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의 후예 최루스 上

전직 마피아 라우룬 패밀리

230629

* 현대 올캐러

* 기사고등학교에 잠입하는 리아민과 라우준

* 뭔지 모르겠는 글. 캐붕주의

* 가벼운 욕설 주의

최루스. 그는 기사고등학교에 다니고 있는 2학년 고등학생이다. 성은 최씨이지만 아무도 그의 성을 붙여서 부르지는 않는다. 그의 학교가 기사고등학교라고 해서 딱히 무언가가 다른 것은 아니다. 기사가 되기 위해서 다니거나 하는 것은 더더욱 아니며 하루종일 앉아서 지겨운 공부를 강요당하는 지극히 일반적인 학교다. 루스는 아침에는 학교에 가서 수업을 듣고, 오후에는 카페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저녁이면 한량하게 시간을 보내면서 그의 친구들과 불량한 짓거리를 하는 평범함과 거리가 가까운 생활을 하고 있다. 학교생활의 무료함은 대개 학교 친구들을 괴롭히는 것을 통해 해결할 수 있었다. 언제나 루스는 같은 반 친구들에게서 무시할 거리를 찾아냈는데, 오늘 친구들 중 한 명이 입고 온 티셔츠가 그것이다. 

"썬오브 드래곤ㅋㅋㅋㅋㅋㅋ? 뭐냐 이 병신 같은 티셔츠는?"

'ㅆ ㅓㄴ 오브 드ㄹㅐ곤' 이라는 간지작살 나는 문구가 박힌 티셔츠였다. 검은 티셔츠에 하얀 고딕체로 쓰인 글씨가 다분히 중2병 스러웠기에 주변학생들도 이번만큼은 루스의 말이 사실이라고 인정했다. 그의 주변의 친구들 몇몇이 따라 웃었지만 루스의 웃음소리가 가장 시끄럽게 들린다. 

" 근데 이거 진짜로 있는 걸껄? ㅆ ㅓㄴ 오브 드 ㄹㅐ곤? 해외에 있는 마피아야,"

" 푸흡, 야 병신아, 그런 도시전설을 믿냐" 

" 아니야 진짜 유명했는데 무슨 전직 군인들로 이루어진 조직이라는 얘기도 있었고" 

" 나도 들어봤어. 근데 괴멸돼서 이젠 없다며, "

"ㅋㅋㅋ 새끼들아 위키 좀 그만 봐"

몇몇 친구들이 말하는 소리는 솔깃했지만 신경 쓸 만 한 것은 아니다. 루스는 여전히 처 웃고 있을 뿐이다. 투명드래곤 이후에 최고의 문구였다.

학교가 끝나고 루스는 함께 하교하는 티르, 루지안과 헤어져 아파트 단지 안으로 들어갔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8층에 내려 한 집의 현관문을 열고 다녀왔습니다, 하고 말한다. 

"어서와,"

한 남성이 주방에 서있다가 뒤를 돌며 루스에게 인사한다. 요리를 하고 있었는지 꽁지머리를 하고 앞치마를 매고 있었다. 라우룬이다. 

대충 고개를 끄덕이던 루스는 떡 벌어진 가슴팍과 ㅆㅓㄴ 오브 드ㄹㅐ곤 티셔츠를 마주친다. 그는 카이잔이다. 

거실로 걸어나오는 사람은 라우준이다. 그의 티셔츠에도 같은 문구가 쓰여있다. 

이들은 전직 마피아였던 라우룬 패밀리이다.  

"이제 오니?"

루스는 잠시 할 말을 잃었다가 정신을 차리고, 침착한 라우룬의 목소리에 대답한다. 

"네, "

"오늘은 가게로 출근해줄래? 오후에 일손이 없어서 말이야"

'윽, 또 알바만 잔뜩 하겠네'

"네, 알겠어요."

'가게 가기 존나 귀찮다'라는 표정이었지만 루스는 선선히 대답한다. 패밀리 내에서 그는 가장 말단이고, 명령을 거부할 수 있는 힘도 깡도 없다. 또한 카페는 그의 담당이기도 하다. 

To Lone은 이 마피아 패밀리가 운영하는 기사동에 위치한 개인 카페였다. 

루스는 식탁의자에 가방을 내려놓고 라우룬이 만들어 둔 샌드위치를 주섬주섬 먹는다. 주방을 등지고 먹는 그의 앞으로 카이잔이 거실을 돌아다녔다. 

