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답

2022.10.31 할로윈 글합작 참여작 / 기린닭

. by 달사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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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월 31일, 할로윈. 대부분은 죽은 사람이 돌아오는 날이라고 알고 있는 날. 그렇다고 늘 있던 일상에 큰 변화가 생기는 것은 아니다. 기껏해야 주변이 평소보다 조금 소란스럽고, 사람들이 할로윈에 걸맞는 분장을 했다는 것 정도가 차이점이었다. 사람들이 벌이는 축제와 그 모든 광경을 감흥 없이 지켜보던 지우스는 이내 발걸음을 돌려 축제를 등지고 걸어갔다.

 수도에서 남쪽 지방으로 향하는 길, 그 길을 걷던 지우스는 한 지점에서 방향을 틀어 숲속으로 들어갔다. 제대로 나 있지 않은 길을 이리저리 굽어지며 들어가 가파르게 깎인 절벽 위에 도착한다. 수도가 한눈에 보이는 광경은 절경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으나, 그는 그곳에서 멈추지 않았다. 다시금 방향을 틀어 나무 사이로 파고들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보인 곳에는 두 개의 묘가 함께 있다. 양쪽 모두 지우스에게 너무나 익숙한 물건이 각각 놓여있었고, 그중 하나는 너무나 익숙한 이름이었다.

 와론. 돌에 새겨진 이름은 건조한 나머지 누군가에게 상처를 입힐 것 같기까지 했다. 이름 앞에 놓인 붉은 깃의 투구는 누구에게나 익숙할 물건이었다. 다만 함께한 시간이 있었다는 점에서 그 이름이 지우스에게 가지는 의미는 조금 다르다. 그의 마지막을 장식하고, 유언까지 들은 유일한 사람이 그이니. 그리고 그 뜻을 조금이나마 이루기 위해 노력한 이 또한 그 혼자였다. 투구에 난 흠집을 조금 쓰다듬는다. 그것만으로도 어딘가 그리운 기분이 들었다.

 그 옆에 있는 묘는 이름조차 지워져 있다. 아니, 누군가가 일부러 지운 것 같기도 하다. 이름이 있었을 위치에 있는 무수한 긁힌 자국은 이미 풍화되어 손을 대면 돌 특유의 차가우면서도 약간은 부드러운 감촉이 느껴졌다. 묘비에는 와론이 하고 다니던 초록빛 보석 목걸이를 걸어두었다. 그의 부탁으로. 본디 주인은 이 사람이었던 모양이지. 지우스는 멋대로 추측했다. 애당초 와론의 묘를 이곳으로 정한 것 또한 와론이 종종 이곳에 오던 것을 알고 있었기에 한 그의 독단적 선택이었다. 와론의 친우였을까? 그 또한 기사였을까? 여러 질문이 있어도 답변은 돌아오지 않는다.

 이제와서 이런 게 무슨 의미가 있다고. 해답이 궁금하다면 출제자가 살아있을 때 물었어야 했다. 헛웃음을 터트린 지우스는 두 묘 사이에 주저앉았다. 양쪽 모두 와론의 물건으로 유명했기에 그에게는 마치 와론의 묘가 두 개인 것처럼 느껴졌다. 너는 그런 결말을 맞아 만족했는가? 그것이 너의 ‘명예’였는가? 가만히 눈을 감고 잠시 묵념했다. 가버린 이를 위한 지우스 나름의 습관, 어쩌면 예의라 불러야 할 행동이었다.

 그대로 앉은 채 시간을 흘려넘기던 지우스는 자리에서 일어나 걸음을 옮겼다. 한눈에 수도가 보이는 그 장소로 돌아가 절벽에 다리를 내건 채 앉았다. 다른 일 때문에 대부분의 기사가 수도에 모인 상태였는데, 그 때문인지 작년보다도 축제가 화려한 것 같았다. 허공에 뜬 다리를 동당거리며 그 풍경을 내려다보았다. 할로윈이라.... 여전히 무감한 눈이었으나 그는 세간의 소문조차 모를 정도로 소식에 어둡지 않았다.

