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계일학 03
유성대 나이조작 이능력 어쩌구 AU
딱히 희망차지 않음
그냥… 이것저것 주의
* 주의 : 우리 아기들을 향한 폭력 묘사
밤은 계속해서 짙어지고, 시노부와 테토라는 깊어지는 어둠을 직격으로 맞으며 우두커니 서있었다. 사위가 고요하게 가라앉아 시노부가 들고 있는 수배서의 글자도 제대로 읽을 수 없을 정도였으나 두 사람에겐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테토라는 관자놀이를 꾹꾹 눌렀다. 머리가 아파 제대로 생각이 정리되지 않았다.
“확실한 거 맞져?”
“그렇소이다. 직접 가서 보기도 했고……. 여기 수배서도 가져오지 않았소.”
“위조의 가능성은,”
“차라리 그랬으면 좋겠소만…….”
하아. 둘 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한숨을 내쉬었다. 근 몇 달 같이 지내던 사람의 수배서라니 배신감이 들 법도 하건만, 이 상황이 되어서도 딱히 걱정되지 않는 게 문제라면 문제였다. 그들이 그간 보여준 모습을 생각하면 무리도 아니다.
게다가.
“그래도 현상수배지는 꽤 많이 봤다고 생각하는데여, ‘ONLY ALIVE’. 이건 생전 처음 봄다. 시노부 군은 어때여?”
“확실히. 오히려 카나타 공 쪽의 ’ONLY DEAD’가 좀 더 친숙하오……. 그치만, 이런 판정이 내려질 정도의 흉악범이라고 하기엔.”
“하루종일 연기할 수 있다면 흉악범이 맞지 않겠슴까.”
“테토라 군, 정말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건…….”
“아니라고 믿고 싶지만…….”
그 시점에서 둘은 입을 다물었다. 굳이 말을 잇지 않아도 그들은 서로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잘 알았다. 밤의 서늘한 공기가 주변을 휘감자 시노부가 부르르 어깨를 떨었다. 테토라는 우선 시노부의 손을 잡아당겼다.
“우선 돌아가여. 여기 더 있어봤자 아무 것도 해결되지 않슴다.”
“……물어볼, 생각이오?”
“안 물어볼 수도 없지 않슴까.”
결국 테토라가 지키고 싶은 것은 이 세상에 딱 둘이었기 때문에.
도망치는 삶이라는 게 다 그렇긴 하나, 테토라는 이런 상황을 맞닥뜨리기 싫어 지금껏 인간관계를 늘리려는 시도를 하지 않았다. 그렇게 해야 살았고, 그렇게 해서 살아남았다. 무거운 마음이야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레 무감해질 것이라 믿었다.
그럼에도 시노부는 당장이라도 울 것처럼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시노부 군,”
테토라가 한숨을 삼키고 입을 연 순간,
콰아앙!!! 가까이서 터진 폭발소리가 허공을 찢어발겼다. 둘은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번쩍 고개를 들었다. 신경이 곤두서고, 과도하게 긴장한 몸에 힘이 들어간다. 폭발의 여진에 휘청이는 찰나, 신체 강화 능력자 특유의 날카로운 직감이 머리채를 휘어잡는다. 삐이, 하는 이명이 마치 경고음 같았다.
설마.
테토라보다 먼저 정신을 차린 시노부가 잡았던 손을 뿌리치고 골목을 달려나갔다. 테토라 군, 빨리! 뒤이어 테토라가 바닥을 박차며 시노부의 뒤를 따랐다.
황급히 낡은 건물 모서리를 돌았을 때, 그들의 눈에 가장 먼저 보인 것은.
끊임 없이 솟아오르는 시커먼 연기와 화마에 집어삼켜진 ‘우리 집’이었다.
미도리는 세 명 중 유일하게 ‘아르바이트’ 라는 것을 해본 적이 있는 아이였다. 스스로는 저주 받았다고 생각하는 화사한 외형 탓이다. 녹음을 짓이긴 듯한 갈색 머리, 흐린 하늘을 닮은 눈동자와 투명한 미모는 타인의 첫인상을 완벽하게 조작해 그의 출신에 대한 집중을 자연스레 흩어놓았다. 테토라처럼 의욕이 넘치는 것도, 시노부처럼 친화력이 높은 것도 아닌 미도리가 할 수 있는 건 많지 않았는데도 그랬다.
