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문

[역전재판/쿄오도]넌 그걸 이제 알았니

뒤늦게 짝사랑을 자각한 쿄야 단문

백업용 by 덕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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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기 케이크가 맛있대요.”

가벼운 대화였다. 그러니까, 재판소에서 10분만 걸으면 역이라며 한사코 사양하는 오도로키 호스케를 반쯤 우기다시피 제 차에 태워 사무소까지 바래다주는 길에, 얇아진 옷차림에 짜증스러운 얼굴의 사람들과 달리 시원한 에어컨이 나오는 고급 차 안에서. 

단 둘이 되는 일은 그리 많지 않은 탓인가, 사건과 재판에 대한 화제가 떨어지자 조금 어색한 침묵이 감돌던 참이었다.

붉은 신호등이 점멸하는 것을 지루하게 바라보며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에 맞춰 핸들을 손가락으로 두드리다가, 그의 말에 돌린 시선 끝에는 수수한 간판의 작은 제과점이 있었다. 그 문 앞에 열댓명은 늘어선 줄이며 통창 너머로 가득한 사람들은 아마 호스케의 말이 거짓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고 있는 것 같았다.

“‘맛있대요?’ 먹어본적은 없나봐. 사무소에서 별로 안 멀지 않아?”

“매일 저렇게 줄을 서 있으니까요.”

그럴만한 여유가 없다는건지, 케이크 같은 것을 굳이 줄을 서서 먹을 이유가 없다는 것인지, 호스케는 굳이 덧붙이진 않았으나 쿄야는 그저 긍정의 가벼운 웃음을 흘렸다. 어느쪽이냐 하면 전자와 후자, 둘 다의 의미로.

아마 상당한 실력가일 그 제과점장의 케이크나 그것을 사기 위해 줄을 서는 이들을 폄하하는 것은 결코 아니었으나, 가류 쿄야는 그러기에 지나치게 바쁜 사람이었고, 지갑은 두터웠다. 맛있는 케이크 쯤은 백화점이나 호텔 베이커리에 전화로도 얼마든지 주문할 수 있었다. 그러니 그 뒤로 계절이 바뀌고, 추위가 밀어닥친 날씨에 볼을 붉힌 채 발을 구르며 기다릴 필요도 없거니와 그러고 싶지도 않은거다.

[사무소 근처인데, 좀 들렀다 가도 돼?]

―그러니까, 이건 작은 변덕이고 호기심이다. 쿄야는 문자를 보내며 그렇게 생각했다.

마침 그 거리를 지나던 차에, 마침 그 대화가 떠올랐고, 마침 조금은 여유가 있고, 마침 왠지 그 제과점이 눈에 띄었으니까.

“...웬 케이크입니까?”

“응, 그냥.”

“우왓, 손 차가워. 기다려서 사온겁니까?”

“별로 안 기다렸어. 오늘은 마침 사람이 적어 보이길래 나도 궁금해져서.”

상자를 받아 들던 호스케가 손이 스치자 놀란 눈으로 물었다. 그에 대수롭지 않게 답하며 마치 제 공간인 것 처럼 사무소 소파에 앉자, 드물게 조금 감동한 것 같은 시선이 따라붙었다.

“저 여기 케이크 한 번도 안 먹어 봤습니다.”

쿄야는 ‘응, 저번에도 그렇게 말했어.’ 라는 대답이 머릿속에 떠올랐으나 입밖에는 내지 않았다. 아무래도 호스케는 계절이 두번은 바뀌기 전에 나누었던 그 대화를 잊어버린 눈치였고, 왠지 그런 것을 혼자 기억해두고 있었다는 티를 내고 싶지는 않았는지도 모른다. 

대신 드물게 눈까지 반짝이며 자리를 비운 사무소 식구들의 몫을 냉장고에 나누고, 콧노래까지 부르며 커피를 내리는 그의 뒷모습을 보았다. 

“검사도 먹어보세요. 여기 진짜 맛있다고 미누키가 그랬습니다.”

두 잔의 커피가 놓이고, 심플하고 정석적인 디자인의 딸기쇼트 한조각이 신중하게 나뉜 접시가 제 앞에 놓였다. 체중 조절 중이라 부러 제 몫은 사지 않았는데, 선물까지 사온 손님에게 싸구려 원두로 내린 커피만 낼 수는 없었던 모양이었다. 쿄야는 그런 점이 호스케 답다고 생각했다.

“..오데코 군이 딸기 부분 먹어도 돼.”

그 호의를 굳이 거절하지는 않고, 작게 웃으며 제 접시를 밀어주자 갈색 눈동자의 동공이 크게 열리는 것 같았다. 그러고는 뾰족한 입술을 조금 곤혹스러운듯 움찔거리는가 싶더니, 짙은 눈썹을 찡그린 채 조심스레 이쪽의 눈치를 살피는 것이 보였다.

