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단편]

[단편] 마녀는 그저 바라본다.

MERTVEC by 김진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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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좋아하는 마녀가 있었다.

마녀는 빗자루를 타고 하늘 높이 올라갔다. 저 멀리 낡은 성이 나타났다. 이제는 아무도 살지 않는 오랜 성, 내려오는 이야기가 있지만 진부한 내용이었던 터라 금방 잊어버렸다. 그 지붕에 앉아 쉴 새 없이 내리는 눈을 바라보았다.

눈이 많이 내리는 날에는 특별한 일이 벌어진다고 했던가, 마녀는 웅성거리는 소리를 들었다.

“어머?”

사람들이 마녀를 보고 있었다. 급히 일어나 돌아가려 했지만, 구두가 눈에 미끄러져 지붕을 타고 넘어지고 말았다.

커다란 비명과 함께 우당탕탕 소리를 내며 발코니로 굴러떨어졌다.

“이게 무슨 일이야?”

정신 차려보니 웅성거리는 사람들 사이에 둘러싸여 있었다. 특이하게 생긴 철제 빗자루에 몸을 지탱해 일어나니 다들 ‘마녀’라며 수군댔다.

“네, 맞아요. 마녀랍니다.”

웃으며 사람들에게 대답해줬다.

“마녀라니, 공작님께 데려갑시다!”

“지붕에서 무얼 하고 있었던 게지?”

“아니, 아니. 그냥 눈 구경하고 있었을 뿐예요!”

“황제가 보낸 걸까요?”

“그건 또 무슨 소리예요!”

“옆 마을에서 마녀가 아이를….”

“저는 안 그래요!”

해명하려 했지만 결국 끌려갈 뿐이었다. 특이한 제복을 입은 남자에게 빗자루마저 뺏기고 말았다.

“무슨 일이 있습니까?”

성안으로 끌어들여진 찰나 부드러운 남성의 목소리가 들렸다.

“어머나, 이것 좀 봐요! 그냥 눈 구경하고 있었는데 막 끌고 오지 뭐예요!”

“공작님. 마녀가 지붕 위에서 사찰을 하고 있었습니다. 황제가 보낸 자일지도 모릅니다.”

“방금 말했잖아요! 눈 구경하고 있었다고! 아하하, 안녕하세요.”

마녀는 정중하게 공작에게 인사를 했다.

“마녀라…. 일단 안으로 들이게.”

“하지만 공작님!”

“날이 춥네.”

잠시 뜸을 들였다.

“그리고 마법도 쓸 줄 모르는 우리가 마녀를 어떻게 당하겠나? 밖이든 안이든 연약한 건 우리야. 그러니 차라리 따듯한 쪽이 낫지.”

공작은 군인 같은 걸음걸이로 복도를 걸어갔다. 그 뒷모습을 보니 텅 빈 채 휘날리는 오른쪽 옷자락이 눈에 띄었다.

‘오른팔이 없어?’

사람들에게 끌려가다시피 성안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좀 전까지 구경하던 곳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였다. 정말 누군가 사는 듯 호화롭게 치장되어 있었고 여기저기 가스등이 들어와 있었다.

“어라? 지금이 몇 년도죠?”

“이거 보게? 말 돌리는 것 봐라?”

제복을 입은 남자가 마녀의 머리카락을 잡아당겼다.

“율력 999년이네. 너무 거칠게 대하지 마. 황제가 보낸 게 아니라면 좋은 전력이 될 수 있으니 말이야.”

“네? 999년이요? 지금이? 크루스무어 제국?”

“그렇다만? 정말 하나도 모르는 건가? 기억이라도 잃은 건가?”

“큼, 흠. 그러면 그쪽, 아니, 당신이, 아니, 공작님이 케이… 케… 누구더라….”

“케일렌 올라이브 크루스무어 공작이네.”

“어머나, 실례했습니다. 마녀 로완 스타콜러라고 합니다.”

로완은 다시 한번 정중하게 인사를 했다.

“저는 황제 이름도 까먹었어요. 고로 황제가 보낸 건 아니죠.”

“마녀 말을 어떻게 믿겠습니까?”

“황제가 보냈다면 제가 마녀인 걸 깠겠어요? 숨기고 잠입했겠지? 이 사람들을 그냥 확!”

“어이구!”

주위에 모여있던 사람들이 허겁지겁 물러났다. 케일렌이 웃으며 로완에게 손을 뻗었다.

“그래, 좋아. 그대라면 좋은 전력이 되겠어. 혹시 몰라 말해두자면 황제 이름은 루시우스 토머시안 크루스무어네.”

로완은 조심스레 케일렌의 손을 잡았다.

“괜찮다면 의수를 만들어드릴까요? 그쪽을 업으로 하고 있어서 자신 있답니다! 후후.”

“지금까지 만든 게 몇 개나 되는지 아나? 전부 없느니만 못했네. 그러니 그냥 이대로 있는 거지.”

“어머, 마녀의 실력을 얕보지 마세요.”

케일렌은 잠시 생각에 잠겨 로완의 손을 보았다. 한눈에 봐도 거친 일을 많이 한 듯 고와 보이진 않았다.

“그렇게 말한다면야 맡겨보겠네.”

주변에선 아무래도 공작이 마녀에게 홀린 것 같다며 웅성거림이 끊이지 않았다.

“그나저나 왜 여자처럼 입고 있는 거지?”

케일렌이 조용히 로완에게 물었다.

“어머나, 여자가 여자처럼 입지. 무슨 소리세요?”

“음. 그런가? 내 눈에는… 뭐, 그대가 그렇다면 그런 거겠지.”

“저기, 공작님. 제가 이 동네 사람이 아니어서 그런데요….”

“그렇군. 잘 곳이 필요하겠군. 작업할 공간도 있어야겠고 말이야.”

아까부터 불안한 듯 뒤편에 서 있던 남성이 흠칫하며 달려왔다.

“잠을 잘 수 있을 만한 널찍한 빈방이 있나?”

“있기야 합니다만….”

“그러면 그 방을 로완에게.”

"그게….”

남자는 안절부절 말을 더듬었다.

“공작님 옆방입니다. 아무래도 낯선 여성을, 하물며 마녀를 공작님 옆방에 들이는 건 좀….”

“나는 상관없네만?”

이 대화를 듣지 못한 로완은 빗자루를 가져간 제복의 남자와 옥신각신 중이었다.

“그, 그러나….”

“일단 그 방을 로완에게 주게. 마법사가 없는 우리에게는 중요한 손이야. 잘 대해주게.”

“알겠습니다.”

남자가 로완에게 다가가 자기소개를 했다.

“제 이름은 필립 프립스라고 합니다. 편하게 필립이라고 불러주십시오. 지내실 곳으로 안내해드리겠습니다.”

“어머, 고마워요. 잠시만요.”

로완은 우렁차게 소리쳤다.

“제 지팡이 돌려달라니까요? 그거 없으면 의수를 만들 수가 없어요!”

“폴, 돌려주게.”

케일렌이 거들었다.

“쳇, 옜다.”

폴이라 불린 남자는 힘겹게 들고 있던 빗자루를 던지다시피 넘겨줬다. 로완은 무겁지도 않은 듯 사뿐하게 받아 들곤 필립을 따라나섰다.

“저기, 필립. 공작님 말예요. 오른쪽 눈도 다치신 거죠?”

“어허. 의안까지 알아채셨습니까?”

“호호, 제가 눈썰미가 좋아서. 음. 눈은 만들어본 적 없는데, 한번 시도해볼까? 아니다. 그러다 실패하면 큰일 날라.”

중얼거림에 오한이라도 드는지 필립은 몸을 떨었다.

“너무 두려워 마세요. 저는 사람에게 도움이 되려고 엄~청 노력하는 마녀니까. 그래서 의수 만드는 법을 공부했다고요. 엣헴.”

“그러시는가 보군요. 이 방입니다.”

“헤헤, 고마워요. 필립.”

“그럼, 이만….”

필립은 도망치듯 계단 아래로 사라졌다.

“다들 날 무서워하네…. 아직 마녀들이 음지에 있을 시기라 그런가? 지금이 한 90년 전이지?”

텅 빈 방에 들어가 중얼거렸다. 커다랗던 빗자루는 어느새 한 손에 들어도 될 정도의 작은 지팡이로 변해 있었다.

‘999년. 눈이 오는 거로 봐선 1월이나 12월 둘 중 하나인데…. 이것도 물어보면 이상한 사람 취급받겠지?’

방에 있는 테이블을 질질 끌어 가운데로 옮기며 중얼거렸다.

‘성에 내려오는 이야기…. 황제의 동생이었던 제후 케일렌은 반란을 일으키려다 실패해 처형당하고 만다….’

분주히 움직이던 손을 멈췄다.

“잠시만, 나 터무니없는 일에 끼어들게 된 거 같은데?!!!”

방 안을 빙글빙글 돌며 기억을 더듬기 시작했다.

‘그게 연초의 일이지 아마? 이후 황제 루시우스는 세력을 넓히려는 전쟁에서 연달아 패하다 같은 해에 결국 제국이 무너지게 됐어. 그리고 내가 살던 노바라이즈가 건국….’

머리를 헝클이며 침대로 뛰어들었다.

“진짜 난처한 일에 끼어들었네. 퀘스트: 제후 케일렌을 도와 쿠데타를 성공시켜라!”

피곤했는지 그 상태로 잠이 들고 말았다.

