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쥰이바] 상호봉시

桑弧蓬矢 :: 뜻이 바뀌어 남자가 큰 뜻을 세움을 비유하는 말로도 쓰임.

CP : 쥰이바

키워드 : 후련, 배신, 센티넬가이드버스

*퇴고없음


【쥰,자신은 — 이 모든 걸 염원했습니다. 적어도 당신을 만나기 전까진 아주 확고했어요. 지금 이 순간이 마침표라고 생각될 정도로요. 당신이 아니었다면, 나는 조금 더 후련한 모습으로 웃을 수 있었을텐데요. 전부 당신 때문입니다. 쥰, 당신이 나쁜 거라고요. 】

Fine



이바라가 검지 손끝으로 담뱃대를 쳤다. 떨어지는 재가 바람에 날렸지만 크게 신경쓰지 않았다. 당장 눈에 거슬리는 것은 이바라의 눈앞에 있는 사내였다. 이바라가 크게 한숨을 내쉰 뒤 입을 뗐다.


"당신, 제정신입니까? 며칠 전에도 이러더니 또…"


쥰이 덤덤한 낯으로 이바라의 옆에 앉았다. 성인 남성 둘이 앉아서 그런지 의자가 꽉 차, 이바라의 바로 옆에 쥰이 낑겨 앉은 모양새가 됐다. 이바라가 질색이라는 듯 쥰이 앉음과 동시에 곧바로 일어섰다. 의자엔 쥰 혼자만 어정쩡한 자세로 앉은 모양새가 됐다. 거의 다 태운 담배를 재떨이에 던진 이바라가 다시금 한숨을 쉬었다.


센티넬과 가이드가 존재하는 이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것이 무엇이냐 묻는다면 이바라는 당연, 센티넬의 폭주라 답했다. 기적에 가까운 초능력을 사용하는 센티넬이 폭주하면 그 일대는 쑥대밭이 된다. 등급이 높은 센티넬이면 더욱. 그러니 센티넬이 폭주하지 않도록 가이드가 존재했고 이바라, 자신이 그 역할을 맡은 가이드로서 눈앞의 천둥벌거숭이 같은 센티넬에게 손 내밀어야 했다.


"젠장, 손 내밀어요. 당장."


비록 자신의 센티넬은 무리하지 말란 말을 귓등으로 들어서 늘 아슬아슬할 때 까지 힘을 사용했다. 평소의 산뜻하고 바다를 닮은 청량한 기운은 어디로 갔는지, 칙칙하고 암울한 기운이 쥰으로부터 넘실넘실 넘어왔다. 그 기운에 기세가 눌릴 뻔 했지만 침을 꿀꺽 삼키고 손을 내밀었다. 이바라는 답지 않게 초조했다. 이 센티넬과 함께한 지 고작 한 달. 눈앞의 사내는 언제나 그렇듯 답 없이 손만 내밀었다. 말을 못하는 것도 아니면서 왜? 설마 낯이라도 가리는 건지.


"… … 이렇게 넘어가는 것도 오늘이 정말 마지막입니다. 자신이 이렇게 말할 정도면 정말 화내기 직전, 이라는 거니까요. 쥰, 제발 무리하지 마십시오. 이 이상으로 힘을 쓰면 손 잡는 걸론 부족하단 말입니다."


어이쿠. 본심이 튀어나와서 이바라가 입을 꾹 다물었다. 쥰은 들었는지, 아닌지도 모를 정도로 아무 변화없이 그저 묵묵히 이바라의 손을 잡았다. 기분이 퍽 상한걸까. 그게 아니더라도 따지기라도 해야할텐데. 이바라가 괜히 마른 침만 꿀꺽 삼켰다. 이바라는 가이드라면 평균적으로 해야하는 접촉을 극단적으로 피했다. 손을 잡는 건 이외의 가이드는 절대 하지 않았다. 벌써 그렇게 한 달이 지났지만 눈앞의 쥰, 이 사내는 시종일관 무표정이었다. 처음 만났을 때도 그랬고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그 어떤 불만이나 불평도 없이 그저 자신이 주는 만큼만 받았고 더 욕심내지 않았다.


"자신 혼자만 말하고 있는데요, 당신도 뭐라 말 좀 해보시죠. 무안하니까요."


