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망 해부 - 프라다도 웨스트우드도 아닌
70년대에서 80년대 얘길 할 때 반드시 빼놓으면 안 되는 부분이, 미디어다. 수전 팔루디의 <백래시>를 읽어보았다면 잘 알겠지만 미디어에서 비춰주던 모든 게 실제와는 거리가 멀었다.
뉴미디어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들은 미디어의 영향력을 과소평가하는 경향이 있지만, 비교적 최근에 그 영향력이 약해지기 시작한 거지 이 시절 미디어의 영향은 절대적이었다. 어느 정도냐면… 미국에서 흑인민권운동이 대중운동이 될 수 있던 이유가 미디어일 정도다. 지금도 그렇지만 미국에선 백인과 흑인 사이에 있는 그 절대적인 계급 차이 때문에 거주지가 실질적으로 분리되어있다. 그렇기에 흑인 가족이 식사하다가 개처럼 식당 밖으로 끌려나 내쫓기거나 경찰들이 평화롭게 시위하는 흑인들을 물대포를 쏘고 곤봉으로 두들겨 패 기절시키고 질질 끌려나가는 모습이 텔레비전을 통해 전국적으로 방송되자 처음으로 흑인들에게 가해지는 폭력을 보고 ‘충격을 받은 백인들’이 생겼다. 늘상 말하지만 사람은 사람을 향한 폭력에 그렇게 마냥 무감하지 않다. 무감해지게 만들기 위해 이런 저런 장치를 하는 거지.
아무튼, 이렇게 미디어가 가진 영향력을 목도했기 때문에 레이건은 이른바 ‘미디어를 관리’하는 데 공을 들인다. 닉슨이 워터게이트 사태로 실각했으니 공화당 입장에선 미디어가 제 역할을 다 해 권력 감시 기능을 잘 수행한다면 귀찮아지지 않겠는가.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자기 방어가 되는 언론체제를 구축해야지 않겠는가. 특히나 레이건이 이 부분에 뛰어났다. 뭐… 자기 방어가 되는 언론체제라고 하면 그럴듯하게 보이겠지만 이 부분의 대가로 대한민국엔 전두환이라는 좋은 예시가 있다. 7-80년대 정부 말 잘 듣고 친정부적인 기사 쓰라고 기자들에게 아파트 한 채를 내주는 등, 아주 훌륭한 예시가 있지 않은가. 요는 ‘대부분의 정보를 통제할 거지만 너희가 내 편하면 이런 특혜를 줄게’다.
레이건 본인이 영화배우여서 그런지 미디어의 생리를 잘 안달까, 리버럴 세력들은 내버려두면 미디어가 제 구실을 할 거라는 지나치게 낙관적인 태도가 강한데, 솔직하게 얘기해보자. 대체 언제부터 미디어가 정치의 도구가 아니었던가. 프로파간다와 떨어질 수 없는 관계가 미디어고, 해외라고 기자의 취재 제한이나 데스크의 압력이 존재하지 않는 적은 없다. 결국 언론이 어떤 기사를 내보내고 말지는 언론사주에게 달려 있는 현실을 무시할 수가 없기 때문에 국경없는기자회(Reporters sans frontières) 같은 걸 만들어서 언론자유도를 비교라도 하는 거다. 1985년에 폭스 뉴스가 ‘제대로 된 보수 언론’이라며 등장하면서 나온 영향 같은 것도 알아두면 좋긴 한데, 사실상 한국은 기본적으로 언론 지형이 압도적 보수 우위니까 그냥 참고 정도만 하면 좋다.
자, 여기에서 흔하게들 착각하는 부분인데… 미디어와 저널리즘은 동의어가 아니다. 미디어는 신문이나 TV처럼 매체를 통틀어 말하는 거고, 저널리즘은 신문과 TV 뉴스 프로그램처럼 대중에게 시사 정보와 의견을 제공하는 거다. 그리고 잘 생각해보자. 레이건은 ‘미디어를 관리’했다고 얘기해줬다. 아까도 말했지만 <백래시>에서 구체적인 예시 이야기가 아주 자세하게 나오는데… 패션계라고 아니라고 생각하면 안 된다.