'면도나 좀 할 것이지.'

루스는 카이잔과 라우룬의 거뭇거뭇한 수염을 보며 생각한다. 그의 패밀리 사람들은 수염이나 머리를 기르기를 좋아해서 항상 검은 수염과 반곱슬의 검은 머리를 표식처럼 하고 다녔다. 용의 후예라면 한때 외국에서 용병급 무력을 갖춘 마피아 집단으로 뒷세계를 주름 잡았다던데, 이들은 마피아라기 보단 시커멓고 덥수룩한 아저씨들이다. 거기에 썬오브드래곤이라고 하얗고 굵은 글씨가 적힌 단체 티셔츠를 보자 한숨이 절로 나온다. 대체 어떤 생각없는 작자가 실제 마피아 이름을 티셔츠에 새길 생각을 해? 이 정신나간 티셔츠는 의외로 마니아들 사이에서 인기가 좋았는지 해외배송으로 이곳에서도 구할 수 있었다. 어느 날 칼란이 핸드폰으로 이 티셔츠를 보여주고 몇 주 뒤 집으로 저 티셔츠들이 도착했고, 한동안 집안은 계속 이 상태였다. 아마 이걸 만든 사람들도 실제 마피아들이 이 티셔츠를 입으리라고 생각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루스에게도 나눠 준 몇 벌의 ㅆㅓㄴ 오브 드ㄹㅐ곤 티셔츠들은 옷장 구석에 쳐박혀 있다. 오늘 학교에서 실제로 그 티셔츠를 입은 사람을 보고 기분이 더러웠다. 패밀리에선 다들 내심 마음에 들었는지 이번에는 아예 [용의 후예] 라고 궁서체로 적힌 티셔츠를 주문제작 해둔 상태다. 루스에게도 사이즈를 물어보았고, 그에게 거절이라는 선택지는 없다. 물론 모두가 저 티셔츠를 좋아한 것은 아니었다. 

"우릴 장난감으로 여기는 거 아니예요?" 

리아민은 택배포장을 뜯느라 어질러진 거실에 내려왔다가 얼굴을 찌푸리며 라우룬에게 말했다. 

"그래도 다들 좋아하잖니," 

라우룬이 리아민을 달래는 소리가 났지만 루스는 신경쓰지 않았다. 항상 밋밋한 검은 옷을 입고 농담 한 마디 안하는 리아민이라면 당연히 예민하게 굴 일이다. 루스는 만사에 까칠한 그가 약간 무서웠다. 표정을 펼 줄 모르던 리아민은 티셔츠를 건네는 칼란의 팔을 무시하고 위층으로 올라가버렸다. 

리아민의 반응도 전혀 이해하지 못할 건 아니지만, 그렇게 까지 예민해 할 일인가. 어쨌든 패밀리들이 티셔츠를 좋아하는 것과는 별개로 라우룬은 이런 일을 그냥 넘어갈 사람이 아니었다. 장난 삼아 만들었든, 정말로 마피아를 덕질하느라 만들었든지 간에 그는 충분히 대가를 치를 것이다. 루스는 해외에 살고 있는 그의 미래를 유추해보다가 생각하기를 그만뒀다. 

루스가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며 샌드위치를 먹는 동안 그의 표정이 밝지는 않았으나, 그가 어딘가 심사가 안좋아 보이는 일은 흔했기 때문에 라우룬도 딱히 그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궁금해 하지 않았다. 아마 알 수도 없을 것이다. 

루스는 앞치마를 매고 주문을 받았다. 아파트와 기사고의 중간 대로변에 위치한 카페는 전체적으로 무광의 검은 벽과 어두운 갈색 목재 가구로 인테리어를 했고, 1층 바깥에는 차양을 길게 설치하고 창에는 짙은 색의 블라인드를 두어 내부는 낮에도 어두웠다. 입구에서 카운터까지는 거리가 있고, 그 사이에 테이블들을 여럿 놓고 카페의 안쪽 공간으로도 자리가 있어 아늑한 느낌을 준다. 라우룬의 취향에 따라 곳곳에 커다란 화분이나 벨벳 장식물, 테이블 위에 작은 금속 스탠드를 놓아두었다. 넓고 낮에도 어두운 카페는 차분히 공부를 하거나 커피를 즐기기에 적당했기에 주로 낮 시간에 동네 주민들이 왔다 가고, 방과 후나 저녁 손님도 있다. 평일에는 8시, 주말에는 6시까지 영업하고 일요일에는 쉬며, 한 달에 한 번 월요일에도 쉰다.

