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가사노 드라이브 웨이.

나루미츠 / 오탈자 검수 및 퇴고 없음 주의.

여름 하마나카를 경유하는 일정의 도동지방은 온화한 계절에는 그렇게 좋은 여행지일 수 없지만 겨울에 온다면 낭만 외에는 어느 것도 남지 않은 장소가 된다. 하물며 드문 국내출장의 경우로 이 곳에 오게 된다는 것은 생각보다 곤욕스러운 일이다. 그래도 해야 할 일이 있다면 하는 것이 옳은 방도인 바, 미츠루기 레이지는 무식하게 버스나 지하철, 택시를 타기보단 차라리 렌터카를 빌리는게 낫다고 판단해 바로 수속을 밟았다. 홋카이도는 말도 안되게 큰 땅이라는걸, 버스 한 정거장의 간격이 도쿄와 비교가 안 된다는 사실로 어릴 적 몸으로 깨우쳤다. 신지토세에서 나카시베츠로 비행기를 타고 잠시. 미츠루기는 이박 삼일 정도로 일정을 예상하던 비서에게 일박 이일이면 된다. 라는 소리로 일축하고 떠나온 참이다. 미츠루기는 렌터카의 파손 관련 서류에 멋들어진 필체로 정자 서명을 한 뒤 키를 건네받았다. 새빨간 알파-로메오의 차체가 왁스를 먹여 흰 조명 아래에서 반드르르하게 빛이 났다. 미츠루기는 곧장 키를 받아들고 차에 꽂아 돌렸다. 낮은 배기음이 갸르릉 울림통 긁는 소리를 냈다.

초겨울의 홋카이도는 말도 안되게 서늘했다. 여름이라 할지라도 십 팔도가 넘지 않는 동네라지만 어느정도 하한선이랄게 있어야 하는 기온이라는걸 이 땅은 모르는 것만 같다. 미츠루기는 렌터카의 히터 다이얼을 우측으로 돌려 차 안과 밖의 온도차를 내기 위해 성심을 다했다. 그 마음에 호응이라도 한 건지, 그저 고급 자동차의 착 달라붙은 동작에서 온 것인지는 몰라도 미츠루기가 언 발을 녹이고 악셀을 밟기까지는 오분여가 채 걸리지 않았다. 시간은 정오. 부지런을 떤 것 치고는 생각보다 많이 지체되었다. 미츠루기는 곧장 아래로 내려갔다. 공항에서 하마나카까지는 자동차로 달려도 시간이 걸렸다. 앞으로 할 일도, 생각보다 많은 시간이 걸릴 것임을 미츠루기는 안다.

도부츠 미사키에 사는 나오미 씨에게서 책 몇 개를 건네받고, 미츠루기는 부족한 청취를 이어갔다. 딸깍이는 핸디 녹음기에서 붉은 불이 사라지는 것은 화장실에 가거나, 굳은 몸을 풀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나 오분여 간 스트레칭을 할 때 뿐이었다. 그리고 그 중간마다 나오미 씨는 창 밖을 보면서, 저기 등대에서 층층나무가 촬영되었었지요. 하고 말하곤 했다. 미츠루기는 씨네필은 커녕 영상물 자체를 깊이 탐구하는 사람은 아니었으므로 -모 아동용 시리즈가 그의 인생에 큰 충격을 준 데엔 다 이유가 있다- 나오미 씨의 말에는 그렇습니까. 하는 말 외엔 큰 변주를 주지 않았다.

어둑해지는 때에, 미츠루기는 나오미 씨의 댁에서 나왔다. 저녁식사를 들고 가지 그러냐는 다정스러운 말에 미츠루기는 괜찮다는 짧은 말로 일별하고 왔을 때와 마찬가지인 차림과 서류가방을 들고 차로 향했다. 조수석에 가방을 내려두고 코트를 벗어 함께 올려둔 뒤 룸미러를 조정했다. 미츠루기는 손목을 들어 시간을 확인했다. 오후 열시 십 칠분. 파도가 요란하게 치지는 않았지만 물가의 밤은 습윤하고 냉한 안개로 희뿌얬다. 미츠루기는 핸들 옆 버튼을 손으로 더듬어 안개등을 켠 뒤에야 출발을 할 수 있었다.

