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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살다 보면 한 번씩 극복할 수 없는 태생적인 차이를 마주하고는 한다. 누군가는 모든 비교는 상대적이기에, 극복할 수 없는 차이란 결국 자기 자신이 정해놓는 한계라고 말하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하나 꼽는다고 한다면 코코네는 두말할 것도 없이 자신의 나이를 꼽을 것이다. 사람들은 젊음이 최고의 무기라고 하는데 코코네는 갈수록 어려서 서러운 일만 늘었다. 특히 검사와 변호사가 함께 모이는 자리가 자연스럽게 술자리로 넘어갈 때면 더더욱 말이다.

“이익! 모일 땐 다 같이 모여놓고 이제 애들은 빠지라는 게 말이 되냐고요!!”

먼저 돌아가라는 다정한 명령에 나루호도 만능 사무소에 죽치고 있던 코코네가 소리쳤다. 물론 나루호도의 목적어는 사무소가 아닌 코코네 본인의 집이었겠지만, 반항 심리였다. 같은 변호사임에도 불구하고 철저하게 저를 어린아이 취급하는 그들에게 쉬는 시간에도 공판의 자료를 파고들며 철저하게 재판을 준비하는 베테랑 변호사의 믿음직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저기, 코코네……. 나이가 되어도 빠져야 했던 나도 있는데…….”

그러면, 가까운 곳에서 마찬가지로 서류를 보고 있던 사람이 말했다. 오도로키였다. 식은땀을 삐질삐질 흘리고 있는 그의 얼굴에는 그만의 고민이 깊어 보였다.

“아무래도 장소를 옮길 때면 나이가 아니라… 경력의 문제인 거겠지.”

“그래서 더 치사한 거예요!!”

-치사해!

코코네가 주먹까지 쥐고 버럭했다. 목에 걸린 동글이까지 화면을 빨갛게 물들이고 자신을 거들면, 나름대로 달래기 위해 입을 열었던 오도로키는 금방 어깨를 움츠리고 후배의 말을 무조건적으로 긍정했다. 아, 그럼. 당연히 치사하지. 소장님이 너무하다니까. 빠르게 생긴 편에도 한 번 움켜쥔 주먹은 쉽게 풀리지 않는다. 같은 변호사라고 해도 아득한 차이가 있다는 건 코코네도 당연히 알았다. 어쨌든 변호사 뱃지 모양은 다 똑같으니 된 거 아니냐 넘기기에는 그들의 뱃지에는 무시할 수 없는 실력과 경험이 녹아 있었다.

이러한 맥락으로, 나루호도가 미츠루기 검찰청장을 만나면서 저희를 빼놓으려 했다면 오히려 먼저 웃으면서 자리를 비키려 했을 것이다. 미츠루기 검찰청장과 가류 검사를 만나면서 저희를 빼놓으려 했다면 살짝 섭섭했지만 수긍할 수 있었다. 17살에 검사 자격을 취득한 그는 오도로키와 엇비슷한 나이였음에도 말마따나 경력이 달랐다. 그러나 거기에 유가미가 끼면 이야기가 달랐다. 미츠루기 검찰청장도, 가류 검사도, 하다못해 스승의 동생인 마요이씨를 만나도 이해가 되는데 유가미만큼은 납득할 수 없었다.

그가 유능한 검사라는 것은 부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오도로키보다 나이가 많아도 가류만큼 경력이 화려하지 못한 유가미가 당당히 ‘어른들의 모임’에 끼어 있는 모습은 누가 뭐라고 해도 모순이었다. 제일 열 받는 건, 가만히 구경만 하겠다거나 좀 더 곁에서 배우고 싶다거나 하는 말로 조르면 은근히 마음이 약해지는 나루호도(혹은 미츠루기)의 뒤에서 태연하게 우유나 더 마시고 오라는 말로 자신의 출입을 철저히 금지하는 유가미였다. 더 솔직하게 말해서, 코코네는 당연하게 자신이 제외되는 상황이 분하기보다도 다른 사람과 어울리면서 술 마시는 유가미의 모습을 보지 못하는 게 억울했다.

