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극의 피그말리온

2011

아, 정말 끔찍한 일이죠. 제가 진작에 녀석을 말렸어야 했어요. 하지만 선생님, 어느 누구도 그 녀석이나 제게 잘못을 말할 수는 없습니다. 무엇보다 이런 일이 일어날 거라고 예상한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겁니다. 계속해서 지켜본 저조차도, 이렇게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일이 커지리라고 전혀 생각하지 못했으니까요. 변명으로 들릴지 모르겠지만, 저는 그런 일을 예상할 만한 능력이 없어요. 이번 일은 정말 보통 사람의 상식을 벗어난 일이잖아요, 그렇죠, 선생님?

아시다시피 저는 어디 내놓을 수 없는 조악한 판타지 소설을 그저 공책에다 끄적이곤 하는 정도의, 평범한 인문계 고등학교에 재학중인 학생이에요. 제게는 유치원에 다니던 그 때부터 늘 함께였던 친구가 하나 있는데... 선생님도 알고 계실 거에요, 서민혁이요. 같은 유치원, 같은 초등학교, 같은 중학교를 같이 다니느라 지겹게 붙어 다닌 녀석이었죠. 사실 붙어 다닐 수밖에 없었어요. 어렸을 때부터 워낙 소심해서 제가 데리고 다니지 않으면 다른 애들하고 어울리지도 못 하는 녀석이었거든요. 다른 친구들이랑 만나서 놀 때도 혼자 나가는 건 엄청나게 싫어했어요. 저한테 전화까지 해 가면서 같이 나가지 않겠느냐고 물어볼 정도였으니까요. 저랑 그 녀석이 매번 함께 다니는 걸 알고 있는 사람들은 혹시 사귀는 게 아니냐고 반 장난으로 물어보곤 했죠. 중학생이 되었을 때에는 정말 진지하게 생각해 보긴 했어요. 저 녀석이 날 좋아하는 게 아닐까 하고. 그런데 뭐, 그 녀석이 저를 지겨우리만치 불러대긴 했지만 그렇다고 딱히 좋아하진 않았던 것 같아요. 저는 그냥 민혁이의 보모 같은 느낌이었어요. 보모라고 해도 걔가 자기 앞가림 못 하는 그런 녀석은 아니었는데 말이에요, 꼭 저 이외의 사람이랑 만날 때만 낯을 가렸죠.

그렇다 해도 말이에요, 아무리 평준화 지역인 데에다 집이 가깝다지만, 고등학교까지 같은 곳에 들어올 줄이야! 결국 고등학교 2학년이 되면서 과가 갈리긴 했지만요. 저는 그 때도 문학이나 사회문화 과목을 워낙 좋아했으니 문과를 지망하는 게 당연했고, 그 녀석은... 당연히 이과를 지망했어요. 선생님도 2학년 올라오고 민혁이네 반 담임 맡으시면서 보셨죠? 걔, 다른 건 몰라도 과탐, 특히 생물 점수는 내신이나 모의고사나 항상 상위권이었잖아요. 상위권이라고 말하기도 아깝죠, 실수로 한두 개쯤 틀릴 법도 한데 언제나 정확하게 만점이었으니까. 선생님도 되게 궁금해하셨잖아요, 다른 과목은 평범하면서 대체 무슨 수로 이런 점수가 나오는지.

그 녀석은 제가 기억하고 있는 제일 어렸을 때부터 유난히 뭔가 살아있는 생물 같은 거에 집착하고 그랬어요. 특히 털이 없는 생물, 예를 들면 물고기랑 벌레 같은 거요. 뱀이나 타란툴라 같은 종류에도 관심이 많았는데, 그런 건 아무래도 가족들이 사는 집에서 어린 학생이 키우기에는 어렵고 전시관에서밖에 볼 수가 없어서 늘 아쉬워했죠. 같이 놀려고 밖에 나가면 개울가의 풀숲에서 잠자리채를 들고 방아깨비라던가, 메뚜기 같은 것도 막 잡고 그랬거든요.

남자애들은 벌레를 잡고 나면 여자애들한테 들이밀어서 울린다던가, 아니면 다리를 뗀다거나 하고 못되게 노는 애들이 많잖아요, 그런데 그 녀석은 그걸 잡아서 페트병이나 관찰장에다가 넣고, 그게 어떻게 생겼는지, 어떤 구조로 움직이는지 같은 걸 엄청 자세히 관찰하곤 놓아줬어요. 다른 사람들이 혐오하고 싫어하는 바퀴벌레나 파리 같은, 그런 것까지요. 벌레 배 부분 보면 무지 징그러운데, 그런 걸 아무렇지도 않게 잡고 만지면서. 그 녀석은 노트만 펴면 맨날 곤충이라던가, 물고기라던가 그런 걸 볼펜이나 연필로 엄청 자세히 그려놨었어요. 교과서에도 막 그려놓고, 가끔은 연필로 책상에도 그리고. 교사들이나 학부모들이 그 애가 그려놓은 섬세하고 세밀한 곤충과 물고기 그림을 보고 <얘는 나중에 커서 화가가 되려는 걸까?> 같은 말을 했던 게 기억나요. 하지만 걔가 딱히 그림 그리는 행위 자체를 좋아하는 건 아니었어요. 게다가 정말 그런 생물, 그것도 피가 차가운 동물만 잔뜩 그리고 수업 시간에 그려야 하는 건 죽어도 안 그리는 바람에 미술 점수는 완전히 바닥이었거든요.

중학교로 올라왔을 때도 그랬어요. 과학 점수는 무조건 만점이었죠. 민혁이 그 녀석 문제를 풀 때 혹시 보셨어요? 이전에 집에서 같이 공부를 한 적이 있는데, 우연히 문제집을 푸는 모습을 봤거든요. 눈빛이 완전히 변해요. 뭐라고 하나, 사람 같지가 않죠. 무슨 기계가 된 것 같았어요. 계산이 필요한 문제에서야 잠깐 메모를 하긴 했지만, 객관식 문제의 숫자를 마치 그냥 답지라도 보고 적듯이 1, 3, 4, 2, 이런 식으로 쭉쭉 써 내려가는 거에요. 그걸 보는데, 와, 소름이 쫙 끼치더라고요. 그런데 그에 비해서 다른 과목은 그리 성적이 좋은 편은 아니어서, 언제였더라, 시험을 쳤는데 갑자기 담임 선생님이 확 표정이 굳으셔서 민혁이를 부르는 거에요. 알고 보니까 혹시 부정 행위를 한 게 아닌가 하고 교무실에 끌려갔었대요, 과학 성적만 너무 높으니까.

