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소마 단편

감기

하스미 케이토 x 칸자키 소마

소마가 감기에 걸리는 이야기

과거 날조 有

약 5000자 (이상)

가볍게 씀

-

"엣츄!"

"이런, 온도를 더 높여야겠군. 감기약은 방에 없는 건가?"

"약은 필요 없소! 이정도 감기쯤은... 크츄!"

"알았으니까 그만 말해. 따뜻한 물이라도 가져오마. ...흠, 담요도 더 챙겨오는 게 좋겠군. 금방 다녀올 테니 누워 있어라."

콜록콜록. 케이토에게 무어라 반박하고 싶었지만 기침이 터져나왔기에 아무말도 하지 못했다. 머리는 지끈지끈 울리고 팔에는 무게추라도 달린 듯 무거웠다. 애써 아무렇지 않게 말하고 있었으나 누가 들어도 목소리에 힘이 없다는 걸 알 수 있을 것이다. 느릿하게 눈을 깜빡이며 괜히 자신의 손을 쥐었다 폈다. 우습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작 감기 하나에 이렇게까지 시들해질 줄이야. 몇 번 느껴보지 못한 통증의 감각이었기에 더 무겁게 느껴지는 걸지도. 근육이 저릿해지는 느낌이었기에 목을 이리저리 돌려보았다. 문득 침대 옆에 눕혀진 케이토의 가방이 시야에 들어왔다. 소마의 상태가 이상하다는 걸 알아차리자마자 학교를 조퇴시키고 곧장 기숙사로 데려왔던 그가, 지금은 없었다. 조퇴하는 길에서도, 기숙사에 들어와서 옷을 갈아입으면서도 한참동안 들려오던 걱정섞인 잔소리가 사라지자 방 안이 너무도 고요했다. 원래 이렇게까지 조용한 방이었던가. 그보다 하스미 공, 너무 늦으시는 것이 아니련가. 천천히 고개를 들어서 굳게 닫힌 문을 멍한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어지러운 머리와 쿵쿵뛰는 심장은 뜻모를 우울감을 느끼게 했다.

케이토가 보고 싶었다.

벌컥-

"오래 기다렸나? 더 필요한 게 없을까 고민하다가... ...음?"

허망히 문을 바라보고 있던 소마의 볼을 타고 눈물이 주륵 흘러내렸다. 그 모습에 당황한 케이토가 가져왔던 짐을 그대로 바닥에 내팽겨치고는 소마에게 다가왔다. 괜찮나 칸자키? 그 사이에 많이 아팠던 건가? 혼자 두고 가서 미안하다. 소마의 양 볼을 손으로 쓸어주며 그가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벽에 걸린 시계는 고작 10분이 지났을 뿐이라 말했지만, 감기기운에 빠르게 두근거리는 소마의 심장은 그보다 긴 시간을 체감하게 했다. 케이토의 서늘한 손에 볼을 부비며 소마가 힘겹게 웃었다. 자신의 잘못이 없음에도 사과해주는 그의 사랑이 좋았다.

"자, 우선 약부터 먹어라. 키류는 조금 있다가 온다더군. 과일을 사오라고 연락해뒀다."

"...무우, 약은 필요 없소..."

"..."

케이토가 무어라 말을 하려다가 입을 꾹 닫았다. 칸자키는 예전부터 약 먹는 걸 안 좋아했지. ...싫다는데 강요하는 것도 오히려 안 좋을 수도 있으니까. 음... 음식에 몰래 숨겨서 먹이든지 해야하나. 케이토의 고민은, 소마가 그의 소매를 살며시 붙잡았기에 그대로 증발했다. 무슨 일이냐고 묻기도 전에 소마가 그에게 툭, 몸을 기댔다. 옷 너머에서도 느껴지는 열기운에 케이토가 흠칫 놀랐다. ...어이 칸자키. 케이토가 다급히 소마의 어깨를 붙잡아 몸을 일으켰다. 열기운에 나른하게 풀린 소마의 얼굴이 시야에 들어왔다. 미간을 찌푸리고서 케이토가 그를 침대 머리판에 기대게 했다. 서둘러 문앞으로 달려가서 짐을 챙겨온 후, 다급히 약과 물을 꺼냈다. 지금같은 상황이라면 억지로라도 먹여야할 것 같아서.

"자, 어서 입 벌려라 칸자키."

"무... 싫소이다. 본인은 칸자키 가문의 장자, 약 따위는 필요 없소..."

"..."

어지러운 정신속에서도 자신을 밀어내는 소마를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저 한 마디에 담긴 무게가 케이토 자신에게도 전해지는 것 같아서. 소마의 어깨를 만지작거리던 그가 자신의 혀 아래에 캡슐을 몰래 집어넣고서 소마의 양 볼을 잡았다.

"칸자키, 입 벌려."

