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든 해 보겠다는 흔적

이 별과 이별의 이론

레오안즈

<주의사항>

-회지 계획 무산으로 업로드하게 된 글입니다.

-퇴고를 거치지 못한 글입니다.

-원작과는 관계 없는 소설임을 밝힙니다.


추천 음악 : 샤를 - 벌룬P(메가테라제로 커버)


“안즈, 찾았어?”

“아니, 전혀.”

안즈는 그런 연락을 넣고서 한숨만 길게 내쉬었다. 점점 해가 지고 달이 떠올랐다. 겨울이라 그런지 해는 짧고 날씨는 추웠다. 간단하게 씻고 나온 뒤 갑작스럽게 밖으로 나온 안즈였기에, 옷은 너무나도 얇았다. 머플러 하나 걸치지 않은 안즈는 코를 훌쩍거리며 열심히 주변을 둘러보았다.

안즈가 지금 찾고 있는 것이 대체 뭐길래 그러는 걸까. 안즈가 찾고 있는 건 안즈의 고양이였다. 나나라는 이름의 고양이. 안즈는 나나가 없어졌다는 걸 제가 전부 다 씻고 나왔을 때 알아챘다. 분명 집 안에서 노곤노곤 퍼져있던 제 고양이 나나는, 어느샌가 덜 닫힌 문틈을 비집고 밖으로 나가버렸다. 안즈는 그걸 알아채자마자 머리카락도 다 말리지 못한채 밖으로 뛰쳐 나왔고.

안즈는 친구에게까지 전화하면서 같이 찾아달라고 부탁했다. 하지만 무슨 수를 써봐도 고양이는 보이지 않았다. 곧 열 시에 다가가고 있을 때 즈음, 안즈는 결국 친구에게 전화했다.

“미안해, 나는 좀 더 둘러보다가 갈게.”

“응. 너무 무리하지 말고. 밖이 춥잖아.”

그 후에도 안즈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어디든 샅샅이 뒤졌다. 공원도, 놀이터도, 게다가 으슥한 곳까지 전부. 그렇게 한 시간을 더 흘려보내고나서야 안즈는 울컥한 감정이 치솟았다.

‘대체 어딨는 거야….’

안즈는 한 기둥에 기댄채 숨을 돌리다 다시 한번 더 둘러보았다. 하지만 이제는 인기척까지 느껴지지 않는 새까만 밤이었다. 그런데 그때.

“으아악, 고양아~! 거기는 위험할 것 같은데!”

처음 들어보는 목소리가 안즈의 귀에 박혔다. 밝은 목소리의 주인공은 어느 고양이 한 마리를 쫓고 있는 모양이다. 안즈는 혹여나 그 고양이가 제 고양이 나나일까 그 목소리가 나던 곳으로 향했다.

부스럭, 계속해서 그런 소리가 들렸다. 풀잎들이 제 방향대로 꺾이고 흔들리는 소리를 계속해서 쫓았다. 그 안은 풀이 무성한 수풀 안이었고, 안즈는 제 고양이를 애타게 불렀다.

“나나, 어딨어?”

“우아앗, 진정해!”

안즈의 목소리와 방금 들었던 그 사람의 목소리가 겹쳤다. 안즈는 주위를 빙 둘러 바라보았다. 익숙하디 익숙한 풍경일 수풀들에서, 범상치 않은 움직임이 느껴져서 안즈가 흠칫했다.

“어라, 고양아!”

누군가의 품에서 제 고양이 나나가 벗어나서 안즈의 품에 안겼다. 안즈는 풀이 덕지덕지 붙은 제 고양이를 보고서 그저 끌어 안았다. 눈물이 날 것도 같았다. 찾아서 정말 다행이라고, 정말 다행이라고 수십번을 되뇌이다 제 앞의 사람을 바라보았다.

“고양이 찾아주셔서 정말 감사해요.”

일어나지도 않고 그저 밑에서 멀뚱히 안즈를 바라보는 그 사내는 주황색 머리카락을 가졌다. 또 녹색의 눈을 얼굴에 품고 있었고. 머리카락에는 수풀을 몇 번이나 지난 걸지, 나뭇잎이 여러 가닥 붙어있었다. 그리고…. 안즈는 유독 그의 옷을 바라보게 됐다. 뭐랄까, 항해사를 직접 본 적은 없지만 분명 이런 옷을 입고 있다고 들었던 것 같다는 옷의 표본을 그 사람이 입고 있었다. 하얀 바탕에 노란색 단추, 하얀 모자를 바탕으로 챙은 검은색인 선원들이 쓰는 모자. 어깨에 부착된 검은색을 바탕으로 한 노란색 줄무늬를 가진 견장. 정확하게 말하자면, 항해사의 제복이다. 하지만 그걸 입고 있는 그 사람은 제 머리카락에 붙은 나뭇잎을 떼어낼 생각이 없는 모양이다.

“사례라도 드리고 싶은데, 전화번호라도 알 수 있을까요?”

“으음…. 아냐, 괜찮아.”

안즈를 멀뚱히 바라보던 그 사람은 이내 풀밭에서 일어났다. 그리고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어디론가 달렸다. 안즈는 그런 그의 태도에 오히려 저가 눈만 깜빡였다. 하지만 안즈도 질세라, 안즈는 그 사람을 쫓았다. 제복 의상은 불편한 데 반해 안즈의 잠옷은 나풀거리는 재질이었으니 훨 뛰는 데 수월했다. 금세 그 사내를 붙잡고는 말했다.

“정말 사례하고 싶어요. …아, 이럴 게 아니지.”

안즈는 제 품에서 펜 하나를 꺼냈다. 그리고 그에게 물었다.

“혹시 종이 있으세요?”

“없는데, 혹시 뭘 쓰려고 하는 거야?”

“음, 제 전화번호요.”

“사례하려는 거면 정말 괜찮아! 나도 우연히 그 고양이를 찾게 된 거니까.”

그의 말은 안즈에게 전해지지도 못하고 그대로 아스라져 중간에서 사라졌다. 안즈는 골똘히 고민하며 어디다 제 전화번호를 써서 저 사내에게 전해줘야하는지 고민했다. 그 사내는 그런 안즈의 마음을 알아채기라도 한 건지, 제 오른손에 있던 장갑을 벗더니 안즈에게 제 손등을 건넸다.

“여기다 써 줄래?”

안즈는 그의 말에 기껍게 승낙했다. 일반 종이만큼 잘 써지진 않았지만 한 글자 한 글자가 그 사내의 손등에 새겨졌다.

“…안즈?”

“아, 네! 제 이름이에요.”

그 남자는 하이픈과 함께 적힌 숫자들 옆 작게 적힌 글자를 보더니 고개를 끄덕거렸다.

“혹여나 사례가 필요하실 때 전화해주세요, 꼭 힘 닿는 데까지는 도와드릴테니까요!”

안즈는 다시 한번 허리를 숙여 감사하다는 인사를 전했다. 그 사내는 결국 고개를 끄덕이고는 방금처럼 점점 멀어졌다. 안즈는 그런 그의 뒷모습을 바라볼 뿐이었다.

여기가 어디지?

글쎄, 이곳에 처음 발을 딛었을 때 처음으로 했던 생각이었다. 분명 내가 떠돌던 우주만큼 춥지는 않지만 코끝이 시릴 정도로 추웠고, 모든 물건들은 전부 제 자리에 놓여져있었다. …다 공중에서 떠돌아다니는 게 아니었나? 그런 고민을 거듭 반복하다가 내 앞으로 고양이 한 마리가 지나갔다. 딱히 쫓을 생각은 아니었으나, 너무 위험한 곳으로 가니까 쫓았을 뿐이었다.

“여기는 츠키나가 레오, 대답해, 세나!”

아직 부서지지 않은 무전기를 들고 마구 두드렸다. 곧 치지직거리는 노이즈 음이 들리더니 곧 익숙한 음성과 연결됐다.

“레오 군? 어디야! 대체 어딜 돌아다니고 있는 거야?”

“여기가 어딘지 모르겠어! 나무도, 수풀도, 벽돌도 전부 다 제자리에 가만히 잘 있는 이상한 곳이란 말야. 떠돌아다니지 않는다고. 별도 잘 안 보여! 그리고 방금 인간이라고 해야할까, 어느 사람을 만났는데 영문 모를 번호만 써주고 갔어! 대체 여기가 어디야, 세나?”

무전기로 연결된 사람은 츠키나가가 있는 곳의 특성을 옮겨 써내려가다가 멈칫했다. 세나는 생각했다. 나무가 자랄 수 있는 환경, 인간이 있을 수 있는 환경이고 전부 제 자리에 있을 수 있게 하는 힘이 있는 곳…….

“레오 군, 지구에 있어?”

“…지구라고?”

지구라고? 아냐, 그럴리 없잖아. 지구는 며칠 전에 지나치면서 봤다고. 내가 어떻게 떨어졌든간에 지구일리는 없어. 우주 한복판인 게 오히려 더 자연스럽지.

“응, 지구같은데. 아직 행성을 돌아다니면서 중력이 있고, 인간이 존재하는 곳은 지구밖에 보지 못했잖아.”

“아, 그런가?”

“그 영문 모를 번호라는 건 또 뭔데?”

“전화 번호…라고 했던 것 같은데?”

“그래도 아는 사람은 생겼네. 지금으로부터 지구로 가려면 그쪽 시간으로 두 달 정도 걸려. 어떻게든 거기서 죽지 말고 잘 살아 있어.”

이걸 어떻게 반응해야할지. 평소의 츠키나가라면 영감이 떠오른다고 해야겠지만, 지금은 아닌 것 같다. 머릿속이 잔뜩 새하얘져버려서 어떻게 해야할지 감이 전혀 잡히지 않았다. 세나는 곧 전파가 끊어지려는 걸 겨우겨우 이어서 빠른 속도로 말했다.

“공중 전화로 가서……… 전화 번호를……… 해서, 초록…눌러, 알겠지?”

“세나, 거짓말 아니라 하나도 안 들렸는데!”

뚝, 그대로 무전기는 꺼져버렸다.

“여보세요?”

안즈의 휴대전화로 공중전화의 번호로 전화가 왔다. 안즈는 전화를 받았다.

“어, 그, 안녕!”

