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쥰이바]낙장불입

落張不入 :: 화투를 할 때 바닥에 이미 내놓은 패를 물리기 위해 다시 집어 들이는 일은 용납되지 않는다는 말.

CP : 쥰이바

키워드 : 재회, 일상, 현대, 그런데 이제 내가 호러를 먹고 싶다면.

*퇴고없음 / 쓰면서 게임하다보니 헛소리 적혀있을지도.



재회는 찰나였음에도 오랫동안 기억에 남았다. 칠흑 같은 어둠에 작은 의 속삭임만이 외로움을 달래주었으니까. 무대를 내려간 먼지가 할 수 있는 건 그저 넋에 가까운 잔소리가 전부였지만. 그럼에도 이야기를 사랑했다. 작은 별이 그려 나가는 이야기엔 자신이 그토록 바라던 희망이 존재했으니까.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뭡니까?"

잔뜩 인상을 쓴 채 상대를 보았다. 얼이 나간 넋으로 하하… 웃으며 머리를 긁적이는 남자가 잔을 만지작 거렸다. 답답하기는.

"사람 말도 못 알아듣습니까? 이상하군요, 커뮤니케이션에 쓰이는 어려운 화법으로 말한 것도 아닌데 말이죠. 자신이 지금 한 말은 심지어 아주! 간단한 어휘인데 도대체 왜 돌아오는 답이 없는 걸까요? 이 이바라가 거울을 마주한 채로 대화하는 것도 아니라면 이 자리에 더 앉아 있을 필요도 없을 것 같고요. 자신은 노는 사람이 아닙니다만?"

쥰과는 상당히 오랜만의 재회였다. 단지 문제가 있다면 쥰이 계속 얼빠진 미소나 짓는다고 자신에게 제대로 된 대화를 건네지 않는다는 거였다. 아직 11월 초, 자신의 생일이 지나지 않았기에 26세의 늦가을이다. 에덴이 해체되고 자신은 아이돌로서 직접 활동하는 것을 그만두었다. 이후 코즈믹 프로덕션의 소장이 되었다. 그러니 자연스레 에덴의 모두와는 점차 만남이 줄어들었다. 일로 만나는 경우가 종종 있긴 했지만 … 그럼에도 쥰과 만나는 건 오랜만이었다.

"너무 오랜만이라서요. 그동안 잘 지냈어요 이바라?"

한참을 고르고 골라서 나온 답이 저 말이라니. 사자나미 쥰은 여전했다. 종종 건물을 오가다 마주치곤 했지만 그것도 잠깐 스쳐 지나간 정도지 말을 나누진 못했다. 지금의 쥰은 히요리와 함께 이브로 여전히 활동 중이었고 오랜 활동만큼 그 인기가 높았으니까. 당장 체크한 일정만 해도 휴일이 없는데, 어라. 잠시만.

"뭐, 자신이 잘 못 지낼 이유가 없으니까요. 그러는 쥰의 활동은 보고를 받고 있어서 따로 묻진 않겠습니다. 다만 신경 쓰이는 점이 있군요. 오늘도 오후 스케줄이 있을 텐데 이럴 시간이 있습니까?"

안경을 고쳐 쓴 뒤 눈앞의 아메리카노를 한 입 삼켰다. 아아 젠장. 다시 잔을 테이블에 놓았다. 자신은 여전히 미련이 넘쳐서, 알고 있음에도 행동하고 말았고 후회할 걸 알면서도 묵인한다. 쥰과의 대화는 분명 자신에게 후회로 다가올 터였다. 비합리적이고 비효율적이며 비이성적이니까. 여기서 끊어내야 하지만 쥰의 표정을 보고 있자면 속에서 부터 끓어오르는 화를 억누르기 어려웠다. 알고 있다. 자신이 왜 이토록 쥰에게 무르고 또 한편으론 모나게 구는 지 너무 잘 알고 있다. 잘 알고 있는 것과 그걸 이해하는 건 또 다르지만.

