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위스테 드림 단편 모음집

감독생의 냥냥펀치

에이스 트라폴라, 듀스 스페이드, 잭 하울, 에펠 펠미에 드림

* 페잉 리퀘스트로 쓴 글입니다.

나이트 레이븐 칼리지의 학생들은 모두 악동이다. 사고를 적게 치는 학생은 있어도, 자의로든 타의로든 아무 문제도 일으키지 않는 녀석은 없다. 그건 학교에 대한 애착과 별개로, 교사진도 학생들도 모두 공감하는 이야기였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재미있는 점이 있다면, 학생 대부분이 ‘아무리 그래도 나 정도면 다른 녀석들보다는 사고를 덜 치지’라고 생각하는 게 아닐까.

자신은 다른 이들보다 나으리라 생각하는 오만, 혹은 건방.

1학년 A반 소속인 하츠라뷸 기숙사의 두 학생, 에이스 트라폴라와 듀스 스페이드 또한 그 보편적인 착각에 빠진 집단에 속했지만……. 유감스럽게도, 그 착각은 오늘 완전히 깨지고 말았다.

 

“어이, 듀스. 분명 귀랑 꼬리만 생기는 마법약이라고 하지 않았어?”

“몰라. 나는 그렇게 들었지만, 진짜 그런 약인가 아닌가는…….”

“뭐야, 그 무책임한 말?!”

“아니. 그러는 너도 재미있겠다고 끼어들었으면서 왜 내 탓만 하는 거야?”

 

언제나처럼 티격태격 한 마디씩 주고받는 두 사람의 표정은 평소와는 조금 달랐다. 순수한 짜증이나 짓궂음은 느껴지지 않는 당혹스러움과 초조함. 단순히 서로가 마음에 들지 않거나 약을 올려야겠다는 마음에 말싸움하는 게 아닌, 서로를 책망하는 듯한 언행들.

중원의 구석. 나무 그늘에 머리를 맞대고 아웅다웅하는 두 사람은 자신들 맞은편에 선 작은 존재감을 바라보며 한숨 쉬었다.

 

“후우, 어쩌지? 그림이라도 불러올까?”

“그 녀석을 불러 와봐야 ‘이 몸은 고양이가 아니라고!’라면서 화만 낼걸?”

“그건……, 그렇지.”

 

에이스의 생생한 성대모사에 듀스는 질린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늘 뭉쳐 다니는 무리에서 혼자만 쪽지 시험을 통과하지 못해 이 자리에 없는 그림은 지금 교실에 남아 다른 낙제생들과 함께 크루웰의 특별 지도를 받고 있을 터였다.

그러니 어차피 데려오고 싶어도 데려올 수 없지만, 두 사람은 지금 문제를 해결하고 싶은 마음이 너무 간절해 그림이라도 붙잡고 싶은 심정이었다. 평소 그 마수가 사건을 해결하긴커녕 일을 키워놓기만 한다는 걸 알면서도 말이다.

그때.

 

“두 사람, 뭘 하는 거야?”

“헉!”

 

갑자기 뒤에서 들려온 익숙한 목소리에, 두 사람이 동시에 펄쩍 뛰어올랐다.

놀라운 속도로 황급히 뒤를 돌아보자, 막 교실에서 나온 듯 보이는 잭과 에펠이 어리둥절한 얼굴로 두 사람을 바라보고 있었다.

 

“에, 에펠! 잭!”

“그, 아무 일도 없어. 응!”

 

두 사람은 누가 보아도 과장된 몸짓으로 고개를 젓고 손을 흔들었다.

‘아무리 봐도 무슨 일이 있는 거 같은데.’ 동시에 같은 생각을 한 잭과 에펠은 서로를 힐끔 바라보았다. 자신들은 그냥 아는 뒤통수들이 보이길래 말을 건 것뿐이었는데, 아무래도 말을 걸기에 좋을 때는 아닌 모양이었다.

그래서, 두 사람은 왜 곤란해하는 걸까.