“아, 어제 그 분이시네요. 사례 그 쪽으로 전화 주신거죠? 전화는 좀 귀찮으니까 어디서 만나서 얘기할까요?”

“아, 응.”

“그럼 ……여기 카페에서 만나요!”

안즈는 약속 시간보다 조금 더 일찍 도착해서 미리 음료를 주문했다. 날씨가 추우니까 둘 다 핫초코를 먹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다. 김이 모락모락나는 핫초코는 컵 표면에 손을 얹는 것만으로도 마음까지 따스하게 만들었다. 안즈는 핫초코를 호호하고 불어서 천천히 마셨다.

그때, 딸랑하고 그 주황머리 사내가 카페 안으로 들어왔다. 옷차림은 어제와 같았고, 어제보다 나뭇잎의 개수는 더 많아졌다. 안즈는 여기라며 반갑게 손을 흔들었다. 주황머리칼의 사내는 안즈가 있는 자리를 확인하고 그 자리 앞에 앉았다.

“이건,”

“아, 제가 주문했어요. 제가 사는 거니까 마음 편하게 드세요.”

그 사내는 아무 생각 없이 핫초코를 들이켰다가 눈이 잔뜩 커졌다. 음, 당연히 핫초코니까 뜨겁겠지. 입 안에 가득 든 핫초코를 하마터면 그대로 뱉을 뻔했다. 겨우겨우 목 안으로 욱여 넣었다.

“그래서 사례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안즈는 바로 본론을 꺼냈다. 제 앞에 사내는 시선을 돌리고 딴청을 피웠다. 그러나 이내 결심이라도 한건지 안즈를 제대로 바라보고 말했다.

“딱 두 달만! 잘 곳을 제공해줄 수 있을까?”

난생 처음 들어보는 사례 형식에 안즈는 들고 있던 핫초코 잔을 떨어뜨릴 뻔했다.

그 말 이후 주황머리칼의 사내는 왜 자신이 이런 말을 했는지 이유를 설명했다. 하도 횡설수설거리고 자주 핀트를 벗어나서 요약하자면 이 다음 안즈의 말 정도.

“그러니까, 그 쪽은 우주를 항해하는 항해사인데, 어떤 이유에서일지 배에서 동떨어져 이 곳으로 오게된 거고. 하필 떨어진 때가 지구를 지날 때라 다시 배가 오려면 두 달이 걸린다는 말인 거네요.”

“응, 그게 맞아.”

“그래도 그건…. 좀 어려울 것 같은데, 다른 건 없으세요?”

안즈는 뭐든 해 주고 빨리 이 자리를 떠야겠다고 생각했다. 아니, 애초에 우주를 항해한다는 것 자체가 있을 수 있는 일인가. 진공 상태의 우주에서 배 한 척을 몰고 나아간다니. 생각해보자면 아주 당황스럽고 어처구니 없는 말이었다. 당최 믿을 수가 없는 말이었다. 그래서 안즈는 조금, 아니, 아주 많이 이상한 사람이라고 생각했고.

하지만 제 앞의 주황 머리칼의 사내는 도리질쳤다. 정말 그것말고는 딱히 바라는 게 없는 듯 했다.

“안 될까? 그저 잘 곳만 제공해주면 돼. 아무것도 안 먹어도 세 달은 버틸 수 있어. 그냥, 정말로 잘 곳!”

안즈는 빨리 떠나야겠다라고 그렇게 마음 먹었으나 초롱초롱한 녹색 눈동자를 보자 또 흔들리는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최근에 투룸으로 바꾼 것도 잠시 후회스런 마음이 동했다. 원룸이었다면 그저 그걸 핑계로 거절하면 됐을텐데, 투룸이란 건 수용할 여건이 있다는 여지를 줘버린다. 안즈는 끙, 하고 앓는 소리를 내며 열심히 고민했다. 그래도 제 가족같은 반려 동물을 찾아주고 구해준 사람인데. 그런 생각과 그래도 동성도 아닌 사람을 집에 들이는 게 맞아? 라는 생각이 충돌했다. 그런 고민이 얼굴에 전부 드러나자 그 사내는 제 품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자, 이거.”

안즈는 그의 목소리에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보았다. 그는 온갖 파랑을 섞은, 마치 우주를 연상케하는 색깔의 브로치를 하나 건넸다. 원 모양의 브로치 안에서 금박 처리가 된 그의 이름으로 보이는 글자—月永レオ—와 함께 별 세개가 빛났다.

“이게 뭐예요?”

“으음, 일종의 분신이라 해야할까? 토템? 내 일부라고 보는 게 맞는 것 같아. 네가 그걸 던지면, 나는 네가 던진 곳으로 이동 돼. 만일, 깜깜한 심해 어둠 속이라도 예외는 없어. 내가 너에게 피해를 준다 생각하면 너는 그 브로치를 밖으로 던지면 되는 거야. 네가 만약 던져서, 내가 밖으로 다시 나가게 된다면 나는 다시 들어가지 않을게.”

“제가 몹쓸 짓에 사용하면 어쩌려고 그런 걸….”

“너는 그런 사람이 아닌 것 같으니까! 또 말야, 그 브로치가 빛을 잃으면 내가 죽었거나, 아니면 이 별에 있지 않다는 거야. 그리고 네가 브로치에다 대고 무슨 말을 하면, 나에게 전해져!”

“중요한 거잖아요! 이런 건 다른 사람에게 막 주면 안 돼요.”

“괜찮아. 너도 지금 고민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니까, 이런 거라도 주면 안심 되지 않을까 싶어서.”

주황머리칼의 사내가 그저 멋쩍게 웃었다. 안즈는 브로치를 가만히 보며 말했다.

“알겠어요, 츠키나가 씨.”

그 말에 츠키나가는 깜짝 놀라서 안즈를 바라보았다.

“너, 너도 독심술 같은 걸 쓰는 거야? 어떻게 내 이름을…!”

“여기 적혀 있잖아요.”

브로치를 보여주는 안즈에 츠키나가가 괜한 한숨을 쉬었다. 안즈는 그를 가만히 바라보다가 말했다.

“그, 옷 먼저 사러갈까요?”

“우와, 이것 봐봐, 안즈! 목도리야! 목걸이도 있어!”

“알, 알겠으니까 목소리 조금만 줄여주세요!”

어느새 밖을 보니 작은 눈발이 휘날렸다. 쌓일 정도로 내리지는 않았지만, 손에 톡톡 닿는 눈발이 신경쓰이지 않는다는 건 아니었다. 그건 항해사 제복을 입은 츠키나가에게 유독 강하게 작용했으니, 누가봐도 그렇게 두꺼워보이지는 않는 제복을 입은 츠키나가를 안즈는 걱정했다. 하지만 그런 걱정도 무색하게도 츠키나가는 유리창에 가까이 붙어 이것 보라며, 저것 보라며 안즈에게 외치고 있었다.

“내일도 눈이 올까? 그 다음도?”

거리를 걷다가 하얀 눈을 보며 츠키나가가 안즈에게 물었다.

“날씨를 보면 알 수 있지 않을까요? …아, 내일은 거의 폭설이네요.”

“그 다음도?”

“글쎄요, 다음 주까지 내내 눈이 오는 것 같은데요.”

“지구는 원래 눈만 오는 곳이야?”

“네? 아뇨, 조금만 더 지나면 봄이 오고, 여름이 오겠죠. 그럼 비가 이 눈처럼 내릴 거예요.”

“봄! 봄에는 꽃이 핀다며?”

“네? 네. 그렇죠. 아무래도 겨울에 비해 날이 따뜻하니까요.”

안즈는 그런 대화를 나누며 한 상점의 문을 열었다. 딸랑, 하고 울리는 청아한 종소리와 함께 “어서오세요,”라는 직원의 따스한 목소리가 들렸다.

“안녕하세요, 혹시 찾으시는 옷 있으실까요?”

“아뇨, 저는 아니고 이 분이 입을만한 옷을 찾고 있어요.”

안즈는 신기해하며 마구 옆을 둘러보고 있는 츠키나가를 가리키며 말했다. 직원은 츠키나가의 체격과 신장을 훑어보더니 말했다.

“이런 스타일은 어떠세요? 요즘 인기가 많아요. 프리 사이즈라서 여성 분들도 많이 입으시고요, 남성 분들도 많이 찾으셔요.”

직원은 품이 넉넉한 검은색 티셔츠를 가리켰다. 하얀색 문양과 함께 포인트도 적당히 잡힌 티셔츠였다. 안즈는 가격도 괜찮다고 생각했고, 츠키나가를 불렀다.

“저, 츠키나가 씨.”

안즈는 츠키나가를 바라보았다. 그는 어느새 안즈의 옆에서 벗어나 매장에 있는 마네킹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츠키나가 씨?”

“응? 안즈! 이것 봐, 정말 예쁜 옷이야.”

츠키나가가 바라보고 있던 건 녹색의 베레모와 하얀 블라우스, 또 질긴 질감을 가진 녹색의 치마와 또 녹색의 구두였다. 그러나 안즈는 그의 말을 듣다가 그저 웃었다.

“그 쪽은 봄철 옷이에요.”

“그래? 으음, 그렇구나.”

츠키나가는 한동안 그 옷을 조금 더 바라보다 오라는 안즈의 손길에 안즈에게 다가갔다. 안즈가 이 티셔츠는 어떠냐 물었다. 츠키나가는 긍정의 의사를 표현했고, 안즈는 그에게 입고 오라며 티셔츠를 건넸다. 츠키나가는 멀뚱히 서 있다가 안즈가 탈의실로 밀어넣고 나서야 정신을 차렸다.

“바지는 어떤 게 좋을까요?”

“지금 입고 계신 저 하얀색 정장 바지도 잘 어울리니까 하얀 계열이 잘 맞지 않을까, 싶은걸요.”

“으음….”

안즈는 하얀 바지도 바라봤다가 청바지도 바라보았다. 죄다 왜 잘 어울릴 것 같은지, 안즈는 그런 고민에 몇 개를 집어 들었다.

그때 즈음, 끼익하는 소리와 함께 탈의실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츠키나가가 왠지 ‘짠!’하는 효과음과 함께 등장할 것만 같이 안즈에게 다가갔다.

“어때?”

