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든 해 보겠다는 흔적

당신과 메리 크리스마스!

소마안즈

<주의사항>

-소마와 안즈가 연애하고 있다는 것 전제 하에 작성된 글입니다.


<추천 음악>

Over the Christmas - LUCY


솔—라 솔미 / 솔—라 솔미 / 레—레 시 / 도—도 솔

어디선가, 이맘때 즈음 길을 가며 듣던 선율이 얕은 잠을 깨운다. 칸자키 소마는 제 품에 있던 무언가를 그러쥐려는 듯 손짓했고, 곧 눈을 비비며 잠들어 있던 정신을 깨웠다. 서투르지만 아름다운 건반의 음률. 가끔 음을 틀리더라도, 제 정성껏 건반을 누르고 그 위로 넘실넘실 가사를 붙이는 다정한 목소리가 방을 가득 채웠다.

“고요한 밤, 거룩한 밤—. 어둠에 묻힌 밤,”

안즈는 눈을 살포시 감으며 가사를 천천히 읊었다. 문득, 부스럭거리는 인기척에 노래를 부르다 말고선 뒤를 돌아보았다.

“응, 좋은 아침. 소마 군.”

제가 노래 부르는 모습이 쑥스러웠는지 멋쩍게 웃는 안즈의 뒤를 칸자키가 살포시 안았다. 장난스레 안즈의 허리를 끌어안은 그는 세상을 다 가진 듯 맑게 웃으며 대답했다.

“새삼 아름다운 아침이오, 안즈 공.”

고요한 밤, 거룩한 밤.


당신과 미리 메리 크리스마스?!


“웬일로 일찍 일어나셨구려, 안즈 공.”

“크리스마스이브니까. 으음… 가끔 시간 내서 캐럴 몇 곡을 배웠는데, 소마 군 앞에서 당당하게 칠 만한 실력은 아니라서, 그러니까! 나 혼자 부르려고 일찍 일어났는데… 소마 군이 일어날 줄은 몰랐지.”

“그 말인 즉슨, 소인에게 그 연주를 들려주고 싶지 않았다는 것이오? 그런 의미라면 소인, 조금 서글퍼지오만. 아주 멋진 연주였으니 말이오.”

슬그머니 미소 짓는 칸자키의 얼굴을 차마 마주하지 못해 얼굴을 푹 숙인 안즈의 귀가 붉었다. 그런 것 마저 귀여운 아이를 보는 것처럼 사랑스러운 시선을 보내는 칸자키 때문에 더더욱.

안즈가 곧 고개를 들어 제 접시 위에 놓인 토스트를 먹기 좋은 크기로 썰었다. 그러고선, 제가 한 조각을 먹고는 자연스레 칸자키에게 한 조각을 건넸다. 그가 가만 멈춰 있다가 이내 토스트 조각을 입에 넣었다.

“오늘 계획은?”

“오늘?”

“응, 크리스마스이브니까 거리에 엄청 할 거 많을 걸? 나갈까?”

“좋소, 소인에게는 아직 『크리스마스』에 미숙하오니 공께서 천천히 알려주시구려.”

“좋아! 으음… 역시 크리스마스면 트리 아닐까? 트리 사러 갈까? 트리 장식도 사서 꾸미면 좋겠다. 으음, 또… 케이크를 빼 놓을 수는 없지. 중간에 베이커리 들러서 케이크 사자! 롤케이크가 먹고 싶네.”

『트리』! 소인도 한 번 꾸며보고 싶었소이다. 그렇게 재밌고 예쁘다던데, 궁금하오. 『케이크』는 장식이 올려진 게 예쁠 것 같구려. 소인들, 예약 같은 것도 없었으니 잘 될지는 모르겠소.”

“에이, 구하기 어렵긴 하겠지만 아예 팔지 않지는 않을 거야. 걱정 말고, 가보자!”

“자아, 자아. 알겠으니 그 『토스트』나 남기지 마시오, 안즈 공. 겨우 식빵 하나이오만 공께서 그것조차 남기시면 소인은 어떻게 반응해야 하오?”

“알겠어, 소마 군도 얼른얼른 챙기고 있어! 그래야 바로 나가지.”

“오늘은 날이 많이 추우니 공께서도 유의하시오!”

“어디부터 갈까? 역시 트리가 먼저인가?”

“으음, 역시 그게 낫지 않겠소? 『케이크』를 계속 대롱대롱 가지고 다니기에는 무리가 있으니 말이오. …앗, 저기 보시오, 안즈 공!”

