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이 맺히다
창 너머로
이다키소 사쿠가 처음으로 남의 작품을 아름답다고 느낀 날과 역겹다고 느낀 날은 정확히 같은 날이었다. 슬슬 쌀쌀해지는 날씨를 무시 못하고 긴 셔츠를 꺼냈을 무렵이었다. 등받이 없는 의자에 앉아 있던 이다키소 사쿠는 타인의 작품을 보고 있다가 창 너머 이제 막 겨울이 오려고 하는 하늘로 시선을 옮겼다. 모르는 척 하고 싶을 정도로 날이 맑았다. 구름 없이 파랗게 개인 하늘에 높게 뜬 태양이 눈부셔서, 그는 태양빛이 아프다는 핑계로 고개를 돌렸다. 날씨 한 번 더럽게 좋네. 눈 돌릴 곳이 없어진 이다키소는 별 수 없이 천장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뭐, 전등빛도 환하게 밝으니 금방 다시 고개를 떨궈야 했지만. 그마저도 어떤 압박과도 같이 느껴져서 그는 미적거리며 의자에서 일어나 자리를 떴다. 이쯤되니 온 세상이 이다키소의 등을 떠밀고 있는 것 같았다. 더럽혀진 캔버스로, 그리고 탁해진 유리창 앞으로.
보다; 눈으로 대상의 존재나 형태적 특징을 알다.
이다키소 사쿠는 날 적부터 화가였다. 그냥 화가도 아니고 초세계급 화가였다. 그러니 그의 눈은 평범한 범인凡人과는ㅡ설령 같은 화가일 지라도ㅡ제법 다른 세상을 담아왔다. 누군가에겐 그저 기억도 못할 정도로 스치는 일상의 장면일 지라도 그리는 것을 업으로 하는 자에겐 그 하나도 또 하나의 영감이요, 소잿거리일테다. 5분에 한 번씩 요츠야 역에 도착하는 열차 같은 지극히 흔한 일상도, 매일 뜨고 지는 우주의 천체도, 가을 바람에 흔들려 떨어진 수백 개의 단풍에 숨겨진 작은 은행 하나도. 이다키소 사쿠의 손짓으로 예술이 되었다. 뉴스에 보도된 몇 십 년 만의 슈퍼문이라든지 몇 백 년만에 떨어지는 혜성이라든지 누구나가 열광하고 또 빨리 식어버리곤 하는 값싼 관심과 우매한 감동 따위를 이야기하는 게 아니었다. 이다키소 사쿠는 문자 그대로, 그 눈에 비치는 모든 세계에 의미를 부여할 수 있었다.
그는 일반적인 사람들이 저를 이해해주지 못할 것도 알았다. 아니, 그는 달리 이해 받을 필요가 없었다. 무릇 천재는 고독한 법이다. 사실 딱히 외롭다고 생각한 적도 없었다. 그때의 이다키소 사쿠는 캔버스 앞에서 나온 적이 없었고 진정으로 그게 즐겁다고 느꼈으니까. 사람들이 천재 예술가를 이해하지 못하듯 천재 예술가 역시 평범한 세계를 이해할 순 없었다. 외롭다든지 하는 감정은 진정으로 열중할 게 없는 사람들이나 느끼는 거라고. 그렇게 생각했던가.
널리 쓰이는 단어에 저만의 철학관을 부여하는 것도 비슷한 맥락이었다. 이다키소 사쿠는 살아가는 세계가 너무 달랐기에 그가 보는 것, 듣는 소리, 입 밖으로 뱉는 것, 전신으로 느끼고 그 끝에 창조해내는 모든 것이 평범과는 거리가 멀었다. 어린 마음에 그런 게 멋있고 특별하게 느껴지기도 했고. 어쨌든 예술가답게 예술과 관련된 것에 있어서 이다키소 사쿠는 제법 독특하면서도 확고한 자신만의 생각이 있었다. 그의 언행에는 그런 신념이 진득하게 묻어있었다. 하여, 그는 생각을 제대로 된 말로 뱉을 수 있는 나이가 되었을 때 ‘보다’라는 말을 이렇게 정의했다.
“주체와 객체를 구분 지으면서 시작하는 행위거든요. 기본적으로 공평한 위치가 아니라는 거죠.”
그 역시 주체-객체 라는 관계가 항상 위계적이진 않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언제나 아주 많은 사람들의 주목을 받으며 지냈고 온 세상의 관심이ㅡ적어도 예술계에서는ㅡ그를 향해 있었다.
“이다키소 씨, 이번 전시도 너무 잘 봤어요.”
“이번 작품은 공감이 많이 됐습니다. 가족들도 좋았다고 말하더군요.”
“어떻게 이런 그림을 그릴 수 있는지…….”
즉, 이다키소 사쿠는 늘 보여지는 쪽이었다.
