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윗 백업
*트위터 썰, 분석 모음입니다. 그냥 올렸던 순서대로 정리함.
0. 대전제
지우견
연하가 연상을 절대 못 이김
근데
연상이 맨날 짐
져주는 것도 아님
그냥 연하 앞에만 서면 속절없이 무너짐
1. [지우견]
지우견 영어권이었으면 지우스가 나견 애칭으로 dear라고 불렀으면 좋겠다. honey도 아니고 babe도 아니고 my dear도 아니고 그냥
Dear.
혀 끝에서 터져 나오는 첫 음부터 입 안에 머무르던 공기가 천천히 내려가는 혀를 따라 흘러나오면서 부드럽게 마감되는 끝 음까지 간절함이 안 담긴 곳이 없게. 거기에 감히 my라는 수식어를 달기엔, 나의 것이라고 제한하기엔 지우스도 인정했듯 나견은 약한 만큼 무한하니까. 자신에겐 과분하니까. 그럼에도 너무나 소중해서 표현이라도 하지 않으면 속부터 무너질 것 같아 넘치지 않게, 나견이 겁먹지 않게 한 단어로 축약해낸 게 dear. 그런 마음이 느껴져서 나견도 지우스 입에서 나오는 dear 소리 들으면 가슴이 콱 막히게 좋아했으면.
비슷하게 지우스가 그냥
견.
이렇게 부르면 나견 죽으려 하겠지(긍정적으로) 나진이 불러주던 견아. 랑은 결이 다르게 제 이름을, 다른 누구도 아닌 '저'를 바라며 부르는 게 느껴져서...
2.
비가 오네요. 내가 조직 보스 와론이 보고 싶다면(이건 뭐 어디서 줏어온 개연성인지)
현대 au. 와론 투구 대신 오토바이 헬멧 쓰고 다님. 새까만 투피스 정장에 새까만 목티에 새까만 반장갑 끼시고 헬멧 벗은 모습을 아무도 본 적이 없다는 보스. 무릎 언저리까지 오는 (역시 새까만) 코트에 팔은 안 끼우고 어깨만 걸칠 듯. 걸음걸음마다 밑자락 펄럭이면 제 사인은 이 양반의 간지임. 색채가 드러난 부분이라고는 장갑 밖으로 드러난 길쭉한 손가락이나 은색 벨트 버클, 왜 때문인지 항상 차고 다니시는 목걸이의 녹빛 보석밖에 없음.
조직 맨 꼭대기에 앉아있으면서 현장 뛰어다님.
사유: “내가 도파민 중독이라네~”
와론이 끼어들면 능률은 수직상승하는데 박살나는 건물도 그만큼 증가함. 덕분에 간부들만 수습하느라 죽어나가겠지….
3. [파디루디]
회적색 여우. 임무와 임무 사이 신체 회복기간 삼아 주어지는 짧은 휴가 때만 되면 당최 니젤에서는 보이질 않는다는 기사. 원체 입이 무거운 성격인지라 그의 행적을 아는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직장동료라 할 수 있는 기사들에게 물어볼까. 담청색 기린이라면 무심한 얼굴로 ‘매번 가는 곳에 갔을 겁니다. 기사에게도 쉬는 날은 있어야죠.’와 같은 말을 내놓을 것이다. 질문에 답이 될 수는 있겠지만 친우의 사적 영역은 드러내지 않도록 핵심을 빗겨나간 문장을. 푸른 승냥이에게 가면 그가 얼마나 거짓말에 약한지만을 확인할 수 있으리라. 동료의 사생활을 보호해주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겠지만 결국 천성을 이기지 못하고 어물쩍 넘어가려 들 테니까. 하늘색 너구리는, 아마 정말로 모를 것이다. 비하하려는 의도는 절대 아니지만 그는 기사로서 위험을 감지하는 능력에 비해 일상적인 면에서 눈치가 떨어지는 편이다.
‘그’ 새까만 닭이 우리의 질문을 무시하지 않는다는 가정을 한다면, 아마 장난기가 가득한 이런 대답을 들을 수 있지 않을까.
“음~ 글쎄에?”
결국 제대로 된 회적색 여우의 행방은 누구에게서도 찾을 수 없으니, 우리는 우리 스스로 유추해내야만 한다.
쉬는 날 가고 싶은 곳이 있는가? 전부터 방문하길 바라던 관광지, 맛있는 음식을 파는 단골 가게…. 아니면 그냥 집에서 한가하게 햇살을 쬐고 싶을 수도 있다. 어쨌든 이 장소들에서 얻고자 하는 바는 바쁜 업무로 잠시 미뤄두었던 여유와 즐거움을 누릴 시간이다. 그렇다면, 그 여유와 즐거움을 누구와 만끽하고 싶은가? 가족, 친구, 연인 등등 아무래도 당신에게 소중한 이들이 가장 먼저 떠오르지 싶다. 대부분은 회적색 여우에게 그런 관계가 존재하는지도 확신을 갖기 어렵겠지만, 다행스럽게도 우리는 이미 그런 사람을 하나 알고 있다.
기사 직위를 내려놓았음에도, 한때 불렸던 이름처럼 새하얀 사슴을 닮은 사람.
거의 다 왔다. 이제 위 두 질문을 합쳐보자. 쉬는 날 여유와 즐거움을 함께 느끼고픈 사람이 있는 곳. 파디얀은 은퇴 이후 우디온과 조금 떨어진 숲 어귀에 산다. 바빠서 만나지 못할 땐 카톤으로 연락하면 될 것을 굳이 편지를 보내는 연인 탓에 매일 아침 우편함부터 살피는 버릇이 생겼다. 꼬박꼬박 편지를 보낸다니깐, 임무만 없으면 여기서 지내면서. 금속 재질의 작은 여닫이문을 열어보며 파디얀은 매번 그런 생각을 한다. 많은 이들이 회적색 여우의 거처로 여기는 니젤 외곽 작은 집을, 실제로 그는 근무 중 잠시 눈 붙일 적에만 사용한다.
나른한 오후. 파디얀은 누군가를 기다라며 꽃차를 우리는 중이었다. 아침에 오늘 중으로 집에 가겠다는 연락을 받았다. 꼭 그런 연락만 손편지가 아닌 수신자에게 곧바로 닿는 카톤으로 보냈다. 연락을 하자마자 수도에서 출발했다 치면 루디카 발걸음으로 이 시간대 즈음이면 도착할 테니까-
달칵. 문이 열리는 소리가 경쾌했다.
“파디, 나 왔어.”
활짝 미소 지으며 반겼다.
“어서 와, 루디!”
4.
스피노자는 자신의 존재를 유지하려는 경향이 본능적으로 발현하는 걸 욕구로, 이 자기 보존을 위한 노력을 의식하게 되는 걸 욕망으로 명명합니다. 인지 이전에 욕구가 있고 그 이후에 욕망이 있는 거죠. 이 얘기를 왜 하냐면… 비문학 읽다가 견이 생각나서. 중증인가 봅니다.
단순 욕구가 욕망이 될 때. 제 안의 욕망을 자각하고 자기 보존을 더 효과적으로 해내기 위해 활동을 시작할 때. 그 기점이 견이한텐 ‘나진의 죽음’이었으면 어떡하지.
어릴 적부터 나견은 나진을 지킴으로써 제 쓸모를 찾았던 것 같음. 나진이라고 크게 다르지 않을 듯. 상호작용한 다른 인물이라고는 라우준 정도만 언급됐으니 ㄹㅇ 서로에겐 서로밖에 없었잖아요. 이러면 나쌍디 간 결코 건전하지 못한 의존적 애착 관계가 설명이 돼요…. 자기 존재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서로가 필요했음.
근데 한쪽이 죽어버렸죠.
쓰읍……. 이거 큰일임 내 정신건강에
다시 말하지만 견이는 나진을 지킴으로써 제 쓸모를 찾았던 애니까 계속 자기가 존재하기 위해서라도 나진을 지킬 다른 방식이 필요했음. 이게 복수로 발현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네가 당했으니 똑같이 돌려줄게>>요런 식의 보호랄까요?
위에서 언급한 자기 보존을 더 효과적으로 해내기 위해 활동을 시작할 때. 다시 말하자면 세상에 제 존재를 확실하게 각인할 능력을 발휘하기 시작할 때. 성장의 기점이죠.
동생의 죽음이 성장을 촉발한 원인이 되어버림.
이게소년만홥니까얘한텐기사가아니라정신과의사를붙여줘야함
타인의 인생을 덮어쓰면서까지 하나의 세계를 깨고 날아올라 버린 거임……. 오로지 나진을, 나진이 남긴 흔적을 지켜주기 위해서. 자기가 살려면 그 방법밖엔 없어서.