거칠게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로완은 눈을 번쩍 떴다.

“아침부터 누구야? 아 참, 여기 옵시디언 캐슬이지.”

“이봐, 마녀! 일어났으면 빨리 나와라!”

“아이참, 조금만 기다려봐요! 옷매무새는 다듬어야 할 거 아냐!”

엉망이 된 머리를 적당히 정리하고 문밖으로 머리를 빼꼼 내밀었더니 어제 머리채를 잡았던 폴이라는 사람이 서 있었다.

“마녀, 식사다.”

“어머나~ 가져다주는 거예요? 고마워라~”

폴은 째진 눈으로 로완을 아니꼽게 보더니 음식이 담긴 쟁반을 거칠게 넘겨줬다.

“공작님께 해를 끼치기만 해봐라. 가만두지 않을 테다!”

소리치더니 뒤도 돌아보지 않고 터벅터벅 걸어갔다.

“역시 미움받고 있어….”

방 안으로 들어가려 문을 닫으려는 때 누군가 문을 붙잡았다.

“엄마, 깜짝아!”

“이런 놀라게 했나?”

“어머머머머, 공작님?”

“내가 옆방이어서 말이네. 그가 너무 거칠게 대하진 않았나?”

“쌀쌀맞게 대하는 건 익숙해서 상관없는데… 공작님이 옆방이라구요?”

“응? 그렇네만?”

“처음 보는 아녀자를 옆방에 재우신 거예요?”

“아녀자라니? 나는 그대를 그런 눈으로 보고 있지 않다만….”

“어머나, 그런가요?”

로완은 살짝 몸을 비틀어 삐딱하게 섰다.

“하지만 그 ‘옆 방’이라는 사실에 제가 더 미움 사는 거 같네요.”

“작업 공간을 확보할만한 넓은 방이 여기밖에 없어서 말이네. 원래는 황제가 올 때 대접하는 방이지만.”

“네? 제가 그럼 황제가 자는 침대에서 잤다, 그 말인가요?”

“그렇게 되는군. 별로 신경쓰지 말게. 그나저나 의수에 대해 논하고 싶은데, 언제 시간이 되나?”

“호호, 아침먹고 바로 의논하도록 하죠.”

“편히 식사하게. 나는 방에 있을 테니. 원하는 때에 찾아오게.”

“호호. 알겠어요.”

최대한 밝게 웃어 보였다.

‘공작한테만큼은 좋은 이미지를 보여야지.’

케일렌이 자신의 방으로 돌아가자 로완은 테이블에 쟁반을 대충 던져두고 입에 빵을 집어넣었다.

‘의수를 만들어 준다고는 했지만 여기서 플라스틱을 쉽게 구할 수 있을 리가 없지. 애초에 내가 간이 도구로 플라스틱을 가공할 수 있을 리가 없고.’

빵은 많이 푸석푸석했다.

‘이 방법을 쓸 날이 오게 될 줄은 몰랐지만 써볼까? 경도는 낮겠지만 심을 철제 파이프로 만든다면 쉽게 부서지지는 않을 거야.’

목이 막혀 물을 벌컥 마셨다.

‘내부는 가지고 있는 고무줄 몇 개랑 스프링, 그리고 끈이야 부족하면 달라고 하면 될 거 같고. 외장은 천을 경화해서 쓰면 되겠지?’

다시 보니 스프도 있었다. 다 식은 수프를 거의 마시다시피 먹었다.

‘음, 이 정도면 되겠어. 사이즈 측정만 하면 돼.’

빈 쟁반을 문 앞에 두고 야심 차게 걸어 옆방 앞에 섰다. 똑똑똑 문을 두드렸다.

“들어오게.”

“호호, 공작님~”

“자네였군.”

독서 중이었는지 책을 덮어 책상 위에 올려두었다.

‘한 팔로 생활하는데 익숙해 보여. 그러니 필요 없다고 한 건가?’

“의수 제작에 필요한 재료는 말만 하게. 최대로 지원하겠네.”

“음~ 우선 짧은 쇠 파이프가 두 개 정도 필요해요. 굵기는 다르게. 형틀 제작할 때 필요한 나무랑, 두꺼운 천 몇장이랑… 끈 조금?”

“그걸로 되겠나?”

“마녀를 뭐로 보세요? 저에겐 마법이 있답니다. 후후후.”

“그렇군.”

“그런고로 치수를 재야겠어요. 팔 좀 보여주시겠어요?”

“…….”

“응? 왜 그러세요?”

“옷을 벗어야 하나?”

“그래 주시면야 편하겠지만, 누가 들어오면 오해 살지도 모르니 조율하기 전까지는 옷 위로 할게요. 셔츠 정도만 얇게만 입어주세요.”

로완은 윙크를 날렸다.

“괜찮아요. 그런 식으로 작업해본 적이 몇 번 있어서 실수는 안 해요~”

언제 꺼냈는지 모를 도면에 작은 단위로 꼼꼼하게 메모했다. 줄자는 쉴 새 없이 펴지기도 말리기도 둥글게 감싸지기도 했다.

“후, 이 정도면 되겠네요.”

케일렌은 로완의 꼼꼼함에 감탄했다.

“그대는 상상 이상으로 대단하군. 여성의 섬세함까지 겸비하다니.”

“아이참, 저 여자라니까요.”

답답하다는 듯 케일렌을 보았다. 이 꽉 막힌 옛날 사람아, 라고 말할 뻔했지만 참았다.

“그런가? 내 눈에는 그리 보이지 않는다만…. 다들 자네보고 여자라 하니 원….”

“여자보고 여자라 하지 뭐라고 해요? 그럼, 공작님 눈에는 내가 남자로라도 보여요?”

“아니, 그건 아니고… 설명이 어렵군….”

눈썰미가 좋은 건지 눈치가 빠른 건지 케일렌의 파악은 로완을 불편하게 했다.

“이런 건 좀 더 친해진 다음에 해야 할 이야기라구요!”

로완은 케일렌의 머리에 딱밤을 날리곤 바로 아차 했다.

“그렇군. 내가 실례했네.”

케일렌은 별 내색 없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로완도 작은 키가 아니었지만, 그보다 십 센티미터는 더 커 보였다. 케일렌이 팔을 잃은 건 전선에서라는 게 떠올랐다. 퇴역군인인 셈이다. 그런 사람에게 장난을 쳤으니 각오는 단단히 해야 할 듯하다.

“그대의 머리카락은 참 붉군.”

케일렌이 로완의 머리칼을 만지작거렸다.

“꽤 손이 많이 가요.”

화가 나지는 않은 것 같아 다행이었다.

“나는 붉은 머리의… 아니, 아니네. 이것도 나중에 이야기하도록 하지. 의수는 잘 부탁하네.”

역시 언짢은 건지 쫓겨나듯 방에서 나왔다. 방 앞엔 필립과 폴, 그리고 몇 사람이 있었다.

“이봐, 마녀! 너 설마 공작님을!”

“에휴, 의수용 사이즈를 재러 갔을 뿐예요. 공작님께 여쭤봐요. 아, 그리고 이거. 필요한 재료인데 필립 씨 드리면 되죠? 호호. 그럼 저는 작업 준비나 하러 갈게요~”

재빠르게 제 방으로 들어가 문을 잠갔다. 수년째 숨기던 사실을 만난 지 하루밖에 안 된 케일렌에게 들킨 것과 케일렌이 무언가 숨기고 있다는 사실이 뒤엉켜 머리를 헤집었다.

“정말, 모든 게 엉망이야. 난 그냥 눈 구경하고 있었는데….”

일부러 정신을 환기하기 위해 테이블의 물건들을 정리하고 굴러다니던 천으로 박박 닦았다.

“좋아. 작업 책상 완성!”

책상 위를 지팡이로 톡톡 치자 작업할 시에 필요한 간단한 도구들이 나타났다. 그래도 기분은 시원찮았다.

이번엔 힘찬 소리를 내며 지팡이를 더 크게 휘둘렀다.

“역시 옷을 바꿔 입어야 기분 전환이 되지!”

빈 옷장을 화려한 옷들로 채워나갔다. 평소 일부러 화려한 원피스를 즐겨 입었다. 작업하는 데는 불편하겠지만 아직 재료도 다 모이지 않았으니 가장 화사한 옷을 골랐다. 머리카락 색처럼 붉은 쉬폰치마를 입었다.

“좋아, 오늘은 성을 탐험한다!”

방문을 나서는데 때마침 필립이 노크를 하려던 자세로 서 있었다.

“엥?”

“음?”

필립은 로완의 의상을 보고 잠시 아득한 얼굴을 하더니 시선을 돌렸다.

“로완 님. 공작님께서 부르십니다.”

“네?”

그대로 필립의 뒤를 졸졸 쫓아갔다. 가는 길에 성 내부를 조금 보았지만, 극히 일부였을 뿐, 로완이 생각한 모험은 아니었다.

도착한 서재에는 케일렌과 폴, 처음 보는 남자가 있었다. 남자도 꽤 직위가 있는 듯 잘 건장하고 잘 차려입은 모양새였다.

“처음 뵙겠습니다. 줄런 휘슨 백작입니다. 공작님과는 군 시절부터 아는 사이였지요.”

쥴런은 마녀인 로완임에도 친절한 모습이었다.

“제대로 소개하지. 폴 매티오 자작이다.”

폴은 여전히 로완이 맘에 들지 않는 기색이었다.