이다키소 사쿠가 보는 주체와 보여지는 객체를 위계관계로 정의한 것은 그래서였다. 그는 항상 무언가를 보여주어야 하고, 그리고 평가 받는 입장이었으니까. 세계가 그를 주목하고 타인이 이다키소 사쿠라는 존재를 인정하며 그 증거로 수상을 하거나 특별한 칭호를 얻는 일이 신경쓰이진 않았다. 오히려 그는 제 작품을 세계에 보여주는 것을 즐겼다. 이름 있는 전시회라면, 사람들이 좋다곤 칭송하는 것들이라면 곧잘 좋아하곤 하는 절대 다수의 대중이 감히 작품에 담아 낸 열정을 온전히 다 읽어낼 수 있을 거란 기대는 하지 않았지만 잘 봤다든지 좋았다든지 하는 말들이 싫진 않았으니까. 그러다보면 가끔 기억에 남는 감상평들도 들려오는 법이고 기억에 남는 사람도 생기곤 했다.
“저도 나중에 사쿠 작가님처럼 되고 싶어요!”
“그렇군요. 영광이에요… 언젠가 같이 작품을 보일 수 있는 날이 오면 좋겠네요.”
그냥 그렇게 말하고 그 사람의 이름을 기억하지 않았다면 좋았을텐데. 긴 행사로 지친 탓에 이다키소 사쿠는 그만 시덥잖은 인터넷 서핑에 시간을 쓰고 말았다. 행사 오프닝에서 구태여 인사를 하러 찾아왔던 신인 작가의 이름을 검색하자 이런저런 기사들이 주르륵 떴다. 아무거나 하나 골라 눌러보니 아침에 봤던 수줍은 얼굴 대신 캔버스에 붓을 대고 있는, 적당히 무게감 있는 프로필 사진이 걸려 있었다. 주목 받고 있는 신인 작가로 이전에 없던 기법으로 참신한 도전을 이어가고 있다… 는 그런 시시한 소개였다. 이다키소는 심드렁한 표정으로 스크롤을 내리다가 중간 어드메에 걸린 인터뷰 내용에 시선이 꽂혔다.
예술이야말로 제 삶이라고 느끼고 있습니다.
그 말 자체는 그렇게 별나고 특이한 말도 아니었을텐데 어째서인지 그 말 한 마디가 눈에 걸렸다. 그렇게 하루, 그리고 또 하루, 옷장을 정리하고 두꺼운 코트를 꺼낼 때 쯤에도. 유독 빨리 떨어진 낙엽을 볼 때까지도 그 말이 차마 뱉지 못한 가시처럼 목에 걸렸다. 지금이라면 그렇게 물었을 것 같았다. 그럼 당신이 세계에 보여주는 것은 당신의 삶 그 자체냐고. 그 작품에 비친 것이 당신의 삶이냐고. 그렇다면, 이 역겨운 감동 역시 바로 그곳에서…….
가지지 못했다면 차라리 나았을지도 몰랐던 칭호에 집착하기 시작한 것도 그때부터였다. 이다키소 사쿠는 그 칭호를 가지기 전까진 타인이 저를 부르는 이름 따위엔 관심이 없었지만 초세계급으로 그의 인생이 정의된 바로 그 순간에, 이다키소 사쿠의 캔버스에는 항상 ‘초세계급 화가’가 비쳤다. 그 칭호를 따라온 막대한 명예와 부를 즐겼던 것도 사실이었다. 무슨 무슨 이름의 상들을 질리도록 받다보니 날 적부터 천재였고 짧은 인생을 전부 쏟아부은 분야에서 최고가 아니게 되는 것이 싫었다. 다른 누군가가 자신보다 더 잘할 수도 있다는 사실이 미치도록 싫었지만, 그것보다도 싫은 건 제가 받던 주목을 빼앗기고 입 바른 칭찬이 쏟아지는 것이었다. 그렇기에 항상 1등이어야 했다. 1등이 아니라면 이 이름을 박탈 당할지 몰라. 천재 이다키소 사쿠가 이 세상에 태어났듯 언젠가 또 다른 천재는 태어날 것이고 그때마다 이 자리는 위협당하겠지. 아이러니하게도 잘 해야된다는 생각이 머리를 지배하자마자 아무것도 그릴 수 없게 되었다. 지금이라면 알 것도 같았다. 그는 캔버스에 이다키소 사쿠를 담을 순 있었지만, 초세계급 화가를 담는 방법은 몰랐다. 난다 긴다 하는 천재가 아무런 작품 활동을 못한다고 해도 세상은 슬럼프에 빠져 버린 천재를 기다려주지 않았다. 당장이라도 무너질 것만 같은 절망감이 들었을 쯤에 이다키소 사쿠의 노트북, 핸드폰에는 꽤 이름이 알려진 작가나 그들의 작품에 대한 검색기록이 가득했다. 그는 부쩍 자주 외출했고, 행선지는 항상 박물관, 미술관, 전시회 따위의 예술관이나 행사장이었다. 감상 따윈 하지 않았다. 그는 어디까지나 ‘프로’로서 그들의 기법과 아이디어를 눈에 담았다. 잠깐 보는 것만으로도 그는 그 작품을 이루는 중요한 포인트들을 바로 집어낼 수 있었고 한 번에 많은 작품을 보더라도 잊거나 헷갈리지 않았다. 그리하여 이다키소 사쿠는 스물 네 살의 어느 날, 자신의 창에 다른 누군가의 상을 맺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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