5.
나진… 살아서 기사 됐으면 어처구니 얻기 전에 나견이 쓰던 검처럼 얇고 가벼운 한손검을 휘둘렀을 것이며……. 생각할 수록 얘가 가진 가능성이 너무 아까움. 강령술이라도 써야
(나견을)지키는 전투를 할 듯. 동료를 신경 쓰긴 하지만 알아서 살아들 남아야지 지 알 바는 아님. 진심으로 후방을 보호해야 하는 상황이다?(=뒤에 나견이 껴있다) 그럼 약간 푸승피랑 비슷해짐. 마음가짐만. 방식은 전혀 다를 듯. 승냥이가 적의 공격을 자기가 막아서 보호한다면 나진은 적이 공격을 시작하기 전에 처리해버림. 역시 최고의 방어는 공격인 거죠. 선빵필승이 얘 좌우명임.
그리고 그 행동거지를 뒷받침하는 기동력…. 승냥이한테 훈련받으면 좋겠음. 특2기 기사들 중에선 승냥이가 제일 빠른 것 같아서요. 나진이 낼 수 있는 기본 가속도도 근력 차이 따위 쌈싸먹는 수준인데 그걸 제대로 써먹는 방법을 알려주는 사람이 피도란스일 듯.
미친 속도로 인기척도 느껴지지 않는 찰나에 적들 어디 한 군데씩 썰어놓고 본격적으로 시작할지 간 보는 나진.
왜 그냥 시작이 아니고 간을 보냐.
>> 1. 첫타에 전투불능 만들어버린 전적이 많아서.
>> 2. 시시한 놈인지 재미 좀 볼 수 있을런지 확인하려고.
은근 바로 목을 베진 않을 듯한데… 이유가 좀 새까만닭스러움. 격하게 몸 쓸 때 아드레날린 나오는 느낌이 좋아서(????)
송골매 수직낙하 시 최대 속도가 마하 0.3이랍니다 검색해보고 옴. 환산하면 대강 100m/s 혹은 360km/h 이상임. 그런 의미에서
“격기사, 금빛 송골매 나진.”
6. [지와견]
🐓아주 나를 부려먹는 싸가지가 이젠 둘이지 아주.
⭐️……딱, 맞춰 오셨,네요.
🌿…폭발이 있,었다. 기사급이 다섯. 나머지는… 볼 것 없어.
(둘다 피칠갑. 서있는 것도 용함.)
눈에 초점 안 잡히는 게 빤히 보이는 견습놈 하나랑 끝까지 사상지평 안 쓰고 버티는 기사놈 하나 번갈아 쳐다보고는
🐓정신 똑바로 붙들고 있어라~
하면서 론누 내던짐.
7. [지우견]
둘이 동거하면 나견 자는 모습 한참 동안 구경하는 지우스 있음.
현장 파견에 보고서 정리가 겹쳐서 집에도 못 들어가고 사무실에서 쪽잠 자면서 겨우겨우 일 끝낸 지우스. 제 선에서 해결 못하면 남은 몫이 나견한테로 넘어갈게 눈에 선해서 무리해서라도 자기 손으로 끝맺음 지었음. 이미 나견이 정규적으로 맡고있는 작업도 있고 본인 체력이 훨씬 나으니까 그냥 내가 구르자 하는 느낌임. 한참 후배(라고 해봐야 10살 차이도 안 남)가 과로는 할 수 있다 쳐도 야근하는 꼴은 살아서 못 보는 담 모 기사.
어떻게든 다리에 힘주고 집에 가서 현관문 여니까 웬 수면등 하나가 신발장 밑동 어귀에 켜진 채로 놓여있음. 거실이랑 다른 방 불은 다 꺼져있고 시간대도 새벽이라 나견 먼저 자나 싶어 문도 최대한 소리 안 나게 조심조심 열었건만 그 장면 보고 헛웃음 쳐버림.
철야가 하루씩 길어질 때마다 나견더러는 오늘도 못 들어갈 것 같으니까 먼저 자라고 일러놨고 당장 오늘 저녁때까지만 해도 퇴근이 불확실한 상황이었으니…. 당연히 나견은 지우스가 지금 오는지 모를 거란 소리임. 그런데도 어두울 때 들어오면 발이 걸려서 넘어질 수도 있는 자리에 수면등을 켜서 놔뒀다? 백프로 기다린 거임. 오늘뿐만 아니라 매일을.
낮에 봤을 때는 아무렇지도 않아 보이더니….
…그냥 보고 싶다고 말을 하지.
아까 삐져나온 헛웃음은 이런 의미였음.
수면등을 주워다가 전원을 끔. 적당히 어둠에 익숙해져서 사물 분별은 되고, 침실 들어갔는데 조명 때문에 나견이 깰까 봐.
동거 시작하고 며칠 지나지 않아서 깨달은 점. 나견은 자면서조차도 평균보다 외부 자극에 민감했음. 뒤척거림이 잠결에도 느껴질 정도로. 나름 잘 재웠다고 생각한 밤도 다음날 아침에 막 개운해 보이진 않고 평소랑 똑같아서 지우스는 변인통제를 시작했음. 창에 난 문이든 출입구에 난 문이든 전부 닫아 바람을 막고, 빛이 새어 들어오는 틈이 없도록 도톰한 휘장을 꼼꼼하게 치고, 저녁 먹은 다음 가습기를 틀어 습도 맞추고. 가습기는 또 자기 전엔 꺼야 했음. 기계 돌아가는 소리는 어쩔 수 없이 나고, 나견에겐 그게 다시 소음일 테니.
이불도 바꿔봤음. 극세사 소재는 너무 더울 테고, 두께가 너무 얇으면 덮는 맛이 안 살고…. 고민하다가 집에 새로 들일 가구 살 때 나견이 골랐던 베개가 눈에 들어왔음. 다른 요소도 아니고 ‘손으로 쥐어보고’ 고르길래 당시에는 푹신한 걸 좋아하나, 정도의 감상만을 남겼음. 그냥 그 기억이… 떠올라서. 베개랑 비슷한 밀도감으로 하나 샀음. 큼지막한 격자 누빔이 들어간 목화솜이불로. 나견도 마음에 들어 한 눈치였음. 뭐 있는데 또 사요, 하고 핀잔 주긴 했지만 새 이불을 한참 만지작거리면서 끌어안고 있는 모양새를 보니 내심 좋아하는 것 같았음.
여러가지 요소들을 각각, 또 중첩해서 적용한 결과, 그러니까 한 이주 가량 실험을 지속했던 날. 지우스는 그날 환경이 최적의 여건이란 걸 깨달았음. 품안에서 들려오는 숨소리가 전과 확연히 다르게 아주 깊고 나직해서.
하여튼 불 꺼진 수면등을 한손에 들고 최대한 발걸음을 죽여 침실 문을 엶. 빨리 보고는 싶은데 또 깨우긴 싫어서 앞서 나가려는 행동을 겨우겨우 붙듦. 인사는 아침에 해 뜨면 하자고 몇 번이고 마음을 다잡으면서. 그런데…
“하….”
한숨을 참을 수가 없음. 집에 왔다는 실감에 안도 3할, 그리고 가슴 깊이 번지는 벅찬 뜨거움이 7할. 뭐라 이름 붙여야 할지 모르겠음. 저 스스로 어휘력이 딸린다고 생각해본 적은 일절 없는 지우스였으나 나오는 게 깔끔하지도 못하게 떨리는 숨밖에 없음.
저만치 잠든 나견이 보임. 이불이 확실히 마음에 드나 봄. 아주 턱밑까지 뒤집어쓰고 있음. 밖으로 드러낸 건 머리칼밖에 없음에도,
그 금빛이…… 바라만 보다 눈이 멀어도 좋을 그 찬연함이 어둠 속에서마저 분간이 가서.
수면등은 원래 자리하던 협탁에 올려두고 침대맡에 무릎 꿇고 앉음. 인기척은 여전히 숨긴 상태임. 그 상태로 찬찬히 제 반려자 이목구비를 뜯어보는 지우스.
젖살이 가신 자리가 비어 턱선은 단단하지 못하고 날이 잔뜩 서린다. 약간 벌어진 입술은 적당히 수분을 머금은 채다. 눈에 잘 뜨이는 곳에 보습제를 올려두고도 매일같이 바르라고 굳이 이른 보람을 여기서 찾는다. 숨이 편안하게 들락거리는 코는 그 끝이 살그머니 둥글다. 올곧은 콧등과는 사뭇 분위기가 달라 쓸어내리기에 느낌이 좋다.