카페는 패밀리가 운영하는 가게지만 패밀리 사업의 일환이라고 보기는 어려웠다. 그냥 위장용이랄까, 라우룬이 커피를 잘 내렸다. 라우룬이 매일 카페에 나와 샷을 내리고 주문을 받으면 루스는 나머지 음료를 담당한다. 카페 일을 할 줄 아는 리아민이 바쁜 시간에는 가끔 손을 거들어서, 주로 주말에는 바리스타 앞치마를 입고 샷을 내리는 똑 닮은 두 사람을 볼 수 있다. 리아민은 손이 빠르고 라우룬과 호흡도 잘 맞았다. 루스도 기본적인 머신은 다루었으나 딱히 나설 기회가 없다. 그러고 싶지도 않고. 

카페에는 그 외에도 두 명의 알바생이 더 있다. 카이잔의 여자친구인 칼란, 그리고 같은 학교의 나진이다. 둘은 평일에는 교대로 출근한다. 루스는 매일 나오기 때문에 평일에는 세 명이 일하고 주말에는 모두 출근한다. 라우준은 항상 카페 한 쪽의 테이블을 차지하고 공부를 한다. 라우룬 패밀리이지만 커피를 내릴 줄 모르는 그는 혼자서 공부를 제대로 하는 지도 의문이었다. 가끔 테이블을 정리하는 나진에게 모르는 것을 물어보곤 한다.   

루스는 카페의 쓰레기를 내놓는 담당이기도 하다. 

"시바 왜 나만 이렇게 일을 많이 시키냐 "

오늘따라 기분이 더러운 루스는 투덜대며 쓰레기를 내놓고 마감 준비를 시작한다. 집에 가면 방에 걸린 샌드백이라도 마구 패대기로 마음 먹는다. 루스는 일개 알바 치고는 많은 월급을 받고 있으며, 매일 출근하는 그에게는 주휴수당도 있다. 그러나 아무래도 주 6일 출근은 거지 같은 법이다.

동네 카페라지만 to lone에서는 나름 간식과 디저트 몇 종류도 만들다 보니 이것 저것 할 일이 많다. 손님들이 좋아하는 메뉴인 동그란 딸기 무스 케잌은 라우룬의 구상이었다. 그는 확실히 이쪽 일을 잘 해낸다. 루스가 처음 카페 알바에 지원했을 때 라우룬은 지극히 평범한 카페 사장 같아 보였다. 꽁지머리에 지나칠 정도로 지혜롭고 친절한 인상을 주는 검고 동그란 눈으로 루스를 바라봤다. 

'가족이 운영하는 카페라더니, 아무리 손님이 많아도 카페 하나 운영해서 생활이 돼?'

첫 월급이 들어온 날 루스는 그 액수에 눈이 휘둥그래졌다. 알바한테 이렇게 준다고? 처음에 그는 자신이 대단한 행운이라도 얻은 건가 싶었다. 몇 주 지나지 않아 패밀리 일을 돕기 시작하면서 그의 월급이 어디서 나오는지 대강 유추할 수 있었다. 확실히 행운이라고 하기에는 뭣 같았다.

패밀리 내에서 루스가 맡은 역할은 말단이다. 카페 관리, 패밀리들이 출타하는 날에 혼자 또는 나진과 둘이 출근해서 카페 문 열기. 라우룬이 시키는 자잘한 심부름. 일주일에 한번 목요일 밤에 열리는 패밀리 모임 참여하기. 어느 날 라우룬은 루스를 부르더니 새로운 역할을 주었다. 바로 기사고를 염탐하는 일이었다. 루스로서는 그렇게 어려운 일은 아니다. 이 일은 원래 리아민과 라우준의 역할인데, 대외적으로 사촌지간인 둘 이외에 일반인이 한 명 더 필요하다고 했다. 

'아 또 뭘 염탐하라는지는 안 알려주네. 존나 신비주의 컨셉인가?'

사람 간보는 것도 아니고, 루스는 속으로 투덜댔다. 10년 전 용의 후예를 절멸시킨 조직이 바로 '기사'라는 이 나라의 정보기관이다. 기사시 기사동에 위치한 기사고등학교는 국공립으로 군사적 목적으로 이용된다는 소문이 돌고 있었다. 이를 수상하게 여긴 라우룬은 2년 전 이곳에 패밀리의 거점을 잡고 카페를 차리고 리아민과 라우준을 평범한 학생으로 기사고에 잠입시켰다. 국가기관인 '기사'의 뒷공작 정황을 캐내는게 염탐의 목적이다.

