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단편]

[BL/단편] 삑! 마법반응입니다!

역 위에 서 있던 커다란 HC파크몰이 불꽃과 함께 스러지는 건 한순간이었다. 대참사, 화재 붕괴 사고. 인생이 송두리째 바뀌고 말았다. 몸에 지워지지 않는 흉터, 연인을 잃기까지. 오늘도 불과 연기가 가득한 악몽 속에서 헤맸다.

그대는 살아 있는가.

“담배 좀 피고 오겠습니다.”

“너무 자주 피는 거 아녜요?”

신입이 칸막이 너머로 얼굴을 빼꼼 내밀며 걱정스러운 듯 물었다.

“그냥 둬, 할 일 없어서 저래.”

선배의 말을 뒤로 손이나 휘적이며 사무실을 나왔다. 센터 밖에서 피우면 겁나게 눈치받아서 오늘도 옥상으로 올라간다. 엘리베이터도 없는 건물이라 잡생각 하며 계단을 한 칸씩 밟는다.

행정팀이 있는 1층을 제외한 나머지 층은 연구시설로 이루어져 있다. 산림청 소속답게 식물이 주 연구 대상이다. 조금 특이한 점은 ‘마법 능력’이 있는 식물이라는 것.

마법이라는 게 있을 까, 존재하기는 하는 걸까. 있다고 믿었으니 무작정 여기에 들어온 거긴 하지면서도….

표면적으론 사고, 부실 공사로 인한 대형 참사였지만 사건을 일으킨 게 마법 능력자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래서 마법을 수사할 수 있는 곳을 겨우 뒤져서 여기에 들어왔다.

연구센터라고는 하지만 마법대응과 소속의 연구부라고 생각하면 쉽다. 연구시설과 별개로 행정팀은 수사 권한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파리 날리는 사무실에 억지로 출근하고 있다.

분주한 연구원들을 힐끗 바라봤다. 내 알 바는 아니지, 성큼성큼 두 칸씩 올라 재빨리 옥상으로 뛰어갔다.

“후,”

연기 한 모금 뿜자 마음이 편해진다. 담배가 최고야. 화재 사고를 겪은 사람이 웬 담배인가 싶기도 하지만 퇴원 후 병원 앞에서 맡은 담배 향이 너무 좋았다.

“이런 X같은 일 역시 때려치울까.”

“X같은 부서라 미안하군.”

“부, 부장님.”

표면적으론 센터장이지만 연구부라는 부서 탓에 내부에서는 부장이라 불리고 있다.

“서진 씨가 매일 담배 냄새 풍기고 다니니 연구원들 사이에서 말이 이만저만이 아니야.”

“아, 예.”

그렇게나 소문이 났나.

“이름은 몰라도 ‘행정팀 담배남’이라고 불리더라고.”

“큽.”

담배남….

“그래서 이 일을 그만두면 뭐 할 생각이지?”

“글쎄요. 연구센터 돌고 돌아서 여기 연구원으로 들어오는 거 아닐까요? 저 전공이 고식물학인데.”

“X같은 직장 돌아오는 구만.”

“그러니까요.”

담배가 다 타들어 간다.

“그때쯤 나는 정년이려나.”

“아이구, 그전에는 돌아옵죠.”

“하하하. 담배 다 피우면 순찰이나 돌게.”

“아, 예에….”

순찰. 또 순찰이냐. 한 모금 더 빨았다. 이 망할 경찰 놈들. 니들이 할 일을 왜 우리가 하고 앉아있냐. 재떨이에 담배꽁초를 마구 비비곤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부장님이 순찰 돌래요.”

특수… 특수뭐시기안전팀이었나, 경찰에도 우리랑 비슷하게 마법대책부서가 있다. 물론 그쪽도 공개적인 부서는 아니다.

“조아쓰! 한번 바람 쐬고 올까!”

“저랑 신입이 가야죠. 선배는 팀장이잖아요.”

“신입은 편하게 앉아있어~ 고생은 선배들이 할게!”

“맘대로 하세요! 저도 할 일 산더미거든요?”

서류를 탁탁 치며 신입은 볼멘소리를 내었다.

신입 눈치를 보며 열쇠함에서 차 키를 꺼냈다. 선배는 이미 나가고 없었다.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큰 글씨로 ‘공무차량’, ‘HC시 재난안전연구센터’라고 쓰여있는 작은 차다. 뒷좌석에는 통 모르겠는 이상한 기계들이 쌓여있다. 설명서는 읽었다만 쓸 일이 있는지 모르겠다.

센터가 발족한 지 삼 년 차밖에 되지 않아서 저런 고물이 어디서 왔는지 모르겠다. 아마 전신이 되는 기관이 또 있는 거겠지.

점심시간이 막 지나서인지 은근히 차가 많다.

“이봐. 서진 씨.”

“왜요. 저 운전 중입니다. 주위나 잘 보세요.”

망할 경찰. 망할 경찰.

“그, 우리 관계 말인데.”

“지금 그거 얘기할 때예요? 그러려고 순찰 나왔어요?”

짜증이 몰려온다. 망할 선배.

“그거 술김에 한 거잖아요!”

“아니, 그래도 말이야.”

“그리고 선배가 한 거잖아요! 선배가!”

신입이 들어온 기념으로 회식을 했다. 처음엔 거히 취하진 않았다. 적당히 마시고 고기 몇 점 주워 먹고 눈치 좀 보다가 돌아갈 생각만 하고 있었다.

그런데 선배가 계속 술을 권했다. 그래, 말이 선배지 팀장 말을 어떻게 거역하랴. 계속 마시고, 마시고, 마시다 보니 비틀거리며 선배랑 한 택시에 탄 그것까진 기억이 난다.

“이 사람이 미치겠네. 일이나 해요. 여기 블랙박스 있어요.”

때마침 신호로 멈췄다. 뒷좌석에 있는 탐지기를 꺼내 선배 손에 쥐여주었다.

“서진 씨, 은근히 잘 휘둘리는 거 같아.”

“입 다물고 탐지기나 봐요.”

“이거 작동은 하는 거야? 나 여기 와서 한 번도 되는 걸 본 적이 없는데?”

힐끗 보니 파란색 전등이 깜박거리는 게 보였다.

“충전은 제대로 되어있네요.”