감긴 눈 밑으로 길쭉하고 촘촘한 속눈썹이 새로운 음영을 더한다. 나견의 얼굴에서 가장 섬려한 부분을 꼽자면 단연 눈이다. 아래 꺼풀이 시원하게 트여있나 싶다가도 끝머리는 하늘을 향해 휘어있다. 핏빛 홍채는 사적 감정은 배제하고 오로지 이성과 합리로만 정황을 판단하는 주인의 사고방식을 닮았다. 서늘하도록 예리하다. 동시에 그 마음을 닮았다. 정도를 알 수 없을 만큼 따듯하다. 당장은 얇은 피부로 덮여 보이지 않을지라도 언젠가 되찾은 미소와 함께 제 눈동자를 맞춰오는 모습이 선연하기에 크게 아쉽지는 않다.
다만….
지우스는 무의식적으로 나견 눈가로 넘어온 앞머리를 정리해주려다 멈칫, 하고 손을 집어넣음. 이 뽀송말랑완전무결한 생명체를 씻지도 않고 만질 순 없음.
진심 이번에 샤워 최단시간 기록함. 근데 바로 옆에 멀쩡한 샴푸 놔두고 머리에서 손비누 향 날 듯.
도로 침실 들어와서 자리에 눕진 않고 아까 있던 데에 고대로 가서 앉음. 소리 죽여야 한다는 점은 진작에 까먹음. 보고 싶었던 마음이 한 번에 청산하라는 듯 밀려드는데 그렇게나 단단한 이성으로도 막아지지가 않음. 나견에 관련된 일은 항상 이런 식임. 어떻게 해야지 다짐은 하는데, 막상 닥치면 몸이 먼저 나감. 이번에도 그럼. 정신 차려보니까 나견 앞머리 넘겨주다 말고 손끝으로 둥근 이마 쓰다듬고 있음.
기왕 이렇게 된 김에 조금만 더 만져보자 싶음. 얌전히 얘 얼굴 만질 기회가 또 얼마나 있겠냐며 자기합리화함.
미간이 매끈한 거 보니까 또 악몽은 안 꾸는 모양임. 아니지. 눈알 움직임도 없으니까 꿈도 꾸지 않고 깊이 잠들었단 게 더 맞는 것 같음. 지우스는 약간 안심함. 행동이 앞서는 와중에도 애 깨울까 봐 걱정했음.
부드러운 눈썹결을 느끼다가 콧날로 미끄러져 내려옴. 위에서도 언급했듯 지우스가 여기 곡선을 좋아하면 내가 좋음(???) 코끝을 따라 안쪽으로 말리는 선을 그렸다가 뜨거운 날숨 느끼고 잠깐 아득해짐.
목울대 넘어가는 소리가 스스로 봐도 요란해서
이건 나견도 들었겠는데….
생각함.
멈췄던 손길을 다시 이끌어 입술에 올렸음. 여리고 폭신한 살덩이를 몇 번인가 눌러보다가 손을 물림. 더이상 건들면 안 되겠다 싶음. 마지막으로 할 말만 하고 진짜 자야 쓰겠음.
나견.
…견아.
나 왔어.
오래 기다렸어?
자기 귀에조차도 들릴 듯 말 듯하게 속삭여봄.
진짜 이 말만 하고 일어나려고 했음. 느닷없이 얼굴 근처에 머무르던 손을 마주잡아오는 나견만 아니었다면.
…그와 관련된 일은 항상 이런 식임. 예상치 못하게 흘러감.
……언제부터 깨어있던 건지, 정말.
“어서 와요.”
저를 바라보고 살풋 웃으며 잠긴 목소리로 말하는 모습에 지우스가 할 수 있는 대답은 이딴거 밖에 없음. 말이 나온 거 자체로 용함.
“자는 걸 깨웠나?”
나견은 고개를 도리질 치곤 지우스의 손마디를 입술에 꼬옥 눌렀다가 엷은 소리와 함께 떼어냄.
“씻었죠? 얼른 자요, 피곤할 텐데.”
지우스는 나견이 잡아 끄는 대로 그를 넘어가 침대 제 자리에 누움. 그런 그를 따라 나견도 몸을 돌려서 마침내 둘이 마주보고 안은 자세가 됨. 나견 편하라고 팔베개 높이 맞춰주는데 얘가 지우스 가슴팍에 얼굴 묻고는 몇 마디 던짐.
오래는 안 기다렸어요.
그리고 이내 가지런해지는 숨소리.
지우스는 조금 전까지만 해도 서서 기절할 수 있을 것처럼 피곤했으면서 희한하게 잠이 안 옴. 물에 우리지도 않고 씹어 삼킨 각성초 때문인가 봄. 그래…. 마지막으로 먹은 게 약효 떨어질 시간은 족히 지난 각성초 때문임.
7-(1)
나견은 사실 처음 침실문 열릴 때부터 깨어있었습니다. 들어오는 사람이 정성껏 인기척 낮추길래 어울려 줌. 언급했듯 잠귀가 밝기도 하고 곁에 있어야 할 사람이 없어서 깊이 잠들지 못한 것도 있음. 눈을 감고 있는데도 또렷하게 느껴지는 시선 탓에 표정관리하느라 힘들었대요ㅋㅋㅋㅋㅋㅋ
사족 하나 더. 나견 숙면 조건 맞추기 실험에서 지우스는 환경을 잘 맞췄구나 생각했지만 실은 나견이 안아주는 사람의 체온에 익숙해진 것 뿐이었답니다.
8.
적군에게 급습받고 싸그리 포로로 잡혀있는 마당에 아군측 전원 목숨이 담보로 잡혀서 강제로 적 진영 책사 노릇하는 사령탑이 보고 싶음. 지우스든 나견이든 둘 다면 네 배로 좋음(…?)
눈은 안대로 가려지고 손목 발목 다 덮도록 두꺼운 수갑이랑 족쇄는 서로 기다란 쇠고랑으로 연결돼서 어차피 걷는 게 고작인데 어디 불려 나갈 때마다 기본 세 명은 달라붙음. 정면 길잡이 하나, 양 측면 후방에 각각 창 든 감시원 하나씩. 이만큼도 처음엔 사방을 감시원이 둘러쌀 정도로 많았는데 딱히 반항하는 기색 없이 고분고분 따라가니까 인원 줄은 거임. 그런 꼬라지 보면서
내가 이렇게까지 경계해야 할만한 인물인가, 영광이라 해야 할지.
이딴 생각이나 떠올림.
일단 명령에 따르긴 해야죠. 생포당해서 끌려온 당시에는 무슨 짓을 해서라도 거절하려 했는데 제가 조금이라도 대들었다간 아군측 모가지가 어떻게 될지 뻔히 보여서 이 악물고 받아들였겠지. 다른 어떤 모욕을 들어도 기색 하나 바꾸지 않다가 어쩌다 한 번 성깔 돋아서 빈정댔는데 적군 원수에게서 이런 답변이 날아옴.
자네 동료들 상태가 궁금하지 않은가 보군.
듣는 순간 입가 굳으면서 새파랗게 질린 손끝 감추려고 주먹 꽈악 쥠. 너무 세게 쥐어서 팔까지 미세하게 떨리고 나중에 펴 보면 손톱이랑 손바닥에 피 맺혀있음.
눈을 가리는 이유는 오로지 음성언어로 미리 전달한, 극도로 제한적인 정보+회의실에 들어가도 소리로만 상황을 판단해서 책략을 내놓아라 이런 의미일 듯. 적 진영 내부 구조 파악 못하게 하려는 의도도 있음.
견이도 그렇고 지우스도 관찰한 사실(=시각정보)로 상대의 기분이나 허를 찔렀을 때 동요를 하는지 안 하는지(유효타인지 아닌지), 인물 간 적대관계 여부 등을 판단하는 능력이 뛰어나기 때문에 추가적인 정보 제공 경로를 아예 차단해버리는 것. 서로 적대하는 인물이라도 있을 경우에 분란을 조장해서 입맛대로 상황을 연출할 수 있는 건덕지라도 잡을 건데, 나견처럼 연기의 신이 아닌 이상 표정은 숨기기 힘들지만 아무래도 허튼 말은 입조심하면 그만이죠. 이게 어려우면 그냥 닥치고 있으면 됨. 쉬움.(뭐임)
사실 그냥 안대 쓴 사령탑 얘기가 나오길래 주절주절거려 보았습니다. 시야는 막히고 손발은 구속당한 채로 어떻게든 아군에 유리한 상황 만들어내려고 기를 쓰고 머리 굴리는 사령탑…. 그 와중에 적들 눈에는 지들에게 이득인 것처럼 비추어져야 함. 난이도 극악.