그 때가 한참 판타지 소설이 유행해서 막 이것저것 책이 많이 나오던 때였거든요. 세계적으로 유명한 오래 된 판타지가 영화로 만들어지고, 외국 작가가 쓴 마법사 이야기가 신드롬을 일으키고, 예전에 PC통신 시기에 소설을 써서 유명해진 작가들이 작품을 내고 그럴 즈음이었죠. 선생님도 그거 영화 개봉하셨을 때 한 편 정도는 본 적 있으시죠? 제가 그런 걸 접하고 난 뒤로 굉장히 깊게 빠졌었거든요. 워낙 판타지 소설을 많이 가져다 읽다 보니까, 주변 친구들도 남녀 가릴 것 없이 영향을 받아서 제가 빌려온 소설을 다들 같이 돌려 봤어요. 민혁이도 다를 건 없었죠. 몇 년 지난 지금 찾아보면 굉장히 별 거 아닌 소설도 그 때는 얼마나 재미있었는지, 둘이서 문자를 주고받으면서 밤을 새 가면서 읽곤 했거든요.

저 같은 경우는 그 이후로 그런 재미있는 이야기를 쓰고 싶어서 글을 쓰기 시작했는데, 또 재미있는 게 애들이 다 관심을 갖는 데가 달랐어요. 어떤 애는 뛰어난 검사가 들고 있는 전설의 검 같은 걸 묘사를 토대로 상상해서 공책에 수십 개씩 그리기도 했고, 어떤 애는 거기 나오는 예쁜 여자 엘프나 정령 같은 걸 그리고 그랬거든요, 제법 그럴싸하게, 은근히 야한 것도 그려놓아서 애들이 노트 돌려보면서 즐거워하고 그랬죠... 아, 이건 비밀이에요. 그렇게 그림을 그리다가 또 누구는 서브컬쳐 장르인 애니메이션이나 만화 쪽에 빠진 애들도 있고요.

그런데 민혁이는 유난히 판타지 소설에 나오는 생물에 관심이 많았어요. 오크라던가, 트롤이라던가, 그런 걸 되게 열심히 그렸어요. 이렇게 생긴 생물은 어떻게 살아갈까, 하고 공책에 그럴듯하게 정리해놓기도 하구요. 그러면서 그걸 하나씩 완성할 때마다 저한테 막 자기가 떠올린 생물의 구조 같은 걸 들려주곤 했어요. 사실 걔가 얘기해 봐야 너무 전문적이어서 저는 반도 못 알아들었지만요. 그 녀석이 보는 소설에 인간과 다른 종족이나 상상의 동물이 나올 때마다 이것저것 그리면서 정리를 한 노트가 있는데, 아, 제가 갖고 있어요. 그 노트가 몇 권이 넘어갔더라……. 그런데 그런 소설에 나오는 애들은 한계가 있잖아요. 그러니까 이제는 자기가 막 만들어서 그리기 시작하더라고요, 상상의 동물이나 새로운 종족 같은 걸. 그러면서 일일이 해부도 같은 걸 막 그리고, 골격 구조나 근육의 움직임 같은 걸 그려놓고. 얘는 여기가 이렇게 움직이고, 여기에서 독액을 만들어내서 공격하고, 그런 거요. 저는 그 녀석이 만들어낸 생물체에 완전히 매료됐었어요. 어렸을 때부터 많은 동물들을 관찰하고, 또 책을 읽으면서 쌓아온 수많은 지식은 이미 전문가 수준이라는 생각이 들었죠. 그 녀석이 만들어낸 생물에는 정말 영혼이 담겨있는 것 같았어요. 전 녀석에게 허락을 받고 나서, 그 애가 만들어낸 생물체가 나오는 내용의 소설을 썼죠. 민혁이도 제가 쓰는 글을 참 좋아했어요. 글을 읽으면서 이 생물은 이런 상황에서는 이렇게 반응한다던가 하는, 좀 더 자세한 내용에 대한 피드백도 해줬구요. 걔 머리 속에서는 그 생물들이 정말로 살아 있었는지, 보통 사람이 실존하는 동물에 대해 알고 있는 것보다 더 자세한 걸 알고 있었어요. 그리고 그건 정말 생물학적인 지식에 근거해서 설정된, 엄청나게 정교한 내용이었죠.

사춘기가 지나면서 이제 열이 식나 했는데, 고등학교에 올라오고 나서도 공부하는 짬짬이 그런 그림을 그리더라구요. 수학 문제집 아래에 있는 빈 칸이나, 교과서 모서리나, 아니면 필기하는 노트라던가. 그리고 자기가 그린 그림을 인터넷에 자기 블로그랑 어디 커뮤니티 사이트에다가 종종 올리곤 했어요. 그런데 아무래도 예전이랑 다르게, 게임들이 제법 괜찮은 그래픽의 3D로 많이 나오잖아요, 제법 돈도 막 들이고. 그래서 워낙 그런 종류의 창작 생물이 나오는 게임이 많거든요. 몬스터라거나, 아니면 플레이어들이 선택할 수 있는 종족으로. 인터넷을 하고 게임을 하는 사람들은 그런 그림들을 많이 봐 왔으니까 반응이 영 시큰둥한 거에요. 잘 그렸다. 되게 잘 그렸는데, 어디 나오는 뭐랑 닮았다, 라던가, 뭐랑 뭐 섞은 느낌이라던가. 걔는 딱히 만화를 보거나 게임을 하는 애는 아니었고 그 생물들이 다 걔 머릿속에서 나온 걸 텐데, 다른 사람 걸 따라했다는 얘기를 듣고 화가 좀 났나 봐요.