과거, ‘우리 집’으로 오기 전 그들이 머물렀던 곳은 이름 모를 부자의 별장이었다. 그런 것 치고 관리가 전혀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안 되어 있었지만…… 보안 시스템이 진작 내려가 있지 않았더라면 셋은 꼼짝없이 길바닥 신세였을테니 오히려 다행이었다.
하여간에 오랜만에 욕실이며 침대까지 제대로 갖춰진 집이다. 덕분에 평소보다 좀 더 멀끔해진 미도리는 당시 꽤 괜찮은 아르바이트를 구했었다. 카페 겸 바의 단기 아르바이트로, 점장은 참 말이 많은 사람이었다.
그래서 미도리는 별다른 말 없이 밤하늘을 감상하던 카나타가 문득 ‘가야한다’고 했을 때, 직후 여러 개의 발소리가 어지럽게 겹치며 철계단을 오르는 것을 느꼈을 때, 치아키가 ‘미안하다’며 갑자기 그를 붙들었을 때,
이윽고 터져나가듯 열린 철문에서부터― 열 몇 명의 집행관이 들이닥쳤을 때.
“잘 들어라. 최대한 겁에 질린 척 해야해. 내가 정말로 널 찌르진 않겠지만 저들을 속여넘길 정도는 되어야 한다. 그러니까…… 미안하다, 미도리.”
카나타의 눈동자가 스산하게 가라앉는 것을 보았을 때. 치아키가 과도로 그의 목 언저리를 살짝 그었을 때.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에서 짙은 죄스러움이 묻어나는 것을 느꼈을 때.
언젠가, 점장이 떠들던 현상수배범에 대한 이야기를 문득 떠올렸다.
‘야, 잘 들어둬. 너는 존나 맹해가지고 걱정돼서 말해주는 거야. 바깥에 돌아다니는 미친 능력자들 중에, 아~ 물론 집행관이랑 맞다이 뜨기엔 모자란 새끼들 뿐이겠지만. 하여튼 지금까지도 안 잡힌 애들이 있단다. 아냐? 2인조라는데, 꽤 유명하거든. 근데 중요한 건 그게 아니고…….’
‘그 새끼들, 수배지 첫 발행일이 캐피톨 벽돌 처음 쌓아올린 년도라는 거야. 몇 백년 전이냐, 그게? 씨이발, 나는 소름이 다 끼친다. 그냥 걸어다니는 괴물 새끼들 아냐? 아니 진짜로, 괴생물체랑 다른 게 뭐냐고. 한 번 걸리면 쥐도 새도 모르게 처리하고 지들 갈 길 간다는데 목적이 뭔지도 모른대.’
“어, 당신들…….”
“쉿.”
‘하여간에 하수구 물 먹은 능력자 새끼들 중 제대로 된 놈을 못 봤어요.’
“어떻게 알고 「찾아」 왔대요? 「집착」하는 사람은 인기 없다고, 치아키가 그랬는데~”
“카나타, 그 쯤 해둬라. 이쪽엔 인질이 있으니까.”
허튼 수작 부릴 생각은 버리는 게 좋을 거야. 치아키가 거꾸로 든 과도의 날이, 그의 목소리만큼이나 날카롭게 벼려져 미도리의 목덜미를 짓누른다. 그와 알고 지낸 짧은 시간동안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목소리였다. 미도리는 꿀꺽, 침을 삼켰다. 고장난 시계의 초침소리가 팽팽하게 당겨진 공기를 더욱 잡아당긴다. 카나타가 공격 직전처럼 자세를 낮추자, 집 안을 잠식한 어둠 위로 전투 직전의 긴장이 소리없이 고였다.
그러나 상황의 긴박함은 온전히 셋만의 것이었는지, 그들을 둘러싼 집행관 무리 중 한 명이 별안간 우습다는 듯 입을 열었다.