“그리고 알겠지만, 필립 프립스, 내 보좌관이네. 주로 이렇게 모이네만.”

케일렌이 마저 소개했다.

“로완, 자네까지 해서….”

“황제에 반하는 모임이라, 이거군요?”

“너, 그걸 어떻게 알았지?”

폴이 놀란 듯 껑충 뛰며 앞으로 걸어 나왔다.

“어머나, 어젯밤 분위기 보면 알죠.”

“눈치가 좋군요.”

쥴런이 작게 케일렌에게 말했다. 그렇지 하고 케일렌이 대답했다.

“조만간 내 생일이야.”

“어머, 축하드려요.”

“흠, 그래서 황제가 올 예정이고 그때가 기회라고 생각하네.”

“황제의 군에 아는 자가 많아. 그들을 우리 편으로 만들어 반역할 생각이네.”

“그런데 제가 왜 필요한가요?”

“황제는 마법사를 거느리고 있어. 한 명뿐인 거로 알고 있다만.”

케일렌이 턱을 쓸며 말했다. 골칫덩이라는 듯 표정이 일그러져 있었다.

“아하, 그 사람과 대적할 상대로 저를…?”

“그렇네.”

“저는 전투에 소질이 없는데 괜찮으실까요?”

“황제를 제거할 때까지 붙잡아 두기라도 하면 되네.”

“그 정도라면야. 이렇게 꼬여버린 거 한번 해보죠. 후후.”

“말이 잘 통하니 좋군.”

“그러나 정말 마녀를 믿어도 되겠습니까?”

폴은 여전히 미심쩍다는 듯 케일렌과 로완을 번갈아 보았다.

“마녀에게 유감이 있다면 제가 대신 사과할게요.”

“일단 믿어보도록 하지. 그 말고는 마법사를 당해낼 건더기도 없으니 말이야.”

케일렌이 로완의 편을 들어주자 로완은 속으로 안도하며 그를 바라보았다. 아까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였다. 이래서 제후구나 싶었다.

“마법사에 대한 정보는 없나요?”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아쉽게도 자세한 건 알지 못하네. 황제가 워낙 꼭꼭 숨기고 있어서 말이야. 그 점은 미안하게 됐네. 황성서 지내는 아는 사람에게 물어봤지만, 그도 마법사를 만나보기만 했을 뿐 능력은 보지 못했다고 했네.”

“그래요? 어쩔 수 없죠. 후후. 그 외에 제가 알아야 할 건 없나요?”

“앞으로 보름 정도 남았네. 그 안에 의수만 만들어서 주면 될 거 같네.”

“그쯤이야 할 수 있죠!”

케일렌이 눈을 살짝 감았다. 잠시 생각에 잠긴 듯했다.

“로완.”

“네?”

“최대한 빨리 만들어 줄 수 있나?”

“네. 재료만 다 모인다면 밤새워서라도 하루 만에 만들 수 있어요. 조율하고 경화되는데 하루 정도 걸리겠지만…. 완전히 착용하기까지 길어야 이틀 정도?”

“필립, 재료 준비는 어느 정도 되었지?”

“다른 재료는 다 구했고, 크기에 맞는 쇠 파이프를 구하지 못해 마을 대장장이에게 주문했습니다. 우선순위로 해달라 했으니 내일 아침에는 준비될 것 같습니다.”

“그러면 내일부터 바로 제작해주게.”

“네! 당연하죠!”

이런 이야기가 무색하게 넷은 중요한 이야기가 있다며 로완을 내보냈다.

“흥, 끼워주는 척하더니 결국 홀대구만?”

기지개를 켜며 계단 아래로 내려갔다. 성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로완을 보자 매우 분주히 움직이며 자리를 피했다.

“괜히 빨간 옷 입었나? 역시 너무 눈에 띄나?”

로완은 제자리에서 한 바퀴 돌며 유리창에 비친 자기 모습을 보았다.

“아냐, 이대로도 좋은걸?”

이왕 이렇게 된 거 성 바깥 구경도 할까 하다가 성안 사람들도 이런데 밖의 사람들은 더할 거 같아 그만두었다.

“생각보다 넓지는 않네. 금세 한 바퀴 돌았어. 멀리서 볼 땐 꽤 커 보였는데 말이야.”

그나저나… 로완은 길을 잃은 듯했다.

“어디로 가야 내 방이지? 다른 재료는 모였으니 슬슬 작업을 시작해야 여유로울 텐데?”

공작의 옆방이니 물어보기야 쉽겠지만 사람들이 피해 물어보지도 못하는 처지였다.

“이럴 수가. 너무 들떠서 여기저기 돌아다니고 말았어!”

로완은 머리를 헝클이며 텅 빈 복도를 바라보았다.

“여기서 뭘 하는 건가?”

“헉, 어머나. 공작님, 또 만났네요.”

“마치 길잃은 강아지 같군.”

“어머머, 그럴 리가요.”

“아닌가?”

역시 눈치가 백단이 넘는다고 생각했다.

“사실 맞습니다…. 성을 구경하다 그만… 제 실책이에요….”

“하하, 어쩔 수 없지. 방으로 돌아갈 생각이라면 내가 안내하겠네. 대신 가는 길은 잘 기억해두게.”

“어머, 감사합니다.”

가끔 보이는 복수심에 눈이 먼 듯한 차가운 눈길을 제외하면 정말 다정한 사람이라 생각했다.

계단을 올라 얼마 걷지 않았는데 로완과 케일렌의 방이 있는 복도가 나타났다.

‘뭐야, 코앞에서 헤매고 있던 거야?’

기죽어있는 로완을 보더니 케일렌은 미소 지으며 상냥한 목소리로 말했다.

“혹여 힘든 일 있으면 말하게. 바로 옆방이니 말이야. 나는 자네와 동료보다 친구가 되고 싶어.”

“가, 감사합니다.”

방에 돌아온 로완은 양 볼을 꼬집었다.

“곧 죽을 사람한테 반하면 안 돼! 안돼!”

이틀 뒤 아침이 되자 로완은 의수를 완성했다.

“이제 공작님 팔에 이어 붙이기만 하면 돼.”

책상 위에 엎어졌다.

“아~ 밤새웠더니 피곤하다. 이런 형태로는 처음 만들어봐서 제대로 되려나 모르겠네. 실패하면 폴 뭐시기 자작이 죽이려 들 텐데.”

지난밤에는 케일렌이 저녁 식사에 초대했는데, 폴이 매우 무서운 눈으로 바라봐서 제대로 먹지도 못한 터였다.

“폴은 무슨 일이 있었기에 마녀를 이렇게나 싫어하는 거야? 뭐 대충 안 좋은 일이었겠지만.”

바로 옆방에 가 노크를 했다.

“공작니임~ 계시나요오~?”

“로완인가? 들어오게.”

방 안에는 예의 그 모임 일원들이 모여있었다.

“짠~! 의수가 완성되었답니다~!”

상자 안에 든 의수를 보여주며 윙크했다. 케일렌만 웃을 뿐 나머지는 그다지 좋은 얼굴은 아니었다. 폴은 인상이 구겨졌다.

“이제부터 조율해야 하는데…. 저는 뒤돌아 있을 테니 상체 좀 드러내 주시겠어요?”

“이런 파렴치한!”

폴이 핏대를 세우며 소리쳤다.

“그렇지 않으면 어떻게 의수를 달죠?”

로완은 빙그르르 돌며 대꾸했다.

“폴, 조용히 하게.”

잠시 부스럭하는 소리가 났다.

“다 됐네.”

다시 로완이 뒤돌자 상처로 가득 찬 케일렌의 모습이 보였다. 오른편에 크고 작은 흉터들이 가득했다.

‘흉터 보고 전쟁의 훈장 운운하는 자들은 한번 겪어봐야 한다니까?’

아무렇지 않은 척 의수를 들고 케일렌에게 다가갔다.

“팔 좀 들어주시겠어요? 고리를 연결해야 해서요.”

소켓을 팔에 끼우곤 끈을 상체에 연결해 고정했다.

“앞에 있는 고리로 원하실 때 의수를 착용했다 빼실 수 있을 거예요. 이제 조율할게요.”

지팡이를 의수에 가져다 대자 희미하게 빛이 났다.

“조금 따끔할 거예요.”

의수의 손가락 부분이 제멋대로 달달 떨리기 시작했다. 케일렌의 눈이 움찔했다.

‘이 정도의 아픔은 아무렇지 않다는 건가? 지금까지 만나본 대부분의 성인 남성은 앓는 소리를 냈는데…. 대단한 사람이야.’

겉면이 울렁거리더니 단숨에 수축하듯 손 모양을 갖춰갔다.

“자, 다 됐어요!”

“끝… 난 건가?”

“네! 물론요! 움직여보세요!”

케일렌이 말도 안 된다는 얼굴로 오른팔을 들어 올렸다. 겉으로 볼 때는 지금까지 봐왔던 기능 없는 모양만 갖춘 의수와 같아 보였다.

“소, 손이!”

폴이 제일 성화였다.

“움직이는군.”

“완전히 몸과 동화되는 데에는 하루 정도 걸리니까 적어도 내일 정오까지는 오른팔로 무리하지 말아 주세요. 팔다리를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고 신나서 무리하다가 망가트리고 돌아온 손님을 한두 번 본 게 아니라니까요? 호호”

“이래서 마녀인가.”

“당연하죠! 이걸 공부하느라 얼마나 힘들었는데!”