차분하게 에이스와 듀스의 안색을 살피는 잭과 달리 적극적으로 주변을 둘러보던 에펠은, 이내 두 사람 뒤에 있는 ‘무언가’를 발견했다.

 

“어라? 이 고양이는 뭐야?”

“윽!”

 

나무 그늘 속에서 에펠이 발견한 것은, 새까만 털이 눈에 띄는 장모종 고양이였다.

얼핏 보면 루시우스로 착각할 만도 했지만, 저 고양이는 분명 다른 고양이었다, 크기만 비슷할 뿐. 흰털이 전혀 보이지 않고 눈동자 색도 보라색인데다가 표정도 훨씬 부드럽지 않은가.

얌전히 앉아 ‘야옹’하고 운 낯선 고양이는 에펠과 눈이 마주치자 그를 향해 저벅저벅 걸어왔다. 제 발치에 멈춰 선 검은 고양이에 완전히 시선을 빼앗긴 에펠은 환하게 웃으며 복슬복슬한 몸뚱이를 안아 들었다.

 

“와, 예쁘다. 길고양이는 아닌 거 같은데, 주인은 어디 갔어?”

 

야옹. 마치 대꾸라도 하듯 운 고양이는 에펠의 손길에 머리를 비볐다. 살랑살랑 흔들리는 풍성한 꼬리를 보아하니, 그의 손길이 꽤 마음에 든 모양이었다.

 

‘어딘가, 익숙한 느낌이…….’

 

잭은 얼어있는 동급생들에게서 시선을 거두고, 바로 옆에 있는 낯선 고양이에게 집중했다.

고양이 중에서 보라색 눈동자가 흔하던가. 게다가, 보통 고양이에게 느껴지는 특유의 체취는 나지 않고 은은하게 머스크향이 풍기는 걸 보면…….

잉크보다 새까만 긴 털과 자수정을 박아놓은 듯한 눈동자. 그리고 익숙한 향기까지.

그 모든 걸 종합해보자 직감적으로 답이 보이게 된 잭은, 본인이 생각해도 터무니없는 추측을 내뱉었다.

 

“설마, 이 고양이. 아이렌이냐?”

“헉!”

 

그럴 리가 없다고 생각했지만, 아무래도 이게 정답인 모양이다.

에이스랑 듀스가 동시에 숨을 삼키는 걸 본 잭은 이마를 짚고 한숨 쉬었다. 하지만 여전히 사태 파악이 되지 않은 에펠은 고양이가 떨어지지 않게 꼭 붙잡은 채 상황 설명을 요구했다.

 

“잭 군, 그게 무슨 소리야?”

“말 그대로다. 이 고양이 털에서 나는 희미한 향. 평소 아이렌이 쓰는 향수의 것과 같아.”

“뭐?”

“게다가 이 생김새를 봐. 아이렌이랑 너무 닮지 않았어?”

 

그러고 보니. 검은 고양이야 찾아보면 얼마든지 있겠지만 보라색 눈동자를 가진 고양이는 본 적이 없다. 조금 짙은 색의 푸른 눈까진 봤지만, 이렇게 선명한 보라색 눈은 마법 없이는 나올 수 없을 텐데.

야옹. 잭의 말에 동조하듯 그를 보며 길게 운 고양이는 에이스와 듀스를 앞발로 가리켰다.

누가 보아도 수상한 상황. 변명이든 해명이든 해야 한다는 걸 느낀 하츠라뷸의 두 사람은 눈치를 보다가, 결국 듀스가 상황 설명에 나섰다.

 

“그, 그게 말이지…….”

 

듀스가 들려준 말에 의하면, 사건의 개요는 이러했다.

방과 후. 중원에서 그림을 기다리던 세 사람은 시간도 죽일 겸 작은 게임을 하게 되었다. 얼마 전 듀스가 샘의 상점에서 경품 뽑기로 얻은 ‘1시간 동안 고양이 귀와 꼬리가 생기는 약’을, 복불복 게임으로 마시기로 한 것이었다.

