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 아들과 이혼하는 법

[BL] 1. 이혼을 하려면 일단 (8)

리마 by 리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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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모부에게 물어본 후로 아슬라는 수리모가 자신과 어떤 관련이 있는지 누구에게도 묻지 않았다. 아슬라가 갑자기 20년 전 일을 묻고 다니는 이유가 궁금했던 사람은 아슬라가 질문할 낌새도 보이지 않자 이해했다. 아슬라는 누가 한 말을 의심하거나 꼬아듣지 않았다. 정말로 아무 일이 없었다고 여겨서 다행이지만 동해는 아슬라가 질문을 시작하자 마음이 쓰였다.

홧김에 입대하는 아이들은 많았다. 가족들과 떨어져서 외진 곳에서 농사와 훈련을 병행하는 삶을 던지고 돌아오는 아들들을 위해서 탈영병의 가족들은 대부분 벌금을 대신 내주었다. 아슬라는 입대하고 20년이 지나서 명령을 받고 집에 돌아왔다. 그동안 쌓인 한이 오늘 터졌을지도 모른다. 동해는 잠깐 아슬라에게 순례객들을 맡기고 남편을 불러냈다.

저녁을 차릴 때가 오자 마니는 아내 부탁대로 소반을 꺼냈다. 집안에 손님들이 많을 때야 나오는 터라 아슬라는 상을 상판부터 다리까지 꼼꼼하게 닦았다. 순례객들이 잠드는 큰방에 밥상이 하나둘 들어갔다. 본인 밥상을 본인이 들고 들어갔다. 마니는 마지막으로 들어가서 문을 닫았다.

오늘 저녁엔 순례객들이 수업을 들으며 식사한대서 아슬라는 가족들과 오붓하게 식당에 앉았다. 동해와 몇몇을 제외하면 어르신들은 집안 사위를 들이며 모셔온 사위들의 어머니들이었다. 각자 먹을 만큼 퍼서 자리에 앉았고 아슬라는 고모 것을 퍼드리려다가 팔에 손이 얹혔다.

“우리는 이따 먹을까?”

“예.”

다행히 아슬라는 평소랑 다를 바 없었다. 아슬라랑 함께 가족들이 먹고 나갈 때까지 남은 음식을 싸두고 설거지감도 미리 치우다가 동해는 가족들과 눈이 마주쳤다. 가족들은 누구도 수저에 손대지 않고 동해랑 아슬라를 바라보기만 했다.

“먼저 드세요. 저희도 금방 갈게요.”

“오셔서 같이 식사해요.”

“슬아도 와서 밥부터 먹어.”

동해는 아슬라랑 둘이서 이야기하고 싶었지만 순례객들은 어김없이 아슬라가 가는 곳이면 어디든지 나타났다. 그래서 남편한테 순례객들을 맡겨놓고 왔는데 가족들 눈에 띌 순 없었다. 아슬라에게 개인적인 얘기기도 하고 동해는 식사 마치고 방에 데리고 가서 이야기할 요량으로 식탁에 앉았다.

어차피 순례객 대상으로 하는 강의도 있어서 마니는 예전에 만들어둔 교안을 저녁 준비하기 전까지 급하게 읽었다. 다행히 첫날은 강의를 안내하면 되었다. 앞으로 할 강의 내용과 각 항목을 배워야 하는 이유를 설명할 동안 순례객들은 익숙하지 않은 좌식 밥상을 앞에 두고 주리를 틀었다. 아슬라가 아직 방에 돌아오지 않아서 마니는 시간을 끌기 위해 순례객들에게 물었다.

“그러면 질문 있는 사람?”

“다리 저려요. 마루에 나가서 다리 내리고 먹으면 안 돼요?”

“아슬라님은 언제 오세요?”

마니가 독단적으로 순례객들을 받지 않으려고 했는데도 다행히 가족들은 마니랑 잘 지내나보다. 밥 한술을 뜨기도 전에 누가 아슬라를 불렀다.

“아까 마니가 그러던데 옛날에 수리모한테 무슨 일이 있었는지 궁금해했다며?”