더 떠들다간 인체의 신비니, 뭐니 하는 말까지 나올 듯해 입을 다물었다. 마법의 신비로 남겨두는 편이 이곳에서는 이로울 것 같았다.

“아무튼! 이걸로 저를 좀 믿어주셨으면 하네요!”

폴을 살짝 째려보았다.

“큼!”

콧방귀를 뀌며 고개를 돌리는 모습이 웃기는지 케일렌은 웃었다.

“고맙네. 덕분에 한 발짝 더 다가갈 수 있겠어.”

로완은 갑자기 케일렌이 안쓰러워졌다.

‘제가 죽을 길을 가는지도 모르고….’

과장되게 뿌듯해하는 척하며 케일렌을 힐끗 보았다. 검은 머리칼에 금빛 눈. 안경으로 가리고 있지만 약간 초점이 맞지 않는 의안. 대체 전쟁에서 무슨 일이 있었을까…. 어쩌다 이런 변방의 작은 마을로 쫓겨나게 되었을까….

그런 그가 진심으로 기뻐하고 있었다.

“휴, 저는 밤을 새워서 피곤하니 이만 쉬러 가보겠습니다~ 호호.”

“다시 한번 고맙네.”

“뭘요!”

고개 숙여 인사하곤 미련 없다는 듯 뒤돌아 나왔다. 방안에선 호들갑스러운 폴의 목소리와 그를 진정시키려는 쥴런과 필립의 소리가 들려왔다.

“다행이네. 그나저나 정말 피곤하다. 잠이나 자야겠어.”

옵시디언 캐슬에 지내게 된 지 열흘 정도 되자 로완은 성 내부에 대해 어느 정도 알게 되었다. 의수를 만들어준 덕에 평판도 조금 나아졌다.

‘여전히 피하기는 하지만 인사는 받아주니 이 정도면 괜찮지 않을까?’

쥴런에게도 인정받았는지 한 번 초대받기도 했다. 모든 게 평화로워 보였다.

‘굳이 쿠데타를 벌이지 않아도 평화롭게 살 수 있을 텐데…. 황제가 다시 전쟁을 벌인다 해도 지금의 공작님 상태로는 참전하지 못할 테고.’

황제가 얼마나 싫었으면 형을 죽이고 그 자리에 올라갈 생각인 걸까, 아니면 역시 흔하디흔한 왕위 찬탈 목적이 더 강한 걸까 중얼거리며 이불에 머리를 파묻었다.

해가 진 지는 오래라 방에는 작은 촛불만 일렁였다. 잘 생각에 초를 껐다. 끄자마자 웬걸 누군가 문을 두드렸다.

“어머, 누구세요?”

문밖의 사람은 대답이 없었다. 약간 오한이 들었다. 이 성에 유령이 있다는 이야기가 있던가? 방금 꺼진 초에 다시 불을 붙이고 조심스레 문을 열었더니 생각 외의 사람이 있었다. 초췌한 얼굴의 케일렌이었다.

“어머, 무슨 일이세요?”

“잠깐 시간 되나? 자려 했다면 미안하게 됐군.

“아뇨. 괜찮아요.”

“잠옷 차림인 거 같은데….”

“아이참, 저녁에 방에 혼자 있는데 당연히 잠옷 차림이죠. 잠시만요. 갈아입고 올게요. 안색 안 좋으신데 방에 계세요. 제가 찾아갈게요.”

“그래? 그래 주면 고맙겠군….”

케일렌이 자신의 방으로 돌아가자 로완은 급히 옷을 갈아입었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기에 저런 모습으로 자기에게 찾아왔을까. 측근인 필립은 어디에다 두고?

“수수한게 좋겠지?”

단출한 무늬의 회색 원피스를 입고 케일렌의 방문을 두드렸다. 이번에도 대답은 없었다. 조심스레 문을 열고 들어가니 눈을 감은 채 소파에 몸을 파묻은 케일렌이 있었다. 얼굴이나 겨우 보일 정도의 옅은 빛만 있었다. 로완은 가스등을 만지작거리며 방을 밝혔다.

“주무실 것도 아니면서 왜 이렇게 어둡게 하고 계세요?”

“안 좋은 기억이 떠올랐네. 그런데 이야기할 사람이 자네밖에 떠오르지 않았어.”

“그래요?”

이걸 영광이라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속으로 중얼거렸다.

“이야기… 해도 되겠나?”

“편하게 얘기하세요.”

로완은 케일렌의 옆에 앉았다.

“어릴 적에 황태자였던 형의 부재를 대비해 나도 함께 교육받았네. 형은 언제나 날 싫어했지. 기억 속의 형은 항시 날 괴롭히기 바빴어.”

한숨을 쉬었다.

“한번은 사냥을 나갔는데, 나중에 추궁한 마구간 지기가 말하길, 내가 탄 말에게 이상한 약을 먹여 제멋대로 날뛰게 했더군. 그날은 말에서 떨어져 크게 다칠 뻔했어.”

“와! 진짜 나쁜 사람이네요!”

“그래도 황가의 하나뿐인 친형제였으니 참았지. 형은 큰일 없이 즉위했고, 나는 군으로 밀려나게 되었네. 알다시피 황제는 영토확장계획을 발표했어.”

“그, 그랬죠….”

역사 수업 때 배운 내용을 되짚었다. 크루스무어 제국의 루시우스 황제는 무리한 영토확장 계획을 밀고 나갔고 그로 인해 국가가 무너지게 되었다.

“내가 군에 들어가자마자 형은 바로 전쟁을 시작하더군. 겉으로는 나를 신뢰한다는 둥 거추장스러운 말을 했지만, 실상은 그저 내가 다치길 기대했다는 걸 알아.”

로완은 조금씩 화가 치밀었다.

‘뭐 저런 형이 다 있담?’

“페란소 전에서 패하고 돌아왔을 때 형의 눈을 보았어. 퉁퉁 불어있었지. 나는 그래도 형제이니 팔 잃은 동생이 안타까워 울어주었는가 하며 내심 기뻐했네.”

“당연히 그렇죠!”

“알고 보니 웃느라 울었다고 하더군.”

“네?”

“형의 보좌관이 우리의 어릴 적 가정교사야. 나중에 나에게 사과의 편지를 보내왔어. 그제야 알았지. 형은 절대 그대로 둬서는 안 된다는 걸.”

“그래서 반역을 꾀하신 거군요.”

“미안하군. 이런 이야기를 해서….”

케일렌은 제대로 자지도 못한 듯 눈가가 거뭇했다.

“아녜요. 그보다 제대로 주무시지 못한 것 같은데 괜찮으세요?”

“아, 조금 악몽을 꿨을 뿐이야.”

“이럴 땐 허브가 최곤데….”

로완은 어쩌다 이 반란이 실패하게 되었는지를 기억해내려 했지만 떠오르는 게 없었다. 어떻게든 이 일 이 실패하고 당신이 죽는다는 걸 알려야 하는데….

“그래도 정말 하시겠어요? 실패하면 어떻게 되는지 아시잖아요.”

“해야지 어쩌겠나. 이미 포섭을 다 끝내놨네.”

“황제가 많이 싫어지긴 했지만 저는 누구도 죽지 않았으면 해요.”

“알고 있나? 황제는 다시 전쟁을 시작할 생각이야. 내가 형을 죽이지 않는다면, 더 많은 사람이 죽을걸세.”

“그렇겠죠. 하지만….”

미래를 말해도 좋을까.

“내 마음은 이미 굳어있네.”

“그렇다면 어쩔 수 없죠. 저는 끝까지 공작님 편에 있을게요.”

케일렌의 손을 잡았다. 의수의 차가움이 느껴졌다. 그 위로 케일렌의 따듯한 왼손이 포개져 왔다.

“고맙네.”

제멋대로 일렁이기 시작한 가스 불이 얼굴에 깊은 굴곡을 만들어냈다.

“제가 실력이 좋았더라면 눈도 새로 해드렸을 텐데….”

“팔만으로도 괜찮네.”

“기분도 꿀꿀한데 산책이라도 하실래요? 눈 구경하면 기분이 좋아질 거예요!”

“하지만 늦은 시간에….”

“그러네. 저랑 밤 낮게 다니다간 오해 사기 쉽겠네요. 실례했어요.”

케일렌은 무언가 말을 하려다 말았다.

“응? 왜요?”

“그게… 자네 분위기가 조금 바뀐 거 같군.”

“그래요? 옷을 얌전한 걸 입긴 했죠?”

“그거 말고… 말투라던가….”

아차 싶었다. 평소의 과장되게 행동하던 모습을 케일렌의 앞에서 지우고 있었던 사실을 깨달았다.

“아, 그… 그게 말이죠.”

“이 편이 자연스러워서 보기 좋네.”

“그런가요?”

“자네는 왜 그렇게 자신을 숨기려 하지?”

정곡을 찌르는 질문에 로완은 정신이 멍해졌다.

“글쎄요. 이제 기억도 안 나네요.”

우리의 공작님도 자기 이야기를 해줬는데 나도 해야 하나 하는 생각에 로완은 까마득한 과거를 떠올렸다.

“저는 여자예요. 아시겠죠?”

“그래.”

“어릴 땐 남자였구요.”

“응?”

“정확하게는 부모님이 절 남자로 키우셨어요. 남자인 줄 아신 거죠.”

케일렌이 흠하는 소리를 냈다.

“자라면서 모든 게 달라졌어요. 남자였던 몸에 여성의 흔적이 곳곳에서 나타나기 시작한 거예요. 그러니까….”

