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계일학

군계일학 01


유성대 나이조작 이능력 어쩌구 AU

그냥… 이것저것 주의


* 소소한 범죄 묘사가 있습니다.

* 노리타마 위주 / 캐붕 주의

* 불친절합니다.

​​​

다른 아이들은 잘 모르겠지만, 테토라는 돈이 필요할 때면 꼭 마켓 에비뉴로 나갔다. 그쪽 동네는 아무래도 외곽 출신 이방인과는 영 맞지 않지만 어쩌겠는가.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이다.

경계를 넘어서야 겨우 시작되는 인도를 따라 걷다보면 금방 마켓 입구에 다다랐다. 마켓이라고 해도, 간이지붕 아래로 줄줄이 이어진 노점들의 행렬 정도였으나 (어찌됐든 마켓이라 이름 붙을 정도로 규모가 크긴 했다.) 주말 아침이라 그런지 평소보다 더 붐비는 느낌이었다. 시장 특유의 활기 넘치는 번잡함은 테토라에게는 퍽 익숙치 않았으나 행인 사이로 몸을 숨기기에는 딱 적당했다. 그게 좋았다. 이, 그들끼리 온건한 거리는 테토라처럼 후줄근하고 불량한 아이 따위는 반기지 않아도,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섞여들기 시작하면 티가 나지 않아서. 

‘이런 걸 보고 나무를 숨기려면 숲에, 라고 했던 것 같슴다.’

하여간에 지금 필요한 건 돈이다. 미도리가 저저번 주에 나갔다 왔으니 이번엔 테토라의 차례였다. 발소리를 죽여 걸으며, 테토라는 속으로 사야하는 목록을 하나하나 되짚었다. 우선 저번 주부터 천장에서 비가 새고 있으니 물을 받을 만한 양동이가 필요하다고 했고, 다가올 겨울에 덮을 담요도 두어 개, 고기 몇 근, 시노부가 먹고 싶다던 만쥬……. 돈이 남으면 미도리가 가지고 싶다고 노래를 부르던 바보같이 생긴 인형 하나 정도는 안겨줄 수 있겠다, 싶었다.

그러려면 오늘 수익이 괜찮아야 할텐데 말임다. 테토라는 마른 입술을 괜히 혀로 쓸어내며 마음을 가다듬었다. 마켓 앞 공원 한가운데의 시계탑 아래, 비스듬히 기대어 사냥감을 몰색하는 시선이 차분하게 가라앉는다. 아무리 해도 조급해지고 마는 마음과는 정 반대로.

테토라가 태어났을 때, 세상은 이미 한 번 뒤집힌 후였다. 갑작스럽게 나타난 정체불명의 괴생물체로부터의 위협, 잇따른 자연재해, 그것들을 도저히 버티지 못하고 붕괴되는 몇몇 나라들의 상황과 맞물려 가진 자는 더욱 공고해지고 없는 자는 목숨값까지 내놓는 진풍경이 펼쳐졌다. 위에서 선고한 값어치에 따라 인간이 분류되고, 추앙받으며, 죽어나간다. 테토라에게는 이제 너무나 익숙한 명제였다. 

영장류라면 일단 죽이고 보는 괴생물체가 창궐한 이후에도 인간은 꾸역꾸역 살아남았다. 꾸준히 피라미드 아랫층을 갈아나가며. 비정하기 그지없는 카스트, 그 중에서도 가장 하이랭크에 등극한 무리는 아이러니하게도 앳저녁에 인간을 벗어난 극소수의 존재들이었다. 괴생물체가 나타나기 시작함과 거의 동시에 등장한 초월자들. 인류의 수호자.

세상은 그들을 ‘능력자’라고 부르며 존경한다. 

그러나, 이 세계의 존경은 보통 태생과 연관된다.

가진 자들의 성지― 중앙의 캐피톨이 아닌, 외곽의 외곽 구역에서 태어난 능력자들은 참 쉽게도 인신매매의 표적이 되었다. 테토라로서는 이유가 뭔지 알 수도 없고, 알고 싶지도 않은 이야기였으나 하여간에 능력자들을 팔아치우면 값이 어마어마하다는 건 익히 전해들었다. 보신이라도 되는 건가. 