나머지 아군은 지하 감옥에 각각 따로 떨어진 채로 갇혀있고 사령탑은 호출 용이하도록 그나마 지상에 있는 독방이긴 함. 그 지상이랄게 높은 첨탑 꼭대기라 탈출이 불가능에 가깝다는 사실 뿐이지. 애초에 독방 들여보내기 전에 안대는 풀어주지만 쇠고랑은 안 풀어주고 제일 안쪽 벽에 고정까지 시켜버려서 탈출은 고사하고 문손잡이 잡을 수조차 없지만.
지우스는 그나마 좀 나은 편인데 견이는 손목 발목 다 구속구에 쓸려서 벌겋게 부을 것 같음…. 지우스 얘는 사실 쇠고랑 따위 힘으로 부수라면 부술 수 있음. 그랬을 경우에 아군측 목숨이 장담이 안 되니까 일단 잠자코 앉아서 기회 보는 중.
9.
화살 맞고 쓰러진 부분까지 기억이 남. 급소도 아니고 허벅지에 박혔을 뿐인데 얼마 지나지 않아 눈앞이 핑 돌면서 정신을 잃었음. 정황상 마비 작용을 하는 독이 화살촉에 발려있었고 치사량은 아닌 것으로 보아…
허.
내가 필요했군.
다른 기사들에 비하면 얼굴이 팔린 편은 아니니 이 작자들은 내가 누구인지까진 모를 확률이 높고. 인질용인가. 하면 표적을 잘 골랐군 그래. 지금쯤 협상을 진행 중이려나. 시간이 얼마나 흘렀지?
나견은 피부에 닿는 정보들을 종합해 당장 자신이 어떤 상태인지 파악함. 안대. 재갈. 수갑. 족쇄. 안대와 재갈은 같은 면 소재. 뒤통수에 매듭이 있어 등 뒤로 손목이 묶인 상태로는 달리 풀 방도가 없음. 쇠사슬은 꽤 두꺼운 편. 기사들에게는 이만한 두께 정도야 무용지물이겠지만 나견은 제 무력 수준을 잘 알았음. 아마 상대도… 파악했지 싶음. 그들 앞에서 살기를 지어 보인 적이 없으니 민간인 급이라 판단했겠지. 손목 주변에서 철그럭거리는 금속성 소음을 들으며 속으로 한숨을 삼킴. 제가 도망갈 구석을 조금이라도 남겨두지 않겠다는 의도가 읽혔기에. 쓸데없이 속박이 철저하다고나 할까.
생각을 더 정리하려는데 독 때문인지 머리가 깨질 것 같았음. 관자놀이를 차가운 바닥에 대자 좀 나았지만 의도와 상관없이 찌푸려지는 미간은 어찌 할 수가 없었음.
정찰 중이었지. 사람 흔적을 발견해서 일행과 좀 떨어졌고. 그래도 서로 눈 닿는 거리였으니 괜찮겠다 싶었는데 그 틈에 기습이라. 유인이라고 밖엔 못하겠군. 방심했어.
…또 혼나겠네.
다시 한번 한숨을 삭였음. 피를 흘려서 그런가 뜨거운 머리와 달리 몸에는 한기가 돌았음.
젠장.
어쩌지.
10. [지우스 + 동기조 약간]
악기 잘 다루는 지우스.
이건 된다고 봅니다 손이 그렇게나 고우면서 주머니에만 짱박아두는 건 자원 측면에서 손해임.
음악적 감각이 뛰어난 격기사 담청색 기린. 내가 썼지만 과하다(???)
자택 서재에 그리 비싸지 않은, 하지만 소리는 맑게 잘 나는 피아노가 있으면 좋겠음. 임무 마치고 큰 부상 없이 귀환한 날. 해는 넘어간 지 오래인데도 여즉 가라앉지 않은 아드레날린 탓에 잠은 안 오는 날. 악보도 없이 그저 손 가는 대로만 건반을 두드리겠지. 이선규 blue flower나 이루마 회상, 악토버 with you 같은 느낌의 곡을 곧잘 연주함. 피아노 치는 당사자는 정작 별 생각 없는데 듣는 사람만 아플 만큼 아련해짐.
근데 냅다 마라시 버전 나이트 오브 나이츠 같은 걸 갈겨도 괜찮을 것 같음. 누가 보면 사상지평 켰냐고 오해할 만큼 손가락이 건반 위를 쏜살같이 날아다님.
피아노 옆에는 기타가 비스듬히 기대어 놓여있음. 아니미친바이올린도
그냥 둘 다 두기로 합시다 처음 설정이 악기 잘 다루는 담기지였으니 세 개 정도는 감당해라
가끔 파디루디가 집에 놀러 오면 매번 파디얀의 종용에 못 이겨 피아노 건반 뚜껑을 열든, 다리 꼬고 앉아서 기타를 들어 올리든, 어깨에 바이올린을 얹든, 뭐 하나는 잡는 지우스. 주로 신청곡을 받을 듯. 제목 듣고 제가 아는 곡이면 약간 변주를 더해 선보이고 모르는 곡이라도 적당히 제목에서 느낌 오는 대로 음을 조합함.
셋이 합주하는 날도 많음. 파디얀 은퇴하고 크게 할 일이 없어서 피아노를 좀 배웠음. 그래서 피아노는 파디한테 넘기고 지우스 자기는 바이올린 집어 듦. 루디카는 노래 부를 듯. 루디 목소리를 나직하고 깔끔한 미성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라우브 노래가 잘 묻는 사람.
그렇게 셋이 해 질 녘이나 별이 총총 박힌 하늘 배경으로 never not이나 아니면 lany - ILYSB 연주해주라….
11. [마력 분석]
*이거는 제가 원작 세계관을 잘 모를 적에 작성한 트윗이라 전제부터가 틀려먹었습니다…. 재미로 봐주세요.
원작 세계관 내 인간들이 전원 마력에 감응할 수 있다 칩시다. 일반인은 그냥 공기처럼 느끼기만 할 뿐 마력을 다룬다거나 몸 안에 쌓는다거나 할 수는 없는 수준. 기사는 마력을 체내에 축적해 전투 시 신체능력 강화에 사용하는 정도. 이렇게 가정하면 기사들이 비상식적으로 강한 점이나 특이 능력 발현 사례를 설명할 수 있음. 마법사는 그보다 한단계 더 나아가 제 입맛대로 마력을 조종하는 범주. 슈민은 마력에 ‘부탁’하는 거라고 설명했지만… 핵심은 마법사들은 마력과 어떤 방식으로든 소통할 수 있다는 점이겠죠. 단지 세계의 의지를 거스르지 않는 선에서 시전해야만 재앙이 닥치지 않는다거나 하는 이유로 '부탁'의 형식을 취하는 듯. 반대로, 한 개인의 의지로 마력 전체를 주무를 수 있는 자가 존재할 수 있다는 말임. 재앙을 감수할 준비가 되어있는 자가. 저는 이 인물이 레기아가 될 가능성이 크다 봅니다.
다시 기사에게로 돌아가서… 체내에 쌓아둔 마력을 밖으로 방출하는 통로가 있을 텐데, 기어스가 이 통로의 크기를 조절할지도 모르겠음. 물을 틀어둔 호스와 같습니다. 호스 구멍이 넓은 상태에서는 물이 천천히 나오다가 손가락으로 호스 구멍을 반 정도만 막아도 물 속력은 겁나 빨라지죠, 수압이 충분하다면.
기어스를 받고 강해지는 경우는 이렇게 수압이 충분히 높은 상태에서 호스 구멍을 기어스가 좁혀 물(마력)을 가속시키는 원리가 아닐까 합니다.
사상지평은 아예 호스 구멍을 막아둔 상태일지도. 원래 막혀있던걸 갑자기 뚫으면 말 그대로 터져 나오잖아요.
시간 경과에 따라 강해지는 부분도 시간이 흐르면 흐를 수록 축적되는 마력량이 많아지니까…. 압력이 계속 높아지는 거임. 주기적으로 뚫어주지 않으면 담청색 기린 큰일나겠는데요.
사상지평 최대로 모아본 게 4년 치니까 그 이상은 모르잖음. 한 5년 넘어가는 순간부터 각혈이 잦아지는 거 아닌지.
11-(1)
아니 그러면
지는 나견 무모한 짓 좀 하지 말라고 나린기 압수하면서 혼자 집무실 들어가서는 한참 기침하다가 피 잔뜩 묻은 휴지 치우는 거임?
12. [지우견]
나•꾸(나견 꾸미기) 하는 지우스
시작은 머리끈이었음. 과거를 그저 지나간 날로만 바라볼 수 있게 된 다음부터 나견은 머리를 길렀음. 나진에게서 빌려온 옷가지는 잘 개켜다 다 해진 머리끈을 그 위에 올려 예전 같이 살던 집터에 전부 두고 옴. 진이가 다시 받아 갈 수 있게.
