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계일학 02
유성대 나이조작 이능력 어쩌구 AU
딱히 희망차지 않음
그냥… 이것저것 주의
* 당연한 캐붕 / 퇴고 안 함
* 늘 감사합니다.
“좋은 아침임다!”
“좋은 아침이오!”
“……좋은 아침.”
밤의 소동이 거짓말이었다는 것처럼 아침이 밝았다. 이른 시간의 햇살이 어질러진 거실을 비추면, 어제의 난리로 이리저리 흩어진 잡동사니가 먼지를 두른 채 굴러다니는 게 보였다. 그 외에는 별다를 게 없었다. 다 찢어져 푹 꺼진 카우치, 한 쪽 다리가 부러진 식탁, 썩은 흔들의자, 미도리 관리 하에 올망졸망 열매를 맺은 방울토마토와 수명을 다하기 일보 직전인 테토라의 샌드백……. 결과적으론 모든 게 그대로인데 왜 이렇게 막막한 건지 모르겠슴다. 발치를 툭 치고 굴러가는 나사를 내려다보던 테토라가 푸하, 터뜨리듯 한숨을 내쉬었다.
사실, 그럴 수 밖에 없었다.
“좋은 아침이구나!”
“좋은 「아침」이에요~”
때마침 반대쪽 복도에서부터 테토라의 심란함을 배가하는 원인들이 등장했다. 손을 흔들며 아침인사를 하는 면면이 바보같을 정도로 밝아서, 테토라는 저도 모르게 미간을 구겼다.
“잘, 주무셨나봄다?”
“음! 오랜만의 침대여서 말이지, 세상 모르고 잠들어버렸다!”
밤에 그래놓고 편안하게 잠이 잘 오긴 했느냐, 뭐 그런 나름의 빈정거림이었건만 치아키의 태양과도 같은 웃음은 흐트러짐이 없다. 도리어 질문을 던진 테토라의 미간만 더 깊게 패여버렸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 쫓아내고 싶은데, 상황이 상황인지라……. 어젯밤만 생각하면 테토라는 마음이 다 선득해졌다.
테토라가 우중충한 낯으로 허공을 바라보는 동안, 시노부는 해맑은 얼굴을 빛내며 식탁 위의 잡동사니를 와르르 치워냈다. 더러운 나무 식탁 위로 꼬질꼬질한 탁상보가 깔리고, 금세 온갖 통조림이며 말린 과일 같은 게 나름 푸짐하게 들어찼다.
“소생이 차린 건 아니지만, 맛있게 먹어주시오!”
“음, 고맙다! 괜찮다면 이 꽁치 통조림은 카나타에게 줘도 되겠나?”
“뭐, 그러시던가요……. 어차피 그냥 되는대로 가져온 거고.”
“와아, 고마워요~”
아니, 왜 그렇게 화기애애한 건데?
분위기가 뭔 피크닉이라도 온 것만 같았다. 시노부도 그렇고, 나름 믿고 있었던 미도리까지 아무렇지도 않게 둘러앉아 아침식사 하는 광경을 보고 있자니 불안감 회로가 오작동하는 기분까지 들었다. 테토라가 소리 없이 한숨을 내쉬고 있자, 마침 육포를 뜯던 시노부가 총총 다가와 테토라의 손을 살며시 그러쥐었다.
“테토라 군.”
“시노부 군…….”
“괜찮을 것이오. 그러니 우선 배를 채우는 게 어떻겠소?”
테토라 군의 심정, 모르는 것이 아니외다. 조그맣게 속삭이는 시노부의 목소리를 듣던 테토라는 이쪽을 가만히 바라보는 미도리의 눈과 마주쳤다. 씹던 시금치를 삼킨 미도리가 슬 턱짓한다. 걱정 그만하고 와서 먹으라는 무언의 재촉이다.
테토라는 어쩔 수 없다는 듯 웃어버렸다.
“무슨 일 생기면 미도리 군 책임임다.”
“아니, 내가 왜……?”
셋의 이야기가 아주 안 들리는 것도 아닐텐데, 테토라가 의자에 앉을 때까지도 치아키와 카나타는 가타부타 말 얹는 법이 없었다. 오히려 그것보다 방금 카나타가 뜯은 꽁치의 유통기간에 대해 진지하게 토론하고 있는 듯 했다. 테토라로서는 그 점까지 합해 의심이 사그라들질 않았지만― 아무래도 지금은 이렇게, 평화를 가장하는 게 더 좋을 터다.