미국에서 죄수의 심리학을 다룬 책을 읽을 때면 코코네는 엄마의 마지막 제자를 떠올렸다. 끔찍했던 가을에 유가미는 전국으로 실시간 생중계된 살인자였다. 꽃 피는 봄에는 법정의 모순이 되어있었다. 난폭했던 여름을 지나 아슬했던 겨울의 그는 비로소 누명을 벗은 죄수 검사가 되었으나, 코코네에게 유가미는 언제나 엄마의 다정한 제자였다. 따로 엄마에게 배우지 않아도 이미 충분히 멋있고 강했던 사람. 항상 침착했던 엄마보다도 더 조용했지만 가끔씩 건네는 한 마디는 전부 상냥했던 사람. 공과 사의 구별이 철저했던 엄마는 자문을 얻고자 가족의 소개로 찾아왔던 검사에서 배움을 바라고 본격적으로 제자가 된 유가미에게 엄격하게 굴었으나, 하나를 가르치면 열을 배우고도 열하나를 더 배우고 싶어 했던 제자를 속 깊이 아꼈다는 건 당시 우주 센터 사람이면 다 알았다.

당시 유가미에게는 꿈이라고 하기엔 뭣한 목표가 있었다. 직접 제게 알려주진 않았지만 귀를 기울이다 보면 어렴풋하게 그의 다짐이 들려왔다. 피고인의 심리를 좀 더 잘 이해하고, 필요하다면 이용해서라도 혼란한 법의 암흑시대에 억울한 죄인을 더 만들지 않겠다는, 검사로서의 다짐이었다. 종국엔 누구보다 억울한 죄목으로 법의 암흑시대에 완전한 개막을 알린 21살의 유가미를 떠올리다가 억지로 끊었다. 중요한 건 그가 공식적인 인도 절차까지 모두 끝낸 뒤 사회로 완전히 복귀했다는 것이다.

수갑으로부터 해방되고 마시는 공기마저도 달다고 했던 유가미가 제일 하고 싶은 게 무엇일지 궁금했다. 완전한 자유를 허락받은 그가 앞으로 살아갈 인생이 궁금했다. 내심 기대했던 것도 같다. 그러나 유가미는 사회에 나와서도 여전히 부유하듯 살았다. 하얗게 새어버린 머리조차 물들이지 않고, 손목에 수갑만 없다 뿐이지 죄수였던 때와 다름없는 모습으로 시간을 보냈다. 이 인간이 또 멋대로 혼자 마지막을 준비하나 싶었다. 유가미의 자기중심적 태도가 극도로 달할 때면 많은 경우에는 체념과 맞닿아있었다. 코코네는 그런 그를 볼 때면 책임감을 느꼈다. 누가 누굴 걱정하나 싶겠지만, 모녀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 7년간 홀로 고독을 버텨야 했던 남자에게 갖는 최소한의 양심이자 의무였다.

피고인을 겁주는 법정이면 모를까, 밖에서도 귀신 같은 몰골로 사회생활은 제대로 하는 건지. 가장 기초적인 부분까지 걱정이 번져나가던 차였다. 나루호도와 미츠루기의 주도하에 검사들과 함께 모이는 시간이 생긴 것이다. 아직 불완전한 배심원 제도의 문제점을 찾기 위해 모인 모임의 마무리는 대부분 연회처럼 끝났다. 사람 많고 시끄러운 분위기는 질색할 줄 알았던 유가미는 귀찮아하는 듯 잘 섞여 있었다. 어느 때든 반짝반짝한 가류 검사와 어색하게 앉아있다가도 금방 사건 이야기로 열띤 토론을 펼치고는 했다. 염려와는 멀고 상상과는 가까운 모습이었다. 사실, 어른들의 술자리에서도 크게 걱정할 건 없다는 걸 알았다. 그럼에도 궁금했다. 술은 당연히 잘 마시겠지만, 그곳에서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다른 사람과 어울리는 게 재밌는지. 지금, 정말 하고 싶은 걸 하고 있는지.

서류를 마저 정리하려던 코코네의 손이 멈췄다. 저절로 가라앉는 기분 때문은 아니었다. 고개를 들어 사무소 문 쪽을 바라보았다. 왜 그래, 코코네? 아직 아무것도 듣지 못한 오도로키가 가볍게 물었다가, 그녀의 비상한 청력을 떠올리고는 똑같이 손을 멈췄다.

물건이 쏟아지는 듯한 소리가 들린 건 그때였다. 우당탕!! 얼핏 들어서는 계단을 구르는 것 같기도 했다. 심상치 않은 소리에 코코네와 오도로키가 눈을 마주쳤다. 약속한 것처럼 서류를 내려놓고 두 주먹을 꽉 쥐었다. 늦은 시간과 수상한 소리라는 두 개의 정황이 합쳐지면 그 뒤로 몸집을 키우는 상상력은 금방 최악으로 치달았다. 긴장이 풀린 건 방음이 잘 안되는 건물 벽을 통해 들려오는 목소리를 들으면서였다.