표적이 되는 이유는 간단하다. 그들이 눈치도 없이 하수구 물을 먹고 태어났기 때문에. 볕 드는 일 없이 다같이 동경 하나만 불태우며 살아야 하는데 감히 저 구름 위의 분들과 같은 것을 타고나서. 못 배운 애들이 능력 조절도 서툴러서. 와중에 돈을 벌 수 있다면 더더욱.

마치 이 경직된 계급제를 지키는 것만이 인류의 살 길이라고 세뇌라도 당한 것처럼, 태생 따위에 더 예민하게 날뛰어대는 건 언제나 아랫것들이었다. 윗놈들은 그냥 방관하는 것만으로 스스로의 위치를 재확인할 수 있었다. 편리한 방식이다. 

그래서 테토라와 미도리, 시노부는 늘 도망치는 삶을 살 수밖에 없었다.

셋은 나란히 능력자였다. 잘못 핀 민들레꽃 세 송이였다.


테토라의 능력은 직관적이다. 미도리와는 다르게 사사건건 신경 써야하는 부분이 없다보니 응용 범주도 기하급수적으로 넓어졌다. 테토라가 굳이 마켓 에비뉴로 향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었다. 쉬지 않고 능력을 사용해야하는 시노부는 주기적으로 몸이 안 좋아져서, 미도리와 둘만 두는 건 아무래도 걱정이니 (미도리가 못미덥다는 뜻은 아니다.) 빨리 한 탕 하고 돌아가 고기도 구워주고 담요로 말아서 불 앞에 데려다두려고……. 

그런데 오늘은 영, 아닌 날인가보다.

“지갑이 무슨 천 년은 묵은 것 같슴다…….”

꽤 그럴듯하게 조성된 공원의 구석 벤치. 요령 좋게 자리잡고 앉은 테토라의 곁에는 아무리 봐도 그의 것은 아닌 지갑이 두어개 쌓여있었다. 그러니까, 오늘의 수확이다. 능력을 사용하면 일반인에게 들킬 염려는 없으니 담당 집행관이 오지 않는 이상 잡힐 일 또한 없어, 간만에 나온 테토라는 말그대로 거침이 없었다. 그런 것 치고 수익은 없었지만. 

다른 지갑들은 그나마 괜찮은데 마지막의 이거, 이게 문제였다. 

“누가 지갑에 돈 말고 이런 걸 넣고 다니냐 이말임다!”

아오! 뭔 새빨간 가면남 스티커를 보고 있자니 성질이 다 뻗쳐, 테토라는 낡아빠진 지갑을 냅다 패대기쳤다. 팡! 경쾌한 소리를 내며 뒤집어진 지갑에서는 흔한 동전소리조차 나지 않았다. 하……. 테토라는 제 풀에 지쳐 머리를 감싸쥐었다. 주민이라면 그냥저냥 지나갈 회오리감자 매대 앞에서 눈을 반짝이고 있길래 분명 속 편한 관광객 내지는 외지인일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냥 가난한 유학생이었나보다. 

천지가 개벽한 뒤로 족히 백 년. 이런 평화로운 구역의 젊은이들 중에는 괴생물체를 책자 속 삽화나 중앙의 선전영상으로만 접해봤다는 이들이 부쩍 늘었다. 외곽에서 사람들이 얼마나 죽어나가고 어떻게 도륙당하며, 그런 엔딩을 굳이 거부하지 않을 만큼 비참한 삶을 영위하는지에 대한 건 생각조차 못하는 것처럼. 하긴, 그러기 위한 피라미드 아닌가. 의기양양하게 학문 따위를 팔 만도 했다. 불합리해. 테토라는 작게 욕을 뇌까렸다. 

어쨋거나 오늘은 허탕이다.

양동이랑 담요나 사서 돌아가자며 테토라는 금방 자리를 떴다. 아쉬움이 껌처럼 달라붙은 걸음 뒤로 묘한 시선이 가만히 테토라를 뒤따랐다.


셋이 이번에 자리잡은 곳은 구역의 끄트머리, 소위 말하는 뒷골목 판잣집이었다. 주류 구역에서 밀려났으나 간신히 끝자락에 매달릴 수는 있었던 사람들의 집합소. 얼마 전 재개발 통지가 떨어져 그나마 살던 사람들도 죄다 흩어졌다고 들었다. 남은 부류는 정말로 갈 곳이 없는 사람, 범죄자, 그리고 도망자 뿐이다. 