일이 이렇게 된 이유는 사실 간단했다.
테토라의 머리 한 켠에서, 어제의 일이 고장난 비디오처럼 재생되기 시작했다.
갑작스레 침입한 2인조는 너무도 자연스럽게 ‘우리 집’ 문간을 넘었다. 문제의 지갑 발언에 벙찐 테토라가 가위를 놓친 탓이었다. 그 쪽에서는 싸우려는 게 아니라 그저 ‘지갑을 돌려받으러 왔다’고 했지만, 이 늦은 시간에, 이 후미진 거리를, 아무 것도 없는 지갑을 목적으로 왔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됐다. 적어도 테토라와 미도리는 그렇게 생각했다.
치아키는 아무렇지도 않게 피 맺힌 목덜미를 대충 쓸곤 한껏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뒤에 서있던 물색 남자의 눈이 가느다래졌지만, 치아키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가위까지 방구석으로 툭 밀어 치워버렸다. 테토라와 미도리의 눈초리가 날카로워졌다.
“내게는 소중한 지갑이어서 말이다. 꼭 돌려줬으면 좋겠는데.”
“그…… 지갑 말임까. 안에 웬 시뻘건 가면남이 들어있던?”
“그거다!!! 그리고, 그냥 가면남이 아니라 ‘가면전대 메테오레인저’의 25주년 기념 한정으로 나온 골든―”
“네에, 네에. 「알겠」으니까요~”
어억. 뒤에 있던 물색 남자가 앞으로 나서며 치아키의 얼굴을 치웠다. 과하게 반짝이던 치아키와는 다른 고요한 낯빛에, 대치하고 있던 테토라와 미도리는 그들도 모르는 사이 마른 침을 삼켰다.
때마침 기울어진 달빛이 남자의 얼굴을 적시며 새초롬한 그림자를 만들어냈다. 물결을 그대로 굳혀놓은 것처럼, 눈 앞의 남자는 미형이었다. 신비롭고 아름다운 생김새는 시가지 가게의 티비 속에서나 보던 ‘캐피톨의 능력자들’ 같기도 했다. 그는 틈이 많은 듯 하면서도 틈 하나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그 이상으로, 무언가, 그들을 이루는 기저에서부터 수압에 눌리는 것마냥―
그렇게 생각한 순간, 물색 남자가 배시시 미소지었다.
“저는 카나타에요. 우웅……, 지갑도 지갑이지만요, 저희가 오늘 먹은 게 「하나도」 없거든요~”
“아니, 지갑도 중요하다 카나타!”
“치아키는「바보」에요. 저는 먹을 게 더 「중요」하다구요.”
침입자들이 그들끼리의 짧은 만담을 나누는 동안, 테토라와 미도리는 재빠르게 시선을 교환했다. 그러니까 먹은 것도 없고 가진 것도 없는데, 별 것도 아닌 지갑을 빌미로 난입했다 이거지. 어린 애가 달랑 둘 뿐이어서 상냥하게 굴면 뜯어먹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한 걸지도 모른다. 기실 테토라는 어디서부터 뒤를 밟혔는지 감조차 잡히지 않았으나, 이렇게 된 이상 그냥 빠르게 해치우고 다른 구역으로 도망치는 게 나을 것 같았다. 날이 갈수록 경비도 날카로워지는 느낌이고.
늘 하던 대로 테토라가 먼저 시선을 끌면, 그 사이 미도리가 저들의 발을 묶어서…….
“그러니까 말이죠.”
“또 뭠까.”
“「방 안」에 누워있는 아이, 제가 봐줄테니 어떻게 「안」 될까요?”
“……아?”
방 안의 아이?
방 안에 누가 있지? 애초에 우리는 둘이서만 행동하는데…….
거기까지 생각한 테토라는 문득, 강제로 심해에서부터 끌려나온 기분에 사로잡혔다. 공포와도 닮은 깨달음이 폐를 억세게 거머쥐고 사라진다. 순식간에 숨이 가득 들어차서, 테토라는 물론이고 미도리까지 어쩔 줄 모르고 숨을 몰아쉬어야 했다. 미도리의 영향을 받은 식물들이 충격에 사로잡혀 몸을 떨었다. 테, 테토라 군. 이거 설마……. 미도리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복도를 뛰어넘은 테토라가 안방 문을 거세게 열어젖혔다. 그새 흘린 식은땀이 악 문 턱선을 타고 흘렀다. 그래, 그랬다.