한동안 말이 없었다.

“서진 씨, 마법 활동 목격해본 적 없지.”

“있습니다, 아마도. 심증뿐이지만.”

HC파크몰 참사는 필히 마법사의 소행이다. 그게 아니고서야 그 건물이 지금까지 복구되지 않을 정도로 망가질 리 없다.

“왜 그전에 기계 오작동 때문에 호들갑 떨던 것도 서진 씨 뿐이잖아.”

“그, 그건… 제가 풋내기이어서 그랬던 거던 거죠.”

“이건 감의 싸움이야. 감으로 찍어야 해. 서진 씨는 그게 없어 보여.”

“학생 때도 둔하단 말을 많이 듣긴 했습니다.”

선배는 자기 턱을 한번 쓸었다.

“복수 때문에 들어왔다고 했나? 술자리에서 어렴풋이 중얼댔지.”

“…….”

“요즘 세상에 무슨 복수야. 그냥 잊어버려.”

“어떻게 잊어버립니까!”

핏발이 솟고야 말았다.

“그렇게까지 발끈할 건 없잖아? 세상은 넓고 사람은 많아. 나도 있고.”

얼굴이 다 뜨겁다. 화 때문인지 뭣 때문인지 모르겠다.

‘삑’

처음으로 탐지기에서 소리라는 게 났다.

“잉?”

‘삐삑’

“이잉?”

선배가 놀란 듯 탐지기를 허둥지둥 만지작거리기 시작했다.

“설명서 안 읽었어요? 설명서?”

운전 중이라 뭘 할 수가 없다. 대충 오른팔을 휘저으며 소리쳤다.

“전원 옆에 초록 버튼!”

“뭐? 설명서 읽은 게 나 입사했을 때거든? 그게 언젠데 기억을 해?”

“돌겠네!”

갓길에 차를 대고 선배 대신 탐지기를 조작했다.

“봐요. 전원 버튼이 여기 있고, 여기 초록 버튼 있죠? 이거 누르면 스크린에 지도가 떠요.”

“오~”

“좋아, 제가 운전할 테니까 선배는 방향 안내해요.”

“어디 보자. 100m 이내네. 가까워. 일단 경찰 부를까?”

“메뉴얼도 안 읽었죠…. 저희가 먼저 상황 보고 그다음에 경찰 부르기로 했잖아요.”

“메뉴얼 읽은 게 언제더라…. 입사했을 때….”

“반년인가 전에 경찰 특수뭐시기팀 개편하면서 메뉴얼도 개편된 거 몰라요? 진짜로 안 읽었구만.”

“…….”

운전대를 잡은 채로 한숨만 쉬었다.

“미안허이.”

갑자기 턱이 잡힌 채 조수석으로 얼굴이 잡아당겨졌다. 입술이 포개졌다. 당황스럽다.

“이걸로 봐주면 안 될까?”

“지, 지금이 이럴 땝니까?”

얼굴이 화끈한 것이 아무래도 빨개진 것 같다. 망할 선배. 아, 왜 맨날 남한테 내둘리기만 할까.

“방향 지시나 하세요.”

“참 내, 튕기기는. 15시 방향이니까, 요 앞에서 우회전하면 될 것 같아.”

방금 일을 잊기 위해서라도 현란하게 핸들을 꺾었다. 속도를 점점 낮췄다.

“이 앞인 거 같네. 오른쪽 주택.”

“역시 경찰 부를까요.”

“상황 보고 불러야 한다며.”

선배는 이미 차에서 내린 지 오래다.

“경찰 오기 전에 토끼면 어떡해요.”

“그럼 내가 먼저 들어갈 테니까, 네가 경찰에 연락하는 게 좋겠다. 근데 연락처는 알아?”

“네.”

“알았어. 일단 난 간다.”

문을 턱 닫고 그대로 가버렸다. 인맥이라곤 쥐뿔도 없는 연락처라 전화번호는 금방 찾았다. 경감님께 직접 연락하라 했다.

“안녕하세요. 재난안전연구센터 행정팀….”

‘아, 김서진 씨. 전화 저장해놔서 알아요. 일 생겼나요?’

“예, 탐지기가 인식해서 지금 팀장님이 확인하러 가셨습니다.”

‘주소 보내주시겠어요?’

“앗, 넵. 알겠습니다.”

‘곧 찾아가겠습니다. 유 경위, 나갈 준비-’

뚝.

차가운 사람~

앞에 차도 대 있겠다. 어느 집인지는 바로 알겠지. 나도 가볼까.

“서진 씨!”

안에서 다급한 선배 목소리가 들렸다. 경찰이 아무리 빨리 온 대도 5분은 걸릴 거다. 마법사를 상대로 일반인이 5분? 버틸 수 있을까?

글로브 박스에서 작은 총을 꺼내 들었다. 실탄이 든 총은 아니다. 연구센터 식물에서 채취한 성분으로 만든 마취제가 들어있는 총이다. 경찰이 오기 전까지는 쓸모 있겠지.

집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선배는? 선배는 어디 있지?

“아얏.”

눈이 따끔거린다. 이 와중에 먼지라도 들어갔나. 아니, 오히려 눈이 밝다. 지하, 지하다! 지하실! 지하실이다!

“서진 씨! 대체 어디 있는 거야!”

“조용히 햇!”

다급히 집에서 나와 밖의 지하실로 향하는 문으로 달려갔다. 급히 들어갔는지 살짝 열려있었다.

“선배!”

막 입에 테이프가 붙여지고 있었다.

“으읍!”

테이프를 들고 있는 주체는… 머리가 오징어였다.

“풉.”

“읍!”

“뭐?”

“아, 아니 죄송… 죄송합니다.”

오징어는 화가 난 것 같다. 선배도 지금 이 상황에서 뿜었다고 어이없어하는 것 같다.

일단 총을 겨눴다.

“죄송한 건 둘째치고 선배를 놔주시죠. 저희도 일단 공무집행 중이라서요. 이렇게 나오시면 경찰 부릅니다.”

“하하하! 경찰이 온다고 나를 잡을 건덕지나 있겠어? 너희 인간이야 없애면 그만이고, 나는 인간으로 둔갑하면 끝이다. 이 녀석아!”

오징어가 비웃었다.

