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이 지더라도 그대가 남아있다

은혼 카츠라 드림 커미션 글입니다

카츠라는 엘리자베스가 내민 손수건을 빤히 바라보았다. 한 번 피로 물든 천은 아무리 깨끗하게 세탁해도 그 흔적이 남아있었다. 비가 축축하게 신발 끝을 적시던 흐린 날에, 이름도 모르는 어떤 아가씨가 베푼 친절.

재회하게 될 줄은 몰랐는데, 어떻게 된 연유인지 다시 얼굴을 마주하게 되었다. 이미 처음의 깨끗한 모습은 남지 않아서 돌려주기도 뭐하고, 버리려고 하기를 몇 번. 버리려고 할 때마다 엘리자베스가 다시 손에 쥐어주는 통에 옷 소매에 넣어두고 다니게 되었다. 

마침 지나가던 케이코 경을 만나게 되어 되돌려 주려던 사이, 진선조의 오키타 소고가 나타나 재빨리 몸을 피하느라 결국 전해주지는 못했다.

‘다음주, 공원에서 만나자’ 라는 이야기만 남긴 채 사라진 지 일주일 째.

약속시간까지 한 시간도 채 남지 않은 시간에 옷소매를 다시 뒤졌을 때는 손수건이 사라지고 없었다. 그야말로 손수건 실종사건이다!





보드라운 갈색 단발머리의 여성이 조심스럽게 해결사 사무실 안으로 들어왔다. 신파치가 내어준 차를 마시고는 향이 좋은 황차라며 살짝 미소 지은 케이코는 꽉 다물고 있던 입을 열었다.

“벚꽃을 보고 싶어요.”

의뢰의 사연은 이랬다. 꽃구경을 꼭 하고 싶어서 봄만 기다렸는데, 하필 감기에 걸려 집에서 요양을 하는 사이에 비가 내려서 벚꽃이 일찍 저버린 것. 풍성한 게. 핀 것이 아니라도 좋으니 꼭 벚꽃을 보고 싶다는 것.

“뭐? 올해 벚꽃은 이미 다 졌잖아.”

콧구멍을 후비던 긴토키는 무슨 그런 의뢰가 다 있냐며 불평불만을 늘어놓았다.

“역시 불가능하겠죠….”

“당연하지! 이미 진 걸 어떻게 찾아 내냐고!”

“어쩔 수 없네요. 무리한 의뢰 죄송합니다.”

정중하게 사과하며 자리에서 일어난 케이코의 품에서 주머니가 떨어졌다.

“케이쨩, 이거 떨어뜨렸다해!”

살짝 매듭이 풀린 주머니 틈으로 엄청난 양의 돈이 모습을 드러냈다.

“잠…깐! 아가씨, 그거 전부 의뢰비야?”

“네? 네….”

“전부해서 얼마?”

“우선 계약금으로 XX 정도 들고 왔어요.”

“잔금은?”

“XX정도 생각하기는 했는데…, 필요하면 더 낼 수도 있어요.”

“할 수 있어.”

“네?”

“이 긴토키님 사전에 불가능은 없다. 벚꽃 정도야 금방 찾아주지.”

케이코는 환한 얼굴로 정말 그렇냐며 기쁘게 주머니를 긴토키 앞으로 내밀었다. 그리고 조만간 찾아오겠다며 고맙다고 인사를 재차하고 저 멀리 사라졌다.

“잠깐만요, 없는 벚꽃을 어떻게 만들어 냅니까!”

태클을 거는 신파치의 말을 무시한 채로 긴토키는 오랜만에 큰 돈이 들어왔다며 휘파람을 불었다.

“기분이다. 카구라. 옛다, 용돈.”

“얏호! 용돈이다 용돈!”

“저녁은 초밥 먹을까?”

“아니! 의뢰를 못 들어주면 그건 돌려줘야 하잖아요!!!”