전 주인은 더 이상 말할 입이 없으니 셋은 멋대로 점거한 그 곳을 종종 ‘우리 집’이라고 불렀다. 미도리는 괜히 소름이 돋고 쑥쓰럽다며 싫어했지만, 테토라는 그 어감이 꽤 마음에 들었다. 마치 언제든 돌아갈 수 있을 것 같지 않은가.

​녹이 잔뜩 슨 철문을 열고 들어가면, 복도 너머로 먼저 허름한 거실과 부엌이 보였다. 테토라가 짧은 복도를 터벅터벅 지나는 동안 길게 난 더러운 창문으로 땅거미가 기어올라 방안에 어슴푸레한 빛이 감돌았다. ‘우리 집’은 방 두 개에 좁지만 숨통은 트일 만한 베란다까지 딸린, 실제로 꽤 괜찮은 옵션의 가정집이었다. 전 주인이 덕지덕지 붙여놓은 해괴망측한 포스터들과 썬캐쳐, 시노부가 쓰레기장에서 주워온 형형색색의 라바램프 같은 것들 사이로 미도리의 식물들이 군락을 이뤄 지는 해와 함께 어지럽고도 오묘한 조화를 이뤘다. 

마침 다 썩은 창틀 위의 화분에 물을 주던 미도리가 고개도 돌리지 않은 채 말을 걸어왔다. 일찍 왔네, 테토라 군. 막 다녀온 그보다 초록이 선명한 새싹을 중요시하는 태도였지만, 테토라는 가타부타 말얹지 않고 고개만 대충 끄덕였다. 대뜸 장난스럽게 어깨를 축 늘어뜨리니 미도리가 짜식은 눈으로 이쪽을 보는 게 느껴졌다.

“오늘 완전 꽝이었슴다……. 미도리 군, 미리 수고하십셔!”

“아니, 그렇게 말해도 내가 뭘 해주지는 않을 거니까…? 양동이는 사왔어?”

“그럼여. 시노부 군은 어딨슴까?”

여기 있소오오오……. 갑자기 귓가를 파고든 다 죽어가는 목소리에, 테토라는 펄쩍 뛸 정도로 놀라고 말았다. 시노부 군?! 가다듬지도 않은 목소리로 빽 소리를 질러도 시노부는 익숙하다는 듯 웃으며 손을 흔들 뿐이다. 늘 햇빛 아래 말간 조약돌같던 얼굴이 하얗게 질려있어 테토라는 슬며시 미간을 찌푸렸다.

“아침보다 얼굴이 더 안 좋아진 것 같은데여…….”

“겨, 겨울이 다가와서 그런가보오?! ……그래도 건너편 건물 신호로 뉴스 들어보니까, 내일부터는 기온이 조금 올라간다고 했소.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으~뮤, 역시 당분간은 능력을 거두는 게 어떻겠슴까. 걱정되는 건 알겠지만 집행관이 갑자기 들이닥치지도 않을 거고.”

“그러다, 저번처럼 잘못되기라도 하면…….”

“이번엔 괜찮을 거야, 시노부 군.”

어느새 물뿌리개를 내려놓고 이쪽으로 다가온 미도리가 말했다. 버려진 동네라 발에 채이도록 잡초가 많아서. 누가 주변에서 서성거리면 내가 막을게. 귀찮지만……. 말을 더 잇지않고 대충 뒷머리만 휘적이고 마는 건 아마 쑥쓰럽기 때문일 것이다. 미도리 군……! 홀로 감동의 도가니에 빠진 시노부를 냅두고, 미도리는 테토라의 손에서 양동이를 뺏어들더니 후다닥 방 안으로 사라졌다. 킥킥대며 그 뒷모습을 바라보던 테토라가 고개를 돌렸다.

“여하튼 그런검다. 진짜 겨울이 오기 전에 좀 쉬어여, 시노부 군.”

“으음, 정말 괜찮겠소……?”

“당연히 괜찮슴다! 미도리 군도 할 때는 하는 아이라구여. (다 들려, 테토라 군.) 게다가 밤에는 저도 불침번을 설테니 부담이 덜 할검다.”