 “여기에 있었구먼?”

 들려오는 귀에 익은 목소리에 지우스는 무심코 고개를 돌릴 뻔했다. 어제 만난 것처럼 친근하게 말을 붙이는 상대는 이 자리에 있어서는 안 될 인물이다. 지우스가 모르는 체하며 앉아있으니 그가 옆으로 다가가 앉았다. 묘 앞에 있어야 할 투구까지 제대로 갖춘 모습이다. 아니지, 영혼이라면 실물은 별로 상관없을까? 그는 실없는 생각을 하며 시선을 돌리지 않으려 부단히 노력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옆에 앉은 이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오랜만인데 인사는 못 해줄망정 무시라니~.”

 섭섭하다는 듯 말끝을 늘이는 모습이 여전하여 그는 차라리 눈을 감기를 택했다. 대답을 돌려주지 않고 있음에도 옆에 있는 기척은 사라질 기미가 없었다. 결국 장난에 조금 어울려주기로 한 지우스는 가늘게 눈을 뜨고 그를 잠깐 흘겨보았다. 와론의 모습을 한 이를. 언제부터 그렇게 살가운 사이였다고. 파란 하늘에 시선을 박은 채 말하니 가벼운 웃음이 돌아온다.

 그 후로는 가벼운 잡담이 오갔다. 살가운 사이가 아니었다고 말해놓고는. 모순적인 행동이라는 것쯤은 알고 있을 터였다. 그런데도 모순을 관두지 않는 건 어차피 하룻밤의 이야기일 걸 알기 때문일까. 잠시 입가를 매만진 지우스가 피어오르는 위화감을 덮어둔 채 물었다.

 “너는 네 죽음에 만족했나?”

 질문을 들은 이는 잠시 행동을 멈췄다. 마치 선 채로 죽은 것처럼 멈춰선 이를 보며 지우스는 말라가는 입안을 적셨다. 이대로 무슨 일이 일어난다면 어떻게 해야 하지. 그럼에도 그는 절대 이 침묵을 먼저 깰 생각이 없었다. 잠깐 흐르던 정적은 바람 빠진 웃음소리로 끝났다. 어이없다는 듯 투구를 매만지던 그가 조금 고개를 기울이며 말했다.

 “그걸 나한테 직접 물으면 너무 재미없지 않나?”

 결국 질문에 의미는 없었다. 애매하게 답변을 피해 가는 모습에 지우스는 기어코 한숨을 내쉬었다. 잠시 멀리서 다가오는 구름을 바라보다가 이내 눈을 감아버렸다. 여전히 수많은 가정이 머릿속을 맴돈다. 그 행동을 취한 게 와론이 아닌 새까만 닭이었다면 아마 바로 막아섰겠지. 중얼거리듯 지우스가 뱉은 말에 그는 문득 멈추어 섰다.

 만약 내가 너에게 맹세하지 않았다면. 만약 너의 목적을 짐작조차 하지 못한 상태였다면. 만약 네가 맹세를 지키라고 말했다면. 여러 가정을 늘어놓자니 점점 옆에 선 이의 기척이 흐릿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지우스가 눈을 뜨고 다시 바라본 하늘은 아까만큼 눈부시지 않았다. 이렇게 여러 말을 늘어놓는다 한들 어차피 해답을 줄 이는 없는데. 옆을 돌아보면 누가 있었냐는 듯 차가운 허공이 그를 반긴다.

 조금 더 바람을 만끽하던 그는 다시 수도로 돌아갔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수도에 모인 이유는 임무 때문이었으니, 그 이상 회피할 수도 없다는 이유였다. 그래도 오늘만은 조금 여유롭게 있어도 되지 않을까. 번화한 거리 초입에 서서 즐겁게 웃는 사람들을 조금 바라보던 지우스는 익숙한 이를 발견하고 재빨리 걸음을 돌렸다. 그러나 그보다 상대가 그를 발견하는 것이 더 빨랐다.