용의 후예. 그들은 혈연으로 이어진 한 마피아의 일원들로, 대대로 용병업에 종사한 이들은 어려서 부터 군사훈련을 받으며 자라고 커서는 마피아의 중책을 맡았다. 마피아 패밀리의 각종 비즈니스를 관리하는 자들도 있었으나 자잘한 운영들은 다른 이들이 맡고 있었고, 용의 후예는 이른바 현장에서 뛸 수 있는 일을 전문으로 했다. 실제 용의 후예 패밀리원은 대략 50여명, 좀 더 범위를 넓히면 100여명 내외였지만 그들의 조직원과 산하부대를 포함하면 실제 작전에 동원하는 조직의 규모는 천 여명에 달했다. 아무리 위험한 일이라도 거절하는 일이 없기로 소문이 났을 정도로 거친 이들이었고, 한편으로는 자신들만의 엄격한 규칙과 수법을 가지고 있었다.  

기사들이 습격하던 날 거의 모든 일원들은 전투에서 사망했다. 사실상 전투라고 하기에는, 예고 없이 총알이 빗발치고 용의 후예들은 그 이름이 무색할 정도로 쉽게 무너졌다. 기사들은 제압보다는 사살을 택했다. 그 수라장 속에서 라우룬은 아무것도 모르던 라우준과 리아민을 데리고 간신히 이 나라로 피신했다. 

그들은 마피아 집단 내에서 무서울 정도의 군사력을 가진 용의 후예를 괴멸시키려고 작정을 한 상태였다. 처음에는 자잘한 의뢰를 주던 기사에서는 점점 규모가 큰 의뢰를 맡겨왔고, 패밀리의 일부는 사업에 눈이 멀어 의뢰를 받아들였다. 결국 패밀리는 기사들과 가까이 엮인 것에 대한 대가를 치렀다. 당시 용의 후예 사이에서는 차기 수장을 두고 내분이 진행되고 있었는데, 혈육만이 진정한 용의 후예와 수장이 될 수 있다는 전통을 깨고 아버지였던 현 수장이 친아들이 아닌 라우룬을 지지했기 때문이었다. 점점 도를 넘는 압박과 견제 속에 라우룬은 패밀리에서 손을 털고 나갈 준비를 하던 중이었다.

라우룬은 수장과 마지막으로 평화로운 시간을 보내며 용의 후예가 사라지지 않기를 바란다는 그의 진심을 들었다. 수장은 정말로 용의 후예를 사랑했다. 아버지, 그럼 당신의 아들은요? 모든 용의 후예들에게 아버지라고 불리는 수장에게서 처음 보는 표정에 라우룬은 그렇게 물어볼 정도로 모질지 못했다. 한순간 사라져 버린 가족들을 뒤로 하고 자신의 오른팔 카이잔, 라우준, 참모의 딸이었던 리아민과 도망치는 그의 가슴에는 복수심이 들끓었다. 용의 후예의 부활, 그리고 복수. 그들의 수많은 조직들이 통제력을 잃은 마피아에게서 떨어져 나갔으나 라우룬은 마피아가 가지고 있던 자금을 고스란히 가지고 있었고, 용의 후예를 계승하는 지금의 패밀리와 함께 세력을 불려나갔다. 

문제는 복수였다. 한 순간에 그들의 뒷통수를 친 기사들에 대한 복수심은 라우룬의 마음을 가득 채웠다. 세간에는 국립 수사기관 정도로 알려진 기사는 정확한 활동국가도 불명이고 소속된 자들의 신분도 공개하지 않는다. 대외적인 절차는 나와있지만 실제로 이들이 어떤 식으로 육성 혹은 선발 되는 지도 모른다. 기사를 무너트리려는 라우룬의 계획은 초장부터 막막했다. 기사고등학교라는 이름을 가진 곳이 매우 수상했지만 물증이 없었다. 기사고에 대해 조사하던 중 우연히 당시 용의 후예를 괴멸시킨 범인 중에 하나가 기사고에 선생으로 위장하고 있다는 정보를 입수했다. 그건 내부에서 직접 알아볼 필요가 있는 얘기였다. 