그런데 또 그게 어디 인터넷에 민혁이가 유명한 일러스트레이터의 캐릭터 디자인을 따라했는데, 자기 그림이라고 우긴다던가... 하는 그런 글이 막 한참 동안 돌아다녔거든요. 댓글로 공격을 많이 받았어요. 민혁이가 약간 이상해진 건 그 때부터였어요. 예전에는 아주 작은 생물부터 크고 상냥한 생물들까지 굉장히 다양한 생물을 많이 만들어내곤 했었는데, 그 녀석 공책에 점점 덩치 크고 강한 존재가 늘어났죠. 그리고 그 생물들은, 적을 죽이는 아주 많은 방법을 알고 있었어요. 이전에는 움직이는 방법이나, 모여 사는 방법 같은 것에 대한 설명이 주를 이뤘다면, 날이 갈수록 덩치로 밟아버리거나, 발톱이나 뿔을 사용한다던가, 혹은 불을 뿜어내거나 하는 설명이 늘어났죠. 아마 스트레스를 받는 걸 그런 방법으로 해소하는 모양이었어요. 크고 강한 생물을 상상하는 거죠. 그렇게 자신의 창조물을 모독한 사람들을 벌하는 생각을 했는지도 몰라요.

그러다 그 녀석이 진심으로, 엄청 간절히 바라는 게 하나 생겼어요. 자기가 그렇게 그려낸 생물이 종이 밖으로 나오는 걸 간절히  바란 거에요. 물론 수십, 수백 마리를 그려놓고 그게 전부 실제로 만들어지길 바란 건 아니구요. 민혁이가 정말 온 힘을 다해서 그려내고 싶어하던 게 있었는데... 그걸 꼭 실제로 만들어내고, 눈 앞에서 보고 싶어했어요. 그 모든 생물의 완전체라고 해야 좋을까, 우두머리라고 해야 좋을까. 민혁이가 말주변이 좋은 건 아니었는데, 어떻게든 자기 마음 속에 있는 그걸 설명하려고 노력하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해요. 걔는 자기가 상상한 그 생물에다가 종극의 왕이라는 이름을 붙였어요. 그가 말하는 종극의 왕은, 아주 크지도, 아주 작지도 않은 건장하고 체구가 큰 성인 남자의 키를 하고 있어요. 그는 용의 머리와 사람의 몸을 하고 있는데,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극한의 공포를 불러일으킬 정도로 사나운 모습을 하고 있지만, 그와 동시에 눈이 부실 정도로 아름다운 모습을 하고 있고, 카리스마를 가진 그런 존재라고 했어요. 그 자체는 거의 영겁의 생명을 가지고 있고, 살아온 나이만큼 현명하고, 사람이 헤아릴 수 없는 부분까지 모두 생각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했죠. 그가 숨쉬는 소리는 용암이 끓는 것과도 같아서 결코 곱지는 않지만, 그가 말하는 목소리는 머릿속에 바로 들어와 울리면서, 거역할 수 없는 힘을 가지고 있는 존재라고 했어요. 그게 어떻게 생겼냐고 물어봤는데, 그걸 모르겠다는 거에요. 그 정확한 생김새를, 어떻게 그려야 할지 모르겠다고.

그 녀석은 그 존재를 떠올린 이후부터는 밥을 먹는 시간도 잠을 자는 시간도 줄여 가면서 그림을 그렸어요. 자신이 만족하는 디자인이 나올 때까지 말이에요. 그런데, 언제나 어딘가가 부족했나 봐요. 오늘은 좀 어떻냐고 물어볼 때마다, 녀석은 퀭한 얼굴로 고개를 젓곤 했어요. 모르겠다고. 느낌은 너무나도 확실하고, 마치 지금 당장이라도 눈 앞에서 나타날 것만 같은데 보이질 않는다고.

그 존재에 대한 녀석의 집착은 엄청났어요. 녀석은 단순히 그림을 그리는 것으로는 만족하지 못했거든요. 녀석은 학교에 과학 동아리를 만들었어요. 처음에는 되게 놀랐어요. 사람 대하는 걸 죽어라 싫어하던 애가, 웬 일로 동아리 같은 걸 만들었나 했죠. 그런데, 그 이유가 따로 있는 게 아니었어요. 민혁이 녀석은 그 종극의 왕이 가진 어떤 뿔이나 피부의 질감이라도 재현해 볼 생각이었대요. 그러니까, 그 생물이 만들어질 수 있는 실험을 하기 위해서였나 봐요. 저도 그 녀석이 부탁한 덕분에 팔자에도 없는 과학 동아리 부원이 됐죠. 처음에는 겨우 고등학교 화학 실험실 같은 데에서 뭐가 나올 수가 있나, 하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민혁이가 원래 과탐 성적이 좋으니까 화학 선생님은 걔가 무슨 실험 같은 걸 한다고 하면 <다른 과목도 공부 좀 해>라면서도 선뜻 실험실을 빌려주시곤 했어요. 게다가 뭔가 재료 같은 걸 주문해달라고 부탁하면 바로 교육부에서 지원을 받아서 금방 가져다 주시기도 했고요. 저는 얘가 뭔가 해낼 것 같긴 하다, 싶긴 했죠. 물론 나라에서 동아리를 지원해주려면 그 만큼 뭔가 결과물 같은 것이 나와야 되니까, 저나 잘 오지도 않는 몇 부원들이 별 거 아닌 실험 몇 가지로 보고서를 쭉 써서 대충 제출하곤 했어요. 명목상은 정말 그럴듯한 과학 실험 동아리였어요. 그리고 본업은 따로 있었던 거죠, 민혁이 녀석의 실험 말이에요. 그 녀석은 대체 어디서 무슨 정보를 얻은 건지, 주문한 물질을 여러 가지로 섞고, 추출하고 하면서 과학실에서 뭔가 이상한 약물을 만들곤 했어요. 그걸 보고 제가 제조법에 근거는 있는 거냐고 슬쩍 물어봤더니, 그 녀석은 다 방법이 있다면서 씨익 웃는 거에요. 그런데 그 미소가, 등줄기가 싸늘해지더라고요. 그 때 본 녀석의 얼굴이 잊혀지질 않아요. 딱 그거 있잖아요, 미친 과학자의 얼굴. 그 녀석이 원하는 건 단순히 <뿔이나 피부의 질감을 재현하는> 게 아니라는 확신이 들었어요.