 “기린! 어디 있다가 이제 온 거야!”

 차마 무시할 수도 없어 그는 결국 고개를 돌려 상대를 바라봤다. 흰 사슴, 파디얀. 그의 동기이자, 개인적인 빚이 있는 상대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더욱 그 밝은 목소리를 무시할 수 없었다. 결국 한숨을 쉬며 그 앞까지 걸어갔다. 그 옆에는 회적색 여우, 루디카가 함께 있었다. 늘 그래왔듯 눈 밑에는 눈물 자국이 짓물러 있었으나, 지금만큼은 즐거워 보였다.

 “난 이런 거 흥미 없다니까....”

 힘없이 저항해 보아도 파디얀은 들은 척조차 하지 않는다. 옆에 두 사람을 끼고 그는 이곳저곳을 돌기 시작했다. 상인들이 파는 음식을 사 먹고, 간단한 게임을 도전하여 경품을 타기도 했다. 곳곳에 이런저런 분장을 한 이들이 보였다. 그 사이에서도 분장하지 않은 지우스와 같은 사람은 극히 드물어서, 가만히 서 있기만 해도 눈에 띄었다.

 그러고 보니 그거 알아? 운을 띄운 파디얀에게 두 사람의 시선이 모이는 건 당연한 일이다. 보통 할로윈에 죽은 사람이 돌아온다고 하는데, 실은 악령이 찾아오는 날이라는 거. 경품으로 받은 인형을 안은 채 가볍게 말하는 파디얀을 두 사람이 바라보며 상반된 반응을 보였다. 지우스는 여전히 표정 변화 없이 고개를 끄덕였고, 루디카는 고개를 조금 갸웃 기울였다. 파디얀은 그런 루디카를 보며 웃었고, 어느새 루디카의 눈에는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있었다.

 이후 그들과 떨어져 홀로 남은 지우스는 길게 숨을 뱉어냈다. 그래, 할로윈은 사자(死者)의 영혼이 아닌 악령이 이승을 찾아오는 날. 그들을 속이기 위해 분장을 하는 날이다. 그러니 오늘 그를 찾아온 와론의 모습을 한 이는 분명한 악령이다. 지우스 또한 이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정말로 사람의 영혼이 찾아오는 것은 이틀 후인 11월 2일.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새 땅거미가 내려앉아 온 세상이 어둑어둑했다. 딱 이틀. 그 정도만 기다려보겠다는 것도 욕심일까. 그는 다시 고개를 내려 남쪽 지방으로 향하는 길을 잠시 바라보았다. 머지않아 다시 들르게 될 곳을 떠올리며.

후기

안녕하세요 달사온입니다. 정말... 너무 오랜만에 합작에 참여해서 지금 후기 쓰는 순간조차 어색하네요. 원래는 준비 중이던 다른 글을 고쳐서 내려고 했는데, 알파카님이 만드신 사이트 보고 마음이 바뀌어서 급하게 틀었습니다 ㅎㅎ.... 눈치 채셨을지 모르겠지만 악령은 와론이라고 지칭하지 않았어요. 단순히 와론의 모습을 한 악령이라는 사소한 떡밥이었습니다. 와론의 죽음에 관해서는 자세히 정해두지는 않았고, 명예 관련 무언가로 다른 기사와 1 대 다로 싸우다가 죽었고 지우스는 궁극적인 목적을 (아주 약간) 짐작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걸 막지 않고 방관했다는 설정 정도만 주었습니다. 어차피 나오지도 않은 거 맘대로 날조 좀 해봤습니다 ㅎㅎㅎㅎ. 맹세 얘기가 나온 건 약속이 없었다면 애당초 접점이 없었을 것 같아서 언급했습니다. 사실 쓰면서 커플링으로 보이지 않을까 걱정을 많이 했는데 이건 보시는 분들 반응을 기다릴 수밖에 없겠네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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