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화 <절규>
"꾸워어억―!"
팍! 철퍽.
“꺄악!”
점점 어둑해지는 산속에, 돌연 정체불명의 괴음과 무언가 터지는 소리, 그리고 여자의 높은 비명소리가 울렸다. 초조하게 걸음을 재촉하던 조세핀과 셰리는 그 소릴 듣자마자 경직되어 그 자리에 발걸음을 멈췄다. 곧 둘은 빠른 손놀림으로 총을 쥐곤, 불안한 눈으로 주위를 둘러보다 서로를 마주 보았다.
“들었지?”
“…무슨 소리였지? 설마 그거, 곰 울음소리는 아니겠지?”
“둘이 곰을 조우했다면, 그건 곰의 단말마일 거야.”
"무슨 근거로? 미오가 뭔갈 했다는 거야?"
"그래. 잘 떠올려 봐. 괴상한 소리와 비명 사이에 무언가 터지는 듯한 소리가 섞여 있었어. 비명은 아마 줄리아일 거고, 터진 건… 하나거나, 둘이겠지."
그 말을 들은 조세핀은 하얗게 질린 표정으로 셰리를 바라보다가, 이내 시선을 아래로 향했다.
“…만약 둘이라면 미오를 데리고 가기만 하면 되겠네.”
“무슨 소리야? 줄리아는?”
“의뢰자가 줄리아의 생사 여부는 신경 쓰지 않았거든. 오히려 내가 죽이길 바란 것 같던데. 이 총도 그녀에게 받은 거야.”
“…미쳤다니까. 그 여자.”
셰리가 한숨을 쉬었다. 둘은 다시 발소리를 죽여 소리가 들린 방향으로 향했다. 두 번은 들리지 않는 소리에, 처음 들었던 소리의 방향감만을 이용해 소리의 근원지를 찾아가야 하는 건 꽤나 어려운 일이었다. 몇 번인가 이쪽이니 저쪽이니 옥신각신하면서 조세핀은 혼자 오는 게 나았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잠깐….”
“왜. 쉬었다 가게? 아니면 우리가 조난당했다고 하고 싶은 거야?”
“후자도 배제할 수 없긴 해.”
“이런 말 하는 것도 웃기지만, 조난당해도 걱정 마. …해가 떨어져도 내가 돌아오지 않으면 조난인 걸로 알고 찾으러 와달라고 얘기해뒀으니까.”
“아 그러셔. 그럼 그건 괜찮겠네. …근데 내가 말하려던 건, 만약 줄리아가 죽은 게 맞다면, 왜 미오의 울음소리가 들리지 않냐는 거야.”
“…뭐?”
“생각해 봐. 전부 버리고 같이 도주할 정도로 둘 사이에 어떤 유대가 있다면, 이 정적은 이상해.”
“…그건.”
“줄리아도 살아있어. 높은 확률로, 죽은 건 곰뿐일 거야.”
“그렇다면…”
"바로 네 뒤에 말이지! 비켜, 셰리!"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셰리의 바로 뒤에 있던 나무에서 도끼를 휘두르는 손이 튀어나왔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총성이 한 발 크게 산속에 울려 퍼졌다. 셰리에게 닿기 직전의 손과 도낏자루에 구멍이 생기면서 살점과 나뭇조각이 흩날렸고, 여자의 높은 비명소리가 들렸다. 조세핀은 도끼가 지면 멀찍이 덜어진 것을 확인하곤, 손이 튀어나왔던 나무를 향해 총구를 겨눴다.
“…나와. 줄리아 빅토리.”
“미친…… 총은 너무하잖아요, 탐정님.”
“냅다 도끼를 휘두른 사람에게 듣고 싶진 않은데. 그리고… 어허. 허튼 움직임은 그만둬. 다음에 날아가는 건 네 나머지 손일지도 모르니까.”
“…….”
“그래서. 댁이 납치하신 미오 D. 애스터는 어디 두고 혼자실까?”