“제대로 서라, 나루호도!”

“아니, 난 최선을 다하고 있다니까……. 아아앗!!”

“우오오옷!!”

얼핏 들어도 들떠 있는 게 아무래도 술에 취한 것 같았다. 항상 똑바르게 모순을 지적하고 허점을 짚던 혀들이 꼬부랑했다. 긴장한 게 무색해지는 순간에 다시 눈을 마주친 코코네와 오도로키가 어색하게 웃었다. 그리고 문이 부서지듯 열리면서 취객이 쏟아지자마자 비명을 질렀다. 신발장 앞에 쓰러진 검은 덩어리 때문이었다. 그것을 여기까지 끌고 오느라 상당한 힘을 쏟은 나루호도가 덩달아 옆에 주저앉고, 유일하게 버티고 선 미츠루기가 크라바트를 느슨하게 풀었다. 항상 철저했던 두 사람이, 특히나 칼 같던 검찰청장이 지치고 힘든 귀한 모습을 눈에 담다 보면 신발장에서 구겨 앉은 이가 누군지 금방 알아챘다.

“유가미 검사?!”

나루호도를 수습하기 위해 신발장 근처로 다가간 오도로키가 놀라 말했다. 그가 부츠도 벗지 못하고 사무소 문 앞에 주저앉았을 때부터 이미 정체를 눈치챘던 코코네가 한 박자 늦게 그에게 다가갔다. 굽힌다고 굽힌 두 다리는 산처럼 솟아 존재감을 과시하고 있었고, 그곳에 걸친 팔 사이로 푹 꺼진 고개가 간헐적으로 흔들렸다. 항상 맵시 좋게 떨어진 코트 끝자락은 신발장에 끌리면서 더러워진 채였다. 어디서 어떻게 관찰해보아도 눈앞의 남자는 유가미였다. 유가미가 술에 잔뜩 취해서 제 몸 하나 제대로 가누지 못 하고 있는 것이다.

“유가미 검사가 이렇게 술에 취한 거 처음 봐요. 이게 가능한 일이었구나…….”

“그래? 역시 귀한 모습이었구나.”

어릴 때도 보지 못한 모습에 코코네가 읊조리면 오도로키의 부축을 받고 일어선 나루호도가 금방 대답했다.

“원래는 몇 병을 마셔도 끄떡없는 사람인데 말이지. 와인에 약하더라고.”

“오늘 가류 검사가 좋은 와인을 들고 왔었죠.”

“집을 몰라서 일단 사무소로 데리고 왔는데 도저히 내 힘으로는 들 수가 없어서…….”

“쯧, 그의 체격을 알고도 결심했으면 각오했어야지.”

“그러는 미츠루기도 잔뜩 땀 흘렸지만 말이지, 그래도 고마워. 덕분에 살았어.”

“가류 검사는 안 도와준 건가요?”

“아, 그게 말이지…….”

이어지는 대화에도 코코네는 한 마디도 끼어들지 못했다. 눈으로는 유가미를 관찰하기 바빴고, 귀는 들어온 사실이 빠져나가지 않도록 곱씹는 데 열심이었다. 술을 술이라 부르게 하지도 못하고, 곡차를 즐기던 유가미가 사실은 와인에 약했구나. 본인도 와인에 약한 줄 몰랐던 걸까. 아니면 알고도 마실 만큼 와인이 맛이 있었나. 술에는 아예 가까이도 못 하게 하더니만. 이 꼴을 보여줘 버린 이상 이제 전처럼 우유나 마셔야 할 꼬맹이 취급은 못 할 테다. 아예 무릎을 굽히고 그의 앞에서 쪼그려 앉았다.

여기까지 오는데도 힘들어 보였던 유가미는 어느새 곤히 잠든 것 같았다. 감옥 밑바닥에 있던 검사는 유독 기척에 예민했다. 평소라면 절대 허용되지 않을 거리에서 슬쩍 툭, 하고 건드리면 앞으로 숙이고 있던 상체가 순순히 뒤에 있는 벽으로 넘어갔다. 덥수룩한 앞머리가 살짝 걷히고 여러모로 풀어진 얼굴이 드러난다. 힘이 들어가지 않은 그의 얼굴은 평온해 보였다. 어릴 때, 엄마의 옆에서 보았던 제자의 모습이었다. 그립고도 반가운 마음에 슬며시 미소가 지어진다. 시선에도 무게가 있다는 걸 잊으면 안 됐는데 말이다. 감겨있던 눈꺼풀이 게슴츠레 올라갔다. 언제나 날카롭던 회색 눈동자가 탁하다.

