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일레하] 질질 끌리는 옷
남레하트x여바일 레하바일
"그 옆에 있는 옷은 안 입는 거야?"
의자에 반대로 걸터앉은 채 턱을 괸 레하트가 눈짓으로 한쪽에 걸려있는 드레스를 가리켰다. 슬쩍 봐도 화려한 색의 얇고 부드러운 재질의 천이 몇 겹이나 겹쳐 하늘하늘한 드레스였다. 요컨대, 바일이 절대 입지 않을 것 같은 옷이다. 그 증거로 레하트의 시선을 따라 고개를 돌린 바일의 미간이 단숨에 구겨졌다. 필사적이다 싶을 정도로 싫어하는 모습에 레하트가 바람 빠지는 소리를 내며 웃어버렸다.
"절대 싫어. 그런 질질 끌리는 옷, 양위 의식 때 입은 거면 충분해."
"그거랑은 좀 다르지…."
"치렁치렁하고."
"사랑스러운데."
"밟고 넘어질 것 같아."
"그럼 내가 잡아줄게."
불만스러운 시선이 이번에는 레하트를 향했다. 바일이 종종 뻔뻔하다고도 평하는 레하트의 말재주였지만 레하트 자신은 아네키우스에게 맹세코 부끄러운 일을 한 적이 없었다. 정말 뻔뻔한 사람은 이런 법이다. 불만스러운 시선에도 레하트가 마주 웃어버리자 바일은 흘겨보는 대신 한숨을 푹 쉬었다. 무도회 준비를 다시 한다고 해도 그리 촉박한 시간은 아니었다.
"애초에 저런…, 유리리에나 입을 법한 드레스는 어디서 골라온 거야."
"진짜 유리리에를 불러올까?"
"제발 부탁이니까 그것만은 봐줘."
농담이야. 다시 웃어버린 레하트가 으쌰, 하는 소리를 내며 의자에서 일어나 드레스 근처로 다가갔다. 확실히 유리리에라면 좀 더 밝은 색을 고르지 않았을까. 기껏 바일에게 어울릴 색을 골라 레하트와 의상 담당들이 이마를 맞대 만든 드레스니 그런 오해가 사실이라면 터무니없었다. 어울릴 텐데, 중얼거리는 목소리가 아쉽게 들렸던 모양인지 거울을 들여다보고 있던 바일이 슬쩍 레하트를 곁눈질했다.
"막상 입어보면 많이 불편하지 않을지도 모르고."
이번엔 좀 더 분명하게 말하자 바일이 미심쩍은 표정을 지으면서도 머뭇머뭇 드레스 근처로 다가온다. 토록을 앞둔 타낫세 같네. 그런 실없는 생각이나 하면서 옷감을 만지작거리는 바일을 잠시 기다렸다. 이런 반응의 바일은 대체로 조금만 더 밀어붙이면 쉽게 넘어오곤 했다.
"…확실히…. 보기보다 치렁치렁하진 않네."
"그렇지?"
신중하게 드레스를 파헤치듯 살펴보던 바일이 다시 한숨을 쉬었다. 저렇게까지 기대하는 눈으로 보면 고집도 한풀 꺾이고 마는 법이다. 어쨌든 어울릴 거란 말만은 사실일 테니까.
"…옷 갈아입고 올게."
"응! 기다릴게!"
결국 드레스를 집어 든 바일이 시종과 함께 안쪽 방으로 들어간다. 연신 웃는 얼굴로 바일을 기다리던 레하트는 방에서 나온 그녀를 보면 세상에서 가장 기쁘다는 표정을 지었다. 치렁치렁한 옷은 어떻게 해도 좋아지지 않았지만 저 표정을 볼 수 있으니 뭐, 이 정도면 꽤 싼값이 아니었나 생각해 버리고 마는 것이다.
너무 귀여움..훌쩍훌쩍훌쩍
19년도에 쓴 글을 좀 다듬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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