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문
유가마리
그러나 때로 달은 생각한다.
이 세상에는 비추지 말아야 하는 것이 있다고.
사랑했던 이가 가족을 두고 홀로 먼 여행을 떠났을 때, 아이와 함께 단둘이 남겨진 키즈키 마리는 비로소 세상의 넓음을 느꼈다. 전대미문의 천재라는 수식어로는 지킬 수 없는 딸아이를 끌어안고서, 사람의 마음에 예민했던 재능과 학문에 대한 애정으로 탐독했던 지식의 끝이 자식에게 저주로 대물림될 것을 알았더라면 그토록 열렬히 사랑하지는 않았을 거라고. 뒤늦게 후회 했다.
돌이킬 수 없는 과거에 대한 후회를 메우는 건 앞에 있을 미래를 위해 현재를 쌓는 것뿐이었다. 사랑한다는 당연한 말보다는 누구에게나 허락된 일상을 누리게 해주고 싶었다. 미안하다는 허울뿐인 말보다는 저의 학구열이 망쳐놓은 아이의 평범함을 조금이라도 되찾아주고 싶었다. 형태 없는 심리를 탐구할지언정 언제나 손에 잡히는 실체의 결과물을 내야 했던 마리는 얼마 지나지 않아 공학으로 눈을 돌렸다. 마음을 탑재한 로봇 프로젝트에 기꺼이 참가했다. 이름으로 품고 있었으나 목표는 아니었던 달을 오랫동안 바라보았다.
그러니 내가 어떻게 태양을 마다하고 밤을 기다리는 이들을 미련하게 볼 수 있겠는가.
더 나은 선택지를 두고도 지금을 선택한 이유가, 논리적이지 못한 사랑이었던 것은 나라고 다르지 않았는데.
그럼에도 마리가 좁혀지지 않는 달을 쫓는 이를 동정하지 않는 것은 그가 햇볕 없이도 어둠 속에서도 충분히 밝고, 멋있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바라는 답을 줄 수 없기에 입을 다문 와중에도 염치없이 그녀가 좋은 이유였다.
최근 우주 센터는 점심만 되면 소란스러웠다. 모두가 HAT-1호의 성공적인 발사를 염원하는 설렘인 척했지만, 진짜 이유가 무엇인지는 오오가와라 소장 빼고 다 알았다. 항상 정해진 시간대에 방문하는 검고 젊은 검사. 유가미 카구야의 남동생, 유가미 진. 이제는 자신의 제자로 센터에서 더 익숙해진 청년이었다. 매일 같이 이곳에 들려서 하는 거라곤 심리학과 검에 대해 배우고, 가끔은 코코네와 어울려주는 게 전부였다. 흔하디흔한 일상에도 시선이 몰리고 시끄러워지는 건 청년의 특징 때문이었다.
카구야의 남동생답게 큰 키와 수려한 외모는 하루종일 랩실에서 동료 연구원만 봐야 하는 여성들에게 꽤나 즐거운 눈요깃거리가 되었다. 유명 변호사의 날조 사건 이후로 법조계에 어두운 안개가 깔려있다고 해도 검사라는 직업이 주는 안정감은 여전했다. 거기에 나이까지 어리고, 적은 숫자에 비해 진중함은 깊었으니. 왜 진작 동생을 소개해주지 않았느냐 카구야에게 발칙하게 굴었다가 역으로 혼난 아이들도 적지 않았다.
마리는 카구야가 항상 말했던 ‘험악하고 사람 사귈 줄 모르는 데다가 조만간 범죄자로 오인 체포될 음침한 남동생’이 생각보다 훨씬 멀끔해서 놀랐고, 객관적으로 좋은 사람인 남동생이 일적으로 도움을 필요로 하자 망설임 없이 저를 소개해준 카구야의 성품이 좋았다. 아니, 우주 센터의 많은 여성이 유가미 진에게 관심을 표하는 와중에도 오히려 그들을 진심으로 이해하지 못하고, 남동생의 얼굴, 성격, 직업을 전부 수준 이하로 보는 카구야의 가족애가 좋았었나.