그런데 저는요, 저는 그 녀석을 제 손으로 말릴 수가 없었어요. 그 녀석의 고집은 워낙에 대단했으니 말린다고 들을 녀석도 아니었겠지만요, 선생님, 솔직히 말할게요. 사실 제가 그 녀석의 그런 모습을 지독하게 좋아했어요. 온갖 실험을 하면서 자신의 생물을 이 땅에 재현해 보이겠다는 민혁이의 태도야말로, 살아있는 인간이 원래 지닌 본성이라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언제나 지성을 가지고 신에게 도전하는 인간 그 자체라는 생각이요. 제게 있어 민혁이의 그런 모습은 녀석이 그 종극의 왕에게 느끼는 매력만큼 강했고, 제게 아무 말도 할 수 없게 만들었죠. 민혁이가 여러 가지 일을 겪고, 점점 미쳐간다는 것을 알면서도 저는 손 하나 댈 수 없었어요. 말릴 수도 없었고, 그렇다고 부추길 수 없었죠. 그 녀석이 스스로 어떻게 변해가는지, 신에게 도전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싶었으니까요. 그리고 그 마지막이 어떤 결과로 끝나는지도 말이에요. 사실 제가 보기에 민혁이는 특별했어요. 여태까지 다른 과학자들이 실패했던 어떤 것도 모두 이루어낼 수 있을 것만 같았죠. 그라면 신에게 이길 것 같다고, 그렇게 생각했어요.

저와 민혁이는 주말만 되면 도서관 같은 데에 가서 한참 동안 책을 뒤적거리고 있었죠. 서당개 삼 년이면 풍월을 읊는다고, 이과 수업에 대해서 정말 한 글자도 모르던 저도 그 녀석과 얘기하고 있다 보면 이것저것 주워듣고 해서 또 보이는 게 있긴 했거든요. 그 녀석은 원서를 읽기 위해서 영어뿐이 아니라 다른 언어도 몇 개씩 공부했어요. 그 모습을 보고 있으면, 뭔가 고대의 의사 같기도 했어요. 아니, 의사라기보다는 연금술사 쪽에 더 가까우려나. 그런데 걔는 그 약물을 만들어가지고는, 이런저런 동물을 구해다가 약물을 주사하곤 했어요. 처음에는 길거리에서 돌아다니는 벌레나 그런 걸 잡아서 실험하더니, 그 뒤로는 인터넷 같은 데에서 실험용 생쥐를 사오더라고요. 인터넷에서 그런 걸 또 파는 데가 있던데, 어떻게 알았는지 몰라... 물론 실험 결과 애가 좀 더 난폭해진다던가, 아니면 잠이 든다거나 하는 경우는 있었다는 것 같지만, 생쥐의 목숨에는 크게 지장이 없었어요. 딱히 눈에 띌 만한 일도 일어나지 않았죠.

그런데 정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으니까 걔가 점점 초조해지는 거에요. 자기가 세운 이론으로 만들어낸 약물을 주입했을 때, 어떤 이치에 따라서 나름대로 생물이 변화할 법도 한데 아무리 실험해도 변화가 없으니까 말이에요. 언제였더라, 아마 그 날도 보고서를 쓰는 데 필요한 실험을 하러 과학실에 가려고 했을 텐데 애가 연락이 없더라고요. 매번 뭔가 새로운 걸 시도할 때마다 한 번 같이 봐 달라고 저를 부르곤 했었는데. 어쩐지 싸늘한 느낌을 받고 과학실로 뛰어갔더니, 하 참... 애가 정말 맛이 갔었는지, 자기 몸에다 약을 주사하고 있는 거에요. 전 그 때 그 모습을 보고 정말 당황했어요. 많이 놀랐죠. 분명히 계속해서 지켜보고만 있겠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그러고 있는 걸 보니까 엄청 걱정이 되는 거에요. 혹시라도 어떻게 되면 어쩔 뻔 했냐고 화를 막 냈더니, 걔가 왠지 저한테 미안하다고 사과를 하긴 하던데, 그걸로 끝이었어요. 다른 말도 없고. 정말 아무런 생각도 없었나 봐요. 진짜로 다행이었던 건, 역시 아무런 반응도 없었다는 거죠. 전 혹시라도 녀석이 다른 인격 같은 걸 깨워내는 건 아닌가 생각했는데, 하하.

그런데, 과학실에 있는 기기가 상당히 오래되기도 했고, 딱히 전문 의료 시설이나 실험실에 있는 고가의 실험 설비도 없고 하니까 거기서는 답이 나올 리가 없다는 걸 새삼 깨달았다나 봐요. 그거 말고도 뭐, 자기가 뭘 하다 보니 생각난 것이 있는 모양이에요. 아무래도 이런 방법으로 접근해서는 아무런 답이 나오지 않는다는 걸 알았다고 하더라고요. 민혁이는 생물체를 만드는 방법을 좀 더 깊이 연구하기 위해서 학교를 그만두겠다고 했죠. 자퇴서까지 써 온 민혁이를 뜯어 말린 건 작년 저희 담임 선생님이셨어요. 그 분이 미술 선생님이셨는데, 그 녀석과 상담을 하겠다더니, 뭔가를 만들고 싶으면 그걸 조형 재료 같은 걸 이용해서 직접 만들어보는 건 어떻겠냐고 물어봤던 거에요. 금방이라도 직접 살아서 숨쉴 것 같은 조형을 만들어서 그 욕구를 표출해 보라는 식으로요. 선생님은 미술실에 있는 모든 재료를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게 해 줄 테니까, 적어도 학교는 졸업하라고 얘길 했어요. 뭐, 사실 자퇴하는 애가 실제로 있으면 그 반 분위기도 좀 술렁이고 하니까, 그런 걸 또 막고 싶으셨는지도 모르고요. 그런데 그 녀석이 원하는 생물 창조는 그런 종류가 아니잖아요, 뭔가 작품 창작 활동 같은 걸로 해결되지 않는 갈증이니까. 그래서 저는 그 얘기를 듣고 정말 택도 없는 소리라고 코웃음을 쳤는데, 민혁이는 예상 외로 그 조건을 쉽게 받아들였어요. 학교에 남아있겠다고 하더라고요. 전 굉장히 놀랐죠. 얘한테 무슨 바람이 불었나 했는데, 알고 보니 그 녀석은 그냥 조형을 하기로 한 게 아니었어요. 다른 것도 아니고, 신화 있잖아요. 태초에 신이 세상을 만들고, 인간을 창조했을 때의 이야기요. 각 나라마다 다르긴 하지만, 대체적으로 흙이나 돌을 빚어서 사람을 만들고, 코로 숨을 불어넣자 인간이 만들어져 마을을 이루고 살게 되었다고 하는 거요. 책에서는 그게 농경 사회의 시작을 의미하는 거라고도 했던 것 같지만. 그걸 문자 그대로 믿어 보자는 의도였죠. 그렇게 민혁이 녀석이 답을 찾은 건, 과학실이 아니라 과학실 옆에 있는 미술실이었어요.