최근 움직일 일이 많이 없어서 힘이 남아 돈다니까여! 두 주먹을 불끈 쥐어보인 테토라가 보란듯이 씨익, 웃어주기까지 하고서야 시노부는 어정쩡한 얼굴로나마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그럼, 한 번만 부탁하겠소…? 더 하셔도 됨다! 그래놓고도 영 마음을 못 놓았는지, 시노부는 담요로 돌돌 말리는 와중에도 정말 괜찮겠냐고 몇 번이고 물었다. 그 때마다 미도리와 테토라는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우리를 그렇게 못 믿느냐며 장난스레 시노부를 다그쳤다. 정말 괜찮으니 쉬기나 하라는 말도 잊지 않았다.

솔직히, 테토라도 미도리도, 시노부의 걱정이 이해가 아주 안 되는 건 아니다. 그들이 어린 나이에, 고작 셋 뿐이서, 누구 하나 낙오되는 사람 없이 지금까지 도망쳐 다닐 수 있었던 데에는 시노부의 공이 컸다. 자신은 물론이고 주변의 기척까지 죽일 수 있는 능력은 폭주해도 티가 나지 않아서, 아니, 오히려 폭주할수록 도망에는 용이했기 때문에. 

그래서 처음, 시노부는 자신의 능력을 좋아하지 못했다고 했다. 목이 터지도록 소리쳐도 존재를 증명받을 수 없어서.

“아마 자신을 찾을 수 있는 사람을 지키고 싶은 거겠져, 시노부 군 나름대로.”

“그렇다고 해도, 봐……. 이대로 시노부 군이 무리하는 건 테토라 군도 싫을 거 아냐.”

“당연함다! 오히려 더 맡겨줬음 좋겠다고 생각함다. 저도 미도리 군도, 그렇게 약하지 않은데.”

“으응. ……이번만 힘내자, 테토라 군.”

“아니, 앞으로도 힘내야 함다. 슬쩍 빼지 마십셔.”

늦은 저녁이었다. 그간 쌓인 피로가 몰아닥친 듯 순식간에 잠들어버린 시노부를 침대에 눕히고, (그나마 멀쩡한 침대였다.) 테토라와 미도리는 거실에 앉아 간단하게 식사를 해치웠다. 테토라는 몇 주 내내 통조림인 게 영 불만이라, 전투적으로 숟가락질을 하며 다음번에는 꼭 고기를 왕창 사올 것이라고 호언장담을 했다. 미도리는 대충 흘려들은 것 같지만.

불은 부러 밝히지 않았다. 이런 반 죽은 동네에서 밤에 밝게 지내는 건 위험을 끌어들이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대신 금 간 유리 틈으로 달빛이 스며들어 집 안은 희뿌옇게 밝혔다. 먼 곳에서부터 도시의 사그라들지 않은 소음이 닿아 뭉툭한 형태로 부서지고, 창 쪽으로 까치발을 들어 내다보면 그 너머에서만 따스한 불빛들이 깜빡이는 게 보였다. 언제까지고 저물지 않을 것처럼. 

반면 이 집 안은 벌써 밤 한가운데다. 저 사회에 편승하고자 하는 마음은 눈꼽만큼도 없었지만, 테토라는 이럴 때 가끔, 도망만 치는 삶에 이유 모를 탈력감을 느꼈다. 소리없이 들숨을 뱉고 카우치에 푹 기대니, 옆에서 온 몸으로 라바램프를 껴안고 그 안을 둥실둥실 떠다니는 왁스를 바라보던 미도리가 별안간 고개를 쳐들었다. 

“테토라 군.”

“뭠까.”

“누가 왔어.”

두 명. 발소리를 안 죽이는 걸 보니 집행관은 아닌데, 일반인도 아닌 것 같아. 미도리의 조그마한 목소리를 따라 방 안으로 긴장감이 낮게 깔렸다. 테토라가 소리없이 일어섰다. 오랜만에 목 뒤의 머리까지 쭈뼛 서는 기분이다. 주변 식물들이 나뭇잎을 떠는 게 살갗으로 느껴졌다. 미도리 군, 우선 진정하십셔. 혼자가 아니니까. 조용히 미도리의 어깨를 짚어주고서야, 떨림이 멈췄다. 테토라는 두어번 눈을 깜박이고 숨을 죽였다.

확장된 테토라의 청각이 기민하게 이리로 다가오는 발소리를 잡아냈다. 둘. 남성. 키는 아마도 170 이상. 확실히 집행관이나 매매집단은 아니다. 그런 것 치고 조심성이 없다. 그러나, 일반인이라면 이 밤에 이 거리를, 이렇게나 당당하게 어슬렁거리지 않을 것이다. 미도리가 일어서는 동안, 테토라는 허공을 뛰어넘어 철문에 다가섰다. 힘이 과하게 들어간 손등 위로 서슬 퍼렇게 힘줄이 돋았다.