“……코코네.”

“네, 넷?!”

눈이 마주쳤다는 걸 깨닫는 것과 동시에 그가 입을 열었다. 전에 없이 낮게 잠긴 목소리에 어깨에 바짝 힘이 들어간다. 그저 눈만 떴을 뿐인데 반가웠던 다정함은 금방 날아가고 무방비한 취객은 조심해야 할 검객을 바뀐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뭐, 뭐가요.”

소리 나게 침을 삼켰다. 그 나름대로 정신을 차리려는 건지 단어 하나씩 끊어 말하는데 그게 더 위협적이었다. 옷에 깊게 배어든 와인 향이 그나마 긴장을 풀게 했다. 대체 무슨 말을 하려는 건지 가슴이 뛰었다. 습관적으로 빠릿하게 자세를 고쳤으나 두렵지는 않았다. 오히려 설렘에 가까웠다. 혹시 이게 유가미의 주사인가 싶어서. 주사가 아니어도 술에 취한 유가미는 쉽게 보기 힘들만큼 귀해서. 이 귀로 절대 놓치지 않을 거라 다짐했다.

“심리학으로, 다시, 돌아가…….”

마침내 유가미가 말했다.

“네 재능이 진짜 있을 곳으로 가라.”

“…네?”

“하고 싶은 걸 해, 하, 라고. 변호사는 네 길이 아니다.”

꼬인 혀가 집요하게 말했다. 코코네는 이어질 문장을 더 귀담아듣는 대신에 유가미의 팔을 잡고 억지로 일으켜 세우려 했다. 그는 취했을 뿐이니까. 일어나서, 두 다리로 직접 서서, 정신이 좀 들면 이런 소리는 다시는 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원래도 무거웠던 남자는 꼼짝도 하지 않았다. 끙끙거리다가 튕겨 나가듯 그의 팔을 놓치면 힘없이 아래로 툭 떨어진다.

“…나는 이제 괜찮으니까, 여기에 더 얽매이지 말고 네 길을 가라, 코코네.”

코코네는 어느샌가 사무소의 모두가 조용해졌다는 걸 깨달았다.

“내가, 스승을 볼 낯이 없다.”

그 말을 마지막으로 벽에 기대 있던 유가미의 눈이 스르륵 감긴다. 다시 떠지지 않을까 기다려도 들리는 건 규칙적인 숨소리뿐이었다. 이번에야말로 깊이 잠든 것 같았다.

“…검사님?”

검사님, 유가미 검사님?? 소리 내서 물어도 대답은 없었다. 아예 깨우기 위해 어깨를 흔들면 흔드는 대로 고개가 앞으로 떨어졌다. 일방적으로 할 말을 쏟아내 놓고서는 그대로 잠든 모습에 아까와는 다른 감정으로 주먹에 힘이 들어간다. 오도로키를 통해 배운 발성 연습으로 단련된 성대가 부글부글 끓었다.

“자! 오늘은 여기까지!!”

그게 터지기 직전에 푸른색 양복이 유가미와 자신의 사이를 가로 막고 선다. 나루호도였다. 가까워진 그에게서도 진한 알코올 향이 났지만 술에 절여졌을 목소리는 처음 들었을 때보다 훨씬 깨끗했다. 술이 깬 것 같았다.

“유가미 검사가 오늘 많이 피곤했나 보다. 그치, 미츠루기?”

“훗, 내 부하를 너무 무능하게 보는 거 아닌가? 최근에 유가미가 힘들만 한 공판은, …있, 있었다. 다시 생각해보니 이번 재판에 대해서 고민 많아 보였군.”

“시간도 벌써 늦었는데, 슬슬 돌아가는 게 낫겠어, 코코네. 나도 이제 미누키가 있는 집으로 가야 하기도 하고.”

“그치만,”

“그럼, 저희 먼저 들어가 보겠습니다! 소장님.”

말을 끊는 건 오도로키였다. 한 번 기세를 타면 이의를 제기하기 전까진 막을 수 없는 사람들답게 휩쓸리면 사무소 문밖까지 내보내지는 건 순식간이었다. 거기다 대고 잠깐!! 같은 소리조차 내지 못한 건 사무소 소장과 변호사 선배는 물론 검사국의 검찰청장까지 제 눈치를 보며 상황을 수습하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굳이 노이즈에 귀 기울이지 않아도 어쩔 줄 모르는 그들의 눈을 보면 알았다.