루스는 대강의 이야기 정도만 전해들었다. 라우룬은 잠입 내용에 대해 설명하다가 중간중간 그가 이해했는지 걱정된다는 표정을 지어보인다.

'기사고? 하긴 일단 이름부터 존나 수상하잖아.'

옆에 기사초 기사중 기사고도 있는데 왜 하필 범인은 고등학교 선생으로 잠입한 걸까. 아무래도 옆에 있는 리아민은 물론이고 자신도 원래의 나이를 속이고 있으니 그나마 고등학생이 잠입하기는 쉽지만 말이다. 초등학교였다면.. 이 멀쩡한 얼굴로 반쯤 돌아있는 라우룬이 자기에게 무엇을 시켰을지 모른다. 그와 리아민은 라우준의 나이에 맞춰서 학교에 들어갔다. 두 살이나 어린 것들과 같이 두 번이나 학교에 다니는 일은, 그에게 주어진 일이 아니었다면 절대 하지 않았으리라. 그렇다고 라우룬이 루스가 필요하다고 말한 것은 아니며, 루스 또한 그런 말은 기대하지도 않았다. 그는 그저 지시에 따를 뿐이다. 

"라우준은 어때, 리아민?"

"모르겠어요 보스. 여전히 같은 반응이에요. 보스가 얘한테 제대로 얘기해주세요."

"뭐라고 설명한거니?"

"우리가 전직 마피아고 이 학교가 수상하다고.. 말은 했지만 얘가 알아들었는지는 모르겠어요. 솔직히 얘가 너무 바보 같아요."

"라우준은 아마 용의 후예에 대해서 거의 기억 나는 게 없을 거야. 당분간은 너랑 루스 둘한테 부탁한다."

용의 후예가 망한 건 라우준이 너무 애기 때 벌어진 일이라 그는 용의 후예에 대해서 잘 알지 못했다. 몸으로 익힌 건 기억하는지 사격도 체술도 자연스럽게 손이 나갔지만 이들이 마피아였다는 걸 아는지, 심지어 현재도 그렇다는 걸 자각하고 있는지 의심스러웠다. 그들은 약간 더 이야기를 나누다가 결국 지나치리 만큼 해맑은 라우준에게 제대로 임무를 설명하지 말고, 지금처럼 친구들과 어울려 다니게 내버려두기로 했다. 

라우준을 제외하고, 그들이 라우룬을 부르는 호칭은 '보스'이다. 패밀리 모임에서 라우룬의 호칭에 대해 여러 의견이 나왔다. 예정된 대로 라우룬이 용의 후예에서 수장이 되었다면 그는 아버지라고 불려야 마땅하지만, 

"파파는 어때?"

라우룬의 제안에 리아민은 표정이 구겨지고 칼란이 놀라며 그의 동공이 세로로 쭉 찢어졌다. 라우룬은 이탈리아식 아버지를 뜻하는 호칭이라고 정정하려다 그만둔다. 그 이후로 지금까지도 그는 패밀리 내에서 보스로 불렸다. 루스는 카페에서만 그를 사장님이라고 부른다.

반억지로 다니게 된 고등학교지만 리아민과 라우준 모두 의외로 별 말이 없었는데, 특히 리아민은 기사고를 염탐하는 일에 진심이어서 그런 듯 했다. 리아민 역시 다른 패밀리들과 마찬가지로 눈치가 빠른 편도 아니고 융통성도 없었지만 그 때문에 더 철저하고 우직하게 활동했다.

 우스갯소리로 기사고등학교에는 실제 기사가 있다는 말이 있는데, 그 때문에 정보를 수집하는 리아민은 학교에서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 약간의 적대감을 품고 있다. 그는 선생들의 주위를 맴돌며 대화를 훔쳐 듣거나 염탐했고, 학생들과는 거리를 뒀다. 물론 모든 학생이 다가오지 말라는 그의 싸늘한 분위기를 읽는 건 아니었다. 

"안녕, 리아민? 나랑 눈사람 만들래?"

그 밝은 물음에 리아민은 얼굴을 찌푸리며 그와 마주한 이를 노려본다. 빨간 머리가 사방으로 뻗힌 남학생은 교정에서 빨개진 손 끝으로 눈뭉치를 만들고 있었다. 파이멜은 1학년 초반 부터 겨울 방학을 맞이할 때까지도 그에게 꾸준히 말을 걸었다. 리아민은 그런 그를 지나쳐 그대로 하교 했지만, 그들은 다음 학년에 또 같은 반이 되었다.