문제는 이게 머리카락이 날개뼈 너머를 간질이기 시작하니까 풀어두기가 영 불편함. 밥 먹으려 고개 숙이면 내려오고 서류 읽을 때 내려오고 바람 불면 나부끼고 장난 아님. 머리 정리하기 귀찮아질 때마다 나견은 한 갈래로 모아 손으로 잡고 있거나 연필로 대강 쪽을 지어놨음. 그리고 그런 모습을 몇 번이나 관측한 담기지.
여느 날처럼 나견은 느긋하게 아침밥을 씹어 삼키고 있었음. 또 여느 날처럼 흘러내린 잔머리를 빗어 넘겨 귀 뒤쪽으로 꽂았음. 근데 갑자기 맞은편에 앉아있던 지우스가 뭐가 생각났다는 듯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더니 어디론가 감.
뭐지. 표정 보니까 심각한 일은 아니고. 머릿속으로 그날 중으로 제출해야 하는 결재 서류가 있던가 검토해보던 나견은 느닷없이 목덜미를 만져오는 손길에 들고 있던 숟가락을 던질 뻔했음.
⭐️…….(당신 지금 뭐하자는 거냐는 표정)
🌿아니 무슨 생각을…. 그런 거 아니니까 가만 있어 봐.
나견은 영 미심쩍은 얼굴로 뒤로 돌렸던 고개를 바로 함. 그다음 느껴지는 것은 조심스럽게 엉킨 부분을 풀어 머리칼을 한 갈래로 모으는 부드러운 손가락이었음. 자기가 방금 떠올린 그런 게 아니라.
나견은 진심 좀 숨고 싶어짐. 지우스 말마따나 무슨 생각을 하고 내가. 표정을 자유자재로 만들어낼 수 있는 능력이 너무나 감사했음. 그 능력이 없었다면 분명 쪽팔려서라도 볼이 빨갛게 익었을 테고, 지우스는 그걸 가지고 참으로 재미지게 놀려먹었을 테니까. 어차피 나견은 식탁 의자에 앉아있고, 그 뒤편에 지우스가 선 자세라 그에게 얼굴이 보일 상황은 아니었지만 그런 부분을 신경 쓸 겨를이 없었음.
그리고 지우스는… 이런 나견의 상태를 알았음. 언뜻언뜻 스치는 목덜미가 평소 답지 못하게 뜨끈했거든. 자꾸만 새어 나오려는 웃음 참느라 혼남.
며칠 전에 사둔, 손가락 두 개 정도 두께의 비단끈으로 머리를 단정히 내려 묶어줌. 옅은 푸른색과 초록색이 절묘하게 뒤섞인 원단은 가게에서 고를 적에 제 욕심이 멋대로 튀어나온 결과였으나… 과하지 않게 윤기가 도는 모양이 그 주인 될 사람의 황금빛과 잘 어울렸음. 언제 줄까 한참을 고민했던 시간이 무색할 정도로.
🌿이제 됐어. 마음에는 드나?
나견에게 손거울 하나를 건네며 물었음. 제가 뒤에서 거울을 하나 더 들고 양쪽에서 비추면 나견이 머리끈을 볼 수 있을 테니까. 나견은 남의 머리 묶어본 적 없다고 티라도 내는 듯 어설프게 묶인 매듭을 한번, 비단끈 색깔을 한번, 마지막으로 은은하게 기대하는 감이 깔린 지우스 표정을 한번 쳐다보더니
푸흣.
하고 웃었음.
이게 한 번 터지니까 안 멈춤. 아주 어깨까지 들썩거리면서 웃는 나견 옆에서 야 우냐 자세로 왜. 왜웃는데. 하는 지우스 있음.
⭐️아,니 그냥, 으흫,
너무 예뻐서 그만.
고마워요.
간신히 숙였던 고개를 들고 눈가를 훔치며 지우스를 바라봤음. 지우스는 괜시리 기껏 정리해준 나견 앞머리만 살살 헤집었음. 웃느라 달아오른 뺨에, 곱게 접힌 눈매며, 한껏 끌어올린 입가가… 너무 예뻐서 그만.
그 머리끈을 시작으로 지우스는 이쁜 거 하나둘 구해다가 나견한테 걸쳐보기에 재미 들임.
아침저녁으로 찬바람이 기승을 부리는 계절이 찾아옴. 나견은 사실 크게 신경 쓰지 않았음. 한겨울용 외투는 따로 있는 데다 북부 출신에게 추위 따위야 익숙했으니까. 근데 담기지가 가만 안 놔둠. 그냥 원래 입던 옷 입고 출근하려는데 나견, 잠깐. 하는 목소리가 발을 붙듦. 목소리 주인은 양털로 짠 봄가을용 외투를 들고 다가왔음.
나견은 뭘 또 사셨냐는 표정을 지으면서도 순순히 입고 있던 웃옷 벗어서 지우스에게 건넴. 그럼 이 유죄인간은 자연스럽게 그거 받아서 어깨 한 쪽에 걸고 견이 새 옷 소매에 팔 넣는 거 도와줌.
전체적으로 상아색에 소매와 밑단에만 연한 주황색으로 무늬가 들어간 외투는 등허리 부근에 기다란 끈이 달려 앞에서 여밀 수 있게 된 구조였음. 소매며 품이 좀 넉넉하게 남을 듯.
나견 그날 하루종일 옷 어디서 샀냐는 질문만 몇 번을 들음.
⭐️저도 선물 받은 거라…. 어디서 사셨는지는 잘 모르겠네요.
매번 이렇게 답변하니까 사람들 알아서 담청색 기린 찾아감.
👤어이 기린. 너 나견이 옷 어디서 샀냐.
🌿(가게 이름). 왜지?
👤아하 그렇군. 나도 하나 쟁여놓게.
🌿…?
👤색깔은 다르게 할 테니까 걱정은 말고
🌿……??
이쁜 모델 덕분에 아주 가게 매출이 오름.
얇아서 활동하기는 편한데 아무래도 양털인지라 ㄹㅇ 따셔서... 나견 가을 내내 그 옷만 입음. 지우스 진심으로 뿌듯해할 듯.
본격적으로 추워지기 시작하면 담기지 볼끼며 장갑이며 이것저것 포근한 방한용품 사다가 나견한테 끼워줌. 계속 자기만 받는 상황을 보다 못한 나견이 하루는 점심 휴게시간을 틈 타 샛노란 목도리를 골라왔음. 일하는 부서는 다르지만 별일 생기지만 않으면 퇴근은 같이 하니까 그때 줘야지, 하고 곱게 접어 서랍에 잠깐 넣어둠.
그날은 나견 일이 좀 더 일찍 끝나서(선물 주고싶은 마음이 급했음) 목도리(노란색) 챙겨다 지우스 마중 가니까 사무실 의자 밀어 넣던 그의 손에 들린 또 목도리(초록색).
어딘가 직관적인 색 조합에 약 2초 간 눈빛교환이 이어짐. 그리고
후흣.
피식.
둘이 동시에 웃음 터트림. 서로가 무슨 생각 했는지가 빤히 보여서. 그렇게 서로에게 목도리 둘러주고 손 꼬옥 잡고 집으로 돌아가는 별천지 대표 염병천병 부부….
어느새 날이 풀려 꽃잎이 흐드러지는 계절이 찾아옴. 간만에 둘이 같이 휴가를 받았는데 주변 사람들이 서류는 손대지도 말라고 엄포를 놓은 탓에 그저 하릴없이 햇살을 쬐고 있던 오후였음. 나란히 거실 소파에 앉아 맞닿은 손등끼리 톡톡 치면서 장난 치던 게 진화해서 나견이 지우스 손에 깍지까지 끼운 채로 이리저리 만지작거리면서 갖고 놀고있음. 그 광경을 가만 바라보던 지우스.
🌿나견.
돌아가는 고개를 따라 금빛 머리칼이 싸르륵 흘러내렸음. 이젠 그 끝이 허리 언저리에서 살랑거릴 정도로 길어서 나견은 밖에서는 높게 틀어올려도 집안에서는 편하게 내려 묶었음. 그가 준 머리끈으로, 그가 묶어줬던 방식으로 나슨하게. 지우스는 오늘이어야겠다고, 속으로 다시 한번 다짐함.
🌿줄 게 있어.
⭐️자꾸 뭘 가져와요, 당신?
말투는 장난스러운 타박 한 스푼, 정말 못 말리겠다는 가벼운 체념 두 스푼, 따스한 봄날 햇살을 닮은 마음 일곱 스푼. 나견은 그래, 다녀오라는 듯 잡고 있던 손을 풀어줬음.
