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림 본편 연성글

5. 가장 사랑받은 자

프랑켄슈타인(원작) 드림 | 괴물 드림

701호 by RU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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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퍼시에요. 오랜만입니다, 어머니. 아일랜드에 오자마자 바로 여기 왔어요. 어머니도 많이 야위셨군요. 형이 굶기는 건 아니죠? 정말? 형이 잘 대해주고 있다니 다행이네요. 당연히 어머닐 믿죠. 어머니가 저에게 거짓말을 하겠어요? 셋 중 절 가장 사랑하시는 것, 다 알고 있으니까요.

저는 이국 땅을 여행하면서 이런저런 일들을 많이 겪었답니다. 하하, 사람들이 함부로 대하지는 않았어요. 해야 할 일도 무사히 마무리하고 왔답니다. 아버지께서 저희 곁에 계셨더라면 자랑스러워하셨을텐데, 그립네요. 그래도 저희에게 어머니라도 계셔서 다행이지요, 안 그래요?

대부분은 시시콜콜한 이야기라 다음에 해도 될 것 같고, 지금은 제가 겪었던 기묘한 일을 말씀드리려 해요. 이 이야기는 지금껏 아무에게도 하지 않았어요. 어머니에게만 들려드리는 거예요.

저는 여행 중반 즈음에 사고로 물에 빠지고 말았어요. 보시다시피 지금 이렇게 살아있으니 무사히 넘어간 일입니다. 하지만 그때는 꽤나 위험했어요. 정말로 죽을 뻔했지요. 어떤 피조물이 나를 구해주지 않았더라면, 저는 그대로 죽었겠지요.

네, 피조물. 사람이 아닙니다. 그렇다고 신의 피조물도 아니었지요. 신이라면 그런 실수를 하지 않았을 테니까요. 저보다 이만큼은 더 크고, 거대한 몸집에, 얼기설기 꿰맨 피부였지요. 이어붙인 피부마다 빛이 제각각이라, 하얗고 부드러워 보이는 부분도 있고 누렇게 뜬 시체 같은 부분도 있었답니다. 이런 게 악몽이 아니라 현실에 나타났다는 게 진짜 놀랍지요. 그 꿰맨 자국들을 보고 그 괴물이 인간의 피조물임을 확신했답니다. 나중에 그 괴물이 직접 그렇다고 해주었지요. 자기 창조주 인간의 이름도 알고 있었고, 그를 찾아가려고 하더군요. 가엾게도.

아무튼 어머니, 그래서 저는 어머니가 늘 말씀하시던 그것이 문득 생각이 나더라고요. 누군가가 신의 의지를 거스를 거라고, 그렇지요? 제가 그 말을 절대 잊을 수 없게 해주셨잖아요. 저는 괴물을 본 순간 그게 생각날 수밖에 없었답니다. 아, 누군가가 신의 의지를 거스르고 이런 짓을 해버리고 말았구나. 죄를 지었구나. 이제 재앙이 올 차례인가? 어머니가 늘 말씀하셨던 대로? 그 창조주라는 놈은 창조를 함으로써 신에게도 죄를 짓고 본인에게도 죄를 짓고 그 태어나버린 괴물에게도 죄를 지은 거예요. 그 누구도 낳음됨을 선택할 수는 없다지만, 그 괴물에게는 참 너무한 처처사일 테니까.

거짓말? 에이, 제가 어머니에게 거짓말을 하는 것 보았나요? 전 언제나 어머니를 가장 따르던 착한 아들이었잖아요. 제가 하는 건 전부 제가 직접 보고 들은 것들이에요. 아무튼, 저는 무척 놀랐지만 살아남고 싶어서 구해달라고 했지요. 어차피 잘 살아남고 하고 싶은 것 하려면 악마라도 괜찮다고 생각한 판에, 누덕누덕 기운 괴물이 대수겠어요? 악마 얘기는 농담이에요, 어머니. 그런 게 우리 삶에 나타날 리가 없잖아요.

사실 그 뒤에도 말이 안 통한다거나, 끌려간다거나 하는 각오도 했지만 절 구해줬으니 지성도 있겠고 양심도 있겠거니, 하고 걸어봤어요. 행운은 제 편이더군요. 말도 통할 뿐만 아니라 완전히 신사였어요, 그 괴물은. 지성도 깊고 훌륭하고 예의바르더군요. 누군가가 가르치기만 했어도 대화만으로는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겠지요. 그 괴물은 태어난 지 5년도 되지 않았다고 하더라고요. 그걸 감안하면 매우 훌륭한 아기인 셈이죠. 실제 다섯살배기들이 어떤 것들인지 생각해본다면요.

날 구해준 대가로 바라는 것은 고작 자신과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더라고요. 아, 얼마나 가엾던지! 그 누구도 그와 이야기를 나누지 않은 게 분명했어요. 별로 어려운 추론도 아니었고요. 그렇지만 가엾어하는 것은 그에게 크나큰 모욕이 되겠지요. 그래서 표정을 잘 숨기고 제 별장에 데려갔답니다.

