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위스테 드림 단편 모음집

무지개 너머 세계

세벡 지그볼트 드림 / 주간 창작 챌린지 6월 1주차 참여작

아무리 혈기 왕성한 나이의 소년들이라도 피곤함을 느낄 수밖에 없는 오후 마지막 수업 시간.

바르가스의 지도에 따라 그룹을 나눠 비행술 수업을 하던 1학년 D반 학생 중, 순서를 기다리는 누군가가 하늘을 가리키며 외쳤다.

 

“어, 무지개다!”

“엥? 어디?”

 

동급생의 검지 끝을 향해 동시에 고개를 돌린 소년들은, 이내 학교 건물 너머에 걸린 무지개를 발견하고 작게 탄성을 터뜨린다. 물론 모두가 비 온 후면 생길 수 있는 자연스러운 기상현상에 관심을 가지는 건 아니었지만, 그들도 겨우 16살이지 않은가. 아무리 개구쟁이들이라 해도 이런 사소한 것에 감탄할 감수성은 있는 법인지, 무지개를 목격한 학생의 반절 정도는 얼굴에 미소를 짓고 말았다.

그리고 그건 멜로드 또한 마찬가지였으니.

빗자루를 세워서 든 채 지팡이처럼 몸을 기대고 있던 그는 제 바로 옆에서 심드렁하게 하늘을 올려다보는 세벡에게 불쑥 말을 걸었다.

 

“세벡, 그거 알아? 내가 살던 곳에는 무지개가 각각 다른 세계를 잇는 다리가 되어 주었다는 전설이 있어.”

 

갑자기 웬 전설 이야기인가. 세벡은 그다지 공통점을 느끼지 못하는 이야기에 눈썹을 까딱였다.

 

“그건 무슨 뜬금없는 소리냐, 터빈.”

“아니, 뭐 그냥. 무지개 뜬 걸 보니 생각나서,”

 

역시 헛소리였나. 세벡은 언제나처럼 멜로드가 실없는 소리를 하며 자신의 정신을 흩트려놓고 있다고 여기고 말았지만, 안타깝게도 그 ‘언제나’가 너무 잦아진 모양이었다.

학기 초였다면 여기서 대화가 끊어졌을 테지만, 이제는 저 영양가 없는 말도 꽤 익숙해진 탓일까. 하늘에서 시선을 떼지 못하는 세벡은 이내 멜로드의 말을 반박하고 나섰다.

 

“애초에 무지개는 그냥 빛이 반사된 건데, 어떻게 다리가 될 수 있다는 건지 모르겠군.”

“말했잖아, 전설이라고. 진지하게 파고들면 지는 거야.”

“흥. 진지하게 믿는 건 네 쪽 같다만?”

 

이런 전설을 진지하게 믿는 건 아이 같고 바보 같은 짓이다. 그리 생각하여 내던진 말이었지만, 멜로드는 그걸 공격이라 받아들이지 않았다. 오히려 그의 말을 긍정하듯, 계속 진지한 태도를 유지할 뿐이었지.

여전히 무지개에서 시선을 떼지 못하는 멜로드는 희미한 미소를 지은 채 조곤조곤 말을 이어갔다.

 

“애초에 무지개를 이용한 건 사람이 아니라 신이었다고 하니, 빛이라도 괜찮았던 거 아닐까. 신화시대 마법이라면 뭐든 가능했을지도.”

“……흐음.”

 

그렇게 생각하면 말이 되는 것 같기도 하지만, 역시 증거 없이 그저 전해져 내려오는 구전 설화를 믿는 건 이상하지 않을까.

어느새 자신까지 덩달아 진지해지는 세벡은 손에 든 빗자루를 고쳐 쥐었다.

 

“난 말이지, 옛날엔 무지개 위를 걸어보고 싶었어. 마법은 어릴 때 발현됐긴 했지만, 빗자루 타는 법은 머리가 좀 큰 후에 배워서 꼬맹이일 땐 날지 못했거든.”

“그런가? ‘옛날엔’이라고 말하는 걸 보면, 지금은 아닌가 보군?”

“뭐, 지금은 빗자루를 꽤 잘 타니까.”

 

장난스럽게 지팡이 대용으로 쓰던 빗자루를 가볍게 흔들어 보인 멜로드는 길게 뻗은 무지개를 눈길로 훑었다. 마치 눈빛으로 그 위를 걷듯. 천천히. 부드럽게.

 

“하지만 무지개를 통해서 간 세계라면, 빗자루로는 갈 수 없을 거 같아서 재미있지 않아?”

 

글쎄. 다른 세계 같은 곳은 궁금하지 않은데.

세벡은 그 의견에 동의하지 못했지만, 직접 목소리를 내어 반박하지는 않았다. 제 의견은 둘째치고, 상대가 가고 싶은 세계라는 것이 어떤 곳일지 신경 쓰였기 때문이었다.

이 학교 유일한 여학생이자 마수의 감독생인 아이렌이 있던 세계처럼, 비슷한 듯 보여도 근원은 다른 세계로 가고 싶은 걸까. 아니면 그저 새로운 것이 있다면 어떤 세계이든 상관이 없는 걸까. 그것조차 아니라면, 새롭지도 재미있지도 않아도 그저 이 세계만 아니라면 상관없는 건 아닐까. 그게 아닌 이상, 그토록 끔찍하게 아끼는 형을 두고 혼자 무지개를 건너고 싶다고 생각하진 않을 것 아닌가.

무지개의 끝까지 시선을 옮겼음에도 여전히 고개를 들고 있는 멜로드의 옆모습을 가만 바라보던 세벡은, 아프지 않게 상대의 다리를 툭 쳤다.

 

“허튼소리 말고 집중해라, 터빈.”

“네, 네. 지그볼트 선생님~”

“……너 지금 나 놀리는 거냐?”

“이런. 어떻게 알았지? 우리 세벡 이제 다 컸네.”

“멜로드 터빈!!”

“아하하!”

 

‘아, 저 녀석들 또 싸운다.’ 1학년 D반 최고의 무료 컨텐츠가 시작될 기미가 보이자, 여전히 무지개를 힐끔거리던 학생들 모두 두 사람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다들 싸움이라고 말하지만 사실 정말로 다투는 건 아닌 두 소년의 표정은, 마치 무지개처럼 여러 색으로 빛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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