이만했으면 나견 약간 기대도 할 듯. 막 두근두근거리지는 않고 단지 이번엔 뭘까? 싶은 정도. 그도 그럴 게 여태껏 담기지가 선물했던 것들 중에 맘에 안 드는 게 없었거든.
나견이 후보들을 찬찬히 떠올려보던 사이에 지우스는 금방 방에 다녀옴. 그 ‘줄 거’는 등 뒤로 숨겼나 봄. 표정이 상당히 의미심장해서 나견은 약간 불안해짐. 저런 표정을 한 지우스는 웬만하면 말려지지 않음. 곧 큰일이 닥치리라는 징조와도 같았음.
그런 속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니, 분명 알겠지. 그러지 않고서야 애정 가득한 눈가에 저런 식으로 장난기가 스며 나오지야 않을 테니까. 지우스는 그 앞에 한쪽 무릎을 꿇음.
나견은 약간이 아니라 좀 많이 불안해짐. 앞으로 벌어질 사건을 어렴풋이 예상해버린 탓에. 그렇다고 제 왼손 약지에 끼워지는 반지를 어떻게 할 수도 없었음.
⭐️저,기 지우스 님….
🌿다행히 크기는 딱 맞네. 모양은 어때. 마음에 들어?
⭐️예뻐요, 너무 예쁜데, 그.
🌿너만 끼는 거 아니니까 너무 걱정하진 말고.
내 손에는,
나견 네가 끼워줘. 응?
꽃잎이 흐드러지는 봄날이었음. 그들이 한집에 들어와 같이 살기 시작했던 꼭 그 날짜.
13.
17~20살 즈음 된 애들을 견습으로 받지 않을까 생각 중입니다. 훈련을 좀 빡시게 시켜도 죽지 않을(…) 혈기+어른이 말하면 들어먹기는 할 나이가 현대로 따지면 고딩 정도 되니까
물론 저를 포함한 제 주변 n명은 기력 따위 없습니다 생존이 고작임
그리고 견습 생활을 한 2~3년은 하지 않을까요? 그래도 교육인데 그 정도는 해야 뭐라도 줏어다 배우죠. 해서 지우스가 저 나이대에 견습 시작해서 2~3년 뒤 22살 즈음 기사 시험을 봤다 치고 현재 27으로 보고 있습니다. 이렇게 되면 문제가 생기는 게 나진이 불 지르고 그걸 나견이 덮어썼을 때 얘네가 최대 10살임.
예?
보통 소년만화를 읽으면 주인공이 앵간히 애같이 생기지 않은 이상 고딩 정도 나이로 생각하는데요. 몸은 성인과 다를 바 없음+법적 미성년+정신적으로 덜 여묾>>>여기서 나오는 미감에 환장함. 필연적으로 성장에 관한 고찰이 작중에서 나오기 때문에 좋아하는 면도 있습니다. 성장하는 주인공 짜릿해늘새로워최고야 근데 어째서 우디온 화재가 10년 전
나쌍디 신체시간이 남들과 다르다 치면 되지 않을까요? 외부의 5년이 얘네한텐 1년인 거임 10년이 흘렀으면 얘들은 두살밖에 더 안 먹은 거고 내가 지금 무슨 소리를
14.
https://x.com/jbakajeba/status/1767550418966679846
사진을 어쩔까 고민하다 그냥 원트윗 넣음.
저는
데미안 메타포를
진심으로 사랑합니다
15.
제가 트위터 기어들어 오기 전부터 만들어둔 나견 기사명이 있는데요 그냥 자랑하고 싶음
은회색 주작.
朱雀. 또는 做作임.
주작朱雀
사방신 중 하나. 남쪽 방위를 지키는 신령.
주작做作
없는 사실을 꾸며 만듦.
16. [지우견]
좀 얼탱이 없는게 필요함. 나견이 고백했는데 지우스가 못 들은 것 같아서 그냥 말 돌려버림.
⭐️좋아해요.
🌿…어? 뭐라고?
⭐️저 이 색깔 좋아한다고요.
🌿나는 너 좋아해.
⭐️…뭐라고요?
🌿뭐?
이딴 망한 고백
17.
제가 봄철 비염 이슈로 숨이 잘 안 쉬어지는 고로… 호흡곤란 온 담기지 보고 싶음.
결론부터 말하자면 표적을 놓쳤음. 유동 인구가 많은 지역에서 목표물을 추적하는 임무는 큼지막한 사고와 소문들을 달고 다니는 기사들보다는 상대적으로 얼굴이 덜 팔린 그가 나서는 게 최선이었음. 또 정보를 뜯어내는 임무는 그 자신의 정보는 감추되 상대의 정보는 최대한 불어내게 만드는 그의 언변이 필요했음. 결국 담청색 기린에게 제격인 임무였다는 소리임. 그렇다면 왜 표적을 놓쳤느냐.
걸리적거린다며 후방 지원은 전부 떼놓고 혼자 접근한 것이 궁극적인 이유였음. 더 정확히 말하자면 표적과 자연스럽게 말을 섞던 도중 상대가 기린의 정체를 눈치챘는지 인적 드문 곳으로 유인하더니 튀었는데, 그때 그의 시야를 가리기 위해 얼굴 부근에 던진 연막탄 성분을 미처 예측하지 못했음.
단순 연기였다면 눈 좀 맵고 기침 좀 하는 것 이외에 문제 될 사항은 없었겠지. 한데 증상이 예사롭지 않았음. 호흡기로 들어와선 안 될 물질이 들어오기라도 한 양 불로 지지는 듯한 통증이 비강부터 머릿속까지 번졌음. 이어 눈앞이 점멸하더니 다리 힘이 탁 풀렸음. 그가 들숨 다음 날숨으로 이어져야 할 순환을 마땅히 하지 못하고 있음을 깨달은 건 그다음이었음. 기도가 한 방향으로만 꽉 막힌 듯 날숨이 뱉어지질 않았음.
마약인가. 순도가 꽤 높군. 마약류 불법 사용 혐의도 추가해야겠어.
그와중에도 직업병은 어쩔 수 없었음.
억지로 기침을 내뱉었음. 그렇게라도 날숨을 만들어내지 않으면 정말 위험한 수준까지 갈지도 몰랐으니까. 폐부를 쥐어짜는 듯한 통증이 일었음. 정신을 잃지 않으려 안간힘을 쓰고 뜬 채 버티던 눈에 생리적인 눈물이 고였음.
18.
공군 와론 생각
론누 항공샷 때문인가 유독 하늘이 잘 어울린다 콜사인 새까만 닭
훈련 중에도 쓸데없이 곡예비행 해서 매일같이 불려 다니는데 실력 하나는 죽여주는…. 격추 기록까지 있는 전설의 파일럿.
지우스는 해군 밉니다. 금사로 장식된 흰 정복에 훈장 주렁주렁 매달아주길.
그리고 해군 항공대 나견.
그렇습니다 지와견이었음.
19.
“나라면 할 수 있어”
그 대사를 성장이라고 표현하긴 했지만 사실 저게 진짜 건강한 성장의 결과일까? 하는 질문엔 의문이 가장 먼저 들거든요….
이전까지는 나견이 위험상황에서 나진이라면 이겨낼 수 있다고 마음을 다잡는 것을 통해 나진을 연기하지만 여전히 나견과 나진을 분리해서 여기는 모습을 보여준다고 저는 봤어요. 하지만 저 대사에서 주어는 ‘나’죠. 나견과 나진 중 누구를 ‘나’로 선택할 것인가<<<이게 문제입니다. 과연 그 대답이 ‘나견’일지.
20. [기린진]
아 아
여지웃 그리고 나견 복수하려는 나진
어느 날 마을에 나갔다가 집에 와보니 그를 맞이하는 건 언제나처럼 꾸며낸 미소를 지어 보이는 해사한 얼굴이 아닌 온기 가신 죽은 몸 하나.
그러니까.
저게 나견이라고.
그럴 리가 없잖아. 나견이 왜,
…죽었다고?
나견이?
모든 감각적 정보는 단 하나의 사실만을 가리켰다. 산 사람에게는 응당 존재해야 할 들썩거림이 없는 가슴. 피 냄새. 차디찬 공기. 오늘은 어땠냐며 묻던 조곤조곤한 말소리가 비어버린, 적막. 그저 적막.
나견이 원한을 산 사람은 많다. 진위에는 관심 없고 단순히 범인, 즉 원망할 대상이 필요했던 자들. 그럼에도 직접 죄인을 처단할 용기는 없는 자들. 마을 주민들은 제외다.
화재 이후 나견은 집 밖에 나가 있는 시간을 최소화했으므로 내가 아는 것 이외의 인간관계는 없으리라. 하면 나견은 목적이 아닐 가능성이 높다. 나견을 죽임으로써 내게 얻어낼 게 있는 인물.