칸자키가 안즈와 대화하며 불을 환하게 켜 둔 장식점을 가리켰다. 전구를 두른 트리와 트리 위에 얹은 샛노란 별이 대낮에도 보일 만큼 환한 빛을 냈다.

『트리』를 파는 곳 같소! 『쇼윈도』에도 유리구슬 같은 게 즐비하구려. 아, 저 양말도 방송을 진행하며 들은 적 있소. 『산타』가 선물을 담아주는 것이라 들었소만!”

쇼윈도에 자리 잡은 스노우 볼과 양말, 작은 유리 트리로도 잔뜩 들뜬 칸자키였다. 안즈는 저보다 그가 더 신난 것 같다는 눈치로 소리 내어 웃었지만 알아차릴 리가 없는 터. 그걸 잘 알고 있던 안즈는 “응, 저건 그냥 유리구슬이 아니라 스노우 볼이야. 봐, 저기 작은 마을이 있지?”라며 따스하게 대답해 줄 뿐이었다.

딸랑, 문 위에 달린 종이 소리 냈다. 빨간색과 초록색으로 휘황찬란하게 꾸며둔 장식점은, 두 사람을 놀라게 하기에 충분했다. 칸자키가 문에 달린 ‘Merry Christmas’ 금박이 박힌 리스를 조심히 쓰다듬었다. 뭐, 나야 기획 그런 거 때문에라도 이런 곳에 많이 와 봤지만 소마 군은 아니겠지. 안즈는 그런 생각을 하며 직원에게 트리 소개를 부탁했다. 직원은 곧 아담한 트리부터 칸자키와 키가 비슷한 초록 나무들을 소개했다. 어떤 나무는 하얗기도 했고, 어떤 나무는 벌써 전구로 옷을 갈아입은 지 오래였다. 안즈는 어느 것이 집 분위기에 어울릴까, 고민하며 이 나무 저 나무를 살폈다. 음, 으음… 저 나무도 예쁘고, 이것도 예뻐! 결국 고르지 못한 안즈는 칸자키를 불렀다. 칸자키가 투명한 구슬들을 신기한 것 보듯 바라보다가 안즈의 목소리에 조르르 자리를 옮겼다.

“무슨 일이오?”

“그게, 트리를 사야 하는데 어느 트리가 우리 집에 잘 어울릴지 잘 모르겠어.”

“음, 역시 키가 큰 나무 보다는 아담한 나무가 낫지 않겠소이까? 거실 구석에 둘 거라고 생각한다면, 이 정도 크기면 될 것 같소만….”

그가 하얀 나무 하나를 가리키며 말했다. 안즈도 고개를 끄덕이며 그 의견에 동참하는 듯했다. 곧 다시 안즈가 물었다.

“그럼 하얀 트리와 초록 트리 중 뭐가 나을까?”

“음, 소인들의 집은 대체로 목제 가구가 많고 깔끔하게 배치 해 놓았으니 하얀 나무가…”

칸자키가 하얀 나무를 가리키며 안즈의 얼굴을 슥 살폈다. …어두워도 이렇게 어두울 수가 없소! 그는 안즈의 얼굴을 보며 그렇게 생각했다. 그리고, 그 생각은 그가 초록 나무를 가리켰을 때 바뀌었다. ……밝소. 아주 밝소이다. 안즈 공께선 이미 초록 ‘트리'로 마음을 정해둔 것 같소만…. 칸자키가 푸흐, 하고 엷은 웃음을 터뜨리며 초록 나무가 좋겠구려, 라고 덧붙였다. 안즈가 반색하며 “네! 그럼 이 초록 트리로 주세요.”라며 세상 밝은 목소리로 말했다.

“장식은 마음에 정해둔 게 있소?”

“응? 이제 사야지.”

안즈는 그렇게 대답하며 오너먼트가 줄지은 곳으로 향했다. 파란색 오너먼트, 하얀색, 빨간색, 초록색…. 형형색색의 오너먼트가 각각 제각기 전부 다른 무늬를 가진 채 바구니에 얌전히 놓여 있었다. 안즈는 오너먼트 몇 개를 만져보기도 하고, 그러쥐어 보기도 하며 몇 개를 바구니에 담았다. 그러면서도, 문득 이거 달자며 열심히 어필하던 장식이 있었으니…!

“은 종?”

“응! 예쁘지? 봐, 이거 소리도 예뻐.”

안즈가 칸자키의 귓가에서 은 종을 흔들었다. 곧, 딸랑 하는 맑은 소리가 귓가에 울려 퍼졌다.

“흔하지 않은 장식이구려. 『트리』에 달면 화사할 것 같소.”

