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단편]

[단편] K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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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이공원 구석에 한적하게 앉아 하늘을 바라보던 아이다는 누군가 옆에 앉는 걸 느껴 일어나려 했다. 익숙한 여자의 목소리가 웃으며 그러지 말라 했다.

“벰?”

“걱정하지마, 나도 그냥 놀러 온 거뿐이니까.”

베일에 싸여 이름조차 알지 모르는 능력자 집단의 일원이었다.

“내 친구들에게 해를 끼치지 않았으면 하는데….”

“어머나, 내가 그러거라 생각해?”

“너희 동료들이 하는 짓거리를 생각해봐.”

그들은 여러 사건을 일으켰다. 개중에는 공개적으로 원인 불명의 대형 사고들도 있었다.

“우리는 우리 나름대로 살아가는 거야.”

벰은 깔깔거리며 웃었다. ‘정의의 사자처럼 굴지 말아줘.’라는 말을 덧붙였다.

“나는 그런 적 없어.”

“언제나 그래 보였는걸? 우리를 적으로 오인하고 있는 모양인데, 우리는 악당이 아니야. 삶의 방식이 다를 뿐.”

아이다는 혀를 찼다.

“그 방식이 세상에 해가 되니 문제지.”

“흠~ 할 말이 없네. 그 부분에 대해서는.”

들고 있던 음료를 한 모금 빨곤 저 멀리서 다가오는 아이다의 친구들을 바라봤다.

“좋은 아이들이지? 한창때야, 너도 한창때고. 그러니까 지금을 즐기란 말이야. 우리를 상대하지 말고.”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해.”

“으이구, 이 꽉 막힌 마법사야. 그게 바로 정의의 사자가 하는 생각이야.”

“친구들이 오니까 좀 가줄래?”

벰은 능청스럽게 아이다를 보며 웃었다.

“나도 같이 놀면 안 될까? 혼자 왔더니 심심해.”

그렇게 대화하는 사이 친구들이 코앞으로 와 있었다.

“누구야? 아는 사이?”

“벰이라고 해. 아이다와는 업무상으로 아는 사람이지.”

“그래요? 경찰 쪽?”

“프리랜서.”

벰이 웃었다.

“저는 섀런이고, 이쪽은 라희, 해린스, 오인츠라고 해요.”

섀런이라 밝힌 여자는 순서대로 친구들을 소개했다. 아이다는 어이없다는 듯 벰을 보았지만 벰을 계속 실실거릴 뿐이었다.

“왜 그래? 얼굴 펴.”

“그래. 퍽이나.”

섀런이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벰에게 이것저것 묻기 시작했다.

“마법사세요? 능력자? 주특기가 뭐예요? 아이다랑은 어쩌다 알게 됐어요? 와, 엄청 예쁘세요! 아이다랑 있으니까 아이다 완전 호박~”

“야, 무슨 호박이야!”

아이다가 성을 냈다.

“후후, 별 볼 일 없는 능력자예요. 무슨 능력인지는 비밀~”

벰이 윙크했다.

이런 소소한 이야기를 하는 데 어느 순간 주위가 하얗게 변해 있었다.

“안개?”

“이, 이게 뭐야?”

“벰! 장난치지 마!”

“내가 이런 능력이 있을 거라 생각 해?”

“너 아니면 누가 이런 장난을 쳐?”

“너?”

벰이 아이다를 가리켰다.

“내가 장난쳐서 뭔 이득이 있겠어.”

“나야말로 장난쳐서 무슨 득이 있겠냐구.”

아이다는 수풀 뒤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나는 걸 들었다.

“그러면 너냐?”

거칠게 수풀 쪽으로 발길질을 하자 한 남자가 데굴거리며 나왔다.

“아야야야얏….”

“지닐?”

벰이 남자를 알아봤다.

“네 동료야?”

“어, 어어…. 네가 왜 여기에 있어?”

“벰이고 리이즈고 한 날 한 시에 놀이공원에 가는 게 이상해서 몰래 따라왔다. 왜!”

“리이즈가… 와 있다고?”

벰은 리이즈를 만난 적 없다고 했다. 아이다가 유독 눈을 크게 떴다.

“무슨 얘긴지 모르겠지만 이 안개 좀 어떻게 해봐!”