아무도 순례객들은 어디 갔는지 묻지 않을 때부터 알아봤어야 했다. 마니도 아슬라가 걱정되긴 했겠지만 애한테 사적인 얘기를 가족들한테 다 하고 다녔다. 동해는 아슬라가 하는 말이 집 밖으로만 새어나가지 않길 바랐다. 가족들과 이야기할 적절한 주제는 나중에 남편한테 얘기하기로 하고 동해는 아슬라가 어떻게 답하는지 지켜보았다.

“예. 오늘 학교에 갔다가 수리모의 형을 만났거든요. 제가 알 거라던데 저는 모르겠어서 고모부께 여쭤봤어요. 아무 일 없었다고 하셨어요.”

가족들은 잠시 조용해졌다. 지난 20년간 마니가 한 얘기를 아슬라가 몰라서 안심하기도 했지만 당연히 마니라면 열변을 토하며 부군 후보 사건을 읊었을 줄 알았다. 대체 수리모의 형과 무슨 이야기를 하다가 옛날이야기가 나왔나 동해는 알고 싶었다. 하지만 아슬라가 하는 말부터 정정해야 했다.

“수리모는 아슬란 집주인이랑 쌍둥이인데? 형이 아니라 누나 아니야?”

“형이라고 하셨어요. 남자였어요.”

동해와 덕우, 태화와 수리모는 같은 시기에 태어나서 다 클 동안 꽤 오래 이야깃거리였다. 늘 같이 언급되어서 동해는 아슬란의 지금 집주인과 그 동생은 알았다. 널리 알려진 두 집안에 동시에 쌍둥이가 태어났다고 아직도 유명했다. 하슬라와 아슬라 돌잔치에 초대한 손님들에게 입양했다고 알렸는데도 대를 이어 쌍둥이가 태어났다고 알고 있는 사람도 허다했다.

갑자기 생긴 수리모의 형이 누군지 가족들은 곰곰이 생각했다. 가장 마지막에 고향에서 사브랑으로 이주해온 유리의 딸인 안현이 기억해냈다.

“혹시 사촌형 아니야? 아슬란 윗대 집주인이 쌍둥이였거든. 둘 다 여성이고. 동생분이 아기 낳다 돌아가셨대서 그때 우리 어머니께서 너희 할머니 따라 조문을 가셨거든.”

“낳은 애가 남자애였나?”

“하슬라랑 아슬라 돌잔치 할 때 수리모랑 같이 온 사람 아닌가?”

“기억이 안 나네. 그때 하슬라가 소반을 번쩍 들던 모습은 아직 기억나는데.”

“40년 전인데 선물 기록해놓은 명부가 더 정확하지 않을까?”

“혹시 그 사람인가? 맨날 아슬란에 선물 갖다드리러 가면 입구에서 보는 남자.”

“이번에 돌아가신 분도 남잔데.”

“나랑 같은 사람한테 줬나? 매번 선물 들고 갔는데 편지 한번 안 와서 그 사람이 해먹은 줄 알았는데.”

“선물은 주고 잊는 거니까 선물 이야기는 그만 할까요?”

아슬라가 중년이라고 해도 사람은 사람들 하는 말을 듣고 생각이 바뀌기 마련이다. 행여나 아슬라가 듣고 공연히 아슬란 집안을 나쁘게 볼까봐 동해는 화제를 전환했다.

“그래서 수리모 사촌형이랑 무슨 이야기를 했어?”

옛날이야기가 나왔다니 사촌형은 돌잔치에 갔던 얘기를 했을 것이다. 보통 만났던 사람과 가장 마지막에 만났던 때를 이야기하니 가족들은 40년 전 얘기 한번 하고 어색했겠거니 여겼다.

“그 사람이 수리모를 만나지 말래요.”

“수리모가 그렇게 전해달래?”

“저랑 거리를 두자고 말했다는데 그 말을 믿을 수가 없어요. 그 사람 말로는 20년 전에 무슨 일이 있었다는데 그런 일도 없었잖아요. 지어낸 말일지도 몰라요.”

“사람이 남의 말을 막 지어내고 그러나?”

“좀 이상하네요.”