예의 있고도 단순하게 성문 데이터 분석 의뢰를 부탁하러 온 유가미가 심리학에 매료되고, 원래 가업이었다던 검에 미련을 내비치며 본격적으로 배움을 요청할 때도 카구야는 그게 당연하다는 듯 반응했다. 오히려 제게 깍듯하게 구는 남동생을 보며 처음으로 그를, 그의 안목을 칭찬했다. 외동으로 자라, 외동을 키우는 입장으로 그들만의 과격한 다정함은 낯설고 이상할 정도로 편안했다. 혼자서 비추기엔 너무 넓었던 세상이 다른 빛으로 채워지는 것 같았다. 처음으로 효율과 논리가 아닌 사랑으로 택한 길이 정답이었다고 느꼈다.
무심코 내일이 오늘 같기를 바랐다.
*
가업으로 내려오던 검과 무예를 이으려고 했다던 청년은 이미 수준급의 실력을 갖추고도 배움을 요했다. 이전까지 유명한 책 몇 권 읽어본 게 전부라던 심리학마저 빠르게 깨우치는 제자는 한 번 잡아본 적 있기까지 했던 검에서는 그야말로 일취월장에 가까웠다. 그럼에도 유가미는 자신에게 검을 다루는 법에 대해서, 어떨 때는 심리학보다도 더 집요하게 배우려 했다. 자신의 검에는 부드러움이 없다는 게 그 이유였다.
카구야가 거칠고 험악한 야성을 굳이 다듬고 숨길 필요를 느끼지 못하는 것에 반해 동생 유가미는 투박하고 험하게 타고난 본성을 본인의 의지대로 좀 더 능숙하게 다루고 싶어 했다. 범죄자를 상대하고, 때에 따라서 최전선에 서는 것도 마다하지 않는다는 그에게는 사실 카구야의 방식이 더 알맞을 텐데도. 그래서인지 저보다도 과묵한 유가미의 생각은 말을 주고받을 때보다도 검을 잡고 대련할 때 더욱 선명하게 느껴지고는 했다.
대련에는 언제나 진검만이 쓰였다. 각자가 각자의 가족에게서 물려받은 검을 쥐고 미리 준비한 합을 맞추듯 칼날을 부딪쳤다. 논리와 이성으로 일하는 검사답게 거짓말을 시켜도 그럴듯한 명제를 내놓는 제자는 입을 다물고 검으로 대화할 때면 진심을 토해내지 못해서 안달이었다. 무리하고 있을 때에는 몸이 느렸고, 두려우면 걸음이 반 발자국씩 밀렸으며, 심란할 때는 칼끝부터 주저함으로 흔들렸다. 검을 쥐는 이유가 항상 명확했던 마리는 체격 차에서 찍어 내리는 힘을 유연하게 흘렸고, 당황하는 상대를 봐주지 않고 매섭게 몰아붙였다.
쨍그랑!!
날카롭게 벼려진 검이 딱딱한 연구실 바닥에 떨어진다. 카랑카랑한 금속음이 둘 뿐인 공간을 메웠다. 목 끝까지 파고드는 칼날의 궤도를 끝까지 비틀지 못하고 검을 떨어트린 유가미가 털썩 주저앉았다. 검사국에서 엘리트로 꼽힌다는 제자는 보기보다 쉽게 패배를 받아들일 줄 알았다. 그건 서른이라는 나이로 벌써 공학계에 이름을 널리 알려놓고서도 연구가 막힐 때는 자신의 능력 부족을 시원하게 인정하고 배우려는 카구야의 동생다웠다. 그러나 오늘만큼은 평소처럼 남매를 겹쳐보고 웃으며 넘어갈 수 없었다. 패배 끝에서 주저앉은 유가미는 일어서지 못하고 식은땀만 흘리고 있었다.
“진검을 잡을 때는 마음이 흔들려서는 안 됩니다.”
제자가 일어설 수 있도록 손을 뻗는 대신에 검집으로 칼을 되돌려놓은 마리가 말했다.
“죄송합니다.”
말이 끝나자마자 유가미가 대답했다. 마리는 변명 같은 요령이라곤 조금도 피울 줄 모르는 제자를 조용히 내려다보았다.
“무슨 일 있었나요.”
“…….”
“내게 말할 수 없는 일이라면 더 묻지 않겠습니다.”
“그건… 아닙니다.”
재주는 피울 줄 알 텐데도 모시기를 택한 스승의 앞에서는 끝까지 올곧다. 그래서 아끼게 된 제자였지만 때로는 꺾여야 할 때도 부러지지 않는 그가 어쩔 수 없이 걱정스러웠다. 그 마음은 카구야도 같을 것이다. 아니라는 대답과 달리 유가미의 입은 한참을 지나도 열리지 않았다. 대개 유가미의 고민은 공판과 법정에 관련되어 있었지만, 이번만큼은 다른 것 같았다. 가르침을 받고자 허리를 편 제자 앞에서 몸을 숙일 수 없었던 마리는 좀 더 차분한 동작으로 유가미 앞에 다가가 섰다.