오인츠가 불안한 듯 점점 짙어져가는 안개를 팔로 휘저었다. 해린스는 뛰어다니며 안개를 뚫으려 했지만 퉁겨졌다.

“넌 마법사잖아!”

“그래, 일단 마법사지….”

아이다가 손에 힘을 집중하자 빛이 났다. 안개가 끼는 속도가 더뎌졌다.

“멈춰주십시오!”

안개 너머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멈춰주십시오! 아이다 님!”

“잉?”

아이다가 당황해서 손을 움츠리자 빛이 사라졌고 안개는 시야를 가릴 정도로 짙어졌다.

“아이다!”

다들 원망 섞인 목소리로 아이다를 불렀다.

“아이다 님!”

다시 안개 너머에서 들렸던 목소리가 아이다를 부르자, 안개가 조금 걷히며 둥근 공간이 나타났다. 그리고 그곳엔 하얀 도마뱀이 서 있었다.

라희가 비명을 지르며 섀런 뒤로 숨었다.

“하하 놀라지 마십시오. 저희는 챨 님의 사신으로 아이다 님과 친구분들을 모시러 왔을 뿐입니다.”

“보통은 사람만 한 도마뱀이 말하면 놀란다고, 돌아가… 돌아가.”

아이다가 도마뱀을 밀쳐냈다.

“그러시면 곤란합니다. 챨 님이 꼭 모셔 오라고 하셨습니다!”

“내가 갈 이유가 없어. 하물며 일반인까지 끌어들일 필요도.”

“과연 그럴까요? 한 명 이미 가 있는데요?”

아이다의 동공이 조금 열렸다.

“너, 이…. 어떻게….”

“챨 님은 머리가 좋으시니까요!”

“머리가 좋은 게 아니라 잔재주가 좋은 거겠지!”

“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거냐고!”

해린스가 화를 내기 시작했다.

“키메라 같은 거야?”

벰이 아이다에게 물었다.

“아니, 방금 말했잖아. 사신이라고. 말 그대로.”

“그럼 모시겠습니다. 아이다 님. 벰 님, 라희 님, 섀런 님, 해린스 님, 오인츠 님, 그리고 지닐 님.”

도마뱀이 손으로 가리킨 곳에는 아주 커다란 마차 하나가 있었다. 모두 들어가고도 남을 만한 크기였다.

“아니, 이런 낡은 마차가 다 있담?”

“돌겠네.”

아이다는 한숨을 쉬며 마차에 올랐다.

“챨이라는 여자가 말을 걸어도 최대한 대답하지 마. 뭘 물어도 모른다고 해. 아니면 나한테 화제를 돌리던가.”

“그도 마법사야?”

“마법사나 능력자보다 더 위의 존재야.”

도마뱀이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 줄을 휘두르자 마차가 떠올라 하늘 위로 올라갔다. 라희가 또 비명을 질렀다.

“대체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거야!”

“미안하다…. 내가 좀 더 힘이 있었더라면 이딴 일에 말려들지 않는 건데….”

“네가 왜 사과를 해?”

벰이 물었다.

“그런 게 있어. 좀 있다가 알게 될지도 모르지만.”

몇 분 지나지 않았을 까 마차는 멈췄고 문이 열렸다. 오래된 분위기의 고성에 도착했다. 모두 내려 휘둥그레한 눈으로 주위를 둘러보는 데 아이다 혼자 뚜벅걸어 성안으로 들어갔다.

“가, 같이 가!”

라희가 불안한 듯 쫓아가자 나머지도 따라 들어갔다. 성안에는 널찍한 마루가 있었고 왕좌로 보이는 의자가 있었으며 그 위로 화려한 착장의 여자가 거의 눕듯이 앉아있었다.

“챨….”

“어서 와, 아이다. 요즘 말로는 웰컴~ 이던가?”

“됐어. 용건이나 말해. 왜 부른 거지?”

“놀자구~”

“허.”

뒤에서 해린스가 ‘저 사람인가?’라고 중얼거렸다.

“호호호.”

챨이 웃자 오한이 서렸다.

“나머지 하나는 어디 있지?”

“제 것이라고 그 먼저 찾는 거야? 너무하네. 날 좀 챙겨주라구. 동료잖아?”