“납치? 납치라니 무슨 소린지 모르겠네…. 윽. 이거 진짜 아프거든요?”
줄리아는 있는 힘껏 얼굴을 찡그리며 신음했다. 울컥울컥, 살의 단면에서 피가 쏟아져 나오고 있는 걸 줄리아는 치맛자락으로 감싸 쥐며 애써 지혈하고 있었다. 쉬이 되지 않는 지혈에 줄리아는 잇새로 쓰읍 거리는 소리를 내며 고통에 신음하고 있었다. 줄리아의 신음만이 들리는 정적 속에서, 조세핀은 줄리아에게 조금씩 다가갔다. 조준을 좀 더 정확히 하듯이.
“다시 한번 묻겠어. 미오는 어디 두고 혼자 있지?”
“…쓰읍. 하… 하하! 혼자라니. 그럴 리가요. 유감이지만 저는 혼자가 아녜요.”
줄리아는 고통에 찬 눈으로 웃으면서 셰리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바닥에 주저앉은 채 있던 셰리가 불안한 듯 주변을 둘러보았다. 동시에 찰박. 하는 소리와 함께 셰리의 오른손에 기분 나쁜 감각이 닿았다. 셰리는 전신에 한기가 도는 것을 느끼며 천천히 제 오른손을 보았다.
“…셰리?”
조세핀이 여전히 총구를 줄리아에게 겨눈 채 셰리를 돌아보자, 셰리의 오른손 아래 지면에 검은 점액이 고여 있었다. 언제부터 거기에 점액이 있었는지는 알 수 없었다. 곰의 단말마에 신경 쓰느라 지면을 제대로 확인하지 않은 게 실책이었다.
―점액이라기엔, 건드리면 마치 살아있는 세포처럼 꿈틀거리는 듯했다.
―목 아래부터 배까지 뜯어먹힌 듯한 흔적에 검은 점액이 한가득 묻어 있었고.
불길한 느낌이 들었다. 조세핀이 다급하게 소리쳤다.
“셰리! 그 점액에서 손 떼, 당장!”
그 말과 동시에 셰리가 점액에서 손을 떼려는 순간이었다. 조세핀은 나지막하게 제 뒤에서, 총구 쪽에서 들리는 목소리를 똑똑히 들었다.
“미오, 지금이야….”
미오. 그 이름이 입 밖에 나온 순간, 조세핀이 하얗게 질린 얼굴로 줄리아를 돌아보았다.
동시에 점액에서 손을 떼려던 셰리의 오른쪽 팔이 몸에서 떨어져 나갔다. 촥. 하고 조세핀은 바짓단에 따뜻한 액체가 튀는 것을 느꼈다. 그 불길한 따스함에, 셰리를 향해 돌아본 조세핀의 사고가 정지했다. 하지만 그것도 짧은 순간이었다.
“아아아아아아아악!”
“셰, 셰리! 이런 미친!”
셰리의 비명에 조세핀의 뇌가 다시 사고를 시작했다. 하지만 그렇다 한들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알 수 없었다. 어떻게 갑자기 셰리의 팔이 몸에서 떨어져 나갔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셰리의 손바닥 아래에만 고여 있었을 검은 점액은, 어느샌가 셰리의 잘린 팔을 뒤덮고 있었다. 잘린 팔을 감싼 점액이, 마치 팔을 집어삼키듯이 서서히 줄어드는 기묘한 광경을, 조세핀은 가만히 보고만 있진 않았다. 조세핀은 점액을 향해 총을 쐈다. 침착하게 정확히 세 발.
탕! 탕! 탕!
총알에 점액이 터지며 셰리의 얼굴과 주변 나무와 풀숲에 튀었다. 가장 큰 형태를 유지하고 있는 점액은 구물거리며 총알을 뱉어내었다. 마치 이깟 무기는 통하지 않는다는 듯이.
“뭐야. 뭐냐고! 이건…정말 망자라고?!”
