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도가 치지 않던
서른 둘, 그리고 스물 아홉
반도의 작은 바닷가 마을을 지배했던 조직에게 화합의 손길이 있은지 일 년이 채 되지 않아 거짓된 평화는 깨졌다. 만 리 타지의 이국으로 떠나려던 계획은 좌절되었고 십 년 전의 과오를 징벌하려던 야심도 이뤄지지 못했다. 검거, 그리고 증거 불충분이라는 형태로 아무도 이기지 못한 전쟁이 끝나고 남겨진 건 고작 몇 년뿐의 단죄였다. 해광이 앗아 간 삶의 시간들에 비하면 턱없이 모자라다는 비난에 증거재판주의라는 편리한 변명이 뒤따랐다. 그리하여, 장채민과 나인오는 어느 가을 수감자가 됐다. 눈 닿는 모든 곳이 눈부신 바다였고 위계질서가 모든 규칙을 만들었던 거친 일상에도 당연히 큰 변화가 생겼다. 변하지 않은 것은 오로지 서로가 여전히 옆에 있다는 사실뿐이어서. 관짝같이 딱딱하고 차가운 침대에서 일어나면 몇 번을 봐도 낯선 잿빛 천장이 있었다. 턱없이 모자라고 따듯한 일이 없었던 아침 식사, 귀찮기 짝이 없는 고된 노역, 이름 석 자 대신 명명된 일련의 숫자들. 감옥에선 모든 죄수가 평등했다. 그들이 바깥 세계에서 부자였든 가난했든 성공했든 실패했든 나이가 많든 적든 직급이 높든 낮든 상관없었다. 죄수에겐 이름이 없기에. 그래도 그들은 무슨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서로를 이름으로 부르곤 했다. 이름을 불러주는 자가 있는 행복한 죄수에겐 어딜 가나 적나라한 멸시의 시선이 꽂혔고 은근한 혐오 섞인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래서 해광리의 작은 수용소에는 잊을만하면 해광을 둘러싼 소란이 일어났다.
장채민. 날 때부터 또라이. 어린 장채민은 동그랗게 뜬 녹빛 눈동자에 비친 것에 대해 뭐든지 알고 싶어 했다. 자기 자신에 대해 알고자 한 적은 없었다. 아이는 좀처럼 거울을 보는 일이 없었고 그 눈에 그 자신이 비친 적은 없었으니까. 가정에도 받아들여지지 못한 자신을 깊게 들여다보는 것이 두려웠다. 그래서 장채민은 타인을 통해 제 자신을 규정하고 싶어 했다. 감정, 기분, 태도, 분위기, 인상, 진실, 거짓, 도덕, 윤리, 가치, 정의, 행복, 불행, 규칙, 말, 행동, 생각, 진리…… 살아가는 데 필요한 것들을 타인을 통해서 배우고자 했다. 나와 다른 누군가를 속속들이 알게 된다면. 아무도 가르쳐 주지 않았던 나의 존재를 정의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러나 자신과 다른 존재에 대한 강렬한 호기심이 곧장 사교적인 태도로 이어지진 않았다. 어릴 적 정서적으로 깊게 교류하는 방법을 배울 기회를 박탈당한 그는 서른이 넘는 나이가 되어서도 누군가와 친밀한 관계가 되지 못했다. 다른 사람과 정상적으로 교류해 본 일이 없기에 당연히 남을 배려하는 방법도, 보다 친근하고 불쾌하지 않은 방식으로 다가가는 방법도 몰랐다. 오로지 무지에 대한 공포와 탐구적 욕망만이 생각과 말, 행동을 앞섰다. 그는 물을 말과 물으면 안 될 말은 구분 못했지만 사회적으로 해도 되는 행동과 하면 안 되는 행동에 대한 학습은 빨랐다. 그래서 해광에 들어간다는 게 범법 행위임은 알고 있었다. 안다고 해서 그걸 해선 안된다고 생각하진 않았다. 이제 와서 일반적인 사람들이 생각하는 도덕성을 지킬만큼 깨끗한 인생도 아니었기에.
해광에 들어간 장채민은 항구에서 노래를 들으며 지나다니는 사람들을 구경하는 취미를 들였다. 그리고 그 내용을 전부 조그만 수첩에 적었다. 그 버릇이 죄수가 되었다고 해서 사라지진 않았다. 항구가 먼지 쌓인 새카만 감방이 되고 곧잘 듣곤 했던 음악이 옆방 죄수들의 고함 소리가 됐을 뿐이었다. 함께 생활하는 동료 죄수들에 대해 면밀하게 기록한 그 수첩은 항상 시비를 걸 좋은 핑곗거리가 되곤 했다. 눈빛이 기분 나쁘다든가 하는 적당한 이유였다. 그는 시비가 걸릴 때마다 번번이 귀찮은 싸움을 피했지만 나인오도 그렇진 못했다. 그는 성질을 죽이고 얌전히 지내다가도 해광이 관련된 일이면 눈에 쌍심지를 키고 그대로, 혹은 그 이상으로 되돌려 주곤 했다. 맨주먹으로 두들겨 패는 건 예삿일이고 어디서 구한 건지 모를 날붙이를 휘두르며 찌른 적도 있었다. 그 탓으로 독방에 잠시 수감되는 건 싸움을 피할 이유가 되지 못했다. 동료 죄수를 찌른 나인오는 교도관에게 얻어맞으면서 끌려갈 적에도 뒤에 남겨진 장채민을 보고 웃었다. 어머니 모르게 손님에게 내어 줄 사시미를 먹다 걸린 어린아이처럼.