가족들은 연화가 입을 열자 모두 주목했다. 연화는 하슬라의 남편의 어머니로 가족 중에서는 늦게 하슬란에 들어와서 가족들은 신경을 많이 썼다. 특별한 일이 없으면 말을 꺼내지 않는 성격도 사람들이 주목하는 이유기도 했다. 하슬라의 남편을 만났던 사람들은 연화를 만나고 아들이 어머니랑 성격이 이토록 다를 수 있나 놀랐다.

“요즘 같이 위험한 시기에 남자 혼자 다녔나요? 수리모나 다른 아슬란 어르신 없이요?”

“예.”

“학교에 아이 태워다주러 오지 않았을까요?”

“그 집에 이제 애가 없어요. 아들밖에 없는데 마리한께 장가들었고.”

“마리한네 딸도 졸업했대요.”

“그렇죠. 처음에 마리한께서 혼인 때문에 부르셨대서 그 아이를 말하는 줄 알고 얼마나 놀랐는데요.”

“수리모라고 듣고 나니까 안심이 되더라고요.”

“수리모도 괜찮다고 생각했어요. 학교 다닐 때도 차분하고 꼼꼼했거든요.”

“수리모가 싫다면 어쩔 수 없죠.”

“수리모가 아니어도 혼인할 사람이 있겠지.”

“사실 네가 입대한 줄 모르고 순례오라고 부른 집이 몇 곳 있었어.”

“연쇄살인범만 잡히면 가볼래? 그 집 남편들 몇몇은 세상을 떴거든.”

어르신들 앞이라서 아슬라는 수리모가 정말로 그렇게 말했는지는 알 수 없다고 강조하지 못했다. 가족들은 마리한이 주선한 혼인이 취소된다는 말을 듣자 아슬라가 가도 괜찮을 집안들을 하나씩 언급했다. 당사자만 혼인을 두고 아무 말이 없었다.

원래라면 내일은 두레 행도가 궁에 찾아와 수확까지 지원받을 인력을 요청하는 날이었다. 연쇄살인범이 등장하면서 사람들은 어지간하면 밖에 나오려하지 않았고 손님들이 정말 올지도 알 수 없었다. 그래도 손님을 맞을 준비는 하려고 솔뫼는 방을 나섰다. 궁에 딸린 병영 군인들은 두려워서 생활관 바깥으로 나오려고 하지 않았다. 나랏일로도 바쁜데 아내에게 동행해달라고는 할 수 없었다. 딸이 솔뫼와 함께 나왔지만 나정이는 곧장 창고에 가길 원했다.

“뭐라도 들고 있어야 살인범이 놀라서 도망가지.”

“그럼 부지깽이를 들고 있으면 안 돼?”

“좀 더 긴 게 필요해. 거리를 두게. 범인이 삽을 들고 다닌다며?”

궁에 딸린 창고는 병영에서 들어가는 문과 반대편인 궁에서 들어가는 문이 있었다. 열쇠를 열고 들어가자 시렁마다 빼곡하게 들어찬 물건들이 보였다. 나정이는 농기구를 놔두고 고민했다. 딸이 선택하게 시간을 주려고 뒤로 물러서다가 솔뫼는 한소리 들었다.

“아빠, 눈에 보이는 데 있어.”

“살인범도 여긴 못 들어와.”

솔뫼는 나무로 세워진 장들을 둘러보았다. 자신이 혼인하고 나서 삼촌이랑 같이 이곳에다 오래된 문서며 잘 사용하지 않는 물건을 넣어두었다. 조사실 창고는 작아서 오래된 사건 자료도 이곳에 옮겨두었다. 마지막 보고서 작성 후 20년이 지난 사건들만 그랬다. 마침 등지고 있던 장이 사건 자료장이라 솔뫼는 요즘 다시 활동하는 연쇄살인범에 관련된 사건책을 찾아보았다. 형산에게 가져다주면 걸음을 줄였다고 좋아할 것이다. 여러 권이었고 맨 위 가장 왼쪽 시렁에 올려두었던 기억이 났는데 맨 위 시렁에는 책이 보이지 않았다. 나정은 쟁기를 두 손으로 쥐고 나타났다.