함께 밖으로 나온 오도로키는 먼저 들어가겠다는 말과 달리 한참을 제 옆에 서서 가방끈을 만지작거렸다. 상황을 마무리하기에 적당한 말을 찾지 못한 것 같았다. 거기에 먼저 빨리 돌아가자고 인사를 건넸다. 사무소의 신참 막내 변호사답게 해맑은 얼굴로.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처럼 밝게. 내내 평온했던 사람처럼 웃으면서.

집에 돌아와서 확인한 동글이의 화면은 자기 위해 벗을 때까지 붉은색에서 바뀌지 않았다.

*

온갖 잡일까지 도맡아 해결해주는 만능 사무소는 다른 곳보다도 더 일찍 아침이 시작된다. 협소하게나마 숙식이 가능한 곳인 만큼 아예 그곳에서 아침을 맞이할 때도 있었다. 봐야 하는 수사 자료가 너무 많을 때. 상대적으로 법정에서 더 가까운 사무소에서 아예 하룻밤 묵고 출석할 때. 불의의 사고로 잠시 하룻밤 자고 가야 할 때가 그랬다. 이제 막 해가 올라온 아침 7시. 소속 변호사들의 출근 시간인 9시보다 2시간이나 일찍 문이 열린 건 그 때문이었다. 열혈적인 오도로키에 뒤지지 않을 만큼 성실한 코코네는 이른 아침에도 졸린 기색 한 번 내비치지 않았고, 본인이 찾은 길 앞에서 주저하지도 않았다.

“안녕하세요!!! 오늘도 좋은 아침입, 니다…….”

그렇게 들어서자마자 정해둔 목표로 달려가려던 코코네가 멈칫했다. 마술 도구로 엉망이 되어있어서 더욱 인간적인 사무소에는 세 명의 법조인이 완벽하게 녹아 있었다. 아직 와이셔츠에 타이만 걸치고 있는 뾰족 머리 변호사는 그럴 수 있었다. 그는 이곳의 소장이었다. 푸른색 정장 재킷 같은 게 없어도 그 사실은 이제 누구도 부정할 수 없다. 그와 달리 붉은색 재킷은 물론 크라바트까지 단단히 매고 있는 검찰청장 또한 그럴 수 있었다. 그는 이 사무소를 저나 오도로키는 물론 미누키보다도 먼저 방문한 사람이었다. 무거운 직함이 가리고 있는 사실이었다. 그러나 거기에 유가미가 있는 건 이상했다. 모순적인 일이다. 어울려서 이상하다고 느끼는 건. 앞선 두 사람과는 달리 편한 티셔츠 차림으로 소파에 앉아 커피를 마시는 그는 오늘도 새까맸고, 그 어느 때보다도 편안해 보였다. 바로 어젯밤의 술에 잔뜩 취해서 질질 끌려온 사람이라고는 믿을 수 없는 모습이었다.

“아, 코코네 왔구나. 좋은 아침이야. 오늘은 빨리 왔네.”

어중간한 게 끊긴 인사를 받아주는 건 나루호도였다.

“유가미 검사님은 아예 여기서 하루 잔 거예요??”

당장 궁금한 것을 솔직하게 입 밖에 꺼내 물었다.

“뭐어… 그렇게 됐네.”

“옷은 소장님이 빌려준 건가요?”

“일단은 미누키의 모자군 옷을 빌렸어. 공연용으로 크게 사둔 게 있어서 다행이지. 내 옷 중에서는 맞는 게 없더라고.”

“나루호도, 그 건에 관해서 이야기하고 싶은 게 있다만.”

“응? 모자군에 대해서? 아, 설마 저번에 미누키 공연에 초대 안 한 것 때문에 그런 거야?”

