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

[마다안즈] 뒤섞이던 소란 속에서

0. 그를 다시 만났던 것은 어디까지나 우연이었다.

APRICOT GARDEN by 유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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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ES 2+N년차의 시점을 두고 쓴 글입니다. (현재 기준, 미래 시점)

  • 작 중, 캐릭터의 죽음을 전제로 진행됩니다.

  • 『SHUFFLE×영원한 미아의 발라드』의 「미케지마 마다라」 일러스트를 감상 후 쓴 글입니다. (해당 셔플 스토리와는 무관하므로, 스토리를 읽지 않아도 이해하는 데에 문제는 없습니다.)


그 날은 언제나의 일상이었다.

평소와 똑같이 눈을 떠 출근을 준비했고, 언제나의 일과처럼 서류의 작성과 무대의 작업, 아이돌들의 프로듀싱까지. 무대 위에서 춤추고 노래하며 빛나는 별들을 더욱 빛내기 위해, 추락하는 별 하나 조차 끌어올린다는 마음으로.

그렇게 프로듀서의 역량을 발휘하며 일하는, 그런 언제나의 하루를 무사히 마치더ᆞ 날. 안즈는 하늘이 스포트라이트를 받지 않는 저 너머의 천장처럼 어두워지는 시간이 되어서야 짐을 챙겨 사무실에서 나오던 때였다.

그저 오늘은 함께 일하는 프로듀서와 스태프들과 ES에서 자신을 자연히 이름으로 부르던 아이돌들의 걱정 어린 말 몇 마디에 결국 이른 퇴근을 하게 된 차였다. -정확히는 야근까지 이어지지 않은 자발적 초과근무였지만.-

그런 일들에 잡다한 생각으로 조금 걷자, 라는 마음에 평소 가지 않던 거리를 걸었던. 그런 날이었을 뿐이었는데.

그 푸른 눈동자에 비친 익숙하면서도 절대 제 눈에 다시 담길 리가 없던 녹안 흐릿하게, 저의 것과 같은 빛을 담고 있던 그 머리카락이 선명하게, 그 주인이.

인파 사이에서 웃음 지었고,

이내 사라졌다.

‘그건 분명⋯?’

찰나의 비침. 안즈의 푸른 눈동자에 맺인 모습은 분명 존재했지만 그것은 마치 신기루처럼 사라졌다. 안즈는 멍하니 그 인영을 곱씹으며 생각했다. 그 짙은 녹안은, 갈색빛의 땋아 묶은 머리카락은, 저보다 머리 하나 정도로 높은 눈높이까지. 분명 그였다.

하지만 안즈는 눈을 질끈 감고 고개를 저었다. 그가 여기 있을 리 없다. 당연한 것이 아닌가. 그럴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그는,

‘미케지마 씨는, 내 눈앞에서 죽었으니까.’

안즈는 그것을 떠올리며 무의식적으로 떨구고 있던 고개를 살풋 들었다. 그것뿐이었다. 고개를 가로저으며 저가 보고 있던 방향이 살짝 틀어졌을 뿐이고, 밤 시간대에 지나다니는 인파에 몇 번을 가볍게 치여 몸이 조금 틀어졌을 뿐, 정말 그뿐이었다. 그러니까, 그녀가 거리의 작은 골목에 시선이 갔던 것은 정말 우연 중에서도 우연이었다는 거다.

그리고 그곳에 있을 리 없는 사람의 얼굴을 한 존재가 있는 것까지. 그래, 이 모든 게 우연일 것이다.

헉, 안즈는 놀란 눈으로 한 발짝 뒷걸음치다가도 이어, 정신을 차리고 보면 그 골목으로 다리를 뻗고 있었다. 고개를 떨구며 흐릿한 초점을 가진 남자가 제 눈앞에서 주저앉아 그 어두운 골목에 있던 것을, 안즈는 제 다리를 뻗어 그곳으로 향했다. 괜찮냐며 건네었던 손길에 닿은 천자락 너머의 체온이 차가웠다.

‘아니, 이건 차갑다기보다는—’

그런 의문과 혼란이 섞여가며 동요하던 무렵. 고개를 떨구고 있던 그, 미케지마 마다라의 얼굴을 한 남자가 앓는 소리를 낮게 그르릉 거리듯 내다가 눈을 반쯤 뜨며 제 앞에 있는 작은 여자아이를 지긋 바라보았다.

마주치는 녹빛과 청빛. 그 얽매이는 색채에서 먼저 동요한 것은 푸름이었고, 다음으로 놀란 것은 녹빛이었다. 하지만 이어진 녹빛은 놀람은, 안즈가 아는 놀람과 달랐다. 이질적인 놀람. 그저 정말 일어날 리 없는 인과율의 엇갈림을 마주한 듯한 생소함의 놀람. 안즈늘 당황케하는 것은 이로 끝나지 않았다.

언제나 능청맞게 웃음 짓던 그 입은 머뭇거리며 달싹거리다가 나지막이 내뱉었다. 그리고, 안즈는 자신이 잘못 들었던 것이 아닌가를 그 찰나 몇 번이나 곱씹었다.

“너는, 내가 보이는 거야?”