"아, 네. 오후 일정이 있긴 했는데 PD와 제작진들 사정으로 연기 되었어요. 아마 이바라가 사무실로 돌아가면 관련 보고가 올라가 있을 것 같은데… 그게 아니라, 그냥 오랜만이잖아요 이바라. 반가워서요, 그래서 얘기 좀 해보고 싶었어요. 저희 제대로 대화하는 거 3년 만이잖아요."

3년 전 에덴이 해체되었으니, 사실상 에덴 해체 이후 처음이었다.

"예, 그렇네요. 하지만 각하나 전하에게 제 얘기를 전해 듣지 않습니까. 굳이 직접 만나서 얘기할 필요도 없이 홀핸즈로 연락하면 되고요. 무엇보다 쥰, 이전에도 말했다시피 본인이 인기 아이돌이라는 자각을 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일반인과 카페에서 단 둘이 대화하지 마십시오. 이동할 때도 대중교통 이용하지 말고 제발 택시나 코즈프로의 개인 기사를 이용하고요."

"아, 시작됐다. 이바냥의 잔소리 타임."

"?"

"시노 군이 알려줬어요. 이바라의 보기타임이 아니라 잔소리 타임이 있다고."

"...지메냥."

음산하게 가라앉은 말이 튀어나왔지만 생각 외로 기분 나쁘진 않았다. 오랜만에 듣는 반가운 이름이기도 했으니까. 쥰과의 대화는 이후 점진적이었다. 3년 간의 공백 때문인지 한 번 물꼬를 트니 할 얘기가 많았다. 쥰이 중간중간 홀핸즈의 알림을 확인했다. 그러곤 급한 일이 아니네요—라는 말과 함께 알림을 지웠다. 자신이 왜 그런 쥰에겐 잔소리 하지 않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미래의 사에구사 이바라가 추궁했을 정도로.

"그래서 란 선배랑 아기씨와 함께 촬영 하기로 했어요. 두 사람이랑 함께 패널에 나가는 건 오랜만이라 미리 대본 맞춰본다고 고생했는데 촬영이 미뤄졌고요. 오랜만에 두 분한테 잔소리도 왕창 들었는데 어떤 잔소리였는지 벌써 까먹었어요. 하하, 아기씨가 이걸 알면 또 뭐라 하실 것 같아요. 맞아, 아기씨는 연어 키슈를 준비했고 란 선배는 휘핑크림이 잔뜩 올라간 초코스무디를 준비했더라고요. 저만 꽃을 들고 있었는데…"

"아아, 그래서. 흠~ 다 함께 모여서 즐거웠겠군요 쥰."

창 밖의 경치를 보았다. 거리를 돌아다니는 행인이 가득했다. 적당한 소음과 소란함은 때때로 안정을 가져다주었다. 하지만 길게 이어지는 침묵 마저 감추진 못했기에 고개를 돌려 쥰을 보았다. 돌아오는 답이 없는 것도 이상했지만 표정이 굳은 쥰을 보고 있자니 자신이 뭘 잘못한 건가? 고개를 절로 기울였다.

"쥰?"

"… … 이바라. 다시 돌아오지 않을래요?"

"하하. 농담 실력이 좋아졌군요 쥰! 일취월장, 수용산출입니다!"

"농담이 아니라 정말로요. 이바라가 돌아왔으면 좋겠어요. 저희는 네명이서 에덴이잖아요, 아닌가요? 이바라. 당신이 모았던 에덴이잖아요."

창 너머로 보이던 거리엔 이제 사람이 드문드문만 보였다. 탁, 타닥. 갑자기 쏟아진 가을비 때문인지 점차 돌아다니는 이가 보이지 않았다. 이바라가 다시 고갤 돌려 쥰을 보았다. 미련하고 멍청하면서 동시에 한 번 준 정을 잊지 못해서 눈치나 보는 남자. 이바라는 그런 쥰이 딱 질색이었다. 묻어있는 먼지를 좀 털어내면 과거의 자신을 보는 것 같아서 괜히 더 날 선 말이 툭툭 튀어 나가기 일쑤 였으니까.. 그렇기에 더욱 이바라는 쥰의 하나 남아있는 미련마저 털어야 했다. 지금 하는 말도 가지고 있는 감정과 미련도 전부 <먼지>와 다를 것 없으니 어서 털어내세요 쥰.