처음에는 기가 찼어요. 여태까지 봐 온 민혁이는 그런 애가 아니었거든요, 그렇게 과학에 통달한 녀석이 신화라는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믿다니. 선생님도 아시겠지만 제가 판타지 소설을 쓴다는 건 마법을 진짜로 믿어서가 아니잖아요, 그게 환상이라는 걸 알고 있고, 상상이라는 걸 알고 있으니까 소설을 쓰는 거죠. 그런데 녀석은 그걸 실제로 존재한다고 믿기 시작한 거에요. 마법이든, 신의 힘이든 말이에요. 어떻게 사람의 관점이라는 게 완벽할 정도로 극에서 극으로 이동할 수 있는지. 저는 민혁이가 신의 영역에 도전하는 걸 포기한 줄 알고, 흥미를 잃었어요. 제 공부도 해야 했고, 뭐, 아예 연락을 끊기로 했죠. 저는 현실을 등지고 꿈만 꾸는 예술가한테는 아무 관심 없거든요. 솔직히 애초부터 멀쩡한 정신머리 가진 놈도 아닌데 아예 돌아버린 이상 아무 관심 없다. 그렇게 생각했죠. 그런데, 제가 말이에요, 어쩌다가 우연히 그 녀석이 작업하는 모습을 보게 됐어요. 그런데 역시, 역시 민혁이인 거에요. 그 모습을 보고, 돌아서겠다고 생각했던 제 마음이 순식간에 꺾여버렸어요. 그렇게 오랫동안 지켜봐 온 녀석에게서 제가 눈을 뗄 수 있을 리가 있나요, 그 녀석은 정말 대단한 놈인걸요. 그 녀석 안에서 타고 있는 불꽃은, 설마 창조 신화가 진실이 아니라고 해도 그걸 정말로 실현해 낼 기세였다고요. 민혁이는 미술실 한 구석에서 그걸 만들기 시작했어요. 녀석은 자신이 상상한 실제 크기로 뼈대를 잡고, 거기에 조형용 찰흙을 가져다 붙였죠. 그런 걸 말없이 지켜보는 것도 굉장히 재미있었어요. 마치 전문 예술가가 작업하는 걸 구경하는 것 같았거든요. 미술이라고는 한 번도 배워 본 적 없는 애가, 수많은 시도와 실패를 거쳐가면서, 하나의 생물 모형을 창조하는 걸 구경하는 건 그 나름대로 대단한 장관이었죠. 그게 워낙 커다랗다 보니까, 아무 상관 없었던 다른 애들도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어요. 저 커다란 거 뭐냐고. 신기하다고 와서 막 구경하는 애들도 있었고요. 민혁이는 남들이 뭐라고 하든 말든, 말없이 그 흙덩어리를 매만졌죠. 전체적인 틀이 잡혀가면서, 사람들의 반응이 극과 극으로 갈렸어요. 어떤 애들은 멋있다, 대단하다, 하고 와서 보는 애들이 되게 많았는데, 몇몇 애들은 불길하다고, 기분 나쁘다고, 볼 때마다 깜짝깜짝 놀란다고 미술 선생님한테 엄청 불평을 했어요. 무엇보다 미술실에서 미대 입시를 준비하던 3학년 선배들이 그걸 미술실 구석에 두는 걸 반대하는 목소리가 엄청 컸어요. 그게 되게 불길하다고. 그 커다란 찰흙덩어리는 결국 사람들의 반대에 밀려서 미술실 재료 창고로 옮겨지게 됐죠. 수업 할 때라도 안 보게 된 게 어디냐고, 민혁이가 만들던 흙덩어리를 꺼리던 사람들은 그 결정을 다들 반겼어요. 그래도 민혁이는 그걸 계속 만들고 있었구요. 사람들이 보고 안 보고는 그 녀석한테는 전혀 상관이 없었으니까요.