“온 김에 책도 가져가자. 연쇄살인범 조사도 하게.”

“나정아, 엄마가 가져가시지 않았어?”

“아니, 엄마 오늘 너무 바빠서 아침부터 저녁까지 책상에서 드셨는데?”

창고에 짐을 옮길 때 솔뫼는 분명히 이곳에 커다란 책 6권을 얹었다. 시렁이 가라앉을까봐 내리고 싶었지만 조사실 자료가 많아서 시렁 자리가 부족해 그대로 6권을 얹어두었다. 그만한 사건 기록은 전무후무했다. 솔뫼는 빈 시렁에서 눈을 뗐다.

“엄마한테 들렀다 주방에 가자.”

마니가 용케 순례객들을 피해서 가족들에게 언질을 준 덕분에 순례객들은 아슬라가 따로 저녁을 먹고 돌아와도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알아채지 못했다. 단지 아슬라가 돌아와서 연쇄살인범이 와도 막아주겠다 싶어서 기뻐했다.

저택 내 밭은 어르신들께서 관리하신다지만 순례객들은 보기 드문 작물들을 어떻게 키우는지 보고 싶었다. 학교에서 실습할 때 기르지 못했던 작물들을 기대하면서 순례객들은 어둠 속에서 소곤거렸다. 아슬라에게도 한 해 먹을 양식을 준비하는 과정은 중요했지만 어르신들 앞에서 하지 못한 말이 계속 머리에 맴돌았다. 암만 생각해봐도 수리모를 만나서 정말로 그렇게 생각하는지 물어봐야 납득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문상을 가서 물어볼 말은 아니라서 아슬라는 언제쯤 가면 좋을지 헤아렸다. 어르신들 도와서 감자싹을 심고 고구마순을 틔우고 나면 적당하겠다. 수리모랑 얘기할 생각을 떠올리자 별채에서 덮었던 이불에서 나던 향기가 떠올랐다. 꿈도 꾸지 않고 아슬라는 푹 잠들었다.

어둠만 가시고 나서 마리한은 창고 문을 열었다. 형산도 연쇄살인범 사건기록책이 어딨는지는 알았다. 그만큼 두껍고 여러 권으로 된 책은 없었다. 당시 조사관이던 미리가 여러 지역을 돌아다니며 증언을 기록해둔 작은 책들은 사건기록책과 표지가 같은 천이었다. 남편은 어젯밤 마리한이 열람하려고 가져갔길 바라며 집무실에 방문했다. 형산은 뒤를 돌아 책들이 사라진 시렁 맞은편을 보았다. 초기 사건에서 발견된 증거물들을 담아둔 함들은 그대로 있었다. 마리한은 함을 꺼내어 창고 밖으로 나갔다.

함 속에는 실오라기가 마른 종이에 싸여 있어야 했다. 피해자의 입이었을 곳에서 발견된 증거물로 초기 몇 건에서만 발견된 살인범의 흔적이었다. 형산은 빈 함을 닫고 창고로 들어갔다. 당시 사건을 맡았던 미리는 형산의 어머니와 친해서 어릴 때 형산은 어머니 손을 잡고 조사관실에 놀러가기도 했다. 그때부터 은퇴할 때까지 미리는 매일 그날 수사한 사건 내용과 발견한 증거물, 증인을 일지에 기록해두었다. 어린 형산은 미리가 매일 남기던 일지를 보고 감탄했다.

이제 샤로에서 연쇄살인범을 알 수 있는 자료는 그것밖에 없었다. 창고 문이 잠겼는지 다시 확인하고 마리한은 조사관실로 향했다.

아슬라랑 둘이서 아침을 준비하려고 했는데 순례객들은 마니가 이불에서 나올 때 이미 옷까지 갈아입고 기다렸다. 여러 명이 같이 물동이를 이고 가자 아침 준비는 금방 끝났다. 막 아침상을 치우는데 대문 밖이 소란스러웠다. 대문을 향해 가면서 동해는 예상하던 상황이 이르다고 여겼다. 두 명은 보호자가 없는 아이들이지만 가족이 있는 순례객들은 아들을 안전하게 집에 두고 싶을 것이다. 어제오늘이면 사건 기록이 각지에 전달되어 집사청 앞에 붙었을 테니 오늘 아침이면 도착할 법 했다. 문을 열자 방문객들이 아우성쳤다.