잘 어울릴 거라고 생각하기 했지만은 이렇게 잘 어울릴 줄이야. 안즈는 만족한 듯 보이는 츠키나가를 보며 비슷한 크기의 옷을 몇 벌 더 구매했다. 바지도 잊지 않고 구매했고.

“잘 어울리네요, 다행이에요.”

“음, 고마워! 나도 마음에 들어.”

츠키나가가 웃으며 품이 넉넉한 제 상의를 만지작거렸다. 항해사 제복과 모자는 가지런히 접어 종이 가방에 집어 넣고. 제법 눈발이 거세져서 게으름 피우지 않고 일찍일찍 집에 들어가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가게의 유리창을 열심히 바라보는 츠키나가 덕에 발걸음은 자꾸 느려졌다. 안즈는 결국 츠키나가를 질질 끌고 제 집으로 향했다.

“으아악, 미안해, 안즈!”

그런 비명도 들렸다.

“나나, 여기야!”

츠키나가를 집에 들이고 좋은 점이라면, 안즈는 고민도 없이 그걸 제일 먼저 꼽았다. 안즈의 고양이인 나나는 활발한 아이라서 항상 안즈가 집에 돌아오면 장난감을 가지고 안즈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안즈는 회사를 다녔고, 녹초가 되어서 겨우겨우 집에 도착했기 때문에 항상 미안하다며 놀아주지 못했다. 하지만 그 역할을 츠키나가가 대신했다. 그도 제법 그 역할을 즐기는 것 같고. 평소보다 고양이 털이 더 날리긴 하지만 문제될 건 없었다.

그건 안즈가 하도 바쁜 아침 시간에도 마찬가지였다. 활발한 데다 잠도 적은 나나는 아침부터 장난감을 물고 안즈에게 다가왔다. 하지만 안즈는 하도 바쁘기 때문에, 그런 나나의 눈을 마주치지 않은 척 시선을 돌렸다. 그래서 그때즈음 하품을 하며 “좋은 아침…♪”이라고 인사를 건네는 츠키나가가 그렇게 반가울 수 없었다. 츠키나가는 장난감을 물고 있는 나나를 보자마자 “우와, 너 일찍 일어나는 구나!”라며 감탄하고 장난감을 들었다. 그는 아침부터 열심히 나나를 놀아주었다. 왠지 놀고 있는 나나도, 열심히 놀아주고 있는 츠키나가도 서로 닮았다는 생각을 하며 안즈는 말했다.

“아침 꼭 챙겨드시고요, 점심도 드시고 저녁도 꼭 드세요! 오늘은 좀 늦어요.”

“응! 근데 안즈, 안즈는 아침 먹은 거야?”

“네? 아뇨.”

“먹고 가는 게 좋지 않아?”

“먹을 시간이 없는 걸요, 갈게요!”

츠키나가가 바쁘게 밖으로 나가는 안즈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나나, 네 주인은 원래 아침을 안 먹어?”

방바닥에 드러누운 츠키나가가 나나를 들어올리며 물었다. 고양이가 무슨 대답을 하겠냐만은, 나나는 답이라도 하려는 듯 연신 울었다. 그 말에 츠키나가는 드러누운 저를 일으키며 생각했다.

‘저녁도 잘 안 먹던데, 점심은 잘 먹는 건지 모르겠네.’

“안즈 씨, 커피를 몇 잔이나 마신 거예요?”

“네? 그렇게 많이는 안 마셨는데…. 일곱 잔이었나 그럴 걸요?”

“그게 많이가 아니면 어떡해요, 무리하지 말고 쉬엄쉬엄하세요.”

안즈는 힘껏 네! 라고 대답하고서 커피를 들이 마셨다. 요즘 다크서클이 늘어난 것 같기도 한데, 딱히 신경 쓰진 않았다. 원래도 그런 상태였으니 잠깐 그런 거겠지, 그랬다. 점심도 넘어가는 일도 빈번했지만 괜찮다고 생각했다. 삼사년 전에도 이랬지만 딱히 상태 이상은 없었다.

그렇게 생각한 건 어쩌면 착각이었을까. 안즈가 뜯은 믹스 커피의 개수가 열 개 즈음 다다랐을 때였다. 직원들은 대부분 퇴근하고 제 사무실에는 홀로 남아 산을 쌓은 서류들을 살피고 있었다. 밀려들어오는 졸음에 꾸벅꾸벅 졸다가, 결국 커피 한 잔을 더 마셔야겠다고 생각하고 제 자리에서 일어났다. 하품을 연신 반복하며 아득하게 들려오는 물 소리를 들었다. 몇 시 즈음 되었을까, 츠키나가 씨는 저녁을 드셨을까, 나나의 저녁을 챙겨주셨을까, 그런 고민들을 반복했다. 안즈는 벽에 붙어있는 시계를 바라보았다. 왜 2시 50분인지, 시계가 잘못된 모양이다. 이렇게 해가 없고 깜깜한데.

그래, 정확하게 잘못 봤지. 왜냐하면.

안즈는 곧 중심을 잃고 왼쪽으로 넘어갔다. 털썩, 차라리 쿵하고 크게 소리 났다면 누구라도 달려왔을 것을.

“나나, 안즈는 언제 올까?”

현 시각 열한시. 츠키나가는 안즈의 당부대로 저녁을 챙겨먹고 안즈의 저녁까지 해 뒀다. 나름 달걀 지단도 잘 돼서 만족스러운 오므라이스라고 생각했는데, 어째 먹을 사람은 오지 않았다. 왠지 아쉬운 감정이 들어서 열심히 외계인 그림까지 그려놓은 오므라이스를 바라보다가 이내 한숨을 내쉬었다. 이제 슬슬 잠에 들려는 나나를 건드릴 수도 없고, 참. 츠키나가는 흐르는 시간만 바라보았다. 그런데 그때즈음이었을까.

“…안즈? 안즈야?”

제 머리에 무언가가 말하는 듯 하여 퍼뜩 놀란 츠키나가가 되물었다. 이런 파동이라면 분명 안즈에게 줬던 제 브로치로 누군가가 말하는 것이리라. 하지만 사람의 음성은 들리지 않고 째깍째깍 시계 초침이 움직이는 소리만 들렸다. 아무 소음도 들리지 않았다. 고요하기 그지없었다.

그런 상태가 십분 정도 더 들렀을 때는 철컥, 하고 무언가가 문을 잠그는 소리가 들렸다. 츠키나가는 안즈가 일을 마친 후 회사의 문을 잠그는 거라고, 그렇게 생각했지만 브로치는 아니었다. 브로치는 여전히 회사 안이었다. 어쩌다보니 위치 추적 기능도 있던 브로치의 위치를 살핀 츠키나가는 뭐가 뭔지 잘 구분되지 않았다.

“안즈? 안즈! 어디야? 괜찮아? 들리면 대답 좀 해 줘!”

안즈가 브로치를 잃어버리지만 않았다면 들리지 않을 수가 없었다. 안즈는 분명 제 휴대전화에 그 브로치를 걸어 놓았다. 이 별, 그러니까 지구의 사람들은 대부분 어디를 갈 때 휴대전화를 가져가는 것 같으니까…. 츠키나가는 그렇게 생각하며 동시에 안즈도 예외는 없다고 생각했다. 츠키나가는 필히 안즈에게 무슨 문제가 생겼으리라, 확신했다. 그는 브로치가 말하는 위치를 천천히 떠올렸다. 안즈의 회사, 걸어서 십 분 거리다. 그렇게 멀지 않다. 츠키나가는 머릿속에 지도를 그렸다. 현관을 열고 힘껏 뛰었다. 머릿속의 지도를 바탕으로 더, 더 빨리 뛰었다. 항해사니까, 지도를 보는 일에는 익숙했다. 그는 처음 보는 지도였음에도 지름길을 개척했다. 골목을 이리저리 꺾어서 키가 높은 건물 앞에 다다랐다.

하지만 츠키나가가 도착한 회사는 굳게 문이 잠겨 있었다. 제길! 츠키나가는 그렇게 생각하며 주위를 살폈다. 혹시나 창문이 닫히지 않은 곳은 없나 살폈다. 그때, 3층 정도의 높이의 창문 하나가 훤히 열려 있는 걸 확인했다. 츠키나가는 그걸 확인하자마자 주위의 나무를 하나 잡고는 빠른 속도로 올랐다. 그리고 가지에 오르고는, 가지가 부러짐과 동시에 높게 뛰더니 3층의 열린 창틀을 꽉 잡았다. 뭐랄까, 항해선에서 떨어지려 했을 때 죽을 각오로—당연할지도 모른다. 여기서 떨어지면 영하 60도를 자랑하는 우주니까—선체의 틀을 잡고 오른 경험이 이렇게 도움될 줄은 상상도 않았다. 그는 한발 한발을 내딛어 3층의 사무실 안으로 들어섰다.

운 좋게도 그곳이 안즈의 사무실이었다. 츠키나가는 잔뜩 울고 있는 제 브로치의 위치가 여기라는 걸 깨닫고는 안즈를 열심히 찾았다. 안즈는 정수기 앞에 쓰러져 있었다.

“안즈, 안즈!”

츠키나가가 쓰러진 안즈의 숨을 확인했다. 다행히 숨은 붙어있었다. 츠키나가는 어디를 가야할지 고민했다. 지구에는 아프면 가는 곳이 있다고 분명 들었는데…. 그게 어디었는지 잘 기억나지 않았다.

안즈는 누군가가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눈을 깜빡였다. 주황 머리카락에 자신을 바라보며 잔뜩 걱정하고 있는 녹색 눈. 안즈는 꿈이라도 꾸는 건가 싶어서 그저 말했다.

“츠키나가 씨…?”

“어? 안즈! 안즈, 정신이 들어?”

안즈는 몸을 일으키려 제 손에 힘을 주었지만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제 상체는 무거웠다. 영 일어나지 못하자 츠키나가가 말했다.

“일어나서 걸을 수 있겠어?”

“아뇨…. 몸에 힘이 안 들어가요.”

츠키나가는 안즈를 바라보다가 “그럼, 잠깐 실례할게!”라는 말을 건넸다. 안즈는 뭘 하려나 그를 바라보다가 자신이 들썩하고 들리는 느낌에 반쯤 떴던 눈을 아예 다 떴다.

“츠, 츠키나가 씨!”