“게다가 네가 들고 있는 걸 봐! 22세기 대한민국에서 총기 소유가 말이 되냐!”

“이거, 음…. 말보다….”

그냥 쏴버렸다.

“뭣? 쐈냐? 하하! 그깟 물 같은 총이냐? 장난감 총이냐?”

“말보다 보여드리는 게 빠를 것 같아서 쐈는데요….”

오징어가 방심한 것 같아 한 발 더 쐈다. 선배도 손은 자유로웠는 제 입에 붙은 테이프를 떼곤 재빠르게 굴러 이쪽으로 왔다.

“일단 이건 마취총입니다.”

오징어가 비틀거리기 시작했다. 다행이다. 오징어한테도 먹히는구나.

“괜찮아요?”

“야, 너 대단한데? 총은 어디서 났냐?”

“언제나 조수석 서랍에 있었는데요.”

오징어는 완전히 의식을 잃은 것 같았다. 선배가 발로 툭툭 쳐도 반응이 없었다. 오징어가 들고 있던 테이프로 발목과 손목을 칭칭 감으며 물었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예요?”

선배가 다시 집 안으로 들어가길래 따라 들어갔다.

“재난안전연구센터에서 왔다고 했지. 왜 왔냐고 묻길래 이웃에서 ‘이 집에서 자꾸 이상한 소리 나고 가끔씩 빛도 번쩍거려요~’하는 신고가 들어와서 왔다고 뻥 쳤거든. 그랬더니 갑자기 폭주하데? 켕기는 게 있나 보다 하고 급히 서진 씨 불렀지.”

또 눈이 따갑다. 안쪽 방에 뭔가가….

“그나저나 고맙다 야.”

선배가 팔을 잡아당기더니 품에 안겨 왔다. 이번엔 입술이 닿는 면적이 더 넓었다. 뭐, 작지만 고생했으니 그냥 뒀다. 두어 번 입을 맞췄을까, 밖에서 끼익하는 브레이크 소리가 들렸다.

“쳇, 한창 분위기 좋았는데.”

선배가 툴툴거렸다.

“그보다 선배 저기 안쪽 방….”

“뭐? 안방 가서 하자고?”

“아니, 뭔 소리예요?”

차 문이 턱하고 닫히는 소리가 들렸다.

“김서진 씨?”

“어?”

“김서진 씨, 계세요?”

경찰로 추정되는 사람이 열린 문을 따라 집 안으로 들어왔다. 아 돌겠네. 생각해보니 아직도 선배가 내 품 안에 안겨있다.

“선배 좀 떨어져 봐요!”

“아, 왜!”

“좀!”

“김…서진… 맞…? 맞지?”

낯익은 얼굴이 서 있었다. 경찰복은 전혀 익숙하지 않건만.

“유…정….”

선배가 재빨리 떨어졌다.

“정? 정? 그 정? 네 전 남친? 아, 살아있으면 전 남친은 아닌가?”

눈물이 앞섰다. 정이 한달음에 달려와 끌어안았다.

“어떻게 찾아야 할지 몰랐어.”

“나는 네가 죽은 줄 알았어.”

“흠.”

중후한 목소리가 너머에서 들려왔다.

“유 경위, 지금 공무 중이네.”

“죄, 죄송합니다.”

경감이다.

“바깥쪽 지하실에 오징어 머리…를 한 사람?이 있습니다. 일단 마취총으로 무력화 시키긴 했습니다. 그 사람이 팀장님을 입막음하려고 했고요.”

눈물을 닦으며 말을 전했다.

“내가 확인해보도록 하죠. 유 경위는 집안 수색을.”

“넵!”

경감이 밖으로 나가자 정에게 다시 끌어안겨졌다.

“진짜 어떻게 살아있는 거야.”

“다음에 얘기할게. 나 내일 비번이야.”

선배는 좀 많이 엄청나게 삐진 것으로 보인다.

“썸남을 뺏겼… 아니, 내가 뺏으려고 했던 건가….”

“다 들려요.”

“그, 그래도 아직 나는 포기 안 하니까! 서, 서진 씨 같은 남자가 어디 있어!”

지금 이 상황 심히 곤란하다. 죽은 줄 알았던 애인과 썸남이 함께 있다.

아니, 이게 아니지. 일해야지.

“중요한 건 아까부터 안쪽 방이 신경이 쓰였다는 거야.”

“그게 그 말이었어? 뭔일이래? 서진 씨도 감이 트이려는 건가?”

선배가 안쪽 방문을 열어젖혔다.

“왁! 이게 뭐야!”

정이 달려갔다.

“위험하니까 단독행동은 하지 마세요!”

뒤따라 달려갔다. 우리 연구시설보다 더 최신 설비로 가득한 방이었다. 돈깨나 들였겠는걸?

“그런데 여기서 왜 마법 반응이 일어난 거죠?”

“글쎄다.”

마법을 연구하는 실험실 같다. 어떤 실험이 잘못되면서 마법 반응이 일어난 것 같다. 오징어는 이런 실험을 반복해온 것 같다. 선배의 구라 - 이상한 소리가 나고 빛이 번쩍여요 - 가 통했던 걸 보면 그런 현상이 일어났을지도 모른다.

“오징어는 대체 뭘 한 걸 까요?”

“글쎄, 차차 알아봐야겠지. 그나저나 경찰 쪽 마법뭐시기과는 이런 일 잦수?”

선배가 정에게 물어봤다.

“저희는 ‘특수능력안전팀’이라고 불려요. 그렇게 자주 일이 일어나는 건 아니고 일주일에 두 번 정도…?”

뭐야, 많네.

“뭐야, 많네!”

처음으로 선배와 마음이 통한 거 같다.

“으, 으응? 마, 많은 건가요? 많은 거야?”

정이 이쪽을 보며 물었다.

“우리는 파리 날려.”

밖에서 오징어의 엄살 섞인 비명이 들렸다.

“아야야야야야야야!!! 거 경찰 양반! 살살 좀 하쇼!”

철컹거리는 소리도 들리는 걸 보면 수갑이라도 찬 모양이다.

“유 경위! 안쪽은 별다른 거 없나?”

정이 뛰쳐나갔다.

“네! 동료는 없는 것 같고, 안쪽 방에서 실험기구가 발견되었습니다! 용도는 아직 불명입니다!”