“아, 형님! 오늘 궁에 정말 안 가시렵니까?”

“어제는 모이자고 하셨어야죠. 이래가지고 올 겨울 선거에서 방어가 되겠습니까?”

순례객들을 맞이할 때가 아니면 어떤 사람이 밖에 있을지 모르니 마니가 대문에서 손님을 먼저 맞곤 했다. 규모 있는 집안이 아니라도 샤로에서는 일반적인 행동이었다. 마니 손님이니 동해는 설거지하는 마니를 불러와야 하나 고민했다. 두레 간부들은 가족들이 보내는 눈총을 피해 슬그머니 쭈그러들었다. 순례객을 데리러 온 가족들처럼 두레 간부들은 가족들로 김밥처럼 둘둘 싸여 왔다.

동해가 몰아서 일을 처리하고 온 덕에 마니는 온 가족이 맛있는 음식을 해먹고 안전하게 집안에 있을 줄 알았다. 동해가 보이지 않자 마니는 먼 옛날 여러 수레를 연결해 땅 밑을 달렸다는 교통수단처럼 아슬라와 순례객들을 달고 집안을 돌아다녔다. 방에도 없고 동해는 식당에도 다시 오지 않았다. 도서관에 갔을까 싶어서 우르르 몰려가던 무리는 동해 뒤를 따르는 사람들을 보고 멈췄다.

순례객 가족들과 두레 간부 가족들 사이에 교집합이 있긴 했다. 두레 간부들은 속을 앓았다. 위기상황에 아들이 철없이 남의 집에 남아서 밥을 축냈다. 그만둔대도 임기가 올 겨울까지라 계속 마니 얼굴을 봐야 하는데 아들은 좋다고 다과상에서 또 덥썩덥썩 집어먹는다.

하슬란 사람들은 세 끼 밥 외에는 입에 대는 것이 물뿐이라 동해는 순례객들이 배가 많이 고픈가 걱정스러웠다.

“아침밥이 적었죠?”

“아닙니다.”

“아뇨, 잘 먹었어요. 한창때라 그런지 잘 먹네요.”

“하슬란 밥상이 맛있어서 그랬나봅니다.”

두레 간부들은 소싯적에 하슬란에 순례를 왔지 오늘 아침밥상은 보지도 않았는데 대뜸 부인했다. 다른 집 집주인들이나 그 딸들도 곧바로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가족들이 눈치를 주자 순례객들은 다과상에서 손을 뗐다. 가족들이 찾아오지 않은 다른 순례객들도 덩달아 젓가락을 놓자 아이들도 자기 젓가락을 놔두었다. 아슬라는 아이들에게 자기 다과 그릇을 밀어주었다.

“먹어도 돼.”

아슬라가 하는 말을 듣고 안심한 아이들은 다시 젓가락을 들었다. 순례객들이 마음에 걸렸는지 아이들은 사람들이 이야기에 집중할 때만 재빨리 하나를 집어서 입 안에 넣고 최대한 입을 움직이지 않으며 씹었다.

아이들은 말린 과일보다 찹쌀부각을 더 좋아하나보다. 아슬라는 손님들 그릇을 슥 훑어보았다. 손님들 그릇에서 가장 먼저 없어진 것도 찹쌀부각이었다. 다음에는 누룽지만 주지 말고 찹쌀부각도 주면 수리모가 좋아할지 모른다.