“그런 사람이 있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 있네. 폴의 영지에도 한 명 있는 거로 알고 있고.”

그렇지, 어딜 가나 이런 사람은 존재해왔어. 로완은 생각했다.

“저는 여자가 되기로 했죠. 그런데 다들 자꾸 저를 남자로 보는 거 있죠?”

“그래서 내가 자네를 이상하게 봤을 때 화를 낸 거였군. 사과하겠네.”

“후후, 괜찮아요.”

조금씩 털어놓으니 더 이야기가 하고 싶어졌다.

“일부러 예쁘게 꾸미고 과하게 행동했어요. 그제야 저보고 여자라고 부르더군요.”

“사람들이야 정해진 모습과 벗어나 보이면 이상하게 바라보지. 내가 불구가 되었다고 수군덕대던 사람들도 마찬가지였어.”

케일렌이 다시금 로완의 머리카락을 만졌다.

“이 머리카락도 그런 것의 일환인가?”

“그런 셈이죠. 최대한 새빨갛고 곱슬거리고 화려하게 하려고 돈깨나 썼어요.”

“원래는 무슨 색이지?”

“음? 원래도 붉은 머리이긴 했어요. 이보다 갈색에 가까웠지만.”

“그래도 붉은 머리라….”

“지난번에 붉은 머리가 어떻다고 하셨죠?”

“안 좋은 말을 들은 적이 있네.”

케일렌의 안색이 파리해졌다. 로완은 그가 안쓰러운 듯 뺨에 손을 가져다 댔다.

“그래도 힘내요! 할 일이 많잖아요?”

“그렇지. 이만 늦었으니 자러 가보게. 내가 시간을 많이 뺏은 것 같군.

로완의 손을 잡아 내리며 케일렌이 말했다.

“괜찮아요. 아직 팔팔한걸요?”

벌떡 일어나 빙그르르 한 바퀴 돌며 잠이 오지 않는 듯 행동했다. 케일렌은 그를 보며 웃었다.

“건강해 보이니 좋군.”

로완이 여전히 앉아있는 케이렌의 눈높이에 맞춰 허리를 숙였다.

“둘만 있을 때는 말 놓을까요? 나이 차이도 그다지 나지 않아 보이는데.”

“응? 자네 나이가 몇인가?”

“스물아홉이요. 공작님은?”

“우연이군. 나도 스물아홉이네.”

“친구네요!”

기분이 좋은 듯 방방 뛰었다.

“하하, 그렇군.”

“저 먼저 말을 놓아도 될까…요?”

“마음대로 해.”

“좋아!”

기쁜 듯 다시 소파에 몸을 던지듯 앉았다.

“자네… 아니, 너처럼 자유로워 보이는 사람은 처음이야.”

“내 시대… 내가 살던 곳의 사람들은 거의 이래.”

“마법사들이 사는 곳인가?”

“음, 아니. 마법을 쓰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지. 그곳에서도 나 같은 사람은 소수야.”

“마법은 어쩌다 배우게 된 거야? 부모님도 마법사신가?”

로완은 씁쓸한 웃음을 지으며 바로 앉았다.

“부모님은 마법을 쓰지 못하는 사람들이었어. 그런데 주위에 자꾸 이상한 일이 꼬여 점을 보러 갔다지 뭐야?”

“점을?”

“응. 그랬더니 어린 날 보곤 내가 문제래. 점집의 마녀가 봐준 바로는 내 잠재력이 평균치보다 높다는 거야.”

그 뒤에 마법 학교에 입학하고 마녀가 되었다고 말했다.

“그렇구나. 너도 고생을 많이 했구나.”

“에이, 우리 공작님보다는 덜하지.”

로완은 케일렌의 머리를 톡톡 쳤다.

“원래대로라면 대학은 안 가도 됐는데, 일개 마녀로 살고 싶지 않아서 일부러 대학에 들어갔어. 거기에서 인공 신체를 만드는 법을 공부했지. 주로 만드는 건 의수랑 의족이지만.”

“대학이라고? 그러면 혹시 수도에서….”

말을 너무 길게 해 실수했다고 생각했다.

“아니, 아니. 우리 동네, 그러니까 마법사들의 대학이 있어! 그렇게 부르는 학교가 있어!”

“그래?”

‘휴, 큰일 날 뻔했다. 이제서야 황제가 보낸 스파이라고 오해받으면 큰일 나지.’

“그래도 귀족 뺨치는 엘리트 교육을 받았군.”

케일렌이 다시 흠하고 생각에 잠겼다.

“처음 성에 왔을 때 받은 천대는 내가 대신 사과할게.”

“괜찮아. 익숙한걸?”

“넌 정말 상냥하구나. 너와 대화하면 마음이 편해져.”

“그렇다면 다행이야. 마음을 놓을 수 있는 상대가 있다는 건 좋은 거니까.”

케일렌은 말을 하려다 멈췄다. 잠시 생각하는 듯하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너도 그런 사람이 있나?”

“곧 생길 거 같아.”

“그래? 잘됐네.”

로완은 그게 당신이 될 거 같다는 말은 차마 하지 못했다.

“황제는 네 생일에 오는 거지? 그날 실행하는 거고.”

“그래. 드디어 복수를 할 수 있게 되었어.”

‘이 바보, 자신의 생일에 죽게 될지도 모르고….’

“네 덕에 더 수월해진 것 같아.”

“다행이네.”

로완은 사실을 전해야 할지 고민됐다.

“어떻게든 네가 죽지 않도록 할 테니까!”

눈물이 고일 듯해 일어나 문으로 걸어갔다.

“피곤해졌어. 이만 자러 갈게.”

“잘자.”

케일렌의 얼굴은 아까 찾아왔을 때보다 좋아져 있었다.

시간은 빨리 감기 하듯 어느새 케일렌의 생세일이 되었다. 로완은 황제가 코앞에 왔다는 소리에 애가 탔다. 오늘 밤, 케일렌이 죽는다. 어떻게든 성공으로 이끌어야 했다. 하지만 여전히 계획이 실패하는 이유가 떠오르지 않았다.

“자네가 마녀인 건 모두에게 함구하도록 했네. 그러니 자네도 최대한 숨기도록 하게. 옷은 그래도 수수하게 입었군.”

“호호, 평소처럼 입으면 너무 눈에 띄니까요.”

최대한 내색하지 않으려 했다. 방안을 마련해야 하는데 시간은 눈치 없이 흘러가고 있었다. 황제가 성문을 통과해 들어왔다. 눈이 많이 내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이 모여 환영하고 있었다. 로완은 속으로 혀를 찼다.

‘저딴 전쟁광이 뭐가 좋다고.’

황제는 케일렌과 같은 검은 머리지만 차려입은 듯 매끈하게 넘겼고, 눈은 푸른색이었다. 그리고 시종일관 재수 없어 보이는 웃음을 짓고 있었다.

‘웃는 얼굴이 저렇게 다를 수가 있나.’

그래도 로완은 웃으며 황제를 맞이하는 척했다. 황제가 성안으로 들어가자 함께 따라 들어갔다. 닫히는 성문 너머로 마을 사람들이 돌아가는 모습이 보였다.

‘그래요. 어서 돌아가요. 오늘은 좋지 못한 날이니까.’

황제와 케일렌, 그리고 여러 귀족이 응접실로 들어갔다. 황제 뒤를 따라가던 긴 적발의 남성과 눈이 마주쳤다. 그는 로완을 빤히 바라보았다. 어색한 눈웃음을 지으며 묵례했으나 차가운 눈초리로 한번 훑더니 응접실로 사라졌다.

‘마법사는 저 사람이다.’

로완은 재빨리 자리를 피해 응접실 옆의 작은 방으로 들어갔다. 자신이 쓰던 방은 다시 황제를 위해 치장되었기 때문에 한동안 이곳에서 지냈다.

“장난 아니게 강해 보이던데, 망했다. 이거.”

입술을 뜯었다. 방 안을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어찌 상대해야 할지 고민했다.

“벨라, 진정해. 할 수 있을 거야. 케일렌을 죽게 만들 순 없잖아?”

마법사의 주 분야만 알면 어떻게든 대응할 수 있겠지만 그건 마법사가 마법을 썼을 때나 알게 될 일이었다.

어쩌다 이렇게 됐는지 생각에 잠겼다. 그저 눈 구경하러 하늘 높이 올랐고 한 치 앞이 안 보일 정도로 눈이 내렸을 뿐이었다. 성 위에서 발을 삐끗해 굴러떨어졌고, 케일렌에 의해 이 반란에 가담하게 되었다.

“눈… 눈이라….”

로완은 어릴 적부터 눈이 오는 걸 좋아했다. 온통 흰 세상은 마법보다 신비로웠다. 특히 이렇게 쏟아지는 눈이 좋았다.

“오늘도 그렇게 눈이 내리네.”

황제가 들어온 뒤로 눈보라가 휘몰기 시작했다.

“이런 날씨면 도망가도 쫓아오기는 힘들겠지?”

며칠 전 산속에 숨겨진 요새에 대해 알게 되었다. 눈이 와 길을 찾기 어려울 때를 대비해 팔찌 하나를 남겨뒀다. 마법으로 그 팔찌를 추적하면 바로 향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저런 고민을 하는 사이 해가 뉘엿뉘엿 져가기 시작했다. 파티가 시작되려는 지 밖이 분주해졌다. 로완은 옷을 갈아입고 연회장으로 향했다.