나가사노 드라이브 웨이로 불리는 도로는 꽃이 없었다. 철이 아닌 것이다. 곶을 따라 아름다운 구릉이 포석처럼 놓여 헤드랜턴의 얼룩거리는 그림자를 덮었다가 순식간에 지나쳐갔다. 고개를 돌리면 습지, 다시 앞을 보면 바다를 따라 쭉 뻗은 자연의 도로가 이어졌다. 인공물이 거의 없는 그 곳은 드라이브 웨이라는 말이 괜히 붙은 곳이 아니라는 양 오직 직선의 길이 미츠루기의 눈 앞에 놓여있었다. 차창이 아물어져 있음에도 미츠루기는 무언가 차갑고 습윤한 것들이 창 밖에서부터 이 안으로 손을 밀어넣으려 든다는 기분을 떨칠 수가 없었다. 호러틱한 인상보다는 상당히 느긋해지는 감각이 아닐 수 없다. 도시의 틈바구니에서 데굴거리다보니 잊어버렸을 자연물의 흔적을 가슴으로 느껴서일지도 모른다는, 말도 안되는 촉촉한 감수성이 고개를 들자 미츠루기는 보는 이 없는 차 안에서 콧방귀를 뀌었다.

그렇게 한참. 도로를 따라 달려 위로 위로 올라가던 미츠루기의 눈 앞에 점차 도로등이 보이기 시작한다. 갓길과 차선이 여러게 나뉘어진 도로. 위에서 아래로 쨍하게 내려박는 불빛이 얼마나 그리웠는지 모른다. 조금 더 가면 호텔이 나올테고, 그 곳에서 체크인을 한 뒤 씻고 간단하게 식사를 하자. 그 뒤 오늘 본 업무를 정리하고 잠에 들면 적당히 일어날 수 있을 테고. 준비하고 공항에 가는 코 앞 렌터카 센터에 차를 반납하면 딱 맞춰 비행기를 탈 수 있을 것이다. 복잡스러운 도쿄 공기에 흠뻑 젖는다는게 그렇게 즐거운 일은 아니지만 그래도 할 일은 해야 햐지 않겠는가. 녹을 받아먹고 산다는 것이 이런 일이다.

복잡스럽게 떨어지던 운전길 부스러지는 공기가 보인다. 미츠루기는 반사적으로 속력을 줄이고 전면에 떨어지는 것을 본다. 눈이다. 미츠루기의 상념이 엉켜붙는 동안 공기도 얼어 무게를 가졌다.

무슨 생각인지는 모르겠지만, 미츠루기는 비상 깜빡이를 켜고 갓길에 차를 세웠다. 오직 나루호도에게 첫 눈을 보여주고 싶다는 생각에서였다. 가로등 바로 아래였다. 그리고 자리에서 내려 휴대전화를 열었다. 플립폰이 딸깍이는 소리를 내며 좁은 화면을 보인다. 미츠루기는 구매한지 얼마 되지 않은 휴대전화의 버튼을 어색하게 조작하다가 화면에 들어오는 풍경을 보고 손을 위로 들었다. 찰칵. 인공적인 셔터음이 미츠루기 뿐인 도로의 한 귀퉁이를 쓸었다. 그리고 미츠루기는 다시 손을 내리고 휴대전화의 갤러리로 들어간다. 화소가 떨어지는지 그렇게 선명치 못한. 광원이 위에 있어 지나치게 밝고, 어디에서 뿌려지는지 모를 것들이 어지럽게 흩어지는 풍경은 기실 풍경보단 추상화에 가깝게 느껴졌다. 미츠루기는 그 형편없는 조각을 한참이나 보았다. 그리고 차에서 내렸던 것과 마찬가지로 오로지 충동스럽게 문자메세지에 그 사진을 담아 나루호도에게 발송했다. 그리고 다시 차에 올라 부드럽게 악셀을 밟았다. 몇분 뒤 전화가 왔다. 미츠루기는 다시 갓길에 차를 세운 뒤 전화를 받는다. 미츠루기다. 엇, 미츠루기, 도쿄 아닌가보네. 나루호도인가. 무슨 일이지. 송신구 건너편에서 잠에 취한, 그러나 완전히 누울 수 없는 사람 특유의 나름함이 그물처럼 얽혀있다. 네가 사진을 보내줘서. 그래. 눈 사진을 보냈지. 어쩐지 득의양양하게 들렸는지 나루호도는 건너에서 경쾌하게 웃었다. 종이 넘기는 소리가 가까웠다. 홋카이도에 있나보구나. 그래, 잘 아는군. 거기 라벤더 아이스크림 맛있는데 알아? 이 겨울에 아이스크림이라. 역시 별로야? 생각 중이다.

십분 뒤, 전화가 끊어진다. 잠시 멈춰있던 알파-로메오는 다시 정속주행을 이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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