그거라면 저번에 이토노코 형사님에게 미리 표를 줬는데, 네가 바빠서……. 그 뒤로도 이어지는 건 서커스 쇼와 검찰청장의 일정 이야기였다. 전설의 변호사와 검사국 창설 이래 유일무이한 천재 검사의 대화라고 하기엔 묘하게 나사 몇 개가 부족했다. 그럼에도 그들은 그 이야기가 일생일대의 재판이라도 되는 것처럼 열띤 대화를 이어 나갔다. 나루호도만큼 눈치 빠르진 않지만, 경계 풀린 미츠루기만큼 눈치가 없지도 않던 코코네는 그게 자신을 향한 배려라는 걸 알아챘다. 정확히는 그때까지도 소파에 느긋하게 앉아서 모든 것을 관망하고 있는 유가미와 단둘이 대화하게끔 자리를 마련해준 것이다. 점점 진지하게 진심을 담아 이의를 제기하며 재밌게 번져나가는 두 사람의 토론을 멀리하고 소파에 앉았다.

“혹시 제가 변호사로서 많이 부족한가요?”

그리고 유가미가 아는 체 하기도 전에 먼저 말했다. 있을 곳으로 돌아가라는 말을 듣자마자 가장 먼저 한 생각이었다. 내가 변호사로서 좀 더 믿음직했더라면. 그런 말은 안 하지 않았을까. 무엇보다도 하고 싶은 걸 하라는 말이 충격적이었다. 분하고 억울했다. 검사이길 포기하고 사형수를 택한 사람에게 듣는 다른 길이 황당했고, 변호사로서 부족한 자신을 인정할 수밖에 없는 게 가장 많이 화가 났다. 이제 자기는 괜찮다면서, 스승을 볼 낯이 없다는 말만 하지 않았더라면 기어코 그 자리에서 멱살을 잡았을 것이다. 들고 있던 커피잔을 탁자에 내려놓은 유가미가 편하게 소파에 기울이고 있던 몸을 앞으로 뺐다.

“제가, 듣는 게 많아서 얼마나 괴로웠는지는 검사님도 잘 아실 거라고 생각해요.”

코코네는 유가미가 법정에서 증인에게 하듯 화술로 자신의 마음을 주무르기 전에 말을 이었다. 우주 센터에 달이 사라진 날로부터 적지 않은 시간이 흐른 오늘까지도, 자기 자신의 체면보다 죽은 스승의 명예가 더 중요한 남자가 입을 다물었다.

“…이 능력으로 사람을 도울 수 있다고 느낀 건 변호사가 되면서부터였어요. 처음엔 분명 유가미 검사님을 구하고 싶어서 변호사가 되었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에요. 엄마처럼 심리학을 연구하는 것도 사람을 돕는 일이라는 걸 알아요. 검사님이 보기에 제가 변호사로서 아직 많이 부족하고, 못 미덥다는 것도 알지만…….”

그러고 싶지 않아도 자꾸만 시선이 아래로 떨어졌다. 터치스크린을 조작하기 위해 특수 제작된 반장갑을 끼고 있는 손은 어느새 동그랗게 말려 있었다. 검은색과 하늘색이 적절하게 섞인 가죽을 바라보았다.

“저는 세상에서 가장 외로운 곳에서 혼자 우는 사람을 구하고 싶어요.”

그 어느 때보다도 확실한 목소리였다. 빛이 떠다니는 눈동자는 맑고 총명하다. 목에 걸려있는 기계는 짙은 남색 빛을 띠고 있었으나 소녀의 표정은 굳건하다.

“그게 제가 하고 싶은 일이에요.”

술 따위로 흐려지거나 뭉개지지 않으며, 그런 것에 기대지 않아도 말할 수 있는 곧은 진심.

“…하나만 묻지, 츠키 선생.”

마침내 유가미가 입을 열었다.

“네, 네?”

솔직하게 긴장한 코코네가 슬쩍 눈동자만 굴려 상대를 바라보았다. 이쪽을 강렬하게 노려보고 있을 거란 예상과 다르게 유가미는 완전히 고개를 돌리고 있었다. 말을 꺼내기를 주저하는 모습이었다. 답지도 않았으나 불러놓고 한참을 말이 없는 모습은 고민이 맞았다. 이윽고 유가미가 눈을 감았다. 길고 꼬부라진 앞머리와 드리워진 그늘, 다크써클이라는 조화의 어둠 속에 갇힌 눈은 감고 뜨는 것만큼은 선명히 보였다. 그 나름대로 결심이 섰다는 것을 눈치챈 코코네가 주먹에 힘을 주었다. 이미 움켜쥘 대로 쥐고 있었던 손가락 끝이 손바닥을 뾰족하게 찔러온다. 유가미의 입이 다시 한번 열린다.

“내가 어제 뭐라고 한 거냐.”

“…네?”

“들은 그대로다. 내가 어제 뭐라고 했는지 기억이 나야 말이지.”