그런데, 선생님도 아시다시피 미술실을 빌려주겠다고 하셨던 그 미술 선생님이 저희가 2학년으로 올라가면서 다른 학교로 전근을 가셨잖아요. 그러면서 새로운 미술 선생님이 부임하셨구요. 그, 성함이 뭐였더라... 그 선생님 아시죠? 한국 전통 문화의 미학에 반해서 외국에서 귀화하셨다가, 교단에 서서 애들을 가르치게 되셨다고. 그 분이 워낙 심미안이 뛰어난 분이라고 알려져 있어서, 민혁이가 하고 있던 그 작업이 또 단상에 오르게 됐어요. 재료 창고에 뭐 가지러 들어갈 때마다 자꾸 깜짝깜짝 놀란다고, 애들이 여전히 불만이 좀 있었거든요. 그런데 미술 선생님이 새로 부임하시면서 예전에 그 조형물을 감싸주던 사람이 사라졌다 싶으니까 슬슬 또 이야기를 꺼내는 거에요. 특히 반대파 애들이 선생님께 달라붙어서 졸랐어요. 그걸 없애버리자고. 그런데 새로 오신 선생님의 그 뛰어난 심미안이라는 게 보통 사람들이 이해할 만한 수준을 넘어선 게, 와, 정말 엄청났는데, 그 일이 말이에요, 그 선생님이 어떤 사람이었는지 그 때부터 알아봤어야 되는데. 저희 처음 미술 수업 시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아시죠? 그거 인터넷 뉴스에도 나고 그랬잖아요. 선생님께서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걸 보여주시겠다고 말씀하시고는, 프로젝터가 비추는 스크린에 에로스와 타나토스, 라는 글씨를 큼지막하게 띄웠어요. 에로스라는 단어를 오해한 아이들이 야한 거라도 보여주나, 해서 괜히 반 전체가 술렁이고 있는데, 선생님은 꽤 큼지막한 나무 상자를 들고 오셔서는 이 안에 뭐가 들어있는지 맞춰보라고 하셨어요. 먹을 거, 미술 작품, 동물, 여러 가지 답이 나왔었죠. 그리고 선생님이 상자를 열고 내용물을 교사용 테이블 위에 쏟으셨어요. 그리고 정말 과장 섞지 않고, 그 곳에 있던 거의 모든 학생의 엄청난 비명 소리가 미술실 안을 울렸죠. 미술실이 무너지는 줄 알았다니까요.

상자 안에 들어있던 그게 뭐였냐 하면, 다른 것도 아니고, 동물 시체였어요. 죽은 토끼, 죽은 비둘기, 죽은 쥐, 죽은 강아지. 사실 저도 좀 많이 놀랐어요. 그런 걸 꺼내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하셨거든요. 그런데, 그런 생각은 했죠. 아, 이 선생님은 민혁이 편이겠구나. 저는 그 날 그 선생님이 하셨던 말씀이 아직도 또렷하게 기억나요. [너희들이 흔히 감상하면서 아름답다고 느끼는 미술 작품은 다 죽어 있는 존재다. 스스로 움직이지 않고 멈춰 있다면 생명이 없는 것이고, 생명이 없다는 건 죽어 있는 것이 아니더냐. 그렇다면 과연 여기 죽어 있는 시체를 아름답지 않다고 말할 수 있겠냐]라고 말이죠. 저는 그 선생님의 말에 더할 나위 없이 공감했어요. 여태까지 학교를 다니면서, 어떤 선생님도 말하지 않았던 미학이었죠. 그게 제 마음에 확 와 닿은 덕에, 저는 그 선생님의 열렬한 지지자가 됐어요.

알고 보니, 선생님은 우리 반이 아니라 학년 전체에게 같은 내용의 수업을 했나 봐요. 그런 수업을 듣고 심하게 충격을 받은 학생들이 집에 가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을 리가 없죠. 인터넷에다가도 막 글을 올리고. 아이들한테 이야기를 듣고 나서 학부모들이 전화도 하고 그랬나 봐요. 그런데 정말 신기한 게, 그랬는데도 그 선생님이 교단에서 끌려 내려오시진 않았다는 거에요. 아이들은 마치 최면에라도 걸린 듯이 점점 관대해졌어요. 아이들뿐이 아니라, 인터넷에 올라온 글도 하나둘씩 지워졌어요. 예술을 하고 미학을 아는 사람이니 얼마든지 그럴 수도 있지, 라면서 말이에요. 내가 손을 댄 일이 아니었는데도, 사태가 비현실적일 정도로 순조롭게 진행되는 걸 보고 있자니 마치 마법을 눈 앞에서 본 것 같은 기분에 손끝이 짜릿할 정도였다니까요. 그건 분명 무슨 수를 쓴 게 틀림없었어요. 만약 아이들이 반발하는데도 교단에서 내려가지 않았다면 뇌물이라던가, 비리라던가, 그런 안 좋은 소문이 돌 만도 한데, 그 떠들어대던 사람들이 조용해진 거에요. 순식간에 말이에요.

그리고 제가 예상했던 대로, 미술 선생님은 민혁이가 만들고 있던 그것에 큰 관심을 보이셨죠. 민혁이가 그걸 방학 동안에도 학교에 나와서 만들고 그랬거든요, 그래서 조형물은 이제 굉장히 정교한 모습을 갖추어 가고 있었어요. 그건 정말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경악을 자아낼 정도였죠. 어떤 숙련된 예술가라고 해도 그런 물건을 만들어낼 수는 없었을 거에요. 그것은 전체적인 생김새로부터 느껴지는 원초적인 공포, 그리고 섬뜩함에 몸을 떨면서도, 그러면서도 더없이 완벽한 비율로 이루어져 저절로 감탄을 우러나오게 하는, 존재 자체가 모순투성이인 조형물이었는걸요. 그것은 숨을 불어넣지 않았다 뿐이지, 지금 당장이라도 일어나 걸을 수 있을 것처럼 생생했어요. 방과 후에 민혁이가 그걸 만드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선생님은 걔가 그렇게나 원하던 그 말을, 마법의 문장을, 녀석에게 직접 들려주었어요. <네가 만든 그거, 살아나게 하고 싶지 않아? 방법은 알고 있는데... 알려 줄까.> 그 말을 듣는 순간 민혁이 표정이 어땠는지 아세요? 그건, 분명히 신에게 구원받은 자의 표정이었어요. 아니, 어쩌면 신을 이긴 자의 표정인지도 몰랐죠. 저는 그 날 세상에서 가장 커다란 환희를 느끼는 자의 표정을 봤어요. 녀석이 기뻐서 심장마비로 죽었다고 해도 전 납득했을 거에요. 민혁이는 자신의 모든 것을 다 던져서라도 그 방법을 잡고 말겠다고 고개를 끄덕였어요.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뭐든 할 테니까, 이 조형에 숨을 불어넣는 법을 알려달라고. 미술 선생님에게 정말, 정말 온 힘을 다해 간절히 부탁했어요.

