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망 해부 - 금융권력의 시대
지금까지 역사 얘기도 해줬으니 이해하겠지만 자본주의는 기본적으로 약탈적이다. 제국주의 시절 총과 대포를 앞세워 남의 땅에 처들어가서 식민지로 만들어 쪼옥쪽 골수까지 수탈하다가 신흥세력이 등장하며 '야! 니네만 한탕 해먹냐! 우리도 잘 먹고 잘 살 거다!'며 세계대전을 2번이나 해먹은 이유가 다 뭐겠는가. 서민들은 먹고 살기가 힘드니까 자기보다 못한 존재, 핍박하고 약탈해도 되는 존재를 만들어서 그네들이 만들어놓은 부의 부스래기와 노동력을 착취하면서 잘 나가고 싶어서 그러는 게지.
지들끼리 열심히 죽고 죽이다 보니 이러다 진짜 뭐 되겠다 싶어서 제국주의 시대가 막을 내리게 되지만... 트위터인지 블루스카이인지에서 얘기해줬던 거 같은데 독립한다 해서 열강들이 식민지들에 꽂았던 빨대도 같이 사라진 건 아니다. 예를 들어 아프리카 마트에 널려있는 유럽산 식료품들이 그렇다. 아프리카 대륙에는 당연하지만 아프리카 토착 동식물들이 있다. 아프리카 사람들은 당연히 그동안 그 토착 동식물들을 먹고 살았을 거 아닌가.그럼에도 아프리카 마트에서는 아프리카와는 별 관계 없는 유럽산 식료품이 더 많이 진열되어있다. 이게 왜겠는가? 유럽산 식료품이 지나치게 싼 가격으로 들어와 있어서 그렇다. 시쳇말로 짬처리 당한 건데, 이게 왜 문제냐. 가격 경쟁이 어려우니 식량 자급이 불가능해진다. 이렇게 경쟁 상대를 싸악 죽여놓고 시장을 독점했을 때부터 가격을 슬금슬금 올리는 건 요즘 플랫폼들이 운영하는 꼬라지를 보면 잘 알 테니 어떻게 굴러가는지 예상이 갈 테다. 즉, 서구는 여전히 아프리카 대륙의 금융을 사실상 손에 쥐고 있고 미국이나 영국, 프랑스 등은 아직도 식민지가 있다. 이렇듯 지금의 서구가 어느 정도 먹고 살 수 있게 자본축적이 된 데엔 식민지에서의 착취를 빼먹으면 안 된다. 왜냐, 저들이 지금까지도 저렴한 생산물을 만들 수 있는 데는 자유와 미래를 찾아 자신들의 땅을 떠나온 이민자들의 노동력을 착취해서기도 하기에 엄연히 현재 진행형인 문제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렇듯 폭력은 마르크스가 자본의 원시적 축적이라고 부른 과정에서 핵심적이다. 마르크스는 이런 폭력과 원시적 축적이 '제대로 된 자본주의'의 시대가 도래하면 사라질 거라고 생각했지만 그럴 리가 있나. 뭐 요 이야기는 나중에 하고, 그래서 슬슬 70년대 들어 왜 금융으로 권력이 넘어가게 되며 레이건과 대처 같은 양반들이 왜 생겨났냐는 얘길 할 건데... 아주 심플하게 말하면 신기술 혁명 때문이다.
냉전시대가 끝나면서 로켓 사이언티스트와 대단한 수학자들이 구직 시장으로 나오게 되었는데, 여기다 1973년 인터넷이 발명된다. 이게 의미하는 바는 아주 명확하다. 컴퓨터가 등장하기 전까지만 해도 은행의 장부는 다 수기였다. 그런데 인터넷과 컴퓨터가 끼얹어지니 어떻게 될 거 같은가? 은행이 보유하고 있는 자산이, 벌어들이고 있는 수익이 실시간으로 숫자로 확인이 가능해진 게다. 나스닥도 그렇고 현대에서 '은행가'했을 때 떠올리는 양복 입은 남성들이 스크린을 보면서 전화를 하고 고함을 지르며 돈을 뿌려대는 이미지는 이때를 기점으로 만들어졌다.
그리고 이 이미지는 사실에 기반했다. 은행가들이 어마어마한 돈을 벌어들이게 된 것도 70년대 중반부터다. 그 전까지 은행가들은 상당한 박봉이었고, 은행이 벌어들이는 돈도 대단치는 않았다. 은행은 기본적으로 인가업이다. 정부로부터 허락을 받지 않으면 은행을 열 수가 없다. 아니 그렇잖은가? 그러니 기존엔 지역은행들이 강세를 보이는 게 당연했다. 서울 사람들은 잘 모르겠지만 한국에서도 옜날엔 지방은 지역은행이 강세였다. 인터넷이 없던 시대에 뭐 저어기 수도에서 정경유착 빡~ 해가지고 잘 나간다는 은행을 믿을 거 같은가, 아님 지역에서 몇 십년동안 자리하고 있던 지역은행을 믿겠는가? 그러니 대구면 대구은행, 광주면 광주은행 이렇게 지역을 대표하는 은행이 있던 시대에서... 숫자가 팽팽 돌아가며 수익률이 어떻다 저떻다 하게 되니 시중의 자산들이 금융으로 쫘아아아아악 몰려갔다. 그렇게 이 과정에서 지역 은행은 좀 뒷전으로 밀려나고 대형 은행들이 성장하게 된 게다.