70년대 오일 쇼크로(뭐 사실 이것도 순전히 오일 쇼크 자체의 문제라기보단 패트롤 달러의 문제로 보는 시각이 요즘엔 우세한데 아무튼) 삶이 팍팍해진다 해서 세상 일이 다 사람이 하는 건데 그렇게 순식간에 진정되던가. 패션계의 흐름은 명확했다. 하이 패션에서 스트리트 패션으로 권력이 넘어가면서 여성들은 기존의 서구식 전통 복식에서 벗어나게 되며 보다 편한 옷이 일상의 영역으로 들어오게 되는데 당연히 70년대라고 60년대부터 꽃피었던 패션들이 다 죽을 리는 없잖은가.
영국에서는 비비안 웨스트우드가, 그리고 이탈리아의 미우치아 프라다가 특히 반응이 좋았다.
웨스트우드는 1972년 런던 킹스로드에서 펑크 룩을 선보인다. 이때 웨스트우드의 연인이 바로 말콤 맥라렌인데, 이 양반이 뭐 하는 양반이냐, 영국 펑크문화에서 절대 빼놓을 수 없는 섹스 피스톨즈라는 밴드의 매니저다. 이 밴드와 웨스트우드가 만나니 시너지가 터지며 같이 유명세를 날리게 되는데 펑크 룩 자체는 그 자체가 주류 패션 문화에 대한 반항 그 자체다. 사회 비판적 메시지가 가득한 패션에 당시엔 금기시 되던 포르노그래피티를 패션 요소로 활용하고(늘상 말하지만 지금은 요만큼도 의미 없지만 이때는 그게 의미 있었다.) 지금까지도 웨스트우드가 지향하는 DIY와 공격적으로 느껴지는 금속 징과 찢어진 옷감 등이 그 특색인데… 뭐어, 영국도 대처가 집권한 덕에 80년대 들어선 펑크가 지나치게 상업화 되다 보니 웨스트우드도 서브컬쳐를 버리고 메인스트림으로 합류해 고전적인 룩들을 재해석하게 된다.
80년대 들어 웨스트우드는 주요무대를 파리로 옮기게 된다. 누가 뭐래도 그 시절 패션의 중심지는 여전히 파리니 말이다. 81년에 선보인 ‘해적(Pirate)’ 컬렉션을 시작으로 뉴 로맨티시즘을 선보이는데, 저항 정신이 사라지진 않았지만 크리놀린과 코르셋은 재해석해도 편할 수가 없잖은가. 외에도 패션쇼 도중에 나오미 캠벨이 넘어지게 만든 플랫폼 슈즈 또한 유명한데… 그으래, 웨스트우드도 예뻐보이기 위해 불편해도 된다고 생각하는 편이었다.
뭐 그렇다고 웨스트우드가 그 후로 패션에 정치적 메시지를 넣지 않은 건 아니다. 단지 2000년대서부터 환경운동에 집중하니 미디어에서 조명을 안 해서 그렇지. 2005년 선보인 패션쇼는 이름부터가 ‘프로파간다(Propaganda)’고, 2019년 가을/겨울 레디 투 웨어 컬렉션에선 “우리는 소비를 위해 영혼을 팔았다”, “너는 네가 세상을 지배한다고 생각하지” 같은 문구를 적은 티셔츠를 모델에게 입히고 모델이 직접 마이크를 들고 소비지상주의와 환경에 관해 얘기하도록 하는 쇼를 보인다. 펑크 정신이 기존의 체제에 도전하고 부수는 저항 정신이라면 웨스트우드야말로 그 대표자임을 누가 부정할 수 있겠는가.