발소리는 ‘우리 집’의 문 바로 앞에서 멈춰섰다. 아무래도 자기들끼리 이야기라도 하는 듯 두런두런한 소리가 조그맣게 울렸다. 테토라는 자세를 낮추고 문고리가 돌아가기를 기다렸다. 이윽고. 

똑, 똑, 똑.

노크는 정확히 세 번이었다. 이외의 다른 움직임 없이. 뭐지?

둘이 잠깐 의아한 티를 숨기지 못한 사이, 바깥의 남성이 소리쳤다.

“어~이, 별 일 아니니 잠깐 문 좀 열어주지 않겠나!”

“않겠나~”

“잠깐이면 되니까 말이다!”

“말이다~”

소년과 청년의 중간인 것 같은, 꽤나 듣기 좋은 목소리였다. 하나는 바다를 유영하는 듯 부드럽고, 또 하나는…… 쓸 데 없이 우렁찼다. 테토라와 미도리가 일부러 불을 꺼둔 이유가 무색해질 만큼. 아마 그래서― 잠깐만 나와달라는 목소리가 한 톨의 거짓도 없는 듯 들리면서도 저 자기주장 강한 목소리를 듣고 진짜 집행관이 오기라도 할까봐, 테토라가 더 다급하게 입을 열었을지도 몰랐다.

“뭐하는 검까, 목소리 좀 낮추십셔!”

“테, 테토라 군!”

아. 뒤늦게 입을 막아도 이미 늦은 일이다. 철문 뒤로 호쾌한 웃음이 울려퍼졌다. 하하하, 아이들은 곧 잘 시간이라고? 그 밝은 소리가 테토라에게는 일종의, 종 치는 소리처럼 들렸다. 저는 정말 바보임다……! 응, 이제 정말 글렀네……. 달빛을 뒤로 한 미도리가 희미하게 미소짓다, 얼굴을 굳혔다.

탁 풀려버린 긴장을 뒤로 하고, 테토라가 애써 고장난 머리를 굴렸다. 저쪽은 둘, 이쪽도 우선 둘이니 승산이 아주 없는 건 아니다. 이렇게 된 거 이야기라도 들어보는 게 나을 수도 있다. 이상한 걸 요구하는 즉시, 전 주인의 친구로 만들어주면 될 일이다. 

좋아. 괜찮아. 

사실 안 괜찮았지만, 별 수 없다. 

끼이익, 육중한 소리를 내며 틈을 만든 철문 사이로 별안간 단단한 손이 파고들어 문을 활짝 열어젖혔다. 테토라는 즉시 문에서 물러났다. 딱히 기대는 안했다는 듯 망설임 없는 움직임이었다. 그리고, 마침 떨어져있던 정원용 가위를 거꾸로 들어 남자의 턱 아래로 겨눴다. 날 끝이 금방 여린 살을 파고들어 핏방울이 맺혔다. 단 몇 초 사이의 일이었다. 

치아키! 조금 뒤쪽에 서 있던 남자가 작게 소리치는 게 들렸다. 아마 이름이겠지. 테토라는 빠르게 눈 앞의 ‘치아키’를 훑었다. 싸울 의사가 없다는 제스쳐를 취한 채 눈을 맞춰오는 남자는 어디서나 볼 수 있을 정도로 흔한 갈색 머리, 갈색 눈의 소유자였다. 시원시원한 미남이긴 했으나 테토라에겐 중요하지 않았다. 보이는 무기는 없고, 단련한 티는 났지만 휴식기를 오래 가진 듯 싶었다. 가볍게 올린 두 팔의 크고 작은 상처들을 뚫어져라 바라보던 테토라가, 나지막이 물었다.

“무슨 용건임까.”

순간, 치아키의 눈이 반짝이며 휘어졌다. 밤하늘에 눈치없이 떠오른 해처럼. 그 물음을 기다렸다는 듯이.

“음! 훔쳐간 지갑을 찾으러 왔다!”

하……? 테토라가, 듣고 있던 미도리까지 얼이 빠져 그들을 바라보는데도 아랑곳않고, 갑자기 들이닥친 두 남성은 아무 일도 없다는 듯 웃고만 있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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