자, 이제 자신을 대형 은행의 오너라고 생각해보자. 신기술혁명 덕에 이렇게 거하게 벌 수 있었던 걸 손가락만 빨면서 지내야 했던 게다. 대공황 이후 탄생한 금융 규제와 케인즈주의라고 하면 신물날 게 아닌가. 그러니 금융 권력 입장에선 이걸 없애고 싶은데... 없앨 거라면 세련되게 없애야 한다. 까딱 잘못하면 복지 수준에서 타협하는 게 아니라 다시 공산주의에 당위성을 부과하게 될 수도 있잖은가. 그렇게 눈에 들어온 게, 신자유주의의 모태가 되는 시카고 학파였다.
밀턴 프리드먼 같은 양반을 쫘아악 밀어주면서 노벨 경제학상 등으로 권위도 주고 공부하라고 넘치는 돈으로 지원도 많이 해주고 잘 봉사하면 은행가로 데려가서 한 몫 두둑히 챙겨주고, 시장과 자유와 200년 전에나 나온 낙관론으로 케인즈주의를 쫙 몰아내고 레이건과 대처처럼 금융권력한테 우호적인 정치인들 밀어주면 천년만년 해먹을 수 있잖은가.
70년대 오일쇼크가 왔을 때 케인즈주의가 무력해진 틈을 타 신자유주의는 이렇게 자라났고, 레이건과 대처 이후로 금융에 걸려있던 규제는 하나하나씩 사라지고 있었다. 그럼에도 세상은 잘 굴러가는 것처럼 보였다. 신자유주의는 알다시피, 팬데믹이 터지기 전까지는 아무 문제 없어 보였다. 그건 전적으로 세계화 덕이었다. 저렴한 물건을 만들 수 있게 한 저렴한 노동력은 결국 못 사는 국가의 사람들이었다. 굳이 따지자면 차이는 이민자가 되느냐 마느냐 정도지, 리먼 쇼크 때 봤겠지만 전 세계의 경제가 하나로 묶이며 자유로운 착취가 가능했던 건 명확하듯 말이다.
뭐 이런 부분 때문에 70년대부터 가부장적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도 생겨나고 생태주의 등 다양한 얘기들이 움트기 시작하는데... 80년대 들어 레이건과 대처가 집권하면서 노조 탄압이 심각해진 데다가, 미디어는 기본적으로 거대한 광고판이다. 그러니 금융계가 떠들던 '욕망은 옳다(Greed is Good)'는 메시지를 갖은 이미지로 확대 재생산해주기 바빴다. 예를 들어서 아름다운 여성을 옆에 붙여주고 돈을 뿌려대는 모습을 비춰주고 비싼 차와 시계, 럭셔리 양복 등등으로 꾸민 잘생긴 젊은 남성으로 말이다. 실제로는 배 나오고 머리 벗겨진 남자들이 마약 빨면서 성범죄나 저지르고 있더라도 뭐어... 사람들은 부자가 되면 행복해진다거나, 부자가 될 수 있다거나, 이렇게 돈을 쓰면 기분이 좋다고 하는 말에 기꺼이 속아주는 편이잖은가.
덤으로 신기술혁명이니 로켓 사이언티스트들이니 잘난 인간들이 모여서 천문학적인 돈이 얼마나 얼레벌레 굴러가는지 궁금하다면 버니 메이도프라고, 나스닥 만드는 데 일조까지 한 시대 최고의 증권 거래인인 줄 알았다가 폰지 사기꾼임이 드러난 양반 얘기 찾아보면 되니까 궁금하면 한 번 찾아보길 권한다.
아무튼 이렇게 7-80년대를 거쳐서 권력은 완전히 금융으로 넘어가게 된다. 한창 감기몸살로 앓고 있어서 평소보다 더 짧고 거칠게 정리했지만 그러려니 해주면 감사하겠다. 이런 80년대에 나왔던 에코페미니즘이 팬데믹이 터지면서, 또 가부장 자본주의가 엄연히 존재하고 있단 현실을 2020년대에 다시 확인하며 주목받게 된 얘기도 언제 한 번 하는 걸로 하고 줄이겠다. 워낙에 느릿느릿 진행되다 보니 답답하다면 반다나 시바와 마리아 미즈 공저의 <에코페미니즘>, 폴린 그로장의 <가부장 자본주의> 등을 미리 읽어보길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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