독방은 매우 비좁았고 창문도 전등도 없어 온통 새카맸다. 문에 난 아주 작은 창살 틈으로 들어오는 복도 빛이 없으면 방구석에 허름한 침대가 하나 덜렁 놓인 것도 몰랐을 것이다. 수용소의 위험인물인 나인오는 독방에서도 무슨 일을 할지 모른다며 가지고 있던 소도구들도 전부 압수 당하고 옷까지 벗은 채로 독방에 들어갔다. 먼지 마시고 앉아 있는 것 말곤 할 게 없어서 나인오는 벽과 바닥만 있으면 할 수 있는 운동을 생각나는 대로 했다. 그것도 지겨워질 즘엔 관절이란 관절은 다 꺾고 놀았다. 으레 죄수를 독방에 집어넣으면 정신이 이상해져 버린다던데, 이미 정신이상자인 탓인지 그는 크게 상처받지도, 괴로워하지도 않았다. 그저 그 속에 있는 게 무료하고 심심할 뿐이었다. 소동을 일으켜 독방에 처박힌 신세를 한탄하지도 후회하지도 않았다. 당초에 후회할 일은 하나도 없었다. 그는 항상 자신의 감정에 솔직했고 하고 싶은 것을 참은 적도 하기 싫은 것을 견딘 적도 없었으니까. 잘 기억나지 않는 지나간 과거 보다 나인오는 훨씬 먼 미래를 보고 있었다. 내일은 뭐 하지. 내일이라고 독방에 뭐가 생기진 않을 테니 오늘처럼 몸이나 비틀면서 지내겠지. 독방에서 나가면 뭐 하지. 그땐 원래 지냈던, 장채민과 최사무엘이 있는 방으로 돌아가서 평소처럼 지내면 될 테다. 그리고 하루, 이틀, 사흘, 나흘, 닷새…… 출소하는 그날이 온다면, 그때는? 문득 280도쯤 꺾인 손목이 멈췄다. 죄수복을 벗은 서른 살 무렵의 자신이 상상이 가지 않았다. 머리는 얼마나 길었을까. 못 보던 상처가 늘진 않았을까. 몸은 어떻게 변했을까. 그땐 어디로 가서, 누구의 옆에서, 무엇을 하고 지낼까. 복도 불이 꺼져서 방이 암전 될 때 까지도 그 무렵의 자신에 대해선 떠오르는 게 없었다. 나인오는 드물게 몸을 뒤척이며 늦게 잠들었다. 그는 그것에 독방 침대가 불편하다는 이유를 붙였다.
날이 밝았을 때 장채민은 어제 그 소동이 사실 꿈은 아니었을지 기대했다. 감옥 구석에 박혀 지나다니는 사람들을 쳐다보기만 하는 삶엔 아무래도 영 현실감이 없었으니까, 오늘이 몇 월 며칠이고 시간이 어느 때이며 계절이 어떻고 날씨가 어떤지에 대한 감각은 점점 무뎌져만 갔다. 못 짜인 관 같은 침대에서 일어날 때면 가끔은 경천에게 검거 당했던 그 순간에 죽었던 건 아닐지, 그리고 죽을 줄 모르는 몸이 꿈과 현실을 오가는 게 아닌가 할 때가 있었다. 그러나 아침 햇살은 겨울바람보다도 싸늘해서. 이 감방에 나인오가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장채민은 분명 수감 생활로 현실 감각이 떨어졌지만 그게 곧 절망과 비탄을 의미하는 건 아니었다. 분명히 지금 장채민의 옆엔 나인오가 없었다. 언뜻 언짢은 기분이 들었지만 장채민은 그 불쾌함에 이름을 붙이진 않았다. 대신 그는 불쑥 고개를 드민 낯선 감정을 설명할 이유를 찾았다. 곧잘 떠들어주곤 했던 누군가가 없어졌기 때문에 낯선 것이라고, 그렇게 설명을 붙였다. 누구라도 들으면 납득할 정도의 논리가 있다면 알지 못하는 감정을 구태여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아도 괜찮았다. 그랬기에 장채민은 나인오의 부재에 슬픔이나 좌절을 느끼진 않았다. 그럼에도 눈을 뜨는 아침마다 격리가 끝나 돌아오진 않았을지 기대하고 실망하는 제 자신이 있었다. 이틀째엔 허전한 아침 식사에, 사흘째엔 시끄러운 옆방 죄수들에, 나흘째엔 운동을 도와줄 사람이 없는 것에 핑계를 대며. 나인오가 없는 동안 장채민은 그럴듯한 핑곗거리를 찾기 위해 과거를 헤맸다. 장채림과 함께 도망쳤던 그 무렵의 일이 까마득하게 멀 정도로 많은 일이 있었다. 첫 만남은 5년 전의 어느 날이었지만 같은 조직이라는 사실이 무색할 정도로 그들은 달리 접점이 없었다. 그러나 서로의 존재가 낯설지 않을 정도로 그들은 확실하게 상대방을 ‘알고’ 있었다.
