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계일학

군계일학 04

유성대 이능력 어쩌고 AU

캐붕과 날조 주의

아무튼 주의

퇴고 안 함.


“타이밍 봐서 도망치십셔.”

“테, 테토라 군은.”

“지금 여기서 쟤들이랑 놀아줄 만한 사람이 저뿐이잖슴까.”

그 둘, 치아키와 카나타는 어떻게 됐는지 모르겠지만……. 작게 혀를 찬 테토라는 마지막으로 둘을 눈에 담았다. 그 쯤 되니, 그치지 않고 흐른 피 때문에 친구들의 얼굴도 잘 보이지 않았다. 어쩌면 잘된 일이라고 테토라는 문득 생각했다. 

와중에도 바깥으로 떠미는 손길은 가차없었다. 

“어서여!”

“하지만, 테토라 군!”

“어떻게 테토라 군만 두고 가겠소!”

“아오, 진짜! 걍 가라니까여!”

어느 쪽도 물러서지 않고 아웅다웅하고 있을 때였다. 


“잠까아아아아아안―!!!”


우렁찬 목소리가 그들을 멈춰세웠다.

듣는 사람의 주의를 집중시키는 목소리. 

치아키였다. 잔해를 뚫고 달려온 건지 숨을 몰아쉬고 있는 치아키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채기 하나 없었다. 평소처럼 단단한 눈동자, 잔뜩 끌어올려진 입꼬리. 굳은 얼굴 위로 입혀진 결연함이 한 밤 중의 태양처럼 반짝인다. 

그러나 그를 목격한 이들은 적군, 아군 할 것 없이 똑같은 경악으로 굳었다.

불을 등지고 반짝이는 게 하나가 아니었기 때문에. 

“다, 당신. 지금 뭐하는 검까……?”

미도리를 위협하던 과도는 그새 치아키의 손에 들려있었다. 군데군데 검댕이 묻은 날붙이는 여전히 날카로웠다. 다룰 줄 아는 사람의 손이면 충분히 흉기로 변할 수 있을 만큼. 그런 걸로 스스로의 목을 똑바로 겨눈 채로도 치아키는 담대한 웃음을 거두지 않았다. 첫 만남에서 정확히 테토라가 겨눴던 자리에 그 때와 똑같은 가느다란 금이 가는 게 보였다. 그 광경을 목격한 모두가 말을 잃은 가운데, 이 자리에서 유일하게 침착한 사람의 영문 모를 사과가 이어졌다. 아하하, 미안하다. 

“일이 이렇게 될 줄은 몰랐는데…… 그나저나 이번엔 준비를 잘 한 모양이야. 카나타는 불에 한없이 약해지니 말이다. 당장 힘을 빌려 달라고 하는 건 무리겠지.”

“아무리 그래도,”

“수배서를 봤지 않나.”

그럴 거라고 생각했는데, 아닌가? 나지막한 목소리에 미도리는 영문을 모르고, 테토라와 시노부만 입을 다물었다. 원하는 답을 얻은 치아키는 별 것 아니라는 듯 덧붙였다. 그거면 됐다. 너희들 잘못이 아냐. 한차례 웃음을 머금었던 얼굴이 옹송그리고 있던 셋을 넘어 당황과 공포로 물든 집행관 무리를 똑바로 바라본다. 그의 붉은 눈동자는 여전히, 압도적으로 생기로웠다. 상황과 맞지 않게. 

“집행관. 셋을 풀어주지 않으면……, 나는 이후의 일 따위 팽개치고 이 자리에서, 이 칼이 얼마나 날카로운지 직접 시험해볼 거다.”

“미친 새끼가…….”

“이럴 때는 수배 조건이 꽤 기껍게 느껴지기도 하고.”

카나타가 알면 또 뭐라 하겠구나. 싱겁게 뱉어진 말은 금세 사그라들었다. 치아키는 마음을 정했고, 그는 보통 한 번 정하면 바꾸는 일이 없었기 때문에. 잠시 치아키의 시선이 셋에게 닿았다 떨어졌다. 무언가를 예감한 테토라가 눈을 크게 떴다. 

“그냥 가라고는 하지 않는다. 교환이야. 저 셋 대신, 내가 잡히마.” 

“뭐라고?”