“좋아, 나머지 부르고 오징어는 내가 데려간다.”

오징어가 씩씩대며 경감을 노려봤다.

“이것들이 자꾸 오징어, 오징어 이러는데! 내 이름은 함진오다!”

“좋아. 함진오 씨. 서로 가서 마저 이야기하도록 하지. 일단 그 머리부터 어떻게 해봐.”

경감은 경찰차 안으로 함진오를 집어넣더니 운전석에 바로 탔다. 그 광경을 멍하니 보고 있었는데, 정은 그새 동료 경찰들을 부른 것 같았다. 경찰차 조수석 창문이 내려오더니 경감이 우리를 바라봤다.

“유 경위, 딴짓은 내일하고!”

“앗, 넵!!”

경찰차는 유유히 떠났다. 보통 2인 1조 아니냐고…. 자유롭네 특수능력안전팀은….

“그런데 산림청에서 순찰도 해?”

“이게 다 너희 경찰들이 떠넘긴 일이다. 바보야.”

“그, 그런 거야?”

정은 머리를 긁적였다.

“나는 실험 도구 같은 거 모르는데, 둘이 봐줄 수 있나요? 저는 동료들 오면 나머지 저택 수색하겠습니다.”

나름 경찰 뽐새는 나네.

“너, 내일 꼭 어떻게 된 건지 말해줘야 한다?”

“당연하지.”

윙크까지 날린다. 귀여운 녀석. 아 또 눈물 나오려고 해. 꾹 참고 안쪽 방으로 들어갔다. 선배는 이미 이것저것 둘러보고 있었다.

“뭔지 알겠어요?”

“몰라.”

“뭔 약이라도 만들었나?”

“마약?”

“마법 시약?”

“포션?”

“그게 그거 아니에요?”

“조금씩 달라.”

“오, 역시 수석 연구원 출신.”

생각해보면 선배는 행정팀에 오기 전에 서울 쪽 센터에서 연구원으로 일했다고 했다. 그래서 좌천된 거 아니냐고 놀리기도 했는데 이렇게 도움이 될 때도 있구나.

“일단 액체로 된 걸 만들려던 건 확실해 보여.”

“이걸로 뭘 하려고 했는지도 모르겠어요. 재료 공급도 어디서 했는지 알아내야 할 테고….”

“그 부분은 우리가 알아내야겠네. 경찰 분야가 아니잖아. 왜 이 방에서 마법 반응이 일어난 건지도.”

선배와 둘러보다 이상한 걸 발견했다. 한쪽 벽면에 붙어있는 종이었다.

“이게 뭐지?”

“어디 보자. ‘반응표’?”

“마법 반응이 일어날 걸 예측한 건가? 그걸 해서 뭐하게? 매드사이언티스트라도 돼?”

밖에서 분주한 소리가 났다. 다른 경찰들이 온 모양이다.

“일단 이 결과 보고하고 저희도 철수하죠. 부장님한테도 보고해야 하니까요.”

“사진 찍어. 사진.”

“아차참, 사진.”

방 곳곳을 사진으로 남겼다. 새로 온 경찰들은 방문 앞에서 기웃거리기도 했다.

“다 찍었어?”

“네. 그런 거 같아요. 실험기구랑 재료들, 벽에 있는 종이는 확실히 찍었어요.”

“좋아. 그럼 우리는 돌아가자.”

거실로 나왔다. 경찰들도 대충 수색이 끝난 모양인 듯 전부 거실에 모여 있었다.

“아~ 산림청분들~”

조금 재수가 없어 보이는 경찰이 말했다.

“예, 경찰청분들. 또 다른 실험시설은 발견되지 않았나요? 그러면 저희는 돌아갈까 하는데요. 저희도 보고 올려야 해서 말입니다. 저희 보고서는 센터장님 거쳐서 경감님한테 갈 테니 걱정은 마시고요.”

이럴 때만 팀장님 같다. 믿음직스럽다.

“나머지는 평범한 주택이었습니다. 실험기구 회수는 하지 않으시나요?”

“에이~ 저희 둘이 어떻게 해요~ 밖에 차 보셨잖아요. 못 가져가요~ 가져다주신다면 모를까.”

경찰들이 당황한 기색이었다. 조금 고참인 듯한 경찰이 입을 열었다.

“일단 현장을 보존할 테니, 내일 다른 직원들과 가지러 오는 게 어떠실까요?”

“내일 주말입니다. 월요일에 가지러 오도록 하죠. 그럼 수고하십쇼.”

선배는 쿨하게 집을 나섰다. 경찰 눈치를 보며 뒤따라 나왔다.

“선배 최고. 짱. 멋져요.”

“그럼 이따가 키스 함 갈겨.”

“아니, 지금 그런 말 할 때예요?”

뒤에서 누군가 따라나왔다.

“서진아, 저녁에 센터 앞으로 갈게.”

맞다. 정이가 있었지. 또 선배에게 휘둘릴 뻔했다.

“알았어. 살아있어서 줘서 고마워.”

“뭘.”

“쳇,”

선배가 또 툴툴댔다.

말한 대로 정은 6시가 조금 넘어서 센터 앞으로 찾아왔다. 사복 차림이 더 잘 어울린다. 옷 센스는 여전히 좋네.

팔을 붕붕 흔들며 달려오는 모습이 퍽이나 귀엽다. 아직도 퇴근 안 한 선배만 뒤에서 궁시렁댈 뿐이었다.

“선배, 집에 안 가요?”

“늦게 가든, 일찍 가든 반겨줄 사람도 없다. 너도 알잖아. 나 혼자 사는 거.”

투정 부리는 건지 뭔지.

“부럽다, 야. 애인도 있고. 난 간다. 좋은 시간 보내라.”

선배는 보란 듯이 손가락 키스를 날리며 유유히 정류장이 있는 방향으로 걸어갔다.

“와, 진짜 끈질기네.”

“나 입사하고 계속 저랬어.”

“너한테 단단히 반하긴 했나 보다. 하긴 잘나긴 했지.”

“됐어. 어디로 갈래?”

정이 어깨동무하며 해맑게 웃었다. 지금 보니 얼굴이 티 하나 없이 깨끗하다. 그 참사의 생존자라고 믿기지 않는다.