“그렇지? 그런데 소마 군은 마음에 드는 장식이 없어? 하나도 안 담았네.”

“그건, …….”

칸자키가 무어라 말하려다 말았다. 음, 그러니까. 안즈가 들고 있던 하얀 바구니 속 한가득 담긴 장식을 확인했는데도 담는 건 뭔가 아닌 것 같달까. 칸자키는 그렇게 말하려다, 그러면 안 될 것 같다는 눈치에 이끌려 그런 말을 했다.

“소인은 아직 어떤 걸 해야 할지 잘 모르겠소.”

안즈가 그 말에 골똘히 고민하더니, 이내 활짝 웃으면서 제 바구니 속 오너먼트들을 조심히 들췄다. 곧 안즈가 파묻힌 무언가를 조심히 꺼내 들었다.

“그럴 줄 알고 소마 군 것도 미리 담아 놨어.”

오색의 귀여운 말 장식. 칸자키 소마는 그 말을 보며 추스를 새도 없이 웃어버렸다.

오너먼트 구경과 구매를 끝낸 후 둘은 제법 무거워진 양손을 이끌고 베이커리로 향했다. 하지만 케이크가 가장 잘 팔리는 기념일, 크리스마스에 케이크가 남은 베이커리를 찾기는 힘든 법! 둘은 이 곳 저 곳, ‘제과점’이라든지, ‘베이커리’라든지 그런 부류의 단어가 적힌 곳이라면 어디든 들어가 보았다. 하지만 텅 빈 진열장을 마주하고 다시 나오길 몇 번째. 그러나, 그러나, 둘은 어째 포기하지 않았다. 음, 뭐랄까. 제 옆에 있는 상대가 그걸 간절히 바라는 것 같으니까, 꼭 이뤄주고 싶어서.

아마 여러 베이커리를 들락날락한 지 오십 여 분 만에 롤케이크가 하나 남은 곳을 발견했다. 둘은 그때 세상 기쁜 표정을 지으며 해냈다고 말하고선, 망설임 없이 케이크를 결제했다. 호불호 없이 귀여운 초콜릿 롤 케이크였다.

저녁 식사를 간단하게 끝낸 뒤 안즈가 쌓여 있던 종이 가방을 풀기 시작했다. 일단 부피가 가장 큰 트리부터. 조립하는 건 그다지 어렵지 않아 금세 나무의 형태를 띄기 시작했고 그럴싸한 크리스마스트리가 되었다. 칸자키는 설거지를 하는 내내 제 뒤 쪽 언저리에서 달그락달그락 하는 소리가 들리니 대체 뭐 하는 건가, 그런 생각만 했지만. 안즈는 종이 가방 두어 개를 더 들고 오더니, 거실에 자리를 잡고 가방 속 담긴 귀여운 오너먼트들을 꺼내기 시작했다.

“저어, 안즈 공. 소인, 궁금한 게 있소만.”

“응?”

“장식점에서 소인들, 얼마나 구매한 건지…?”

설거지를 끝내고 뒤를 돌아 본 칸자키는 언뜻 당황스러워하는 안즈를 마주했다. 어딘가 안절부절못하고, 뭔가를 숨기는 것 같은 표정. 칸자키는 종이 가방에 살포시 붙어 있던 영수증을 살폈다.

“진목이 아니니 그렇게 비싸지는 않고, 으음…. 전구 두 종류, 꼭대기에 달 큰 별 하나. 도합해서 팔 천 엔 정도이오만. …도합이 어째서 이 만 엔이 나온 것이오? 대체 무슨 일이….”

칸자키는 바닥에 널브러진 종이 가방을 쓱 훑었다. 오너먼트만 담긴 상자가 네 상자. 크리스마스 리스, 양말에 선물 상자까지. 그 순간 칸자키는 모든 걸 이해할 수 있었다. 안즈는 무슨 쓴 소리를 들을까 고민했으나, 칸자키는 이내 픽 웃으며 안즈의 곁에 주저앉았다.

“자아, 소인 역시 가사를 일단락했으니 『트리』를 꾸미는 데 합세하겠소.”

그가 가지에 말 장식을 달며 웃었다. 안즈는 그의 모습을 빤히, 두세 번 연신 바라보다 어린 아이처럼 퍽이나 맑게 웃어 버렸다.