아슬라가 생각에 잠긴 사이 두레 간부들은 오늘 궁에 가기 전에 제출해야 할 서류를 작성했다. 마침 샤로에서 유일한 측량기사인 동해가 자리에 있어서 지적 사본도 확인했다. 작년과 다른 곳은 없었고 두레 인원도 달라지지 않았다. 마리한께 요청드릴 인력 수를 마니가 기입할 동안 간부들은 끝에 앉아서 애들이 잘 먹나 보던 아슬라만 관찰했다. 보통 문가에서 의논만 하고 마니가 서류를 작성했지 간부들은 이렇게 하슬란 저택 안에 방문하진 않았다. 그들은 오로지 밝을 때 아슬라를 보러 왔다. 수영에서 대민지원을 받았던 해안가 친척들 말로는 아슬라 한 사람이 장정 세 명 몫을 하고 남는댔다. 넓은 어깨와 수군 생활로 다져진 팔뚝은 간부들이 상상하던 모습과 딱 맞았다. 간부들은 서로 눈빛을 교환하다가 입을 열었다.

“마리한께서 사브랑에 배치하셨다니 이번에 아슬라님을 요청하면 어떨까요?”

“그럼 편애죠. 병영 애들이 새참 얼마나 좋아하는데.”

간부 가족들은 간부들을 놔두고 낮은 목소리로 동해와 대화했다.

“그동안 돌봐주셔서 감사합니다. 가면서 저희 애를 데리고 갈게요.”

“저희 아이도요. 받아주셔서 정말 고마웠습니다.”

“아주머니, 저희도 고마웠어요. 이제 가볼게요.”

“그래도 요즘은 위험한데 여기서 머물면 안 될까?”

“아빠가 안 계셔도 저 혼자 밥 해먹을 수 있어요.”

“저도요.”

두레 간부들은 무작위로 선정되어 오는 군인들보다는 확실하고 안정적인 대상을 원했다. 지난 겨울 두레 구성원 중 부고는 들리지 않았고 아슬라만 있으면 올해는 일찍 끝내고 하루이틀 쉴 수 있겠다. 아슬라를 뽑아올 궁리를 하던 두레 간부들은 들려온 말에 신경이 쏠렸다. 아이들은 중년 남성들이 단체로 돌아보자 흠칫했다.

“아버지 어디 가셨어? 조금 있으면 두레 정기소집인데?”

평생 수리모는 궁보다 집이 편안하다고 여겼다. 마리한께서 두레 간부들을 맞이하게 도와달라고 수레를 보내시자 태화는 동생을 수레에 태웠다. 손님 맞을 준비는 이미 끝났고 수리모가 더 도울 일은 없었다. 충격받고 회복되지 못한 동생이 범행 현장에서 멀어지자 태화는 마음을 놓았다.

지적도 검토했고 두레 가입자인 사브랑 성인 남성 인구도 확인했다. 두레에서 가져올 서류가 적실한지 마리한은 나정과 함께 예상 서류를 작성해서 검토했다. 수리모와 솔뫼가 간식을 가져오자 두 사람은 반갑게 맞이했다.

“바쁠 텐데 챙겨줘서 고마워요.”

“잘 먹을게요.”

두레 간부들에게 내갈 상은 솔뫼 혼자 맡아도 되었다. 하지만 수리모를 부를 기회가 쉽게 오지 않았다. 형산은 구운 감자를 보자 당기던 목이 편안해졌다.

다행히 손님들은 아직 도착하지 않았고 손님상은 대령할 준비를 해두었다. 이제는 손님이 오지 않으면 문제였다. 간식까지 준비해드리고 나니 수리모는 며칠 보지 않았지만 궁에서 마주쳤던 사람이 어디에 있을지 궁금했다. 마리한께서 아슬라를 병영에 배치하셨을 가능성이 제일 높았다. 생각이 소리가 나는 것도 아닌데 마리한은 곧바로 대답했다.

“아슬라는 하슬란 저택에 배치했습니다. 흉흉한 때라서요.”

“그렇네요.”

사촌형 말이 맞다. 아슬라도 또래랑 어울리면 좀 더 활기차고 도움될 것이다. 거리를 두다보면 아슬라가 보이지 않아도 찾지 않게 될 것이다. 살아오면서 많은 것들이 멀어지다보니 어느새 잊혀졌다. 문득 다시 떠오를 때도 그리 반갑고 간절하진 않았다. 집무실을 나서려는데 경비가 마리한을 찾았다.

“두레 간부들이 왔습니다. 하슬란네 아슬라님도 동행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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