“당연히 네 집이지!”

“바로 집부터 쳐들어가냐….”

어처구니가 좀 없지만 원래 이런 녀석이다.

“근처야. 걸어갈 수 있어.”

“어째 차가 없는 거 같더라.”

오랜만이라 그런가? 그다지 화젯거리가 없다.

“어쩌다 재난안전연구센터에 들어간 거야? 전공 때문에? 근데 행정팀이라며. 행정팀도 식물학 하는 사람 뽑나?”

“…….”

차마 복수 탓이라고 말하기 부끄러워졌다.

“뭔데, 뭔데?”

“네가…”

“내가?”

“네가 살아있어서 다행이다.”

“그거 말고 왜 들어갔냐니까?”

“너 죽은 줄 알고! 보, 복수하려고!”

“푸핫!”

“생각해봐! HC파크몰이 아무리 부실 공사라고 해도 그 정도로 부서질 만한 곳이 아니라고 생각해. 게다가 난 봤다고, 그 화염방사기가 뿜는 것 같은 불꽃을….”

“트라우마 때문에 기억에 혼선이 생긴 거 아니야?”

“그럴 리가 없지!”

이런 이야기를 하다 보니 집 앞이다.

“여기야.”

“오, 꽤 커 보이는 빌라~”

“방은 그리 안 커.”

공동현관을 지나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다시 집 현관까지 오는 데에 정은 기웃기웃하기만 할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띠리릭’

“자, 어서 옵쇼.”

“실례하겠습니다~”

“아, 그리고 정아. 나 너한테 궁금하게 하나 더 있는데….”

문을 닫고 몸을 돌리는 순간 한순간에 제압당하고 말았다.

“여전히 리드하는 건 못하네.”

정이 왼쪽 얼굴을 쓰다듬었다. 화상자국이 있는 방향이다.

“우악. 이럴 때가 아니잖아.”

유정, 이 자식.

“언제나 남이 시키는 그거밖에 못 하고 휘둘리기밖에 더 해? 그러니까 그 선배인지 팀장인지에 당하는 거 아니야. 어디까지 갔어?”

눈치 하나는 백 단, 아니 천 단이다. 얼굴이 화끈해지는 건 숨길 수가 없다.

“아~ 진짜 나 없다고 그러기야?”

“읍!”

갑자기 키스를 해왔다. 아까도 선배와 입을 맞췄지만, 지금은 다른 느낌이다. 오랜만이라 그리운…? 어…?

“잠시만. 엡베베.”

정이 갑자기 멀리 떨어졌다.

“아까부터 이상한 냄새가 나는 거 같다 했더니. 형, 담배 피워?”

“응? 어.”

“아, 형! 담배가 얼마나 몸에 나쁜데! 게다가 무슨 화재 사고 생존자가 담배를 피우냐?”

“너, 나한테 잔소리할 때만 형이라고 부르더라? 우리 한 살 차이밖에 안 나거든?”

“형이라고 해야 좀 더 경각심을 가지더라고!”

“그만하자. 이런 얘기 할 시간에 더 중요한 얘기할 게 있잖아.”

손사래를 치며 신발을 벗었다. 현관에서 큰 소란이야, 정말.

“좋아. 이번만큼은 넘어가 주도록 하지. 하지만 다음번에 다시 얘기할 거야. 담배. 끊어.”

“시도는 해볼게.”

정은 그새 옷장으로 총총거리며 걸어갔다. 오늘 처음 오면서 매번 오던 것처럼 군다. 하긴 예전 집엔 자주 오곤 했지.

“잠옷으로 갈아입어도 돼? 음, 여전히 사이즈 큰 걸 입네.”

“큰 게 편해. 아무거나 입어. 벗은 건 저기다 두면 될 거 같고.”

“오케이.”

침대로 가 아침에 벗어둔 잠옷으로 갈아입었다. 자고로 침대 위에는 잠옷만이 허용된다. 이를 정에게 이해시키는 데에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렸는지….

힐끗 봤는데, 정의 몸은 깨끗했다. 잘 씻어서 깔끔했다는 말이 아니라 흉터 하나 없는 말끔한 몸이다. 같은 사건을 겪은 사람들은 몸 곳곳에 흉터가 남아있는데, 마치 아무런 일이 없던 것처럼….

“응? 왜?”

“아까 물어보려던 거. 너 몸이 왜 그렇게 멀쩡해?”

“아잉. 계속 쳐다보고 있었어?”

잠옷 입은 주제에 부끄럽다는 듯 몸을 가린다.

“화재 사고 겪은 건 나 뿐이 아니잖아. 아까 네가 내 흉터 만진 것처럼, 너도 흉터 하나쯤은 있어야 하는 거 아냐?”

“아, 그거 말이야? 지금부터 얘기할 내용인데… 좀 천천히 말해도 되지 않을까?”

“난 궁금해서 미치겠는데?”

“일단 담배 냄새 좀 어떻게 지우고 와. 그러면 얘기해줄게.”

하는 수 없이 화장실로 향했다. 어떻게 살아남았다는 거지? 흉터 하나 없는 말끔한 모습으로? 치약을 짜냈다. 양치하며 거울을 보는 데 조금 긴 머리칼로 가린 흉터 자국은 그리 보기 좋은 모습은 아니다.

입가심까지 하고 굴러다니는 민트사탕까지 입에 넣었다. 입안이 시원하다. 이쯤 되면 뭐라고 하진 않겠지. 그런데 진짜 어떻게 살아남은 거지? 한 달이 지나도록 생존자명단에 이름이 없었는데….

“나 왔다.”

“어서 와.”

그새 정은 침대에 누워 뒹굴고 있었다. 따라서 누웠다. 정이 품에 안겼다. 이렇게 있는 게 얼마 만인지 눈물이 흐른다. 오늘따라 울 일이 많다. 이게 다 네 탓이야, 유정.

“왜 또 울어?”

정이 눈에 입을 맞췄다.

“생존자명단에 네 이름이 없었어.”

“당연하지.”

“말도 안 되는 걸 알지만 한 달 동안 생존자명단이 갱신되길 바랐어.”

“좀 더 기다리지 그랬어. 아니 기다려도 소용없나.”

“어떻게 된 거야?”