반면 라우준은 친구들과 친하게 지내곤 한다. 1학년 때 부터 그는 주욱 나진을 비롯한 친구들과 붙어다니고 있다. 리아민은 가끔 라우준이 하는 양을 지켜보다가 눈살 찌푸렸다. 아무것도 모르고, 속 편하게 사람을 가까이 해대는 그가 답답했다. 그러나 라우준은 리아민이 왜 늘 자기를 노려보는 지 알 수 없었다. 라우준은 반 친구들도 많이 사귀었다. 훈훈하다는 평가를 많이 받지만 얼굴 빼곤 가진 게 없는 외길가로베기 인생이라고, 놀리면서도 다들 라우준의 검도시합을 응원하러 왔다.

실제로도 둘은 사촌 동생과 누나 사이다. 리아민은 나이로 따지면 아빠뻘인 라우룬 보다도 라우준에게 더 가까운 존재인셈이다.

그런데 라우준은 가끔 리아민 누나가 무섭다. 특히 보통 위층에 있는 리아민에게 저녁 먹으라고 부르러 가야 할 때 그렇다. 누나의 공부가 잘 안 될 때 들어가는 일은 라우준이라도 눈치 보게 했다. 그는 조심스럽게 노크를 하고 방문을 열었다.

"리아민, 저녁 먹어." 

"됐어. 밥 안 먹어도 돼." 

이것은 보통 기분이 안 좋을 때의 리아민과 나누는 대화 패턴이다. 그러나 더 무서울 때는 누나가 뭔가에 열이 받은 날이다. 그럴 때 리아민은 살기를 띄면서 그의 샷건을 조립하거나 부품들을 분해해서 천으로 닦고 있다. 마치 누구 하나를 죽일 생각을 하는 것 같아 보인다. 이를 테면 오늘 같은 날 말이다. 

눈치가 부족한 라우준 조차도 오늘 검도부 대련에서 누나를 일대일로 밀어 붙여 버린 피도란스 쌤이 떠올랐다. 대강 보기에도 열 받아 보이는 리아민을 한번 불러본다.

"리아민, 저녀ㄱ.. "

"나가."

라우준은 쫄아서 토 달지 않고 그대로 문을 닫고 내뺀다. 일층으로 내려가자 앞치마를 맨 루스가 라우룬과 저녁을 만들고 있다. 파스텔톤의 핑크색 앞치마가 루스의 퍼스널 컬러인 것처럼 잘 어울렸다.  

"뭐래? 오늘도 안 먹겠대?"

라우준은 어설프게 웃으며 말 없이 고개를 끄덕인다. 식사 준비가 끝나가자 다들 둥그런 식탁에 모여 앉는다. 라우룬은 요리의 마무리를 맡겨놓고 직접 리아민이 있는 위층으로 올라갔다. 

"리아민, 내려와서 저녁 먹어."

됐어요, 리아민은 라우룬을 쳐다도 보지 않은 채 대답한다. 라우룬은 그를 쳐다보며 약간 걱정스러운 표정을 짓다가 이내 방에서 나간다. 

탁, 소리가 나며 문이 닫혔다. 리아민은 손가락을 서늘하게 방아쇠에 감았다. 총신을 어깨에 걸고, 한쪽 눈을 감고, 다른 눈을 도트사이트에 대고 벽을 겨누어 보다가, 느릿하게 방아쇠를 당긴다. 

틱, 

안전간에 맞춰진 방아쇠는 당겨지지 않는다. 그러나 리아민은 미동도 없이 벽을 노려볼 뿐이다.

그는 오늘 검도부에서 있었던 대련을 회상해본다. 피도란스의 목검 끝이 그에게 자꾸 겨눠지는 게 짜증났다. 적당한 수준으로 실력을 발휘하려 하는데, 아무래도 실력자들과 대련하다 보면 쉽지 않다. 그러나 그 짜증은 곧 다른 곳으로 옮겨 갔다. 리아민은 대련이 끝나고 옷을 정리하던 피도란스의 옆구리에 흉터가 있는 것을 보았다. 그것을 본 순간 후끈했던 몸의 열기는 싸늘하게 식었다.    

라우준과 달리 리아민은 용의 후예로 살던 나날을 기억한다. 옆구리의 그것은 그의 눈에도 아주 익숙한 흉터, 총상의 흔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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