“검은 왜 포기하게 된 건가요.”
그의 입술이 살짝 안으로 말려들어 간다. 본인을 상대로 가벼운 카운슬링을 시도한다는 것을 눈치챈 것이다. 스승이라는 자가 딸을 맡기며 보모 노릇을 부탁해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청년은 어린애 취급만큼은 꺼렸다. 그와 자신의 나이 차이를 생각하면 사실 후자가 더 당연한 일인데도 말이다. 요령은 없고, 재주는 갖다 버린 제자의 침묵은 오래가지 않는다.
“누님 덕분이었습니다.”
물어보면서도 내심 예측했던 이야기였다. 두 사람에게 남은 가족이 서로 밖에 없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었다.
“저는 무조건 가업을 이어야만 한다고 생각했지만, 그러지 않아도 된다고 말해준 게 누님이었습니다.”
마리는 시시하고 답답하며 고루하기 짝이 없는 가문의 업 같은 것보다도 네가 하고 싶은 일을 하라며 투박하고 다정하게 동생을 격려하는 카구야를 쉽게 떠올릴 수 있었다. 자연스럽게 입가에 미소가 떠오른다.
“검사가 하고 싶은 일인 건가요.”
“…그렇습니다. 법조계의 미래가 어둡다고 하는 지금, 억울한 사람이 더 나오는 걸 막고 싶습니다. 그게 법이 있는 이유니까요.”
“이렇게 들으면 검사보단 변호사 같군요.”
“변호사는, 법을 지킬 수 없습니다.”
직전까지 단단하게 각오를 말하던 목소리가 흐려진다.
“그들이 하는 일은 정의가 아니라 피고인을 지키는 일입니다.”
그러니 그들은 피고인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할 겁니다. 유가미의 시선은 여전히 바닥을 향해 있었다. 마리는 더 묻지 않아도 그가 작년에 있었던 변호사 날조 사건에 크게 실망했음을 눈치챘다. 그쪽으로는 영 관심이 없던 자신의 귀에 들어올 정도로 큰 사건이었다. 누군가의 추락이 거대하다면 그건 그만큼 그 사람이 쌓아온 인망이 높기 때문이다. 이름은 떠오르지 않아도 대대적으로 오르락내리락하며 각인된 푸른색이 머릿속에서 흩어진다. 또다시 한번 정적이 이어졌다.
“…스승님의 검은 어떻게 흔들리지 않는 겁니까.”
이번에 먼저 입을 연 건 유가미였다.
“지키려는 게 있으니까요.”
마리가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저는, 지키고 싶은 게 있기에 검이 흔들립니다.”
“다릅니다. 그건 진이 검을 두려워하고 있기 때문이에요.”
마리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상대를 베려고 하지 않을 때, 검은 부드러워집니다.”
“부끄럽게도 저는 제 것을 지키고, 상대를 해하려고 쥐는 검에 어떻게 배려를 담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반드시 상대를 해하는 것만이 내 것을 지키는 방법은 아니에요.”
말을 마친 마리가 그때까지도 땅에 널브러져 있는 검을 쥐었다. 검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예법이었다. 손잡이 부분에는 하얀 천이 단단하게 감싸고 있었다. 오랜 시간 동안 사람의 손을 타면서 내려왔을 텐데도 여전히 새하얀 천은 그곳에 깃든 가문의 긍지를 내비쳤다. 제 손에는 조금 큰 그것을 더 관찰하는 대신 유카타의 늘어진 소매깃으로 먼지가 붙은 날을 닦았다. 칼등을 안쪽으로 하게끔 쥐고 쓸어내리면 금방 본래의 날카로움이 빛났다. 지키고, 이어 내릴 가치가 있는 검이다. 그것을 상대가 건네받기 쉽게끔 고쳐 잡았다.
검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예법이다.
온 마음을 담아 진정으로 행하는 존중은 때로는 검보다도 매섭고 날카롭게 상대의 마음을 빼앗는다.