“나 두 달 뒤에 발견됐어.”

벌떡 일어났다.

“뭐? 근데 기사 하나 안 났어? 기적 아니야?”

정이 어깨를 으쓱했다.

“입막음 당했거든.”

“누구한테?”

“누구긴 윗사람들이지. 그대로 마법보안팀인지 뭔지에 끌려가서 갑자기 검사받고, 생쥐 된 줄 알았다니까, 훈련 투입되더니 작년에 여기로 발령 났어.”

고생 많이 했구나. 우리 유정이. 그나저나 1년이라니, 나는 그동안 선배랑….

“1년이나 됐다고?”

“1년까지는 아니고 겨울이었으니까 반년쯤?”

“그런데 한 번도 마주친 적이 없단 말이야?”

다시 침대에 몸을 눕혔다.

“그리고 나 전화번호 안 바꿨는데, 어쩜 연락 한번을 안 해?”

“전화번호 안 외웠어.”

“참 내.”

정이 답다.

“내 생일은 기억하니?”

“8월 10일.”

“그건 용케 기억하네.”

“생일 때문에 HC파크몰에 간 거잖아. 데이트 겸 삼아서.”

“그랬지.”

또 눈물이 앞선다. 옆에 살아있는 걸 아는데.

“다시 묻자. 몸은 왜 상처 하나 없어?”

“나한테도 초능력이 있다더라고.”

정이 흉터를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능력?”

“’생존’”

“그런 게 있기나 해?”

‘생존’이란 게 능력이라니. 그렇게 따지면 인류사의 모든 인간은 초능력인지 마법 능력인지를 가지고 있는 셈일지도 모른다.

“생존과 자가 치유, 회복이 빠른 것이 특징. 역한 상황에서 다른 사람에 비해 살아남을 가능성이 높다, 라고 해. 그렇다고 불사신까지는 아니야. 그래서 경찰 쪽으로 발령된 거 같고.”

“인체실험 당한 건 아니지.”

그랬다고 하면 다 부숴버린다.

“에이~ 그런 건 아니야. 그냥 임상실험 같은 거 했어. 조금 위험한 항암치료였는데 나는 금방 내성인지 생겨서 안 먹혀서 쫓겨났지 뭐야~”

바보같이 웃는다. 잘났다, 으휴, 정말.

“그게 인체실험이지 뭐야.”

역시 부숴버려야만…. 근데 누굴 부숴야 하는 거지. 국가? 너무 스케일이 큰데, 말단 중의 말단이라고.

“그런데 복수는 어떻게 할 거야?”

맞다, 복수. 정이가 살아있는데 이제 복수할 의미가 있을까?

“증거 잡아서 신고할 거야.”

“풋, 푸하하!”

“뭐야, 왜 웃어.”

“피의 복수… 이런 게 아니고 신고야?”

“당연하지. 내가 무슨 초능력자도 아니고.”

“하긴, 나도 회복 능력 말곤 딱히 없다. 네가 말한 대로 화염방사 직방으로 맞으면 나라도 죽을걸?”

“그런 얘긴 하지도 마. 죽는다느니 그런 거.”

“알았어. 알았어.”

정을 끌어안았고 정도 별말 없이 안겼다.

“이 품이 얼마나 그리웠는지 몰라. 이 년 만이네.”

“너야말로 살갗이 여전히 뜨겁네.”

손을 만지작거렸다. 전부터 그랬다. 다른 사람보다 체온이 높았다.

정이 뒤척이더니 깔아뭉개고 내려봤다. 입술을 맞대어왔다. 좋은 분위기가 오갔다. 살짝 닿았다 떼졌다. 따듯하고 부드러운 느낌이다.

“나 피곤한데.”

“씻고 잠이나 잘까?”

“그래야겠다.”

“오래간만에 같이 씻을래? 키득.”

“화장실 좁아서 안 돼.”

먼저 정을 화장실에 밀어 넣었다. 앞으로의 일이나 생각하자.

월요일에 출근하면 아마 오징어… 아니지, 함진오의 집으로 실험기구를 가지러 연구원들과 가게 될 터이다. 실험기구는 연구원들 담당으로 넘어가겠지. 행정팀은 경찰 자문이나 하게 될 거다.

“많이 피곤해지겠는걸. 경감님이랑 정이는 그렇다 치고 대부분 우리 팀에 우호적이진 않은 거 같던데.”

에라 모르겠다. 침대에 다시 몸을 눕힌다. 정신없는 하루였다.

주말은 짧아도 너무 짧았다. 헤어진 연인과 재회한 주말일수록 더 짧은 거 같다. 순식간에 월요일이 되어서 파리 날리는… 이제 파리라곤 없는 사무실에 출근했다.

“서진 선배! 선배 오기 직전에 부장님이 오셨는데 바로 함진오 씨 집으로 가래요!”

내가 잘못 들었나, 안경이라도 비뚤어졌나. 고쳐 썼다.

“지, 지금? 이제 8시 40분인데?”

“네!”

뒤에서 선배 목소리와 열쇠 짤랑이는 소리가 들렸다. 선배가 어깨에 손을 턱 하니 올렸다.

“가자고. 멋진 차도 준비해주셨다.”

긴장돼 침이 절로 넘어간다.

주차장에는 조금 큰 봉고차가 있을 뿐이었다. 그 뒤로 연구원들의 자차가 두 대 시동이 걸려 있었다.

“이게 멋진 차예요?”

“음! 여기에 싣고 오면 된다고 하더군!”

“아, 예…. 운전은 전가요?”

“맡기겠네!”

선배가 열쇠를 건넸다.

함진오의 집은 25분 정도 떨어진 거리에 있다. 도착하자 연구원들은 분주하게 주차할 자리를 찾느라 고생을 좀 했다. 경찰차도 한 대 와 있었다.

정이었다. 일하는 중이라 그런지 소심하게 손을 흔들어 보였다. 급해서 그냥 웃어만 주고 말았다.

전문가가 해야 할 것 같아서 손을 뺐다. 연구 경력이 있는 선배와 센터 연구원들이 실험기구를 해체하고 옮기기 시작했다. 센터의 설비보다 좋아서 그런지 탐내는 눈치였다.

전부 옮기고 경찰들에게는 의례적인 인사만 하고 바로 현장을 떴다.

