, 엄마의 죽음에 좌절하는 사람. 사실은 그때 도망치고 싶었다. 자백할 때, 모든 소음을 뒤덮을 정도로 처절하게 울고 있는 그의 마음이 아니었다면 도망쳤을 것이다.

키즈키 마리를 죽인 것은 자신이다. 그녀가 싫었다. 돌아올 시간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일부러 그곳에서 검을 들고 기다렸다. 그녀는 찔리는 순간까지 나를 믿었기에 반항하지 않았다. 전부터 계획한 일은 아니었지만, 그날이 아니면 기회가 없을 거라 여겼다. 노린 것은 오직 그녀였으므로 딸아이는 건드릴 필요가 없었다.

웃지도 않고 당연한 사실을 말하듯 덤덤하게 토해내는 겉과 달리 썩어들어가는 그 속은 지금까지도 정확하게 묘사할 단어가 없었다. 슬픔은 미칠 듯이 화를 내는 카구야나 유가미에게 혐오와 공포를 동시에 느끼는 우주 센터 관계자들에게서도 느껴졌지만, 유가미에게 비할 바는 못 되었다. 그날, 키즈키 마리의 죽음에 가장 슬퍼했던 사람은 유가미였다.

“칠 년 전에…, 그 법정 이후에, 미국으로 떠나면서 정말 많은 사람을 만났어요. 그리고 정말 많은 감정들을 보고 들었죠. 하지만, 나는 아직도 그때 유가미 씨보다 슬프게 운 사람은 만난 적이 없어요.”

“…….”

평소와 같이 사무소 사람들끼리 카구야의 형량을 줄일 방법을 찾기 위해 검찰청장을 만나러 가던 길이었다. 사무소에 유가미 검사가 도착했다는 소식에 나루호도와 오도로키가 발을 굴렀다. 가족에게 유죄를 물을 기회를 놓쳤다는 둥, 누님이라면 감옥도 뚫고 탈옥할 사람이라는 둥 독설을 내뱉는 유가미였지만, 그 안에 담긴 게 걱정뿐이라는 건 곡옥이나 팔찌, 동글이가 없어도 알 수 있었다.

인질극을 벌인 이상 무죄를 받긴 어렵다. 그건 유가미 또한 검사로서 잘 알고 있었다. 그런 만큼 감옥이 어떤 곳인지도 알고 있었던 그는 카구야 그곳에 오래 있는 것을 결코 원하지 않았다. 그런 유가미에게 아직 뾰족한 수를 찾지 못했다는 말을 전하면 이번에야말로 삼도천을 건널지도 몰랐다. 물론 코코네는 유가미가 그렇게 감정적인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수갑이 없는 유가미를 지나치게 무서워하는 둘에게는 잘 들리지 않았다. 결국 둘을 대신해서 먼저 사무소로 돌아온 코코네는 문을 열자마자 느껴지는 낯익은 슬픔에 심장이 멎는 기분을 느꼈다.

최대한 기척을 죽이고 그가 있는 소파의 맞은편에 다가갔다. 그러면 어깨에 앉아 보초를 서고 있던 매가 당장이라도 날아들 것처럼 몸을 낮췄다. 아무것도 하지 않을 테니 조용히 있어 달라는 필사적인 손짓과 이미 알고 있지 않냐는 간청을 약 5분 정도 펼친 뒤에야 긴은 가만히 자신의 깃을 다듬었다. 본격적으로 보게 된 유가미는 꿈을 꾸는 것 같았다. 규칙적인 숨소리와 흔들림 없는 자태는 평범하게 선잠 자는 사람처럼 보였으나, 마음은 흐느끼고 있었다. 들은 뒤로 한 번도 잊어본 적 없는 슬픔이었다. 차라리 속으로라도 통곡하면 좋을 텐데. 그것조차도 본인에겐 허락되지 않는 마음이라 생각하는지, 온갖 감정들이 억눌려 있었다.

행여나 잠에서 깰까 차를 내오지도 못하고, 그의 휴식이 조금이라도 길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보고 있으면 얼마 가지 않아 그가 천천히 눈을 떴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온갖 심리학 서적에서 보아온 사람을 달래는 방법이라든가, 위로하는 말 따위로 혼란스럽던 머리는 일어나자마자 익숙하게 눈가를 닦는 그의 모습을 보자마자 텅 비어버렸다.

유가미를 구하고 싶었다. 차마 헤아릴 수 없는 슬픔을 끌어안고 감옥의 밑바닥으로 가라앉은 그를 꺼내주고 싶었다. 남자가 잃어버린 칠 년의 세월을 찾아주고 싶었다. 그리고 다시 이야기하고 싶었다. 엄마에 대해서. 심리학에 대해서. 어릴 땐 몰랐던 법에 대해서. 무척 다정하고 배려심 깊고 올곧은 유가미와 함께. 분명 그랬는데, 웅덩이처럼 고여있는 그의 참담함을 엿보는 순간 돌연 숨이 막히는 것 같았다. 이제는 모두 끝난 이야기인데도, 그의 손목에 더 이상 절그럭거리는 수갑 같은 건 없는데도, 아직 끝나지 않은 것 같았다. 엄마처럼 심리학에 좀 더 재능이 있었더라면 그의 마음까지 구원해줄 수 있었을까.

“…제멋대로 하는 엉망진창 카운슬링 같은 건 필요 없다.”

절대 닿을 수 없을 만큼 멀리 있는 기분이었다. 아무리 손을 뻗어도 닿지 않는 남자는 내일이 되면 다시 손목에 수갑을 채우고 감정을 억누른 채 감옥으로 돌아갈 것만 같았다. 무죄 판결을 받은 지 얼마 안 돼서, 그래서 석방된 그가 아직 어색해서 같은 말 따위로 안심하기에는 당장 느껴지는 커다란 거리감이 무서웠다.

