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단편]

[미완단편] 공작

2018년 가을에 쓰다만 짧은 글입니다. 완성 안할 것 같아 그냥 올립니다.

이따금 흥분하는 경우가 있다. 손 끝에서 시작된 데자뷰가 온 몸으로 흐르다 머리에서 터져버린다.

정해진 일과대로 버스에서 내려 계단을 올라간다. 심장은 평소보다 빠르게 뛰고 코트 주머니에 들어있던 손은 그리움을 자아내고 있다. 물리적으로 다른 점은 없다. 가을이 되어 죽은 잎은 구두에 밟혀 바스락 소리를 내었다.

정신없이 걷다보면 붉은 벽돌의 낡은 건물이 나타난다.

입학하고 일년, 아니 이년정도 사용한 교정을 지나갔다. 붉은 벽돌의 오래된 건물이였다. 4층에 지하까지 있었다. 내가 꿈꾸던 이상향이였을지도 모른다. 지금은 다른 연구시설에 내주었다고 들었다. 잊고 지내다 오랜만에 바라보니 낯설기도 했다. 자세히 보았더니 건물 외부에 있던 시계의 바늘이 사라져있었다. 관리비용도 많이 들었겠지. 시계는 까다롭다.

다시 걸어가며 사색에 잠기게 되었다. 날리는 코트자락, 비어있는 손, 안경에 눌린 콧잔등, 그리고 눈에 비친 운동화. 정신차려보니 모든 것이 작게나마 변해있었다. 사람은 원래 달라지기 마련이다. 이걸 깨닫는건 어렵다고 생각한다. 이상속의, 어린 시절 꿈꿨던 완벽한 모습을 떠올려보았다. 그 사람은 아름다웠다.

검은 코트를 펄럭이며 벽돌로 쌓아올려진 커다란 건물로 걸어들어간다. 집을 나설때 쓸어넘겼던 검은 머리카락은 어느 새 흘러내려있다. 투명한 안경은 그의 눈이 보이지 않게 빛을 반사하고있다. 무신경한 손으로 주머니에서 열쇠를 꺼낸다. 그의 사무실-혹은 연구실-문을 열고 들어간다. 철제 창문은 차가운 분위기를 내뿜고 있지만 그 너머로 햇빛이 방에 그림자를 그리고 있다. 방을 한번 훑은 뒤, 커피를 내리며 쇼파에 앉는다.

아, 얼마나 아름다운가! 어린 시절의 나는 이런 삶을 동경했다. 어디에서 얻은 풍경인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나의 삶은 그러했다. 현실은 어떠한가. 하루 간신히 버티며 연명하고있다. 이런 생각을 하며 지어진지 오래되지 않은 강의동의 문은 밀었다. 어떤 이름이 떠올랐다. 처음 듣는 이름이였고 낯설지 않았다. 그래 그 남자의 이름인가보다.

강의실은 의외로 학생들로 가득했다. 동기들과 인사를 나누며 구석에 앉았다. '나'라는 인간의 자리는 언제나 한쪽 벽에 있다. 어린 시절부터 변하지 않았다. 떠오른 그의 이름을 검색해 보았다. 아무것도 뜨지 않았다. 어떻게 된건지 알 수 없었다. 과거의 내가 조합해 만든 이름인걸까? 이름을 분해해 다시 검색했지만 처음 보는 것들만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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