“애인인데 너무 차가운 거 아니야?”

“공무수행 중인 경찰한테 치댔다가 큰일 나요.”

“하긴….”

센터로 돌아왔다. 그 새 실험실 한 칸을 비웠다고 한다. 그 방에 이걸 옮기려는 셈인가 보다. 이번에도 할 일 없이 주차만 해주고 옮기는 걸 보기만 했다. 그때 부장님이 불렀다.

“서진 씨.”

“예, 부장님.”

“경찰 측에서, 그러니까 경감님 쪽에서 서진 씨를 보내달라는 연락이 왔거든.”

“네? 저를요?”

“이번 보고서에 서진 씨 감이 빠른 대처에 도움이 됐다고 말이야. 알다시피 이 일은 감이 중요하거든.”

이 사람도 감 타령이다. 나는 먹는 감밖에 모르는데….

“경찰 쪽은 마법이나 초능력 관련 일이 더 많이 들어오니까 한 번 가보는 게 어떨까 하고 말이지.”

“기간은 어느 정도 되나요. 적당히 연수 정도라고 생각하면 될까요?”

“한 일주일?”

“일주일…. 한번 가보죠. 뭐.”

“2동에 있는 이거리 파출소로 가면 돼.”

“파출소요?”

“그래. 별도 기관이어야 해서 파출소로 정했다고 하더군.”

“아, 예…. 그럼 언제부터….”

“이르면 오늘부터. 결정했으면 바로 연락하도록 하지.”

“네?”

“갈 준비나 하게.”

“네?”

지금 파출소로 가라고?

“어라? 서진 선배, 왜 짐을 싸요?”

“파출소 가란다.”

“파출소요? 뭐 잘못했어요?”

“아니, 이번 일 때문에 파출소에 연수 다녀오래.”

“그러면 저 팀장님이랑 둘이 일해야 해요?”

“응. 그렇게… 되네? 너도 고생이다….”

한숨 푹 쉬며 가방을 멨다.

“그럼 난 간다.”

“어, 뭐야. 서진 씨, 진짜 경감님네 가?”

“선배 알고 있었어요?”

“부장님 통화할 때 옆에 있었거든.”

망할 선배.

“좀 언질이라도 해주지.”

“놀라는 거 보고 싶어서.”

웃고 난리야, 난리는.

“아무튼 저는 갑니다. 다음 주에 봐요.”

“고생하고~”

“네~”

파출소는 애매한 거리에 있었다. 버스를 타긴 했는데 생각보다 늦어졌다.

“10시인가.”

문을 열고 들어갔다. 생각보다 쾌적한 분위기였다.

“실례합니다.”

“어, 김서진 씨.”

무안하지도 않게 때마침 경감님이 앞에 계셨다.

“안녕하세요. 경감님. 절 부르셨다고….”

“안에서 얘기하죠. 커피 마실래요?”

“아, 예.”

“유 경위. 커피.”

“넵!”

이 사람. 일부러다. 절대 일부러다. 일부러 유정을 시켰다.

안쪽 방은 깔끔했다. 책상과 컴퓨터, 간이 의자 두 개 정도뿐이었다.

“일단 앉아요.”

경감이 간이의자 하나를 펼쳐주더니 본인은 책상 너머의 의자에 앉았다. 취조당하는 게 이런 기분이려나.

“단도직입적으로 묻자면 지하실과 안방에 대해서 어떻게 안 거죠?”

“으음…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데요….”

기억을 더듬었다. 눈이 따가웠고, 침침하기보다 선명하게 보였다.

“그 장소가요?”

“네. 팀장님 목소리가 밖에서 들린 것도 있지만 제가 그렇게 추리를 잘하는 편은 아니거든요.”

“들어서 압니다.”

“…….”

똑똑하는 소리와 함께 정이 들어왔다.

“실례하겠습니다.”

“유 경위, 자네도 앉게.”

“네, 네?”

경감의 꿍꿍이를 전혀 모르겠다. 정은 커피를 앞에 놓다 말고 급히 간이의자를 펼쳐 앉았다.

“지하실이 눈에 보였단 말이죠.”

“보였달까 뭐랄까… 비슷하긴 한데…. 이게 감인가 아닌가….”

“감이란 게 보통 그런 거죠.”

경감이 몸을 뒤로 젖혔다.

“안방은요?”

“집 안에 다시 들어가니까, 유독 선명하게 보였어요.”

“흠….”

한참 생각하는 눈치다. 그건 그렇다 치고 정은 왜 앉힌 거야?

“김서진 씨도 ‘능력’이란 게 있을지도 몰라요. 이번 일주일간 한 번 테스트해보도록 하죠.”

“예? 제가 능력자라고요?”

“유 경위랑 같이 다녀보세요. 물론 공무 중이니….”

경감이 잠시 조소를 지었다.

“딴짓은 하지 마시고요. 두 분이 친분이 있으니 제가 붙여드리는 겁니다. 어차피 제가 함께 다닐 테니 딴짓할 시간도 없겠지만요.”

“힉, 아니, 네.”

“때마침 순찰 시간이네요.”

경감은 말을 마치더니 나가버렸다.

“최근에 담당 파트너 바뀌었어. 내 담당이 경감님이야. 무섭다니까? 일단 가자.”

정을 뒤따라 나왔다. 다른 경찰들의 눈초리가 따갑다. 경감만 믿고 일주일만 버티자. 파출소를 나오니 숨통이 트였다.

물론 곧이어 탄 경찰차의 뒷좌석은 기분이 별로였지만…. 생각해보니 살아있는 탐지기가 된 거잖아? 오, 기분 많이 별론데?

“출발하도록 하지.”

“네.”

“시 전체를 돌아야 해서 하루에 동 하나씩 돕니다. 센터에서는 우리 구만 돌죠?”

“아, 네.”

“그렇게라도 일손이 주니 어딘가 싶습니다.”

한동안 정적이었다. 정도 꽤 긴장한 것 같다.

“김서진 씨, 감이 잘 작동하면 좋겠군요.”

“예, 저도 그러면 좋겠네요.”

한참 동네를 빙빙 돌았을까 다시 눈이 따끔거리기 시작했다.

“아얏.”