츠키나가는 안즈를 안아 들었다. 그리고는 이번에도 3층의 창문으로 뛰어내리려고 했다. 안즈는 그런 츠키나가를 보며 잔뜩 그를 말렸고.

“열, 열쇠가 있어요! 창문으로 뛰어내리려고 하지 마세요!”

안즈의 당황한 목소리에 츠키나가가 알겠다며 빠르게 수용했다.

겨우겨우 회사의 문을 열고 밖으로 나섰다. 안즈는 츠키나가에게 들린 다소 민망한 포즈로 제 집까지 들려가는 수 밖에 없었다. 그렇다고 가방을 주라고 그에게 말했지만, 그는 가방도 주지 않고 “가는 동안 괜찮으니까 자도 돼!”라고 자신만만하게 외쳤다.

“실컷 자서 잠은 안 와요.”

“그건 잔 게 아니라 기절한 거라고 하는 거야, 안즈.”

“…외계인도 쓰러지긴 하나봐요, 기절을 아는 걸 보면.”

“그럼, 잘 알지. 생각보다 외계 사람들은 지구인에 대해 잘 알아! 병명도 알고, 건물의 역할과 이름도 알고 있지. 너희가 말하는 음악이 뭐고, 문학이 뭐고, 역사가 뭔지도 전부 알고 있어.”

“생각보다 잘 알고 계시네요.”

안즈는 그와 그런 대화를 나누다가 의아함이 들어 그에게 물었다.

“그런데 회사 문이 잠겨 있었잖아요. 어떻게 들어오신 거예요? 아, 이것도 궁금하긴 한데…. 제가 쓰러진 건 어떻게 알고 찾아오신 거예요?”

“브로치로 알았어. 주변에는 아무 소리도 안들리는데 브로치 혼자 작동해서 주변 소리를 들려줬어. 분명 문 잠기는 소리는 나는데 브로치 위치는 그대로라서, 이상하다 싶었지. 음, 그리고! 나무를 타고 뛰어서 창문으로 사내에 들어왔다고 하면 되려나?”

“나, 나무를 타고요?”

“응! 3층에 창문이 열려 있길래 뛰어서 들어왔지.”

“너무 위험하잖아요.”

츠키나가는 잔뜩 놀란 안즈를 보더니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은채 안즈를 바라보았다. 안즈는 그런 그의 시선에 의아함을 표현했고.

“네가 더 위험했어. 알고 말하는 거지?”

안즈는 순간 몸이 경직됐다. 그렇게 말하는 그의 시선이 생각보다도 훨씬 진지했다. 그러나 이내 츠키나가는 웃었다. “그러니까, 걱정했다는 말이야! 다음에는 무리하지 말고 세끼 다 잘 챙겨 먹어.”라고 덧붙이는 것도 잊지 않았다.

“…제게 남동생이 아니라 오빠가 있었다면 츠키나가 씨같은 사람이었을까요?”

“우왓, 안즈, 동생 있구나! 나도 있어, 나는 여동생이지만…♪”

“오빠가 있었다면 츠키나가 씨같은 분이면 좋겠어요. 그럼 참 좋을텐데.”

그 말에 츠키나가는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 분명하게 행복해 보였다. 그래야했을텐데, 안즈는 왜 그 웃음이 슬프게만 느껴졌을까.

“안즈의 오빠라니, 나는 좋은데! …외계인이라도 괜찮다면 말야.”

“외계인이라는 게 중요한가요? 저는 그저 츠키나가 씨가 좋을 뿐이에요.”

“와하하! 그 말 좋아, 나도 널 좋아해!”

으아앗, 저는 그런 의미가 아니었어요! 안즈는 손사래를 치며 츠키나가의 말에 부인했다. 하지만 왠지 옴짝달싹 못하는 그의 입술을 보면서 뭔가 할 말이 있는가 고민했다.

츠키나가는 시선을 돌리고 쓰게 웃었다. ‘나랑 계속 가까이 있으면…… 네가 아플거야.’라고 생각만 할 뿐이었다.

“자아, 안즈! 오늘 아침은…….”

동거를 시작한지 몇 주나 되었을까, 곧 한달이 다 되어가고 있었다. 그러다보니 제법 서로에게 익숙해져서 자연스레 역할 분담도 생겼다. 그 중 요리 담당은 츠키나가였다. 안즈가 쓰러졌을 적에 식탁 위에 홀로 덩그러니 놓인 식은 오므라이스를 보고서 그런 제안을 펼쳤다. “츠키나가 씨, 생각보다 요리 잘 하시네요! 그럼 요리는 츠키나가 씨께서 하는 게 어떤가요?”라고 물었다. 츠키나가는 그저 좋다며 고개를 끄덕일 뿐.

으음, 그러니까, 오늘은 네가 알려준대로 달걀말이와 볶음밥인데. 주말이라면 꽤 이른 시각인 8시, 츠키나가는 안즈에게 외쳤다. 하지만 안즈는 현대 직장인이고, 8시라면 아직은 늑장을 부리고 싶은 시각이랄까. 츠키나가는 아직 한밤중인 안즈에게 다가갔다. 잠든 안즈를 여러 각도에서 바라보았다. 눈을 지긋이 감은 안즈를 볼 때면 제 마음이 떨려왔다. 지구인이란 쉽게 쓰러지는 생물이구나 싶어서. 이러다 깜빡 잠들었다가 그대로 죽으면 어떡하나 싶었다. 하지만 지금의 안즈는 인형 하나를 안은채 숨을 잘 쉬며 자고 있으니까 츠키나가는 그저 흐뭇하게 바라볼 뿐이었다. 츠키나가는 싱긋 웃다가 “그럼 오늘은 좀 늦게 먹는 걸로 하자.”라고 말했다.

“우왓, 나나, 이렇게 막 바지를 잡아당기면 안돼! 기껏 안즈가 사준 거잖아. 잘못하다간 찢어진다구.”

방금 잠에서 깬 나나를 쓰다듬었다. 그래도 나나가 츠키나가의 발에서 비키지 않자 츠키나가는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나나가 그에게 물고 온 건 종이 가방 하나. 그래, 그가 안즈에게 이상한 사례를 부탁한 날에 옷을 사러 갔었고, 그때 입고 있던 항해사 제복을 담아둔 종이 가방이었다. 그 종이 가방에서는 연속적으로 듣기 싫은 신호음이 들렸다.

“…앗, 세나구나! 응, 세나. 무슨 일이야?”

“하? 안부나 묻고자 무전 걸었어. 협상이 결렬됐는지 성공적이었는지 그것도 모르겠는데 지금 몇 주 동안이나 연락이 없었잖아. 나는 이상한 지구인한테 걸려서 작살이라도 맞아서 죽은 줄 알았지.”

“아냐, 세나. 지구인은 그렇게 나쁜 생물이 아냐.”

“…쉽게 믿는 거야?”

“아, 아니. 그건 아니지만….”

“지구에 살다보니 너도 좀 이상해진 것 같은데? 우리는 지구인때문에 죽을 뻔한 경험이 있는데도 그러는 거야? 웃겨, 정말.”

세나의 쓴 말에 츠키나가가 움찔했다. 물론 틀린 말은 아니다. 우주를 항해하던 그들에게 총구를 들이밀던 사람들이 분명하게 떠올랐다. 제 영역을 침범했다고, 외계 생물이라고 다들 그랬지. 그래서 세나는 지구인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아무래도 그럴 수 밖에.

하지만, 안즈는 아닌데.

“주제가 엇나갔네. 그래서 잘 살고 있는 거야?”

“응. 어째저째 두 달만 부탁한다고 해서 잘 살고 있어. 맞아, 저번 주는 박람회에 갔어! 디저트 박람회였는데 달콤한 음식이 그렇게 많은 줄 몰랐어, 세나. 나는 사탕밖에 없는 줄 알았는데. 케이크도 있었고, 초콜릿도 있었어. 너도 되면 보여주고 싶어!”

“레오 군,”

“또 그 전날에는 같이 전시회에 갔어. 우리가 지구에 대해 알고 있던 건 극소량이었을 뿐이었어. 문학이 그런 건줄 몰랐어. 예술이 신기했어.”

“…”

“항상 안즈랑 같이 갔는데, 정말 좋은….”

“너, 정신 차려.”

세나의 말이 조용하고도 차갑게 츠키나가의 심장에 닿았다. 츠키나가는 그의 말에 흠칫했다.

“지구인이 싫고 그런 문제를 떠나서 말야, 너, 그 안즈라는 애랑 적당히 붙어 있어. 알잖아, 우리가 어떤 병을 그 애에게 옮길 지 몰라. 우리는 우주를 떠도는 존재야. 어떤 병을 가지고 있는지 모른다고. 또 그 환경에서 네가 얼마나 버틸 수 있는지도 몰라. 네가 버티다가 한 순간 아프기 시작한다면 그건 지구에서 고칠 수 없어. 알잖아.”

……알고 있단 말야.

츠키나가는 세나의 말에 힘을 줘 무전기를 부숴보기라도 하려 했으나 할 수 있던 건 그저 세나와의 연결을 끊는 것 뿐이었다. 츠키나가는 충분히 우려하고 있던 일에 대해서 위협하듯 말하는 세나의 말에 그저 쯧, 하고 혀를 찰 뿐이었다. 츠키나가는 무전기를 다시 종이 가방에 던졌다.

“안녕히 주무셨어요?”

그때 안즈가 천천히 잠에서 깨며 츠키나가에게 물었다. 츠키나가는 한창 구겨진 표정을 풀고 “그럼!”이라며 환하게 웃었다.

“안즈, 아침은 달걀말이와 볶음밥이야!”

“어제 가르쳐드린 것 같은데 신기하네요. 습득력이 좋다고 해야하나. 신기해요.”

안즈는 달걀말이 하나를 입에 집어 넣고는 맛있다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츠키나가는 열심히 먹는 안즈를 보며 흐뭇하게 바라볼 뿐이었고.

“츠키나가 씨는 아침 드셨어요?”

“아니, 안 먹었어.”

“자아, 그럼….”

안즈는 자연스레 한술 볶음밥을 떠서 그 위에 달걀말이를 얹이곤 츠키나가에게 건넸다. 건네기보단 먹여준다고 해야할까, 츠키나가는 안즈의 숟가락을 그저 바라봤다.