이쪽에는 눈꽃 무늬가 박힌 파란 오너먼트를 달자. 으음…. 하지만, 그 옆에 바로 푸른색의 장식이 있지 않소? 차라리 여기에 노란 종을 달자는 게 소인의 의견이오. …엑, 소마 군. 그러면 여기다가 말 장식을 달면 안 됐지. 나름의 포인트인데 다 가려지잖아! 오호, 과연 『프로듀서』 안즈 공이구려, 소인, 공께서 은 종을 거의 중앙에 매단 것을 보지 못했소. 그러면 여기다가 노란 장식을 달자, 그리고 말 장식은… 은 종 옆에 달까? 음! 과연 좋은 생각이오!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그들의 트리는 점차 옷차림을 가꿨다. 하얀 눈꽃이 박힌 푸른 오너먼트도, 맑은 소리의 은 종도, 마치 피냐타* 같은 말 장식도, 어딘가 왠지 어울리지 않는 빨간 장식도 한 데 모여 오묘하나 찬란한 크리스마스트리를 만들어냈다. 전구를 두르고, 연결한 뒤… 팟, 스위치를 켜자 빨갛고 노란 불빛이 거실을 밝혔다.

*피냐타 : 과자와 장난감 등을 넣은 종이 인형.

“어때?”

『크리스마스트리』…”

칸자키는 잠시간 말을 않다가 웃었다.

“이럴 때 항상 생각하는 것이오만, 그대를 만나지 않았다면 이런 것도 모르고 살았겠지, 라는 생각이 드오. 그래서 공과 만난 게 천운이랄까… 올해도 고맙구려.”

“쑥스럽게. 응, 뭐…… 나도 고마워.”

둘은 금세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푹 숙였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그들은 서로를 바라보고 웃었다. 왜냐하면, 둘 다 선물 상자 하나씩을 놓다가 손이 맞닿았기 때문에. 각자가 서로에게 주는 선물인 걸 진즉 알고 있는 둘이기에 더 웃어버렸다.

“밤이 꽤 늦었구려.”

“음, 벌써 아홉 시네…. 아, 소마 군! 영화 보고 잘까? 크리스마스라 영화 많이 방송하던데.”

칸자키가 고개를 끄덕이자 안즈는 TV를 켰다. 곧, 키자마자 다양한 채널에서 다양한 크리스마스 특집 방송을 하고 있었다. 깜빡, 깜빡. 채널이 수어 번 넘어간 뒤, 안즈는 영화가 곧 방송된다는 문구가 자리 잡고 있는 채널에 멈추어 섰다.

“이거 볼까?”

“좋소이다.”


“해피 버스데이, 제인.”

영화의 마지막 대사가 끝나자 칸자키는 턱을 괴던 자세를 고쳐 앉았다. 그냥, 형식적인 이별 이야기였다. 크리스마스에 이별한 건 슬프긴 하지만. 으음… 생각보다 예상되는 전개라, 칸자키는 입에서 녹이고 있는 사탕을 굴리며 ‘안즈 공께선 어떻게 보셨을지 모르겠소.’라 생각할 뿐이었다.

“저어, 안즈 공?”

제 어깨에 기대어 앉은 안즈를 바라보았다. …지루했나, 자나 보네. 새근새근 숨소리가 들려오고, 칸자키는 탁자를 적당히 정리했다. 여기서 자면 감기 걸릴 게 뻔하니까 침실에 옮겨 놓으려는 그의 생각이었지만, 그는 잠든 안즈의 얼굴을 바라보다 그 생각을 고쳐 먹었다.

“…하하, 안즈 공. 울면 『산타』가 선물을 주지 않는다고 하지 않았소이까.”

안즈의 눈시울이 붉었다. 눈물 자국도 있고…. 그런 안즈를 문득 바라보던 칸자키는, 오늘만큼은 거실에서 둘이 자도 괜찮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이불을 고쳐 다시 덮고, 아직 눈물이 맺힌 안즈의 눈가를 톡톡 닦아주며 누웠다. 먼저 잠든 안즈의 얼굴을 보며 칸자키가 홀로 중얼거렸다.

『메리 크리스마스』, 잘 부탁하오, 안즈 공…♪︎”


당신과 메리 크리스마스!!


“청자분들, 메리 크리스마스! 오늘은 크리스마스답게 거리가 벌써 북적이는데요, 여러분의 계획은 무엇인가요? 아, A 님께서 사연 보내주셨어요. ‘크리스마스는 원래 24일에 잠들어서 26일에 일어나는 날 아니었나요?! 아니나 다를까, 아이가 깨워서 나갈 준비를 하고 있네요. 오늘 저는 아이와 크리스마스 맞이 연극을 보러 가요. 아이보다 제가 더 들떴네요.’ 크리스마스는 24일에 자서 26일에 일어나는 날이다! 하아, 저도 자는 거 참 좋아하는데요! 하지만 크리스마스만큼은 꼭 깨어 있고 싶은 그 느낌 아시나 모르겠습니다~. A 님에게는 따뜻한 핫초코 보내드릴게요.”