…라는 말에도 쥰은 반응이 없었다. 그저 이바라가 건네는 가이딩을 묵묵히 받기만 할 뿐. 아깐 장난이라도 치려고 옆자리에 앉은 거 아니었나?라고 중얼거린 이바라가 날카로운 눈초리로 쥰을 쏘아봤다.  물론 쏘아본다고 반응이 즉각 튀어나오는 상대가 아니었지만.


"쥰"

"… …"

"사자나미 쥰. 대답하지 않으면 가이딩, 멈출겁니다."

"…"


이바라가 막 손을 놓으려던 찰나, 쥰이 마른 입술을 뗐다.


"이바라."

"… …"

하지만 쥰이 입을 떼니 막상 말을 삼킨 건 이바라였다. 설마 가이딩을 멈춘다는 협박에 말 할 줄은 몰랐으니까. 무려 한 달만에 처음 듣는 상대방의 목소리였다. 이바라가 얼빠진 표정을 수습하고 큼큼 헛기침을 했다. 놓으려던 손은 이제 일방적으로 쥰이 잡고 있는 모양새가 되었다.


"이바라?"


그래서일까. 쥰이 다시한번 이바라의 이름을 불렀다. 못 들었나?같은 느낌으로 되묻는 그 말에도 이바라는 답하지 못했다. 그저 고개를 틀곤 마저 가이딩하는 게 최선이었다. 이바라는 생각했다. 언제나 자신은 운이 없었고, 그게 지금도 마찬가지라면. 그렇다면 상대방이 자신을 부르는 말에서 어떤 향수를 느낄 수도 있지 않을까. 처음 센터의 문턱을 밟았던 이바라, 자신을 교육했던 '그'가 떠올랐다.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운명이라는 실타래에 엉켰을 때의 그 불쾌한 느낌. 이바라는 다시금 목을 감싸는 그 서늘함에 식은땀을 흘렸다. 운이 없다고, 분명 이건 …


"네. 이만 됐으니까 이름 그만 부르십시오 쥰. 가이딩도 이제 끝났으니까, 자신은 물러가보겠습니다. 쥰도 모쪼록 제 말을 유념하셔서 무리하지 않길 바랍니다. 오늘과 같은 상태라면 자신, 정말 화를 낼지도 모르니까요. 최악의 경우겠지만 파트너 교체를 상부에 논의할지도 모르겠습니다. 하하, 그럼 이만~ 먼저 물러나겠습니다 쥰!"


기껏 웃음으로 치장한 이바라가 손을 찰싹— 힘주어 쳐낸 뒤 자리를 벗었다. 긴장한 탓일까, 평소보다 더 꾸밈 가득한 변명을 내뱉었다. 우다닥 쏟아지는 말 때문인지, 아니면 세차게 쳐낸 손 때문인지. 의자에 앉아있던 쥰이 눈을 동그랗게 뜨긴 했지만 이바라의 발걸음은 망설임없이 출입구를 향했다. 아아—, 저 '짐승'은 분명 <벽 너머의 ■■■>가 그토록 원하던 야수겠구나. 목표와 목적을 위해 앞으로 달리는 걸 주저하지 않는 완벽한 도구라고. 감이 좋은 자신이 이걸 놓칠 리 없었다. 하필이면 일을 목전에 두고 생긴 파트너가 이런 사람이라니.




"이바라."

"아아, 왔군요 쥰.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자신이 생각한 것보다 조금 늦었네요. 아무튼, 잘 왔습니다!"


엉망이 된 센터 내부는 피비린내가 가득했다. 한때 사람이었던 것의 사체는 온전한 형태로 존재하지 못했고 테이블이나 기자재는 검붉은 피범벅이었다. 마치 거대한 재앙이 휩쓸고 떠난 자리처럼 센터는 단언하건대 '폐허'였다.

그리고 그런 폐허에서 이바라는 쥰을 기다렸다. 기다려야만 했다. 자신의 센티넬에게 작별인사를 고해야 했으니까.


"이바라, 이게 도대체 무슨? 아니, 설명하지 않아도 돼요. 다친 곳은 없습니까?"


한 달 만에 처음 목소리를 들었던 때와 달리, 지금의 이바라와 쥰의 관계는 많이 달라졌다. 무려 그 이후로부터 3년의 시간이 지났다. 가이딩을 위해선 필수적으로 신체를 접촉해야 했다. 3년의 시간만큼 이바라가 꾸준히 쥰에게 치댄 결과는 결코 작지 않았다. 물론 이바라가 당황해서 도망치는 나날도 있었지만, 결론만 두고 보자면 쥰과 이바라는 친구라 부를 수 없지만 친구라고 밖에 생각되지 않는 관계가 되었다.