그렇다면,
답은 하나밖에 없지.
단박에 떠올리지 못한 내가 그냥 우습다.
나견은 심장이 꿰뚫렸다. 상흔으로 보아 무기는 얇은 양날검. 너무도 잘 아는 무리가 쓰던 것과 같은 종류다.
용의 후예.
그쪽에서 얻어낼 건 다 얻어냈고, 대가도 지불했다 여겼다. 그 대가에 대한 여파로 나는 10년을 모른척해야 했다. 한데 부족했던가.
나견은 잠적한 나를 도로 끌어내려는 술수였으리라.
…술수.
그 따위 것에 네 숨이 끊겼다.
그렇게 감겨서는 안될 눈이었다. 꼭 내 손으로 네게 세상을 보여주고 싶었다. 이제껏 너 혼자 감내해왔던, 내가 받았어야 했던, 그 모든 괴로움에 대한 속죄를, 나는 아직-
“…견아.”
내게 남은 소중한 단 하나.
“내가 꼭,”
복수해줄게.
나의 가족.
무슨 수를 쓰든, 내 손에 피를 얼마를 묻히든. 그 끝에 나는 지워지고 너만이 내 목적이 되어 이 세상에 남든. 너를 위해 강해졌으니 그 힘은 너를 위해 써야 마땅할 터.
기사가 되어주겠다. 너희가 그토록 증오하는 기사가 되어 너희의 뿌리를 도려내고 가지는 전부 태워 흔적조차 남지 않게 해주지.
견아,
약속할게.
나는 꼭…
“힘이란, 눈앞의 상대를 죽일 수 있는 것. 강함이란, 그럼에도 죽이지 않는 것. 기사란, 힘 있는 자가 아닌 강한 자여야 한다.”
“유명한 말이다. 새겨두도록.”
담청색 기린은 몇 번이고 강조했다. 강한 자가 되어야 한다,라. 애초에 전부 죽여버리겠다 다짐한 채 여기 어울리고 있는 나로서는 웃음 밖엔 나오지 않는 허구한 이상이다.
“힘을 얻었기에 그 누구보다 강한 자이고자 했다. 기어스에 얽매이지 않더라도.”
허상 뿐인 이상이 뭐라고 그리 목숨을 거는가.
“나진.”
“네 목적은 뭐지?”
이미 죽어버린 이상에 목숨을 거는 내가 할 말은 아니지만.
21. [지우견]
집앞에 벚꽃이 잔뜩 폈더라구요 지우견 꽃놀이 가라
얘네 성격에 각 잡고 일정 비워서 여행가는 일 아니면 굳이 시간을 내서 놀러가진 않을 것 같고 다만 퇴근길에 문득 건너다본 작은 하천 길가 가로수가 꽃을 틔웠길래.
견이는 유명 여행지 뿐만 아니라 일상 속 소소하지만 여행지 못지않게 아름다운 풍경도 좋아할 듯. 바로 근처의, 제 속한 세상이 이토록 찬연할 수 있구나 하는 현실감과 비현실감이 동시에 느껴져서.
해서 길 가다 자기도 모르게 멈춰선 나견을 보고, 그 시선을 한 발짝씩 따라가 본 지우스.
이 미쳐버린 특2기 이성담당인간은 그런 걸 봐도 ‘아 꽃 폈구나 봄이구나 축제 기간엔 질서 유지 역으로 파견 가는 일이 잦을 테고’ 이딴 생각밖엔 안 함. 하지만 바람에 흩날리는 꽃잎이 튕겨내는 햇살인 양 반짝거리는 붉은 홍채를 눈치챈 이상 무시할 수는 없었음. 감히 그럴 수가 없었음.
“잠깐 보다 갈까.”
먼저 말을 꺼낸 의도야 나견은 당연히 알 테니, 굳이 장난기 어린 미소를 감추진 않아도 되겠지.
점점 색이 짙어지는 창공으로부터 길가를 밝히는 일을 넘겨받은 가로등 빛이 꽃가지 사이사이를 선들선들 훑었음. 갑자기, 그렇지만 부드럽게 불어온 봄바람에 흩뜨러진 꽃잎이 이리저리 나부끼더니 지우스 머리며 어깨에 잔뜩 내려앉으면 좋겠음. 고작 그런 걸 가지고도 뭐가 그리 재미졌는지 푸핫 웃어버린 나견.
“우스워?”
“네, 꽤나.”
표정은 생글거리면서도 손으로 가볍게 툭툭 쳐서 꽃잎 털어줌.
새삼 얘가 원래 이렇게 웃음이 헤펐던가 싶어지는 지우스. 어디선가 날아온 몽실몽실한 꽃송이 하나를 통으로 건져다 흐트러진 잔머리와 함께 나견 귓가에 꽂아줌.
22.
어떤 명제를 무조건 참이라 가정하고 다른 일반적인 논리에 모순이 생기는가 생기지 않는가를 따져 위 명제의 참 거짓을 판단하는 논증 방법이 있는데요, 기린은 아마 이걸 시도했던 것 같음. 나진을 신뢰할 수 있는가? 하는 명제에 무조건 신뢰한다는, 얘가 하는 모든 말은 참이라는 조건을 걸어두고 그 조건하에 자기가 이미 알고 있는 정보나 당장 돌아가는 상황에서의 모순 여부를 살펴봤지 싶어요. 근데
견며들었죠? 이젠 논증이고 뭐고 ‘적어도나는’ 발언에 애 위험하겠다 싶으면 손부터 먼저 나가죠?
23.
그냥 평범하게 아픈 지우스
ㄴ평범한가요
ㄴ이 남자에게 과로는 일상이니까요
기나긴 서류 작업을 끝내고 잠깐 바람이나 쐴까 싶어 의자에서 일어섰는데 갑자기 골이 어찔-하면서 중심도 못 잡고 휘청거림. 시야도 무슨 잡음 낀 것처럼 혼탁하길래 단순한 기립성 저혈압인가 싶어 책상 짚고 좀 기다려보려는데,
투둑. 툭.
표면 위로 무슨 액체가 떨어져 내림. 기사에겐 익숙하기만 한 검붉은 액체가.
한두 방울이었으면 아 피곤하구나 하고 넘겼을 텐데 코피가 안 멈춤. 손으로 틀어막아 봐도 옆으로 스며나와 흐를 정도로 양도 많고. 역류하지 않도록 고개 숙이고 입으로만 내뱉는 고르지 못한 숨에는 짙은 혈향이 배어있었음.
그간 무리하긴 했나.
사령탑, 작전 지시자 역할을 수행하다 보니 실제로 임무 중 몸으로 구르는 일은 자주 없었음. 의심 가는 건 과로. 가장 최근 맡은 업무를 수행하던 나흘 사이에 1시간 이상 연속으로 자본 적이 없었고 그렇게 잠을 줄여가며 일어날 수 있는 모든 변수를 고려하던 와중에 밥을 챙겨 먹은 기억이 없다, 정도.
지우스는 나름 합리적으로 끼니 거른 것에 관해 설명할 수 있었음. 밥을 밀어넣으면 소화기관이 움직이기 위해 에너지를 소모할 테고 그 에너지를 아껴 뇌로 보내는 편이 훨씬 효율적이었음. 뭐 이런 설명을 듣는 이도 합리적이라 생각할지는 미지수였지만. 아마 대다수는 그놈의 효율 따위 죽기 싫으면 집어치우라고 하지 않았을까. 그걸 알아서 저도 밖으론 이런 말 꺼내지 않았고.
한데…. 이건 또 어떻게 설명하지.
시야가 아주 잠시 맑아진 틈을 타 서랍에서 손수건을 꺼내 코를 묻었음. 현기증은 여전했음. 아니, 오히려 실혈 탓에 더 심해진 느낌이었음.
이럴 줄 알았으면 차라리 휴지를 갖다 놓는 건데.
희던 손수건에 붉은기가 잔뜩 번졌음.
이래서 옷도 검은색으로 바꿨다고.
흰 천에 붉은 것이 스미면 싫었음. 빨기도 힘들고, 무엇보다 눈에 너무 잘 들어왔으니까. 지켜내지 못한 이들이 흔적을 남기는 곳은 제 심장 속으로 차고 넘쳤기에.
24.
아무래도 나견 같은 애는 지우스 인생에 다시는 없을 인간상일 테니까….