똑같은 음료수를 세 개 사 와서, 하나에만 마법약을 타 벌칙용 음료수를 만든다. 뚜껑 개봉 여부로 눈치챌 수 없게 약을 넣지 않은 음료수도 한 번씩 개봉해 준 후, 셋 다 눈을 감고 무작위로 병을 섞어 하나씩 골라 마신다.

그야말로 16살 꼬마들이 할 법한 장난. 그 무모하고 우스운 게임의 결과, 마법약이 섞인 음료수는 아이렌의 위장으로 들어가게 되었다만……. 문제는 마법약이, 그들이 생각한 것과 다른 효과를 냈다는 거였다.

분명 깜찍하게 고양이 귀와 꼬리만 나와야 하는데. 누가 걸리든 볼거리가 될 그 모습을 보며 귀엽다며 깔깔 웃고 놀리는 게 자신들의 계획이었는데. 어째서 아이렌은. 정말 고양이가 되어버린 것인가.

예상치도 못한 사태에 당황했던 두 사람은 어떻게든 상황을 수습해보려 했지만, 결국 답은 찾아내지 못하고 오히려 B반 친구들에게 이 모습을 들키고 만 것이었다.

 

“대체 무슨 짓을 한 거야, 너희?”

 

이야기를 모두 들은 잭은 밀려오는 황당함에 표정 관리도 할 수 없었다.

그러나 황당한 것은 게임에 참여했던 두 사람도 마찬가지인지, 에이스와 듀스는 초점이 흐려진 눈으로 복슬복슬해진 아이렌을 내려다볼 뿐이었다.

 

“아니, 우리도 이렇게 될 줄은 몰랐지.”

“아이렌도 동의한 내기였고.”

“하아…….”

 

하필 마법도 쓸 줄 모르는 녀석에게 이런 사고가 터지다니. 차라리 에이스나 듀스가 고양이로 변했다면 어떻게든 마법을 쓰며 의사소통을 했을 거 같기도 한데, 아이렌이 할 수 있는 거라곤 ‘야옹’하고 우는 것밖에 없으니 얼마나 답답한가.

제가 안고 있는 게 아이렌이라는 자각이 들자 문득 부끄러워진 걸까. 사과처럼 볼이 새빨갛게 물든 에펠은 살며시 손의 위치를 고쳤다.

 

“말은 못 하는 걸까? 혹시 지능까지 고양이 수준으로 떨어진 거라면…….”

“그건 아닐 거야. 말은 못 하지만, 지능은 분명 평소 그대로야.”

“그래? 어떻게 확신하는 거야?”

 

‘으음.’ 멋쩍어하며 소리를 삼킨 에이스는 제 입으로 말하긴 부끄러운지 고개를 푹 숙였다.

 

“……아까 고양이가 되자마자, 어이없다는 듯 우릴 올려봤거든.”

“아.”

 

그렇다면, 자아는 확실히 인간의 것 그대로 유지되어있는 모양이다.

정신은 그대로인데 몸만 이렇게 변하다니. 어쩐지 더 딱하게 느껴진다. 에펠은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얌전히 안겨있는 아이렌을 안쓰럽다는 듯 바라보다가, 살며시 턱 아래를 긁어주었다.

그릉그릉. 마치 모터 돌아가는 소리 같은 가르랑거림과 함께 장난감 구슬을 닮은 자그마한 눈이 꼭 감긴다.

진짜 고양이처럼 제 손길에 사르르 녹아내리는 아이렌을 보고 절로 웃음이 터진 에펠은 저도 모르게 태평한 소릴 내뱉고 말았다.

 

“이런 말 하면 안 되는 거겠지만, 귀엽네. 아이렌 군.”

 

지금은 그런 소릴 할 때가 아니다.

원래라면 누구든 이런 말로 딴죽을 걸었겠지만, 골골거리는 아이렌 고양이를 보는 일동들은 에펠의 말에 반박하지 않았다. 온몸으로 기분 좋다는 티를 내는 아이렌의 솔직한 반응은, 어떤 의미에서라도 참으로 귀여웠기 때문이었다.