미술 선생님은 얌전하던 민혁이에게 그렇게까지 격렬한 반응이 나온 것에 흠칫 놀란 듯 하면서도, 이 모든 걸 예상했다는 듯이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어요. 생명을 불어넣을 수는 있어. 하지만 네가 만든 여기에 생명을 불어넣게 되면, 네 존재가 사라지게 돼. 모두가 네가 사라진 것을 <그럴 수도 있다> 라며 당연하게 여길 거야. 정확히는, 네 스스로가 네 자신의 창조물이 되는 거야. 너는 신이 아니고 인간이니까. 하나의 생명을 만드는 대가는 그만큼 큰 거지. 사실 그 정도도 대가가 작은 편이지만. 미술 선생님의 표정은 굉장히 진지했고, 농담을 하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았어요. 그리고 저는 그 자리에서 두 사람의 대화를 보고 있다가, 정말 불길한 기운이 감도는 걸 느꼈어요. 저는 처음에는 민혁이를 말리려고 했죠. 솔직히 무서웠어요, 민혁이가 사라져버린 세계. 세상에서 한 사람의 존재가 사라지는 건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잖아요, 사람이 살아온 흔적이 있고, 그 사람을 기억하는 이들이 있는데. 그런데, 정말 제 힘으로는 어쩔 수 없었어요. 그 녀석은 이미 누군가가 말린다고 어떻게 될 만한 상태가 아니었거든요. 카일 선생님은 분명 그걸 알고 있었을 거에요. 그 조형에서 느껴지는 민혁이의 광기 어린 집착을 말이에요. 미술 선생님은 민혁이에게 말했어요. 이 조형물이 완벽하게 네 안에서 완성되었을 때, 그 때 조형물을 향해 그대로 뛰어들면 네가 바로 그 안으로 들어가서 조형물이 네 존재를 대가로 생명을 가지고 숨을 쉴 거다, 라고요. 그리고 이어 말씀하셨죠. 그 이후의 행동은 자신은 절대 책임지지 않겠다고, 만약 네가 창조해낸 생명체가 다른 이를 해치거나 지나치게 큰 문제를 일으킬 경우에는 그 일이 일어나게 만든 선생님 당신의 손으로 목숨을 끊는 수밖에 없으니, 그 점은 명심하라고 민혁이에게 몇 번이고 당부하셨어요.

민혁이는 처음에는 굉장히 고민하더라고요. 카일 선생님의 말이 솔직히 보통 상식으로는 절대 이해되지 않는 얘기잖아요. 그냥 앞뒤 없이 달려들면 된다니. 게다가 그 조형물은 점토로 만들어서 쉽게 부서지는 거구요. 카일 선생님 말씀이 거짓말이어서 부딪혔다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게 되면, 여태까지 공들여 만들었던 것이 순식간에 무너지는 거구요. 그리고, 물론 마음 속 한 켠에서는 자신의 존재가 사라진다는 것에 대해서 걱정했는지도 몰라요. 자신이 살아왔던 기억이나 그 이성이 그대로 남아있긴 할지, 어떤 것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었으니까요. 글쎄, 다른 사람들과도 제대로 얽혀 본 적도 없을 그 녀석이 아쉬움 같은 걸 남길 만한 기억이라는 게 과연 뭐가 있었을지는 잘 모르겠는데, 여튼 애초부터 세상 모든 것에 정말 미련이 없는 자식이었으니까요. 결국 녀석은 그렇게나 매달렸던 조형물을 완성해냈고, 그리고 그 날, 제가 보는 앞에서 그것을 향해 달렸어요. 그리고 저는 그 날 눈 앞에서 마법이 일어나는 걸 봤죠. 만들어진 그대로의 찰흙 색을 띠고 있던 그 조형물이, 점차 새카맣게 탄 듯한, 아니, 어두운 데에서 눈을 감았을 때에 느껴지는 것과 같은 칠흑의 빛으로 변했어요. 완전히 검은색을 띠고 있던 그것은, 천천히 몸에 광택을 띠며 뚜렷한 형체를 가지기 시작했죠. 그러더니 곧 눈에 생기가 돌면서 저와 눈이 마주쳤어요. 눈동자는 빛나는 듯한 노란색이었고, 마주치는 사람의 다리를 순식간에 풀리게 만들 만큼 강한 힘을 가지고 있었어요. 그리고 꼬리, 볏, 군데군데에 마치 불이 피어오르듯, 진홍색의 점, 혹은 물결 무늬가 생겨났어요. 그 존재의 몸에서부터 까만 것이 드라이아이스의 연기처럼 피어오르거나, 혹은 타르처럼 바닥으로 뚝뚝 떨어졌고, 그것은 금세 흔적을 감추며 사라지곤 했죠. 심연에서 올라온 듯한. 종극의 왕. 그 말이 더할 나위 없이 어울리는 존재였어요. 소름이 끼치도록 두렵고, 미치도록 아름다운 생물. 저는 물어봤죠, 절 알아보겠냐고.

그리고 그는 저를 바라보고,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돌려 밖으로 나가는 거에요.

그 순간 갑자기 속이 확 뒤집히는 거에요, 선생님. 그건 참을 수 없는 살의였어요. 제가 느꼈던 감정, 그걸 분노라고 표현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는데, 그 존재가 심연에서 올라온 종극의 왕이라면, 심연에서 올라온 극한의 불쾌함이었어요. 저는 책상 옆에 있는 커터칼을 들고 그 존재를 내리찍었어요. 그러나 박히기도 전에 날이 부러져서, 커터 날이 튀어서 팔에 스치는 바람에 제 교복 소매만 찢어졌죠. 그 가죽은 상상 이상으로 단단했어요. 아니, 커터 날으로 누군가를 해치는 것 자체가 무리라고는 하지만요. 어찌되었든, 눈 앞에 있는 저것을 죽여야 한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가득 메웠어요. 바닥에 굴러다니던 조각도를 들고 찍어도 아무런 효과가 없었어요. 그래요, 선생님. 사실은 민혁이가 조형물을 향해 뛰어들기 전에 제가 그걸 막았어야 했어요. 저라는 사람을 똑바로 바라보게 만들었어야 했는데, 그 녀석은 애초부터 나라는 존재는 안중에도 없었던 거죠. 어렸을 때부터 계속해서 지켜 봐 왔는데, 내가 얼마나 많이 도와주고, 보살펴줬는데 말이에요. 그 녀석이 조형물에 제 생명을 바치는 순간까지도 함께였는데! 제가 어떻게 생각하든 간에, 민혁이는 아무런 미련 없이 떠나버렸잖아요. 그 빌어먹을 녀석이 말이에요.