"쥰, 얘기가 길어질 것 같습니다만 괜찮다면 옛 사무실로 갈까요."

"?"

쥰이 의아하다는 듯 시선을 맞춰왔지만 방긋 웃으며 잔을 그에게로 내밀었다.

"아, 제가 손을 다쳐서요. 괜찮다면 이 잔도 함께 치워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나가서 기다리고 있을게요. 어서 다녀오십시오 쥰."

"뭐… 알겠어요. 근데 커피 별로인가요? 거의 마시지 않았는데요 이바라. 이대로 뎁히면 새로 내온 줄 알겠어요."

"됐고, 빨리 다녀오기나 하십시오 쥰."



"그런데 이바라, 왜 예전 사무실인가요?"

"현재 사무실은 개인 사무실이 아닌 공용 오피스 형태니까요. 개인적인 얘기를 하기에 적합하지 않습니다. 이제 오후6시이지만 야근하는 분도 있을테고 말이죠. 아, 열쇠는 창문 열어보세요. 내창은 닫혀있지만 외창이 열리죠? 외창 열고 창문 턱을 만져보시면 열쇠가 있을 겁니다."

"꽤 복잡하네요. 그냥 이 화분 밑에 숨기면 안되나요?"

"… 쥰, 설마 본인 집 현관 열쇠를 그렇게 숨기고 계신거라면 모쪼록 그냥 지문인식도어락으로 바꾸십시오. 지진이 걱정이라면 요즘 좋은 제품이 많으니 적어도 비상열쇠는 화분에 숨기지 마십시오."

"나왔다, 이바냥의 잔소리타임."

"쥰."

"네네~"

쥰이 열쇠를 꽂고 문을 돌리자 허름한 사무실의 전경이 보였다. ES빌딩이 세워지기 전, 막 트릭스타와의 결전을 준비하던 때 이바라가 쓰던 사무실이었다. 코즈믹 프로덕션의 부소장이 되고나서도 팔지 않은 사무실엔 옛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었다. 그럼에도 먼지가 적은 건 이바라가 고용한 청소업체가 주기적으로 관리해서였다. 가운데의 소파에 앉아 고갯짓을 했다.

"반대편 소파에 앉의십시오. 뭐, 먼지가 날리지 않는 수준일 뿐 허름하긴 하지만 나름 얘기를 이어나가기엔 적합한 장소입니다."

적어도 세차게 내리는 비를 맞지 않고, 불어닥치는 바람의 추위를 막을 수 있었으니 대화를 나눌 공간으로써 합격점이었다. 따로 차를 내올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으나 직전까지 카페에 있었으니 쥰도 괜찮겠지.

"이렇게 있으니까 학생 때 생각나고 좋네요. 이바라, 매일 그 소파에 앉아서 하하하! 돌격, 침략, 제패! 같은 말 했잖아요."

"… …"

"아무튼, 돌아올래요 이바라? 이바라가 돌아오면 란 선배도, 아기씨도 다들 반가워 할 거라고요. 물론 저도 마찬가지고요. 네명이서 에덴으로 활동하던 때도 그립고."

"… …"

쾅!

"!?"

"아, 주변에 낙뢰가 떨어졌나봅니다."

"엄청 가까이에서 떨어… 졌나봐요, 깜짝 놀랐어요."

"하하, 어린아이도 아니고. 이런 걸 무서워합니까 쥰?"

"…아니거든요?!"

대화가 이어지는 도중에서 우르르 쾅, 쾅! 하고 여러번 소리가 울려퍼졌다. 늦가을에 내리는 세찬 빗소리와 울려퍼지는 낙뢰 소리가 주변 공기를 가득 메웠다. 쥰이 어쩐지 불안한 듯 손을 꼼지락 거렸다.