‘정말 마지막이네. 황제의 끝이든, 케일렌의 끝이든.’

조심스레 들어가 보니 화려하기 그지없었다. 어제까지만 해도 이렇지 않았는데, 헤벌쭉하며 주위를 보고 있자 폴이 다가와 툭 건들었다.

“이봐, 너무 튀게 있지 말라고.”

“아휴, 알았어요.”

생일 주인공은 어디 있나 하고 봤더니 단상 아래에서 귀족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단상 위에는 처음 보는 (아마 황제가 직접 가져온 듯한) 화려한 의자에 황제가 앉아 하품하고 있었다.

‘그래, 이런 파티는 댁에게 맞지 않는다 이거지?’

황제의 옆에는 두 남자가 서 있었다. 한 명은 아까의 붉은 머리의 마법사였고 나머지 한 명은 희끗희끗한 머리의 중년이었다.

‘저 사람이 가정교사였다던 보좌관인가?’

둘러보는 척 황제가 있는 방향을 힐끗 보았다. 마법사도 연회장을 보는 척 로완을 보고 있었는지 둘은 눈이 마주쳤다. 아마 서로 속마음으로 대화할 수 있었다면 제대로 기 싸움을 했을지도 모른다.

음악 소리가 커지고 귀족들은 춤을 추기 시작했다. 이럴 때를 대비해 케일렌이 몰래 춤을 가르쳤지만, 영 아니었다. 얌전히 벽에 기대 빙글빙글 도는 사람들을 보고 있는데 쥴런이 다가왔다.

“한 곡 추시겠습니까?”

“네? 아, 아뇨. 저 잘 못 추는데요?”

“그런가요? 은근슬쩍 공작님으로 방향 바꿔드리려 했습니다만….”

“어머머, 무슨 소리예요?”

쥴런이 억지로 손을 잡고 춤의 행렬로 끌고 갔다. 졸지에 그 일원이 되어 어설프게 몸을 흔들었다. 쥴런은 좀 전에 한 말 대로 자연스레 케일렌에게 로완을 넘기고 빠졌다.

“이거 의외군.”

“아, 아니. 그게….”

“춤은 안 춘다고 하지 않았던가?”

“배, 백작님이 억지로….”

“하하.”

케일렌이 기쁜 듯 웃었다. 로완은 우스꽝스럽게 보이지 않으려 춤에 집중하다 보니 머릿속에서 계획이고 뭐고 하나도 떠오르지 않았다. 황제가 의미심장한 미소로 둘을 보고 있는지도 몰랐다.

“케일렌 올라이브 크루스무어 공작님을 위해!”

정신없던 시간이 끝났다. 로완은 속으로 조금 웃었다.

‘생파라… 내 시대에 태어났으면 얼굴에 케이크 하나쯤 던져주는 건데. 선물은 뭐가 좋을까?’

“흠흠.”

황제의 축사가 시작되었다.

“옵시디언 캐슬의 성주이자, 영주 케일렌 공작. 전쟁에서 많은 공을 세우고 돌아온 케일렌 장군. 그리고 내 형제인 올라이브의 서른 번째 생일을 축하하네. 나에게 많은 걸 주었지. 그러나….”

황제는 말을 끊더니 무언가 들여오라는 듯한 손짓을 했다.

“너무 외로워 보이네. 그래서 선물을 준비했지. 어떤가? 이 중 마음에 드는 여인이 있나?”

그의 앞에 댓 명의 여자가 나란히 섰다. 모두 화려한 옷을 입고 아름답게 치장했으나 옷은 질이 좋지 않은 것이 티가 났고 얼굴도 어두워 보였다.

“갈 데 없는 아가씨들이네. 자네가 데려가 주면 좋겠군.”

로완은 화가 치밀었다.

‘지금 여자를 팔고 있는 거야 뭐야?’

케일렌은 앞으로 걸어 나가서 정중하게 허리를 굽혔다.

‘오, 케일렌. 제발. 황제의 뜻대로 하지 말아줘.’

“그래, 어떤가? 누가 맘에 들지?”

“저는….”

케일렌이 뜸을 들였다.

“마음에 둔 여인이 있습니다. 이 아가씨들은 마을에서 지낼 수 있는 곳이 있는지 알아보도록 하지요.”

“뭣.”

황제는 잠시 얼굴이 구겨지더니 크게 웃었다.

“그래, 누군가? 누가 내 형제의 마음을 훔쳤을까?”

그러곤 연회장을 훑다가 로완을 보았다.

“저 붉은 아가씬가? 아까도 춤을 추는 걸 보았는데.”

로완은 자신이 지목당하자 당황스러웠다. 모든 사람이 로완을 바라봤다. 왜인지 케일렌은 말이 없었다.

“자네에게 붉은 머리는 어떤지 알고 있겠지?”

황제가 목소리를 내리깔고 케일렌에게 말했다.

“잘 알고 있습니다.”

“하하하! 형제, 표정 좀 펴게! 생일이지 않나!”

로완은 어리둥절한 채로 파티가 끝나버렸다.

황제는 먼 길 와서 피곤하다는 둥 시끄럽게 떠들면서 제가 쓸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아까의 젊은 여자들은 황제가 사라지자 지쳤는지 주저앉아버렸고 케일렌은 그들의 뒤처리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로완은 응접실 옆 방으로 돌아가 활동하기 편한 옷으로 갈아입었다.

“황제가 미쳤다고는 생각했지만, 저 정도로 미쳤는지는 몰랐는데?”

밖은 여전히 웅성거리는 소리로 가득했다. 연회장의 정리로 바쁜 것 같았다.

“역시 말해줘야겠지?”

소리가 점점 작아져가자 케일렌이 들어왔다.

“곧 시간이야.”

“거사를 앞두고 이렇게 여유 부려도 돼?”

“뭐… 너니까. 상관없다고 생각해.”

“다시 한번 생각해보는 게 어때?”

“안돼. 이날을 손꼽아 기다려왔어.”

“모두 물거품이 될 거야. 난 알아.”

“마녀는 미래라도 볼 수 있는 건가?”

“나는 미래를 볼 줄 몰라. 그저 미래에서 왔을 뿐이지. 어쩌다 오게 됐는지는 모르지만.”

케일렌은 조금 화난 듯했다.

“왜 그걸 이제야 말하는 거지?”

“네가 쿠데타에 실패하고 죽기 때문에. 어차피 말해도 안 들었을 거 아냐.”

“널 믿은 내가 바보인가?”

“나는 나를 믿으라 한 적 없어. 하지만 지금은 믿어줬으면 해. 나는 네가 죽지 않기를 바라. 그래서 어떻게든 방법을 찾으려 했어. 그런데 쉽지 않네.”

거칠게 로완에게 다가간 케일렌은 손을 올렸다. 로완은 뺨이라도 맞을 것 같아 눈을 질끈 감았다. 하지만 케일렌의 손은 다정하게 로완의 볼을 감쌌다.

“고생했어.”

“그치만, 네가 죽는걸. 정말 그만두면 안 될까?”

“나 혼자만의 일이 아니야. 다른 사람들까지 끌어들인 일을 그만둘 수는 없어. 그리고 황제의… 앞으로의 전쟁을 막을 수 있는 건 나 뿐이라고 생각해.”

둘은 잠시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아까 황제가 말한 거… 무슨 소리야?”

“별건 아니야.”

“뭔데?”

“전쟁에서 지고 돌아오던 길에 어떤 마녀를 만났어.”

케일렌이 씁쓸한 눈빛으로 로완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었다.

“나에게 이런 말을 했지. ‘붉은 머리의 여인과 한길을 걷게 된다면 끝이 좋지 않을 것’이라고.”

“그래서 내 머리색에 예민했구나.”

“마녀의 말이 황제 귀에도 들어간 모양이야.”

자조적인 미소를 지었다.

“폭군을 타도한다는 대외적인 명분을 내세우곤 개인적 복수에 눈이 멀어 널 끌어들였지.”

“나도 거절하지 않았는걸. 너무 자책하지 마.”

“공작의 명령을 거절할 사람이 어디 있겠어?”

“그건….”

“마녀의 예언이 사실이 되더라도, 네가 말한 미래가 정해진 것이라도… 나는 이 일을 해야만 해.”

로완은 입술을 물어뜯었다.

“이자벨라.”

“응?”

“이자벨라 율나 블랙우드. 이게 본명이야. 로완은 마녀로 일할 때 이름이고.”

후, 숨을 내쉬었다.

“이게 마지막일지도 모르니까. 그래도 혹시 살아남는다면 기억해줘.”

“이자벨라, 날 지원해줘서 고마워.”

케일렌이 로완을 안았다. 로완은 훌쩍이며 품에 안겼다.

“어떻게든 마법사를 막아볼 테니까 황제를 부탁해.”

“그래.”

둘은 방에서 나왔다. 응접실 앞에는 예의 인원 외에 몇 명의 제복을 입은 사람이 있었다. 케일렌이 끌어드린 또 다른 사람들 같았다.

“계획대로 움직이지.”

모두 황제가 머무는 방문 앞으로 움직였다. 황제는 술을 많이 마셨으니 곯아떨어졌을 것이다. 그의 경호들이 골치였다. 제복 입은 사람들은 현역 군인인지 재빠르게 문 앞의 경비들을 쓰러트렸다. 큰 소리도 나지 않았다.

‘오, 대단한데.’