"망자라니 무슨 소린지 모르겠네. 그건… 미오지만 미오가 아니야…. 미오라는 이름에 갇힌 가엾은 존재지."
“뭐?”
“진짜 미오는 죽고 없어… 윽. 탐정님. 어디까지 추리하셨는지는 모르겠지만, 당신의 추리는 다 틀린 것 같네요.”
“너…너 대체 뭘….”
철컥, 다시 장전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주, 주 줄리이….”
라며, 기분 나쁜 소리가 들렸다. 이것을 목소리라고 표현해도 되는 것일지 모를 정도로 기분 나쁘게 낮고, 부글거리는 거품이 터지면서 내는 듯한 소리였다. 동시에 무언가 축축하고 차가운 게 조세핀의 발목을 붙잡았다. 셰리인가? 그런 말도 안 되는 헛된 희망을 갖고 돌아본 조세핀은 곧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한 공포를 목격했다.
“아. 아아….”
눈앞에 있는 게 무엇인지, 감히 표현조차 할 수 없었다. 차라리 밤이었다면 형태를 파악하지 못했으니 나았으리라. 아직 나뭇잎 사이로 새어들어오는 햇빛이, 그것의 형태를 정확하게 조세핀의 시야에 담아주었다.
흐물거리는 검은 점액질의 슬라임과 같은 형태를 한 그것은, 조세핀보다도 머리 세 개 이상은 더 커다랬다. 슬라임의 가장 위쪽에는 사람의 머리 같은 것이 마치 꽃의 암술처럼 뻗어 나와 있었는데, 긴 머리를 늘어뜨린 것이 어딘가 익숙한 모습이었다. 머리카락 사이로 보이는 얼굴의 절반은 부글거리는 검은 점액으로 뒤덮여 있었고, 머리 아래로 이어진 검은 점액질 덩어리는 표면이 들끓듯이 무수히 많은 눈이 형성되고 사라지길 반복하며 조세핀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게 당신이 찾던 미오야. 데려갈 수 있으면 어디 데려가 봐.”
“으, 으아아아아! 아악!”
조세핀의 이성이 공포로 마비되었다. 조세핀은 ‘미오’에게 잡힌 다리를 털며 자신의 발목을 붙잡은 촉수를 떨쳐냈고, 자신의 총구가 어딜 향했는지도 모르는 채, 방어적으로 방아쇠만 당기고 있었다. 중간에 무언가 터지는 소리도 들렸으나, 조세핀은 그것이 사람의 머리가 터지는 소리인지, 눈앞의 점액이 터지는 것인지조차 알 수 없었다.
“힉, 히익!”
마크라 마을을 공포로 뒤덮은 진실이 눈앞에 있었다. 하지만 그런 것 따위 이제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더 이상 발포되지도 않는 총의 방아쇠를 몇 번인가 더 당기던 조세핀은, ‘미오’를 향해 총을 내던지곤 구르듯이 산을 뛰어 내려갔다. 어디가 어디인지도 모르는 채로, 살았는지 죽었는지도 모를 셰리도 놔둔 채 조세핀은 비명을 지르며 산을 내려갔다.
한밤중이 되어서야 조세핀은 겨우 산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산의 입구에는 셰리와 조세핀을 찾기 위해 모인 보안관들이 있었다.
“이, 이봐!”
“으, 흐윽!”
“너, 너 대체 무슨…셰리는?”
“흑… 흐흑…… 모, 몰라… 몰라!”
조세핀은 저를 붙잡는 보안관들의 손을 뿌리치고 도망쳤다. 피를 뒤집어쓰고 흙먼지투성이가 된 모습만으로도, 보안관들은 모든 상황을 이해했다. 올려다본 산은 밤의 색으로 검게 물들어 있었고, 불길한 바람이 불어오고 있었다. 산 입구에 남겨진 보안관들은 멍하니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보안관들의 손에 들린 손전등들은 갈 곳을 잃은 듯 허공을 비추고 있었다. ‘셰리 윌리엄은 죽었다.’, ‘저 산 안에 ‘그것’이 있다.’. 그들은 모든 것을 이해하고 산에 들어가기를 포기했다.