“안 드세요?”

“아, 응!”

츠키나가는 안즈가 건넨 제가 만든 볶음밥과 달걀말이를 먹었다. 내가 만든 거지만 꽤 맛있어! 그렇게 생각하고는 그저 웃으며 안즈를 바라볼 뿐이었다. 그때 즈음, 안즈는 창문을 보았다.

“어라, 함박눈이네요.”

하얀 솜같고 어쩌면 푹 누른다면 폭 들어갈 것처럼 생긴 눈이 내렸다. 눈은 곧 지붕이든 벽이든 하얀 자국을 남겼다. 함박눈이 내리는 걸 보며 잠옷 바람의 아이들이 밖으로 나왔다. 그 뒤에서 그 아이들의 부모들이 나와 하나둘씩 빨갛고 노란 목도리를 둘러 매어 주었다. 그 모습이 마치 신호등같기도 하고, 붉고 노란 가을 풍경같기도 했다. 길가에 소복이 쌓인 눈을 보면서 안즈는 언제 다 치우지, 싶은 생각을 했지만 츠키나가는 잔뜩 신났다.

“나가자, 안즈!”

“엄청 추울 텐데요?”

“괜찮아! 나, 영하 60도에서까지 살아봤으니까!”

“우주가 영하 60도였던가요, 그럼 이 정도 추위는 거뜬하겠네요.”

안즈는 웃었다. 그리고 제 머플러를 두르고 코트 하나를 걸쳐 입었다. 잔뜩 신난 츠키나가를 보며 ‘그래도 추울텐데.’ 그런 생각도 했고. 안즈는 제가 작년에 뜨개질로 떠 둔 목도리 하나를 가져왔다. 그리고는 츠키나가의 목에 둘렀다.

“좀 엉성하긴 하지만, 따뜻할 거예요.”

“응, 따뜻해.”

그의 목에 둘러진 건 붉은색 뜨개 목도리.

밖으로 나서자 어린 아이들이 길가에서 눈사람을 만들고 있었다. 장갑 하나 끼지 않은 맨손으로 눈을 굴리는 걸 보며, 안즈는 순간 ‘손이 다 망가질텐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곧 그런 아이들의 무리에 츠키나가가 낄 건 뭐람. 그도 장갑 하나 끼지 않은 맨손으로 눈을 뭉쳤다. 그까지 합세한 아이들의 눈사람은 점점 크기가 불어났다. 꽤나 큰 눈덩이 두 개가 완성됐고, 그들은 서로 협동해서 눈덩이 하나를 그 위로 올렸다. 곧 제법 모양새가 잡힌 눈사람 하나가 완성됐다. 츠키나가는 주변에서 마른 나뭇가지 두 개를 주워오더니 눈사람의 팔을 만들어주었다. 어떤 아이가 뜯어진 검은 단추 두 개를 들고와 눈사람에게 눈을 만들어주자 츠키나가는 “너, 눈사람에게도 세상을 보여주고 싶은 거구나! 멋진 생각이야!”라며 감탄했다. 츠키나가와 아이들은 저들이 완성한 눈사람을 보며 굉장히 뿌듯했다.

“츠키나가 씨, 손이 다 얼어요, 그러다.”

“괜찮아! 금방 녹아.”

“손이 트면 고생 많이 해요.”

으음, 그럼 안즈가 녹여줄래? 츠키나가는 그렇게 말했다. 안즈는 어리둥절하게 표정을 짓다가 순간 제 손이 탁 잡혀서 놀란 듯 눈을 크게 떴다. 츠키나가가 안즈의 손을 잡았다. 방금까지 코트 주머니에 넣어둔 손은 따스했다. 츠키나가는 안즈의 손을 만지작거렸다. 그는 안즈의 손바닥을 간지럽히기도 했다. 그게 생각보다 간지러워서 안즈가 푸흐흐, 하고 실없는 웃음을 터뜨려버렸다.

“사진 한 장 찍어도 되나요?”

“그럼! 당연하지.”

안즈는 눈사람을 조각하듯이 하는 츠키나가의 모습을 제 휴대전화에 담았다. 꽤나 집중하는 듯 번득이는 녹빛 눈에 안즈는 순간 눈을 떼지 못했다. 세세한 손길로 눈사람을 다듬는 그는 예술가같았다. 그런 시선으로 츠키나가를 자세히 바라보는 안즈에, 츠키나가는 안즈를 돌아 보며 세상 해맑게 웃었다. 그 미소에, 뭐랄까, 심장이 저려오는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면 어떻게 해야할까. 심장은 저도 모르게 열심히 뜀박질하고 있었다.

“앗, 지금의 안즈 표정, 귀여워! 예뻐!”

네? 안즈는 되묻지도 못하고 그저 고개를 푹 숙였다. 츠키나가는 눈사람을 조각하다 안즈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이때까지 항해하며 봤던 항성 중에서 안즈가 제일 예뻐.”

“저는 항성이 아니에요.”

무슨 말인지 당최 이해할 수 없었다. 안즈는 그저 수줍어하며 그가 하는 말을 부인할 뿐이었다.

“항성은 스스로 빛을 내잖아!”

츠키나가는 고개를 푹 숙인 안즈를 그저 와락 안았다. 이건 네가 사랑스러운 탓이야, 안즈. 그렇게 홀로 합리화하며.

“네가 빛난다는 말이야.”

우주를 떠돌아다니는 항해사는 당연히 이성적이고 날카로운 존재라 생각해서, 어쩌면 비슷한 수식어인 차갑다는 것까지 붙어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절대로 그의 품이 따스할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착각조차 않았다. 그러나 안즈는 그의 품이 그렇게 따스할 줄은 몰랐다. 겨울이라 얼어붙은 것까지 전부 녹일 수 있을만큼 따스한 사람이랄까. 안즈는 그의 품에 안긴채 한 동안 있다가, 저도 용기를 내서 그를 조심히 안았다. 츠키나가가 따스한 미소를 지었다.

푸하, 안고 있던 게 얼마 정도 지났을까. 안즈는 그동안 숨을 쉴 수가 없어서—정확하게 말하자면 숨 쉬는 방법을 잊어버려서—숨을 참고 있었다. 안즈는 겨우겨우 그를 떠민 뒤 제 붉어진 얼굴을 식히려 부채질 했다. 숨도 연신 쉬면서.

그때 츠키나가는 이 함박눈을 보면서 하나를 떠올렸다. 안즈에게 외치듯이 말했다.

“안즈! 내 브로치 한번만 보여줄래?”

안즈는 제 품에서 츠키나가의 브로치를 꺼냈다. 츠키나가는 브로치를 건네 받고 이리저리 움직였다. 브로치는 곧 어느 신호음과 함께 툭, 하고 꽤 두꺼운 책 하나를 만들어냈다. 소환이라고 하는 게 더 이해하기 쉽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 정도로 뜬금없이.

“이게 뭐예요?”

“앨범!”

츠키나가는 그대로 하얀 눈바닥에 자리를 잡곤 앉았다. 안즈는 무릎을 굽혀 그가 앨범을 피는 페이지를 빠르게 훑어보고 있었다.

“예쁘지! 이거 말야, 우리 항해선이 처음으로 새 행성을 발견한거야. 주황색 문어를 닮지 않았어? 그래서 이름을 타코야끼라고 지었지!”

츠키나가가 가리킨 행성은 정말 그의 말대로 주황색 문어를 닮았다. 안즈는 그의 작명센스에 그저 엷은 웃음만 터뜨렸다.

“이건 내가 은하수를 봤을 때! 역시, 정말 너무 환상적이야!”

“지구에서 사진으로만 보는 것 보다 훨씬 예뻐요.”

“안즈에게도 이 모습을 보여줄 수 있으면 훨씬 기쁠텐데. 언제 한번 항해선에 놀러오면 좋을 거야.”

안즈는 츠키나가의 앨범을 보다가 빈 페이지를 발견했다. 사진같은 게 하나도 없는, 빈 페이지였다. 안즈가 물었다.

“여긴 뭐예요?”

“음, 그리고 여긴!”

츠키나가가 앨범을 보다가 안즈를 바라보았다. 무릎을 굽혀 앉은 안즈에게 츠키나가가 부쩍 가까이 붙었다. 안즈는 물음표만 떠올리다, 금세 그와 이마가 콩, 하고 부딪혔다. 그러나 아프지 않았다. 오히려, 연결된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안즈는 눈만 깜빡이며 저와 이마를 맞대고 있는 츠키나가의 눈을 바라보았다. 저 녹빛 눈. 순간 정신이라도 팔린다면 저 눈에 홀릴 것 같다는 생각도 들 찰나, 그는 그 눈을 휘며 미소 지었다. 안즈도 그의 미소에 저도 모르게 그저 웃음 지었다. 곧, 츠키나가가 들고 있던 그의 브로치에서 푸른 빛이 새어 나왔다.

“너와 내가 들어갈 곳이지.”

곧 그 앨범에 방금의 모습이 선명히 떠올랐다. 안즈가 그런 브로치에 놀라다가도 꽤나 선명한 그런 사진을 보자마자 놀랐다.

“이 별을 떠나더라도 안즈가 그리우면 볼 거야.”

츠키나가는 제 앨범을 품에 꼭 껴안으며 말했다. 그 앨범에는 밝게 웃는 츠키나가와 안즈가 새겨졌다.

“천문관이요?”

“네, 원래 제 남편이랑 같이 가려 했는데 둘 다 일정이 파토되는 바람에…. 티켓을 다시 팔 수도 없고, 그래서 시간 비는 분께 드리자 싶어서요. 안즈 씨 이때 시간 되세요?”

안즈는 한창 직장 동료와 수다를 떨다가 의아함을 표했다. 얼떨결에 제 손에 쥐어진 천문관 티켓 두 장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감사해요, 그런데 시간이 될 지는 잘 모르겠어서….”

“안즈 씨 이번주에 또 회사 나오려고 그러는 거 아냐? 어우, 그냥 받고 한번 놀다 오세요. 생각보다 거기 볼 거 많대요.”

“이번 주 안에 처리할 일이 아직 남아 있어서요.”

“제가 할테니까 걱정말고 다녀오세요.”