그제서야 정신이 제대로 들었다.
낡은 침대 구석, 신체강화 능력자인 테토라가 온 신경을 집중해야 겨우 알아차릴 수 있을 만큼 희미한 존재가 홀로 웅크리고 있었다. 테토라와 미도리는 너나할 것 없이 뛰어들어 시노부의 마른 손목을 붙잡았다.
“시노부 군, 정신 차리십셔!”
“아직 겨울이 오지도 않았는데……!”
분명 붙잡고 있는데도 사라져버릴 것 같아 손에 힘이 들어갔다. 둘의 억센 손아귀에서 땀에 젖은 시노부의 몸은 자꾸만 미끄러졌다. 그래, 한 순간 둘은 시노부를 완벽하게 ‘잊었다.’ 그대로 둘이서 도망쳤어도 잊어버렸다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을 것이다.
홀로 악몽을 헤메는 것 같은 얼굴색에, 불덩이같은 몸. 이건, 명백한―
“「폭주」네요.”
“으음, 상태가 많이 안 좋아보이구나.”
최근 무리한 적이 있었나? 어느새 지척까지 다가온 치아키의 손을, 테토라가 거세게 쳐냈다.
“건드리지 마십셔! 지갑은 오면서 버렸슴다. 여기 없어여, 그러니까―”
“아니, 도울 수 있다면 돕고 싶다.”
돕게 해다오. 치아키의 눈동자가 어둠 속에서 빛났다. 뭘 돕겠다는 거야. 단호하리만치 굳센 의지로 내밀어진 손을 바라보고 있자니, 테토라가 다 아연해지고 말았다. 왜 갑자기 나타나서 돕겠다는 거야, 당신이 뭔데.
그간 셋이서 행동해오며 시노부의 컨디션 변화에는 익숙해졌다고 생각했다. 첫 탈출 때부터 우리는 쭉 함께였으니 만일 시노부가 폭주한다해도 찾을 수 있을 것이라는 오만함이 있었다. 그야, 쭉 함께 해왔으니까. 같은 능력자니까, 우리라면 당연히 시노부를 혼자 두지 않을 것이라고…….
안일했어. 테토라는 물론이고, 미도리까지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한시가 급한 가운데, 잠깐의 대치상태가 이어졌다.
먼저 입을 연 건 의외로 미도리였다.
“……도와줄 수, 있어요?”
“미도리 군!”
“나도 이 사람들을 믿고 싶은 건 아냐, 그치만.”
우리끼리 해결할 수 있는 일이 아니잖아……. 그렇게 중얼거리는 미도리의 목소리는 눅눅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짙은 후회와 만일의 상황을 대비하지 못한 스스로에 대한 실망이 켜켜이 쌓여 미도리를 짓누르는 듯 했다.
그 사이에도 시노부의 상태는 점점 나빠져만 갔다. 생명이 붙잡을 수 있는 거라면, 시노부는 이젠 그것을 붙들 힘조차 사그라들고 있는 것 같았다.
시시각각 변하는 시노부의 낯빛을 들여다보던 테토라가 결국 옆으로 비켜섰다.
“……부탁, 드림다. 제발.”
그러나, 이상한 짓을 할 기미가 보이는 즉시 무력 행사를 하겠다는 듯 치아키와 카나타를 바라보는 눈동자가 투지로 번뜩였다. 카나타는 그런 테토라와, 무언가를 꾹 눌러 참는 듯한 미도리를 향해 옅게 웃어주고는 시노부의 침대맡에 걸터앉았다. 부탁한다, 카나타. 나지막한 치아키의 목소리에 카나타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시노부의 드러난 이마 위에 그의 흰 손이 살며시 닿았다.
“괜찮을 거예요.” 카나타가 말했다.
“대신 「값」 은 빼놓지 않고 받을테니까요~”
곧 방 안에 찬연한 푸른 빛이 가득 흘러 넘치기 시작했다.