반 광란 상태로 집을 향해 달려가는 조세핀에게 이제 의뢰고 뭐고 전부 필요 없었다. 이런 일 따위에 발을 들이는 게 아니었다. 탐정 같은 거 되는 게 아니었다. 고향에 돌아가 어머니에게 잘못했다고 빌어야겠다. 그 생각만이 들고 있었다.
다음날, 산의 입구에는 철조망이 쳐져 있었다. 미스트워커 탐정 사무소는 모든 짐이 남겨진 채, 더 이상 돌아오지 않을 주인을 기다리고 있었다. 마크라 마을의 사람들은 애스터 일가에 대해 그러했듯, 조세핀과 셰리에 대해서는 아무도 입 밖에 내지 않게 되었다. 한밤중에 피를 뒤집어쓴 조세핀이, 비명을 지르며 어디론가 달려갔다는 것만으로도 모든 상황을 이해하기에는 충분했다. 딸이 돌아오지 않게 된 스키조 부인의 행방 역시 아무도 알지 못했고, 알려고 하지 않았다.
조세핀은 탐정 일을 그만두고 그 길로 고향에 내려가 어머니에게 엎드려 용서를 빌었다. 공포에 질린 채 지리멸렬한 말로 용서를 구하는 딸을 보며, 조세핀의 어머니는 차마 그녀에게 아무것도 묻을 수 없었다. 그저 괜찮다는 위로 아닌 위로를 건네며 잘 돌아왔다는 말밖에 할 수가 없었다.
그날 밤이었다. 조세핀은 2층에 있는 자신의 방에 누워 멍한 눈으로 창밖을 보고 있었다. 문득 깨달으니 창문 너머로 검은 그림자가 바람에 흔들리는 것이 보였다.
“어…어어…….”
그 그림자는 마치 얼마 전에 보았던 악몽의 형상과도 같은, 검고 일렁이는 형태를 하고 있었다.
…저건 미오다. 미오가 자신을 끝까지 죽이기 위해 찾아왔다. 그리 이해한 순간, 조세핀의 숨이 거칠어졌다. 온몸에 한기가 돌고 손에 땀이 쥐어졌다. 헉헉거리는 소리만 내던 그녀는, 그림자가 창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리고서야 비명을 내지를 수 있었다.
“아… 아악! 아아아아아악!”
“조세피나! 무슨 일이니!”
조세핀의 비명에 한밤중에 자다 깬 그녀의 어머니가 방으로 달려왔다.
“엄, 엄마! 오, 오면 안 돼! 차, 창밖에… 창밖에…!”
“창밖에…?”
“창밖에 있어! 창밖에! 아아!”
“진정하렴, 조세피나. 창밖에 대체 뭐가 있다는 거니?”
머리를 감싸 쥐고 절규하는 조세핀을, 그녀의 어머니가 끌어안았다. 식은땀으로 젖은 조세핀의 얼굴을 닦아주며 진정시켜주려 했으나, 조세핀의 시선은 창밖을 떠나지 못하고 있었다.
“조세피나! 조세피나! 엄마 보렴, 조세피나!”
“아악! 아아아아악! 왔어! 왔다고! 죽을 거야, 죽을 거야, 죽을 거야!”
“조세피나! 대체… 대체 무슨 소릴 하는 거니. 응? 그 마을에서 무슨 일이 있었어?”
맞물리지 않는 대화를 하며, 조세핀의 어머니는 어쩔 줄 몰라 했다. 도대체 그 마을에서 무슨 일이 있었기에 딸이 이렇게까지 미쳐버린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어머니의 품에 안겨 이를 다닥다닥 떨던 조세핀은, 공포에 질린 채 그 이름을 다시 한번 내뱉었다.
“창밖에! 미오가! 미오가 있어!”
창밖에는 나뭇가지가 바람에 흔들리며 창문을 툭툭 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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