회사 동료들 모두가 안즈가 쉬기를 바라는 건지, 안즈는 등 떠밀려 천문관에 가게 됐다. 하지만 이런 곳에 눈도 들여본 적 없는 안즈는 대체 누구와 함께 가야하나 싶었다. 그때 안즈의 머릿속에 한 명이 빠른 속도로 지나갔다. 제 집에서, 제 고양이 나나와 놀고 있을 해맑은 사람. 안즈가 이내 회사 동료들 앞에서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츠키나가 씨, 이번 주말에 천문관이나 갈까요?”

“천문관?”

“네, 음…. 가면 천문 현상도 볼 수 있고요, 망원경도 설치되어 있어서 별도 볼 수 있을 거예요.”

안즈는 제가 지금 누구한테 이런 말을 하고 있는건지, 그런 생각을 했다. 우주를 항해하는 항해사에게 인간이 알고 있는 우주의 일부를 보여주는 거나 다를 게 없다. 츠키나가는 안즈의 말에 눈만 깜빡거리며 의아한듯 보였다. 안즈는 역시 아니겠지, 싶었다. 그러나 츠키나가는 활짝 웃으며 말했다.

“좋아! 가보고 싶어, 천문관 말야.”

그래서 그의 꽤나 의외인 말에 고개를 끄덕이긴 했지만 의아함은 벗어낼 수 없었다. 뭐, 항상 예측할 수 없는 그였기에 그런 거겠지. 안즈는 그렇게 생각하며 날씨를 살폈다. 다행히 주말에는 비가 오거나 눈이 오지 않는다. 안즈는 다행이다, 생각하면서도 어제 적에 널어둔 빨랫감들이 살며시 떠올랐다.

“으앗, 생각해보니까, 어제 비 오지 않았어요?”

“응? 아, 왔었지?”

“빨래 널어둔 걸 깜빡하고 있었어요! 아!”

안즈는 급하게 밖으로 나가서 빨랫줄에 널린 빨랫감들을 보며 절망스런 표정을 지었다. 다시 빨래해야겠네, 한숨만 지으며 하나둘씩 걷었다.

그때.

불그스름한 얼룩이 묻은 하얀 수건을 본 건.

안즈는 하얀 수건을 보자마자 눈만 깜빡였다.

그 주 주말, 츠키나가와 안즈는 전철을 타고 천문관으로 향했다. 천문관으로 가는 게 그저 행복한지 츠키나가는 웃음을 감추지 못하고 잔뜩 미소 짓고 있었다. 그는 안즈가 미리 보여준 천문관의 지도를 보면서 여기도, 저기도 다 재밌겠다며 기대했다. 그 사이 안즈는 제가 빨랫감을 걷으며 본 붉은 얼룩—아마도 혈흔으로 추정되는—에 대해 고민했다. 안즈의 월경때문이라고 생각해보자면, 안즈는 그때마다 하얀 수건은 사용하지 않았다. 그럼 저 말고 다른 사람일텐데. 지금 제 집에 사는 건 안즈말고 누가 또 있겠는가. 제 옆에서 밝은 표정만 짓고 있는 츠키나가밖에 없다.

그런 고민을 계속 하다가 결국 천문관에 도착했다. 안즈는 여전히 밝게 웃는 츠키나가를 보며 어슴푸레 들었던 그의 통화 내용이 겹쳐진다고 생각했다. 어째선지는 모르겠지만, 너무나도 걱정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그때 한창 걱정스런 표정을 한 안즈의 눈 앞으로 손 하나가 휘휘 지나갔다. 안즈는 그런 손길에 놀라 흠칫했다. 츠키나가가 걱정스레 물었다.

“어디 아파?”

“아뇨, 생각할 게 좀 있어서….”

자신을 걱정스레 바라보는 츠키나가의 얼굴에 안즈는 괜한 생각은 접자고 생각했다. 그는 아픈 게 아니라면 다행이라고 말하며 첫번째 관부터 보자며 안즈의 손을 잡고 제 1관으로 향했다.

제 1관은 별자리에 대해 소개하고 있는 모양이다. 아, 참. 늦었지만 이 천문관의 구조에 대해 설명해보자면 1관, 2관, 3관 정도로 이루어져 있다. 1관은 별자리, 2관은 성운과 은하수, 행성과 항성에 대해서도 소개하고 있었다. 그리고 3관은 인공적인 화면이지만 누워서 별을 관측할 수도 있다. 만일 밤에 왔으면 실제 별도 관측할 수 있었겠지만, 그러면 항상 북적이는 게 이 천문관이었기에 그건 일찍이부터 포기했다. 인공적인 화면으로 만족하기로 했다.

1관에 들어서자 무수히 많은 별자리들이 벽에 붙어 있었다. 생일을 기준으로 정해지는 별자리들도 많았고, 제법 들어봤던 오리온 자리, 큰 곰 자리, 작은 곰 자리의 유래도 같이 적혀 있었다. 신화를 믿는 건 아니었지만 이런 별자리의 해석은 항상 즐겁게 지켜보고는 했다. 그건 츠키나가도 마찬가지인지 적힌 걸 그저 쭉 읽었다.

“큰 곰 자리, 작은 곰 자리, 너무 슬픈 이야기야.”

칼리스토였던가, 제우스의 아내인 헤라에게 미움을 사는 바람에 곰으로 변해버린 여인. 그런 곰으로 변한 칼리스토가 어느날 숲에서 청년으로 성장한 제 아들인 아르카스를 마주한다. 아르카스는 그 곰이 제 어미인지도 모른채 창을 겨누고, 그 모습을 본 제우스가 둘을 하늘로 끌어 올려 큰 곰 자리와 작은 곰 자리로 만들었다고 하지. 츠키나가는 그 이야기를 보자 가슴 아프다며 안타까운듯 말했다. 안즈는 그 신화를 들었던 때가 언제였는지 까마득하게 과거를 떠올렸다. 잘 기억나지 않아서 그저 다시 한번 신화를 읽었다. 츠키나가가 신화를 읽은 안즈에게 어떠냐고 물었고, 안즈는 안타까운 이야기라고만 생각했다.

“우주에서만 보는 것과는 달라! 뭔가 신기해. 분명 봤던 것들인데, 분명 아는 건데 이렇게 보니까 신기해.”

츠키나가가 외쳤다.

곧 2관에 들어섰다. 은하수의 사진도, 성운도 보였다. 푸르고 붉은 성운을 보고 무슨 생각이 들었던가, 그저 예쁘다는 생각이 들었다. 츠키나가는 성운을 보며 그저 웃었다. “멋진 성운으로 붙여 놓았구나, 멋진 걸.”이라며 감탄도 잊지 않았다. 태양도 있었고, 헷갈리기 쉽다는 제재를 걸며 ‘행성과 항성의 차이는 뭘까요?’라고 설명하고 있는 글도 있었다. 이번 관은 딱히 특별한 게 없었다. 아니, 안즈에게는 특별하겠지만은 새로운 설명도 없고 신화도 없는 원론적인 글들이 가득한 곳에서 츠키나가는 금세 흥미를 잃어버렸다. 그래서 츠키나가는 안즈를 더 많이 바라보았달까, 신기하게도 안즈는 그가 자신을 바라보는 지도 모르는채로 가만히 글만 읽고 있었다. 문득, 안즈와 츠키나가가 눈이 마주쳤을 때 안즈는 “저 말고 이런 거 봐요,”라며 다른 행성들을 가리켰다. 그러나 츠키나가는 웃으며 “나는 나만의 항성을 보고 있어.”라고 대꾸했다.

3관. 3관에 들어서자마자 수많은 누운 의자들이 보였다. 영화관의 리클라이너를 닮은 모습이라고 해야할지, 아무래도 천장을 봐야 관람할 수 있다보니 의자들을 전부 눕힌 모양이었다. 1관, 2관과는 아예 다른 모습에 츠키나가는 기대했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안즈는 츠키나가가 3관에서 제일 흥미를 잃을거라고 생각했다. 우주의 몇 분의 일인지, 가늠도 할 수 없을 만큼 아주 작은 부분을 오려내서 여기에 붙여놓았다. 우주를 돌아다니는 츠키나가에게 있어서 아주 지루한 광경이 될 거라고 안즈는 생각했다. 거의 매일을 그렇게 보는 걸텐데.

“3관에서 나가면 천문관은 이제 끝이에요.”

“우앗, 생각보다 금방 끝났네! 나는 조금 더 있을 줄 알았는데.”

“매일 보는 광경인데 재밌었어요?”

“나는 재밌었어, 별자리에 얽힌 인간의 신화를 보는 것도, 내가 보던 성운이 여기 붙어 있던 것도. 색다른 경험이랄까! 그러니까 재밌었어.”

둘은 의자에 누워서 아직 하얗기만 한 천장을 바라보았다. 츠키나가는 편안한 표정으로 누운채 안즈를 바라보았다.

“안즈는 어땠어?”

“저는 그럭저럭했어요. 들어본 내용도 있고, 처음 보는 내용도 있어서 신기하기도 하고 진부하기도 했어요.”

“그렇구나.”

츠키나가는 하늘을 그저 바라보았다. 아니, 하늘이 아니라 천장이랄까. 한껏 편안한 표정으로 누운 츠키나가의 표정에, 안즈는 저도 모르게 제법 안심한 표정을 지었다.

“내가 항해하는 항로에는,”

츠키나가 말했다. 안즈는 츠키나가를 바라보았다.

“분명 똑같은 길을 지날텐데 다른 무언가가 있어. 정해진 항로대로 항해하다가 우리는 가끔 깜짝깜짝 놀라. 분명 이 길에는 블랙홀이 없었을텐데, 블랙홀이 어느샌가 생겨버린 거야. 선체가 통째로 삼켜 먹어지려 할때야 겨우겨우 돌려서 살고 있지. 하지만 항상 무시무시한 블랙홀만 있는 건 아냐. 가끔은 이런 것도 보여.”

츠키나가는 제 브로치를 움켜 쥐었다가 피며 벌써 불이 꺼진 3관의 천장에다 브로치의 빛을 쏘았다. 곧 푸르스름한 빛이 천장에 문양을 만들어냈다. 마치 프로젝트 빔처럼 빛을 쏘았지만, 그 빛이 만들어내는 건 서류상의 내용같은 게 아니었다. 멋진 광경이었다. 검고 검은 우주에 푸른색의 고래들이 떠돌아다녔다.

