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미노] 첫눈

내년에도 같이 첫눈 보면 좋겠다.

[글쓴이의 말 1]

둘이 (아직) 사귀지 않습니다.

그냥 첫눈을 같이 봅니다.

MORE MORE JUMP! 활동 중 겨울 한때를 상상하며 적었습니다.


"에, 엣취-!"

"미노리? 괜찮아?"

"킁... 응응, 괜찮아! 이건 심호흡 한 거야!"

학교에서 바깥으로 나오자 미노리가 뱉은 숨이 찬 공기와 부딪힌다. 따뜻한 실내와 달리 바깥은 겨울이 되었음을 알리기에 충분한 온도를 갖고 있었다. 그래서일까, 갑작스런 온도차에 미노리가 '재채기'를 해 버렸다. 이후 미노리가 꺼낸 단어라곤 방금 전 상황과 전혀 매칭 안 되는 '심호흡'.

"심호흡... 그렇구나."

"맞아! 이제 다음 이벤트가 얼마 안 남았으니까, 마음의 준비랄까~. 앞으로 MORE MORE JUMP!를 위해서라도 좀더 좀더 힘내야지!"

이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고민하는 하루카. 그 상황을 모르는지 미노리는 열심히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할 얘기들을 열심히 꺼내고 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다행히 몸이 아픈 건 아닌 듯하다.

둘이서 따로 연습하고 늦게 나온 게 무리를 시킨 건 아니었을까, 그런 걱정까지 했는데 미노리의 반응을 보니 그 걱정은 덮어두어도 될 것 같다. 이제 미노리를 진정키자, 라는 생각에 하루카가 입을 연다.

"미노리."

"응?"

허공 어딘가를 보며 열을 내던 얼굴이 하루카의 목소리를 따라간다. 그제야 마주하는 두 얼굴. 힘들게 보게 된 상대의 눈을 그대로 쭉 보고 싶은 사람과, 무슨 얘기를 할까 상대를 기다리고 있는 사람. 이 둘 사이에 하얀 먼지 같은 게 떨어졌다. 두 사람은 조금 놀라 두 눈을 끔벅이다 동시에 하늘을 향해 고개를 올린다.

맑다고 생각했던 초저녁 하늘에서 하나둘 눈송이가 떨어지기 시작했다. 이마에, 콧잔등에, 볼에 떨어지는 눈송이들이 그대로 녹아내린다. 포근해보이는 모양과 달리 차갑다. 그렇기에 따스한 온기에 그대로 녹아내리는 거겠지.

두 사람 다 자연스럽게 손을 올려 눈을 느껴본다.

"눈이다! 첫눈이야, 하루카쨩! ...앗! 이게 중요한 게 아니지 얼른 우산, 우산!"

미노리는 마치 어린아이처럼 기뻐하며 첫눈 소식을 그대로 눈앞의 상대에게 알린다. 그러다 눈 맞다가 감기 걸리면 안 된다며 급하게 가방에서 우산을 찾는다. 그 모습을 잠깐 살피던 하루카도 다시 눈송이들을 보며 자연스레 표정을 푼다.

"정말이네. 첫눈이야."

오늘 눈이 올 거라는 일기 예보는 없었는데. 이런 생각이 하루카의 뇌리를 스쳤지만 구태여 입밖으로 꺼내지 않는다. 지금 이 첫눈을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 보고 있다는 게 더 중요하니까. 비록 그 좋아하는 사람은 우산을 꺼내려다 우산살이 부러져버려서 정신없는 듯하지만 말이다. 그런 상대를 위해 하루카는 말없이 미노리 손을 가볍게 쥐고 눈을 안 맞을 학교 쪽으로 살짝 이끈다. 미노리 말대로 감기 걸리면 안 되지.

침착한 하루카와 달리 미노리는 호기롭게 예비 우산을 꺼내 보이려던 계획이 무산됨과 동시에 자신의 아이돌이 자신의 손을 잡아 이끌었다는 것에 뇌 부하가 커지고 있었다. 자신을 이끄는 손이 따뜻한 건지, 자신의 손 열이 자발적으로 오르는지 모르겠다. 그저 자신이 태어나서 지금 이 감각을 느끼는 것에 감사해야 할 것 같다.

'그런데....'