“...진짜 맛있다고 했다고요. 그리고 검사는 손님이고.”

“응, 너 주려고 사온거니까. 먹어.”

그 다음 나온 말에 호스케는 놀란 눈치였지만, 더 놀라다 못해 펄쩍 뛰고 싶은 것은 오히려 -겉으로 보기엔 몹시 여유롭게 웃고 있는-쿄야였다. 그 가류 쿄야가, 이 추운 날씨에, 얇은 코트 차림으로, 20분이나 줄을 서 저를 알아본 사람들의 수군거림까지 감내하며 산 케이크가 제 변덕이나 호기심이 아닌 오도로키 호스케를 위한 것이라고 제 입으로 실토했으니까.

“검사도 궁금하댔잖습니까.”

그러나 오도로키 호스케는 완고했다. 거기에서 집요하게 더 권하는 것도 그림이 이상해질 것이 뻔했으므로, 쿄야는 ‘그럼, 사양 않고.’ 라고 말하며 담백하게 웃고는 붉은 딸기가 올라간 쪽의 접시를 받아들었다. 

“진짜 맛있네요!”

“...그러네.”

폭신하고 부드러운 시트며, 산뜻한 크림과 딸기의 조화 같은 것이. 그 가격대와 가게의 규모를 생각하면 더 없이 훌륭했다. 하지만,


‘이정도의 케이크는 구하기 어렵지 않지.’

이런 날씨에, 두 번 다시 기다릴 정도는 아니다. 그렇게 생각하며 깨끗이 비운 접시를 막 내려놓자니, 아쉬운듯 가볍게 접시에 남은 크림을 포크로 긁는 호스케가 보였다.

“줄 서서 기다리는 이유가 다 있었네요.”

“다음에 또 사다줄게.”

“예? 아뇨, 그러실 필요는…”

“...응. 그렇지.”

반쯤 제정신이 아닌 것 같다. 쿄야는 자꾸 제 멋대로 입발린 소리를 뱉어내는 입술에 누군가 지퍼라도 달아주길 바랐다. 입술? 

아, 그러고 보니 오데코 군 입술 근처에 크림이 묻은 것 같은ㄷ-

우당탕,

“아- 너무 추워!!”

“오도로키 씨! 저 추워욧-!!”

어딘가 혼란스러운 얼굴로 말이 없는 쿄야가 슬슬 걱정되기 시작한 호스케가 막 입을 열려던 것과, 요란한 소리와 함께 ‘옥상에 눈이 쌓였으니 놀고 오겠다'며 뛰쳐나간 소녀 둘이 뛰어 들어온 것, 그리고 쿄야가 용수철마냥 튀어오르듯 벌떡 일어난 것은 거의 동시였다.

“어?! 가류 검사님! 안녕하세요!”

“무슨일이세…앗, 선배! 케이크 먹었어요?! 제 눈은 못 속여요!!”

“에! 치사해요! 두사람만-!”

“너희 몫도 냉장고에 있다고!”

금새 왁자지껄해지는 사무소 안에서, 나무말뚝마냥 서 있던 이가 어느새 코트까지 입고 입구로 향하는 것에 호스케가 놀라 그를 불러세웠다.

“그냥 갑니까? 미누키랑 키즈키 씨 왔는데요.”

“... …”

부엌에서 가류 검사님이 최고라는 둥, 환호하는 소리가 들려와도 대답없던 뒷모습이 그제야 돌아섰다.

“응. 잊어버리고 있었는데 근처에 볼일이 있어.”

“아, 네…”

평소와 같은 매끄러운 미소에, 갈색 눈동자가 도륵, 굴러가더니 이내는 고개를 끄덕였다.

“바쁘실텐데 부러 들러주시고, 감사합니다.”

“별 것 아닌걸. 그럼 다음에 봐.”

평소와 같은 인사. 쿄야는 그것과 함께 조금은 어안이 벙벙한 듯 호스케를 두고 사무소를 빠져나왔다. 

하늘에서는 그쳤던 눈이 다시 내리기 시작했고, 저도 모르게 시선이 향한 제과점에는 [준비된 재료가 소진되어 금일 영업을 마감합니다] 라고 쓰인 문패, 그리고 그 앞에 나란히 줄 서 있던 이들의 발자국만이 남았다. 쿄야는 차에 오를 생각도 하지 못한 채 그것을 멍하니 보고 있었다.

생일이 지났으니 이제 26세, 결코 많은 나이는 아니라고는 하지만 연애라면 질리도록 해봤고 사랑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변덕이며 호기심으로 포장된 감정이 다른것이리라 요만큼도 의심하지 않았다. 그리고 방금, 정말 엉뚱한 순간에 말도 안되게 그것이 깨져버렸다. 

 

난생 처음으로 오랜 짝사랑을 자각한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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