“우주에도 고래가 있어요?”

“응? 원래 항해라는 건 바다의 개념이잖아. 없으라는 법은 없지. 혹시 몰라, 내일 신문 1면에 ‘우주의 고래, 그 모습 환상적…’이라고 기사가 실릴지도 몰라.”

츠키나가는 웃으면서 마저 말했다.

“있지, 안즈. 저런 광경을 보자 하면, 멋져. 정말 아름다워. 두 눈으로 직접 보면 정말 눈을 뗄 수 없어. 계속 봐야할 것 같아. 다시는 보지 못할 것 같은 광경이거든. 보기만 해도 감정이 벅차올라.”

“저런 광경이 눈 앞에 있으면 그럴 것 같아요.”

“그렇지? 그래서 내가 네게서 눈을 떼지 못하나봐.”

츠키나가는 부서질 듯 하면서도 아슬한 미소를 지으며 안즈를 바라보았다. 안즈는 그의 미소를 보고서 순간 흠칫했다. 츠키나가가 말했다.

“어쩌면 정해진 길인거야. 내가 비록 지구에 떨어져 길을 잃었을지라도 그게 내 정해진 길일지도 몰라. 그게 운명이었을지도 몰라. 하지만 말야, 정해진 항로를 항해하면서도 새로운 게 보인다고 했잖아. 그게 너야. 나에게 있어서 새로운 광경은 너였던 거야. 저 자유롭게 우주를 헤엄치는 고래들이 너란 말이야. 그래서 나는, 새로운 광경에 눈을 떼지 못하고 있지. 싱그럽도록 웃는 네 웃음 속에서 헤엄치고, 네 다정함에서 하루하루를 살아가. 하지만 이런 광경은 다시 만날 수 없을 것만 같아. 왜 사랑하는 것들은 이렇게 쉽게 부서질까, 좋아하는 것들은 이렇게 쉽게 사라질까.”

“저는 사라지지 않아요, 츠키나가 씨.”

“맞아, 너는 사라지지 않을거야.”

곧 불이 완전히 꺼지고, 탁, 하는 소리와 함께 천장에 빛이 비춰졌다. 우주의 한 조각을 도려내어 붙인 그 천장은, 분명 우주의 한 조각이고 그런 장면을 아주 많이 봐왔다는 걸 다 알면서도 환상을 말했다. 저를 환상으로 이끌어버렸다. 하얀 별들이 별사탕을 엎지른 것만 같이 규칙 없이 존재한다. 그런 별들을 보며 아찔하도록 아름답다고 생각할 뿐이지만.

“다만 내가 네 앞에서 사라질 뿐이야, 안즈.”

불이 꺼져 츠키나가의 표정이 보이지 않는다. 안즈가 볼 수 있는 건 하늘의 별들 뿐이었다. 하지만 츠키나가의 목소리가 떨려서, 안즈는 이내 별을 바라보지 않았다. 몸을 돌려 츠키나가를 바라보았다.

“비록 츠키나가 씨가 다시 배로 돌아가시더라도 저는 츠키나가 씨와 함께 한 두 달을 절대 잊지 않을 거예요, 절대 잊지 못할 거예요. 제 앞에서 존재가 사라지더라도 제 안에서는 살아있어요. 츠키나가 레오라는 사람이, 아주 환하고 밝은 사람이.”

어둠에 익숙해진 눈이 츠키나가의 얼굴을 제대로 바라보았다. 어라, 울고 있는 걸까. 안즈는 눈을 크게 뜨고 츠키나가를 바라보았다. 안즈를 바라본 녹빛 눈동자에서 눈물이 툭툭 떨여젔다.

“너와 헤어지고 싶지 않아, 너와 조금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싶어.”

그 말은 왠지, 안즈에게 하는 말이 아니라 츠키나가 저 자신에게 하는 말 같았다.

“그게, 저 우주를 보니까 너무 잘 생각나서. 벌써부터 너와 떨어질 날이 되면 어떡할까 싶어.”

“츠키나가 씨.”

츠키나가는 우주를 보면서 가슴이 찢어질듯이 아프게 웃었다. 그 슬픈 미소와 공존하던 그 우주는 너무나도 아름다워서, 안즈는 순간 할 말을 잃고 우주를 바라보았다.

“츠키나가 씨, 천장 봐요. 저게 작은 곰 자리와 큰 곰 자리래요.”

안즈는 한창 울적해진 분위기를 깨고자 츠키나가에게 말했다. 츠키나가는 천장을 보더니 웃었다. 작은 곰 자리와 큰 곰 자리가 하늘에서라도 잘 지내고 있는 것 같아, 츠키나가는 다행이라고 말했다.

“그러니까 지금은 기뻐해요, 같이. 츠키나가 씨와 별을 보고 싶었어요. 이 별은 언제 본 거고, 저 별은 언제 본 거고 설명하는 츠키나가 씨가 보고 싶어요.”

“응, 저 성운, 오랜만이다.”

츠키나가는 평소보다 텐션이 확 죽은 목소리로 하나하나 설명했다. 분명 기뻐보였지만, 어쩐지 슬퍼하는 게 보여서 안즈는 제 마음이 찢겨 나갈 것만 같았다.

츠키나가가 분명 그 말을 한 데는 이유가 있었다.

왜냐하면, 더 이상 그는 지구의 환경에서 버틸 수 없었다.

저 홀로 피를 삭이고, 저 홀로 죽어가고 있었다.

“츠키나가 씨, 츠키나가 씨!”

츠키나가의 배가 돌아오기 이 주 전. 츠키나가는 안즈의 집에서 점점 느려지는 걸음을 걷다가 이내 피를 토하고 쓰러졌다. 복도에 주저앉은 츠키나가에 안즈가 놀라 그의 이름을 외쳤다. 어느 순간보다 간절했다. 눈을 감은 츠키나가가 눈을 뜰 때까지, 안즈는 그의 어깨를 붙잡고 걱정스런 얼굴을 하고 있었다.

츠키나가를 겨우 눕히고 나자, 안즈는 안도의 한숨을 내쉰듯 했으나 절대 안심하지 못했다. 그래, 분명 그 신경질적인 목소리가 ‘네가 버티다가 한 순간 아프기 시작한다면 그건 지구에서 고칠 수 없어. 알잖아.’라고 했던 게 아직도 생생했다. 절대 여기서 고치지 못한다. 그는 다시 배로 돌아가야했다. 그의 동료가 있을, 그 곳으로.

츠키나가는 안즈의 도움으로 자리에 누웠다. 그리고선 눈을 감고 한 숨 돌리려 했으나 영 그럴 수 없었다. 저를 걱정스레 바라보는 안즈를 차마 바라보지 못했다. 안즈는 어떻게 해야할지 고민했다. 그 모든 게 얼굴에 드러났다. 어떻게 해야할지 걱정하는 안즈의 얼굴에 츠키나가의 심장은 아흔 갈래로 찢겨나가는 것만 같았다.

일어날 힘도, 안즈를 부를 힘도 없었다. 그저 누워서 모든 걸 바라보는 것만이 그에게 허용된 행동이었다. 그렇게 사흘을 보냈다. 사흘을 보내는 동안, 츠키나가는 제 속이 꼬이고 분질러지는 것만 같이 느꼈다. 피를 토했고 오장육부에 가시가 꽂히는 것만 같았다. 깨어있는 게 고통스러웠고, 그런 츠키나가의 곁에서 안즈는 더욱 고통스러워했다.

그러던 어느날이었을까.

“나나,”

안즈가 눈을 감은 츠키나가를 보고 제 고양이 나나를 불렀다. 나나는 안즈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츠키나가 씨의 제복을 담은 종이 가방을 어디다 숨겨 놓았어?”

나나는 알아듣기라도 한 건지 소파 밑으로 들어가 종이 가방 하나를 물고 안즈에게 건넸다. 안즈는 츠키나가의 제복이 든 종이 가방을 살폈다. 가지런히 접힌 그의 제복 위에, 가장 위에 그의 무전기가 놓여 있었다.

“레오 군? 하아, 진짜. 왜? 이 주 뒤면 지구에 도착해.”

“…저, 안녕하세요, 세나 씨, 맞죠?”

“……누구야?”

무전기 너머의 목소리가 물었다. 안즈는 덜덜 떨리는 손으로 무전기를 쥔 채 말했다.

“안즈라고 해요. 츠키나가 씨와 함께 살고 있는 사람이에요.”

“아, 안즈? 레오 군에게 얘기 많이 들었어. 그런데 레오 군도 아니고 네가 무슨 일이야?”

“세나 씨.”

세나는 무전기 너머의 사람의 목소리가 심하게 떨려와서 흠칫했다. 그 목소리는 곧 이어 말했다.

“어떻게 해야하나요, 츠키나가 씨께서, 츠키나가 씨께서…. 피를 토하고 쓰러지셨어요, 웬만한 방법을 전부 시도해봤는데, 계속, 계속….”

“알겠으니 진정해, 그런지 며칠 정도 지났어?”

“나흘 정도 됐어요.”

“…키를 돌릴게. 최대한 빨리 지구에 갈테니까, 그 동안만 부탁할게. 딱 이틀이야. 최대한 빨리 갈테니까, 무리하지 않게 해. 근데 괜찮겠어?”

세나는 그렇게 말하고 곧 다시 첨언했다.

“작별인사같은 건 없을 수도 있어. 그대로 정말 헤어진다는 거야.”

“괜찮아요, 정말로.”

“음, 그래.”

무전이 끊기고 안즈는 홀로 무전기를 안아든채 울었다. 츠키나가를 깨울까하는 마음에 소리내 울지도 못한채 홀로 숨죽인채 울었다.

그리고, 츠키나가는.

그걸 모두 듣고, 보고, 느끼고 있었기에.

심장이 찢겨나갈 것같은 느낌이 들었다.

이틀 후 새벽, 츠키나가는 오랜만에 제복을 입었다. 더 이상 이 옷으로 있을 수 없다. 안즈가 사줬던 옷을 정성스레 접어 소파 위에 올려 놓았다. 잠든 안즈를 보며 저 홀로 작별인사를 건넸다. 어제도 울다 잠든 걸까, 눈물 자국에 츠키나가는 마음이 아팠다. 하지만 더 있을 수 없었다. 문을 열고, 옥상으로 향했다.