"그러니까 약은... ..."

케이토의 숨결이 훅- 다가왔기에 소마가 본능적으로 눈을 감고 입을 벌렸다. 수없이 맞대었던 서로의 입술과 혀였으니 불가항력일 것이다. 입술을 빨아들이고, 혀끝을 깨물고. 평소처럼 소마를 애타게 집어삼켜왔기에 소마가 떨리는 손으로 그의 손목을 쥐었다. 소마의 혀를 톡톡 건들이던 케이토가 자연스레 그의 입안에 감기약을 밀어넣었다. 갑작스레 무언가가 밀려들어온 느낌에 소마가 미간을 찌푸리던 것도 잠시, 케이토가 곧장 몸을 떼고서 물을 집었다.

"자, 물과 함께 삼켜라."

"무뭇... 하스미 공, 이건..."

"뱉는다면 다시 먹여주마. 이제 그만 고집 피우고 항복해 칸자키."

"..."

더운 숨을 색색 뱉던 소마가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가뜩이나 어지럽고 몽롱했는데 그의 키스까지 받으니 정신을 차릴 수 없어서. 꿀꺽 꿀꺽 물을 삼키자 케이토가 소마의 입가를 손수건으로 닦아주었다. 칠칠맞구려, 마치 어린아이같이. 스스로의 모습에 자조하듯 소마가 피식 웃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케이토가 소마의 이마에 가볍게 입을 맞춰주었다.

"아프면 솔직하게 아프다고 해."

"..."

"아니면 혹시 내가 못 미더운 건가?"

"그것은 결코 아니오!!"

소마가 두 눈을 크게 뜨고 다급히 외쳤다.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케이토가 후훗 웃고는 그의 볼을 쓰다듬었다. 열기운에 뜨거워진 소마의 입술을 엄지손가락으로 문지르던 그가 말없이 소마에게 천천히 다가갔다. 익숙한 분위기에 소마가 또다시 눈을 감았다. 소마의 입술은 뜨거웠고, 케이토의 입술은 그보다는 서늘했다.

"우븟-"

약의 방해가 없으니 아까보다는 좀 더 깊게 연결될 수 있었다. 소마의 더운 숨이 케이토의 숨과 섞였다. 버거운 느낌이 들었기에 케이토의 팔을 붙잡았으나 그는 놓아주지 않았다. 머리가 어지럽고 정신이 몽롱했으나, 좋았다. 서로의 혀가 몇 번이나 맞닿고, 얽혔다.

마침내 입술의 온기가 같아질 때까지.

이마를 맞댄 채로 숨을 골랐다. 깊게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어지러운 사고 속에서, 문득 즐겁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마가 푸흐흐 웃음을 흘리자 케이토 또한 그를 따라 미소지었다. 뜨거운 소마의 뒷목을 꾹꾹 누르며 문질러주던 케이토가 천천히 그를 눕혔다. 세상이 뒤집어지는 것처럼 어지러웠기에 케이토의 손을 찾았다. 소마의 손을 붙잡아준 케이토가 가방을 뒤적였다.

"졸리진 않나?"

"조금..."

"약기운이 올라오는 것 같군. 내가 옆에 있어줄 테니 안심하고 푹 자라."

"계속 옆에 있어주실 것이오...?"

"그래, 계속."

케이토가 붙잡고 있던 손을 풀고서 새끼손가락을 마주 걸었다. 고개를 돌려 마주잡은 손과 케이토의 미소를 번갈아 보았다. 이제야 안심이 되었는지, 소마가 배시시 웃고서 천천히 눈을 감았다. 소마가 잠든 것을 확인한 케이토가 그제야 물수건을 챙기러 자리에서 일어났다. 화장실에서 물을 짜는 내내 소마가 깨지 않는지 주의하며.

가만히 침대에 누워있었음에도 마치 어딘가로 끌려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소마, 어딘가 아픈 건가요?
열이 많이 나는군요. 이런, 약이 지금 없는데...
괜찮아요 소마. 엄마가 여기 있으니까요.
아침에는 같이 병원에 가요. 아무 일도 없을 거예요.

어머니... 그렇게 슬피 보지 말아주시오.

칸자키 가문을 이을 자가, 고작 감기에 쓰러졌다고?

부인, 소마를 밤새 간호해줬다고 들었습니다만 괜찮소이까?

소마, 앞으로는 몸 간수를 잘 하도록 해.

네 어깨에 얹힌 무게는 너 하나만의 것이 아니야.

약 따위에 의존하지 말아라.

...

본인은 이 몸을 튼튼히 보전해야할 의무가 있소.

검술을 연마하고 좋은 음식을 먹어서... 스스로를, 「칸자키」를 지키리.

하지만 가끔은...

버겁구려.

칸자키.

아프면 솔직하게 아프다고 해.

내가 널 지켜주마.