오, 어머니. 저는 당연히 괜찮아요. 일단 그 괴물이 신사라는 것을 전 알았거든요. 전 눈만 봐도 약탈자들과 무뢰한들을 얼추 구별해낼 수 있답니다. 이런 기이한 일에는 무엇보다도 직감이 중요하지요, 그렇지 않겠어요? 일단 저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것을 알려드리지요.

괴물과의 이야기는 정말 흥미로웠답니다. 제가 살면서 꼽은 두 번째로 인상깊은 순간이었을 거예요. 그리고 느꼈어요. 이 괴물은 아이다. 어른의 말과 생각과 지식을 지닌 아이라고. 아……. 짜릿하더라고요. 이 아이의 앞날에 제가 어느 정도 기여했으니. 이 아이를 어떻게든 이용할 수 있지 않을까?

어른을 이용하는 것과 아이를 이용하는 것은 약간 다르죠. 가끔은 아이가 더 어려울 때가 있고요. 하지만 아이의 속박과 충성은 절대적이니까요. 아이는 자신에게 세상을 알려준 사람을 잊지 못해요. 자신에게 규율을 알려주고, 세상을 알려주고, 사랑을 알려준 사람을 잊지 못하지요. 그런 점에서 나는 이 괴물에게 어느 정도 관여한 게 아닌가 싶었어요. 그를 사랑하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환대해주었으니까요. 아마 그 어떤 인류도—감히 단언컨대, 그의 창조주마저도—그를 환대하지 않았을 걸요? 온 세계에서 저밖에 할 수 없는 거라고 확신했어요. 특별히 불운한 삶을 산 사람만이 그 어떤 것에도 놀라지 않으니까요, 그렇죠?

그렇지만 저는 그를 붙잡아 끌고 다니지 않았답니다. 충분히 그럴 수 있었고 괴물 또한 그것을 원했겠지만요. 하지만 그래서는 안 되었습니다. 그가 나의 모든 것을 수용하고, 나의 모든 것을 따르고, 나의 어떤 부당한 요구도 견디려면 이런 방식으로 다녀선 안 되니까요. 기왕이면 저를 거세게 부정했다가 참회하는 방식이면 좋겠지만……. 삶이 그렇게까지 마음대로 되진 않으니까요. 하지만 적어도 저를 갑자기 잃었다가 다시 갈구하게 만드는 건 괜찮은 전략처럼 보였지요. 마약을 한 번 맛본 사람은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을 테니까요. 만약 안 돌아오면? 그러면 내가 다룰 수 있는 게 아니겠지요.

그런데 삶은 가끔 저에게 행운을 몰아주기도 하더라고요. 괴물을 떠나보냈는데 다시 마주쳤습니다. 그는 내 일을 조금 방해했고, 나에게 반대하는 것이 옳은 신념이라 믿었지요. 어찌나 일이 이렇게 수월한지! 저는 괴물이 몇 년 안에 저를 찾아올 거라고 생각해요. 조금 더 컸겠지만, 아이겠지요. 하지만 더 상처받은 아이일 거예요. 그를 어떻게 써먹을지 생각하는 것은 정말 재밌겠지만, 미래의 나를 위해 그것은 미뤄두려고요.

기묘한 이야기는 이게 끝이에요. 어머니, 재밌었나요?”

내 말을 끝까지 들은 어머니는 낯빛이 시체처럼 하얗게 질려 있었다. 안 그래도 야윈 얼굴이 그 때문에 더 위태로워 보였다. 아마 어머니가 창살 너머에만 있지 않았어도 나는 어머니를 부축했을 것이다.

어머니는 경악한 얼굴로 아무 말도 않고 있었지만 나는 어머니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지 맞출 수 있었다. 당연했다. 나는 어머니의 가장 사랑받는 아들이니까. 어머니는 나에게 세상을 알려주고, 규율을 알려주고, 사랑을 알려준 사람이다. 그러니 어머니의 감정과 생각은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퍼시가 진짜로 미쳤어. 내가 퍼시에게 무슨 짓을 한 거지?’, 라고.

내가 빙그레 웃자 어머니가 몸을 덜덜 떨었다. 의자에서 일어나 창살 더 가까이로 다가갔다. 작은 방에 오래도록 갇혀 있었던 어머니와 더 가까워지도록. 어머니가 그것을 더 무서워할 것을 알기에 그렇게 했다.

“무엇이 그리 두렵나요? 자, 어머니. 저 퍼시에요. 어머니가 가장 사랑하는…….”

“미안, 미안해, 퍼시……. 내가 잘못했다. 내가 널…….”

“미치게 했다고?”

나도 모르게 목소리가 딱딱하게 나왔다. 어머니가 움츠러들자, 나는 달래는 목소리로 다시 돌아갔다.

“어머니……. 진정해요.”

만약 내가 미쳤다면, 어머니 입장에선 오히려 ‘퍼시’가,

“원하는 대로 망가졌으니, 기뻐하셔야 하는 것 아닌가요?”

그래야만 할 것인데.

그것이야말로 바로 사랑이라는 저주를 내린 결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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