종극의 왕은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것 같았어요. 녀석은 미술실을 천천히 걸어나갔어요. 제 존재 따위는 아무런 방해도 되지 않는다는 듯이 말이에요. 심지어 자신을 해치려고 했던 절 공격하지도 않았어요. 저는 녀석의 뒷모습을 보고 가슴을 대못으로 찍는 것 같은 아픔이 달려서, 눈물도 나오지 않을 정도로 아파서, 누군가가 심장을 잡아뜯는 것 같은 기분이 돼서, 아예 그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어요. 그런데, 그게 절 흘끗 돌아보더라고요. 제가 넋을 놓았던 탓에 잘못 본 건지 모르겠지만, 그 눈빛이 왠지 그 존재의 모습에 어울리지 않게, 아주 많이 슬퍼 보였어요. 그랬더니 그 눈빛을 보게 된 순간 제 가슴을 가득 메우고 있던 그 격한 감정이, 물에 씻은 듯이 사라져버린 거에요. 정말 신기하죠. 저도 이해가 안 돼요. 그건, 그건요 선생님, 마치 카일 선생님이 첫날 죽은 동물을 들고 온 수업에 화를 내던 아이들이 조용해진 거랑 굉장히 비슷했어요. 마법이라는 건 원래 사람의 감정을 움직이는 힘일까요, 선생님. 그 녀석은 천천히 어딘가를 향해 걸어갔어요. 학교를 빠져나갔죠. 시간이 늦어서 길에는 사람이 없었어요. 한참을 따라가다가, 녀석이 어떤 골목으로 사라졌어요. 그 녀석이 걸음이 빨랐던 탓에 쫓아가기도 벅차서, 체력이 딸렸던 저는 멀리서 녀석이 사라지는 걸 보고 있을 수밖에 없었죠. 그 녀석은 말 그대로 그림자 속으로 사라진 것만 같았어요.

그 뒤로는 완전히 일상으로 돌아온 것만 같았어요. 민혁이가 어디 갔는지 궁금해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죠. 제가 혹시나 싶어 다른 아이들이나 선생님들께 물어봐도, 반응은 다들 시큰둥했어요. 그냥 어디 여행 가지 않았어, 라던가, 학교 그만두고 검정고시 치러 갔대, 라던가, 심지어는 사람이 사라지는 일은 흔히 있는 일이라며 대충 넘기거나. 민혁이네 부모님도 어디 좀 갔다 오나 보지, 하고 정말 대수롭지 않은 듯 넘기더라고요. 그 마법은 어째서인지 저에게는 닿지 않아서, 저는 녀석이 어디로 사라졌는지 무척 궁금했어요. 여기저기 알아보러 다녔지만, 정말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거에요. 카일 선생님에게 물어봤지만, 아마 이 근처에 있을 거라는 확실치 않은 대답뿐이었죠. 그래도 결국 그 선생님이 지옥에서 올라온 왕의 생명을 제 손으로 끊게 되는 데는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어요. 어느 날 느닷없이 끔찍한 살해 사건이 일어났거든요. 범인은 날카로운 이빨으로 피해자의 사지를 물어뜯고 잘라내어 죽였대요. 경찰은 키우던 골든 햄스터 두 마리에게 물려 사망한 거라는 판단을 내렸어요. 한 케이지에 두 마리를 넣어 기르는 바람에 스트레스를 받아 몹시 민감해져 있었다고 하네요. 확실한 건, 그 피해자는 작년 여름 즈음에 민혁이의 그림을 보고 다른 일러스트레이터를 베꼈다며 괜히 물고 늘어지던 꽤 유명한 커뮤니티 관리자였다는 거죠.

카일 선생님은 짓궂게도, 당신이 목숨을 거둔 이의 시체를 제게 넘겼어요. 어차피 아무도 신경쓰지 않는 데에다, 그의 존재를 기억하는 게 저밖에 없으니 알아서 처분하라나요. 그래서 저는 그 존재의 모든 걸 먹어치우기로 했어요. 머리부터 발끝까지, 뼈도, 이빨도, 발톱도, 살아 있었을 때는 상처조차 나지 않았던, 죽어서 비로소 연약해진 그 조각들을 아버지 작업장의 공업용 분쇄기에 넣고 전부 부수어 목 뒤로 삼켰어요. 그 단단한 가죽도 전부 조각 내서 천천히 씹어먹었고요. 놀라울 만큼 아무도 신경쓰지 않았어요. 그걸 먹는 데만 해도 거의 보름이 넘는 시간이 걸렸지만 그것은 썩지도 상하지도 않았어요. 그래도, 모든 걸 삼켜버리고 나니까 속이 아주 후련해지더라고요. 녀석의 존재는 이제 저만 아는 상태로 제 자신이 되었는걸요. 그리고 제 몸에서 나온 모든 찌꺼기가 강이 되고, 흙이 되고, 비로 내리고, 꽃을 피우겠죠. 물론 끔찍한 일이에요, 다시는 일어나서는 안 될 일이죠. 그래도 선생님, 사실 전 지금 기분이 너무 좋아요. 제 생에 이런 꿈만 같은, 엄청난 일을 겪게 될 줄이야. 그것도, 길지는 않지만 여태까지 살아온 제 모든 인생에 걸쳐서 말이에요. 전 이제 이 내용으로 소설을 쓸 거에요. 분명히, 예전에 민혁이가 노트에 그리던 생물을 대상으로 쓰던 것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멋진 글이 나올 거라고 생각해요.

오늘 날씨가 참 맑죠, 선생님. 막 봄이 되려고 하는 흙 냄새, 나른한 햇빛 냄새. 겨우내 버틴 나무 냄새, 바람 냄새. 세상이 마음 아플 정도로 사랑스러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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