너. 안즈는 물론 마다라가 자신을 ‘너’라고 지칭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는 가끔 자신을 그리 칭할 때가 드문 있었으니까. 하지만, 그는 분명 말했다. 자신을 이름으로 부를 것이라고. 어느 과거의 파편에서 저를 프로듀서라 부른 적이 있지만, 그 찰나의 시간을 제외하고 그는 자신을 ‘안즈 씨’라며 넉살 좋은 미소로 부르던 남자였다.

하지만 어째서일까. 저 문장이 마치 처음 보는 사람을 대하는 듯한 생소함을 담은 듯한 목소리를 낸 것 같다고 느껴지는 것은.

“아니, 그럴리가 없지이⋯.”

“⋯⋯?”

그는 그렇게 혼자 중얼거리더니 언제 쓰러졌냐는 듯 몸을 훌쩍 일으켰다. 그러고 보니 평소의 마다라가 입을 법한 착장이 아니었다. 마치 영화에나 나올법한 의상과 장식, 그리고 손목 부근과 목에 둘러싸인 붕대. 손등에 얼핏 새겨진 검은색 문양까지. 그리고 무엇보다.

‘머리카락의 일부분이 하얗게 샌 것처럼 색이 달라⋯?’

그렇게 생각하다 보면 귓가에 저벅, 한 발짝 떼어 걷는 소리가 들려온다. 그런 그를 보며 안즈는 느꼈다. 그를 여기서 보내면 그 무엇도 할 수 없을 것이라고. 앞으로 그를 볼 수 없을 것이라고. 그래서 그녀는 내뱉었다.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지만 그를 발목을 붙잡을 수 있는 하나의 단어.

“마다라.”

“⋯⋯으음?”

정확히 단어에 대한 반응. 안즈는 또렷하게, 저 당황이라는 한 겹이 얼핏 덧씌워진 녹색의 눈동자를 마주하며 다시 말했다.

“마다라⋯ 씨.”

“⋯⋯그으, 내가 얼룩(斑)는 맞는데—— 아니지이. 너, 내가 보이는 거야아?”

눈에 담기는 것은 의문. 그러나 적대심보다는 호기심과 생소함. 하지만, 언제든 살의로 변할 수 있는 위협. 그 모든 게 섞인 눈이 저를 주시하며 성큼 뻗어가던 그의 다리가 저에게 향했다. 한 발짝으로도 확연히 줄어든 거리.

안즈는 자연스레 올라간 고개로 그를 마주 올려본다. 무슨 말을 해야 할까, 무슨 말을 꺼내야 어디까지 기억하는지 모를 당신을 붙잡을 수 있을까. 당신에게 하고 싶은 말이 그렇게나 많았는데 생각나지 않는다. 아니, 게다가 이런 미케지마 씨를 붙잡을 말은 생각도 하지 않았으니. 그런 생각을 하던 안즈는 고르고 골라, 거짓 없는 문장을 자아내어 뱉었다.

“미케지마 마다라, 당신을 알고 있어요. 그리고⋯ 저는 당신을 보고 싶었던 사람이에요.”

거짓 없는, 하지만 감정론에 의지한 문장. 기억조차 없는 그에게 이런 말이 과연 통할까. 안즈는 불확실한 마음에 미간을 찌푸렸다. 그저 단 하나, 떠나지 말라는 소망을 마음에 쥐고.

그는 그 말을 듣더니 의문이 담긴 표정이 더 짙어졌다. 인간의 자아란, 곧 의문을 품는다면 그 의문을 풀어야 하는 존재. 두루뭉실한 의미를 담은 문장이자 대답은 곧 새로운 질문을 건네받으며 당신을 붙잡겠지만, 상대는 미케지마 마다라의 얼굴을 한 사내였다. 정말 이 남자가 미케지마 마다라라면, 그런 의문을 내뱉는 알 수 없는 존재를 과연 어떻게 대할까. 처리할까, 떠볼까, 아니면 대화할까.

안즈는 여태 봐왔던 자신에게 보여준 꾸며진 미케지마 마다라의 그 너머, 그 찰나에 보았던 모습의 조각을 열심히 붙이고, 채우고, 색칠했다. 당신의 내면은 어떤 판단을 할 것인가.

그 작은 머릿속에서 이런 생각이 돌아가던 무렵, 그가 곡선으로 휘던 입가를 끌어올려 웃고는 대답했다.

“우리, 조금 더 이야기를 해봐야 할 것 같은 거얼? 나의 머리가 너의 이름을 자연히 읆어주고 있거든.”

그는 그렇게 말하고는 그녀의 손을 제멋대로 붙잡고 주문을 외웠다. 곧 어두운 밤하늘에 그림자 진 주변은 푸른빛과 붉은빛이 오가는 풍경이 퍼져가듯 비쳤다.

그가 웃으며 말했다. 속을 알 수 없는 쾌활, 마치 처음 마주했던 그 봄 무렵의 미케지마 마다라처럼.

“그러면, 안즈 씨. 나와 너는, 너와 나는 서로에게 무엇이 되어줬어어?”

처음을 마주한 황혼이 미소 지었다.

첫 만남이자, 재회.

이번에는 당신이 나를 기억 못 하는 그날의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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