세상의 더러운 것에서, 위험한 것에서... 네가 깨끗하게 남을 수 있도록.

네가 상처받지 않을 수 있도록.

지끈거리며 울려오던 머리가 점차 편안해졌다.

자신을 괴롭혀오던 과거의 기억이, 꿈이 점차 부서졌다.

품에서 느껴지는 온기에 더더욱 파고들어갔다. 누군가 등을 토닥여주는 것 같았다.

아무런 꿈도 꾸지 않았지만, 이것이 그 무엇보다도 편안한 꿈이었다.

"...으음."

소마가 천천히 눈을 떴다. 아까보다는 시야가 덜 어지러웠다. 무언가가 안고 있는 듯 하여 고개를 돌렸다가, 놀라서 숨을 헙 들이쉬었다. 케이토가 자신을 끌어안고 자고 있었으니까. 아니, 정확히는 소마가 그를 가지 말라는 듯 붙잡고 있었다. 놀라서 잡았던 손을 놓고서 주변을 두리번거리자, 침대 옆에서 바느질을 하던 쿠로와 눈이 마주쳤다. 그가 씨익 웃고서 소마에게 다가와 이마의 물수건을 거두었다.

"깼냐 칸자키. 몸은 좀 어떻고?"

"어, 어어... 아까보다는 괜찮아진 듯 하오..."

"그럼 다행이네. 이봐 하스미, 너도 이제 일어나라고."

"으음..."

케이토가 미간을 찌푸리며 몸을 일으켰다. 얼굴을 구기고서 상황을 파악하려는 듯 잠시 고민하더니, 기억났다는 듯 평온한 표정으로 안경을 찾아썼다. 소마의 이마에 손을 올려서 온도를 재고는 그가 부드럽게 웃었다.

"좀 나아진 것 같군. 잘 잤나, 칸자키."

"더, 덕분에... 헌데 어째서 본인과 같이 주무시고 있으셨던 거요...?"

"네가 자는 동안에 끙끙거리기 시작했거든. 무서운 꿈이라도 꾼 건가? 깨워도 일어나지 않고 괴롭다는 듯 몸만 계속 뒤척이길래, 끌어안고 다독여줬다. 괜찮아지면 일어나려고 했다만, 네가 날 붙잡고 안 놔줘서 어쩔 수 없이 나도 잔 거고."

"우, 우와앗 송구하오!!"

"후후. 아니, 괜찮아. 나도 덕분에 쉴 수 있었으니까."

"나참, 나중에 도착해서 보니까 둘 다 자고 있어서 얼마나 어이가 없던지. 뭐, 됐다. 너희가 좋으면 좋은 거지. 오렌지 깎아줄게. 아니면 딸기로 줄까?"

"둘 다 부탁하지."

쿠로가 쇼핑백에서 주섬주섬 과일을 꺼냈다. 소마는 여전히 케이토에게 미안한지 그의 눈치를 살피고 있었다. 소마의 분위기를 알아챈 케이토가 부드럽게 웃고는 그의 손을 잡았다.

"정 신경 쓰이면, 다 낫고 데이트나 가자꾸나."

"! 우, 우와앗. 좋소이다!!"

"가고 싶은 곳은 네가 정하는 거로... 콜록."

"...!?"

"에엣, 뭐야. 칸자키한테 옮은 건가?"

"으음... 그냥 목이 좀 따가울 뿐이다. 감기까지는 아냐."

"센 척 하지 말고 둘 다 얌전히 앉아 있어. 나참, 한 명만 간호하면 되는 줄 알았더니 그새 두 명으로 늘어났냐고."

쿠로가 짐짓 투덜거리며 담요를 건넸다. 그 모습에 케이토가 멋쩍은 듯이 머리를 긁적이고는 소마를 바라보았다. 둘의 시선이 맞닿는가 싶더니 곧 웃음이 터졌다. 하긴, 옮을 수밖에 없었구려. 뭐, 그래도 후회는 없다. 둘의 장난스러운 웃음에 쿠로가 물수건 두 개를 쭈욱 짜며 잔소리했다.

"딸기나 먹으라고. 감기에는 비타민이 좋대. 뭐랬더라 D였나."

"키류, 보통 이럴 때 말하는 건 비타민 C일 거다."

"그거나 그거나지. 근데 비타민은 B로 시작하는데 C도 있고 D도 있네."

"...키류. 비타민의 철자는 V로 시작한다."

"아."

겸연쩍게 턱을 긁적이고는 그가 과일을 내밀었다. 뭐든 먹으면 좋겠지.

과일들을 배부르게 먹고서 케이토와 소마 둘 다 감기약을 한 알씩 나눠먹었다. 이번에는 아까처럼 저항하지 않았다. 어려도, 아파도 괜찮다는 걸 알았으니까.

댓글 0



추천 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