그 때 카나타가 정확히 뭘 했는지, 테토라와 미도리는 모른다. 어찌됐던 효과만은 확실했다. 오늘 아침, 전보다 더 뽀얗고 개운한 얼굴로 일어난 시노부는 숟가락을 야무지게 쥐고서 옥수수캔 하나를 전부 비워냈다. 안 그래도 소식하는 애가 아프기까지 하니 걱정이 이만저만 아니었는데 다행인 건가, 싶기도 했지만……. 솔직하게, 테토라는 그 점까지 합해서 여전히 둘이 의심스러웠다.
아니, 애초에 폭주를 가라앉히는 능력 자체를 들어본 적이 없다고. 만약 다른 결의 능력이라면 그것이 결국 해로울지 이로울지 어떻게 알겠는가. 갑자기 상태가 더 안 좋아진다면? 우리가 또…… 시노부 군을 잊는다면,
“와아, 정말이오?!”
“후하하, 그렇고 말고!”
“헤에.”
화기애애한 이야기소리가 테토라의 상념을 깨뜨렸다. 시간은 벌써 정오 즈음이었다. 방향을 바꾼 햇빛이 먼지 쌓인 창틀에 비스듬히 내려앉았다. 평소라면 각자 자기 할 일을 하느라 조용할 시간이었지만 오늘만큼은 달랐다. 식탁 위에 올라갔던 꽤 많은 음식을 전부 비운 두 불청객과 동료들은, 테토라가 주변을 살펴보러 나간 동안 소파 주변에 옹기종기 앉아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었다. 주로 떠드는 건 치아키였다. 그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던 테토라는 물고 있던 사탕을 이로 으깨며 천천히 다가갔다.
“무슨 이야기 중임까.”
“아, 테토라 군! 수고했소.”
“그냥 이것저것. 치아키 씨랑 카나타 씨는 바깥에서 지낸 적이 있대서…….”
“바깥이여?”
테토라는 눈을 깜빡였다. 이 도시 바깥을 말하는 건가. 하지만 그 정도라면 시노부와, 그 미도리까지 흥미를 보일 이야기는 아닐텐데. 설마.
“음! 구역의 바깥에서 왔다!”
“우후후, 테토라도 「흥미」 있나요?”
바깥엔 「신기」한 게 많다구요. 바다도 있고, 물고기 친구들이랑, 귀여운 소라게~ 카나타의 매끄러운 목소리가 마치 노래처럼 이어졌다. 카나타가 특유의 느릿느릿하고도 유려한 어조로 푸른 바다와 소금바람, 절벽을 깎아내리는 파도의 굉장함이나 별하늘의 아름다움에 대해 이야기할 때마다 시노부와 미도리의 눈이 점차 밝아졌다.
테토라의 눈에도 흥미가 깃들었다. 정신 차리니 앞으로 상체를 숙이고 있길래 누가 볼 새라 재빨리 허리를 쭉 필 정도였다. 괜히 헛기침을 몇 번 하고서, 테토라가 입을 열었다.
“그런데…… 바깥에서 살면 위험하지 않슴까.”
“응?”
“그야, 문제의 괴생물체도 바깥에서 살잖아여.”
아~ 치아키가 긍정하듯 고개를 끄덕인다. 테토라는 노골적으로 김 샌 듯한 표정을 지어버렸다.
시노부와 미도리, 테토라가 둘의 이야기에 과할 정도로 흥미를 가진 이유는 간단했다.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캐피톨에서는 가상-어쩌구니 뭐니가 유행하기도 한다는데, 시궁창 출신인 셋에게는 당연히 어림도 없는 이야기였다. 바라면 안되는 이야기이기도 했다.
그나마 아는 거라곤 겨우 주워 읽는 책들에서 얻은 짧막한 지식 뿐이었다. 바다는 푸르다, 들꽃은 억세다, 옥수수는 옥수수 나무에서 열린다, 조약돌은 둥글다, 여름과 겨울의 밤하늘은 다르다…….
그리고 바다에 사는 괴생물체는 거대하다, 땅을 기는 괴생물체는 얍삽하다, 색이 화려한 괴생물체는 독이 있다, 이빨이 세 갈래인 괴생물체는 사람 찢기를 좋아한다, 무리 지어 다니는 괴생물체는 리더를 먼저 죽여야 한다…… 그런 것들.
그런데, 카나타를 한 번 바라본 치아키가 해맑은 웃음만 터뜨리는 게 아닌가.
“뭐, 그렇기야 하다만.”
“하다만……?”
“나쁘지 않다, 의외로.”
“엑.”