좋다며 방방 뛰는 카구라와 벌써 돈을 흥청망청 써버릴 생각만 하는 긴토키 사이에서 신파치만 머리를 쥐어뜯었다.

물론, 고급 초밥을 먹을 때에는 조용했다. 배가 든든해진 세 사람은 이제 고민에 빠졌다.

돈에 눈이 멀어 말도 안되는 의뢰를 받아버렸으니까.

“어디 에도에 벚꽃 핀 곳 없으려나? 공원이라던가.”

“공원에는 빈 나무 밖에 없다해.”

“지금이라도 솔직하게 말하고 거절하는 건요?”

“우리 돈 없잖아. 일단 밖으로 나가보자. 누구 한 명쯤 개인용 벚꽃을 키우고 있을 수도 있지.”

“개인용 벚꽃이 뭔데요! 그런 거 있을 리가 없잖아요!”

“아니, 어떻게 단언해. 있을 수도 있지.”

“그런 거 없다고요! 100% 없다고요!”

“나는 105% 있다에 내 인생 전부를 걸어본다.”

“아니 확률이 100%를 넘으면 어떡하는데요?! 그리고 인생이 그정도로 가볍냐고요!!!”

밖으로 나온 세 사람은 익숙한 길부터 걷기 시작했다. 나무가 많은 곳은 역시 공원이지! 하며 호기롭게 도착했지만 역시나 꽃잎이 전부 떨어져 앙상한 나뭇가지 뿐이었다.

“잠깐만! 천재적인 생각이 났어.”

“보통 긴쨩이 말하는 천재적인 생각은 전부 바보 같았다해.”

무슨 소리냐며 카구라의 머리에 딱밤을 한 대 친 긴토키는 비장하게 말했다.

“꽃잎이 없으면 달면 되잖아!”

“네…?”

생각해보면 그럴 듯 하다. 벚꽃을 못 보는 건 잎이 전부 떨어졌기 떄문이니, 꽃잎을 붙인다면 그건 벚꽃 아닐까?! 

“그런데요. 꽃잎은 어디서 구하죠?”

“근처 꽃가게라도 가면…”

“꽃가게에서 벚꽃잎을 팔리가 없잖아요. 우리가 만들어야 하는 건 벚꽃이라고요! 나무에 핀 꽃이라고요!”

“종이접기로 만들면 안되냐해?”

카구라의 말에 긴토키는 맞다면서 웬일로 맞는 말을 한다며 머리를 복복 쓰다듬었다. 신파치가 구석에서 카구라가 접고 놀다 남은 색종이라며 상자를 내밀었다. 긴토키가 웃음을 멈추지 않으며 안을 뒤지는데 빨강, 검정, 살구색, 보라색 등 온갖 색이 있었는데 단 하나 핑크색만 없었다. 심지어 은색도 있었는데!

“아, 핑크색 다 써버렸다.”

“대체 왜!!!!”

“돼지를 만들었다해.”

하필!!!!!! 긴토키의 절규에 신파치는 다 같이 근처 잡화점에 가서 색종이를 다시 사면 된다고 말했다. 그 소리에 곧바로 뛰쳐나가 잡화점 앞으로 갔지만 안타깝게도.

‘내 새로운 꿈을 찾아 떠납니다. 모두들 안녕히 계세요.’

따위의 문구가 적혀져 있을 뿐이었다.

“새로운 꿈이 뭔데!!!! 그런 거 꿀 바에 잡화점이나 계속 운영하라고!!!!!”

긴토키가 볼멘소리를 내며 괜히 잡화점 문을 발로 내리찼다.

“핑크! 핑크!!! 어디 핑크 없냐!!!”

“이건 안되냐해?”

카구라가 땅바닥에 떨어진 호스트클럽 전단지 -마젠타색 배경에 개성넘치는(못생긴) 남자들이 괴상한 포즈를 하고 있다- 를 가리켰다.

“잠깐! 아무리 그래도 저건 좀….”

“오! 좋은데?”

“아니, 좋다니요!”