"있잖아요 이바라."

"네, 말씀하십시오 쥰."

"그냥, 그냥 불안해서요."

"뭐가 불안합니까?"

"… …"

하하. 하하… 하며 어색한 소리로 웃던 쥰이 입술을 잘근잘근 깨물기 시작했다. 아, 저러면 피가 날텐데—라고 생각하자마자 쥰의 입술에 피가 베어나왔다. 쯧, 저럴 줄 알았다.

"이바라."

"네, 쥰."

"손, 잡아줄래요?"

긴 침묵은 빗소리가 애써 감추었다. 탁, 타닥. 쏴아—, 그리고 쾅! 하고 떨어지는 낙뢰.

"쥰, 비가 오는 날엔 꼭 우산을 챙겨서 다니십시오."

"이바라."

"그리고 되도록 혼자 있지 말고, 다른 분들과 함께 하세요."

"이바라."

"이후엔 저한테 말 걸지 마시고요. 쥰, 인기 아이돌이잖습니까. 자신은 이제 쥰의 팬이자 프로듀서로서 지켜볼테니까요."

"…이바라."

손을 잡아달란 쥰의 말에 답해줄 수 없었다.

"그러고보니 그때도 이런 날씨였죠. 춥진 않았는데 좀 눅눅해서 별로였습니다."

"…"

"다음에 셋이 올 땐 쥰이 좋아하는 딸기 디저트나 챙겨 오세요. 연어 키슈만 계속 주니 물립니다. 아메리카노도 한 잔 가져오시고요."

"이바라."

"하하 … 죽어서 좋은 점이 있네요. 쥰, 당신이 내 이름을 이렇게 많이 불러주잖습니까. 또 다음에 뵙겠습니다 쥰. 이제 정말 가봐야 하거든요."

해줄 수 있는 것과 하고 싶은 것. 두 개를 철저히 구분하는 건 자신의 특기였다. 쥰에게 해줄 수 있는 건 살아있던 자신이 하던 시덥잖은 말이다. 비록 그의 손을 잡아주고 싶어도 그럴 수 없으니 대화 주제라도 빨리 돌려야했다. 왜 어째서 기일만 되면 쥰이 자신을 보게 되는진 몰라도 이바라는 그때마다 곤혹스러웠다. 오늘은 자신이 죽은 날. 올해로 3번 째 기일을 맞이했고 쥰은 그때마다 자신의 죽음을 잊곤 했다. 오늘 선배들과 모두 만난 것도 방송이 아닌 자신의 참배를 위해서라는 것조차 잊었으니까.

"이바라, 안가면 안되나요?"

쥰이 반사적으로 자신의 옷자락을 잡았다. 아니, 잡으려고 했다. 비록 허공을 헛도는 손에 피식 웃음이 나왔다. 쥰이 자신에게 닿는 건 불가했으나 반대는 가능했다. 그 증거로 카페에선 자신의 의지로 커피잔을 들었으니까.

"쥰"

하지만 그렇다고 손을 잡아줄 순 없었다. 오늘이 지나면 해줄 수 없는 것이다. 앞으로 나아가야 할 별을 붙잡고 늘어지는 건 속이 쓰리니까. 그러니까 오늘만큼은 완벽한 작별을 고해야했다.

"이바라, 그냥 말하지 마요. 제발 말하지 마."

"…늘 최선을 다하는 당신이 좋습니다. 그러니 더 노력하세요, <내>꿈마저 쥰에게 맡기고 떠나는 거니까요. 이제 눈앞에 나타나는 일은 없을 겁니다. 믿으니까요, 신뢰하고 있어요. 쥰, 상상조차 뛰어넘으십시오. 나아가면 됩니다. 이 칠흑조차 뛰어넘어서요."

언젠가 이 어둠에서 재회할 때가 온다면, 당신에게 수고했다고 말할겁니다 쥰. 자신은 인내심 하나만큼은 뛰어난 남자니까요. 아주 오랫동안 빛나다 오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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