그게 다인가요……. 옆에서 슬쩍 귀기울이던 미도리까지 죽은 눈이 되어 치아키를 바라보았다. 치아키는 그런 미도리와 테토라, 옆에서 카나타에게 쓰담 받던 시노부까지 차례차례 눈에 담았다.
“정말이다. 이기적이고 무책임한 말로 들릴 수도 있지만, 바깥에는― 밑바닥 능력자에게 주어지는 족쇄가 없으니까…….”
“…….”
“스스로가 생각하는 것보다 대단한 일들을 할 수 있고, 적어도 나는 그랬다.”
‘나는 그랬다’는 말이 왜 유독 무겁게 들리는 것일까. 테토라만 느낀 건 아니었는지, 찰나의 정적이 우리 집 위로 내려앉았다. 그새 생각에 잠긴 치아키의 시선이 우묵하게 가라앉자 옆에서 말갛게 웃고만 있던 카나타가 손을 들었다.
“여러분은 「바깥」에 갈 수 있다면 뭘 하고 싶나요?”
“저희가, 바깥에요……?”
“네에. 만약에, 말이에요.”
열심히 눈을 굴리던 시노부가 반짝 소리쳤다.
“소, 소생은 개구리를 실제로 보고 싶소이다!”
“저는, 그냥…… 바깥엔 무슨 식물들이 있는지 궁금하다고 해야할까요.”
“에에, 다들 「바다」의 생물에는 관심이 「없」는 건가요…….”
그렇게, 침묵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지고 순식간에 집 안은 다시금 소란스러워졌다. 시노부가 ‘개구리는 바다에서는 살지 않는 것이오?’ 라고 질문을 던진 것이 화근이 되어 이야기의 주제는 곧장 그쪽으로 넘어갔다. 바다에 사는 온갖 생물이 (사실 자세히 알고 있는 건 카나타 뿐이어서, 셋은 그냥 신기하다는 듯 신난 카나타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튀어나오는 가운데, 가만히 피식대기만 하는 테토라를 향해 치아키가 넌지시 물었다.
“너는, 나가면 하고 싶은 게 있나?”
“저여? 저는…… 글쎄여.”
생각 안 해봤슴다. 나간다고 확정된 것도 아닌데. 그보다는 내일 어떻게 할 지가 더 중요함다. 테토라의 건조한 어조에 치아키는 어설픈 투로 답했다. 그것도 맞지. 그리고는 둘 다 아무 말이 없었다.
“그나저나,”
“응?”
“목의 상처가 사라졌네여. 원래 회복이 빠름까?”
“아……. 응, 그런 편이다.”
뭐, 그리 깊은 상처도 아니었고 말이다! 와하하, 커다랗게 웃음 터뜨리는 치아키를 바라보다가, 테토라는 대충 고개를 돌려버렸다. 그런 능력인가보지. 그보다는 지금 한창 물을 타는 카나타의 바다 이야기가 훨씬 궁금했기 때문이다. 바깥은 참 넓구나, 그렇구나……. 하는, 무의식적으로 설레고 만 마음과 함께.
그러나, 테토라는 이 때 조금 더 치아키를 캐봤어야 했다. 아마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테토라는 그렇게 했을 것이다.
그렇게 어영부영 치아키와 카나타가 우리 집에 눌러 앉은지 2개월 가량 되었을 때.
셋이 둘의 바깥 이야기에 그들도 모르는 사이 꿈이란 걸 가지게 될 즈음에, 그 일이 터졌다.
“……테토라 군.”
“뭠까? 여기까지 불러내고서.”
안에서는 못 할 이야기임까? 테토라는 아무도 없는 거리를 훑어보다가, 눈 앞의 시노부를 바라보았다. 달빛도 없는 늦은 밤, 가로등조차 없는 버려진 골목엔 빛 하나 들지 않았으나 테토라에게는 시노부의 모습이 똑똑히 보였다. 시노부의 망설이는 눈, 하얗게 질린 뺨, 그럼에도 불구하고 알리려는 결의가 담긴 시선과,
손에 들린 두 장의 낡은 수배서까지.
테토라의 눈이 서서히 커졌다.
“치아키 공과 카나타 공에 대한 것이오.”
익히 아는 두 얼굴이 그 안에서 웃고 있었다.
ONLY DEAD 라고 표시된 카나타와, ONLY ALIVE 라고 표시된 치아키가.
“……자세히 말해보십셔.”
댓글 0
추천 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