“아서라, 그게 어딜 봐서 인질이냐? 완전 정신 나갔다고 들었는데 진짜였구만. 이 구획에 남아있는 쓰레기들은 어차피 주거지 등록도 안되어 있을 것 아냐. 빈민 꼬맹이 따위, 몇 명이 나가 뒤지던 알 바 아니라는 건 잘 알텐데.”
치아키가 작게 숨을 들이켰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그 말에는 미도리 또한 내심 동의하는 바였다. 저들에게 유효한 인질을 구하려면 적어도 캐피톨 안쪽으로는 들어가는 게 성공확률이 높으리라. 같은 하층민이어도 어느 도시 출신이냐에 따라 인간 가치가 천차만별로 달라지는 게 지금 세상 아닌가.
그나마 다행인 점은, 저들이 아직까지는 미도리를 ‘일반인’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캐피톨 소속의 특수경찰은 바깥의 능력자를 포획하는 임무만을 수행하는 집단으로, 그렇듯 '집행관'으로 불렸다. 그런 자들이, 방금 미도리를 그저 '빈민 꼬맹이'라고 지칭했다. 집행 리스트에 미도리의 이름은 올라가 있지 않다는 뜻이다.
미도리는 재빠르게 머리를 굴렸다. 그렇다면 저들은 온전히 치아키와 카나타만을 노리고 이 밤중에, 이 곳까지 쳐들어왔다는 말이 된다. 모니터링 자체가 침입 직전 시작된 것은 아닐테니……, 어디에서부터 꼬리를 밟혔을까. 테토라 군과 시노부 군은 이 사실을 알고 있을까? 일단 무사하기는 하겠지? 같이 나갔으니 아마 그럴 거다. 그리고…….
이걸 파고들기 위해, 치아키는 되도 않는 연극을 시작한 걸까.
어찌됐든 좋은 신호다, 이대로만 간다면.
그리하여 미도리는 긴장으로 덜덜 떨리는 손 끝을 그냥 내버려두었다. 상황이 받쳐주는 데까지 있는 힘껏 ‘겁에 질린 빈민 꼬맹이’를 연기할 요량이었다. 같이 지내며 터득한 사실이지만, 치아키가 ‘그럴 생각이 없다’고 한다면 정말 없는 거였다.
살 수 있다면 어떻게 해서든 살아야했다.
그래서.
미도리는 그에게 걸어보기로 했다. 개인적 심문은 그 다음이다.
그 사이, 집행관의 말에 반박도 못하고 굳어버린 치아키의 앞을 카나타가 슬쩍 막아섰다. 꼭 중재라도 할 것 같은 모양새였다.
“네에, 그래도 말이에요~ 「연기」 정도는 해주면 안되나요? 맨날 「처음」처럼 놀라는 저희 쪽 멍청이도 「생각」해주시라구요~”
“카, 카나타.”
철컥. 한차례 만담이 오가려는 것을 차가운 금속성의 장전음 여럿이 끊어낸다. 능력자 몰이용 총이다. 미도리같은 시궁창 출신에게 겨눠지기에는 아까울 정도로 값비싼 병기였다. 아니나다를까, 열 개의 붉은 점이 치아키를 지나 카나타의 몸 위, 급소를 따라 점점이 찍혔다. 미도리는 흠칫 놀랐으나, 당사자인 카나타는 익숙하다는 듯 한숨만 내쉬었다.
“안 통한다는 걸 「모르는」 것도 아닐텐데 말이죠.”
“모르는 건 너다, 흉악범. 여기 있는 전원이 능력자라는 걸 잊지 마라.”
이번에야말로. 총구만큼이나 쏠린 시선들이 탐욕으로 번뜩였다. 그건 존재의 말소를 늘 목전에 두고 사는 미도리, 테토라, 시노부의 욕망과는 결이 달랐다. 출세, 명예, 재산. 혹은 사람들의 칭송을 향한 욕망이다. 생존과 내일이 보장되어 있는 사람들만이 가질 수 있는 저열함.
카나타의 고운 미간에 설핏 금이 갔다.
“후웅, 그래요.”