“뭐라고여?!”

음, 이렇게 보여도 싸우는 데에는 영 소질이 없어서 말이지. 치아키는 별 것 아니라는 듯 뒷머리를 긁적였지만, 오히려 그런 태도가 모두의 말을 잃게 만들었다. 대신 잡힌다는 게 무슨 뜻인가. 집행관에게 끌려간 모든 밑바닥 능력자들의 끝은 다 비슷비슷했다. 사실 어떻게 됐는지 알 길도 없다. 그냥 그렇게 끝났으니까. 그런데 거기에서부터 지금껏 도망쳐다녔으면서, 그 긴 세월을 잡히지 않았으면서 하필 이 타이밍에 스스로 잡히겠다고. 

단지 우리를 살리기 위해.

어림도 없다고 생각했다. 멍청하고 비이성적이고, 이해할 수 없고. 또…… 셋이라면 절대 내리지 않을 결정이기 때문에 더더욱 그랬다. 지금껏 집행관을 피해, 세상을 피해 도망쳤던 건 치아키와 카나타 뿐만이 아니었다. 미도리와 테토라, 시노부도 마찬가지였다. 사실 그들과 같은 밑바닥 능력자들은 대부분 그랬다. 살기 위해서는 무엇이든 했고, 죽여야 한다면 죽였다. 실제로 셋이 살기 위해 치아키와 카나타를 저버려야 한다면 그렇게 했을 것이다. 

그렇게 살아왔고, 그렇게 살아오는 것밖에 허락되지 않았기 때문에. 

그런데 고작 우리를 살리기 위해 일부러 잡힌다고? 

셋 중 가장 아는 게 없는 미도리조차 이를 악물었다. 시노부는 입을 다물지도 못하는 상태라, 테토라가 또다시 입을 열어야 했다. 나온 목소리가 용암처럼 들끓었다. 

“지금 장난하자는,”

“아니, 우리는 환영이야.” 

테토라의 울분을 손쉽게 잘라낸 집행관이 삐딱하게 섰다. 그들은 애초부터 셋을 노린 게 아니었다는 것처럼 비켜나있었다. 비열한 눈매가 조롱을 담고 접히는 걸, 셋은 빤히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어느샌가 꽉 쥔 주먹, 피가 번진 손톱이 손바닥을 파고 들었다. 

“잔챙이 셋보다야 거물 하나가 낫지. 정상도 아닌 것 같은 새끼를 살려오라는 명령은 잘 모르겠지만 말야.”

“음……. 하하.”

어차피 저 셋은 풀어줘도, 뭐…… 저렇게 살다 뒤지거나 다시 잡히거나 둘 중 하나 아니겠어? 그러면 차라리―

집행관의 총구가 치아키를 향한다. 조준경의 레이저는 꼭 치아키의 목을 타고 흐르는 빨간 색이었다. 그들이 셋에게서 멀어지고서야 비로소, 치아키는 과도를 내려놓고 두 손을 들었다. 명백한 항복의 표시였다. 와중에도 치아키는 멀리 떨어진 셋을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었다. 테토라는 주먹을 풀었다가, 허벅지에 힘을 줬다가, 이윽고 온 몸에서 힘을 뺐다. 옆에서 시노부가 울음 삼키는 소리가 자그맣게 들렸다. 

치아키는 구속 당해 끌려가는 순간까지 셋에게 말하기를 멈추지 않았다. 

움직이지 말고, 카나타를 잘 부탁한다고. 

몇 분 뒤, 도시의 경찰이 화재 구역을 둘러쌌을 때.

거기엔 점점이 흩뿌려진  핏자국 말고는 아무 것도 존재하지 않았다. 



카나타는 눈을 떴다. 하얗게 내리쬐는 햇살, 우거진 초목. 버려진 폐차장을 가득 채운 금속 비린내가 카나타의 콧잔등을 찌푸리게 만들었다. 파아란 하늘을 보자마자 카나타는 무언가를 직감하고 말았다. 일이 아주 잘못 되었다고. 느릿느릿 몸을 일으키니 옆얼굴에 닿는 시선이 느껴졌다. 테토라였다. 

“……일어났슴까.”

“치아키는요?”