라디오 주파수를 통해 흘러나오는 크리스마스 캐럴에 칸자키가 눈을 깜빡였다.

“여러분, 그거 아세요? 제가 또 좋은 소식 들고 왔지요. 바로,”

또 신나는 캐럴에 한 번 더 눈을 깜빡이고,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오늘 눈이 온다는 거죠! 화이트 크리스마스네요~.”

“메리 크리스마스! 잘 잤어, 소마 군?”

안즈가 식탁에 갖가지 음식을 올려 놓으며 말했다. 식탁의 중앙에는 어제 샀던 초콜릿 롤케이크가, 주변에는 간단한 아침 식사가 놓여 있었다. 칸자키는 그 모습을 바라보다가, 안즈를 바라보며 “‘메리 크리스마스'이오, 안즈 공.”이라며 따스하게 웃었다.

“얼른 일어나서 아침 먹자. 핫초코는 식으면 맛 없어. 그리고 오늘은 밖에 나가야지! 안 그래?”

안즈의 독촉에 칸자키는 몸을 일으켰다. 연신 하품하며 앉은 식탁에는, 딸기잼이 발린 토스트와 달걀 프라이가 놓인 접시가 자리하고 있었다. 칸자키는 아무 생각 없이 자리에 앉으려다 픽하고 웃었다. 안즈가 의뭉스러운 눈으로 그를 바라보자 그가 큭큭 웃으며 이야기했다.

“소인들의 나이가 올해 스물 여덟. 그래서 그런 것인지 『크리스마스』라는 기념일에 가장 먼저 하는 일을 둘 다 잊은 모양이오.”

안즈가 어리둥절해하자 칸자키가 일어나 트리로 다가갔다. 곱게 포장된 선물 상자 두어 개를 양손에 하나씩 들어 다시 식탁으로 가져왔다.

“자아, 쪽지에 ‘안즈’라 적힌 것이 안즈 공의 선물이지 않겠소? 간밤에 『산타』가 두고 간 모양이오.”

가만, 사실 어제 다 들키지 않았나? 칸자키는 그 사실을 늦게 알아차리고 멋쩍게 웃었다. 그러나 안즈는, 그가 건네는 제 선물을 받아 들었다.

“열어보자. 산타 할아버지가 뭘 두고 가셨을까?”

안즈는 조심조심, 하얀 포장지에 붙은 투명 테이프를 뜯어내었다. 이쪽 끈을 풀고, 저 쪽 끈을 풀고…. 또 다시 나타난 분홍빛 포장지에 고개를 기울였다가 조심조심, 재차 뜯었다. 폭신폭신한 감촉에 안즈의 표정은 점차 상기되어갔다.

그리고, 그 정체를 맞이한 순간!

“귀여워!”

안즈의 입에서 나온 첫 마디는 그 말이었다. 느긋한 표정을 지은 채 잠든 곰 인형을, 안즈는 제 품에 꼭 끌어안았다. 정말이지, 목에 달린 리본까지 전부 좋아! 안즈가 해맑게 미소 지으며 곰 인형을 사랑스럽게 쓰다듬었다.

“공께서 좋아하시니 소인의 선물도 소인이 좋아할 것 같아 기대되오. 소인도 열어 보겠소이다….”

칸자키는 제 품에 들린 선물 상자의 뚜껑을 열었다. 그 순간, 팡! 하는 소리와 함께 꾹꾹 눌러 담겨 있던 거북이 인형이 모습을 드러냈다. 허어, 칸자키는 놀란 듯 천천히 숨을 내쉬었다. 그러고는 천천히, 조심스럽게 인형을 꺼냈다. 이리저리, 여기저기 그 인형을 살펴보는 동안 그는 잠시 골똘히 고민했다. 안즈가 왠지 걱정되는 얼굴로 “마음에 안 들어?”라고 묻자, 그는 전혀 아니라는 듯 싱긋 웃어 보였다.

“이 인형, 카메고로를 닮았구려. 그 생각이 들어 한참 동안 바라보고 있었소. 정말 마음에 드는 구려. 『산타』가 어떻게 이리 기호를 잘 맞추는지… 소인, 안즈 공의 생일에만 그 능력을 훔쳐 가고 싶소.”

둘은 한참이나 서로가 받은 인형을 바라보다가, 서로를 바라보았다. …닮았어, 역시. 그런 생각을 둘 다 한 건지, 서로는 피식 웃다가 하하, 웃음을 터뜨리더니 더 크게 웃었다.