두고 보면 알겠죠. 카나타가 무심하게 손을 앞으로 뻗었다. 아무렇게나 뻗은 손가락에 얽힌 조준경이 홀린 듯 움직임을 따라간다. 마치 카나타의 손아귀에 이 격앙된 순간의 방아쇠가 걸린 것만 같았다.
정점에 도달한 순간.
――!!!
먼저 움직인 것은 집행관 쪽이었다. 휘두른 팔의 궤도를 따라 불꽃이 튀자, 특수 처리가 된 총알이 능력으로 발동된 불꽃을 입고 그들을 향해 빗발쳤다. 카나타는 곧바로 손을 내리그어 장막을 펼쳤다. 투명한 방울을 뚫지 못한 탄피가 나무 바닥에 우레처럼 쏟아져도 카나타의 표정은 바뀌지 않았다. 오히려, 한 걸음 물러서있던 치아키의 얼굴이 크게 일렁였다.
빈 탄환에서부터 흘러나온 불씨가 집 안을 계속해서 달궈대고, 그렇게 열이 오르는 건 순식간이었다. 이대로 두다가는.
“카나타!!!”
“네에?”
“장소를 옮기자. 이래서야 온 집안이 폭탄이 된 거나 마찬가지야!”
카나타가 고개를 돌린 순간,
한 번 더 불꽃이 튀었다.
동시에, 우리 집이 터져나가듯 폭발했다.
발치의 들꽃이 여리게 떨렸다. 시노부는 그것이 바람 따위가 아니라, 미도리의 능력의 잔향이라는 것을 쉽사리 눈치챘다. 늦은 밤인데도 불구하고 온 사위가 밝았다. 폭발의 불꽃이 그들의 보금자리를 살라먹고도 모자라 가뜩이나 좁은 하늘까지 덮어버린 탓이다. 이 정도의 소란이라면 분명 무시하지 못하리라. 증원이 더 오기 전에, 미도리를 데리고 떠나야 했다.
“미도리 군!”
미도리는 능력으로 만들어진 덤불에 감싸인 채 널부러져 있었다. 목의 상처를 제외하면 크게 다친 곳은 없어보이는 게 천만다행이었다. 시노부는 재빨리 미도리에게로 달려가 팔을 붙들었다. 무슨 일이오, 이게 다! 울분 섞인 목소리에도 미도리는 가쁜 기침만 토해낼 뿐이다. 뒤이어 도착한 테토라가 미도리를 들처업었다. 으윽, 작은 신음에 테토라가 왈칵, 성질을 내려는 순간이었다.
커다란 손이 돌연 튀어나와 테토라를 붙들었다. 우악스러운 손아귀는 쉽게도 둘을 바닥에 메쳐버렸다. 퍼억, 뼈와 바닥이 부딪히는 소리가 둔탁했다. 너무 아파 소리라도 지를 뻔 한 것을 기어코 참아낸 테토라는, 그 찰나 시노부를 반대쪽으로 밀쳤다. 테토라 군, 하는 목소리 위로 단단한 구두굽 소리가 가까워지더니.
"이게 뭐야."
삐딱하게 선 집행관이 아무렇게나 쥔 총을 미도리에게 들이댔다. 폭발에 말려든 건 미도리 뿐만이 아니었는지, 재수없는 제복이 죄 타버린 꼬라지였다.
"니들, 능력자냐?"
"……."
저 만치 있는 시노부의 낯빛이 하얗게 질리는 게 보였다. 테토라가 아무 말도 않고 미도리를 감싸는 걸 본 집행관은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비식거렸다. 가히 여유로운 낯짝이다.
"존나 약삭빠른 새끼네, 이거. 하마터면 그냥 풀어줄 뻔 했잖아. 별 같잖은 연기나 하고 말이야."
꼴에 몰려다니기까지. 검은 총구 끝이 색색대는 미도리의 이마를 꾹꾹 누른다. 머리 위로 떨어지는 비웃음에도 아랑곳않던 테토라는, 총신이 미도리를 후려갈기려는 것처럼 휘둘러지자 먼저 그것을 막아냈다. 퍼억, 하는 소리는 아까와 별반 다를 바 없는 둔탁함이었는데도 시린 안광엔 흔들림 하나 없었다.