먼저 묻는 게 그검까. 허탈한 목소리에서 앞뒤 상황을 해석해낸 카나타의 표정은 고저 없이 잔잔하기만 했다. 그렇군요. 그렇게 답한 뒤로 침묵이 소리 없이 내려앉았다. 숨소리조차 가로막히는, 두꺼운 침묵이.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것처럼 하늘은 높고 맑았다. 간간히 흐르는 구름 사이로 햇살은 눈이 부셨고, 그대로 깨진 유리창을 투과해 제 기능을 잃어버린 차 안을 적당히 따스하게 밝혀주었다. 길을 알아볼 수도 없을 정도로 얽힌 숲 안쪽에서부터 낭랑한 새소리가 울려퍼지다 곧 흩어졌다. 카나타는 손 끝에서 느껴지는 먼지의 도톰한 감촉에 살풋 미간을 찌푸렸다. 

몇 십년도 더 된  폐차장은 그대로 방치된지 너무나도 오래 되어서 야생동물조차 얼씬 거리지 않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넷의 피난처가 되어줄 수 있었다. 그나마 멀쩡해보이는 승합차를 찾아낸 셋은 우선 카나타를 눕히고…… (카나타는 단 한 군데도 다치지 않았다. 기이할 정도로.) 그대로 아침이 될 때까지 저마다의 생각에 갇혀 아무런 말도 나누지 않았다. 

사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간밤, 치아키가 보여준 헌신… 아니, 그걸 헌신이라 할 수 있을까? 그건 차라리 미친 짓이었다. 자기 목숨을 땅바닥에 버리는 일이었다. 고작 반 년 같이 살았다는 이유 하나로 그렇게까지, 우리를. 타인을 살리기 위해서. 그간 도망쳤던 시간과 곁의 파트너까지 미련 없이 내버리고. 

하지만 또 그렇기에 확신할 수밖에 없는 것이 있었다. 셋은 그런 삶이 멍청하고, 비이성적이고, 이해할 수 없고, 또…….

하염없이 눈부시다고 생각하고 말았던 것이다. 

숙여진 아이들의 정수리를 바라보던 카나타가, 우웅~ 하며 기지개를 쭉 폈다. 그 몸짓에는 어떠한 절망의 잔재도 엿보이지 않아서 테토라는 슬슬 궁금해졌다. 이제부터 카나타가 어떻게 할지. 꽤 오랜 시간을 둘이 함께 한 것 같았는데 여기서 그만둘지, 그도 아니라면 크게 슬퍼할지. 

그런데, 그 다음 카나타가 여상스레 한 말이 가관이었다.

“자아, 그러면 슬슬 구하러 가야겠네요~”

“네?”

“예? 아니…….”

그러려고 모여있던 것 아닌가요? 갸우뚱, 무구하게 기우는 얼굴을 정면으로 바라보며 셋은 할 말을 잃고 말았다. 옆에서 시노부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괴로움에 잔뜩 일그러진 눈동자는 차마 카나타를 제대로 바라보지 못했다. 

“그…… 카나타 공. 치아키 공은, 잡……혀 갔소이다. 이런 말을, 하고 싶지는 않지만…… 카나타 공까지 잃고 싶지는 않소. 그래서, 그, 구하러 가기엔 이미 늦었다고 생각하오만…….”

“맞슴다. ……어제 그 사람이 우리를 대신해서,”

“아, 그럴 것 같았어요~”

치아키는 그런 사람이니까요. 그 한마디에서는 그들이 차마 가늠할 수 없는 시간동안 쌓인 한심함과 어쩔 수 없네요~ 하는, 살가운 사이를 향한 짓궂음 같은 것들이 짙게 묻어났다. 또다시, 셋은 말을 잃고 말았다. 이 사태를 전혀 심각하게 생각하고 있지 않은 듯한 카나타의 태도에. 

먼저 큰 소리를 낸 것은 테토라였다. 

“그걸로 끝임까? 미도리 군을 감싸준 건 고맙지만, 그래도, 같이 지내던 사람이 끌려갔는데……!”

“치아키는 바보가 아니에요, 테토라. 우웅~ 물론 그냥 보면 바보같이 보이긴 하지만요, 치아키는 꽤나 머리를 굴리는 타입이거든요.”