그래, 만약 크리스마스 케이크가 보고 말할 수 있었다면 “그래서 나는 어떻게 되는 거야?”라고 물었을 지도.

“안즈 공, 그거 들었소? 오늘 눈이 와서 『화이트 크리스마스』라고 하던데.”

“어! 오늘 라디오에서 들었어. 언제쯤 오려나? 지금은 너무 맑잖아.”

둘은 거리로 나가며 한 걸음, 한 걸음 맞추어 걸었다. 오늘이 화이트 크리스마스라고 이미 다 소문이 난 건지, 언제 눈 올지를 점지하듯 예상하는 여러 사람들을 스쳐 지나갔다.

“오늘은 뭐할까, 하고 싶은 거 있어?”

“일단 아침에는 백화점을 가기로 하지 않았소? 얼른 가세. 사람이 몰리면 구경도 어려울 것 같소!”

아, 참. 그랬지! 안즈는 슬쩍 칸자키와 팔짱을 끼더니 “응, 얼른 가자. 잊고 있었어.”라며 덧붙였다.

백화점의 중앙에는 하얀 크리스마스트리가 보란 듯이 떡하니 자리하고 있었다. 그것도 엄청나게 큰. 멋지다… 하고 한 눈을 팔고 있는 안즈와 음, 『크리스마스트리』구려! 라는 간결한 한 마디로 생각을 마친 칸자키는 어딘가 맞지 않아 보였지만. 크리스마스라 그런지 백화점도 할인 행사라든지, 형형색색의 물품을 들여놓으려 아주 노력한 모양이다. 칸자키는 홀에 들어서자마자 위치한 매장에서 옷을 둘러보았다. 이 옷은 하얗고, 안감 재질도 좋구나, 음, 저 옷도 그렇구려. 옷과 눈싸움하듯 열심히 노려본 후에야 다른 옷으로 시선을 돌린 그의 시야에 하나가 걸렸다.

한 겨울에 입기에는 무리가 있어 보이지만 봄에 입을 거라면 아주 제격인 옷이었다. 옷의 중앙과 우측 중간 즈음, 하얀 프릴이 달려 있어 깔끔하게 예뻤다. 옷 색은 하얀색, 짙은 보라색, 붉은색 다양하게 있는 모양이지. 역시 제격이오, 안즈 공께! 그는 모든 생각을 한마디로 정리한 뒤 안즈를 부르려고 뒤를 돌았다. 그 순간, 어딘가 몰두하고 있다가 칸자키를 부르려던 안즈와 정확하게 눈이 맞아떨어졌다. 안즈는 그에게 와보라며 열심히 손짓했고 칸자키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에게 다가갔다.

“무슨 일이오?”

안즈에게 다가간 칸자키가 안즈의 주변을 슥 둘러보았다. 행거에 촘촘히 걸린 붉지만 하얀 포인트의 의상, 산타의 의상이었다.

“이거 입고 사진 찍으면 여기 트리에 글을 써서 매달 수 있대. 내년에 와서 그때 쓴 걸 다시 보는 시스템인가 봐. 우리도 할까? 어때?”

칸자키가 두어번 고민하다 그러자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마자 안즈의 눈이 빠르게 굴러가더니 의상 몇 벌을 집었다.

“자, 이거 입고 와! 나도 입고 올게.”

안즈의 의상은 하얀 셔츠와 적당한 길이의 치마였다. 산타 로브까지 두른 깔끔하고 귀여운 의상! 자신의 코디에 나름대로 만족하다가 제가 칸자키에게 골라주었던 의상이 생각나 웃음을 멈출 수 없었다. 의상만 준 건 아니었거든, 소품도 줬지. 장난스러운 생각만 반복하다 “저, 안즈 공? 이게 맞소?”라고 말하는 당황스러운 목소리에 뒤를 돌아 바라보았다.

풉, 하하하! 안즈가 칸자키의 옷차림을 보고 세상 재밌는 거 본 듯 웃기 시작했다. 보통 산타라고 하면 생각하는 빨간 의상을 입은 것 까진 그렇다고 하지만, 진짜, 진짜 같이 챙겨준 수염까지 하고 와 줄 줄은 몰랐어. 칸자키가 하얗고 곱슬곱슬 말린 수염을 제 것인 것처럼 쓸어내렸다. 어색한 익숙함에 교묘한 표정만 짓다가, 또 그 모습을 보고 웃는 안즈를 보며 저도 모르게 싱긋 웃어버렸다.