서로 이름을 부르고 가끔 생각나면 밥을 같이 먹고 때때로 함께 영화를 보기도 하는 관계. 혹자는 연인이라 하고 또 다른 이는 친구라 하겠으나 쥰과 이바라는 서로의 관계에 딱히 정의를 내리지 않았다. 애초에 둘의 관계는 <센티넬>과 <가이드>라는 특수한 상황이 동반되었으니까. 그리고 이 관계의 승자는 언제나 …


"쥰. 궁금하지 않습니까?"

"갑자기 그게 무슨 소리예요 이바라?"

"당신도 알고 있지 않습니까. 이 상황을 누가 초래했는지. 아니, 모를수가 없잖아요. 쥰, 당신 눈앞의 '나'만이 여기 멀쩡히 있는 이유."

"… …"


이바라는 앉아있던 의자에서 일어섰다. 늘 입고 있던 하얀 가운엔 자신의 것이 아닌 혈흔이 잔뜩 튀어 있었다. 언제나 이 순간을 고대했다. <마침표>를 갈망하며 지낸 세월이 아득해서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도 잘 체감되지 않았다. 가장 처음, 이 날을 손꼽아 기다렸던 때가 언제였더라? 그리고 왜 ... 기다렸었지?


"쥰, 이야기를 하나 들려드리겠습니다. 다소 길어서, 지루하고 재미 없을진 모르겠지만 적어도 현 상황을 이해하는 것에 있어 도움은 될 거라고 자신합니다. 이 이바라가 하는 말이니 쥰, 들어주시겠습니까?"


이바라의 말에 쥰은 아무런 답도 하지 못한 채 그저 멍하니 바라만 보았다. 쥰의 시야엔 피처럼 붉은 머리카락을 가진 이바라가 환하게 웃고 있었다. 이 상황에서 생각할만한 것은 아니었지만 찰나, 쥰은 이바라를 보며 장미를 떠올렸다. 아름다움에 무심코 손을 뻗었다간 날카로운 가시에 찔리고 말거란 예감도 함께.


"인류는 새로운 스테이지로 나아가고 싶어했습니다. 욕망하고 욕심내는 건 인류의 원초적 본능이니 저도 이해합니다. 그런데 이번엔 조금 색다른 욕망을 드러냈습니다."


이바라가 또각또각 소리를 내며 쥰에게 다가갔다. 내미는 손은 언제나 쥰을 향했고, 이건 지난 3년 간 둘에겐 호흡처럼 당연한 신호였다. 이바라가 내미는 손은 언제나 쥰을 향했고 그 손길은 언제나 쥰을 구원했다. 그렇기에 쥰은 이바라가 내민 손을 반드시 잡았다.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쥰이 손을 잡자, 이바라가 가이딩을 시작했다. 부드럽고 온화하지만 짙은 기운이 쥰을 감쌌다. 이바라의 가이딩은 타인을 탐색하듯 감싸며 피로를 먹어치우는 느낌에 가깝다고— , '그'는 설명했었다.


"쥰, 당신과 내가 가진 능력입니다. 인간의 힘을 초월하는 이능. 그리고 이능의 대가를 잠재워주는 가이딩 능력. 인류는 새로운 신인류의 초석에 힘을 쏟아 성공했죠. 당신과 자신이 그 증거입니다. 하하, 네. 그럼 싹트는 의심이 있지요. 본래의 인류와 동떨어진 우리는 어째서 능력이 없는 '구인류'를 만난 적이 없는가."


이바라와 쥰이 지내던 센터, 그리고 활동하던 바깥에 있는 사람은 단 한 명의 예외도 없이 <센티넬>과 <가이드>뿐이었다. 평범한 일반인은 존재하지 않았다. 쥰은 고개를 비스듬히 했다. 자신이 받은 교육에 따르면, 구인류는 아주 오래전에 멸망했고 신인류는 크리처에 대항하기 위해 진화했다…


"쥰, 저 홀로그램 벽 너머에 있는 <에덴>에 대한 이야기 들어본 적 있지 않습니까?"