“세나,”

공중에 배 한척이 둥둥 떠 있었다. 은빛 머리칼에 푸른 눈을 가진 남자 하나가 츠키나가를 빤히 바라보았다.

“빨리 떠나자, 레오 군.”

“…응.”

더 이상 안즈가 괴로워하는 걸 보고 싶지 않았다. 츠키나가는 아픈 마음을 정리하고 천천히 선체에 올랐다.

그때였을까.

탁, 탁, 탁.

“츠키나가 씨!”라고 누군가가 츠키나가를 힘껏 불렀다. 층계참에서 들리는 목소리였다.

그 목소리는 츠키나가가 익히 아는 목소리라서, 츠키나가가 고개를 돌리고 목소리가 들린 곳을 바라보았다. 안즈가 급하게 뛰어 올라온 듯 급한 숨을 한창 정돈시켰다.

“안즈,”

“레오 군!”

“잠시만, 세나!”

츠키나가는 급하게 선체에서 내려 안즈에게 다가갔다. 안즈가 츠키나가를 바라보았다. 우리가 처음 만났을 적에 입었던 옷. 가지런히 차려입은 그를 보자 그저 미소 짓더라도 울음이 새어 나올 것 같았다. 안즈는 이도저도 아닌 표정을 지은채 그에게 물었다.

“이제 이별인가요?”

츠키나가는 안즈를 바라보았다. 안즈는 울 것 같은 눈으로 그의 녹빛 눈을 바라보았다. 그 순간이었을까, “이제 이별이야,”라고 말하려던 입이 멈추고 무언가를 떠올려냈다. 극한의 상황까지 몰리면 이런 것까지 기억난다고 했던가, 츠키나가는 한때 이 문서를 읽고 “흥미로운 이론이네!”라고 말했던 걸 떠올렸다. 그가 안즈를 바라보고서는 고개를 좌우로 휘저었다. 그가 말했다.

“이별이 아냐, 안즈. 들어봐. 내가 항해할 때, 어느 행성에 닿았을 때가 있어. 그 행성에서 말야, 나는 그런 이론이 적힌 문서를 읽었어. 정신적인 이론이지만, 긴밀하게 연결된 사람과는 이별이라고 부르는 것을 행해도 다시 만나게 된다는 이론. 그런 이론을 봤어. 지구의 윤회사상과 비슷할 지도 모르지만 아냐. 윤회사상은 거듭하고 거듭해서 생을 반복하는 거지만 이 이론은 끝이 있어. 서로를 다시 만나는 게 이 이론의 엔딩이고 끝이야.”

츠키나가는 안즈를 끌어안았다. 안즈는 그를 밀치지 않고 그저 더 세게 안을 뿐이었다.

“네가 살고 있는 지구의 이별의 이론은 몰라. 하지만 나는 이 이론을 믿어. 비록 어느 행성이었는지 기억도 나지 않지만, 이 이론을 믿는 이유는 너와 내가 다시 만날 수 있는 이 별과 이별의 이론이기 때문이야. 이게 아니라면 우리는 다시 만날 수 없을 지도 몰라. 내가 이 이론을 믿는 이유는 너와 내가 다시 조우할 수 있는 이유를 말하는 이론이기 때문이야.”

안즈의 몸이 슬픔에 동요되어 들썩였다. 그럴수록 츠키나가는 안즈를 더욱 끌어 안았다.

“그러니까, 나는 이 이론이 성립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거야. 우리는 꼭 다시 만날 거야, 먼 훗날일지라도, 꼭, 꼭.”

“우리가 다시 만날 수 있을까요?”

“우리는 다시 만날 거야. 나는 너를 만나러 올 거야. 네가 말했던 봄에 너를 찾아갈게. 꽃이 피면 너를 찾아갈게. 절대 잊지 않을 거야. 아니, 절대 못 잊지. 그러니까, 그래. 그때 봐. 잠시 헤어질 뿐이야. 절대 끝나는 게 아니야.”

“꼭 찾아와주세요, 꼭….”

츠키나가는 안즈를 끌어안던 손을 놓았다. 툭, 그렇게 놓여버린 서로의 사이에 남는 것은 진득한 이별이란 물감의 한 발자취 뿐이었다.

“꼭 찾아와주세요, 츠키나가 씨….”

좋아한다는 희미한 말조차 적지 못한 채, 항해선은 곧 잔상도 남기지 않은 채 사라졌다.

#L.

그래, 이별의 이론. 이 별의 이론이자 이별의 이론. 나는 처음으로 내가 정처없이 떠도는 항해사임에 감사했다. 너를 다시 한번 만날 수 있다는 걸 증명하고 저술하는 그 이론을 떠올렸을 때 얼마나 기뻤는지. 그 감정의 원인은 시공을 넘어서 너를 사랑한 나의 초월적 사랑이었다.

꼭 찾아가고 싶다. 네가 말했던 봄에 너를 찾아가서 너와 꽃을 보고 싶다. 너를 닮은 꽃을 만난다면, 한 송이라도 꺾을 수 있다면, 네게 선물하고 싶다. 그제서야 사랑한다고 말하고 싶다.

그러니 나는 포기하지 않는다. 그저 너와 함께 남은 인생을 살아갈 수 있다면, 그것만이 나의 목표가 되어버려서, 그게 나의 소망이 되어버려서. 언젠가부터 너를 좋아하기 시작했다. 곧 그게 내 인생의 목표가 될 줄은 어떻게 알았는지.

그러니 조금 더, 조금 더.

네게 다가갈 수 있도록.

나는 최선을 다할 것을.

#A.

이상하지 않은가? 겨울에 비가 오는 건 있는 일이라고 넘기지만 여름에 눈이 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들 한다. 밤에도 해는 떠있지만 낮에 달이 뜬다고 하면 그건 역설이라고 한다. 참 신기하고 이상하다. 항상 상반되는 건 아니라고 한다.

당신이 내게 온 것도 그런 걸까. 겨울에 비가 오고 태양이 밤에도 존재한다고 말하는 것처럼. 아주 당연한 일이었을까. 하지만 그와 상반되게 나는 당신에게 닿지 못한다. 아마도 그건, 그 일은 여름에 눈이 오고 낮에도 달이 형세를 드러낸다고 말하는 것과 같은 걸까. 일어날 수 없는 일이라는 걸까.

그럼 나는 어떻게 해야할까, 나는 지금 여름에 살면서 눈을 보고 싶어하고, 낮에 살면서 달을 보고 싶어한다. 기다리는 수밖에 없겠지. 낮이라면 밤을 기다려 달을 만나고, 여름이라면 겨울을 기다려 눈을 만나야 한다. 그리고 그런 건 믿음에서 나오는 것이다. 겨울에 눈이 온다는 확신이 없으면, 밤에 달이 뜬다는 확신이 없으면 기다릴 수 없다.

하지만 나는 당신을 기다릴 것이다. 그건 당신과 내가 다시 조우하리라 믿기 때문이다. 그게, 당신이 말한 이 별과 이별의 이론에 기반하지 않더라도 내가 당신을 기다릴 수 있는 이유다.

그리고 내가 당신을 믿을 수 있는 이유는, 당신과 함께한 모든 시간이 한마음 한뜻으로 증명했듯이.

내가 당신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저기, 여기 회사에 안즈라는 직원이 있어?”

주황 색깔 머리에 초록 색 눈을 가진 어느 남자가 어느 직원에게 물었다. 그 직원는 당황하다가 “아, 안즈 씨요?”라며 뭔가를 떠올렸다.

“안즈 씨! 누가 부르는데?”

안즈는 서류를 정리하다가 동료의 목소리를 듣고 밖으로 나섰다. 누군가가 코트 하나를 차려입고 안즈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안즈는 그를 보자마자 눈이 잔뜩 커졌다.

“츠키나가 씨!”

“안즈!”

둘은 서로 와락 안았다. 그저 껴안고는 웃었다.

“아직 날이 추워요.”

안즈는 그런 핀잔을 늘어놓으며 오 년 전, 자신이 츠키나가에게 둘러주었던 목도리를 다시 그에게 둘러 주었다. 붉은 색 뜨개 목도리가 이내 그의 목에 둘러졌다.

서로를 바라보던 그 눈은 얼마나 아름답던가. 그 눈을 생각하자면 그들의 뒷편에 피었던 매화만큼이나, 매화보다도 훨 아름답다고 느끼곤 한다. 그런 그들을 바라보자면, 사랑이 존재한다면 헤쳐나가지 못할 고난은 없다고 느꼈다. 글쎄, 이별이란 어떤 걸까. 이별이란 어떻게 보자면 조우의 다른 말은 아니련지. 조심스레 고민만 피워본다.

‘그래, 이게 내가 믿는 이 별과 이별의 이론이야.’

츠키나가의 뒤로 만개한 매화가 햇살에 반짝였다.


안녕하세요, 여러분! 정말 오랜만에 뵙습니다. 그간 무탈하게 잘 지내셨는지 모르겠습니다.

이 글은…!! 작년 여름에 원고를 마감해서 올해 다시 꺼내게 된 글입니다. 그래서 지금은 뜯어 고치고 싶은 부분이 정말 많지만… 당시 샤를을 무한재생 돌리며 쓰던 그때의 감성도 있을 것 같아 이렇게 남겨봅니다.

우주를 항해하는 항해사 레오와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고 있던 안즈의 이상하고 어리둥절한 이야기! 과연 재미있게 보셨을지 모르겠습니다. 우주를 항해한다는 표현이 뭔가 헷갈리게 만들기도 합니다만…!!!!! 즐겁고 재미있게 읽으셨다면 그것만으로 행복합니다.

어느새 이 장르에 심장이 뛰지 않게 돼서 회지 계획을 무작정 무산시켜 무거운 마음 뿐입니다. 급하게 뭐라도 올리자 싶어 찾아보다 올리게 된 글이라 쥐구멍에 숨고 싶은 기분도 들어요. 퇴고라도 천천히 해 보겠습니다……!!! 오늘도 찾아와주시고 읽어주신 모든 독자분들께 감사합니다. 후기 하나도 두서 없이 적어버렸네요! 이만 줄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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