사진 촬영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트리 앞에서 하트를 만든 둘의 모습을 폴라로이드 카메라로 찰칵, 찍은 뒤 사진을 받으면 끝이었으니까. 둘은 받은 사진 두 장을 질세라 열심히 흔들었다. 곧 팔락이는 사진 위로 두 사람이 해맑게 미소 지었다.

“으음, 뭐라고 쓸까?”

둘에게 주어진 쪽지 두 장과 펜 두 자루. 안즈와 칸자키는 가만히 빈 쪽지를 바라보다가, 먼저 말을 꺼낸 건 칸자키였다.

“서로에게 편지를 쓰는 건 어떻소? 소인들, 둘 다 어떤 말을 써야 할지 모르는 것 같으니 말이오.”

“그거 좋다. 그래, 그럼 다 쓰고 봐!”

말은 그렇게 자신 있게 했지만, 정작 뭐라고 써야 할지 모르는 건 둘 모두였다. / 일단 서두를 어떻게 써야 하지? 내년의 너에게 올해의 내가? / …음, 서두부터 ‘사랑하는’ 이란 단어를 쓰면 어색하지 않겠소? / 서두는 서두고, 내용은 어쩌지? 그때는 뭐 하고 있어? 아이돌이야, 아니면 배우? 이건 너무 형식적이잖아. / 공께 무슨 말씀을 드려야 할지… 안부를 묻기에는 이 편지의 명색이 『크리스마스카드』잖소. / 연신 고민에 고민만 이어갔다. 저 말을 써 볼까 고민하다가, 이 말을 써서 지우고. 수십번을 반복하다가 둘은 문득 하나의 말을 떠올렸다. 어디서나 아주 많이 들을 흔한 말이지만, 그래, 이것만큼 잘 전달되는 게 어딨다고 그래.

‘내년도 잘 부탁해, 메리 크리스마스.’

‘내년에도 부디 잘 부탁드리오! 그대와 함께, 최대한 오래 『메리 크리스마스』라고 말하고 싶소.’

“다 썼어?”

“마무리됐소. 자, 이렇게 달면 되는 거 맞소?”

“응, 잘 달았다! 나도 소마 군 옆에….”

노란 별과 하얀 달이 사이 좋게 걸렸다. 둘은 그렇게, 싱긋 미소 지으며 편지를 바라보았다.

“이제 뭐 할까? 좋은 생각 있어?”

안즈가 물었다. 그러자 칸자키는 그 말만을 기다렸다는 듯 대답했다.

“공께 어울리는 옷을 찾았소! 그러니, 부디 함께 보러 가주지 않겠소이까?”

안즈가 잠시 벙쪄 있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무슨 옷이길래?”라고 물었다. 응, 솔직히 말해서. 여기가 백화점인 걸 잊고 있었어.

신나게,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옷을 구경하다 백화점에서 나온 시각은 오후 일곱 시였다. 그리고 칸자키와 안즈는 이미 진이 다 빠진 채 아침과는 얼핏 다른 모습으로 돌아가고 있었고. 그럴 만도 했다. 안즈는 이 옷, 저 옷을 칸자키에게 열심히 데어 보았으니까. 이것도 멋진데, 저건 귀여운 느낌이야! 둘 중 하나를 고르지 못한 안즈는 결국 두 벌 다 구매했다. 그건 칸자키도 마찬가지. 적극적이진 않았지만 한 벌, 한 벌 조심히 안즈에게 가져와 데어 보았다. 이건 깔끔하게 예쁘고, 저건 멋진 느낌이고… 정하지 못한 그는 결국 두 벌 다 구매를 결정했다. 그리고 그 결과가 지금, 양손 주렁주렁 매달고 있는 종이 가방이다.

“오늘 어땠어?”

터벅, 한 걸음을 내디딜 때 있던 안즈의 물음. 칸자키는 그 말에 고민도 없이 말했다.

“재미있었소. 아침에 선물을 열어본 것도, 『산타』의 의상을 입어본 것 전부…♪︎ 공께서는 어떠셨소?”

“나야 엄청 즐거웠지. 소마 군 말대로 재미있었어. 고마워, 멋진 크리스마스네.”

“감사는 소인이 하고 싶소만. 찬란한 『크리스마스』를 남겨 주셔서 고맙소이다, 안즈 공.”

“빈말이 아냐. 어릴 때로 돌아간 기분이었달까… 소마 군이 말했던 것처럼 나이를 먹다 보니 크리스마스에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을 잊은 모양이었나 봐. 그래서, 오랜만에 아이처럼 선물을 열고 인형을 안는 게 정말 즐거웠어. 그래서, 음. 다양한 의미로 고마워. 다시 한번 예쁜 크리스마스를 선물해줘서 고마워.”