 

“아, 나도 해볼래.”

“에이스, 넌 죄책감도 없냐?”

“이미 터진 일인데, 뭘 더 어쩌라고?”

 

결국 참지 못했던 에이스는 부드럽게 물결치는 폭신한 등을 결대로 쓰다듬었다. 그 조심스러운 손길이 썩 싫지 않은지 눈을 느리게 깜빡인 아이렌은, 길쭉한 꼬리로 에이스의 손을 간지럽혔다.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곧바로 돌아오는 애정 표현은 강렬한 법이다. 아이렌의 행동에 혹한 듀스는, 머지않아 자신이라도 얌전히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철회할 수밖에 없었다.

 

“……나도 할래.”

“뭐야. 방금 죄책감 어쩌고 한 사람은 어디 갔어?”

“시, 시끄러워!”

 

이미 제 손이 차지할 자리는 없어 보였지만, 듀스는 비어있는 이마를 놓치지 않았다. 손끝을 세워 살살 귀 사이를 긁어주자, 아이렌은 ‘야옹’하고 웃으며 고개를 느리게 꾸벅거렸다.

동시에 세 사람에게 쓰다듬어지는 아이렌 고양이는 행복해 보이지만, 저걸로 괜찮은 건지는 모르겠다. 팔짱을 낀 채 거리를 유지하는 중인 잭은 드디어 상식적인 반응을 보였다.

 

“너희들, 미안하다는 생각은 하는 거냐?”

“뭐? 당연하지.”

“미안하니까 달래주는 거라고.”

“…….”

 

그건 궤변이 아닐까. 정말 미안하면, 쓰다듬어서 어르는 게 아니라 1시간보다 빠르게 사람으로 돌아오게 해줘야지.

하지만 그런 생각을 하는 자신조차도……. 저 부드러운 검은 털을 쓰다듬고 싶다는 생각을 접을 수가 없다. 마른침을 삼키며 아이렌의 눈치를 살핀 그는 결국 참지 못하고 슬쩍 손을 뻗었다.

그런데. 아까까지만 해도 가만히 손길을 느끼던 아이렌이, 갑자기 발톱을 세우지 않은 솜방망이로 잭의 손등을 찰싹 때린다.

아프진 않지만 예상치 못한 공격을 당한 잭은 황급히 손을 거두고 물러섰다.

 

“윽! 잠깐, 나는 왜?”

“음. 역시 고양이니까 개과 수인은 꺼려지는 걸까?”

“뭐?”

 

에펠의 말에 그럴 리 없다는 듯 미간을 찌푸리면서도, 저 이유 외엔 달리 짚이는 게 없는 잭은 아쉬운 듯 손을 거두었다.

킁킁. 눈에 보이게 코를 들썩이며 냄새를 맡은 아이렌은 제가 휘두른 발을 무의식적으로 핥다가 황급히 혀를 수납했다. 그 오락가락하는 행동을 보아하니, 아무래도 아이렌은 지금 고양이로서의 본능과 인간의 지성이 공존하는 모양이었다.

 

‘나중에 원래대로 돌아오고 나서 꽤 창피해하겠군.’

 

제 유니크 마법을 떠올린 잭은 아이렌의 행동을 이해해 주기로 했다. 솔직히 지금 분위기를 봐서는 쓰다듬던 셋은 아이렌을 놀리기 바쁠 거 같으니, 자신이라도 모르는 척해 줘야 하지 않겠나.

 

‘……그나저나, 굳이 변한다면 여우가 더 잘 어울릴 거 같은데.’

 

여우는 개과니 자신을 무작정 때릴 이유도 없었을 텐데.

아이렌의 솜방망이가 닿았던 부분을 매만지는 잭의 얼굴엔 묘한 서운함이 남아있었다.


이것은 냥이렌 상상도.

복실복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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