나견이 처한 상황 자체가 특수한데다 얘가 가진 탈인간급 능력이 이제 막 개화했음. 성장 가능성이 넘쳐난단 말이죠? 다만 좀 문제 되는 건 당장 나견을 이승 땅바닥에 붙들어 매는 말뚝이 나진과 복수라 그 둘을 놓았을 때, 그 시점에 나견의 능력이 아닌 정신이 성장해있을지<<< 이거임. 그냥 좀 걱정이 되어요. 아무래도 소년만화다 보니 이 아이가 어떤 식으로든 자유를 얻어내지 싶긴 한데... 제가 뒤통수를 거하게 맞은 웹툰이 있어서 말이죠 노력의 결과라고,
24-(1)
서로에게 유일한 사람이라는 게 갑자기 너무 벅참 지우스와 나견 꼭 씨피가 아니더라도
25. [지우견]
한날한시에 죽는 것도 좋은데 그래도 사별이 보고 싶음.
당연히 이들은 서로를 위해 스스로가 행복해지려 노력하는 가장 이상적인 쌍방구원 씨피지만 그렇지만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가장 행복할 순간에 둘 중 하나를 영영 빼앗고 싶음((싸이코패스인지))
남겨진 이가 그린 미래에 떠나간 이가 들어가지 않은 순간이 없다는 걸 처절하게 깨닫는 그런 독백이 보고 싶어요.
25-(1)
*사별은 아니지만 한날한시에 죽는 지우견이라 끼워 넣어 보았습니다.
큰 사건이 하나 터졌고, 수습 중 발생한 각종 변수 탓에 손쓸 수 없을만큼 상황은 벌어졌음. 그 틈새에 끼어 죽어버린 기사만 여럿, 민간인은 추산이 끝나지도 않았음. 말 그대로 어떻게 손쓸 수가 없었음. 며칠을 밤을 새워 최선인 수를 내놓아도 최악을 겨우겨우 면하는 수준이었음. 그리고 그 작전의 책임자, 두 사령탑. 모두 책임감 하나는 쓸데없이 강했고 그게 그들이 가진 인망의 뒷받침이자 탈이었음.
작전 종료 후 별천지 측엔 보고서가 제때 들어왔음. 사상자 명단에까지 가지런하게 서명된 보고서가. 정작 그 작성자들은 돌아오지 않았음. 별천지는 그들도 마음을 추스를 시간이 필요하겠지 싶어 부러 찾지 않았음.
그렇게 하루, 이 주, 삼 개월.
기사들을 대거 잃은 실정에 유능한 인력을 추가로 더 내버려둘 수야 없었음. 자택부터 뒤졌음. 대륙 전체를 샅샅이 훑었으나 끝내 그들을 찾은 장소는 마지막으로 실행했던 작전의 최적전지였음. 가장 많은 이들이 죽었던 곳에 못 보던 시신 두 구가 나란히 놓여있었음.
살해… 아니, 자살 도구는 담청색 기린 소유 나린기. 나견은 심장이 관통당했음에도 사지가 가지런한 반면 기린은 경동맥이 뚫리고 측면으로 쓰러진 모양새로 보아 기린이 나견을 먼저 찌른 후 본인도 자결한 것으로 추정. 아래는 시신 머리맡에서 발견한 유서의 일부.
(…) 죄송합니다. 작전 책임자라는 인간들이 여러분 목숨 하나를 책임지지 못해서. 죄송합니다. 더 나은 길을 찾아내지 못해서. 이 모든 무게를 안고 살아갈 만큼 떳떳하지 못해서. 죄송합니다.
그저 한없이, 죄송합니다. 사과드리러 가겠습니다.
26. [지우견]
담기지 놀려먹으려들 때는 사랑한다는 말을 유려하고 깔끔한 문장으로 얼굴에 철판 깐 채 잘만 말하던 나견. 오히려 감정에 겨워 고백할 적에는 잘 다듬은 문구도 없이 지우스 눈도 못 쳐다보면서 꼭 한 마디만 간신히 내뱉으면 좋겠다.
좋아해요, 랄지.
27. [지우견]
작전 짜는 중. 둘이 빡세게 머리 굴리다가 한순간 나견이 너무
장하고귀엽고기특하고대견하고
그래가지고
무의식적으로 그 머리에 손 얹었다가 지가 더 놀라서 재빨리 치우는 지우스.
나견은 냅다 쓰다듬 받은 건 난데 왜 당신이 더 놀람?<<< 대충 그런 말을 표정으로 함. 한숨 푹 내쉬더니 아직 허공에 떠있던 지우스 손 끌어다 눈가에 포갬. 살살 열 오르던 머리에 수족냉증 처방.
28. [지우견]
그냥 책을 읽을 뿐인데 자꾸 옆에서 느껴지는 시선 탓에 집중이 안 되던 나견.
⭐️...무슨 일 있어요?
🌿음? 아니 그냥. 제목이 뭔가 해서.
꽤 재밌게 읽길래.
그렇게 난데없이 입꼬리 씨익 올리는 것도 버릇이라고, 나견은 생각만 함.
읽고 있던 쪽을 잡아 책표지를 지우스에게 보여줌. 지우스 자택 서재에서 꺼내온 소설책일 듯. 지우스놈 시사 교양 이런 장르만 읽게 생겨가지고 은근 문학 좋아하고 시집이며 소설 읽기 즐기고 그러면 좋겠음. 서가를 그득 메운 책등 구경하다 한 권씩 섭렵하기가 동거 시작한 이후 나견에게 새로 생긴 취미였음. 이 책도 그중 하나. 지우스도 언젠가 읽어 본 책이겠다.
어디 읽고 있나 보여달라는 듯 나견이 펼쳐든 방향으로 손가락 스윽 밀어넣어 자기 쪽으로 살며시 당김. 그에 나견은 아예 안락의자 팔걸이에 걸터앉아 어느 한 문단을 톡톡 가리킴. 자리를 옮긴 이유라면, 원래 앉아있던 책걸상에서 보여주기에는 거리가 좀 있는 편이었고 또 안락의자 편해 보였거든. 어느새 신문은 반으로 접혀 지우스 무릎 위에 자리했음.
둘이 책 같이 읽으면 나견이 먼저 끝내고 그다음에 지우스가 이제 넘겨도 좋다고 신호 줄듯. 큰 차이는 나지 않으나… 나견은 사건 흐름과 인물의 감정선, 심리를 본다면 지우스는 그것들이 어떻게 글로 표현되었는지를 볼 것 같음. 이야기 전체와 문장 하나하나, 그런 차이.
나른한 오후, 푹신한 곳에 기댄 자세, 사각사각 종이 넘어가는 소리. 옆 사람. 물리적으로나 심리적으로나 퍽 가까운. 소설 내용의 흥미 정도와는 별개로 잠 오기에 너무나 적당한 환경이었음.
막 티나게 꾸벅꾸벅 졸지는 않았던 것 같은데 이인간은 어떻게 알아차렸는지 팔로 허리를 감아 끌어 자기 무릎에 앉힘. 신문은 또 언제 치웠는지. 옆으로 웅크린 채 상체를 파묻고 보니 지우스 어깨와 가슴팍이었음.
🌿잠깐 자. 깨워줄게.
마지막 남은 긴장까지도 탁, 풀리도록 목소리는 나지막하고 부드러웠음.
29.
나견 개말라니까 발레코어 잘 어울리지 않을까 하는 극악무도한 생각
나견 머리 양갈래로 땋아서 리본으로 묶은 다음에 셔링 들어간 블라우스에 짧은 치마바지 입혀주고 싶다. 한쪽 트임 있어야 함. 손목에 리본끈 종아리에 워머 신발은 버클 달린 워커(욕망 한가득)
견아 머리 길러라
30.
나견 우디온 화재 + 진이 죽던 날 집에 불난 거 때문에 호흡기 안 좋으면 어떡하지 화재가 발생했을 시 코와 입을 젖은 수건 등으로 막아야 하는데 아이고 견아
누워서 자면 깔끔하지 못한 색색거리는 소리 다 들린다거나… 숨이 조금만 거칠어져도 후두며 기관이 쓰려서 견습 훈련 중 쉬는 시간 생기면 수통부터 새로 채운다거나…. 폐활량도 딸릴 듯.
이… 폐활량 안 좋은 사람이 갑자기 격한 운동하고 나면, 아니면 하는 중에라도, 폐 부근이 아파서 더이상 못 움직이는 시점이 온단 말이죠(당사자성 발언). 숨은 쉬어야겠고 기관이랑 폐에 공기가 들어갔다 나갈 때마다 뭐 긁는 소리 나면서 아파 죽겠고 진정도 안되고
주변에 사람 없는 거 확인하면 호흡 관리 잠깐 멈추고 한손으로 입 틀어막고 마른기침함. 목소리도 나진/예전 나견보다 탁한데 꾸며낸 어조로 적당히 덮음. 근데 진심 목소리 달라도 아무도… 모를 것 같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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