“이봐, 츠키 선생.”

법의 암흑시대는 끝났다. 심연 속에 숨어다니던 망령이 잡혔고 법조계를 드리우던 어둠은 걷혔다. 하지만 유가미는? 칠 년 동안 감옥에 갇힌 채 자신이 스승을 죽였다고 울면서 말한 남자의 마음은? 젊은 신예 검사로서 모두가 부러워하는 미래만 남은 남자는 법에 의해 처벌받은 죄수들 속으로 떨어졌다. 그곳에서 비틀리고, 진실을 찾기 위해 배배 꼬여버린 성격은 모두 나를 지키기 위한 수단이었다. 검사였던 시절보다 훨씬 긴 복역 기간은 앞으로 더 많은 시간을 사회에서 보내게 된다고 해도 쉽게 그의 발밑에서 떨어지지 않을 것이다. 어쩌면 평생 그의 흉터로 남게 될지도 몰랐다. 그런데도 나는, 그를 구했다고 너무 간단하게 말한 게 아닐까?

“코코네!!!”

노기에 찬 음성에 코코네는 자신이 초점을 잃어버렸음을 깨닫는다. 의식 없이 막혀가던 숨이 트인다. 멍하게 흐려지던 시야를 다잡고, 가빠졌던 숨을 진정시켰다. 그를 구해내고 완벽하게 극복했다고 생각한 트라우마가 아직 옅게나마 남아있는 모양이었다. 한차례 진정시킨 뒤 겨우 고개를 들어 바라본 유가미의 표정은 목소리에 담겨 있는 분노를 숨길 생각이 없어 보였다. 코코네는 본능적으로 위축되다가, 불현듯 위화감을 느낀다.

정리할 생각이 없는 건지 덥수룩한 앞머리 때문에 더 이상 눈썹은 보이지도 않고, 안 그래도 날카롭던 눈매는 기어코 기르는 매와 똑같은 수준이 되어버린 데다가 입매는 비틀리기까지 했지만, 이 표정만큼은 변하지 않아서.

“…이제 괜찮아. 전부 끝났으니까.”

올곧은 사람의 무척 다정하고 배려심 깊은 얼굴.

아주 오래전에 본 적 있었다. 엄마의 실험이 싫어서, 엄마는 나를 실험체로만 생각하는 것 같아서, 언젠가 폰코를 데리고 모르는 창고 구석에 박혀서 소심한 반항을 부리던 때. 한참을 지나도 찾으러 오는 사람이 없어서 모두가 나를 잊은 줄 알았던 그 때에, 엄마가 아주 많이 걱정한다며 자신을 찾았던. 비록 머리는 하얗게 새버리고, 눈 밑에는 지워지지 않는 눈물자국이 선명했지만 여전히 똑같았다. 진심으로 상대를 걱정하고 위하는 마음까지도.

코코네의 변화를 알아챘는지 유가미는 상대방 쪽으로 내밀었던 상체를 소파 등받이로 되돌려 놓았다. 한 번 감았다가 뜬 눈은 언제나의 모습으로 돌아와 있었다. 매의 깃털을 입에 물고, 아주 먼 옛날에서 다시 지금으로 돌아온 유가미를 보던 코코네는 뒤늦게 목소리를 높였다.

“방금 그 얼굴! 한 번만 다시 해줘요!! 유가미 검사님도 평범하게 웃을 수 있다는 제 주장을 뒷받침할 증거를 드디어 찾았으니까요!!!”

“무슨 소리인지 전혀 모르겠군.”

“아까 있잖아요! 이렇게! 이렇게 웃는 거요!! 지금 성격 나쁘게 웃는 거 말고!”

“헷, 그렇다면 묻지. 내가 그런 얼굴을 했다는 증거는 있나?”

“이, 이, 이의 있음!!!”

동글이에게 방금 전 상황을 찍은 사진 같은 건 없냐고 추궁하기 시작하는 코코네를 보며 유가미는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코코네가 바라는 미소는 아니었으나 유가미는 지금만큼 솔직하게 웃어본 적도 없다고 생각했다. 다시는 사람의 마음에, 특히 자신의 마음에 민감한 소녀를 두고 무방비하게 잠드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다 끝났다는 말만큼은 진심이었다. 법정에서 울리는 코코네의 목소리는 더 이상 열한 살의 것이 아니었다. 힘 있는 목소리와 강단 있지만 아직은 어설픈 칼질. 저승에서 보게 될 스승에게 말할 게 늘었다고 생각하다가, 이내 고쳐먹는다.

이제 더 이상 저승을 염두에 둘 필요는 없다. 칠 년 동안 몸에 밴 습관을 고치기에는 그만큼의 시간이 들겠지만, 그로 인해 스승의 가장 소중한 것이 울지 않는다면 뭐든 괜찮았다. 유가미에게 있어서 칠 년 전과 다르지 않은 것은 그것 하나면 충분했다.

한편, 뒤늦게 사무소에 돌아온 나루호도와 오도로키는 유가미에게 한 번만 그 얼굴을 해줄 수 없냐고 매달리는 코코네를 보며 그에게 험악한 인상이 아직도 더 남아있다고 오해했다. 비로소 다른 변호사들이 유가미의 ‘그 미소’를 보고 오해가 풀리는 것은 아주 멀고도 멀고도 먼…, 어쩌면 오지 않을지도 모르는 이야기였다.

 

 

 

 


카테고리
#2차창작
페어
#Non-CP

댓글 0



추천 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