“동료라고 생각해본 적 없어. 억지로 끌어들인 건 댁들이잖아. 제발 날 내버려 둬.”

알 수 없는 대화가 오갔다.

“다시 묻겠다. 그는 어디에 있지?”

챨은 다시 웃으며 일어났다. 키는 족히 이미터는 넘어 보였다. 왕좌를 발로 치우더니 뒤에 퍼져 있었던 긴 치맛자락을 들쳤다. 그 안에 한 남자가 의식을 잃은 채 쓰러져 있었다. 챨이 남자의 머리채를 잡아 들었다.

“리이즈?”

벰과 지닐이 동시에 외쳤다.

“호호호. 내가 선수 좀 쳤지. 네 추종자를 불러내는 거야 쉽지.”

“리이즈가 아이다의 추종자라고? 배신을?”

지닐이 놀란 듯 소리쳤다.

“아니야. 아니야. 오해하지 마.”

아이다는 손짓, 발짓해가며 지닐에게 말했다.

“추종자랑 달라. 좀… 이쪽 세계 얘기일 뿐이야. 쟤가 그렇게 부를 뿐이지.”

“신관이 추종자지 뭐.”

챨이 어깨를 으쓱했다. 해린스가 질린다는 표정으로 대체 무슨 소리냐고 물었다.

“그런 게 있….”

“우리가 알 수 있는 말로 해줘.”

챨은 곤란해하는 아이다의 모습이 보기 좋다는 듯 웃어댔다.

“시끄러워.”

아이다의 한숨이 바닥을 뚫을 기세였다.

“그러니까… 능력자보다 한 단계, 아니지 한참 위의 존재야.”

“신관은 뭔데? 신이라도 된단 말이야?”

“어… 그게….”

아이다는 당황한 듯 말을 잃었다. 챨이 그사이를 차고 들어왔다.

“하하하! 그냥 솔직하게 말하지 그래? 그래. 신이다! 우리는 신이야!”

“우리?”

모두 어리둥절하다는 듯 챨을 보았다.

“그렇다! 네 친구라고 생각했던 그도 신이야. 어때, 놀랍지?”

“돌겠네.”

아이다가 욕을 뱉었다.

“리이즈가 아이다의 신관이라면 역시 배신자가 맞는 게 아닌가?”

자닐이 다시 물었다.

“사정이 좀 길어. 리이즈는 날 죽이려 했고, 그 타이밍에 운 나쁘게도 내가 신들에게 간택당했어. 신들은 주위에 있었다는 이유로 리이즈를 신관으로 삼아버렸지. 어이없게도.”

챨은 여전히 호호거리며 아이다를 놀리듯 말했다.

“아이다의 추종자는 그의 인간적 관계가 어떻든 간에 아이다의 명령을 들을 수밖에 없는 신세가 됐지, 뭐야? 웃기지 않아?”

아이다는 성이 난 듯 머리를 헝클였다.

“짜증 나네. 쏴버려.”

갑자기 나타난 빛 화살이 챨의 등에 박혔다.

“악!”

아이다는 휘청이는 챨을 발로 걷어차곤 옷자락을 밟아 움직이지 못하게 했다.

“리이즈!”

저 뒤에 쓰러져있던 리이즈는 어느샌가 일어나 있었다. 얼굴은 잘 보이지 않았지만, 그의 손에 들려 있는 활로 보아 그가 쏜 것 같았다.

“너, 너가 아무리 기고, 날아봐야 나보다 서열이 낮은 건 알고 있겠지?”

챨이 이를 악물며 소리쳤다.

“그건 아는데 먼저 자극한 건 그쪽이고. 하하.”

아이다의 친구들은 아이다의 웃음에서 챨의 웃음에서 느껴지던 한기가 들었다.

“아이다?”

“곧 끝날 테니까 걱정마.”

평소처럼 웃어 보였지만 어딘가 차가운 미소였다.

“그대, 장난감의 신 챨은 나, 저주의 신 아이다의 신관을 납치하고 관련 없는 이를 신계를 끌어들여 혼란을 야기하였으므로….”

“그만! 그만! 미안해! 사과할게!”

챨이 발버둥을 쳤지만, 아이다는 여전히 챨의 거추장스러운 옷자락을 밟아서고 있었다.