이제 눈을 안 맞을 장소임에도 여전히 붙잡힌 손이 뜨겁다. 미노리는 마주잡을 용기조차 없는데 오로지 하루카의 의지로 잡혀 있다.

"하, 하루카쨩...."

"눈이 얼마나 올지 기다려 보자, 미노리."

"으, 응. 근데 그, 그게...."

무슨 말을 하려는지 하루카가 모를 리 없다. 하루카는 미노리의 반응을 보고 살포시 미소 짓더니 손의 힘을 조금 풀 뿐, 여전히 잡고 있었다.

"...추우니까 잠시 괜찮을까?"

평소라면 추운 하루카를 걱정하며 미노리가 뭐든 꺼내거나 해결하려 했겠지만, 지금만큼은 미노리도 하루카의 분위기를 읽고 조용히 수긍하며 그저 밖을 바라본다.

첫눈. 그해 겨울이 시작된 후 처음으로 내리는 눈. 겨울이라는 걸 다시 한번 알려줌과 동시에 수많은 로맨스 상황들을 만들어 낸 엄청난 존재다. '올해 첫눈은 ㅇㅇ와 함께 보면 좋겠다.'라든가, 'n년 후 첫눈 오는 날 역 앞에서 만나자'라든가, '매해 첫눈을 너와 함께 맞고 싶어'라든가. 그에 대한 인식은 누구나 어느 정도 잡혀 있으리라. 하루카와 미노리 또한 마찬가지.

"미노리."

"으, 응?!"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전보다 어두워지는 하늘을 인지하여 가로등이 하나둘 켜지고 있었다. 눈은 다행히 더 내리지 않고 눈송이가 점점 작아지며 그칠 것 같다. 그런 상황을 제대로 인지도 못했는데 갑작스레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미노리가 흠칫 놀란다. 결국은 서로 마주잡아 버린 손에 힘이 조금 들어가 버린다. 그를 느꼈지만 그저 귀엽게 여기며 하루카는 앞을 보고 이어 말한다.

"내년에도 같이 첫눈 보면 좋겠다."

이 말이 어떤 의미인지 알까. 상대가 알든 알지 못하든, 내년도 함께하자는 표현을 겉으로 포장하여 말해 본다.

그런 하루카를 옆에서 빤히 보던 미노리는 잠시 멍하니 있다가 입에서 약간의 입김과 함께 용기를 냈다.

"나, 나도! 그랬으면 좋게헷...! 좋겠어, 하루카쨩.... 내년도, 내후년도, 앞으로도...!"

비록 혀가 꼬였지만 힘내서 다음 말까지 잘 이었다. 미노리가 말한 내년 이후의 표현들에 하루카도 미노리를 마주 본다. 지금 미노리의 그 표현이 자신이 말한 형태와 조금 다를지라도 하루카는 상관없었다. 어떻든 자신이 한 줌 겨우 잡아 올린 마음이 상대방을 향해 잘 간 것 같으니까.

"고마워, 미노리. 근데... 괜찮아...?"

마주잡은 미노리의 손이 엄청 떨면서 땀도 나고 차가워지는 게 느껴진다. 많이 긴장한 걸까. 아니면 추운 걸까. 걱정되어 묻는다.

"사, 사, 살려주세요... 이 이상은 무리야아아아~."

'하루카쨩 한계치'에 다다른 미노리는 그대로 쓰러지려 했고, 다행히 하루카가 잘 잡았지만 진정시키기엔 역부족이었다.

다행히 10초도 안 되어 미노리는 정신을 차렸고, 눈이 거의 오지 않게 된 하늘을 머리 위로 두고 두 사람의 귀갓길이 다시금 시작될 수 있었다. 아까처럼 아무렇지 않게 이벤트 얘기를 하는 미노리지만, 손을 다시 잡는 건 힘들 거 같다. 그렇게 판단한 하루카는 그저 지금 이 거리에서 함께하는 것으로 만족하기로 했다.

'미노리의 말대로 내년도, 내후년도, 앞으로도 시간은 있으니까.'

그때도 함께 첫눈을 보며 점점 더 가까워질 수 있지 않을까.


[글쓴이의 말 2]

이상하게 '첫눈'이라 하면

좋아하는 사람과 보고 싶고,

관련된 약속이 있을 거 같고,

때가 왔음을 깨닫기도 하고,

가슴 한쪽이 아리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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