신인류인 센티넬과 가이드는 언제나 크리처를 상대로 싸웠다. 일상을 위협하는 크리처는 던전을 통해 계속 위협해왔고, 이 위협을 무사히 막아내는 것에 크게 일조한 <영웅>은 도심의 가장 가운데 위치한 홀로그램 벽 너머로 갈 수 있었다. 사람들은 그걸 승진이라 부르며 축하했다. 에덴이라 불리는 벽 너머는 안식처로  불렸으니까. 많은 영웅이 에덴으로 향했다. 그리고 영웅의 빈 자리는 또 새로운 이가 채워나갔기에 남은 이들은 외로움을 느낄 틈이 없었다. 그런 틈이 생기려고 하면 또 새로운 던전이 열렸고 크리처가 들이닥쳤으니까. 당장 쥰도 이 엉망이 된 센터에 오기 직전까지 던전에서 크리처를 처리하고 있었고 말이다.

"에덴은 말이죠, 사람들이 생각하는 낙원과는 거리가 멀어요. 지상낙원 … 이라기보단 요람에 가깝습니다. 구인류의 요람이자 방주에 가깝겠네요. 저 홀로그램의 벽 안엔 우리를 만든 구인류가 바깥의 두려움으로부터 도망쳐서 잠들어 있답니다 쥰. 안전한 보금자리에서 그들은 '우리'가 모든 크리처를 섬멸하는 그날까지 아주 긴 잠을 자고 있습니다."


꼭 쥐고 있던 쥰의 손을 놓았다. 가이딩이 끝나서일까. 쥰은 개운한 기운을 갈무리하고 가라앉은 호흡을 내쉬었다. 이바라는 대체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걸까. 이 길고 긴 서두의 끝에 눈앞의 남자는 무엇을 말하고 싶어서, 어떤 거절이 두려워서 이리 구구절절한 말을 하는 걸까? 그 답지 않게 친절한 설명으로 포장까지해서 말이다. 쥰이 비스듬히 고개를 기울인 채 이바라를 보았다.


"쥰, 자신은 그 벽 안의 사람이었습니다. 정확히는 그 벽을 만든 사람의 조금 먼 후손이죠. 돌연변이처럼 이 능력을 가져버려서 버림받았지만요. 그래서 쥰, 당신을 만났지만 … 그것과는 별개로 자신은 줄곧 생각했습니다. 날 전장으로 내몰고 속편히 잠들어있는 벽안의 인류에게 '벌'을 내리고 싶다고요. 아, 센터의 사람은 별개입니다. 이들에겐 따로 당한 게 많아서요~ 하하. 왜 그럽니까 쥰? 웃어요. 분위기가 가라 앉잖습니까."


그리 말하는 이바라가 웃었다. 미련따위 남지 않았고, 지금 이렇게 고백하는 순간이 오기만을 기다렸다는 듯 모든 걸 털어낸 이바라가 환하게 웃었다. 쥰, 있잖아요. '나'는 당신을 처음 만난 순간부터 이 날을 계속 기다려왔습니다. 이렇게 죄를 털어놓을 날을.


"이바라, 저에게 해준 것도 전부 거짓이었나요?"


아까까지 남아있던 온기는 모두 사라진지 오래였지만, 쥰은 이바라가 잡아주었던 자신의 손을 반대편 손으로 어루만졌다. 처음부터 알지 못했다면 모를까, 한 번 알게 된 온기는 오랜 시간 빈 자리를 체감하게 한다. 고개를 바로하고 바라보는 이바라는 조명이 어두워서인지 표정을 가늠하기 어려웠다. 새까만 칠흑이 이바라의 얼굴에 그림자졌다. 아직도 웃고 있는건지, 그것도 아니면 다른 표정을 하고 있는건지. 쥰으로서는 알 길이 없었다.


"전 기뻤어요 이바라. 답답했을 텐데도 언제나 절 기다려 준 이바라가, 전 좋았습니다. 이바라는요?"


이바라가 검지 손끝으로 안경테를 두드렸다. 달그락 거리는 소리가 쥰과 자신의 사이에 미묘한 기류를 만들었지만 크게 신경쓰지 않았다. 당장 눈에 거슬리는 것은 이바라의 눈앞에 있는 사내였다. 이바라가 크게 한숨을 내쉰 뒤 입을 뗐다.


"쥰, 자신은 — "


d.c. al f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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