“…망령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습니다. 정체가 들키는 일을 극도로 꺼려하는 놈이니 쉽게 나서리라 생각되진 않지만, 만약 분석 데이터 결과가 나왔다는 사실이 어디선가 새어나갔다면,”
넋을 놓고 스승을 보던 유가미가 쏟아내듯 말을 늘어놓았다. 처음의 주저함도 잠깐, 뒤에 가서는 댐에 구멍이라도 난 것처럼 진심을 토해냈다. 목구멍을 틀어막고 있던 무언가가 터진 것 같기도 했다. 힘없이 앉아있던 다리가 움직여서 스승의 앞에 한쪽 무릎을 꿇는다. 목소리에는 절박함이 가득했다.
“잘된 일이네요.”
그리고 망령이라는 주어를 듣자마자 자신이 들어서는 안 될 이야기였음을 직감한 마리가 단호하게 그의 말을 끊었다. 허락되지 않은 걱정에 유가미가 바로 입을 다물었다. 해소되지 못하고 걱정이 눈망울로 차오르다가, 금방 미간이 찌푸려졌다. 스승의 행동은 따라가도 말뜻은 이해하지 못한 제자의 호소였다. 날카로운 눈매에 힘이 들어가니 그럭저럭 다정했던 인상이 거칠어진다. 제자가 스승을 속일 수 없어 거짓을 말하지 않는다면 스승은 제자를 속이고 싶지 않아 거짓을 말하지 않아서.
“진에게도 지켜야 할 것이 있다니, 정말 다행입니다.”
그래서 마리는 이번에도 가슴 깊이 우러나오는 진심을 전했다.
“망령을 잡는 일은 오랜 염원이었죠? 그 증거를 검사로서 지키기 위해서라도 지금은 본인을 좀 더 보살피도록 해주세요. 진이 몸살이라도 나서 센터에 오지 못한다면, 코코네가 날 미워할지도 모르니까요.”
“가당치도 않습니다! 코코네는 스승님을, 읏…!”
검을 옆으로 치워두고 식은땀으로 젖은 제자의 이마에 손을 올리는 그때였다. 유가미가 신음했다. 열을 재려던 마리의 손이 멈춘다. 눈앞에 진 그늘에 유가미는 표정을 감추는 것도 잊고서 아랫입술을 세게 깨물었다. 한순간 닿았던 차가운 온도가 온몸에 소름끼치게 했다. 많은 날 동안 저항하고 굴복하면서도 갈구하고 갈망했던 감각이다. 그게 바로 앞에 있었다. 지금 당장 손을 뻗으면 만질 수 있었다. 올려다보아야 하는 여자의 손에는 검이 있었으나 땅을 박차고 일어선다면 간단히 뒤집힐 눈높이였다. 힘없이 늘어져 있던 손등 위로 핏줄이 선다.
그렇게 마리는 혼란함의 끝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기를 택한 청년을 내려다보았다. 앞으로 공손히 모인 채 주먹 쥐고 있는 손은 꼭 보이지 않는 수갑에 채워진 것만 같다. 생각지도 못한 소리에 멈췄던 손가락을 천천히 움직였다. 아까보다 조심스럽게 머리칼을 헤집어도 제자는 고개를 돌리지 않는다. 타인이 만지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던 청년은 이마가 보이도록 머리카락을 걷어도 미간 한 번 찌푸리지 않았다. 머리카락은 식은땀으로 젖어있었으나 불쾌하지는 않았다. 항상 가려져 있던 이마가 드러나면 매섭게 보이던 청년의 얼굴이 시원하게 트였다. 그가 눈을 감는다. 마침내 손바닥에 닿은 이마는 눈에 보이는 것 이상으로 뜨겁게 달아올라 있었다.
가엾고, 불쌍하게도.
카구야에게는 향한 적 없던 동정이 진에 대한 모든 대답이었다.
유가미에게는 애석하게도, 마리는 사람의 마음을 학문적으로 연구하기 전부터 눈치가 굉장히 빠른 사람이었다. 유가미에게는 안타깝게도, 대학에서 다른 학생을 가르쳐본 마리는 그의 행동이 스승을 모시기보다도 군주를 섬기는 것에 가깝다는 걸 알았다. 유가미에게는 불행하게도, 사랑하는 남자와 결혼하여 아이를 낳고 사별한 마리는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을 알았다.