미우치아 프라다도 참 재밌는 양반이다. 밀라노 대학 정치학 박사 학위를 딴 사람답게, 60년대 말엔 공산당 당원이자 여성 연맹의 회원으로서 시위에 참여하곤 했는데… 프라다라는 가문 자체는 이탈리아 안에서도 대부호로 꼽히는 집안이다. 그러니 미디어 반응이 어땠겠는가. 시위 현장에 나가는 여자가 입생로랑 스커트 입고 있다고 얼마나 비웃어댔겠는가. 이렇듯 이 딜레마는 세계 어디서든 아주 뿌리 깊다. 한국에서도 우파들은 좌파가 돈 좀 벌고 기깔나게 살면서도 인권과 복지 얘길 하면 위선자라고 비웃어대는데… 왜, 돈 많은 사람들은 무조건 자기 이득만 챙겨야지 현명한 건가? 인생 멋있게 살면서도 같은 사회 안의 약자 좀 챙기자는 게 뭐가 그리 나쁘단 말인가?
이렇듯 적대적이고도 가부장적인 이탈리아의 사회 분위기 안에서 프라다는 가업을 이어 받고 조금 시간이 지난 79년 검정 나일론 소재의 가방으로 히트를 친다. 물론 이때 연인이었던 파트리치오 베르텔리의 지지와 제안이 도움이 되긴 했지만 대충 넘어가서, 어느 정도의 히트였냐고? 전 세계의 백화점과 부티크에 다 깔릴 정도의 히트였다. 단순한 디자인에 가죽 소재에서 벗어나 가볍고도 실용적인 가방이 등장하니 정장에도 어울리고 캐주얼에도 어울리지 않겠는가. 프라다 또한 패션에 정치 메시지를 꾸준히 담는 디자이너인데, 프라다는 실용성과 품위를 중시한다. 잘 살펴보면 여타 브랜드와 달리 프라다의 옷은 실제로 입었을 때 불편하지 않도록 과장된 면이 없다. 또 새로운 시도도 거침없이 하는 디자이너기도 하고 말이다. 영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로 유명세를 한 번 더 탔다 보니 이런 부분은 잘 모르는데, 모르기엔 아쉬운 매력적인 부분 아닌가.
그래서, 미국에서 80년대를 대표하는 디자이너가 누구일까? 두 디자이너 모두 미국에서 잘 팔렸다. 하지만 미국의 패션 미디어가 고른 건 라크르와였다.
레이건으로 이 얘길 시작한 건 다 이유가 있다. 70년대가 그러했듯 80년대에도 여성들은 편한 옷을 선호했지만 오히려 미디어는 열심히 기존의 쿠튀르를 띄우기 바빴다. 기존의 가부장적인 가치를 계속 선전해야 하니까 말이다. 그 수혜를 받은 대표적인 인물이 크리스찬 라크르와라서 그렇다. 물론… 아예 감각이 없진 않다. 다만 말했잖은가, 쿠튀르라고. 티셔츠랑 바지 입고 설렁설렁 돌아다니는 요즘 사람들에게 코르셋 꽉꽉 조인 옷을 입혀놓으면 몇 시간이나 버틸 거 같은가? 그 시대 사람들도 똑같았다. 라크르와의 옷을 사는 건 이미 나이 지긋하신 분들이었지 대중적 인기가 있었다곤 절대 말하기 어려웠다.
이런 현상이 80년대엔 만연했다. 패션만 그런 게 아니라 TV 드라마, 영화, 음악, 아무거나 골라봐라 다 그 꼬라지였으니. 70년대가 오일쇼크와 냉전 때문에 음울한 분위기와 떨어질 수 없었던 만큼 80년대 신자유주의 정권들은 대중에게 희망을 불어넣어 현실을 잊게 해야 할 것 아닌가.
80년대 레이건은 마약과의 전쟁이니 뭐니 하며 뒷돈도 챙기고 흑인 거주 지역을 게토화시키고 교도소를 민영화했으며, 살기 힘들다고 노조가 파업하면 박살내기 바빴으며, 그동안 만들어뒀던 금융 규제들을 해체시키고, 엄연히 전염병인 에이즈가 유행하려는데 아무것도 안 해서 전국적으로 유행하게 방치하는 등등 ‘작은 정부’가 무엇인지 손수 보여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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