오히려 속내를 감추지 못한 건 집행관 쪽이었다.
허. 헛웃음을 흘린 그는, 갑자기 방향을 틀어 테토라의 머리를 내리쳤다. 작게 숨 들이키는 소리가 들렸다. 날카로운 총열에 걸린 이마가 길게 찢어져 피가 눈가를 덮는데도, 테토라는 고개 숙이는 법이 없었다. 문득 테토라의 어깨를 감싸는 손길이 느껴졌다. 시노부였다.
하나의 덩어리처럼 뭉친 세 아이를 내려다보던 집행관이 입을 열었다.
“그동안 얼마나 이러면서 살았냐?”
“…….”
“얼마나 도망쳤냐고, 쥐새끼처럼.”
“……자, 잘못한 것도 없는데 잡으려고 발악하는 당신들만 아니었으면,”
“잘못? 지금 잘못이라고 했어?”
여전히 건물은 불타오르고 있었다. 자욱한 연기를 뚫고, 그의 뒤에서 몇몇 인영이 모습을 드러냈다. 같이 폭발에 휘말렸던 집행관들이 돌아온 것이다. 껄렁한 자세로 셋을 둘러싼 어른들은 그들의 시선의 위치 때문인지 아득하도록 커다랗게만 느껴졌다. 마치, 캐피톨과 구역들을 감싸고 그들을 걸러내는 벽처럼.
“니들 잘못은 태어난 것 그 자체야.”
그러면 제깍제깍 뒤지기라도 해야하는데 죽지도 않고 도망이나 쳐대니, 원. 자기들 일이 더 많이지지 않느냐며 한탄하는 걸, 테토라는 더는 듣고 있을 수 없었다. 아스팔트를 뭉갤 것처럼 손등 위로 힘줄이 돋았다. 그동안 켜켜이 축적된 울분의 형상화였다. 그럼에도 집행관은 크게 웃어젖힐 뿐이다. 그들에게 셋은 그냥, 별 거 아니어서.
“그런다고 뭐가 달라질 줄 아나본데.”
“……달라지지 않아도.”
“뭐?”
“달라지지 않아도, 몇 대 정도는 갈겨줄 수 있슴다.”
절 얕보지 마십셔. 말마따나 쥐새끼라 무는 법밖에 못 배웠으니까. 나지막한 목소리와 상반되는 형형한 안광이 불의 색을 입고 번뜩인다. 집행관 무리는 흠칫, 한 발짝 물러섰다가, 스스로 물러섰다는 걸 깨닫고 굉장한 치욕에 젖은 얼굴을 했다.
저러한 분노에는 보통 정당성이 필요하지 않았다. 그런 건 서로 간의 저울추가 맞을 때나 좀 들고 올만한 개념으로, 저들은 아마 얼마 안 있어 이, 뭣도 모르는 꼬맹이를 짓밟으려 할 터다.
그래서 테토라는, 그 틈에 시노부와 미도리를 밀어내며 빠르게 속삭였다.
“타이밍 봐서 도망치십셔.”
“테, 테토라 군은.”
“지금 여기서 쟤들이랑 놀아줄 만한 사람이 저뿐이잖슴까.”
그 둘, 치아키와 카나타는 어떻게 됐는지 모르겠지만……. 작게 혀를 찬 테토라는 마지막으로 둘을 눈에 담았다. 그 쯤 되니, 그치지 않고 흐른 피 때문에 친구들의 얼굴도 잘 보이지 않았다. 어쩌면 잘된 일이라고 테토라는 문득 생각했다.
와중에도 바깥으로 떠미는 손길은 가차없었다.
“어서여!”
“하지만, 테토라 군!”
“어떻게 테토라 군만 두고 가겠소!”
“아오, 진짜! 걍 가라니까여!”
어느 쪽도 물러서지 않고 아웅다웅하고 있을 때였다.
“잠까아아아아아안―!!!”
우렁찬 목소리가 그들을 멈춰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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