카나타가 나긋나긋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마치 노래하는 듯 했다. 

“그러니까, 치아키는 당신들이 마음에 든 것 같아요. 미도리도, 테토라도, 시노부도… 착한 아이들이니까.”

“아니, 우리는…….”

물론, 저도 셋을 정말 좋아하고요. 살풋 휘어지는 녹색 눈동자에선 한없이 어린 꼬마들을 보는 듯한 애정이 넘쳤다. 그러한 류의 감정은 셋에겐 한없이 낯선 것이었으므로 셋의 고개는 점점 수그러들었다.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모르겠고, 차라리 화를 내는 쪽이 더 마음 편할 것 같은데……. 이리저리 시선을 피하는 셋의 뒤통수에, 카나타의 목소리가 쐐기를 박았다. 

“같이 구하러 가요.”

구하러? ……누구를. 

그게 가능하리라고 생각하는 건가? 

“우, 우리가 어떻게여……? 갔다가 잡히면 개죽음으로는 끝나지 않을텐데. 그야, 치아키 씨를 구하고 싶은 마음은 간절하지만 저희는……,”

“저희는, 저희가 사는 게 더 중요함다. 정말로.” 

“……미안하오.”

후웅. 카나타가 불만스럽다는 듯 볼을 부풀려도, 셋의 낯빛은 나아질 줄을 몰랐다. 그야 당연하지. ……눈부셨던 것과 별개로, 치아키의 미친 짓에 대한 셋의 감상은 기본적으로 달라지지 않은 탓이다. 약간의 자기혐오가 그 뒤를 따랐다. 그 정도로 생을 불태울 수 있으려면 그에 걸맞는 사람이어야 하고, 우리는 이렇게 사는 법밖에 배우질 못해서… 뭐 그런 것들. 

그 찰나, 온 세상이 조용해진 듯 한 건 착각이 아니리라. 

간간히 들리던 야생동물 소리가 뚝 끊겼다. 먼지로 뒤덮인 승합차 안, 넘치듯 흐르는 햇살을 등에 이고서 카나타가 조용히 눈을 감았다 떴다. 시선이 마치 꿰뚫는 것 같았다. 그건 셋을 상처 입히기 위함이 아니었다. 다만. 

“하지만 말이죠.”

“…….”

“이대로 괜찮겠어요?”

전 저 혼자 가도 괜찮아요. 그치만, 정말 이대로 괜찮겠냐고 묻는 거예요. 

그 말에 확실히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은 적어도 이 차 안에는 존재하지 않았다. 괜찮겠냐고. 당연히 괜찮지 않을 것이다. 테토라도 테토라지만, 미도리와 시노부도 도망만 쳐왔던 삶에 적잖은 염증을 느끼던 와중이었다. 이대로 죽을 때까지 살아야 하나. 은인을 저버리면서, 언제 죽을지도 모르는 것은 물론, 얼마만큼, 어디까지 도망쳐야 하는지도 모르는 상태로. 오로지 운에 삶을 맡기는 형태로? 

이럴 거면 차라리 그 날 치아키와 카나타를 우리 집으로 들이지 않는 게 나았을지도 몰랐다. 물론, 시노부는 그 덕에 목숨을 구명할 수 있었지만……. 그들이 들려준 이야기가, 셋이 모르는 세계가 어쩔 수 없을 만큼 즐거웠기 때문에. 저런 삶이라면 조금은 살아보고 싶다고 무심코 생각해버렸기 때문에.

차라리 몰랐었다면. 

시노부의 조그만 손이 낡은 시트를 움켜쥘 듯 구부러졌다. 

“……카나타 공.”

“네에, 시노부.”

“소인과 여기 둘, 미도리 군과 테토라 군은 태어나고부터 기억하는 모든 시간동안 도망만 다녔소. 죽을 뻔한 적도 있고, 정말로 잡힐 뻔한 적도 한 두번이 아니고……. 살고 싶어서 그랬다고는 하지만, 손가락질 받을 만한 일도 여러 번 했고 말이오. 물론 그걸 이제 와서 잘못했다 하고 싶지는 않소만.”

“알아요.”

“우리는 단지 살고 싶었으니까.”

“그렇죠.”

“하지만, 치아키 공과 카나타 공은 그러지 않았잖소.”