“그, 그걸 다 잊어버렸다고요?!!”

벌떡 일어나서 테이블을 두들기면 유가미는 아예 팔짱을 끼고 소파에 등을 기댔다. 기억이 안 나는 걸 어쩌라는 태도였다. 쪽팔려서 모르는 척하는 건가 싶어서 귀 기울여도 노이즈는 들리지 않았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특수한 곡옥을 지닌 소장을 바라보면 그는 곤란한 표정을 지으며 뒷머리를 긁적였다. 마찬가지로 거짓은 보이지 않는다는 뜻이었다. 제 몸 하나 챙기지 못하던 주정뱅이가 조금도 보이지 않는 오늘이 신기하다 했더니, 그는 정말로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했던 것이다.

“제가 어젯밤에 어떤 고민을 했는데!!”

“쳇, 대충 예상은 된다. 절대 말할 생각은 없었는데 말이지.”

차마 상대의 멱살을 잡을 수 없어 스스로의 머리를 쥐어뜯던 코코네의 눈이 커진다. 유가미는 여전히 눈을 감고 고개를 돌린 채였다.

“뭐…. 곡차에 취한 망나니 말 같은 건 무시해라.”

“망나니라는 자각은 있으시네요.”

얄밉게 꼬집어도 돌아오는 말은 없었다. 저도 모르게 뾰족하게 튀어 나가려는 아랫입술에 애써 힘을 풀었다. 유가미는 물론 사무소 식구들도 자주 잊는 사실이 있었는데, 들리면 안 되는 것까지 듣는 귀를 갖고서 지금까지 본인의 성격대로 살아온 코코네는 사실 누구보다도 쉽게 흔들리지 않는 사람이다. 하다못해 오도로키나 나루호도가 (그들은 절대 그런 말을 하지 않겠지만) 다른 길을 찾으라고 했다면 그렇게까지 분해하고 고민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어젯밤, 동글이까지 꺼놓고 자신의 감정을 고민했던 건, 제게 나아가라 말하는 게 유가미여서.

“검사님이 말하는 걸 제가 어떻게,”

“무시하라면 무시해. 이성을 잃고 떠드는 말에 주워들을 게 있을 리가.”

“…….”

마치 변호 측 주장의 모순을 끊어내는 것 같은 단호함이었다. 논리를 주장하는 데 감정과 주관은 철저하게 배제해놓는 사람 다웠다. 다시 자리에 앉지도 못하고, 스스로의 팔을 붙잡았다. 사건의 인과 결과에 그런 건 필요 없다는 걸 알아도 어떤 진실은 감정만이 말해주고는 했다. 대표적으로 눈앞의 검사가 그랬다. 키즈키 마리를 죽인 건 본인이라는 단단한 논리 속에서 닦지도 않고 흐르는 눈물이 그의 진심을 말했다. 그날, 그것을 잡아내서 진실을 입증한 것은 분명 자신이었음에도. 당장 그에게 어떤 말로 감정의 진실에 대해 설득해야 할지 몰랐다. 나루호도나 오도로키라면 여기서 멋지게 반박했을 텐데. 그러고 싶지 않아도 어깨가 위축됐다. 이래서야 변호사와 어울리지 않다고 쏘아붙여도 할 말이 없었다. 스승에게 볼 낯이 없다던 그에게만큼은 더더욱 변호사다운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는데도.

“…츠키 선생.”

“네…….”

유가미가 자신의 앞에 서 있는 노란색을 보았다. 직전에 온전히 자신의 힘으로 확신을 말했던 코코네. 이제는 감정을 말하는 것도, 듣는 것도 두려워하지 않고. 불안해하지도 않으며. 완전한 본인의 장점으로 삼고 나아간다. 사실 본인이 아는 것보다도 더 뛰어난 재능을 갖고도 독주하는 대신 주변의 손을 잡고 같이 뛰고 싶어 한다. 발이 걸릴 때면 잠시 주춤하는 것처럼 보여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그 자세는 사실, 지식을 탐구하며 파헤치는 학자보다도 다른 게 어울렸다. 고개를 살짝 드는 것만으로도 노란색 재킷의 달린 빛이 눈을 찌른다.

“심리학과는 전혀 다른 길을 걷는 건 솔직히 의외지만…….”

“…….”

“그래도 변호사가 된 네 모습은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네?” 

“잘 어울려. 방식이 어찌 됐든 사람을 구하는 네 모습은.”

