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나안즈] 기간 한정 연정
살짝 감았던 눈을 뜨자 내려앉은 눈꺼풀이 보였다. 시선을 내리면 작은 손이 졸업증서가 든 통을 쥐고 있는 것도 보인다. 몸에 딱 맞는 교복, 한 줌이나 될까 싶은 어깨, 추운 공기 때문에 열이 오른 건지 붉어진 목덜미.
조용한 복도 너머에서 발소리가 들려오자 히나타는 천천히 입술을 떼고 고개를 들었다. 책상을 짚으며 지탱하던 팔을 내리자 발소리는 교실 방향으로 오는 대신 계단을 내려가 사라졌다. 감은 얼굴을 보다가, 한쪽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겨주고 나면 안즈는 그제서야 눈을 떴다. 칭찬받은 고양이 같다. 그대로 한참 물끄러미 히나타를 올려다보던 안즈가 입을 열었다.
“히나타 군. 앞으로 이런 건 하지 않는 편이 좋겠어.”
“그게 키스 직후에 하는 말이야?”
아무도 없는 어두운 교실의 구석자리, 아직 다 가져가지 못한 짐을 챙기던 안즈를 발견한 건 히나타였다. 아이돌과의 학생이 프로듀서과 교실이 있는 건물까지 찾아올 일은 없겠지만 히나타는 목적을 달성한 사람처럼 안즈의 자리로 다가와, 의자 대신 옆자리 책상에 걸터앉았다. 흘끔 뒷자리를 보면 안즈가 졸업식에서 받은 수많은 꽃다발이 산처럼 쌓여있었다.
“꽃다발은 아까 봤을 때보다 더 늘었네~.”
“프로듀서과 후배들이 선물해줘서….”
저 중에 자신과 유우타 군이 준 꽃다발도 있겠지, 히나타가 키득키득 웃었다. 한창 소란스럽던 졸업식도 끝나고 모두 돌아간 학교는 조용하기만 해서 평소의 학교와는 다른 세계 같았다. 지금, 이 순간 두 사람이 있는 이 교실만을 잘라서 따로 떼어둔 느낌. 두 사람은 애써 의식하지 않으려는 것처럼 평소와 같은 대화를 주고받았다. “들고 가는 것도 힘들겠네, 안즈 씨. 내가 도와줄까?” “부모님이 차로 데리러 오기로 하셨으니 괜찮을 거야.” 실제로 그럴 수 있었는지는 의문이지만. 짐을 모두 챙기고 빈 교실을 둘러보던 안즈가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이 교실도 이제 마지막이구나.”
그리고 히나타가 앉아있던 책상에서 삐걱거리는 소리가 들리고, 히나타가 앉아있는 안즈에게 고개를 숙인 건 바로 그 순간이었다. 입술과 입술이 닿았다. 충동이 아니라, 처음부터 이러기 위해 찾아왔던 것처럼 모든 것이 자연스러웠다. 숨을 참고 있는 건지 안즈의 어깨가 작게 떨렸지만 밀어내거나 하지는 않았다. 눈을 감은 얼굴도 평온하다. 그저 닿을 뿐인 키스가 그 순간을 잘라낸 것처럼 잠시 이어졌다. 정말 그럴 수 있으면 좋겠지만. 어디까지나 희망 사항이다. 소음이 들리기 시작하면, 히나타는 그것을 가차 없이 끊어냈다.
그런데 그 직후에 하는 소리가 저거라니.
“당신도 거절하지 않은 주제에.”
탓하는 말투를 하면 안즈는 곤란한 듯이 웃을 뿐이다. 히나타는 결국 참지 못하고 하얀 볼을 꼬집은 채로 잡아당겼다.
손에 닿은 볼이 난방도 돌지 않는 교실에 있던 것치고는 따듯하다. 붉어진 볼을 문지르는 안즈를 보고 있으면 교복 차림의 그녀가 새삼 생경한 느낌이 들었다. 녹색 넥타이는 아직도 어색하고 머리카락은 처음 만났을 때보다 조금 길었나. 최근엔 ES에서 마주치는 일이 더 많기는 했지만, 정말 졸업해버리는 거구나. 앞으로 교복 차림의 이 사람을 더는 볼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안즈가 졸업한다고 해서 다시는 마주치지 못하는 게 아니다. 아마 내일도 언제나처럼 ES에서 만나겠지. 그리고 언제나처럼 자신에게 웃어주고 자신을 빛내기 위해서 헌신을 하고,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것을 보는 눈으로 자신을 본다. 히나타가 아이돌인 이상, 그리고 안즈가 프로듀서인 이상 그것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아이돌인 건 ‘2wink’지 ‘아오이 히나타’가 아니다.
그런 불안정한 순애에 얄팍한 박애…. 조건부의 기간 한정 사랑. 이가 썩어버릴 정도로 달기만 한 위태로운 연정. 지금이라면 알고 있다. 이 사람은 그런 것밖에 가지고 있지 않아서 우리에게 그런 것밖에는 줄 수 없는 것이다.
이대로 학생인 ‘안즈’가 사라져버리면 프로듀서인 ‘안즈’ 밖에 남지 않아버리는 걸까?
문득 이 사람이 사무칠 정도로 미워지는 한편 동정이 불쑥 고개를 든다. 손을 뻗어 꼬집힌 탓에 붉어진 볼을 쓰다듬었다. 아이돌은 사랑받는 것이 일이다. 그렇다면 프로듀서는? ‘안즈’에게 보내는 애정은 이 사람에게 제대로 닿고 있어?
“아무도 없는 교실에서 이러고 있으니까 나쁜 짓이라도 하는 것 같네.”
“졸업식이 끝나고 아직 돌아가지 않고 있으니 나쁜 짓이라면 나쁜 짓일지도.”
“뭐야, 어차피 안즈 씨도 이따가 다른 프로듀서과 애들을 도와주러 갈 생각이었지?”
다디단 설탕으로 만든 시간. 누군가 억지로 부수지 않아도 저절로 녹아서 사라질 순간.
“안즈 씨.”
“응.”
“좋아해.”
“응.”
“사랑하고 있어….”
“…응, 고마워. 히나타 군.”
자신도 그렇다고 돌려주지 않는 점이 이 사람의 가장 심한 부분이다. 최악의 사람. 차라리 싫어할 수 있다면 좋았을 텐데. 나를 싫어하면 좋았을 텐데. 그 사랑으로 살아가면서도 이런 마음이 드는 건 분명히 이 사람의 특별한 것이 되고 싶기 때문이리라.
“안즈 씨, 다시 키스할 테니까 이번엔 제대로 거절해야 해.”
알겠지…? 착한 아이를 타이르는 것처럼 속삭이며 안즈의 볼을 감싼 히나타가 다시 한번 고개를 숙였다. 이 순간은 다신 돌아오지 않겠지.
21년도에 포타에 올렸던 연성 재업입니다
댓글 0
추천 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