누나와 닮았지만 달랐던 동생이 비로소 똑같아진다. 마리는 제 앞에서 한쪽 무릎을 꿇고 있는 검사가 자신의 말이라면 무엇이든 하리라는 것을 알았다. 다시는 나를 찾아오지 말라고 말한다면 제자는 카구야의 입에서도 사라질 것이다. 연심을 고백하라 말한다면 청년은 고백을 담지 못해 제자가 될 수밖에 없었던 날부터의 진심을 쏟아낼 것이다. 나를 위해 죽으라고 말한다면 유가미는 기꺼이 자신의 목숨을 내던질 것이다. 그래서 마리는 제자이자, 청년이자, 유가미인 그를 동정하면서도 그에게 말해서는 안 될 것을 말하고 싶었다.
카구야는 떠난 이를 영원히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마리에게는 애석하게도, 코코네를 부탁할만한 가까운 친척이 없었다. 미국에 남편의 친척이 살았지만, 그가 사별한 뒤로는 자연스레 연락이 끊겼다. 마리에게는 슬프게도, 카구야는 엄마보다도 아빠를 더 많이 닮은 코코네를 좋아하지 않았다. 남겨진 자신이 어떻게 버텨왔는지 지켜봐 온 카구야는 절대 그를 용서할 생각이 없었고 제게 믿을만한 지인은 카구야가 전부였다. 마리에게는 불행하게도, 유가미 진은 코코네를 진심으로 아꼈다. 마리에게는 절망적이게도, 생각이 많은 사람보다 프로그래밍으로 짜인 로봇을 편안해하는 딸아이는 유가미만큼은, 유가미 진에게만큼은 마음을 열고 그의 목소리를 들었다.
그러니 가엾고도 강한 나의 제자야. 내 모든 연구 성과는 달의 공주가 지켜줄 테니, 부디 나에게 있어 무엇보다도 소중한 코코네를…….
“…스승님?”
길어진 침묵에 유가미가 조심히 입을 열었다. 마리의 손이 멈췄다.
“…….”
“괜찮습니까? 안색이 안 좋습니다. 가까운 병원이라도……."
정중하게 감겨 있던 눈은 반쯤 뜨여 있었다. 진회색 빛 홍채에는 여전히 걱정만이 가득하다. 흔들렸던 것도 잠시 단단한 각오로 맺어진 검사의 눈이다. 사람을 구하기 위해 그들을 심판하는 법을 지키고 싶어 하며, 그어둔 선을 절대 넘지 않는 사람. 가업을 저버리되 가문을 등에 새긴 채 본인의 가치를 좇는 검사.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렇지만,”
“몸이 괜찮다면 다시 검을 잡으세요.”
마리가 손을 거두며 말했다. 유가미는 자신이 느낀 위화감에 대해 주제넘게 캐묻는 대신 굽혔던 무릎을 편 뒤에 마리가 건넨 검을 받아들었다. 손에 든 타인의 것이 떠나면 마리는 몸을 돌려 거리를 벌렸다. 마찬가지로 뒤로 걸음을 물려 공간을 벌린 유가미가 검을 고쳐 쥐었다.
“명심하세요, 유가미.”
마리가 말했다.
“상대를 해하지 않고서도 내 것을 지킬 줄 알아야 한다는 걸…….”
유가미만큼은 온전히 자신의 길을 나아가기를 바라면서. 덧 없는 것을 사랑하는 모습이 가장 단단하고 아름다운 그들이, 부디 자기 자신을 지키기를.
친구이자 스승으로서 할 수 있는 마지막 사랑이었다.
*
“해하지 않고도 지키는 방법…….”
검을 고쳐쥐면 고장난 것처럼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언젠가 가슴에 박힌 스승의 가르침이다. 그리고 그녀는 누워있다. 마음이 약해지는 어느 날이면 기대고 싶었던 차가움보다도 더 싸늘하게. 눈은 지치지도 않고 젖어가는데 입술밖으로 헛웃음이 샜다. 해하지 않고 지키지도 못하게 된 유가미가 이내 양손을 검 손잡이에 올렸다. 스승의 가르침이 이런 게 아니라는 건 세상에서 누구보다 잘 알았다.
“죄송합니다, 스승님.”
마리의 죄라고는 이러지 않고선 평생 아무것도 지킬 수 없는 부족한 놈을 제자라고 곁에 둔 것 뿐이다. 가까스로 재운 코코네는 폰코에게 기대 잠든 채 자신을 기다리고 있었다. 검을 높게 치켜 들었다. 염치도 없이 칼날보다 눈물이 먼저 떨어졌다. 그러나 지키지 못한 것을 지킬 수만 있다면, 유가미는…….
—그래서 칼을 찔러 넣어줬지. 묵은 체증이 가시는 기분이더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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