“…저주를 받아도 할 말은 없겠지.”

아이다의 눈은 리이즈를 향했다.

“뭐가 좋을 거 같아?”

“입이 방정이니 말과 관련된 게 좋겠군.”

리이즈가 왕좌가 있던 마루에서 걸어 나오며 대답했다.

“좋아, 이건 어때. ‘그대의 생각과 반하는 말을 하게 될 거야.’ 좋은 생각이지?”

한순간 주위가 얼어붙는 듯했다.

“그만, 아니, 아니!”

“그대는 그대의 생각과 반하는 말을 하게 될지니, 이는 저주의 신의 마음이 변할 때까지 이어지리.”

챨은 입을 막았다.

“이번에도 ‘성공적’이군. 피곤하지만….”

아이다가 휘청거리자 리이즈가 급히 달려와 부축했다.

“리이즈, 진짜 배신인 거냐?”

자닐이 한 번 더 물었다.

“배신으로 보인다면 그런 거겠지.”

“아, 머리 울려 미치겠네.”

“너, 아이다! 이런 일을 한 게 알려지면 다들 좋아하겠… 헉!”

챨은 또 입을 막았다.

“이제 조용히 사는 게 좋을걸.”

말을 마치고 아이다는 손가락을 튕겼다.

“나 좀 어지러울 거 같은데 쓰러지면 뒤처리 좀 해줘.”

“알았다.”

“아, 정말! 둘이 대체 무슨 관계야?”

벰이 짜증을 냈다.

“리이즈 너는 아군이야 적이야?”

“지금은 그 무엇도 아니다. 그저 신의 대리인일 뿐.”

“네가 종교쟁이가 됐어?”

동료와는 다른 이처럼 보이는 리이즈를 보며 벰과 지닐은 싸늘하게 바라보았다.

“뭐… 그렇게 됐다. 나도 하고 싶어서 하는 거 아니야. 다시 돌아가면, 인간세계로 돌아가면 기억 못 할 테니 괜찮겠지….”

아이다가 다시 한번 손가락을 튕겼다. 바닥에 안개가 자욱하게 깔렸다.

“꺗.”

라희가 질린다는 듯 비명을 질렀다.

“이번이 마지막. 나 기절한다.”

리이즈가 휘청이는 아이다의 허리를 붙잡았다. 아이다는 세 번째로 손가락을 튕겼다.

 

“아~ 피곤하다.”

해린스가 벤치에서 눈을 떴다.

“야, 일어나봐. 어쩌다 여기서 잠들었냐.”

“그러게?”

오인츠가 눈을 비비며 잠에서 깼다. 해가 거의 넘어가고 있었다.

“섀런~ 일어나.”

라희가 섀런을 흔들어 깨웠다.

“엄마야, 깜짝 아! 뭐야?”

“돌아갈 시간 다 됐어.”

다들 기지개를 켜며 자기 잠든 새 무슨 일이 없었는 지 짐을 살폈다.

“그러고 보니 아이다는?”

“아이다? 오늘 아이다도 왔던가? 바쁘다고 안 오지 않았어?”

“그랬던가?”

“집이나 가자, 늦장 부리면 너 막차 놓칠걸?”

 

“어머나, 지닐. 여기서 뭐 해?”

“어… 그러게? 왜 놀이공원에 왔더라?”

“후후, 너도 놀고 싶을 때가 있구나?”

지닐은 머리를 긁적였다.

“그랬던 건 아닌 거 같은데.”

“온 김에 놀자고. 해 지면 퍼레이드도 하니까~”

벰이 지닐의 손을 잡고 광장으로 달려갔다.

 

수풀 뒤에서 짙은 한숨이 들려왔다.

“일단락은 됐군.”

리이즈는 조용히 숨어 그들이 자리를 뜨길 기다렸다. 품 안에는 정신을 잃은 아이다가 안겨 있었다.

“이런 게 어디가 신이라는 거야. 젠장.”

소심하게 아이다의 이마에 딱밤을 날렸다. 아이다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힘쓸 때마다 기절해서 매번 고생하는 건 나라고.”

투덜거리며 무언가 읊기 시작했다.

“저주의 신의 힘을 빌려 신의 집으로.”

주위에 바람이 일고 두 사람은 자취를 감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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