손잡이가 돌아가고, 문이 열렸다. 제복 입은 자들은 앞을 지켰고, 케일렌은 침대가 있는 방향으로, 쥴런과 폴은 내부의 경비들에게로, 로완은 마법사를 향해 달려들었다.

달려든 것처럼 보였다.

쥴런이 갑자기 방향을 틀어 황제가 있을 침대를 향해 돌진했고 케일렌과 마주하게 되었다. 뒤에서 황제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하하하! 케일렌, 네 소꿉놀이는 잘 즐겼나?”

“쥴런! 이 망할 자식아!”

폴이 소리쳤다. 로완은 이 상황에 당황해 멈칫했고 마법사에게 지팡이를 들고 있는 손이 붙잡히고 말았다.

“어맛!”

“그렇군. 그렇게 되는군.”

케일렌의 눈은 분노에 가득 찼지만 침착하게 입을 열었다.

“어쩐지 일이 단조롭다고 생각했어. 그래, 쥴런 자네가 대부분을 주도하긴 했지.”

“황제 폐하께 케일렌 공작의 목을 바치고 내가 이 성의 주인이 되겠다.”

“그것만이 목적은 아닌 것 같은데?”

“흥, 너까짓 패전 장군의 말을 들을쏘냐?”

“어머머, 무슨 말을 그렇게 해?”

로완이 발버둥 치며 소리쳤다.

“네 상대는 내가 아닌가?”

마법사가 로완을 보며 웃었다.

“오우, 장난 아니게 세 보이는 황실 마법사님. 잠시 제 손 좀 놓아주시면 안 될까요? 호호.”

“특이하게 생긴 지팡이군.”

로완의 손에 들린 지팡이를 만지려 하자 로완은 더 거세게 발버둥 쳤다.

“에라이!”

지팡이가 커지면서 빗자루로 변했다. 마법사는 놀랐는지 로완을 놓아주었지만, 경계가 심해져 그도 자신의 지팡이를 빼 들었다. 손이 자유로워진 로완은 다시 빗자루를 작게 만들어 지팡이로 들었다.

“케일렌, 네 여자도 나름 한 성깔 하는 군 그래! 덕분에 좋은 볼거리가 생겼어!”

황제는 숨이 넘어갈 정도로 웃어댔다.

“저 마녀가 네 취향인가? 난 아기자기한 여자가 좋은데, 넌 멀대같이 큰 여자를 좋아하나 보군!”

“아니, 저게!”

로완은 머리끝까지 화가 났다. 이판사판이었다.

“집중해.”

마법사가 작게 말하며 몸을 숙였다. 그의 지팡이가 바닥에 닿자 얇은 얼음이 깔렸다. 침대에 앉아있던 황제를 제외하고 서 있던 사람은 모두 미끄러져 휘청거렸다.

‘얼음이 주특기인가? 이거 불리할 거 같은데.’

로완은 얼음판 위를 타고 부드럽게 움직이며 쥴런에게 다가갔다. 대놓고 황제에게 다가갔다가는 바로 제지당할 게 뻔했기 때문이다.

‘막상 이쪽으로 오긴 했지만, 저 사람은 쥴런을 아군이라 생각하지 않을 게 분명해. 내가 쥴런의 옆에 서 있는다 해도 공격할 거야.’

아니나 다를까 얄팍한 얼음조각이 쥴런을 향해 날아왔다.

“윽! 레이고! 내가 있는데!”

‘마법사 이름이 레이고인가? 알 바야? 지금은 케일렌이 먼저다.’

레이고는 살포시 웃으며 방향을 케일렌이 있는 쪽으로 바꿨다.

“어딜!”

미약하지만 불로 된 커튼을 만들어내 공격을 막았다.

“그렇군. 공작이 약점인가.”

로완은 촛불만 한 작은 불덩어리를 마법사에게 다량으로 날리곤 케일렌에게 소리쳤다.

“지금!”

레이고와 쥴런이 잠시 멈춘 순간 케일렌의 검은 황제에게 향했다. 쨍하는 소리가 방안을 울렸다. 황제는 어느새 숨겨뒀던 검으로 케일렌을 막았다. 그뿐만 아니라 의수에 상처까지 냈다.

“공작님!”

폴이 달려들었지만 정신을 차린 쥴런이 막아섰고 로완도 다시 레이고에게 붙들린 신세가 되었다. 챙 소리가 나며 황제는 케일렌을 밀어붙였고 침대 밖으로 내려왔다.

“레이고 블랙우드, 그 마녀는 산 채로 남겨둬. 나머지는 어찌해도 좋다.”

“알겠습니다.”

“블랙우드? 당신 이름이 블랙우드야?”

로완은 눈을 휘둥그레 뜨고 레이고를 멍하니 보았다.

“그렇다. 로완 스타콜러.”

“훗, 마지막이니 물을게요. 황실 마법사 자리는 많이 좋나요?”

“그런 편이지.”

“부럽네. 나는 곧 죽을 변방 제후의 일개 마녀일 뿐인데.”

“정치싸움이 그렇지 뭐. 걱정은 마, 네 목숨은 부지할 것 같으니. 그러니 얌전히….”

“아쉽게도 끝까지 반항할 셈이야.”

로완이 손가락을 튕기자 창문가에 있던 작은 상자가 터졌다. 유리창이 깨지고 눈보라가 안으로 들어왔다. 젖 먹던 힘까지 끌어모아 눈보라를 방 안으로 끌어들였고 커다란 창문을 결국 부서지고 말았다.

“케일렌! 폴!”

두 남자를 양손에 잡고 창문 밖으로 뛰어내렸다. 폴이 비명을 질렀다. 잠시나마 로완의 지배를 받은 눈보라 덕인지 셋은 안전히 땅 위에 내려갈 수 있었다.

“날 쌀쌀맞게 대해서 그냥 두고 올까 했는데 인심 좀 썼어요. 호호. 알아서 잘 살아남아 봐요!”

“으, 마, 마녀!”

폴은 지금까지 보여준 것과 전혀 다른 로완의 힘을 보고 기겁했는지 마을을 향해 뛰어갔다.

“우리는 요새로 갈까요?”

“결국 그리되는군.”

깊게 쌓인 눈은 정말 걷기 어려웠다. 하물며 앞이 잘 보이지 않은 상태의 비탈길을 올라가는 건 더욱 힘들었다.

“이쪽이야.”

로완은 요새에 둔 팔찌를 추적해 길을 안내했다. 혹여 떨어지게 될까 봐 단단히 손을 붙잡았다. 추위에 덜덜 떨리는 손이 장갑을 타고 전해져왔다.

“이쪽!”

다행히도 눈은 둘의 발자국도 지워주고 있었다. 저 멀리서 케일렌을 찾는 듯한 사람들의 소리가 들려왔다.

“이자벨라.”

“케일렌, 거의 다 왔어!”

“다행이군.”

몇 걸음만 더 떼면 요새였다.

“윽!”

다시, 눈에 익은 얼음조각이 날아들었다. 케일렌이 균형을 잃고 넘어졌다. 로완의 손에는 그의 빈 장갑만이 들려 있었다.

“어, 어떻게?”

레이고가 어이없다는 얼굴로 서 있었다.

“네가 전투 경험이 없다는 건 잘 알겠다. 마법 반응으로 길을 찾는다는 시도는 좋았어. 하지만 마법사 앞에서 한다는 건 여기있소 하고 알려주는 거나 마찬가지야.”

“아뿔싸!”

로완은 단순한 허점을 눈치채지 못한 자신이 미웠다.

“케일렌, 괜찮아?”

“역시 예사 관계는 아니었군.”

다시 눈보라가 강하게 눈앞을 강타했다. 앞도 보이지 않았고, 떨리던 손도 완전히 놓치고 말았다.

“케일렌!”

아무런 반응도 돌아오지 않았다. 손에 쥐어있던 장갑만이 바람에 펄럭였다. 눈보라가 잠잠해지고 시야가 트이자마자 케일렌이 쓰러져있을 자리에 주저앉았다. 그새 눈에 파묻힌 걸까, 케일렌은 보이지 않았다.

“눈! 제발 저리 좀 가봐!”

지팡이를 휘두르자 주위에 쌓인 눈이 서서히 날아갔다. 땅이 드러났지만, 그는 보이지 않았다.

“레이고, 대체 무슨 짓을!”

고개를 들었는데 텅 빈 허공만이 있을 뿐이었다.

“레이고?”

그제야 로완은 자리에서 일어나 주위를 둘러봤다. 눈보라가 내렸다기엔 그다지 눈이 쌓여있지 않았다. 저 아래에 있는 성은 누구도 살지 않는 듯 낡아 떨어지게 생겼다.

“아, 안돼. 어째서.”

그대로 달려내려다가 성으로 향했다. 눈 위에 로완의 발자국만이 길게 이어졌다.

“폴? 필립? 망할 빌어먹을 배신자 쥴런! 재수 없는 황제 루시우스!”

성안은 낡다 못해 곧 무너지게 생겼다. 벽에 걸려있던 케일렌의 그림이 없는 걸 보니 역시 케일렌은 죽은 게 분명했다.

연회장에서 희미한 힘이 느껴졌다.

“레이고! 레이고 블랙우드!”

목소리만 울릴 뿐 아무도 없었다. 작게 느껴지는 마법을 찾아 지팡이를 휘휘 저었다. 연회장의 가운데에서 익숙한 한기가 올라왔다.

“레이고의 흔적이야.”