“뭐~ 저것도 핑크 아니냐?”

“핑크가 아니라 마젠타잖아요 보라색! 저런 벚꽃이 어디있냐고요!”

“왜 없을 거라 생각하냐해!”

“맞아! 맞아! 가능성이 0는 아니잖아!”

긴토키가 그걸 주우려고 하는 순간, 동네 똥개가 나타나 그것을 먼저 물었다.

“그건 내꺼야!”

호통에 놀랐는지 미친듯이 뛰기 시작했다. 강아지는 숨이 헉헉 댈 정도로 온 힘을 다해 뛰었고, 긴토키와 가쿠라가 그 바로 뒤를, 한참 멀리 떨어진 뒤에 신파치가 숨을 헐떡이며 겨우겨우 따라왔다.






한편, 카츠라는….


「손수건 연쇄실종사건!!!!!!」


아니! 

연쇄가 아니잖아!!! 단발이잖아!!!! 


“뭐가 됐든 지금 당장 찾지 않으면 케이코 경과의 만남이…!”


‘네? 제가 드린 손수건이요? 잃어버렸다니 카츠라씨는 그런 남자였군요.’


최악의 시나리오를 떠올리던 카츠라의 머리 위에 엘리자베스가 바나나껍질을 올려놓았다.

팔짱을 낀 채 눈을 감고 있던 카츠라는 눈을 번쩍 뜨고는 자리에서 뛰어올랐다.


“그것만큼은 안된다!”


하늘에 닿을 듯 폴딱 뛴 덕분에 저 멀리 얼룩진 천을 발견했다. 바람에 날아갔는지 풀 위에 곱게 널려있었다. 그걸 붙잡으려는 순간, 고양이가 튀어나와 입에 앙 문 후 뒤도 돌아보지 않고 뛰어갔다.

“이리 내놔!!!!!”

한참을 뛰고 뛰어 고양이도 카츠라도 질렸을 무렵, 고양이는 냅다 오토바이 아래에 숨어들었다.

“좋았어!”

이대로 고양이에게서 손수건을 뺏기만 하면 되었다. 그렇게 다가간 순간에.

“카츠라!”

…별로 놀랍지 않겠지만? 모두가 예상했듯이 그 오토바이는 진선조의 것이었다! 소고가 날리는 무기를 피해 도망치던 카츠라는 그만 고양이를 놓치고 말았다.

이럴수가…. 얘 이제 어쩌냐?


“아! 힘들어…! 돌아가면 파르페 오백개쯤 사먹어주마.”

“나는 푸딩이 좋다해!”

“그래~ 그래~ 뭐든 사줄게. 전단지도 저 똥개한테 뺏었으니까!”

라고 말한 순간, 전단지가 바람에 날아가 진흙 위에 철퍽하고 떨어졌다.

“…”

순간 모두 정적이었다.

“물에 잘 씻으면….”

마침 지나가던 새가 그 위에 똥까지 쌌다.

“더럽다해….”

“더러워요….”

“더럽지….”

그 순간 긴토키의 눈에 저 멀리 얼룩덜룩한 붉은 색 천이 보였다.

“아싸! 오늘도 행운의 여신은 나한테만 입맞춤 해준다고! ”

“잠깐!!! 그건 아예 다른 장르잖아요!!!!”

“몰라! 어떻게든 되겠지!”

긴토키가 터벅터벅 다가가 손수건을 줍는 순간이었다. 휙, 하고 나타난 장발의 사내가 먼저 낚아챘다.

“어이, 즈라잖냐.”

“즈라가 아니라 카츠라다!”

“뭐, 그런 건 대충 넘어가고 그거 내놔라!”

“안돼!!!!!!!!!!!!!!!”

둘이 손수건을 잡고 양쪽에서 자르는 사이 카츠라를 뒤쫓은 소고가 칼을 꺼내 들고 휘둘렀다. 그 탓에 손수건은 금방 조각조각 찢어졌다.

