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맨스릴러, 여성은 사랑을 해야만 가치가 있는가?
폐렴이 끝물이라 한들 낡고 지친 체력이 뭐 대단히 회복하겠냐만, 말을 꺼냈으면 지켜야 하니 좀 가볍게 다뤄보겠다.
이전에도 얘기해줬지만 내가 질색팔색하는 것 중 하나가 집착/폭군남이다. 어떻게 이딴 종자를 사랑하냐는 게 가장 근본적인 의문이긴 하지만, 사실 이 의문은 감정권력으로 다 해석이 된다. 감정적으로 우위에 서서 권력자를 발 밑에 놓음으로써 권력을 자신이 쟁취한다는 그 느낌이 좋은 걸 누가 모르겠는가. 그리고 우리는 그런 착각을 장려하는 사회에서 자라났고 말이다. 수많은 폭군들의 일화며, 갖은 근현대 로맨스에서 오만하던 권력자가 사랑에 꺾이는 모습이 얼마나 오랫동안 반복재생되어왔던가.
그런 의미에서 로맨스릴러는 여성이 느끼는 위협을 아주 똑똑히 보여준다. 이 말에 발끈할지도 모르겠지만, 사실이 그런 걸 어쩌겠는가. 이미 현대 여성에게 사랑은 공포스럽고도 의심스러운 존재다. 이전에도 짚어줬듯이 현실의 남성을 사랑하기란 너무나도 힘든 일이지 않은가. 지가 뭐라고 지 사랑을 받는 게 대단한 일인양 굴며 고백 공격을 박아대는 놈들도 있고, 사귀면 제 소유물인양 자랑해대거나, 연애라고 써놓고 섹스가 목적이라 제 성경험 트로피로 써먹는 놈도 있고, 이거 해라 저거 하지 마라며 사랑을 명목으로 행동을 통제하려들고 폭력을 휘두르는 놈도 흔한데다가 헤어지자고 할 때 재수 없으면 살해당하는 세상이잖은가. 이런데 어떻게 사랑이란 행위 자체가 안 두려울 수가 있겠는가.
그래서 현대에 있어 사랑은 사멸해가는 종교나 다름 없다. 신이 있다고 믿고 싶은데 신의 존재를 믿을 수는 없는 것처럼 사랑의 존재 자체가 미심쩍어진 게다. 그럼에도, '의례로서 존재하는 사랑의 공식'은 점점 약해지고는 있으나 아직까지 존재하여 사회적 약속으로 통용되니 일요일에 교회에 나가 목회를 듣는 동안은 충실한 신도인 양 흉내를 낼 수 있는 것과 비슷하게, 사랑을 신성시할수록 신이 아닌 인간에게 충실한 신앙의 대가를 요구할 수 있다.
그러니 여성들은 더 사랑을 믿고 싶어한다. 당연한 얘기인 게, 무력한 계층일수록 물질적 생존을 권력자의 심기에 의존해야 하잖은가. 일자리와 생계를 쥐고 있는 건 여전히 대부분은 늙은 남성들이고, 그들의 골수까지 박혀있는 '가부장적 아량'에 빌붙어 불쌍해 보여야지만 챙겨 받을 수가 있다. 서구 기준으로 얘기해서 19세기와 20세기를 거치며 가정이 여성의 영역으로 고정되고 소비와 사랑이 사적인 영역으로 갈라지면서, 이렇듯 여성이 남성 부양자에게 전적으로 의존하는 것이 '낭만적'인 일로 여겨지게 됐으니 뭐 어쩌겠는가. 이 부분을 제대로 알려주려거든 지면이 터져나갈 예정이니 일단 나중에 다루기로 하고, 아무튼.
진지하게 생각해보자. 로맨스릴러에 나오는 남주들은 진짜... 현실의 여성이 느끼는 공포와 너무 밀접하게 닿아있다. 자신의 목숨을 노리기에 너무나도 두렵지만 또한 겉보기엔 너무나도 '멀쩡한 사람'처럼 보인다. 오히려 때로는 매력적이고, 이 자체가 가끔씩 권력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로맨스릴러 여주들은 남주의 눈에 '거슬리지 않기 위해' 필사적이다. 심기를 거스르면 죽는다는 이유로 속으로 어떤 미친 생각을 하든, 실제로도 상당한 위협을 느끼든 고분고분 순종적인 태도를 취한다. 많은 여자들이 이제껏 실제로 살아남기 위해 그래왔던 것처럼 말이다. 그리고 로맨스릴러는 이 선택과 행동과 사고를 아주 아름답게 낭만화한다.