로완은 온 힘을 집중했다. 주위에 흐릿한 환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황제가 있었고 그 앞에 쥴런이, 무릎 꿇은 케일렌이 있었다.

“케일렌!”

로완의 옆에 레이고의 환영이 서 있었다. 그가 지팡이를 휘두르자 케일렌이 쓰러지고 말았다. 순간 정신이 혼미해지고 말았고 환영은 모두 사라졌다.

“아, 아아….”

로완은 주저앉았다.

“왜 마지막에 돌아오고 만 거야?”

케일렌의 이름을 부르며 울기 시작했다.

“눈, 어째서야? 날 과거로 데려갔으면 끝까지 함께하게 해줬어야지!”

눈을 싫어하게 된 마녀만이 남았다.

epilogue

보름 정도 말없이 종적을 감췄던 이자벨라는 전보다 차분한 사람이 되어 돌아왔다. 다 큰 어른이 체인질링이라도 된 게 아니냐며 친구들은 놀렸지만 이자벨라는 말없이 웃으며 넘겼다.

“벨라가 다른 사람이 된 거 같긴 해.”

“우스꽝스러운 말투도 안 쓰잖아.”

“난 그게 개성이라고 생각했는데.”

“요전엔 소개팅 자리도 차더라.”

“남자 만났다 거하게 차인 거 아니야?”

“그 눈 높은 벨라를 홀린 남자는 대체 어떤 사람이야?”

수군거림이 다 들렸지만, 이자벨라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손가락으로 머리카락을 빙빙 감으며 창밖을 바라볼 뿐이었다.

‘케일렌….’

현대로 돌아온 뒤, 역사책에서 크루스무어 제국의 말로를 뒤적였다. 열심히 케일렌 공작을 찾았다. 대부분 케일렌의 이야기는 짤막하게 적혀있을 뿐이었다.

‘오브샤시의 도서관도 찾아가 봤지….’

오브샤 시립 도서관은 그나마 케일렌의 이야기가 길게 적힌 책을 소장하고 있었다.

<케일렌 올라이브 크루스무어 공작>

토머시안 황제의 둘째 아들. 형인 루시우스가 황제로 즉위하고 군으로 밀려나 전쟁에 참여하게 된다. 루시우스 황제의 확장계획에 따라 거듭된 전쟁 중 페란소에서 모베르 군에 크게 패하게 된다. 페란소 전으로 케일렌 공작은 한쪽 눈과 팔을 잃게 되어 전선에서 물러나게 된다. 이에 루시우스 황제는 옵시디언 캐슬(현재의 오브샤시)의 제후로 임명한다. 케일렌 공작은 작위를 이용해 루시우스 황제에게 반역을 꾀했으나 실패하고 처형당한다.* 공교롭게도 케일렌 공작은 자신의 생일에 죽었다. 케일렌 공작의 묘지는 현재 오브샤시의 시립공동묘지에 있다.

*이 쿠데타에 마녀가 가담되었다는 전설이 내려오나 마녀의 흔적은 발견되지 않아 그저 소문으로 보인다.

“어지간히도 자세하군.”

이자벨라는 한쪽만 남은 케일렌의 장갑을 만지작거렸다. 책의 앞에는 구전으로 내려오던 이야기를 엮은 것으로 사실과는 다를 수 있다는 문구가 적혀있었다.

“케일렌의 이야기는 사실이야. 내 얘기는 쏙 빠졌지만.”

어쩔 수 없었다. 로완 스타콜러는 극의 마지막에 잠깐 스쳐 지나간 단역이었으니까.

주머니의 휴대폰에서 진동이 울렸다.

{ 재시 집에서 신년 파티 하기로 했는데, 올래? )

( 미안, 이번엔 가족이랑 보내기로 했어. }

{ 그래? 그럼 새해 지나고 보자! )

( 응. 새해 복 많이 받아! }

가족들에게는 친구들과, 친구들에게는 가족들과 보낸다고 거짓말을 했다.

‘이번 새해는 혼자 보내고 싶어.’

눈이 내리지 않았음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흰 세상은 필요 없다. 다채로운 인간의 삶이 녹아있는 세상이 더 좋았다. 그곳에는 케일렌이 있을 수 있었으니까.

도서관에서 나오니 해가 쨍쨍했다. 유독 푸른 겨울 하늘이었다. 12월이 지나고 1월이라는 시기가 다시 찾아온다, 케일렌과 만난 것도 1월이었다. 그러했다.

돌아온 이후 가방에는 항상 그의 장갑을 넣어뒀다. 잃어버리고 싶지도 않지만 그렇다고 집에 고이 두고 다니고 싶지도 않았다. 유일하게 남은 시간역행의 흔적.

현대에서 케일렌이 죽은 지 90년이 넘었다. 이자벨라에게는 바로 며칠 전에 떠난 사람이었다. 아니다. 떠나버린 건 자신이었다. 케일렌에게는 그랬을 것이다.

눈보라와 함께 나타나 눈보라와 함께 떠난 야속한 마녀일게 분명했다.

“온 김에 만나고 가야겠지?”

이자벨라는 힘차게 발을 굴러 공동묘지로 향했다. 경비원에게 케일렌 공작의 묘지 위치를 물었다.

“케일렌 공작이요? 이 길로 쭉 가면 위령비가 있는데, 비의 오른쪽으로 꺾으면 바로 첫번에 있는 묘가 케일렌 공작의 묘예요.”

“고마워요.”

가볍게 목례를 하고 위령비가 있는 방향으로 걸었다. 뒤에서 경비원의 중얼거림이 들렸다.

“특이하네. 꽃을 들고 케일렌 공작을 찾는 사람이라니.”

조화롭지 않은 알록달록한 꽃다발을 들고 있었다.

“후후.”

위령비는 생각보다 작았다. 오른편을 바라보니 투박하게 솟아있는 돌 십자가가 눈에 들어왔다.

“황제가 해줬을 리는 없고… 뒤에 만들어진 묘비려나?”

터벅터벅 묘 앞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처음 만났을 때처럼 인사했다.

“마녀 로완 스타콜러라고 합니다.”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지만, 이자벨라는 말을 이어갔다.

“공작님은 잘 계시지요? 무슨 꽃을 좋아하는지 여쭤보는 걸 잊어서 아무거나 다 담아왔어요.”

묘 위에 꽃다발을 얹어두었다. 눈물이 고였다.

“미안해요. 눈이 무정하죠. 절 멋대로 데려가더니 다시 제멋대로 데려오고 말았어요.”

눈 구경은 이제 질려요.

“90년이라는 시간 동안 그 차가운 바닥에서 날 원망했을지도 모를 당신에게 이제야 찾아왔어요. 하지만 역시 잊어야겠죠? 당신의 로완은 이제 이자벨라로 돌아와야 하니까요.”

이자벨라는 견디지 못하고 주저앉았다.

“미안해. 케일렌. 내가 끝까지 함께하지 못해서…. 미안해. 정말로 미안해.”

얄궂은 시간은 흘러 한 해가 지나가고 말았다. 이자벨라는 낯선 사람들 속에 서 있었다. 사람들은 해돋이를 보겠다고 모였지만 흐린 하늘은 계속되었고, 새해 행사는 엉망진창이었다.

해가 뜨자 함박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어린아이들은 눈이라며 뛰어다녔다. 어른들도 비록 해는 못 봤지만, 눈이 시원하게 내린다며 좋아했다.

이자벨라만 침울했다.

“뭐가 좋다고.”

사람들을 등지고 돌아섰다. 눈은 계속 쌓이고 있었다. 그 위를 뽀각뽀각 거리며 걸었다.

“새 구두 신고 나왔는데 이게 뭐람?”

될 대로 되라지 싶어 발이 가는 대로 걷다 사달이 났다. 미끄러지고 말았다.

“어머나아!”

다행히도 누군가 팔을 뻗어 잡아줘 넘어지지는 않았다. 좀 전까지는. 그 누군가의 팔이 쑥하고 빠지는 게 아닌가, 이자벨라는 그대로 바닥을 굴렀다.

“아야야….”

“이런! 괜찮으세요?”

“아이고오… 그쪽이야말로 괜찮아요? 팔이 빠졌는데?”

“의수거든요. 돈이 없어서 싼 걸 구했더니 자꾸 빠지네요.”

“제가 의수만드는 사람인데 도와주시려 한 겸 새해 기념, 공짜로 하나 해드릴까요?”

“네? 아뇨. 괜찮습니다.”

남자는 왼팔을 뻗어 이자벨라가 일어나도록 도와줬다. 이자벨라는 바닥에 뒹굴던 의수를 남자에게 건넸다.

“저는 눈이 싫어요. 안 좋은 일만 생기거든요.”

“그래요? 전 온통 새하얘서 좋은데, 마법 같은 일이 일어날 거 같거든요.”

‘꼭 예전의 나 같은 소리를 하네.’

이자벨라는 그제야 남자의 얼굴을 보았다.

“올라이브 싱입니다.”

“아…. 이자벨라 블랙우드라고 해요. 이것도 인연인데 마을에서 차라도… 아차, 이 시간에는 안 열었으려나?”

올라이브는 살짝 웃으며 한쪽을 가리켰다.

“저쪽 부스에서 차를 나눠주는 걸 봤어요. 그거라도 마시는 게 어때요?”

“좋아요!”

의수를 가방에 구겨 넣은 올라이브가 앞서 걸어갔다.

“이것도 인연인데, 라….”

이자벨라가 중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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