장채민은 닷새째의 구실을 어떤 바다에서 찾았다. 그 바다는 달리 낯선 것도 없고 특별할 것도 없는 해광리의 해변이어서. 지는 저녁 해가, 뜨는 새벽달이 잘 보이는 곳이라는 이유만으로 내려갔던 그 바다에는 이미 선객이 있었다. 나인오는 조용한 기척을 귀신같이 알아채곤 뒤를 홱 돌아선 장채민을 쳐다봤다.
“차에서 안 쉬고 왜 이런 곳에서 쉰대?”
그와 함께 있노라면 유난히 많은 질문을 받곤 했다. 일방적으로 질문을 쏟아붓는 입장에서 질문을 받는 것이 낯설어서 대답을 몇 번 망설였던가. 제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제대로 된 말로 표현하는 건 제법 어려운 일이어서 장채민은 남에게 물을 때와는 달리 대화 중에 몇 번이나 머뭇거리고 고민에 빠지곤 했다.
“낮이 좋은 사람들은 보통 해를 좋아하고 밤이 좋은 사람은 달 보기를 좋아하던데. 채민 씨는 어때?”
“밤… 보단 새벽이 좋은 것 같네요. 간부님은 어떠신데요?”
“난 낮이 좋아.”
본능적으로 장채민의 눈이 어두운 녹빛으로 빛났다. 나인오는 이상한 호기심을 부추기는 별난 사람이었다. 새벽이 좋은 저와 달리 낮을 좋아하는 이유가 궁금했다. 그는 해가 떠서 밝다든지 주행성이라서 그렇다든지 하는 이유를 기대했지만 실제로는 낮의 특성과는 전혀 상관없는 이유였다.
“낮에 바다에 들어가면, 분명 수면 위로는 해가 쨍쨍한데도 물속은 아늑하고 어둡거든.”
그래서 뭐?
장채민은 물이 싫었다. 들어간 순간엔 시원하고 기분이 좋을지 몰라도 나왔을 땐 전신이 눅눅하니까. 근데 나인오는 물이 싫다는 사람을 굳이 끌고 바다에 빠트렸다. 싫다고 말할 것 같으면 간부의 권력과 위계를 잘도 써먹곤 했다. 처음엔 추웠고, 그다음엔 물에 가려 보이지 않는 돌에 걸려 넘어졌다. 미역을 전신에 둘둘 감고 나와 웃음거리가 되기도 하고 바닷물을 잔뜩 먹어 하루 종일 코가 막히고 귀가 먹먹했던 날도 있었다. 매번 질색하면서도, 멀게만 바라보던 바다 안엔 장채민이 모르는 다른 세계가 있었다. 오색 산호와 사람을 보고 놀라 도망치는 자그마한 물고기들, 바닥에 핀 푸른 해초 아래 누운 불가사리. 햇살이 비친 낮의 바다는 금보다도 눈부시게 빛났고 저무는 노을이 지는 바다는 아름다운 적색으로 물들었다. 시원한 바람이 부는 새벽의 바다는 고요하고, 편안하고, 그리고…… 다정했다. 좀처럼 잠들 수 없는 닷새째의 밤에 장채민은 문득, 바다가 간절히 보고 싶었고 보지 못하는 것이 심히 아쉬웠다. 그래, 그것이 바로 그리움이라고. 그렇게 생각했던가.
나인오는 몇 주가 지나서야 돌아왔다. 돌아오거든 감동이 있을 줄 알았더니 몰래 장채민의 아침을 홀랑 먹곤 들어와서 그렇지도 못했다. 아침부터 작은 소란이 있었지만 그가 돌아온 것이 내심 반갑고 기뻤다. 그 무렵부터 장채민은 지금 느끼고 있는 기분에 정확히 이름을 붙이곤 했다. 감정을 정의하는 건 상당히 어려웠지만 그는 오랜 시간 동안 다양한 사람들을 면밀히 관찰해왔고 그들의 표현을 질리도록 학습해왔으니 결국에는 적당히 그럴듯한 이름을 찾아갔다. 입만 열면 거짓말이 나오곤 했던 버릇도 그의 앞에서만큼은 의식적으로 고쳐 갔다. 그가 나인오에게 건네는 질문들 역시 미묘하게 달라졌다. 뭘 했는지 묻기보단 뭘 느꼈는지를, 다 지난 옛날 일보단 지금이나 앞으로 있을 일에 대해 물었다. 나인오는 감정이 크게 결여된 인간이긴 했지만 느끼고 있는 감정엔 지나칠 정도로 솔직했기에 그는 항상 속임수 없이 대답하곤 했다. 그렇게 한없이 멀리 있는 것만 같았던 그가 조금씩 가까이 느껴졌던 어느 겨울날에.
우리 같이 살아도 나쁘지 않겠다. 그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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