로맨스릴러의 공식이 그렇지 않던가. 사랑이나 감정을 못 느끼는 사이코패스 내지는 소시오패스로 상정되는 남자주인공이 잘 생기고 몸 좋고 돈도 있고 머리도 좋은데 모종의 이유로 여자주인공의 목숨을 노린다. 여주는 그런 남주를 두려워하지만 남주의 '마음에 들어서' 안 죽고 살아남기 위해 사랑을 이용하고, 그러다 끝내 사랑에 빠지는 걸로 해피엔딩으로 받아들이고 있지 않던가? 이렇듯 아주 낡고 낡고 낡은 '사랑'이 모든 걸 해결해주지 않던가. 이게 어떻게 낭만화가 아니란 말이던가.
여주의 입장에선 도망치고 싶을 만큼 두렵지만 동시에 약간은 탐나는 대상이 종내 굴복해 자신의 사랑을 갈구하는 것이다. 저 미지의 존재에게 사랑만 제공해주면 그가 독점하던 압도적 지위와 부와 감정권력이 따라오잖은가. 모든 여성들의 현실도피적 망상의 결정체나 다름 없다. 그 '피상적 사랑'이 충족되는 것만으로 만족할 거라고, 낡아빠진 사랑에 대한 낭만적 신화를 몇 번이고 재생산한다. 게다가 이 구도 안에서 남주가 얼마나 맛간 강력범죄자인지는 조금도 중요하지 않다. 이미 몇 번이나 말해줬듯이, 무엇보다 중요한 건 권력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사랑은 르네상스 시절 교황처럼 모든 죄에 사면권을 부여해준다.
내가 로맨스릴러를 못 견디는 지점이 바로 이 부분이다. 로맨스릴러 안에서 사랑은 지나치게 피상적이다. 사랑이라고 말은 하는데, 사랑이 뭔지는 절대 알 수 없다. 몇 번이나 지적해왔듯이 이 캐릭터는 이러하고 저 캐릭터는 저러하니까 이 캐릭터 구도를 사랑이라고 부르자! 수준에서 도통 벗어나질 않는다. 그런 식의 피상적인 사랑으로 던지는 메시지는 기껏해야 '두려움을 무시하고 그래도 사랑을 하면 모든 게 마법처럼 해결된다' 정도라, 이 조악한 낭만화를 도무지 견딜 수가 없다.
로맨스릴러는 여성이 사랑을 무기로 쓸 줄 안다는 확실한 반증이지만 동시에 낭만적 사랑이 얼마나 무력한 무기인지 사회가 은폐하기 때문에 가능한 얘기기도 하다. 물론, 집착/폭군남의 현대적 재해석인 면모가 있긴 하다. 그러니까... 가부장제 안의 절대권력자에서 옆에 존재하는 현실의 공포로 다운그레이드 됐으니 현대성이 가미되긴 가미 됐으니 어떤 의미로는 폭군이 남주인 러브 스토리의 현대적 재해석에 가깝긴 하다.
그래서 더 싫다. 왜 여성은 사랑이 모든 걸 해결해줄 거라 믿으며 위협적인 대상을 사랑하려고 그렇게 노력해야 하는가? 미지에 대한 두려움을 무시하고 사랑을 하라고 부추기지만 실제론 많은 여성들이 살해당하는 현실이 매일 반복되고 있잖은가. 여성은 여전히 시스템 내에서 보호받지 못한다는 현실에 기초하였기에 가능한 낭만화를 좋아하기엔 내 비위가 그정도로 좋진 않다.
로맨스릴러 유행이 시작했을 즈음부터 지금까지도 내겐 로맨스판타지가 결코 답해주지 않는 의문이 있다. 여성은 사랑을 해야만 가치가 있는가? 그런 것치곤 사랑이 아니라 권력을 원하고 있지 않은가? 자신의 욕망조차 제대로 직시하지 못하는 이가 원하는 것을 대체 어떻게 얻는단 말인가? 언제가 되었든 명료한 답을 볼 수 있길 원한다. 그럴 날이 오긴 요원해보여도 말이다.
사족 1. 그런 의미에서 차서진 작가의 <리셋팅 레이디>는 좋은 카운터펀치였다. 여주도 같이 넹글 돌아버렸다는 점에서 더 그렇다. 여성은 사회로부터 자신을 무력한 존재라고 내내 평가절하당하면서 자라왔기 때문에 폭력이나 범죄에 있어 여성이라는 이유로 자신의 한계를 굉장히 좁게 설정한다. 사실 폭력의 절대적인 수치는 체급에서 나옴에도 말이다. 물론 내가 이 작을 크게 좋아하지는 않지만 넹글 돌아버린 여주가 여성에게 요구되는 한계선을 아무렇지 않게 넘나드는 건 꽤 흥미로웠다. 사람을 신나게 죽여대는 것도 그렇고 출산을 도구 취급하는 것도 그렇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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