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 소설

231129 N님 2천자

클레이 군웅담 로로라디

“꼴사납다고 생각해?”

 

케테르 생츄어리, 지상의 마을 변두리.

 

라디리나의 말에 로로와는 깜짝 놀라 고개를 젓는다. 낡은 모포 위에 누운 그의 몸은 엉망이다. 몸 전체적으로 찰과상 다수, 왼쪽 다리에 열상, 그리고…마수와 싸우면서 이리저리 구른 탓이겠지. 천상의 높으신 분들은 뭘 하는지 모르겠다며 파천의 기사가 한바탕 난리를 피워주지 않으려나, 한숨을 쉬던 마을 사람들의 얼굴이 떠오른다. 그들이 이 모포와 구급상자를 건네주었다. 이걸로 어찌어찌 응급처치는 가능할 듯싶다.

 

“세계수의 힘이란 거, 편리하네…아야, 더 굴러도 되겠어?”

“그래도 너무 나서지는…마. 다치잖아. 모모케도 걱정할 거야.”

“무슨 소리야. 드래그리터가 앞장서지 않으면 어떻게 싸워? 그렇지, 모모케? 아야, 좀만 살살 소독해! 아프잖아…”

 

로로와는 아직 자신의 힘을 완벽하게 다루지 못한다. 고로 사람을 살리기는커녕, 치료하는 권능 같은 건 발휘할 수 없다. 할 수 있는 건 상처를 소독하는 정도. 문제는 소독인 만큼 무지 따갑고 아프다는 거지만. 라디리나가 부러 엄살을 부리자, 로로와는 깜짝 놀라 뒤로 자빠진다. 뭐야, 그렇게까지 놀랄 필요는 없잖아. 농담이야. 그 말에 안심한 듯, 한숨을 내쉬며 구급상자의 뚜껑을 열었다.

 

“안에는 뭐가 들었을까…”

 

‘휴먼과 엘프의 몸에 잘 듣는 약만 넣어놨다’는 말대로 바이오로이드인 로로와에게는 영 낯선 물건들이었다. 딱 봐도 알겠는지 라디리나가 손가락을 들어 약 하나를 가리킨다. 그 연고를 바르면 된다는 것 같았다. 아, 로로와는 조금 멍청한 목소리를 내며 그것을 집어 손 위에 쭉 짜낸다. 그 사이 라디리나는 자신의 팔을 꽉 조인 갑주를 풀어 바닥에 내려놓았다.

 

“보이는 대로 다 바르면 돼?”

“어, 그러라고 있는 연고니까.”

“…그리고?”

“저기 갈색으로 된 스티커 같은 거, 보이지? 그걸 상처 부위에 붙이면 돼. 그리고 그 위에 하얀 붕대를 감으면 되는데…덧나지 말라고 하는 거야. 너는 이해하기 힘들겠지만, 종족의 차이라는 거라서.”

 

라디리나가 어깨를 으쓱인다. 로로와는 그의 말대로 상처란 상처에 모조리 연고를 펴 발랐다. 중간중간 라디리나가 악, 으악, 비명을 지르는 통에 놀라긴 했지만 따가워서 어쩔 수 없으니, 네가 무시하라는 말에 무시하기로 했다. 모모케는 공중제비를 돌며 두 사람의 모습을 흥미롭게 지켜보고 있었다. 찰과상은 대략 처치가 끝나, 스티커를 – 이름은 대략 밴드라는 모양이었다 – 붙이고 위에 붕대를 감는 과정만이 남았다. 문제는 왼쪽 다리의 열상인데, 이것은 로로와와 라디리나가 어떻게 할 수가 없어 대충 처치하고 좀 더 이동해 큰 마을의 치료를 받아보기로 했다.

 

“라디.”

“왜?”

 

붕대를 감던 로로와가 무거운 분위기로 말을 꺼낸다. 라디리나는 ‘별거 없다’는 느낌으로 대답하려고 노력했다. 두 사람의 싸움은 그런 식이다. 전방에서 모든 걸 받아내는 라디리나와 뒤에서 돕는 모모케, 로로와. 라디리나의 등은 싸울 때 한없이 넓어 보인다. 모든 것을 지킬 수 있을 것 같다. 그런데 싸움이 끝나면, 그만큼 작아보이는 것이 없다. 왜 이런 것이 나를 지킬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지? 나는 왜 이런 것에 의지하려고 했지? 라디리나가 나약하다거나, 한심하다거나 – 그런 의미가 아니다. 오히려 라디리나에게 의지하기만 하는 자신이 한심한 것이다.

 

“…미안해.”

“뭐가 미안한데?”

“난 항상 뒤에서…도움도 되는지 모르겠고…”

“무슨 소리를 하나 했더니만 너는 또…나는 너처럼 뒤에서 깔짝대고, 식물을 자라게 하거나, 그런 걸 못 하니까 몸으로 때우는 거잖아. 모르겠어? 우리에게는 각자의 역할이 있는 거라고.”

 

라디리나가 손을 들어 로로와의 머리 위로 탁, 올린다. 그리고는 마구잡이로 헝클어뜨린다. 아니, 라디. 라디! 이게 뭐야…엉망이 되잖아! 새빨개진 얼굴로 그가 반박하자, 뭐야, 이제야 웃는 거냐고. 라디리나가 답한다.

 

“그러니까, 다음 전투에서도 그 뭐지? 담쟁이덩굴 같은 거, 잘 부탁해.”

“…나도.”

“나도?”

“나도…계속 앞을 부탁해도 될까, 라디?”

“물론이지. 서로 그러라고 있는 거 아니겠어. 됐고, 들어가자. 여기서 잘 거 아니잖아. 오늘은 천장 있는 집에서 잘 수 있겠네. 저 마을 사람들 덕분에.”

“응…”

 

라디리나가 끙, 소리를 내며 모포에 눕힌 제 몸을 일으켰다. 로로와는 엉망이 된 구급상자 안을 정리한다. 자리를 정리한 두 사람은 마을로 향했다. 몸은 엉망이지만, 마음만큼은 편안히 잘 수 있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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