“소인 역시 빈말은 아니오! 뭐랄까, 소인은 아직 『크리스마스』라는 기념일이 어색하니 매 해가 새롭소이다. 그러니 공께서 선물해주신 이번 『크리스마스』가 오랫동안 어여쁜 기억으로 남아 있지 않겠소? 오랫동안, 공과 이런 멋진 추억을 쌓아가 보고 있다는 게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정말 감사하오!”

잠시 멈춰서서 둘은 서로를 바라보았다. 그러게, 오늘 왜 이리 기쁜지. 가만히 웃었다. 싱긋 미소 지었다. 왜 서로의 얼굴만 보고서도 웃을 수 있는지는 아직 잘 모르겠지만 굉장히 기쁜 일이란 건 알아차릴 수 있는 둘이었다.

그때.

“저것 봐, 소마 군! 눈 온다. 크리스마스 막바지에 화이트 크리스마스네.”

하얀 눈송이가 그들의 갈색 머리카락과 보라색 머리카락 위로 내려앉았다. 조심조심, 살금살금 날려 제 손에 안착하는 눈송이가 귀여워 안즈가 미소 지었다. 칸자키는 그런 안즈의 손이 추울까 걱정되어 사륵 쓸어내리며 물었다.

“안즈 공, 얼어 있지 않소? 공께선 모르시겠지만 얼굴이 붉소. 괜찮다면 소인이 『핫초코』라도 타오겠소이다!”

어라, 그거 어디서 들어본 말인데. 안즈가 그런 칸자키의 말을 네 번 정도 곱씹다 이내 웃었다. 슬레이트를 치듯 손뼉을 치더니,

“같이 이 밤을 따뜻하게 보내는 거야……♪︎”

칸자키는 어딘가 익숙한 문장에 세 번 정도 고민했다. 아, 문득 알아차린 그가 빙그레 웃었다. 하하, 이내 새어 나오는 웃음을 참지 못하고 소리 내어 웃었다. 음, 그럴까. 당신과 함께 이 밤을 따뜻하게 보내는 것도 아주 즐거운 일일 것 같소.

둘은 이마를 맞대고, 오늘 가장 많이 지은 표정을 한 번 더 내비쳤다. 빙그레 웃고서는, 서로에게 속삭였다.

“당신과, 메리 크리스마스.”

눈발 사이의 하얀 빛이, 그들의 왼손 약지에 있는 은반지를 빛냈다.


안녕하세요, 여러분! 메리 크리스마스입니다. 펜슬로 옮기고 새 글은 이번이 처음이네요. 저도 오랜만에 굴곡 없이 해피해피한 이야기를 오랜만에 써 보는 것 같아서 여러모로 새롭습니다. 이번 글은 대강 스토리 라인이 어떻냐 물어보는 혈육에게 '아 이번에는 별 거 없이 그냥 행복한 이야기야!'라고 답했는데, 다행히 잘 지켜진 것 같아 정말 다행입니다!

추천곡 Over the Christmas는 크리스마스 캐럴이에요. 처음에는 글 서두에 제시되었던 고요한 밤 거룩한 밤을 넣을까 고민했는데, 분위기가 처음부터 끝까지 조용하기만 하진 않은 것 같아 바꾸게 되었어요! 과연 이 글과 잘 어울릴지! 잘 어울린다고 생각하시면 행복할 것 같습니다.

여러분은 이번 크리스마스 이벤트를 전부 마치셨나요? 사실 제가 이 글을 쓰게 된 계기도 소마의 크리스마스 대사 때문인데요! '당장이라도 눈이 내릴 것 같은 추위구려. 얼어있지 않소? 괜찮다면 소인이 『코코아』를 타오겠소. 함께 이 밤을 따뜻하게 보내는 것이오……♪︎'라는 대사를 보고 정말 신났답니다. 기대 안 했는데!! 안 했는데 너무 좋은 거 있죠. 그 결과. 신나게 썼습니다! 크리스마스가 배경인 탓에 외래어가 많이 들어 갔는데, 소마에게 딜을 준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네요. 캐붕인가요?! ㅋㅋㅋㅋ

저는 크리스마스에 딱히 할 일이 없어서! 24일에 잠들어서 26일에 일어날 생각입니다. 여러분의 크리스마스 계획은 무엇인가요? 뭐든지 행복하고 즐거우시면 좋겠습니다. 크리스마스는 그런 날이니까요!

점점 길어지는 것 같아 줄이겠습니다! 메리 크리스마스입니다~ 무엇보다 즐겁고 행복한 크리스마스 보내세요! 오늘도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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