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령의 장난
2022.9.14 / 목와
*2024.1.1 수정
"와론."
부드러운 목소리가 뒤에서 들려왔다. 모를 수가 없는 목소리였다. 그리고 들릴 리 없는 이름이었다. 눈을 질끈 감으며 다시 걸음을 내딛었다. 환청에 현실을 의심할 시기는 진작 지났다. 하물며 묘비를 보고 온 지 얼마 지나지 않았는데. 어째선지 점점 멀어지는 소리는 무시한 채 혼자만의 고민에 빠졌다. 아직은 이렇다 할 일이 없는 상태였다. 물론 별천지로 가면 임무가 주어지겠지만, 어쩐지 오늘은 그다지 내키지 않았다. 며칠 전까지 견습들을 보다가 와서 그런 건지.
"왜 자꾸 무시하고 가는 거야?"
아무리 나라도 저 말에는 발이 멈췄다. 제 이름만 부르다 사라지던 환청이, 오늘은 무슨 바람이 들었는지 제대로 말까지 건다. 가볍게 숨을 내쉬고 뒤를 돌아보면 지나치게 익숙한 인영이 서있다. 마지막으로 기억하는 모습과 무엇 하나 다르지 않은 머리, 얼굴, 옷, 그리고 모든 것. 그 모습에 현실을 다시 한 번 실감하고 만다.
성큼성큼 걸어가니 작은 미소를 짓는다. 멍청하긴, 지금 내가 어떤 심정인데. 오른손에 가지고 있던 론누를 꾹 쥐었다. 그 앞에 다다르자마자 왼손을 뻗어 목을 움켜쥐었다. 동맥을 강하게 압박함에도 눈앞의 사람은 당황한 표정으로 얼굴을 조금 찡그릴 뿐 별다른 반응이 없었다.
"너, 뭐야?"
미처 억누르지 못한 분노가 목소리에 섞였다. 사람이든 유령이든, 내 앞에 그 모습으로 나타났으면 죽을 각오 정도는 해야지. 이를 악 물고 내씹듯 말하니 일그러진 표정에 작은 비웃음이 떠올랐다. 그것은 순식간에 눈앞에서 사라져 그 너머의 나무 줄기만이 보였다. 목을 움켜쥐고 있던 손에는 차가운 공기만이 닿았다. 별 빌어먹을 일도 다 있지. 저도 모르게 온몸에 힘이 들어가있었다. 길게 숨을 뱉으며 손을 떨어뜨렸다.
하루의 시작이 이래서야 얌전히 쉬기는 글렀다.
댓글 0
추천 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