다시 눈이 트이는 걸까 싶어 주위를 살폈다. 아파트단지다.

“아파트단지….”

“오른쪽 말인가요?”

“네. 저쪽 끝에 1101동이요.”

유독 빛나 보인다.

“아, 보인다. 901호.”

“봐봐요. 역시 능력자라니까.”

“유 경위. 빨리 가지.”

“네!”

경찰차다 보니 빠르게 단지 내를 지나갔다. 1101동 앞에 도착했다.

정이 뒷좌석의 문을 열어주는 동안 경감은 초인종을 누르고 있었다. 그렇지. 일단 저런 절차를 밟아야지. 무작정 쳐들어갈 수는 없는 노릇이고.

공동현관문이 쉬이 열린 걸 보니 오징어와는 다르게 꽤 우호적인 사람?일지도 모른다.

“우리도 가자. 근데 그게 보여?”

“응. 보여. 지금도 다른 게 보여.”

엘리베이터를 타고 가는 동안 경감에게 설명했다.

“어… 제단이 있고요. 바닥에 도안 같은 게 있고 물건이 어질러져 있는 걸 보면 마녀 같거든요? 등록된 사람인지는 모르겠네요.”

마녀, 라는 게 존재한다고는 한다. 연수에서 배웠다. 실제로 만나는 건 처음이다.

“또 뭔가 소환하려는 사람은 아니겠지…. 그러면 골치 아파지는데….”

“소, 소환이요?”

“가끔 그런 사람이 있어요. 거기서 마법 반응이 나타나지.”

“아하, 그리고 제가 그걸 볼 수 있다~”

‘띵~ 9층입니다.’

“도착했군.”

경감은 901호의 초인종을 눌렀다.

“경찰입니다.”

안에서 나온 건 20대 정도의 여자였다. 안에 들어가 보니 남녀 불구하고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이 있었다.

“오랜만에 모여서 연회를 하고 있었어요.”

“전부 마녀들인가요?”

“전부는 아녜요. 마녀도 있고, 그냥 친구들도 있고.”

“하…. 마녀가 주최하는 ‘연회’에는 ‘마녀’만 참석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자격 박탈당해요. 일단 이번 경우에는 ‘파티’로 간주하고 간단한 경고만 드리겠습니다.”

마녀는 거듭 죄송하다는 말만 했다. 마녀의 집에서 나와 다시 경찰차로 오는 동안 경감은 능력에 대해 긍정적인 분석을 했다.

“김서진 씨가 우리 쪽으로 와주면 좋겠는데 말입니다.”

“괜찮습니다. 저는 센터 소속으로 만족해요.”

“일부러 행정팀을 고집했다고 들었는데요?”

“네? 네.”

“그렇다는 건 수사 권한을 가지고 싶었다는 거죠.”

우와 괜히 경감이 아니구나. 무서운 촉.

“특수능력안전팀으로 오시면 연수만 듣고 바로 경위 다실 수 있는데…. 안 그래, 유 경위?”

“네. 그렇죠…?”

정아, 네가 그랬다는 거구나.

다시 순찰을 도는 동안 경감은 끝없이 설득하려 했다. 솔직히 좀 혹했다. 복수, 오라 달콤하지는 않고 씁쓸하기만 할지도 모를 복수여. 유정이 살아있는 지금, 복수가 의미가 있는지를 다시 생각할 시간이 필요한 것 같다.

“일단 일주일 동안 생각 좀 해보겠습니다.”

“긍정적으로 검토 바랍니다.”

즉답이 돌아왔다.

오늘 하루는 이렇게 순찰과 파출소에서 눈치 보며 앉아있기로 끝났다. 퇴근은 정과 함께 했다.

“오늘도 네 집에서 자도 돼?”

“마음대로 해. 오늘은 곱절로 피곤하다.”

기지개를 쭉 켰다.

“가기 전에 술이나 마실까?”

“나 술 마시면 담배 땡겨. 안돼.”

“아, 저런. 금연 중이지.”

돌아가는 길은 정이 더 잘 알았다. 버스 노선이라던가 잘 꿰차고 있었다.

집에 돌아오자마자 옷을 갈아입고 침대로 다이빙을 해버렸다. 센터에서 일할 때도 이런 적은 없었는데.

“진짜 피곤하긴 했나 보네.”

“응~”

정도 잠옷을 빌려 입곤 침대로 다가왔다. 큰 치수로 샀지만 정에게는 꼭 맞는 것이 정에게 맞춰 산 것 같다.

“읏차!”

끌어안겨졌다. 몸에 힘이 풀려서 그냥 안겨버렸다. 품이 퍽 따듯하니 노곤하다.

“졸려.”

“어디서 어리광이야?”

정이 볼을 꼬집어 당겼다.

“으응~”

“정말, 이러니까 남이 하자는 대로 휘둘리기만 한다니까?”

“그렇지만 오늘은 거절을 해봤어.”

“이번엔 나쁘지 않은 제안이라고 생각했는데?”

“경찰은 싫어.”

“고작 그런 이유야? 나름 괜찮아.”

“답답해서 싫어.”

“풋.”

‘하하하’하고 정이 웃었다. 볼에 키스하더니 쪽쪽 거리며 입으로 가까워졌다.

“음~ 간지러워~”

“어딜 피해. 이번엔 도망 못가.”

“읍.”

얇은 피부를 통해 따뜻한 감각이 전해져왔다. 벌어진 입술 사이로 탐내듯이 다가오는 숨소리가 울려 퍼졌다. 한 번, 두 번, 세 번의 접촉 끝에 잠시 숨통이 트였다.

“오늘따라 너, 더 뜨겁다.”

“나 원래 열정 맨 이야.”

“그런 뜻은 아니고.”

너는 꼭 살아서 내 곁에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눈물이 흐른다.

“왜 울어.”

차가운 손이 뺨을 흐르는 눈물을 닦아준다.

눈을 뜨니 지렁이 같은 하얀 천장이 맞이했다. 몸은 움직이지 않는다. 눈알만 이리저리 움직였다. 뭔지 모르겠는 기계들과 몸이 이어져 있다. 수액인지 모를 것과 약물이 팔을 통해 온몸을 휘젓는 것도 알겠다. 여긴 병원이다.

“선생님! 72번 생존자! 의식 찾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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