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5타입

커미션3

게임 2차 드림

사거리에 있는 그 치과 말입니까? 네, 잘 알고 있죠. 치과는 항상 그곳만 이용하고 있습니다. 어떻냐고요? 음, 글쎄요….

아뇨, 실력에 문제가 있는 건 절대 아닙니다. 문제가 있었으면 제가 몇 년 동안 애용하고 있겠습니까. 내부도 깔끔하고, 고객 대응도 정말 친절합니다. 네? 그런데 뭐가 문제냐고요? 잠시만요…. …진짜 당신이니까 믿고 말하는 겁니다. 혹시나 거기 선생님께 제가 어디서 들었는데~ 이런 얘기 하면 절대 안 된다는 말입니다. 아시겠어요? 뭐, 사실 저도 어디 털어놓고 싶기도 했으니…, 마침 잘됐네요.

꽤 최근 일입니다. 정기적으로 갖는 검진에서 부끄러운 일이지만 초기 단계 충치가 발견됐습니다. 덕분에 간단한 조치를 받기로 하고 잠깐 대기했습니다. 곧 의사 선생님께서 오셨고, 치료를 시작하려 했는데…, 갑자기 핸드폰 벨소리가 울리지 뭡니까. 의사분, 그러니까 마이어스 씨께 연락이 온 거였습니다. 잠깐 양해를 구하고 받으시는데, 뭐, 내용 자체는 평범한 부부간의 대화였습니다. 듣기로는…, 마이어스 부인께서 퇴근 후 어디 빵집에서 갓 구운 사과 타르트를 사다 줄 수 있겠냐고 부탁한 것 같았고, 마이어스 씨는 흔쾌히 알겠노라고 말했습니다. 또, 미처 부인이 마이어스 씨께 말을 못 했는데 단원들과 어딘가 놀러 간 모양이었습니다. 누구랑 누구와 갔다고 말해줬는데, 선생님께서는 모르는 사람들이라 들어도 모른다며 웃었습니다. 치과 의자에 누워서 흘깃 마이어스 씨를 곁눈질로 봤는데, 진찰용 마스크를 내리고 활짝 웃는 모습을 그때 처음 봤습니다. 상어처럼 뾰족뾰족한 이를 훤히 드러내며 웃는데, 마음만 먹으면 치아의 개수를 빠르게 셀 수도 있어 보였습니다. 물론 미소는 전화가 끊기자마자, 아, 말을 이렇게 하니까 되게 대화만 간단히 나누고 끊어진 것 같습니다만…, ‘보고 싶네, 당신.’ 이런 말들이 계속해서 끼어드는 바람에 대화가 계속 늘어졌습니다.

통화는 ‘당신도 사랑한다고 말해 줘야지.’라는 마이어스 씨의 말에 마이어스 부인이 그가 만족할 만한 대답을 해주면서 끝났습니다. 아무튼 대화가 끊기자마자 미소는 모래에 쓴 글귀가 파도에 지워지듯이 싹 거둬졌고, 몰래 마이어스 씨의 표정을 구경하다 눈이 마주친 저는 뻘쭘해졌습니다. 그래서…, 오, 그러면 안 됐는데. 그만 ‘부부끼리 금슬이 참 좋으시네요.’ 이런 얘기를 꺼내버렸습니다. 부디 당신은 그런 실수하지 않길.

평소에 마이어스 씨는 딱 진료에 필요한 행위만 해서 제가 자주 찾던 것이었습니다만…, 그날은, 어휴, 예. 말도 마십시오. 곧 마스크를 다시 올리고, 제 얼굴은 입에만 구멍이 뚫린 초록색 천으로 가려져 시야가 차단되었고, 입에는 금속 도구들이 들어와 말도 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전 모든 소통 창구가 차단된 채, 잠자코 선생의 마이어스 부인 험담을 듣고만 있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네, 진짜 험담이요. 되게 사소한 것들이었습니다. 아까까지 좋아죽던 사람 맞아? 싶더라고요. 저도 안 믿겼습니다. 아내가 자주 전화를 건다고 했습니다. 매일 집에서 얼굴을 보는 데도 이러니 떨어져 있는 걸 못 견디는 것 같아서 걱정된다고도 했고요. 아까까지 내가 듣던 건 선생이 죽고 못 사는 느낌이어서 진짜인가 궁금했습니다. 또 부인이, 그, 어디였더라, 아무튼 국가에서도 운영하는 되게 유명한 무용단의 최연소 안무가인데, 최근 작품 하나가 끝난 뒤로는 매일 이렇게 디저트 심부름을 시킨다고 합니다. 그럼 또 퇴근하고 디저트를 사러 가고. 내가 아니라 디저트를 기다리는 것 같다고 했는데, 집에 가서 또 아내가 ‘여보, 왔어요?’ 하면서 맨발로 달려 나와 마중 나오면 또 풀리고…, 이거의 반복이랬습니다.

네? 이게 험담이 아니라 아내 자랑이라고요? 이게요? …모르겠습니다. 아내가 있어 봤어야 알지…. 뭔 자랑을 이렇게 한답니까? 어렵네요…. 뭐, 여기까지 보면 당신 말마따나 팔불출 남편인가 싶어서 당신께 얘기도 하질 않았죠. 하나 마음에 걸리는 게…, 마이어스 씨께서는 부인이 오늘 단원들과 함께 시내의 백화점에 놀러 간 모양인데, 같이 간 사람 중 하나가 요즘 집에 빚이 늘어 이곳저곳에서 돈을 빌고 다녀 괜히 맘 약한 부인을 이용하려 들까 봐 걱정된다고도 했습니다. 이런 일도 있어 걱정되니 밖에 자주 놀러 다니지 않았으면 좋겠다고도 했고요.

그런데 문득 부인이 미리 말하지도 않았는데 어딜 갔는지는 어떻게 알았으며, 분명 마이어스 씨는 부인한테는 같이 간 사람들이 누구인지도 모른다고 했으면서, 사실은 이 정도로 상세하게 알고 있던 게 이상한 겁니다. 그러고 보니 밖에 나가지 않았으면 좋겠단 말도 갑자기 좀 이상하게 들리고…. 그래서 저도 모르게 ‘네?’ 소리를 내고 말았습니다. 물론 실제로는 입안에 쇠막대를 물었으니까 ‘에?’에 가까웠겠습니다만. 어쨌든 딱 그때, 선생께서 진료가 끝났다며 제 입의 막대도, 얼굴을 가리던 초록색 천도 치워 주시더라고요. 그래서 그냥 바로 나왔습니다.

…뭐, 여러모로 기억에 남는 희한한 경험이었습니다. 그런데 딱 그날만 그랬고, 다른 때의 마이어스 씨는 굉장히 유능하고, 말도 없고, 진찰도 잘 봐주시는 좋은 의사니까…. 제 얘기는 잊으시고 치과 진료가 필요하시다면 방문하시는 거 추천해 드립니다, 네. 부인 얘기는 절대 꺼내지 말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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