처음으로 유가미의 시선을 쫓던 코코네는 뒤늦게 그의 시선이 재킷에 달린 변호사 뱃지를, 아니, 변호사 뱃지를 차고 있는 자신을 향하고 있다는 걸 깨닫는다. 술에 취했을 때와는 비교할 수 없는 회색 눈동자에 코코네는 비로소 술에 취한 남자의 말은 정말 들을 필요도 없었다고 느꼈다.

종종 유가미는 검사 일이라고 해 봤자 그저 법정이라는 곳에서 각자의 칼을 쥐고 승부를 나눌 뿐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코코네는 엄마에게서 검을 쥐는 법을 배운 남자의 칼끝이 언제나 진실을 향하고 있다는 걸 알았다. 다른 검사들과 비교하기에는 확실히 감옥의 색이 짙지만, 분명히 법을 지키는 검사로서 살아가고 있는 남자의 눈이 다시 닫힌다.

“…라고, 스승님께서 살아있었다면 말했겠지.”

“검사님은요? 검사님은 저에게 뭐라고 말할 건데요?”

은근슬쩍 넘어가는 화법에도 코코네는 아랑곳하지 않고 물었다. 유가미가 검사로서 쫓는 진실을 자신은 변호사로서 쫓아가기 위함이었다.

“헷, 그거야 뻔하지 않나.”

잠깐의 주저함을 딛자마자 금방 부활한 그녀를 앞에 둔 유가미는 코코네가 어떤 길을 걸어도 그 끝엔 마리가 없을 거라 생각했다. 코코네는 시간이 지날수록 마리와는 점점 더 달라질 것이다. 에너지를 발산해야만 살 것 같은 얼굴로, 법정이야말로 본인이 서 있어야 할 곳이라 말하는 생기를 느끼며 이미 수십 번도 넘게 확인받은 사실이 비로소 오늘이 되어서야 가슴에 닿았다. 그뿐만이 아니다. 자신은 마리에게 받은 가르침 중에 무엇도 코코네에게 물려주지 못할 것이다.

스승은 저에게 검과 마음에 다가가는 방법에 대해 가르쳐줬지만, 자신은 그녀의 딸에게 법정과 모순을 추론하는 방법에 대해 알려주게 될 것이다. 그리고 유가미는 그게 싫지 않았다. 스승을 볼 낯이 없지만, 스승도 코코네도 제자를 탓할 사람은 아니었기에. 어수룩하게나마 검을 잡을 줄 알게 되면서 이 정도의 눈속임이야 다 꿰고 있을 코코네에게 보란 듯이 웃었다.

“어린애는 가서 잠이나 자라. 법정에서 방해된다.”

“그게 아니잖아요!!!”

“아닐 수가 있나. 키가 거기서 멈춰버리면 곤란할 것 같은데?” 

“술! 술 마셔요!”

“츠키 선생, 몇 번을 말하게 하는 거냐. 그 단어는,”

“알 바에요?!! 지금 검사님한테는 솔직하게 말하는 술이 필요하다고요!! 검사님이 약한 게 와인이었죠?!”

“…어른이나 되고 와라.”

나루 선생, 하루 동안 신세 졌다. 말을 마친 유가미는 미련 없이 커피잔을 들고 몸을 일으켰다. 그즈음엔 8년도 더 된 사건(알아들을 수 있는 단어는 토노사맨밖에 없었다)을 끄집어내며 유치하게, 그러나 진지하게 싸우던 나루호도와 미츠루기가 일단은 말을 멈췄다. 허술해도 공과 사를 아는 어른의 모습이다. 거기에 슬슬 가보겠다며 마찬가지로 태연하게 구는 유가미의 뒤에 따라붙었다. 집까지 바래다주겠다고 옆에 서면 애는 집이나 지키라는 호령이 떨어진다. 그러나 코코네는 더 이상 아랑곳하지 않았다.

유가미의 목소리가 커지고, 지지 않는 코코네가 티격태격하기 시작한다. 그들과는 달리 대놓고 유치한 말다툼에 잠시 소강상태였던 나루호도와 미츠루기의 2차전에 금방 불붙는다. 이번에는 유가미와 코코네를 보며 누가 더 제자를, 후임을 잘 키웠는지에 대해서였다. 각자 사소한 이유로 부딪치며 검사고 변호사고 어른이고 아이고 나눌 것 없이 섞인다. 평화롭던 일상이 소란스러워진다. 무엇이든 만능이라는 단어를 담아내면서 모든 것이 있는 사무소에 어울리는 아침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