“우후후~”

치아키가 좀 그런 면이 있기는 하죠~ 그 정도야 아무 것도 아니라는 듯 카나타는 너스레를 떨었다. 꼭 자기는 아닌 것처럼. 시노부가 아랫입술을 꾹 물었다가, 재차 말을 이었다. 

“그래서, 사실은…… 그 때의 치아키 공이 부러웠소. 정말 대단하고, 닮고 싶다고도 생각했소. 하지만.”

“…….”

“하지만…… 우리는 여태껏 그런 적이 없는데. 누군가를 구할 수 있으리라고는, 꿈에도.”

“그러면, 변신을 하면 돼요.”

변신 말이오? 시노부가 멍하니 되물었다. 

“네. 이렇게~ 변신! 하는 거예요.”

변신! 카나타가 한쪽 팔을 쭉 피고는, 무언가의 포즈를 취했다. 물론 테토라도 미도리도 시노부도, 그게 뭔지 전혀 알지 못했기 때문에 셋은 다소 어이없는, 그리고 영문을 모르겠는 시선을 교환했다. 지금까지 공간을 짓누르던 분위기는 어디론가 사라져버린 것만 같았다. 미도리가 자그맣게 한숨을 쉬었다. 뭔지는 모르겠지만…… 치아키 씨가 알려준 거죠? 왠지 그럴 것 같아……. 짜식은 반응들에도 카나타는 마냥 해맑기만 한 웃음을 흘릴 뿐이다. 

“변신은 말이죠, 다른 사람이 되는 거예요. 지금의 나는 할 수 없는 일을 해내는, 또 다른 ‘나 자신’이요.”

“그냥 괴상한 포즈를 취한 거잖슴까….”

“기합이죠~”

그래도, 이런 기합이 여러분에겐 필요하지 않나요? 나지막한 속삭임이 셋의 어깨를 두드린다. 

“옳은 일, 해야하는 일…… 사실 저는 잘 모르겠어요. 여러분이 망설이는 이유도, 하고 싶지만 선뜻 그러지 못하는 이유도 잘 모르겠고요. 그러니까 알려주는 거예요. 치아키가 제게 알려준 것처럼.”

지금의 여러분이 할 수 없을 것 같은 일이라면, 그런데 하지 않고서는 못 배길 일이라면. 변신을 하면 돼요. 잠시 또 다른 자신이 되는 거예요. 

더러운 유리창 밖의 숲이 바람에 일렁이며 그림자를 만들어냈다. 잎사귀를 닮은 그것을 뚫고 햇살은 사정없이 내려, 여전히 빛 밖으로 나가기를 망설이는 셋의 등을 살며시 어루만졌다. 카나타는 여전히 선선한 낯으로 웃고 있었다. 문득, 테토라는 깨달았다. 카나타는 정말로, 혼자 가도 아무런 상관이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저 사람이 무시할 수 없을 정도로 우리는 벗어나고 싶은 것일까. 한 번이라도 궤도를 뚫고서 저 멀리로 날아보고 싶은 것일까……. 

“같이 바깥에 가보고 싶다고 했잖아요.”

“그랬슴다만.”

하지만. 

여전히 그 말이 테토라의 발목을 잡았다. 지금 카나타의 말마따나 ‘변신’이니 뭐니를 한다고 해도 삶이 나아질 거란 보장 따위는 없었다. 이대로 더 힘들어질 수도 있고, 까딱하다 누군가를 잃을 수도 있었다. 어쩌면 죽음보다 더 심한 것이 기다리고 있을지도 몰랐다. 바깥에도, 영영 나갈 수 없을 지도.

그래도.

생전 처음 생각해본 말이 테토라의 등을 밀어주었다. 

그래도 이 이탈이 우리들의 삶에 자그마한 변화라도 된다면. 바뀔 수, 있다면. 

“……우리가 어떻게 하면 됨까?”

“말해두지만, 저는 죽을 것 같으면 빠질 거에여…….”

“소인은, 힘… 내보겠소!”

겹쳐진 나뭇잎 그림자 속에서 아이들의 눈이 다채롭게 빛난다. 카나타는 만족스레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말해두겠는데, 그 포즈는 안 할 검다.”

“에에, 이게 포인트인데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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