“아 뭐야!! 이러면 더이상 꽃을 못 만들잖아!”

긴토키 vs 소고 vs 카츠라의 싸움은…!!!!!!!

놀라울 만큼 싱겁게 끝났다. 긴토키와 소고가 싸우는 사이에 카츠라가 도망치고, 소고는 긴토키와의 싸움을 뒤로 하고 카츠라를 쫓았다. 결론적으로 소고를 따돌리고 다시 공원으로 돌아온 카츠라에게 남은 것은 찢어진 손수건 뿐. 아니, 그건 이제 손수건이라고 말하기도 어려운 천조각이었다.

어쩔 수 없지만 케이코 경에게는 솔직하게 말하고 다음에 새걸 사줘야….

못내 가슴 속의 찝찝함을 털어내지 못했지만 카츠라는 망설임을 베어냈다. 한손에 쥔 천조각을 들고 휴지통에 넣으려던 참이었다.

“아, 그러고보니 즈라. 너 말이야.”

“즈라가 아니라 카츠라다!!!!!”

그 순간이었다.

“카츠라씨?”

부드러운 여성의 목소리에 카츠라는 흠찟하고 놀랐다. 카츠라의 앞에는 아담한 체구의 갈색빛 머리카락을 가진 여성, 그러니까 텐도 케이코가 서있었다. 양손에 찢겨진 손수건을 받은 채로.

“케이코 경, 그게… 그….”

“고마워요.”

“응…?”

“고마워요…. 정말로.”

자초지종을 다 설명할 새도 없이 소고가 다른 진선조 인원들과 함께 공원을 찾아와 순식간에 쑥대밭이 되었다. 그렇게 손수건 분실사건은 막을 내었다!!!


“아가씨, 받는 이런 말 하기 뭐하지만 이렇게 큰 돈을 줘도 돼?”

이거 처음 말했던 금액보다 배는 되잖아. 케이코가 내민 돈 주머니를 세어보던 긴토키가 웬일로 맞는 말을 했다.

케이코가 도착하자마자 있지도 않은 악덕 규정을 내밀며 계약금은 돌려줄 수 없다고 말하려고 했는데 오히려 케이코는 손사래치며 답했다.

“아뇨, 정말 아름다운 벚꽃을 봤는 걸요.”

케이코는 재차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밖으로 나와 손가방 안에 손을 집어넣었다. 얼룩덜룩한 천조각이 실로 엮여진 모습. 그걸 바라보며 아주 행복하게 웃었다.


지금으로부터 약 일년 전의 일이다. 벚꽃이 피어난 봄날, 벚나무 사이를 걷고 있었다. 가족들이 전부 교통사고로 죽은 뒤, 집에만 처박혀 나오지 않은 사이에 꽃은 아름답게 피어 흐트러지며 흩날렸다. 이때 텐 케이코는 삶의 의지를 전부 잃은 상태였다. 제대로 씻지도 먹지도 않아 산발에 깡 마른 몸. 옷은 잠옷에 맨발이었다.

주변 사람들의 시선 같은 게 느껴질 여유도 없었다. 뺨에서는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그 순간 누군가 케이코의 손목을 붙잡았다.

낯선 천인 남자들이었다. 뭐라 말하는 것 같은데, 들리지도 않았다. 얼마 지나지않아 그 남자들은 양쪽에서 케이코를 잡고 질질 끌고 어디론가로 데려가려 했다. 거부해야 하는데, 그럴 힘 조차 없었다.

그 순간이었다. 폭발음과 함께 어떤 남자가 나타났다. 깜짝 놀라 바닥에 주저앉아 몸을 웅크리고 있는데, 그 남자가 나타났다. 뭐라고 이야기하는 것 같은데 들리지 않았다. 보이는 건 흐릿한 인영과 쏟아지는 듯한 벚꽃의 비.

정신을 차렸을 때, 불한당은 전부 사라지고 없었다.

서로를 기억하지 못하는, 첫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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